책 소개
앙굴렘국제만화제 수상에 빛나는
아름답고도 강렬한 그래픽노블
축구 하는 십 대 여성들의 꿈과 열기를 가득 담아낸 그래픽노블 『휘슬이 울리면』이 우리를 찾아왔다. 스포츠 만화 하면 소년 성장물이 정석 아니냐고? 아니, 이 책에서만큼은 흔히 스포츠 만화의 조연 정도로 등장해 왔던 ‘소녀’들이 그라운드의 중심에 우뚝 선 주인공이다. 부당하고 불합리한 현실에 맞서 자신들이 설 자리와 나아갈 길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자 축구 선수들의 이야기가 마치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열띤 경기 장면처럼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현실적인 여성 서사를 청소년들의 이야기로 울림 있게 녹여 냈다고 평가받은 이 작품은 세계 최대 만화 축제인 앙굴렘국제만화제에서 2020 프랑스공영텔레비전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19 BD콜로미에페스티벌 골든글로보 대상, 2019 누벨아키텐 청년상, 2019 아르테미지아 해방상, 2019 프랑스저작권협회상 등 다수의 상을 받으며 작품성과 재미를 인정받았다. 감각적이고도 개성 넘치는 일러스트와 다양한 프레임 속에서 생동하는 입체적인 캐릭터, 스토리는 청소년을 비롯한 모든 세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하다.
돌진해 오는 축구공처럼
단단하고, 사납고, 거칠고, 날뛰는 소녀들의 세계
“사람들은 여자들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 가끔은 나한테도 불알이 달렸으면 훨씬 더 간단하고 쉬웠겠다 싶기도 해.” _바바라
주인공 바바라는 프랑스 외곽 지역의 청소년 축구 클럽에 소속된 FC 로시니 로즈의 주장으로, 팀 동료들과 함께 국가 대표 챔피언이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 클럽 대표는 지원금 삭감을 이유로 여자 팀만 챔피언십 출전을 포기해야 한다고 통보하고, 늘 여성다움과 대입을 강조하는 엄마는 축구를 향한 딸의 꿈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경쟁자이자 연애 상대인 빌랄조차도 축구를 단순한 스포츠 이상으로 생각하는 바바라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현실에 낙담하고 분노하는 바바라의 곁에는 다행히도 로시니 로즈 팀 동료들이 있다.
바바라와 동료들은 일상에서든 그라운드 위에서든 경쟁자들의 도발에 당당히 응수하고 멋대로 결정을 내리는 어른에게 거침없이 맞서며, 강인하고도 격렬한 얼굴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빼앗긴 챔피언십 출전권을 되찾기 위해 스폰서를 구하러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남자 팀과 대결을 벌이는 등 성차별적이고 불합리한 상황에 순응하지 않는 소녀들의 모습은 거칠고 서툴지언정 반짝이고 아름답다. 바바라와 동료들이 좌절하며 갈등하다가도 결국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함께 나아가는 장면은 독자들에게 생생한 연대의 감정을 전달한다.
‘축구’라는 스포츠를 중심으로 성차별적인 불합리함에 맞서는 여성들의 갈등과 연대를 그려 내는 동시에 위태롭고 서툰 십 대의 일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현실감 있게 담아낸 『휘슬이 울리면』의 매력은 일러스트를 통해 배가된다. 반 고흐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강렬한 색채감과 굵직하고도 역동적인 선으로 표현된 소녀들의 얼굴과 몸, 움직임이 이야기에 활기를 더한다. 무엇보다 이들이 초록빛 그라운드 위에서 사나운 함성과 함께 거침없이 몸을 부딪치고 상대 팀을 제치고 달려나가며 골을 향해 슈팅하는 컷들은 단연 이 책의 결정적 장면들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이 짓고 여성이 옮긴
여성들의 이야기
저자 클로에 바리는 자신과 같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탐색해 오며 이를 만화로 그려 왔다. 그의 최근작 『휘슬이 울리면』은 여성의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위치에 관한 고민을 스포츠와 여성 청소년이라는 소재를 빌려 풀어낸 결과물이다. 저자는 이 작품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성평등을 위해 투쟁할 때 필연적으로 언급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바로 ‘자본’이라는 점을 정확히 짚어 낸다. 여성에 대한 재정적·정치적 지원이 늘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관한 논의를 표면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저자의 생각은 이야기 속 로시니 로즈 팀이 능력에 맞는 대우와 지원을 받지 못하며 한계에 부딪히는 서사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여성이 성장하려면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데 밑거름되는 자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바바라가 부당한 대우에 분노하고 제 몫을 요구하고 끈질기게 노력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능력을 갈고닦고서도 이를 더 키울 기회를 빼앗기고 있는 현실 속의 수많은 바바라와 팀원들을 떠올렸다. _‘옮긴이의 말’ 속에서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번역가로 이 이야기를 우리말로 옮긴 이민경 작가 역시, 세상은 여성 집단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는다는 작품 속 설정을 현실과 연결 지으며 날카롭게 꼬집는다. 특히 십 대 여성에 대해 능력을 인정하고 지원하기보다 보호하고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여전히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는 프랑스 외곽 마을의 한 축구 클럽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의 세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인 셈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의 경기
흔히 스포츠물 속에서 남성 주인공들은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거나 더 월등한 실력자와 싸우며 성장한다. 『휘슬이 울리면』의 여성 주인공들은 어떠할까? 이들이 제치고 뛰어넘어야 하는 것은 경기 중에 상대 팀 선수가 걸어오는 태클만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나 경쟁자와 싸우기에 앞서 자신들의 성장을 제한하고 막아서는 세상을 상대해야 하는 바바라와 같은 여성이 현실에도 수없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현실의 제약과 사회가 강요하는 틀을 넘어서 우리가 원하는 결말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축구를 좋아하는 여성들의 연대기를 담아낸 에세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쓴 김혼비 작가는 이 책을 추천하는 글에서 “감정적인 지지를 넘어 우리에게 투표하라고, 우리의 승리를 개인적인 감동으로만 품지 말고 ‘공식적인 세계’에 기록할 수 있게 실질적인 참여를 하라”는 주인공들의 외침을 들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을 짓고 옮기고 추천한 이들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자신을 지원하지 않는 세상에 길길이 날뛰며 저항하는 바바라처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듯 보이는 상황에서도 휘슬이 울리면 어김없이 그라운드로 달려나가는 로시니 로즈 선수들처럼, 부디 가만있지 말고 지치지 말고 끊임없이 제 몫을 요구하며 설 자리를 쟁취하는 노력을 함께 이어 나가자는 단단한 메시지와 마주하게 된다. 우리 모두 FC 로시니 로즈의 바통을 이어 받아 더 넓고 평평한 그라운드에서 기쁘게 만날 수 있기를.
작가 소개
지은이 : 클로에 바리
1995년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태어났다. 고등학생 때부터 만화를 진로로 삼았다. 운전할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금지된 운전』을 그렸다. 이어 자신의 위치와 여성성을 탐색하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다. 유년 시절의 기억과 프랑스 북부에 있는 한 마을의 여자 축구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만화 『휘슬이 울리면: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소녀들』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 작품으로 2020 앙굴렘국제만화제 프랑스공영텔레비전상, 2019 누벨아키텐 청년상, 2019 아르테미지아 해방상, 2019 BD콜로미에페스티벌 골든글로보 대상 등을 수상했다.
옮긴이 : 이민경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번역가로 2016년부터 출판사 봄알람을 만들어 여성의 언어를 짓고 옮기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 국제회의통역전공과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쓴 책으로는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만든 책으로는 『김지은입니다』, 옮긴 책으로는 『어머니의 나라』 『임신중지』 『우리는 언제나 늑대였다』 등이 있다. 최근에는 통번역대학원 재학 시절 만난 페미니스트 동료 둘과 통번역 에이전시 ‘핫팟’을 만들어 여성의 창작물을 널리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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