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전쟁이라는 생존 게임에서 삶을 지탱해 주는 달콤함_ 고구마
서울에 살던 영진과 엄마는 전쟁을 피해 엄마의 친척이 있다는 대구로 피란을 떠난다. 피란길은 전쟁터만큼이나 고통스럽다. 발을 다친 어린 영진에게는 더욱더 그러하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배고픔이다. 고통스럽고 허기진 피란 중에 모자는 우연히 빈집 하나를 찾아 들어간다. 또 다른 누군가 피란을 떠나며 버린 집이다. 마침 그 집 뒷마당 텃밭에 심어진 고구마를 발견한 모자는 전쟁도 잊은 채 허기를 채우고, 고구마의 단맛은 피란에 지친 모자에게 큰 힘이 된다. 이튿날 모자는 배고픔과 잠자리를 해결하고도 남은 고구마를 보퉁이에 싼 채 다시 피란길에 나선다. 영진과 엄마에게 이제 고구마는 음식이자 재산이다. 모자는 무사히 대구에 도착해, 전쟁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까?
“엄마가 얼른 불 지필 테니 이거 구워 먹자.”
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군고구마를 까먹느라 여념이 없는데 저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엄마와 나는 겁이 덜컥 나 온몸이 굳었다. 밤중에 만나는 낯선 사람처럼 무서운 건 없다.
- <고구마 보퉁이>
폐허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뜨거운 열정 가득 담은 얼큰함_ 부대찌개
전쟁 중에 부모와 떨어지게 된 남희와 순자 고모는 잃어버린 부모를 찾아 고향인 개성을 떠나 부산까지 가게 된다. 결국 부모님을 찾지 못한 남희와 고모는 낯설고 무너진 폐허에서 꿀꿀이죽으로 허기를 달래며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였던 고모에게는 이별의 슬픔보다, 조카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보다 더 큰 꿈이 있다. 바로 경양식집을 차려 성공하는 것이다. 결국 고모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남희를 데리고 의정부로 가기로 마음먹는다. 배고픔도 참아 가며 힘들게 도착한 의정부에서 둘은 난생 처음으로 ‘유엔탕’이라는 음식을 먹게 되고, 얼큰하고도 짭조름한 맛에 힘을 얻은 고모는 또 다른 폐허일 뿐인 낯선 의정부에서 남희를 지키고 꿈을 꼭 이루겠다고 결심하는데. 고모의 꿈은 이루어질까?
“어머! 이게 다 뭐야?”
냄비 안에는 햄과 소시지, 김치와 파가 고춧가루에 범벅인 채로 김을 무럭무럭 내고 있었어. 김과 함께 내 콧속으로 찔러 들어오는 마력의 냄새가 굶주린 창자를 뒤집어 놓았지.
유엔탕은 첫눈에 봤을 때는 김치찌개 같기도 하고 육개장 같기도 했지만 한 숟가락 떠먹어 보니 완전 다른 맛이었지.
- <준코 고모와 유엔탕>
뜨거운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끓여 낸 칼칼함_ 라면
동대문 옷 공장에서 땀에 절고 피 흘려 가며 힘들게 일해 여섯 식구의 삶을 책임지는 성자에게 힘이 되는 것은 월급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라면이다. 그 순간만큼은 어느 부잣집 식사 부럽지 않다. 성자네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처음으로 맛본 음식도 칼칼한 라면이었다. 그 라면 덕분에 청계천 판자촌에서의 힘든 생활을 버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자네가 살고 있는 판자촌이 철거되는 일이 벌어진다. 청계천을 덮고 새 길을 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라에서는 그 대신에 철거민들에게 경기도 광주에 대단지를 만들어 집을 준다고 약속했다, 과연 그 약속은 믿어도 될까? 그리고 성자네는 다시 둘러앉아 라면을 먹을 수 있을까?
“라면이네?”
“지난번에 언니가 사 온 거 안 먹고 아껴 둔 거야.”
성옥은 김이 펄펄 나는 라면 그릇을 성자 앞으로 밀어 주었다. 언니가 출퇴근 전쟁을 치르느라 삶아 놓은 행주처럼 늘어지는 것이 딱한 눈치였다.
- <떡라면>
최루탄 가스에 뒤덮여도 굴하지 않는 마음과 닮은 쫀득함_ 떡볶이
성희네는 신문기자로 일하느라 집에 들어오기 힘든 아빠와 늘 집밖에서 취미 활동에 열심인 엄마 때문에 빈 집일 때가 많다. 서울 신촌 대학가에 자리해 있다 보니 최루탄 가스 냄새가 동네를 뒤덮을 때도 많다. 그런 성희에게 쫀득쫀득 단짠 단짠 떡볶이는 학교와 학원 스트레스는 물론 최루탄 가스 냄새를 잊게 해 주는 음식이고, 그중에서도 ‘민주네 떡볶이’는 성희가 맘 놓고 먹고 수다 떨 수 있는 아지트다. 하지만 성희에게는 떡볶이 먹을 때만큼 좋을 때가 또 있다. 대학생인 동호 삼촌이 놀러올 때다. 그런데 어느 날 데모에 참가했던 삼촌이 경찰서에 붙잡혀 가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민주네 떡볶이 포장마차에서도 싸움이 일어나는데….
민주네 떡볶이는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롭게 성업 중이었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포장마차로 다가갔다.
“아줌마 떡볶이 오십 원어치요.
나 혼자 애태우던 사정을 알 리 없는 민주네 아줌마는 그 무심한 표정 그대로 수저통에 담긴 포크를 가리켰다.
“찍어 먹고 가라.”
- <민주네 떡볶이>
부도 난 국가, 무너진 가정에서도 바스러지지 않는 마음 같은 바삭함_ 치킨
국가 부도라는 충격적인 사건에 일자리를 잃은 아버지와 치킨집을 하게 된 현식이. 그리고 현식이와 같은 반 친구지만 현식네와는 달리 종합금융회사 중역인 아버지를 둔 덕분에 유복한 진우네. 어느 날 치킨을 좋아하는 진우네 집으로 ‘반반 치킨’ 배달을 가게 된 현식은 자신과는 처지가 다른 진우네 가족을 보고 잠시 씁쓸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현식은 아버지를 도와 더 열심히 치킨집 일에 열중하는 것으로 그런 기분을 떨쳐 내려 한다. 한편, 학교에서 대학 입학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진우는 들뜬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그렇지만 헐레벌떡 도착한 집에서는 낯선 사람들이 집 안 곳곳에 빨간딱지를 붙이느라 정신이 없고, 소파에 앉은 엄마는 얼굴을 가린 채 훌쩍이고 있다. 과연 진우네 집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나라가 저 모양인데 치킨 시켜 먹을 맛이 나겠어.”
현식은 1년 가까이 잊고 살았던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드는 걸 느꼈다. 치킨집은 절대 망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가 또 실패를 맛보아서는 안 된다. 이번에 무너지면 아버지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지도 모른다. 현식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아버지가 전부였다.
- <반반 무 많이!>
작가 소개
김소연
2005년 월간 《어린이동산》 동화 공모에서 중편 〈꽃신〉으로 최우수상을 받았고, 2007년 《명혜》로 제11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창작 부문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역사와 전통문화를 문학으로 승화한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최근 SF에까지 장르를 넓히고 있다. 청소년 소설 《헬조선 원정대, 의열단 여전사 기생 현계옥의 내력》, 《헬조선 원정대, 을밀대 체공녀 사건의 재구성》, 《일인용 캡슐》(공저), 《전사가 된 소녀들》(공저), 《야만의 거리》, 동화 《승아의 걱정》, 《소원을 말해 봐》, 《꽃신》 등을 썼다.
목 차
고구마 보퉁이
준코 고모와 유엔탕
떡라면
민주네 떡볶이
반반 무 많이!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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