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나의 유일한 피난처는 그림이었다.
언제나 그리고, 그리고, 그렸다!”
칼데콧 상 수상 작가, 유리 슐레비츠가
직접 그리고 쓴 유년 시절의 이야기
얼어붙은 북쪽 끝 땅에서부터
지독한 굶주림에 시달리던 남쪽 땅 투르키스탄까지
나치의 공격을 피해 떠난 10여 년간의 여정
“우리의 삶이 이보다 더 비참해질 수 있을까?”
1939년 9월 1일, 평온한 바르샤바의 하늘에 독일 나치의 폭격기들이 날아들면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으로 기록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당시 유리 슐레비츠는 겨우 네 살이었고 부모님과 함께 바르샤바의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전쟁은 순식간에 그동안 일궈 온 모든 것을 파괴했다. 그와 그의 부모님은 전쟁 직후, 소련으로 떠나면서 홀로코스트를 피했지만 얼어붙은 북쪽 끝 땅에서부터 지독한 굶주림에 시달리던 남쪽 땅 투르키스탄까지 불안한 삶을 이어 간다. 마침내 그들은 오랫동안 염원했던 폴란드로 돌아오지만 6년이나 이어진 전쟁으로 모든 것이 변했고, 그의 가족은 고향에서도 달갑지 않은 이방인일 뿐이었다. 결국 유리 슐레비츠가 열네 살이 되던 1949년에 이스라엘로 이주하고서야 그의 가족의 힘겨운 여정은 마무리된다.
유리 슐레비츠는 그의 뛰어난 기억력과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꼼꼼한 기록들을 토대로 난민과 이방인으로 살았던 지난 시간들을 섬세한 그림과 글로 표현해 냈다.
책 속에서 그는 부모님과 자신이 참혹한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선택’이 아니라 ‘우연’이었다고 말한다. 갓난아기였던 그가 아파트의 꽃무늬 벽지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을 어느 예술가를 떠올리며 '유리'라고 지었고, 그 이름 때문에 소련 시민권을 받지 못했으며, 그 결과 나치가 침공할 수 없었던 머나먼 곳까지 떠밀려 가면서 가까스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Chance 우연》은 유리 슐레비츠의 회고록이자 홀로코스트를 피해 수많은 유대인 난민들이 어떤 고난을 겪고 치열하게 살아남았는지를 보여 주는 생생한 기록이기도 하다. 지독한 가난에 허덕이며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그리던 사람들, 강제 노역으로 몸이 성할 날 없던 시절, 그리고 경찰의 검문을 피해 도망자 신세로 살아야 했던 나날들…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참혹한 전쟁의 모습과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거친 민낯들은 20세기 가장 참혹했던, 역사의 한 순간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쟁의 참혹함과 숱한 좌절 속에서도
그를 웃을 수 있게 해 준 유일한 친구는 ‘그림’이었다!
“칼데콧 상을 비롯 세계적인 권위의 상을 다수 수상한 작가”, “수많은 그림책 작가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위대한 스승” 등 유리 슐레비츠를 수식하는 말은 굉장히 많다. 이런 거장의 유년시절이라 하면 명랑하고 따뜻하며 독특한 상상으로 가득한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까? 그러나 또래 친구들과 뛰어놀 어린 나이에도 그는 부모님과 함께 낯설고 척박한 땅을 전전하며 삶을 이어 갔다.
‘나폴레옹은 턱수염이 있었을까?’, ‘세상에는 끝이 있을까?’ 하는 어린 소년의 엉뚱한 생각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폭격으로 폐허가 된 삶의 터전에서,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생과 사가 갈리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며 ‘어떻게 살아남지?’라는 고민으로 뒤바뀐다.
전쟁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파괴했지만 소년의 희망마저 빼앗진 못했다. 바로 ‘그림’ 그리는 시간을 통해 절망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굶주림에 지쳐 손으로 그림을 그릴 수 없을 때에도 그는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그림을 그렸다. 부모님의 헌신과 믿음 속에서 그림에 대한 열정과 믿음을 놓지 않았던 유리 슐레비츠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뭇잎 위에, 땅바닥에, 상상 속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보는 것은
배고픔을 잊게 하는 것 이상이었다. 그것은 내 영혼의 안식처였다.”
흑백으로 그려진 표현주의 스타일의 강렬한 삽화가 가득 채워져 있는 이 책에는 전쟁의 한 가운데 서 있던 어린 소년이 점차 예술가로 각성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본문에는 그의 어릴 적 모습과 부모님 등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진 15장과 그가 그린 습작들을 포함하여 80여 개의 일러스트가 수록되어 있다. 때문에 유리 슐레비츠의 그림 세계와 그림책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이 책을 통해 그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작품 세계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유리 슐레비츠
새벽』 『비 오는 날』의 작가로 확고부동한 거장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유리 슐레비츠는 1935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습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유대인인 가족들은 전 유럽을 떠돌며 피난 생활을 했고, 슐레비츠는 친구들과 뛰어놀 나이에 전쟁을 몸으로 겪어야만 했습니다. 당시 그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서점에서 보는 그림책과 만화였습니다. 1949년에 이스라엘로 옮겨 가 문학, 해부학, 생물학을 공부했으며 1957년 뉴욕으로 가서 미술 수업을 받고 일러스트 작업을 시작합니다.
첫 번째 그림책 『The Moon in My Room』을 통해 그림책 작가로 성공하고 나서도 자신에게 맞는 글과 그림을 고민하다가 보다 함축적이고 아름다운 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태극권과 요가, 서예 등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유리 슐레비츠는 자신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내보이지 않고 대신 핏기 없는 애잔한 그림을 통해 사람과 자연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특히 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비 오는 날』이나 중국 한시(漢詩)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새벽』, 비와 아이의 상상이 만들어 낸 『월요일 아침에』를 통해 그가 자연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하고 세련되게 그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소음과 전쟁의 처절함 속에서 그가 원했던 것은 내리는 비를 보며 사색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조용한 삶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린 유리 슐레비츠의 꿈이 그림책이라는 또 다른 세계에서 비로소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서 랜섬의 이야기에 그림을 그린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와 하늘을 나는 배』로 1968년 칼데콧 상을 수상했으며, 『비 오는 날』로 1980년 칼데콧 아너 상과 라이프치히 국제도서전에서 동메달을, 『새벽』으로 1975년 국제어린이도서협의회에서 주최하는 안데르센 상을 받았습니다.
옮긴이 : 서남희
서강대학교에서 역사와 영문학을, 대학원에서 서양사를 공부했다. 존 클라센과 맥 바넷의 《세모》, 《네모》, 《동그라미》를 번역했으며 《내 모자 어디 갔을까?》, 《이건 내 모자가 아니야》, 《모자를 보았어》,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이사벨의 방》《로보베이비》, 《아주 머나먼 곳》, 《그림책의 모든 것》 등 여러 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 차
제1장 바르샤바
제2장 비알리스톡
제3장 유라 정착촌
제4장 투르키스탄 I
제5장 투르키스탄 II
제6장 돌아가는 길
제7장 폴란드와 독일
제8장 파리
닫는 말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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