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너 복국 먹을 줄 알아?”
검붉은 독을 풀어내는 향긋한 미나리의 향처럼
차가워진 마음을 따스하게 녹이는 온기
금강복집 손자인 두현은 스스로를 ‘복어’라고 칭한다. 겉보기에는 온순해 보이지만 입안에 니퍼 같은 이빨이 있고 내장에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다는 성질이 자신과 닮아서이다. 엄마가 아버지의 모진 말 때문에 청산가리를 먹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 걸 알았을 때, 아버지가 자신과 엄마를 배신한 걸 인터넷 뉴스로 접했을 때, 두현의 마음에는 복어의 독보다도 더 진한 독이 맺혔다. 두현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언제든 뜨끈한 복국을 내어주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회복은 더뎠지만 두 사람의 넉넉한 사랑 덕분에 두현은 소박하지만 평범한 일상을 아슬아슬하게 붙잡을 수 있었다. 두현에게는 어떤 문제든 같이 마음을 나누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 준수도 있었다. 두현은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서 집안의 빚을 갚고 동생들을 대학에 보내겠다는 준수를 따라 기계공고에 입학한다. 진로를 정하는 일생일대의 결정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육교 위에서 결정되었다.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했고 그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내 삶을 어떤 일로 설명하게 될까.
쇠를 깎는 밀링을 배우며 미래를 탐색하던 두현과 준수는 인문계에서 전학 온 재경이 귀금 코리아 장귀녀 사장에게 맞서는 모습을 보며 사회로 나가게 되면 벌어질 일들을 온몸으로 느낀다. 장귀녀 사장은 현장 실습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재경의 오빠 재석의 일을 있을 법한 일로 치부해 버렸다. 재경은 사과를 요구하며 끝까지 시위를 벌이고, ‘돈이 최고라고 떠드는 이 후진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당찬 포부를 던진다. 돈을 좇던 아버지를 통해 세상의 일면을 알게 된 두현, 녹록지 않은 가정 형편으로 일찌감치 현실을 깨우친 준수는 재경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특히나 너희들에게는 더 그래.”라는 정명진 선생의 말처럼 돈, 학벌 등으로 재단된 세상은 곧 사회로 나가야 하는 특성화고 아이들에게 더없이 가혹하기만 하다.
내 안의 붉고 까만 열매가 폭발음을 내며 터져 버리면 나는 어떻게 될까.
지금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독기를 날려 보내야 할 때,
과거를 털어 내고 가볍게 날아오르고 싶다.
10월이 되면서 두현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지 못한다. 엄마의 기일이 있는 달, 그리고 감옥에 간 아버지의 출소일이 머지않은 달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눈 감고 덮어 두기만 했던 문제들이 속속 수면 위로 떠오른다. 두현은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찾아 나아가는 준수와 재경을 보며, 이제 자신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임을 깨닫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면하고 무마하려 했던 비극적인 가족의 진실과 자신의 내면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도. 고통스럽게 단절했던 과거의 시간을, 잊으려고만 했던 엄마를, 억누르기만 했던 자신의 감정을, 그리고 ‘나’라는 존재를 다시 만나기 위해, 외가를 방문한 두현은 자신의 품에서 “아이고 내 새끼”만 거듭하는 외할머니를 보며 ‘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엇을 잘하거나 어떤 일을 해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존재만으로 가족의 상처는 어느새 봉합되기도 한다.
조건에 매여 살고 싶지 않았다. 조건이 자격은 아닐 것이다.
“나는 쇠도 깎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문경민 작가가 쇠를 깎듯 세밀하게 다듬은 작품에는 ‘길 위에서 길을 잃는 아이들’의 면면이 촘촘히 녹아 있다. 기계공고에서 스스로를 ‘자현의 왕’이라 칭하는 강태는 입학하자마자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다 결국 퇴학 위기에 처한다. 대학이라는 길이 정해진 인문계 아이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자현기계공고와 같은 운동장을 쓰는 자현고로 진학한 형석 또한 길을 잃은 건 마찬가지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작가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그리며 다양한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 준다. 매일 아침 장을 봐서 연중무휴 금강복집 문을 여는 두현의 할머니 할아버지,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전문직 아저씨,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기능올림픽 같은 데 나가지도 않았지만 내 실력이 최고 수준’이라고 자신하는 장귀녀 사장, 교사다운 방식과는 거리가 있지만 방황하는 학생에게 끝까지 정성을 들이는 정명진 선생님 등의 삶을 통해 작가는 청소년 독자들에게 다양한 길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하여 두현은 “무엇을 하든 기대하는 것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 그리고 하나 더 더하자면 세상을 밝히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작은 욕심을 내어 본다. 도로 풍경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육교 위에서였다.
한번 깨졌던 내 영혼은 정밀하게 깎아 낸 금형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말끔했다.
마음의 표면에 신선하고 뜨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일렁이는 이 마음에 무슨 이름을 붙일까.”
두현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한 걸음을 이제 막 떼려 한다.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문경민 작가의 소망은 두현이라는 인물을 통해 힘을 얻는다. 문경민 작가는 두현이 앞을 향해 한 걸음 내딛기 전, 머뭇거리는 순간 등 뒤로 따뜻한 바람을 훅 불어 힘껏 밀어 주는 듯하다. 세상살이는 버겁고 회복은 더디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결심한 두현, 준수, 재경이라면 품에 맺힌 독기를 원동력 삼아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일렁이는 이 마음에 투지라는 이름을 품고서.
슬픔이, 좌절이, 원한과 분노가 삶의 힘이 되기도 한다.
영혼을 잠식했던 독이 두현의 에너지가 되었길 빈다.
그렇게 길러진 야성으로 두현은 만만치 않은 세상을 마주할 것이다.
_작가의 말에서
작가 소개
문경민
『훌훌』로 제12회 문학동네청소문학상 대상과 제14회 권정생문학상을, 『지켜야 할 세계』로 제13회 혼불문학상을, 「곰씨의 동굴」로 제17회 중앙신인문학상을, 『우투리 하나린』으로 제2회 ‘다시 새롭게 쓰는 방정환 문학 공모전’ 대상을 받았다. 그 밖의 작품으로 동화 『열세 살 우리는』 『우리들이 개를 지키려는 이유』 『용서할 수 있을까』 『딸기 우유 공약』 『나는 언제나 말하고 있었어』, 장편소설 『화이트 타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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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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