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의 포톨로지 - 베르티옹에서 마레까지 19세기 과학사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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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박상우
출판사항문학동네, 발행일:2019/02/22
형태사항p.330 A5판:21
매장위치취미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54655101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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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19세기 사진은 ‘학자의 진정한 망막’이 되었는가?
학문의 도구로서 사진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는 무엇인가?

19세기 학자들이 창출한 사진과 영상의 기술 이미지 세계
 그 사진들에 담겨 있는 ‘날것의’ 의미를 드러낸다!

문학동네에서 19세기 과학사진사, 과학과 사진의 관계를 다룬 책이 출간됐다. 저자가 추구해온 포톨로지(학문으로서의 사진)의 첫 결실이다.

이 책은 알퐁스 베르티옹의 범죄사진을 비롯해 특정 집단의 여러 사진을 합성해 이상적인 인간형을 찾으려 한 우생학자 프랜시스 골턴의 합성사진, 인체측정으로 인종의 서열화에 앞장선 인류학자 토머스 헉슬리의 인종사진, 정신병자의 발작 동작에서 신경정신병의 법칙을 찾으려 한 신경정신과 의사 장마르탱 샤르코와 알베르 롱드의 순간포착사진,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움직임을 세밀히 분석하여 그 메커니즘을 밝히려 한 생리학자 에티엔쥘 마레의 연속동작사진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 그와 더불어 이들이 제기한 사진의 방법 문제, 사진의 가능성과 한계, 사진의 속성과 본질이 포톨로지적 관점에서 자세히 논의된다.

저자 박상우 교수(서울대 미학과)는 2008년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동일화: 사진, 흔적, 디지털’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쉽게 말해 그의 전공은 증명사진이다. 증명사진이 어떻게 학문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두 쌍의 사진에서 동일인임을 입증하는 과정, 도망 다니는 신원 미상의 용의자를 가려내는 방법은 의외로 복잡하다. 개인의 정체성 확증은 동일성과 차이라는 철학적 사고가 전제돼야 하며, 사진의 객관성 확보는 사진의 규격화라는 기술적 난제의 선결을 전제로 한다. 19세기 파리에서 활동한 범죄수사학자 베르티옹이 제기한 이 문제들은 조그만 증명사진에 거대한 인문학적 배경이 놓여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저자가 연구한 것은 단순한 증명사진이 아니다. 여러 학문이 융합된 첨단 기술이자, 가장 객관적이고 명증한 과학의 도구로 각광받던 기록 미디어로서의 사진인 것이다.

이 책의 강점은 누군가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당시 학자들이 남긴 1차 문헌을 직접 해독하고, 방대한 사진 아카이브에서 그 내용과 가장 잘 어울리는 필수적인 이미지를 예시한다는 데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상호작용을 통해 독자는 낯설고 강렬한 19세기 사진 아카이브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내용상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제1~3장은 알퐁스 베르티옹 범죄사진의 여러 측면. 식별의 철학, 대상의 비교와 분석을 위한 자료의 추상화, 디지털화, 사진과 언어의 관계, 말로 된 사진, 사진의 주요 속성 중 하나인 기술복제가 다뤄진다. 제4~5장은 프랜시스 골턴과 토머스 헉슬리의 인간 유형화 작업 양상. 합성사진으로 평균인을 찾으려는 골턴의 끈질긴 노력, 세계 각지 식민지에서 모은 인체측정사진으로 인종 아카이브를 구축하려 한 헉슬리의 프로젝트가 다뤄진다. 제6~8장은 사진에서 영상으로의 이행 과정. 샤르코의 살페트리에르 정신병원 의학사진은 인간 유형화라는 골턴, 헉슬리의 의도와 맥을 같이하고 정신병자의 발작 동작 유형화에 도입한 롱드의 순간포착사진은 움직이는 영상이라는 에티엔쥘 마레의 연속동작사진과 맥을 같이한다. 특히 그간 소개되지 않은 마레 사진을 다룬 마지막 두 장은 이 책의 백미다. 생리학 연구라는 학문적 목적에서 시작한 다양한 실험과 계측장치 발명이 어떻게 영화의 탄생으로 이어지는지, 진정한 영화의 발명자가 과연 누구인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 뤼미에르 형제가 아닌 마레의 중요성에 새삼 눈뜨게 한다.

경이롭고 기괴한 19세기 사진 아카이브 탐험

 사진은 미래에 예술과 과학의 진보에 기여할 것이다.
 _1839년 프랑수아 아라고의 ‘프랑스 과학아카데미 발표문’ 중에서

 이제는 사진이 학자의 진정한 망막이 될 것이다.
 _1882년 쥘 장센의 ‘프랑스 과학진흥협회 개회연설’ 중에서

베르티옹의 범죄사진: 식별, 사진과 언어, 기억과 시지각, 기술복제
 제1장에서 제3장까지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 경찰청 신원 감식부 반장 알퐁스 베르티옹의 작업에 집중된다. 그는 경찰의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사진을 도입해 범죄수사를 쇄신한 인물이다. 그의 수사기법은 ‘베르티오나주’란 용어로 불리면서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라는 찬사와 함께 유럽 전역에서 높은 명성을 누렸다. 베르티오나주란 ‘초상사진’ ‘말로 된 초상(초상언어)’ ‘인체측정기법’ ‘마크 기록법’이라는 네 가지 방법을 가리킨다. 저자는 베르티오나주에 대한 상세한 해설과 그 포톨로지적 의미를 규명한다. 사실 이는 인류학의 방법인 인체측정, 정면과 측면의 사진, 글쓰기 등에서 차용한 것이다. 다수의 학자를 배출한 명문가 출신의 베르티옹에게는 자연스러운 발상이었다. 저자는 정면사진과 측면사진의 규격화, 개개인에 대한 열한 가지 인체측정치가 의미하는 바도 설명한다. 이 모든 것에는 경찰사진은 예술사진이 아닌 과학사진에 속한다는 베르티옹의 명확한 인식이 있었다. 범죄사진은 대상을 정확히 재현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그는 대상과의 절대적 닮음을 추구한다. 범죄사진의 목표는 “최대한 닮은 이미지를 생산”하는 데 있고, “측면사진 및 정면사진의 촬영 조건을 완전히 동일하게 함으로써 촬영 시기가 다르더라도 한 개인에 대한 동일한 두 장의 사진을 생산”하는 데 있다. 그러나 식별의 관점에서 닮음은 최종 목표가 될 수 없다. 동일인임을 확증하려면 닮음이 아니라 같음이 보장돼야 한다. 살과 근육의 정면사진이 주는 즉각적인 인상, 뼈로 구성된 측면사진의 선line이란 분석적 요소가 일치해도, 이 닮음(일치)은 ‘동일성(같음)’이 아닌 ‘유사성(닮음)’일 뿐이다. 두 쌍의 사진 속 인물이 같은 사람임을 확신할 수 없다. 여기서 범죄수사학의 목표가 유사성에서 동일성으로의 이전(移轉)이며, 식별은 이를 가리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제1장이 주로 경찰서 ‘안’에서 행해지는 식별에 관한 논의라면, 제2장은 경찰서 ‘바깥’ 거리에서 행해지는 용의자 식별에 관한 논의다. 사진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거리에서 범인을 추적하고 식별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초상언어다. 말(구술)로 용의자를 묘사하고 그것을 기억해두었다가 거리에서 그와 동일한 인상착의의 인물이 나타나면 체포할 수 있게 한 수사기법이다. 초상언어 제작에서 실제 얼굴은 ‘사진으로 된 초상’이 되고, 사진으로 된 초상은 ‘글로 된 초상’이 되며, 글로 된 초상은 결국 ‘말로 된 초상’이 된다. 이렇게 그는 얼굴 각 부위의 특성을 분해하고 이를 다시 체계적으로 분류한다. 처음에는 세 단계로, 나중에는 일곱 단계로. 개인의 얼굴 특징을 눈, 코, 입, 귀 단위로 세분화하여 묘사하고 그것을 일곱 단계로 분류하고 체계화하여 1895년 얼굴의 각 부위 특징을 집대성한 ‘구술초상화 연구를 위한 얼굴 특성 일람표’를 완성한다. 경찰은 이 일람표대로 용의자를 묘사해야 했다. 경찰마다 서로 다르게 묘사해 빚어지는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누구나 일람표의 텍스트대로 기록해 용의자를 머릿속에 저장한다. 이때 언어로 묘사된 용의자는 실재가 아닌 이미지다. 따라서 경찰은 암기한 초상언어와 기억 이미지를 서로 맞춰보아야 식별할 수 있다. 여기서 언어와 시지각의 철학적 문제가 드러난다. 저자는 우리가 무언가 보고 그것을 알아보는 것은 “머릿속에 그것을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는 베르티옹의 견해를 소개한다. 이 견해는 사실 루이 페스라는 학자의 시지각 이론에서 나온 것이다. 베르티옹은 또 일람표 제작 과정에서 텍스트를 알파벳 기호로 환원한 바 있다. 이렇게 사진 이미지를 디지털화(문자화, 수치화)하는 방식은 당시에는 없던 낯선 것이었으며, 비록 수작업이긴 해도 우리가 아는 오늘날 정보처리 과정을 선취한 것이었다.

제3장은 범죄수사와 관련한 복제 문제가 논의된다. 자본주의 팽창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면서 특히 19세기 세계의 수도로 불리던 파리에도 엄청난 수의 범죄자들이 출몰하게 되었다. 한정된 경찰 인력으로 이들을 검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공개수사다. 이 방법은 과거에도 사용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림(판화)이 아닌 사진이 중추가 된다. 사진을 이용한 공개수사는 사진기술의 발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프랑스 경찰은 사진을 생산할 때 두 가지 복제기술을 사용했다. 하나는 하나의 네거티브(음화)에서 여러 포지티브(양화) 사진을 인화하는 네거티브-포지티브 기법이고, 다른 하나는 종이에 사진을 대량 인쇄하는 사진제판이었다. 19세기의 칼로타입, 콜로디온 습판법, 젤라틴 건판법 등은 지지체와 감광도만 다를 뿐 기본적으로는 모두 이 네거티브-포지티브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시스템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사진은 ‘이미지 복제기술’이 될 수 있었다. 저자는 첨단으로 각광받던 기술이 어떻게 더 발전된 후대의 기술에 밀려 사라지게 되는가 하는 기술의 변천사를, 판화가 사진에 밀려나고 네커티브-포지티브 인화가 사진제판에 밀려나는 과정을 통해 설명한다. 그리고 1880년대까지도 신문지면에 사진과 기사가 같이 실릴 수 없었음을 이야기한다. 당시 사진제판은 ‘오목판’이나 ‘평판’의 원판을 쓰는 반면, 신문 인쇄는 ‘볼록판’을 썼기 때문이다. 이 난점은 20세기 들어 진정한 사진제판인 망판인쇄술이 나오면서 해소된다.

골턴의 합성사진과 헉슬리의 인종사진: 인간 유형화와 지배 이데올로기
 제4장은 영국 출신의 학자에 대한 논의다. 먼저 프랜시스 골턴은 다윈의 사촌이자 우생학자로서 19세기에 다양한 분야에서 큰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그 가운데서도 골턴이 몰두했던 분야가 바로 범죄학이다. 그는 범죄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지문(指紋)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인간의 유형 가운데 ‘범죄형’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가정을 시각적으로 확증하기 위해 1878년 여러 인물의 얼굴을 합성한 초상사진인 ‘합성사진’이라는 독특한 사진기법을 고안한다.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는 것은 이 합성사진에 관한 것이다. 합성사진기법은 특정한 집단의 사람들을 촬영하고 그것들을 ‘겹치기’ 방법을 사용해서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추출해내는 기술을 말한다. 골턴은 이렇게 합성된 가상의 얼굴이 그 집단의 전형 혹은 평균을 보여준다고 믿었으며, 이 합성사진을 다양한 분야에 적용해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이 평균은 단순한 평균이 아니라 그 이상을 보여주는 ‘통계표’에 가깝다고 역설한다. 이 통계표란 전체를 각 사례의 수로 나눈 평균과 모든 개별 사례가 밑에 적혀 있는 표를 말한다. 포톨로지적 관점에서 봤을 때, 합성사진은 모두의 얼굴을 담고 있으면서 아무도 지시하지 않는 지시체 없는 가상의 이미지, 사진사상 유례없는 매우 독특한 이미지였다. 골턴은 자신의 합성사진이 ‘진정한 일반화’를 이루었다고 자신했다. 범죄수사학자 베르티옹이 범죄자를 식별하기 위해 아카이브를 극단적으로 개별화하려 했다면, 골턴이나 롬브로소 같은 범죄학자는 범죄형이라는 인간 유형을 추출하기 위해 아카이브를 극단적으로 보편화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제5장은 영국의 토머스 헉슬리를 다룬다. 헉슬리는 다윈 진화론을 맹신하는 생물학자로 출발했다. 그러나 인류학을 접하고 나서 자신의 역량을 그때까지 엄밀성이 떨어지던 인류학 연구방법을 새롭게 하는 데 바친다. 그리하여 “신체나 신체비율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체측정사진을 개발한다. 그는 이 인체측정사진으로 인종을 객관적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사진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자신이 고안한 규격화된 사진 촬영법을 담은 지침서를 영국의 각 식민지에 보냈다. “객관적이고도 측정 가능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헉슬리가 제시한 이 촬영 지침서는 ‘텍스트’(사진 촬영 스크립트)와 ‘이미지’(이 스크립트를 시각적으로 재현한 견본사진) 50세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지침서의 견본사진은 성인 남성과 여성의 사진, 미성숙한 어린아이 사진으로 이뤄져 있었으며, 이 지침서의 스크립트에는 사진 촬영 전반을 철저히 표준화하는 각종 지침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지침 자체에 미비점이 있었을 뿐 아니라, 감옥과 같은 강압적인 공간이 아닌 장소에서는 옷을 벗고 촬영을 거부하는 원주민은 물론, 식민지 권력관계의 파탄을 우려한 현지 관리에게서도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결국 헉슬리의 프로젝트는 실패한다. 저자는 이러한 헉슬리의 기이한 노력이 이전 세대에서 전해져 당시 서구 학계 전반을 지배하는 주류 패러다임이 된 관상학과 유형학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한다. 이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19세기 학자들 대부분이 이런 유사과학적인 사고에 얼마나 깊게 물들어 있었는지를 자주 환기한다. 동물과 인간의 움직임이라는 테마에 몰두한 에티엔쥘 마레를 제외하면 이 책에 등장하는 학자들 전부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 유사과학에 침윤돼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샤르코와 롱드의 의학사진: 광인의 발작 동작 순간포착하기
 제6장은 프랑스 살페트리에르 정신병원의 병원장 장마르탱 샤르코와 그의 지도하에 거대한 정신병자 사진 아카이브를 구축한 알베르 롱드의 이야기다. “살아 있는 병리학 박물관” 살페트리에르 병원에는 주로 여성 환자들이 감금되어 있었고 이들의 증상은 입원할 때부터 퇴원할 때까지 매순간 빠짐없이 텍스트(글)와 이미지(사진)로 기록되었다. 인간을 유형화하고자 한 골턴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이들은 이 아카이브에서 질병을 유형화해 정신의학의 발전을 추구했다. 관상학과 유형학의 사고에 따르면, 외적 용모는 내적 상태를 반영한다. 샤르코 역시 사진에 나타난 병적인 용모는 그 사람의 비가시적인 내면을 드러낸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매순간 환자를 꼼꼼히 관찰했다. 넉 달가량 샤르코 문하에서 공부한 프로이트의 증언대로 샤르코는 철저히 “보는 인간”이었다. 관찰을 중시한 그에게 사진은 더할 나위 없이 명증한 과학적 도구였다. 살페트리에르 병원은 이제 사진의 왕국이 된다. 샤르코는 히스테리 환자의 발작을 ‘전조기’ ‘간질기’ ‘광대기’ ‘감정적 태도기’라는 네 단계 유형으로 이론화하고, 이를 사진과 그림을 제작해 병원 곳곳에 붙였다. 눈으로 익혀두었다가 증상이 발현되면 그 유형에 해당하는 병을 신속히 진단하라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는 거꾸로, 그 그림과 사진대로 환자가 알아서 증상을 연출하는, 즉 현실을 이론에 짜맞추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히스테리는 19세기 사진가들이 특히 어려워한 분야였다. 히스테리 발작은 동작이 너무 빠르고 격하기 때문이다. 샤르코의 제자 롱드는 1872년부터 스승이 심혈을 기울인 히스테리 발작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관건은 빠른 동작을 어떻게 순간적으로 포착하느냐였다. 때마침 1880년대에 기존의 감광물질보다 훨씬 더 빛에 민감한 감광물질인 ‘젤라틴’이 출시된다. 이 무렵 롱드도 연속사진 카메라를 완성한다. 셔터 스피드 조절이 자유롭고 연속촬영이 가능한 아홉 개(나중에는 열두 개)의 렌즈가 달린 이 카메라를 사용해 순간포착사진을 찍는 데 성공한다. 연속동작을 분절해 촬영할 수 있는 이 카메라에서 영화의 발명은 이미 예고되고 있었다.

마레의 연속동작사진: 움직임의 이미지와 선 기록에서 영화의 발명으로
 제7장은 콜레주드프랑스 생리학 교수였던 에티엔쥘 마레의 이야기다. 마레는 인간과 동물의 움직임에 매혹된 사람이었다. 그는 인간과 동물이 보이는 움직임이 “생명의 언어”라고 했으며, 이를 분석하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저자는 마레를 소개하면서 그가 발명했던 수많은 측정기계가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출현했으며, 그것의 가능성과 한계를 무엇인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 책 전체를 통해 우리는 19세기 서구 학자들이 인간적 측정방식에 불만이 많았음을 보게 된다. 그때마다 대안은 사진이었다. 눈과 손을 이용한 인간적 방식은 대상을 자료화하는 과정에서 객관성이 결핍된 부정확성을 유발한다. 17~18세기 동식물 분류학에 쓰이던 글쓰기나 데생 같은 측정방식이 대표적이다. 마레도 전통적 ‘연구방법’에 불만이 컸다. 인간과 동물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데 한계를 보인 언어묘사와 관찰 대신 객관적이고도 명증한 방법이 무엇일지 궁리했다. 그 결과 ‘그래픽 방법’과 ‘포토그래픽 방법’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새롭게 생각해낸다. 그리고 1850년대부터 인간의 눈과 손의 개입 없이 신체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다양한 ‘그래픽 기계’를 발명한다. 신체 내부의 운동(혈액순환, 맥박 등)과 외부의 운동(인간의 걷는 동작, 말이 뛰는 동작, 새가 나는 동작 등)을 오직 연속된 선으로 표현하는 기계였다. 첫 발명품은 맥박측정기였다. 마레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직접 접촉 없이도 측정하고 기록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한다. 이 기계는 움직이는 현상을 ‘포착’하는 장치, 공간을 가로질러 움직임을 ‘전달’하는 장치, 그 움직임을 종이에 ‘기록’하는 장치로 구성돼 있었다. 포착, 전달, 기록이라는 세 요소는 후일 마레의 포토그래픽 방법인 크로노포토그라피에도 그대로 쓰인다. 저자는 마레가 측정기구의 한계를 발견할 때마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자세히 서술한다. 특히 그래픽 방법에서 포토그래픽 방법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사진을 도입하도록 자극을 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와의 일화를 소개한다. 마레는 과학 잡지에 실린 마이브리지의 말 연속동작 사진을 보고 자신의 연구에 사진을 도입한다. 그후 사진을 활용하면서 마이브리지의 사진이 지닌 한계를 인식한 마레는 1881년 후반 새 동작을 포착하기 위해 ‘사진총’이라는 특이한 카메라를 발명한다. 그러나 그는 이 카메라가 동작 분석이라는 학문적 목표를 온전히 충족시키지는 못한다고 보고 1882년 5월경 새로운 사진적 방법으로 ‘고정판 크로노포토그라피’를 발명한다. 그후 이미지의 ‘부분적 겹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83년 ‘부분적 크로노포토그라피’를 발명한다. 1890년 움직이는 신체를 다시 기하학적인 선과 점으로 환원하는 ‘기하학적 크로노포토그라피’를 발명한다. 결국 마레가 사용한 그래픽 방법과 다양한 포토그래픽 방법을 관통하는 근본 사고는 그래픽 방법임이 드러난다. 현상에 대한 ‘선적인 재현’ 또는 ‘이항적인 재현이 그 핵심이었다. 따라서 크로노포토그라피라는 사진적 방법도 최종적으로는 그래픽 방법이라는 마레 연구의 근본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8장은 영화 발명에 마레가 끼친 영향을 살핀다. 저자는 기존의 영화사 서술에서 마레가 부당하게 다뤄져왔음을 강조한다. 사진에서 영화로 이행하는 데서 마레가 남긴 업적을 보려면 영화 발명의 필수 조건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야 한다. 정지 영상에서 움직이는 영상으로, 포토그라피에서 시네마토그라피로 이행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딱딱한 유리 감광판이 아닌 부드럽게 휘는 감광판, 밴드형 필름이 있어야 한다. 둘째, 감광판이 고정된 카메라가 아닌, 일정한 속도로 감광판을 이동시키며 노광될 때마다 정지하는 카메라, 촬영기가 있어야 한다. 셋째, 그 연속사진을 차례로 이동시키며 스크린에 투사하는 장치, 영사기가 있어야 한다. ‘필름’ ‘촬영기’ ‘영사기’는 영화 발명의 세 가지 핵심 기술이다. 당시는 휘는 감광판이 코닥사에서 막 출시된 때였다. 이를 촬영기와 영사기에 결합하는 것이 문제였다. 마레는 기존의 크로노포토그라피 카메라에 장착된 홈 파인 회전판 셔터를 썼다. 1888년 기존의 이 연속사진 카메라에 감광판을 이동시키면서 노광될 때마다 정지하는 이 장치를 부착해 새로운 카메라를 만들고 이를 ‘움직이는 밴드형 크로노포토그라프’ 혹은 ‘움직이는 감광판의 크로노포토그라피’라고 불렀다. 그는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발명하기 전인 1888년과 89년에 이미 영화 발명에 결정적인 두 기술을 결합했다. 즉 “휘는 밴드형 감광판을 사용”하면서 이 “감광판을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이동시키고 멈추게 하는 카메라를 발명”한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처음 발명하고 사용한 인물이 마레였고, 이 두 가지를 처음 결합한 것도 마레였다. 영화 발명의 가장 까다로운 난제였던 ‘감광판의 이동’ 문제를 해결한 후 마레는 1889년 첫 영화(손을 폈다 쥐었다는 하는 영상)를 제작한다. 그리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영상을 촬영할 때 지켜야 할 네 가지 원칙을 논문으로 발표한다. 이 논문에서 마레가 제시한 ‘카메라 시점의 단일성’ ‘연속사진들 간의 시간 간격의 동일성’ ‘짧은 노출시간’ ‘많은 수의 이미지’라는 네 가지 원칙은 오늘날 영화의 촬영과 재생의 원리로 그대로 쓰이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영화의 발명은 오락과 예술 같은 상업 분야가 아닌 의학, 생리학 같은 학술 분야의 노력이 결정적이었다. 생명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데 순수하게 몰두했던 마레에게서 그 역설을 또렷이 확인할 수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상우 
서울대 미학과 조교수.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2008년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언어학부(예술 및 문학 전공)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동일화: 사진, 흔적, 디지털’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연세대, 홍익대, 중앙대 등 여러 대학에서 사진철학과 영상미학을 강의했으며, 중부대학교 사진영상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한 바 있다. 저서로는 『롤랑 바르트, 밝은 방』(2018), 『다큐멘터리의 두 얼굴: FSA 아카이브 사진』(2016, 공저) 등이 있으며, 지금까지 발표한 주요 논문으로는 「빌렘 플루서의 매체미학: 기술 이미지와 사진」 「빌렘 플루서의 사진과 기술 이미지 수용론」 「롤랑 바르트의 사진 수용론 재고」 「롤랑 바르트의 ‘그것이-존재-했음’: 놀라움, 광기」 등 다수가 있다.

 

목 차

서론.
경이롭고 기괴한 19세기 사진 아카이브

제1장 범죄사진의 탄생—베르티옹의 범죄수사학
1. 절대적 닮음의 추구 2. 미학적 사진에서 과학적 사진으로 3. 사진, 프로젝션, 기계 4. 사진의 한계 5. 정면사진에 의한 식별 6. 측면사진에 의한 식별 7. 닮음에서 같음으로 8. 사진에서 과학철학의 땅으로

제2장 사진과 언어—베르티옹의 초상언어
1. 말로 된 초상화 2. 사진에서 언어로—거리에서 개인 식별 3. 언어묘사와 사진 4. 사진 이미지, 언어, 수—묘사의 방법 5. 신체의 환원 6. 초상언어의 한계 7. 베르티옹의 초상언어가 남긴 것

제3장 19세기 기술복제시대의 범인 식별
1. 사진을 어떻게 광범위하게 배포할까 2. 사진 발명 이전 3. 사진을 이용한 공개수사 4. 네거티브—포지티브 복제를 통한 개인 식별 5. 사진과 인쇄매체의 결합 6. 포토그라피의 주목할 만한 특성

제4장 인간 유형의 발명—골턴의 합성사진
1. 유형의 가시화 2. 골턴 이전 얼굴의 유형화 3. 골턴의 합성사진 만들기 4. 합성사진의 사용 분야 5. 합성사진의 아카이브적 의미 6. 합성사진의 경과와 그 평가

제5장 인종의 발명—헉슬리의 인류학 사진
1. 인간의 유형화와 인종주의 2. 인류학과 사진의 결합 3. 헉슬리의 인체측정사진 4. 인체측정사진의 한계 5. 헉슬리의 사진이 남긴 것

제6장 히스테리의 발명—샤르코의 신경정신의학 사진
1. 정신의 청진기로서의 사진 2. 의학적 관찰—눈에서 사진으로 3. 의학적 유형화의 도구로서 사진 4. 동작사진과 히스테리 5. 히스테리 사진의 한계 6. 히스테리 사진이 남긴 것

제7장 이미지와 선—마레의 크로노포토그라피
1. 마레의 꿈—“움직임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2. 동작 분석을 위한 그래픽 방법 3. 동작 분석을 위한 사진적 방법—크로노포토그라피 4. 기하학적 크로노포토그라피—이미지에서 그래프로 5. 크로노포토그라피의 의의와 영향

제8장 사진에서 영화로—마레의 영화 발명
1. 누가 영화의 발명자인가? 2. ‘움직이는 그림’에서 ‘움직이는 사진’으로 3. 움직이는 감광판의 크로노포토그라피—마레의 영화 발명 4. 마레의 발명과 영화의 탄생

 결론.
팽창하는 사진들의 우주 속에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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