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관찰자의 사진과 글
사진들은 피사체와의 거리를 기준 삼아 총 4부로 나눴다. 여기에 각 사진마다 ‘초점거리’를 밝혀 피사체와의 거리를 좀 더 정확히 가늠해보도록 했다. 피사체와의 거리에 대해 저자가 적은 글이 있다. 저자는 거리에서 만난 사람과의 아름다운 거리가 얼마쯤일지를 늘 고민한다.
“사진은, 그중에도 매체 사진은 자주 무례하다. 사진을 찍으려면 사람 앞에 설 일이 많은데 부끄럼 많은 나는 다가가길 망설였다. 무작정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는 건 폭력적이라고도 느꼈다. 그럼에도 나는 광각렌즈 끼우고 가까이 다가가 찍는 사진을 선호했다. 피사체에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을까, 가까이 가는 게 맞는 걸까를 늘 생각했다. 피사체와의 거리는 관계와 비례하는 일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멀찍이 물러나지 못해 실패한 일보다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망친 일이 훨씬 많았다. 특별한 일 없어도 오며 가며 농성장을 찾았다. 혹시 뭐 없나 싶어서다. 뭐가 있긴, 거기도 사람 지내는 곳이니 사람 얘기에 귀 기울였다. 남들이 서러워 울 때가 사진기 든 사람이 바빠질 때다. 미안함도 잊고 플래시를 연신 터뜨렸다. 나는 무뎌져갔다.”
◎ 미시사 혹은 현장에서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임종진 작가가 지적하듯이 정기훈이 머문 자리는 ‘콜텍, KTX, 쌍용차 등 해고 노동자의 단식 농성장, 광화문 세월호 천막, 일본대사관 등’ 같은 ‘척박하고 처절한 토양’이다. 그런 현장에서 피사체는 시간을 어떻게 견뎌내는가, 피사체에게 시간은 어떻게 흐르고 또 흘러갔는지를 구체적으로, 하나씩 설명한다. 물론 피사체 주위에 선 저자에게도 시간은 흐를 텐데 그 둘을 동시에 묘사한다.
하종강 교수는 저자의 작업을 ‘우리들의 소중한 미시사’라고 표현했다. “그들 사이에 오간 가슴 저미는 대화들이나 통계 속 숫자에 묻혀버릴 뻔했던 사실들을 이 책이 아니었다면 죽을 때까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모든 현장에 그가 있었다. 과연 ‘한국의 모든 현장’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라는 것은 독자는 책을 펼쳐보는 순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KTX 여승무원, 콜텍 해고자, 평택 쌍용차 공장, 기륭전자 노동자, 세월호 유가족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고 김용균, 레이테크코리아 노동자, 명동 재개발 지구, 용산 참사,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 유성기업 노동조합, 일본군 ‘위안부’ 한일 합의, 하이디스 정리해고, 동양시멘트 하청 업체 노동자, 국립대 병원 용역 노동자,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정리해고, 시민 불복종 운동, 공무원노조, 교육공무직 비정규 노동자, 이랜드 부당 해고, 서울대병원분회 파업, 전교조, 삼성 백혈병, 청소 노동자 파업, 강정 해군 기지, 백남기 농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대통령 파면 선고, 전태일 기일, 광주 망월동 묘역,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대통령 선거 개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세아제강 해고 노동자, 알바 노동자, 빌딩 외벽 청소 로프공, 단원고 희생 교사, 빌딩 청소 노동자, 경비 아저씨, 민중총궐기, 씨앤엠 등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등.
별스러울 것도 없었다, 싸움은 이미 길었다
삼보일배 하는 사람들은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꾸역꾸역 자벌레가 기듯 나아갔다. 서서는 손을 모았고, 엎드려서는 앞으로 뻗었고, 종종 하늘 향해 쳐올렸다. 발 뒤에 다른 이의 손이 가까웠다. 엎드리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니 카메라가 높았다. 내려다보기는 익숙지 않아 카메라는 저들을 따라 몸을 낮추곤 했다. 바닥 가까이에선 잔뜩 일그러진 표정이 보였다. 반복되는 여러 동작 중 일어서는 걸 자꾸 담았다. 2009년 8월 경기 평택 칠괴동 어느 5층 건물 지붕 위에 올라 그 건너 불구덩이 쌍용차 공장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속 태우고 살 태우던 날, “수원 집이 팔렸다”고 어머니가 알려 왔다. 늦은 밤 덜그럭거리는 연장 가방 메고 아버지가 왔다. 술냄새가 폴폴, 오래 삭힌 홍어 냄새가 거기 섞였다. 취기에 비틀거리는 아버지가 새로 산 흰색 농구화를 밟을까 걱정했다. 공장 정문 안내실 옥상에 비닐집 얼기설기 짓고 사람 둘이 굶었다. 바짝 마른 몸을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불법파견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옛날엔 사람이 분신하면 온 나라가 뒤집혀서 ‘해결하라’고 들끓었는데, 이제 한두 사람 죽어도 ‘누가 죽었나 보네’라며 금세 잊힌다”고 말했다. 구호는, 또 싸움의 말은 대개 과장되기 마련이라지만, 이들의 말에는 바짝 말라 뼈에 붙은 살처럼 뺄 것이 없었다. 오후 세 시, 농성하던 유민 아빠가 천막을 나섰다. 청와대를 향했다. 경찰 무전기가 곳곳에서 요란스레 울었다. 구급차가 느릿느릿 걸음 맞춰 따라붙었다. 봉황상 화려한 분수대 앞에 이르러서야 잠깐 쉬었다. 지팡이에 기대어 먼 곳을 살폈다. 긴 숨 내쉬고 민원실 방향으로 걸었다. 따라붙던 경찰이 재빨랐다. 몸싸움이 한바탕 요란스러웠다. 반소매 셔츠 차림 그곳 경찰은 빠르고 힘이 셌다. 곡기 오래 끊었지만 살아 숨이 가빴던 유민 아빠는 몸싸움을 이겨낼 수 없어 농성장으로 발길 돌렸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우는 사람이 많았다.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막는 사람 때문인지, 그걸 찍고자 몰려든 기자들 때문인지를 묻는 건 거기 안산 화랑유원지 앞에서 의미 없었다. 얼굴에 줄줄 흐르는 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를 구분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영석 엄마는 온몸으로 울었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자고 벌인 토론회와 집회 맨 앞자리에서 용균이 엄마를 자주 볼 수 있다. 여태 운다. 나는 또 그 눈물을 담겠다고 앞에 쭈그린 채 허둥댄다.
작가 소개
장구 치고 마당극 만드는 걸 좋아했다. 옆 사람 모습 기록해두려고 카메라를 들었다. 흥미를 느껴 밥벌이 방편으로도 삼았다. 2005년부터 매일노동뉴스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일하는 사람과, 거기 얽힌 온갖 풍경에 관심이 많다.
목 차
빚지다
1미터: 큰일인데 별일 아닌 것처럼
2~3미터: 설레는 봄볕, 서러운 봄
5~7미터: 장소는 기억을 품는다
10미터: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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