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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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손기정
출판사항휴머니스트, 발행일:2022/08/09
형태사항p.439 A5판:21
매장위치취미예술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60808803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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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절망만이 가득하던 그 시대,

한시라도 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식. 마땅히 기쁨을 누려야 할 우승자는 차오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더욱 깊이 숙였다. 그는 바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우승자’ 손기정이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배운 손기정의 모습이자 어쩌면 전부다. 하지만 손기정은 불행한 시대를 산 슬픈 마라토너로만 기억될 존재가 아니다. 그는 민족을 대표하는 위치에 오른 고뇌하는 식민지 청년이자 한국 마라톤의 기적을 일으킨 지도자였으며, 세계 마라톤계에서 주목하고 추앙하는 한국인 최초의 세계적 스포츠인이었다. 자신과 같은 ‘슬픈 우승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평생 평화의 가치를 소중히 간직하고 살아온 손기정, 여기 진정한 스포츠 영웅의 생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아무리 숨이 가빠도 멈출 수 없었던 그의 마라톤처럼 우리에게 이런 멋진 선배 스포츠인이 있다는 사실에 벅차 책을 놓을 수 없었다. ―국민마라토너 이봉주


세계에 한국을 알린 최초의 글로벌 스포츠 스타 손기정, 한국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마라톤 영웅의 일대기다.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안정환


마라토너이자 스포츠인으로서 한국 스포츠계에 쏟은 그의 열정은 물론, 조국과 민족을 향한 그의 뜨거운 애정에 가슴이 떨려온다. ―배구선수 김연경


이 책은 한 편의 영화다. 활자가 펼쳐내는 청년 손기정의 삶에 손이 떨리고 무언가 자꾸 가슴 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른다. 나라 잃은 슬픔과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희망을 찾아 달려야 했던 청년 손기정, 그 가슴 떨리고 경이로운 이야기에 빠져 어느새 나는 그가 되어 있었다. ―영화배우 하정우


영화 〈보스턴 1947〉을 촬영한 이후로 러닝은 내 취미다. 내가 달리고 싶을 때 달릴 수 있고 함께 달리고 싶은 사람, 달리고 싶은 장소도 내 맘대로 정할 수 있는, 이토록 자유로운 취미라니 축복이 따로 없다. 그러나 지금의 나와 달리 ‘달려야만 하는’ 누군가도 있었다. 고된 삶 속에서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한 줄기 희망도 없던 시대에 자신과 민족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혼자 달리는 고독 속에서도 자유에 대한 염원을 지켜내기 위해. 손기정 선수의 얘기다. 지금 내가,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달린 마라토너, 손기정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영화배우 임시완


인간의 몸이 갖는 한계 그 이상을 해내는 것은 마음과 정신의 영역이라 한 손기정의 말이 떠오른다. 그 말은 손기정의 마라톤 경기뿐 아니라 그의 삶 곳곳을 관통하고 있다. 잃어버린 자신의 이름과 조국을 되찾기 위해 한평생을 달려온 그의 투지가 경이롭다. ―영화감독 강제규


우리는 손기정을 제대로 아는가? 일제강점기 일장기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해 마라톤 금메달을 딴 비운의 마라토너? 〈보스턴 1947〉을 제작하며 미약하나마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가슴이 뭉클해지고 삶의 용기가 샘솟았다. 이 책은 손기정을 제대로 알기 위한 필독서이자, 그를 통해 당신의 일생을 깨울 최적의 안내서이다. ―영화제작자 장원석


1. ‘슬픈 마라토너’에서 평화의 전령으로

한국인 최초 세계적 스포츠인 손기정을 만나다

―‘슬픈 우승자’라는 이미지를 넘어 세계가 추앙한 한국 스포츠인 손기정을 조망하다

―민족의 영웅이 된 식민지 청년의 고뇌와 투쟁을 엿보다

―해방 후 한국 마라톤과 체육계를 이끈 뛰어난 지도자·체육인으로서의 면모를 발견하다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은 불행한 시대를 산 슬픈 마라토너로만 기억될 존재가 아니다. 1935년 11월에 2시간 26분 42초의 세계 공인 신기록을 세우고, 1936년 올림픽에서는 2시간 29분 19초 2라는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이 기록은 1947년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서윤복이 2시간 25분 39초로 신기록을 세울 때까지 11년 동안 깨어지지 않았다. 또 해방 직후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1947년 보스턴마라톤대회 우승자 서윤복을 배출한 대단한 지도자였다. 아시아와 조선 최초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의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은 이처럼 세계 마라톤계에서 주목하고 추앙하는 한국인 최초의 세계적 스포츠인 손기정의 면면은 물론, 식민지 청년으로 나라를 대표하는 위치에 오른 그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투쟁의 시간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에는 1936년 베를린에서의 손기정 이야기뿐 아니라, 탈출구조차 보이지 않던 어두운 시대에 달리고 또 달려야 했던 이유와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기까지 험난했던 과정, 그리고 올림픽 우승 이후의 행적 등 솔직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당당히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한국 마라톤의 기적을 일으킨 해방 이후의 이야기들을 통해 뛰어난 지도자로서의 면모, 나이가 들어서도 절대 놓지 않았던 마라톤에 대한 열정 등 단편적인 이야기만으로 알 수 없었던 진정한 스포츠 영웅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다시는 자신과 같은 ‘슬픈 우승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평생 평화의 가치를 소중히 간직하고 살아온 손기정의 생의 드라마를 만나보자.


어떻게 하면 운동 시간을 벌 수 있을까.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꾀를 내었다. 이웃 이발소에서 일하는 일본인 친구에게 새벽에 나를 깨워달라고 부탁했다. … 밤 12시에 일을 끝내는 나로서는 지쳐서 도저히 혼자 일어날 수 없었다. 나는 일본인 친구와 상의 끝에 소란 떨지 않고 조용히 집을 빠져나가기 위한 방법을 마련했다. 발목에다 끈을 묶고 한쪽 끝을 창밖으로 늘여놓는 것이었다. 그 친구가 끈을 잡아당기기만 하면 내 발목이 당겨져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35쪽) 중에서


전국의 내로라하는 명선수들이 모두 모인 조선신궁경기대회에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라톤이라는 희한한 종목이 있다는 것이었다. … 놀라운 일이었다. 이제껏 겨우 20여 리를 뛰어다녔는데 105리라면 거의 다섯 배나 되는 거리였다. … 신의주에 돌아온 나는 마라톤이라는 새로운 레이스의 매력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왕이면 제일 긴 레이스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마라톤과의 대면〉(43쪽) 중에서


동서남북으로 옮겨 다니며 잠자리는 마련했으나 배고픔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허기가 져서 제대로 달릴 수가 없었다. 배부르면 이기고, 배고프면 지는 게 나의 달리기였다. … 굶주림을 혼자 안고 끙끙거


리던 나는 체육 담당 교사인 김수기 선생님을 … 붙잡고 늘어졌다. “형님! 배가 고파서 못 뛰겠습니다.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이 당돌하고도 어처구니없는 내 요청을 선생님은 나무라지 않고 선뜻 받아주셨다. 선생님은 그날부터 매달 박봉을 쪼개어 2원을 나의 특별 급식비로 떼어주셨다.

―〈어두운 시절〉(71·72쪽) 중에서


나의 우승이 결정된 순간, 일본 신문들은 국제전화를 통해 마라톤 우승자의 소감을 녹음하려 들었다. 그러나 시큰둥한 내 답변에 적잖이 김이 빠졌을 것이다. … 곧이어 《조선일보》가 국제전화를 걸어왔다. “손 선수! 우승 소감을 말해 주십시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어라 말해야 좋을 것인가. 우승의 감격, 나라를 빼앗긴 슬픔으로 응어리진 가슴, 모든 게 뒤범벅되면서 간신히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전화기를 붙잡은 채 엉엉 울었다. ―〈정상에 서서〉(171·172쪽) 중에서


나는 그때까지도 내 우승의 표지로 일장기가 오르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올림픽 출전 때까지 승리국의 기를 게양하고 국가를 연주하는 의식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시상대에서 일장기를 쳐다보며 일본 국가를 듣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곤욕이었다. … 두 번 다시는 일장기 아래서 뛰지 않으리라. 그러나 더 많은 조선인에게 이 쓰라림을 알리리라. ―〈정상에 서서〉(178쪽) 중에서


서윤복 군은 질척거리는 신발을 끌고 달려 마침내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2시간 25분 39초. 세계 신기록이었다. 물론 내가 가진 세계 최고 기록보다도 훨씬 앞선 것이었다. 보스턴 하늘 높이 태극기가 올랐다. 시상대 위에 선 서윤복 군도, 관중석에 있던 나도 북받쳐오르는 감격에 못 이겨 눈물을 흘렸다. 태극기를 달고 이룬 최초의 승리였다. 잃었던 조국을 되찾고, 잃었던 태극기를 되찾고, 그리고 잃었던 코리아의 이름을 되찾아 만방에 조국의 건재를 알린 것이다. 보스턴에, 전 세계 마라톤계에 한국, 코리아의 이름을 떨친 것이다. ―〈보스턴에 휘날린 태극기〉(272쪽) 중에서


1950년 4월 19일, 또 다시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출전했다. 나는 코치로 최윤칠, 함기용, 송길윤 등 세 선수를 인솔했다. … 함경북도 도민회에서 손기정이 인솔하는 한 최윤칠은 이길 수 없다고 아우성이었다. “내가 코치로 가는 데에 많은 분이 불안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끼리만 패가 다르다느니, 누가 누구 편이라느니 하고 있을 뿐입니다. 미국에서야 한국 선수 세 명이 오는 것만 알지 한국 어느 지역 출신인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국 선수들 중 누구든 우승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 만약 세 사람이 먼저 싸워야 한다면 무엇 때문에 큰돈 들여서 세 명씩이나 보스턴에 보내겠습니까?” 런던에서의 참패로 우리는 서로 헐뜯고 싸울 여유도 없었다.


우리 마라톤의 낙후에 대해 말들이 많다. 많은 젊은이가 돈과 인기를 좇아 다른 종목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는 탓도 있다. 스스로 고행에 나선 마라토너들조차도 더러는 어떻게 하면 쉽고 편하게 밥을 먹고 사느냐에 더 관심을 쏟는 것 같다. 마라톤 중흥을 위해 일부에서는 신기록을 내면 1억 원을 주겠다느니 하는 모험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 승리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욱 중요한 법이다. 공식 대입과 어려운 산술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답이 나올 수는 없지 않은가. ‘미친 사람의 집념과 고집이 없었던들 어찌 식민지의 배고픈 젊은이가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을 제패할 수 있었으리오.’ 나의 마지막 소망은 후배 마라토너들의 힘찬 승전가를 들으며 눈을 감는 것뿐이다. ―〈정상에 서서〉(383·384쪽) 중에서


2. 손기정의 삶으로 만나는

20세기 한국과 세계의 역사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히틀러에서 김구까지, 근현대사와 함께 펼쳐지는 손기정의 생애

―한눈에 살피는 근현대 한국 체육, 그 성장 과정의 기록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한국전쟁, 분단, 그리고 올림픽 주최국으로 위상이 드높아진 현대 대한민국까지 거센 역사의 풍랑을 온몸으로 헤쳐온 그의 삶은 20세기 한국 근현대사를 한 개인의 일대기를 통해 돌아보게 한다. 나아가 세계적 스포츠인이었던 만큼 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세계사의 주요 사건들과도 마주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 이 책은 개인의 삶과 역사의 연관성을 여실히 보여주며, 한 개인의 생애에 대한 단순한 기록을 넘어 역사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드러내 보인다.

이 책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역사책이나 교과서에서만 보던 이름들이 종종 튀어나오기도 한다. 양정고등보통학교에 다닐 때는 조선어학자 지석영에게 배웠고, 베를린 올림픽 우승 후 베를린에 살던 안중근 의사의 사촌 안봉근 씨를 만나 처음으로 태극기로 보았으며, 이후 해외 곳곳의 교민들을 만나며 시야를 넓혀간다. 당대 정치·사회적 명사들과도 인연이 깊었다. 여운형, 김구, 이승만 등이 그들이다. ‘조선 체육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여운형은 조선체육회와 서울육상경기연맹 회장을 맡을 정도로 체육 활동에 힘쓰며 손기정과 인연은 맺었고, 김구와 이승만은 해방 후 손기정의 베를린 마라톤 우승 기념행사 등에 빠짐없이 참여해 격려와 축하를 해주었다. 격변기 해방정국에서 손기정은 김구와 이승만의 관계 호전을 위해 노력하거나 여운형, 김구의 죽음을 비통해하기도 한다. 이처럼 수많은 당대 인물들과 교류한 일화들로, 민족의식 형성에서부터 민족적 자긍심을 지키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이름과 국적을 바로 알리고자 한 손기정의 삶을 행적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했던 만큼 히틀러를 대면해 축하 인사를 받은 일, 〈올림피아〉의 감독 레니 리펜슈탈과 오랜 우정을 나눈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 외에 올림픽과 여러 세계대회에 참가하며 교류한 에밀 자토펙, 제시 오언스, 아베베 비킬라 등 유명 세계 마라톤 선수들과의 일화도 소개한다. 또 이 책에는 1983년 초판에 실렸던 당시 안재홍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장의 서문과 홍종인 조선일보 기자, 최정희 소설가가 쓴 추천의 글을 그대로 실어 동시대 인물들이 손기정을 어떻게 기억했는지 살펴볼 수 있게 했다. 특히 베를린 올림픽 당시 손 선수와의 전화 인터뷰와 우승 소식을 전하는 호외 발간과 과정을 들려주는 홍종인 기자의 글은 마치 눈앞에 당시의 신문사 풍경이 펼쳐지는 듯 매우 생생하고 흥미롭다.

마라톤 선수의 자서전인 만큼 근현대 한국의 체육사도 당연히 빠질 수 없다. 손기정이 활약하던 시절 함께 달리며 손기정을 마라톤으로 이끈 선배들(권태하, 김은배, 남승룡 등)을 물론이고 이후 지도자로서 함께한 후배들(서윤복, 최윤칠, 이창훈 등)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마라톤의 역사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또 육상 외에도 축구, 농구, 권투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던 조선인 선수들도 빠짐없이 기록해 소개하고 있다. 해방 후 한국 마라톤의 성장과 올림픽 및 세계대회 참가를 위한 노력, 최초의 남북체육회담, 1988년 서울 울림픽 유치 과정 등 불모지에서 한국 체육계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상세히 담고 있어 근대 한국 스포츠사 기록으로도 값지다.


비극의 시대였다. 희망도 꿈도 없는 길고 긴 암흑의 터널이었다. 절망만이 가득하던 그 시대에 내가 택한 것이 마라톤이었다. 희망을 향한 탈출구라도 좋았고 파멸로 향한 길이라도 좋았다. 한시라도 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 마침내 올라선 마라톤 세계 정상에서 맛본 것은 끝없는 좌절감뿐이었다. 마라톤의 우승은 나의 슬픔, 우리 민족의 슬픔을 뼈저리도록 되새겨주었다. 나라가 없는 놈에게는 우승의 영광도 가당치 않은 허사일 뿐이었다. ―〈책을 펴내며〉(4·5쪽) 중에서


조선 선수들은 여러 가지로 불리하고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일본 선수들과 겨뤄 여러 종목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일본 선수들의 기를 꺾었다. … 운동이야말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남은 마지막 숨통이었다. 조선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거나 대일본제국을 비방할 어떠한 활동도 허락되지 않던 때였다. 일본 사람들은 몸으로 뛰고 달리는 운동마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조선의 젊은이가 운동을 통해 일본을 누르고 쾌재를 부르며 조선 민족의 생존을 자각하게 되었는지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

―〈마라톤과의 대면〉(60·61쪽) 중에서


나는 점차 마라톤 선수로서의 길을 닦기 시작했다. … 목표는 권태하, 김은배 선배에 이어 조선 제일, 아니 세계 제일의 마라토너가 되는 것이었다. 선배들이 도전하다 실패한 올림픽 마라톤 우승이 내 꿈이었다. ‘1936년 다음 올림픽까지는 겨우 3년이 남았다. 그동안 우선 조선에서 최고, 전 일본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어야 한다.’ 나는 선배들이 겪었던 혹독한 시련과 민족 차별을 머릿속에 되새겼다. …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도록 완전한 승리를 거두어야만 했다. ―〈마라토너 손기정〉(107·108쪽) 중에서


우리는 베를린에 살고 있는 안봉근(安鳳根) 씨의 초대를 받아 그 댁에 가 있었다. … 안봉근 씨는 독립투사 안중근 의사의 사촌이었다. 안봉근 씨 댁에서 나는 난생 처음 태극기를 보았다. 선명한 색깔로 나뉜 음과 양, 그리고 태극을 감싼 괘. ‘이것이 태극기로구나. 이것이 우리의 깃발이로구나.’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잃어버린 조국, 죽은 조국의 얼굴을 대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상에 서서〉(181쪽) 중에서


광복과 함께 체육계는 체육계대로 활기찬 하루하루를 맞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주도하던 조선체육협회도 체육진흥회도 모두 없어지자 체육인들은 해당 종목 단체를 결성하느라 바빴다. … (그러나) 모두 정치운동에 가담해 저마다 제 편의 주장을 내세워 싸우느라 평화스러운 날이 없었다. 스포츠는 끊임없이 정치에 오염되고 이용당하지만 때로 정치적 화합의 장을 열어주는 위력을 가졌다. … 재건된 조선체육회는 자유해방을 기념하는 전국종합경기대회를 열었다. 광복된 조국 땅에서 처음으로 조선의 체육인들이 모두 모였다. 조국 광복과 함께 체육 활동도 부활한 것이었다. ―〈날이 밝아오다〉(252·253쪽) 중에서


김구 선생의 축사는 지금까지 내 귓속을 맴돌고 있다. “나는 오늘까지 세계를 제패한 손기정, 남승룡 군으로 인해 세 번 울었다. 10년 전 난징의 컴컴한 방 안에서 나라 없는 청년이 세계 열강의 젊은이들과 겨뤄 우승했으나 조선 사람이면서도 가슴에 일장기를 붙이고 조선 사람 행세를 못 하는 모습을 신문으로 보면서 가슴 아파 울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났을 때 충칭에서는 조선 청년 손기정이 일본군에 지원해 필리핀 군도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원통해서 울었다. 또 오늘은 죽었다던 손 군을 광복된 조국 땅에서 다시 만나 이렇듯 뜻깊은 자리에 함께했으니 감격해서 울지 않을 수 없다.”

―〈날이 밝아오다〉(261·262쪽) 중에서


3. 8월 9일 승리의 그날,

1983년 초판본이 새 옷을 입고 독자 앞에 서다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일을 기념해 2022년 8월 9일 개정판 선보여

―100여 장의 사진 수록, 1984년 이후 회고록 증보

―서양화가 강형구 화백의 〈우리의 손〉을 표지화로


이 책은 1983년 한국일보사에서 출간한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의 개정증보판으로,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을 기념하여 2022년 8월 9일 출간한다. 마침 2022년은 손기정 선수 탄생 110주년, 서거 20주기이기도 하다. 또 현재, 지도자 손기정을 담은 영화 〈보스턴 1947〉(감독 강제규, 주연 하정우·배성우·임시완)이 개봉을 앞두고 있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의 손기정을 조명하는 영화가 준비 중에 있는 등 최초의 한류 스포츠 영웅 손기정에 주목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손기정 평전까지 출간되며 손기정에 대한 연구와 조명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데 반해 국내에서는 이렇다 할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에 손기정과 그의 시대에 대한 국내의 관심을 환기하고, 새로운 연구를 촉발하는 의미로 손기정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을 재출간한다.

이번에 출간하는 증보판에는 손기정기념관 소장 사진 외에도 유물과 역사 사진 100여 장을 실었고, 1984년 자서전 출간 이후 그리스 청동 투구 반환과 1988년 서울 올림픽 성화 봉송, 2002년 타계에 이르기까지 손기정 선수의 외손자인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의 회고를 더해 손기정의 삶을 더욱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담아냈다.

눈길을 사로잡는 표지의 그림은 강형구 화백 〈우리의 손(Our Son)〉이다. 거대한 캔버스에 역사와 시대의 표정을 머금은 인물의 얼굴을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으로 유명한 강형구 화백은, 베를린 올림픽 당시 손기정의 표정에 매료되어 1990년대부터 손기정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며 손기정의 얼굴을 그려왔다. 현재 손기정기념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우리의 손〉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우승 후 시상식에서의 손기정으로, 기쁨과 영광보다는 슬픔과 비장하고 억눌린 마음이 얼굴 곳곳에 묘사되어 있다. 실제 그림에서는 우승의 영광이 황금색 빛으로 손기정의 얼굴에 쏟아지지만 한 켠으로 어두운 명암이 드리워져 있어 나라를 잃은 슬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베를린 올림픽 50주년 되는 해인 1986년 서독올림픽위원회는 청동 투구를 손기정에게 되돌려 주었다. 이렇게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금메달, 또 하나의 영광의 상징을 되찾았다고 기뻐했다. 올림픽 개최 예정국이 되면서 1980년대 중반 대한민국의 국격이 높아져 투구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청동 투구가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 민족의 것”이라며 독립기념관에 의탁했다. 1994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어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전시되고 있다. ―〈1984년 이후의 손기정〉(391·392쪽) 중에서


1987년 나는 상계동 주공아파트에서 할아버지와 둘이 살기 시작했다. 거실과 방은 각종 사진과 자료가 담긴 액자와 올림픽 관련 기념품 등으로 빼곡했다. 수집한 자료에 대한 할아버지의 애착이 워낙 크기도 했지만 서울 올림픽에 따른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를 대비한 것이기도 했다. 서울 올림픽 개막까지 1년도


더 남은 어느 날, 할아버지는 나에게 이제부터 새벽에 같이 달리기를 하자고 하셨다. 자신이 올림픽 개막식의 성화 봉송 주자가 될 것을 예상하고, 전 세계인에게 당당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한국인 손기정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1984년 이후의 손기정〉(392쪽) 중에서


2005년 손기정을 좋아하는 몇몇이 모여 손기정기념재단을 설립했다. 강형구 화백의 그림 22점을 기본자산으로 하고 손기정 선수의 유족은 유품을 기증했다. … 재단 설립 첫해부터 손기정평화마라톤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으며 손기정평화음악회를 통해 다양하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알리고자 했다. 마라톤대회나 음악회 이름을 지으면서 ‘손기정’과 어울리는 단어를 떠올려보았다. 도전, 극복, 나라 사랑… 그러다 할아버지의 삶에서 가장 필요했던 게 무엇이었을지 생각했다. 그건 ‘평화’였다. 일제강점기가 아니었다면 손기정은 ‘슬픈 우승자’가 아니라 다른 올림픽 우승자와 같이 기쁜 모습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것이다. 또 남북이 전쟁하지 않고 분단되지 않았더라면 한반도 한민족의 영웅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1984년 이후의 손기정〉(405·406쪽) 중에서

작가 소개

손기정

아시아 최초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은 1912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어릴 때부터 일하며 압록강변을 달렸다. 스무 살 때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 후 장거리 경주와 마라톤에서 두각을 보이며 각종 대회에서 우승, 신기록 수립의 행진을 이어나갔다. 마침내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29분 19초 2의 올림픽 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일제강점하에서 비록 일본 대표선수로 출전했지만, 조선인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선사하며 민족의 자긍심을 높였다. 그 후 일제의 감시와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등으로 더는 경기에 나가지 못했지만, 지도자로서 마라톤 선수 양성에 전념하며 해방 후 한국 체육계 발전을 위해 힘쓰다 2002년 타계했다. 같은 해 한국 체육 발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체육훈장 청룡장이 추서되었다.

목 차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어린 시절의 추억

마라톤과의 대면

어두운 시절

조선의 올림피언

마라토너 손기정

운명을 건 승부

정상에 서서

반도를 흔든 마라톤 충격

전운에 휩싸인 세계 스포츠

날은 밝아오다

보스턴에 휘날린 태극기

시련과 영광의 한국 마라톤

동족상잔의 비극

급변하는 세계 마라톤

재생

노병의 소망

에필로그


1984년 이후의 손기정 · 이준승


부록

겨레와 함께 달린 민족사상의 큰 승리 · 안춘생

손기정 선수의 자서전을 추천하며 · 홍종인

중학생 티를 벗지 못했던 우리의 영웅 · 최정희

손기정 연보

본문의 주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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