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성룡을 아는 사람과 성룡을 모르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자서전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 드디어 한국 출간!
불멸의 액션 아이콘, 영원한 따거,
성룡이 직접 말하는 ‘진짜’ 성룡 스토리
영화배우이자 감독, 각본가, 제작자, 무술가. 액션영화의 살아 있는 전설, 성룡(成龍). 그의 자서전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원제: 成龍: 還沒長大就老了)가 출간되었다. 성룡의 자서전은 지난 2015년 중국에서 출간 즉시 25만 부가 판매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책의 내용 중 일부가 국내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사실 한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외국 배우를 꼽을 때 ‘성룡’이란 이름 두 글자를 빼놓을 수 없다. 한때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성룡 영화’는 안방 극장 편성표의 ‘명절 특선 영화’에서 당연히 볼 수 있는 일종의 공식 같은 것이었다. 성룡 영화가 없는 명절은 만두와 송편 없는 설과 추석을 보낸다는 말과 같았다. 또한 잘 알려져 있다시피 무명 시절이던 1970년대에 한국을 방문했다가 장발 단속에 걸렸던 사연, 한국 여성과의 연애 경험으로 한국어를 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은 성룡이 직접 밝힌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이기도 하다.
이 자서전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성룡이 직접 구술하고 공저자 주묵(朱墨)이 정리하여 완성한 것으로, 8살 때 처음 연기를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50년 넘는 세월 동안 오직 영화만을 위해 인생을 바친 한 남자의 삶이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또한 이 자서전에는 성룡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100여 장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어 영화 팬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소장 가치를 지닌다.
1954년 홍콩의 프랑스 영사관에서 주방장과 가정부로 일하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소학교조차 마치지 못하고 7살에 희극학원에 맡겨진 뒤 10년간 무술과 연기 수련을 해야 했던 유년시절, 영화 촬영장을 전전하면서 몇 푼 안 되는 일당을 받아가며 시체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던 암흑기, [사형도수](1978), [취권](1978)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졸부 행세를 하고 다녔던 철없던 시절, 할리우드에 여러 차례 도전해 고배를 마셨지만 결국 자기만의 액션 스타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 이야기, 마음에 드는 장면 하나를 얻기 위해 대역 없이 스턴트신을 찍다가 몇 번이나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이야기 등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숨 쉴 틈 없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출간 직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고(故) 등려군과의 연애 시절 이야기, 아들 방조명의 대마초 사건, 여배우 우치리와의 불륜 사건처럼 스타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밝히기엔 민감한 사연들까지도 거리낌 없이 꺼내놓는다.
“진정한 나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내 영화를 사랑하듯 이 책을 사랑한다.”
한 사람의 아들이었고,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재키 찬(Jackie Chan)’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를 열광하게 만든 영화인, 그리고 결국 그 모든 것 이상의 존재가 된 놀라운 사람.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는 왜 성룡이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성룡’일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답이다.
배우에서 감독으로, 또 제작자로 전 세계를 돌아다녀야 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3년 동안 공을 들여 완성한 이 자서전에 대해 성룡은 깊은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나의 인생은 언제나 뜨겁고 요란했다. 은막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달리고 구르고 몸을 내던지고, 일상에서는 성가반, 강호, 친구, 온 세상이 내 형제인 듯 불러 모아 먹고 마셨다. 주묵이 나에 대해 써주기 전까지는 한 사람의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 아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거의 잊고 있었다. 그녀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생각했다. ‘아, 내가 원래 이랬구나.’ 나의 평범함, 아쉬움, 나약함,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한 평생 잊지 못하는 사랑. 이 책 속의 나는 스크린 속의 나도, 매스컴에서의 나도 아니다. 진정한 나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내 영화를 사랑하듯 이 책을 사랑한다.”
특히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성룡의 자서전 출간을 기념하고 축하해주기 위해 무려 149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보내준 추천사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오우삼, 유덕화, 홍금보, 원표, 공리, 곽부성, 이연걸, 여명, 비비안 수, 존 쿠삭, 에드리언 브로디, 랑랑(피아니스트), 모옌(작가), 야오밍(전 NBA선수), 케니 지(음악가), 마윈(알리바바 회장) 등 세계적 명사들뿐만 아니라 이병헌, 최시원, 권상우, 김희선, 싸이, 박진영, 비(정지훈) 등 성룡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국내 연예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영화를 향한 한 인간의 숭고한 의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성룡 자신의 이야기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는 첫 장부터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성룡은 자서전의 시작부터 1983년 영화 [프로젝트 A]를 찍을 때 15미터 높이의 시계탑에서 아래로 뛰어내려야 했던 숨 막히는 스턴트 연기를 회상한다. 대역을 써도 된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직접 해내겠다며 호언장담했지만 정작 엿새 동안 망설이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가 이레째 되던 날에야 몸을 던져 단 한 장면을 찍는 데 성공한 사연은 성룡 자신이 오랫동안 굳건하게 쌓아올리고 지켜왔으며, ‘성룡 영화’의 이면에 늘 존재해온 액션배우의 고달픔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무의식중에 몸을 굴려 착지의 충격을 완화할 겨를도 없이 모든 충격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냈다. 지금 그 장면을 다시 보면 내가 떨어지는 순간까지 악착같이 시곗바늘을 붙들고 있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건 연기가 아니라 실제였다. 내 목이 완전히 꺾인 채로 바닥에 부딪혔지만 다행히도 나는 죽지 않았다.”
실제로 [프로젝트 A]의 성공 이후 몇십 년 동안 성룡은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트레이드마크, 즉 고난도 스턴트신을 대역 없이 직접 찍는 배우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프로텍터] 촬영 당시 “크리스마스 전구가 가득 매달린 로비 중앙의 기둥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와 유리 천장을 뚫고 쇼핑몰의 대리석 바닥으로 약 30미터를 뛰어내려야 했던” 이야기, [용형호제] 촬영 당시 불의의 추락 사고로 두개골이 함몰돼 사망할 뻔했던 일, [성룡의 CIA] 촬영 당시 21층짜리 빌딩 옥상에서 유리로 된 외벽 경사면을 70미터나 미끄러져 내려와야 했던 일 등은 상황 자체가 주는 긴박감과 안타까움, 액션배우 성룡의 열정과 고난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거의 모든 장면들이 디지털로 완성되는 이 시대에 아날로그 미학의 쾌감을 보여주는 그 무수한 명장면들은, 세계 영화의 역사에 있어 그에게 단순한 액션스타 그 이상의 숭고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특히 [프로젝트 A] 즈음부터 관례처럼 자리 잡기 시작한 그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마지막 엔딩 크레딧과 함께 올라가는 NG 장면 모음은 재미와 함께 묘한 감동을 자아냈다. 그가 갖은 위험과 부상을 무릅쓰는 가운데 얻어진 이 장면들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영화적 순수 그 자체였다.”(주성철 [씨네21] 편집장, 추천의 글 ‘영화를 향한 한 인간의 숭고한 의지’ 중에서)
이 자서전 전반에 걸쳐서 성룡은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 자신의 영화에 대한 자부심과 끝나지 않는 도전 정신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나 두려워하고, 유혹에 빠지고, 좌충우돌 실수를 연발하는 나약하고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성룡이 공존해왔음을 보여준다. 스타덤에 오른 이십 대에 이미 천만장자가 되어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보상 심리로 갖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 사야만 직성이 풀렸다던 이야기, 희극학원 시절에 첫사랑을 만났지만 정작 자신이 유명해지고 난 뒤에는 애인에게 소홀해져서 서서히 멀어졌던 안타까운 이야기, 가장 멋진 은퇴 방법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하다가도 ‘내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보자’고 결론을 내리게 될 때의 난감함, 결벽증과 강박증, 수집벽 등에 대한 웃지 못할 이야기들은 그도 유명한 스타이기 전에 평범한 한 사람이라는 점을 실감케 한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들은 다시 영화로 귀결된다. 이 자서전에서 스스로 낱낱이 밝히고 있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성룡의 모습이 있었기에 ‘성룡 영화’라는 그만의 스타일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소룡이 사망한 이후 홍콩영화계가 제2의 이소룡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을 무렵 성룡은 한 제작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소룡은 발차기를 할 때 다리를 높이 들어서 차지만 나는 다리를 낮게 드는 편이에요. 또 이소룡은 싸울 때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 특징이죠. 분노를 표현하고 기선을 제압하는 효과가 있어요. 하지만 제가 싸우다가 소리를 지르면서 얼굴을 찡그리는 건 얼마나 아픈지 보여주려는 거죠. 관객들은 이소룡을 초인으로 여기지만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요. 단점도 많고 불가능한 것도 많은 사람 말이에요. 뭐든 다 해낼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대협이나 영웅은 더더욱 아니죠.”
어쩌면 이것은 단순히 이소룡과 성룡의 차이점을 말하는 것의 차원을 넘어 평범한 사람이 영웅이 될 수 있는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현자의 선언과도 같았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영화가 이소룡 영화의 흥행 성적마저 뛰어넘은 [사형도수]와 [취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자서전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
“나는 한 번도 전지전능한 영웅을 연기한 적이 없다. 그 반대로 영화 속에서 나는 늘 처참하게 맞고 구겨진다. 나는 이미지를 포장하지 않고 카메라에 잡힌 내 모습이 얼마나 볼품없을지 걱정하지도 않는다. 내가 맡은 배역들은 대부분 평범하고 작은 인물들이다. 그들은 약점도 많고 실수도 연발한다. 대개 자발적으로 다툼에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 얼떨결에 등 떠밀려 싸움에 휘말리고 악전고투 끝에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다.”
어느새 예순이 훌쩍 넘어버린 성룡은 최근 10여 년 동안 “성룡도 늙었어. 이제 액션연기는 끝이야.”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성룡은 이 자서전을 통해 여전히 “나는 이 나이에도 바람동굴 위를 날고 화산으로 뛰어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미련하게 목숨을 내놓고 직접 액션연기를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결국엔 성룡식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관객,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원하는 관객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그의 표현대로 “관객을 책임지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성룡 자서전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는 ‘살아서 전설이 된’ 액션영화의 영웅, 성룡이 직접 집필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성룡의 영화와 함께 자라온 오랜 영화팬들에게는 성룡의 새 영화 개봉 소식만큼이나 반가운 선물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평범한 한 인간의 숭고한 의지가 오롯이 담겨 있는 이 자서전은 성룡을 알든 모르든,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큰 재미와 영감을 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이 책의 제목에서 성룡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철들기도 전에’ 늙기 때문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저와 한국과의 인연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제 책을 해외에서 발간하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사실이 저와 한국과의 가까운 인연을 더욱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저를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아껴주시고 성원해주신 한국의 팬 여러분들께 매우 감사드립니다. 그대들과의 만남을 기대하겠습니다. -성룡
▣ 작가 소개
저 : 성룡
1954년 4월 7일 영국령 홍콩 빅토리아피크에서 태어났다. 정식으로 호적에 올린 이름은 ‘진항생(陳港生)’이었으나, 2차 국공 내전 당시 도피 생활을 하던 그의 아버지가 방도룡에서 진지평으로 이름을 바꾼 사실이 알려진 뒤 ‘방사룡(房仕龍)’이라는 이름을 본명으로 사용한다. 전 세계인이 부르는 영어 이름은 ‘재키 찬(Jackie Chan)’이다.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얌전한 아이가 아니었던 그는 툭 하면 발길질을 해댔고, 무려 12개월 만에 5.5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몸무게로 태어나 의사와 가족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때 그의 어머니의 나이가 마흔이었다. 이 ‘우량아’의 탄생 소식은 지역 신문에도 실렸다. 프랑스 영사관에서 주방장과 하녀로 일하던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소학교에 입학했지만 1학년도 채 마치지 못하고 장난을 많이 친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7살 무렵 그의 부모님은 우점원 사부가 가르치는 중국희극연구학원(희극학원)에 그를 맡겨놓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호주 주재 미국 영사관으로 떠났다. 희극학원에서는 경극배우가 되는 것을 목표로 수면 시간 6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무술과 연기 수련을 반복했다. 이때 만난 선후배들이 나중에 홍콩 영화계를 휘어잡은 홍금보, 원표, 원태 등이다. 그들은 경극공연 외에도 영화판을 전전하면서 일당을 받고 촬영장의 허드렛일이나 단역 무술배우로 일했다.
17살에 10년간의 희극학원 생활을 마치고 세상으로 나온 그는 영화판에서 밥벌이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새벽 버스에 올라 쇼브라더스의 촬영장으로 가서 차이고 넘어지고 찔리는 엑스트라는 물론 시체 역할까지 닥치는 대로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이후 무술배우로, 무술감독으로 차츰 영역을 넓혀가며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모두 흥행에 참패한 뒤 부모님이 있는 호주로 돌아가 낮에는 공사장에서, 밤에는 식당에서 일하며 다시 찾아올 기회를 기다렸다. 얼마 후 <신정무문>(1976)에 캐스팅되어 다시 홍콩으로 돌아왔고, 이때부터 예명을 ‘진원룡(陳元龍)’에서 ‘성룡’으로 바꾸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 원화평이 감독한 <사형도수>(1978), <취권>(1978)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그가 직접 감독한 <소권괴초>(1979)까지 연달아 성공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골든하베스트로 옮겨 감독하고 출연한 첫 작품 <사제출마>(1980)는 홍콩의 영화 흥행 기록마저 갈아치웠다. <배틀 크리크>(1980)로 할리우드에 처음 진출했고 <홍번구>(1995)로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대역 없는 고난도의 스턴트신을 직접 찍기로 유명한 그는 영화 촬영 도중 몇 번이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왔지만 예순이 넘은 지금도 관객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면 부상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다고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영화에 관한 한 완벽을 추구하는 그는 마음에 드는 한 장면을 얻기 위해 찍고 찍고 또 찍기로 유명한데, <용소야>(1982)는 한 장면을 무려 2900번 반복 촬영해서 ‘최다 반복 촬영 장면’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또한 2012년에는 ‘가장 많은 스턴트를 하고도 생존한 배우’, ‘한 영화에 가장 많은 이름을 올린 사람’(<차이니즈 조디악>)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을 가장 존경하며, 아내 임봉교, 아들 방조명이 있다.
저자 : 주묵(朱墨)
1983년 중국 허베이(河北) 가오양(高陽)에서 태어났다. 베이징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서 영화학 복수석사학위를 받았다. 10년 가까이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해왔다. 2012년 영화 [차이니즈 조디악]을 촬영할 때 성룡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2015년까지 3년간 성룡을 수행하며 자서전을 집필했다.
역 : 허유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동 대학 통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중국어 일기장》이 있고 옮긴 책으로 《기업의 시대》, 《G2 전쟁》, 《다 지나간다》, 《디테일의 힘》, 《화씨 비가》, 《모텔의 도시》 외 다수가 있다.
▣ 주요 목차
추천의 글
영화를 향한 한 인간의 숭고한 의지 : 주성철([씨네21] 편집장)
한국의 독자들에게 -성룡
프롤로그
평범함과 비범함 -성룡
신화(神話)가 된 사람 -주묵
제1장 돈 많은 바보
목숨을 내놓은 액션연기 / “죽을 테면 죽으라지!” / 금지령 / 표범에게 물릴 뻔하다 / 이 장면을 사부님께 바칩니다 / 벼락부자 / 쇼핑광 / 돈 많은 바보
제2장 평범한 한 사람
어릴 적 ‘여자친구’ / 첫사랑 / ‘9번 아가씨’ / 라티샤 / 그녀는 누구일까 / 안녕, 등려군 / 잔소리 / 쓸데없는 참견 / 상부상조 / 왜 공부를 해야 할까 / 나의 꿈 / 나도 두렵다 / 평범한 한 사람
제3장 넘어질수록 용감해지다
여러 번의 좌절 / 가난했던 시절 / 촬영장에서 / 영화에 임하는 나의 태도 / 성룡 영화란 무엇인가 / 영화팬들에게 바친다 / 넘어질수록 용감해지다
제4장 큰 지혜는 어리석어 보인다
흑사회 / 배움의 필요성 / 전통의상을 입는 이유 / 아들과의 관계 / 처세의 철학 / 자선활동에는 끝이 없다 /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 / 국보 반환 / 큰 지혜는 어리석어 보인다 / 이 세상은 결코 쓸쓸하지 않다
제5장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기인(奇人) 세 사람: 추아람, 마윈, 마미도 / 만나자마자 친해지다: 윌 스미스 / ‘악마프로듀서’: 이종성 / 첫 번째 부매니저: 진덕삼 / 형제이자 아들: 오언조 / 너를 사랑해: 왕리훙 / 진정한 액션스타: 양자경 / 용감한 여인: 장만옥 / “죽는 걸 보고도 구하지 않다”: 임청하 / 영원한 전설: 장국영, 매염방 /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 아버지와 같은: 하관창 / 일생의 사랑: 임봉교 / 나와 방조명 / 애완동물들 /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제6장 ‘따거’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포 / 희극학원 / 무술배우 / 용호무사 / 첫 번째 여행 / 바로 성룡이다 / 재기를 꾀하다 / 애증의 할리우드 / 전신 부상 지도 / ‘따거’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에필로그
지구상에 하나뿐인 재키 찬 -주묵
옮긴이의 글
謝謝, 大哥!
부록
성가반 역대 구성원
성룡 필모그래피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성룡을 아는 사람과 성룡을 모르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자서전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 드디어 한국 출간!
불멸의 액션 아이콘, 영원한 따거,
성룡이 직접 말하는 ‘진짜’ 성룡 스토리
영화배우이자 감독, 각본가, 제작자, 무술가. 액션영화의 살아 있는 전설, 성룡(成龍). 그의 자서전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원제: 成龍: 還沒長大就老了)가 출간되었다. 성룡의 자서전은 지난 2015년 중국에서 출간 즉시 25만 부가 판매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책의 내용 중 일부가 국내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사실 한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외국 배우를 꼽을 때 ‘성룡’이란 이름 두 글자를 빼놓을 수 없다. 한때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되면 ‘성룡 영화’는 안방 극장 편성표의 ‘명절 특선 영화’에서 당연히 볼 수 있는 일종의 공식 같은 것이었다. 성룡 영화가 없는 명절은 만두와 송편 없는 설과 추석을 보낸다는 말과 같았다. 또한 잘 알려져 있다시피 무명 시절이던 1970년대에 한국을 방문했다가 장발 단속에 걸렸던 사연, 한국 여성과의 연애 경험으로 한국어를 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은 성룡이 직접 밝힌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이기도 하다.
이 자서전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성룡이 직접 구술하고 공저자 주묵(朱墨)이 정리하여 완성한 것으로, 8살 때 처음 연기를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50년 넘는 세월 동안 오직 영화만을 위해 인생을 바친 한 남자의 삶이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또한 이 자서전에는 성룡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100여 장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어 영화 팬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소장 가치를 지닌다.
1954년 홍콩의 프랑스 영사관에서 주방장과 가정부로 일하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소학교조차 마치지 못하고 7살에 희극학원에 맡겨진 뒤 10년간 무술과 연기 수련을 해야 했던 유년시절, 영화 촬영장을 전전하면서 몇 푼 안 되는 일당을 받아가며 시체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던 암흑기, [사형도수](1978), [취권](1978)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졸부 행세를 하고 다녔던 철없던 시절, 할리우드에 여러 차례 도전해 고배를 마셨지만 결국 자기만의 액션 스타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 이야기, 마음에 드는 장면 하나를 얻기 위해 대역 없이 스턴트신을 찍다가 몇 번이나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이야기 등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숨 쉴 틈 없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출간 직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고(故) 등려군과의 연애 시절 이야기, 아들 방조명의 대마초 사건, 여배우 우치리와의 불륜 사건처럼 스타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밝히기엔 민감한 사연들까지도 거리낌 없이 꺼내놓는다.
“진정한 나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내 영화를 사랑하듯 이 책을 사랑한다.”
한 사람의 아들이었고,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재키 찬(Jackie Chan)’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를 열광하게 만든 영화인, 그리고 결국 그 모든 것 이상의 존재가 된 놀라운 사람.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는 왜 성룡이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성룡’일 수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답이다.
배우에서 감독으로, 또 제작자로 전 세계를 돌아다녀야 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3년 동안 공을 들여 완성한 이 자서전에 대해 성룡은 깊은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나의 인생은 언제나 뜨겁고 요란했다. 은막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달리고 구르고 몸을 내던지고, 일상에서는 성가반, 강호, 친구, 온 세상이 내 형제인 듯 불러 모아 먹고 마셨다. 주묵이 나에 대해 써주기 전까지는 한 사람의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 아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거의 잊고 있었다. 그녀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생각했다. ‘아, 내가 원래 이랬구나.’ 나의 평범함, 아쉬움, 나약함,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한 평생 잊지 못하는 사랑. 이 책 속의 나는 스크린 속의 나도, 매스컴에서의 나도 아니다. 진정한 나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내 영화를 사랑하듯 이 책을 사랑한다.”
특히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성룡의 자서전 출간을 기념하고 축하해주기 위해 무려 149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보내준 추천사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오우삼, 유덕화, 홍금보, 원표, 공리, 곽부성, 이연걸, 여명, 비비안 수, 존 쿠삭, 에드리언 브로디, 랑랑(피아니스트), 모옌(작가), 야오밍(전 NBA선수), 케니 지(음악가), 마윈(알리바바 회장) 등 세계적 명사들뿐만 아니라 이병헌, 최시원, 권상우, 김희선, 싸이, 박진영, 비(정지훈) 등 성룡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국내 연예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영화를 향한 한 인간의 숭고한 의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성룡 자신의 이야기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는 첫 장부터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성룡은 자서전의 시작부터 1983년 영화 [프로젝트 A]를 찍을 때 15미터 높이의 시계탑에서 아래로 뛰어내려야 했던 숨 막히는 스턴트 연기를 회상한다. 대역을 써도 된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직접 해내겠다며 호언장담했지만 정작 엿새 동안 망설이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가 이레째 되던 날에야 몸을 던져 단 한 장면을 찍는 데 성공한 사연은 성룡 자신이 오랫동안 굳건하게 쌓아올리고 지켜왔으며, ‘성룡 영화’의 이면에 늘 존재해온 액션배우의 고달픔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무의식중에 몸을 굴려 착지의 충격을 완화할 겨를도 없이 모든 충격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냈다. 지금 그 장면을 다시 보면 내가 떨어지는 순간까지 악착같이 시곗바늘을 붙들고 있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건 연기가 아니라 실제였다. 내 목이 완전히 꺾인 채로 바닥에 부딪혔지만 다행히도 나는 죽지 않았다.”
실제로 [프로젝트 A]의 성공 이후 몇십 년 동안 성룡은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트레이드마크, 즉 고난도 스턴트신을 대역 없이 직접 찍는 배우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프로텍터] 촬영 당시 “크리스마스 전구가 가득 매달린 로비 중앙의 기둥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와 유리 천장을 뚫고 쇼핑몰의 대리석 바닥으로 약 30미터를 뛰어내려야 했던” 이야기, [용형호제] 촬영 당시 불의의 추락 사고로 두개골이 함몰돼 사망할 뻔했던 일, [성룡의 CIA] 촬영 당시 21층짜리 빌딩 옥상에서 유리로 된 외벽 경사면을 70미터나 미끄러져 내려와야 했던 일 등은 상황 자체가 주는 긴박감과 안타까움, 액션배우 성룡의 열정과 고난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거의 모든 장면들이 디지털로 완성되는 이 시대에 아날로그 미학의 쾌감을 보여주는 그 무수한 명장면들은, 세계 영화의 역사에 있어 그에게 단순한 액션스타 그 이상의 숭고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특히 [프로젝트 A] 즈음부터 관례처럼 자리 잡기 시작한 그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마지막 엔딩 크레딧과 함께 올라가는 NG 장면 모음은 재미와 함께 묘한 감동을 자아냈다. 그가 갖은 위험과 부상을 무릅쓰는 가운데 얻어진 이 장면들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영화적 순수 그 자체였다.”(주성철 [씨네21] 편집장, 추천의 글 ‘영화를 향한 한 인간의 숭고한 의지’ 중에서)
이 자서전 전반에 걸쳐서 성룡은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 자신의 영화에 대한 자부심과 끝나지 않는 도전 정신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나 두려워하고, 유혹에 빠지고, 좌충우돌 실수를 연발하는 나약하고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성룡이 공존해왔음을 보여준다. 스타덤에 오른 이십 대에 이미 천만장자가 되어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보상 심리로 갖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 사야만 직성이 풀렸다던 이야기, 희극학원 시절에 첫사랑을 만났지만 정작 자신이 유명해지고 난 뒤에는 애인에게 소홀해져서 서서히 멀어졌던 안타까운 이야기, 가장 멋진 은퇴 방법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하다가도 ‘내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해보자’고 결론을 내리게 될 때의 난감함, 결벽증과 강박증, 수집벽 등에 대한 웃지 못할 이야기들은 그도 유명한 스타이기 전에 평범한 한 사람이라는 점을 실감케 한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들은 다시 영화로 귀결된다. 이 자서전에서 스스로 낱낱이 밝히고 있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성룡의 모습이 있었기에 ‘성룡 영화’라는 그만의 스타일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소룡이 사망한 이후 홍콩영화계가 제2의 이소룡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을 무렵 성룡은 한 제작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소룡은 발차기를 할 때 다리를 높이 들어서 차지만 나는 다리를 낮게 드는 편이에요. 또 이소룡은 싸울 때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 특징이죠. 분노를 표현하고 기선을 제압하는 효과가 있어요. 하지만 제가 싸우다가 소리를 지르면서 얼굴을 찡그리는 건 얼마나 아픈지 보여주려는 거죠. 관객들은 이소룡을 초인으로 여기지만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요. 단점도 많고 불가능한 것도 많은 사람 말이에요. 뭐든 다 해낼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대협이나 영웅은 더더욱 아니죠.”
어쩌면 이것은 단순히 이소룡과 성룡의 차이점을 말하는 것의 차원을 넘어 평범한 사람이 영웅이 될 수 있는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현자의 선언과도 같았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영화가 이소룡 영화의 흥행 성적마저 뛰어넘은 [사형도수]와 [취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자서전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
“나는 한 번도 전지전능한 영웅을 연기한 적이 없다. 그 반대로 영화 속에서 나는 늘 처참하게 맞고 구겨진다. 나는 이미지를 포장하지 않고 카메라에 잡힌 내 모습이 얼마나 볼품없을지 걱정하지도 않는다. 내가 맡은 배역들은 대부분 평범하고 작은 인물들이다. 그들은 약점도 많고 실수도 연발한다. 대개 자발적으로 다툼에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 얼떨결에 등 떠밀려 싸움에 휘말리고 악전고투 끝에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다.”
어느새 예순이 훌쩍 넘어버린 성룡은 최근 10여 년 동안 “성룡도 늙었어. 이제 액션연기는 끝이야.”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성룡은 이 자서전을 통해 여전히 “나는 이 나이에도 바람동굴 위를 날고 화산으로 뛰어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미련하게 목숨을 내놓고 직접 액션연기를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결국엔 성룡식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관객,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원하는 관객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그의 표현대로 “관객을 책임지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성룡 자서전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는 ‘살아서 전설이 된’ 액션영화의 영웅, 성룡이 직접 집필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성룡의 영화와 함께 자라온 오랜 영화팬들에게는 성룡의 새 영화 개봉 소식만큼이나 반가운 선물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평범한 한 인간의 숭고한 의지가 오롯이 담겨 있는 이 자서전은 성룡을 알든 모르든,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큰 재미와 영감을 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이 책의 제목에서 성룡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철들기도 전에’ 늙기 때문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저와 한국과의 인연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제 책을 해외에서 발간하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사실이 저와 한국과의 가까운 인연을 더욱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저를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아껴주시고 성원해주신 한국의 팬 여러분들께 매우 감사드립니다. 그대들과의 만남을 기대하겠습니다. -성룡
▣ 작가 소개
저 : 성룡
1954년 4월 7일 영국령 홍콩 빅토리아피크에서 태어났다. 정식으로 호적에 올린 이름은 ‘진항생(陳港生)’이었으나, 2차 국공 내전 당시 도피 생활을 하던 그의 아버지가 방도룡에서 진지평으로 이름을 바꾼 사실이 알려진 뒤 ‘방사룡(房仕龍)’이라는 이름을 본명으로 사용한다. 전 세계인이 부르는 영어 이름은 ‘재키 찬(Jackie Chan)’이다.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얌전한 아이가 아니었던 그는 툭 하면 발길질을 해댔고, 무려 12개월 만에 5.5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몸무게로 태어나 의사와 가족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때 그의 어머니의 나이가 마흔이었다. 이 ‘우량아’의 탄생 소식은 지역 신문에도 실렸다. 프랑스 영사관에서 주방장과 하녀로 일하던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소학교에 입학했지만 1학년도 채 마치지 못하고 장난을 많이 친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7살 무렵 그의 부모님은 우점원 사부가 가르치는 중국희극연구학원(희극학원)에 그를 맡겨놓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호주 주재 미국 영사관으로 떠났다. 희극학원에서는 경극배우가 되는 것을 목표로 수면 시간 6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무술과 연기 수련을 반복했다. 이때 만난 선후배들이 나중에 홍콩 영화계를 휘어잡은 홍금보, 원표, 원태 등이다. 그들은 경극공연 외에도 영화판을 전전하면서 일당을 받고 촬영장의 허드렛일이나 단역 무술배우로 일했다.
17살에 10년간의 희극학원 생활을 마치고 세상으로 나온 그는 영화판에서 밥벌이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새벽 버스에 올라 쇼브라더스의 촬영장으로 가서 차이고 넘어지고 찔리는 엑스트라는 물론 시체 역할까지 닥치는 대로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이후 무술배우로, 무술감독으로 차츰 영역을 넓혀가며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모두 흥행에 참패한 뒤 부모님이 있는 호주로 돌아가 낮에는 공사장에서, 밤에는 식당에서 일하며 다시 찾아올 기회를 기다렸다. 얼마 후 <신정무문>(1976)에 캐스팅되어 다시 홍콩으로 돌아왔고, 이때부터 예명을 ‘진원룡(陳元龍)’에서 ‘성룡’으로 바꾸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 원화평이 감독한 <사형도수>(1978), <취권>(1978)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그가 직접 감독한 <소권괴초>(1979)까지 연달아 성공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골든하베스트로 옮겨 감독하고 출연한 첫 작품 <사제출마>(1980)는 홍콩의 영화 흥행 기록마저 갈아치웠다. <배틀 크리크>(1980)로 할리우드에 처음 진출했고 <홍번구>(1995)로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대역 없는 고난도의 스턴트신을 직접 찍기로 유명한 그는 영화 촬영 도중 몇 번이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왔지만 예순이 넘은 지금도 관객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면 부상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다고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영화에 관한 한 완벽을 추구하는 그는 마음에 드는 한 장면을 얻기 위해 찍고 찍고 또 찍기로 유명한데, <용소야>(1982)는 한 장면을 무려 2900번 반복 촬영해서 ‘최다 반복 촬영 장면’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또한 2012년에는 ‘가장 많은 스턴트를 하고도 생존한 배우’, ‘한 영화에 가장 많은 이름을 올린 사람’(<차이니즈 조디악>)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을 가장 존경하며, 아내 임봉교, 아들 방조명이 있다.
저자 : 주묵(朱墨)
1983년 중국 허베이(河北) 가오양(高陽)에서 태어났다. 베이징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서 영화학 복수석사학위를 받았다. 10년 가까이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해왔다. 2012년 영화 [차이니즈 조디악]을 촬영할 때 성룡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2015년까지 3년간 성룡을 수행하며 자서전을 집필했다.
역 : 허유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동 대학 통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중국어 일기장》이 있고 옮긴 책으로 《기업의 시대》, 《G2 전쟁》, 《다 지나간다》, 《디테일의 힘》, 《화씨 비가》, 《모텔의 도시》 외 다수가 있다.
▣ 주요 목차
추천의 글
영화를 향한 한 인간의 숭고한 의지 : 주성철([씨네21] 편집장)
한국의 독자들에게 -성룡
프롤로그
평범함과 비범함 -성룡
신화(神話)가 된 사람 -주묵
제1장 돈 많은 바보
목숨을 내놓은 액션연기 / “죽을 테면 죽으라지!” / 금지령 / 표범에게 물릴 뻔하다 / 이 장면을 사부님께 바칩니다 / 벼락부자 / 쇼핑광 / 돈 많은 바보
제2장 평범한 한 사람
어릴 적 ‘여자친구’ / 첫사랑 / ‘9번 아가씨’ / 라티샤 / 그녀는 누구일까 / 안녕, 등려군 / 잔소리 / 쓸데없는 참견 / 상부상조 / 왜 공부를 해야 할까 / 나의 꿈 / 나도 두렵다 / 평범한 한 사람
제3장 넘어질수록 용감해지다
여러 번의 좌절 / 가난했던 시절 / 촬영장에서 / 영화에 임하는 나의 태도 / 성룡 영화란 무엇인가 / 영화팬들에게 바친다 / 넘어질수록 용감해지다
제4장 큰 지혜는 어리석어 보인다
흑사회 / 배움의 필요성 / 전통의상을 입는 이유 / 아들과의 관계 / 처세의 철학 / 자선활동에는 끝이 없다 /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 / 국보 반환 / 큰 지혜는 어리석어 보인다 / 이 세상은 결코 쓸쓸하지 않다
제5장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기인(奇人) 세 사람: 추아람, 마윈, 마미도 / 만나자마자 친해지다: 윌 스미스 / ‘악마프로듀서’: 이종성 / 첫 번째 부매니저: 진덕삼 / 형제이자 아들: 오언조 / 너를 사랑해: 왕리훙 / 진정한 액션스타: 양자경 / 용감한 여인: 장만옥 / “죽는 걸 보고도 구하지 않다”: 임청하 / 영원한 전설: 장국영, 매염방 /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 아버지와 같은: 하관창 / 일생의 사랑: 임봉교 / 나와 방조명 / 애완동물들 /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제6장 ‘따거’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포 / 희극학원 / 무술배우 / 용호무사 / 첫 번째 여행 / 바로 성룡이다 / 재기를 꾀하다 / 애증의 할리우드 / 전신 부상 지도 / ‘따거’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에필로그
지구상에 하나뿐인 재키 찬 -주묵
옮긴이의 글
謝謝, 大哥!
부록
성가반 역대 구성원
성룡 필모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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