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1799년 루트비히 티크가 편집해서 출판한 ≪예술의 친구들을 위한 예술에 관한 판타지≫는 형태나 내용으로 볼 때 2년 전에 익명으로 출판된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의 후속편이다. 전편의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마지막 부분에서 허구의 수도사는 만약 이 시도가 “아주 불만스럽지만 않다면 혹시 2부로 이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가 커다란 성공을 거두자 당연히 후속편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의 원래 저자였던 바켄로더는 1798년 2월 13일 25세의 나이로 죽었고, 친구인 티크가 이 책의 완성을 떠맡게 되었다. 그래서 티크는 바켄로더의 유고를 모으고 자신의 생각을 많이 보충해 공동의 책으로 출판했다.
≪예술에 관한 판타지≫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회화에 관한 글들이고, 2부는 음악에 관한 글들이다. 그러나 차이는 글의 소재가 되는 대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부분의 정신에도 있다. 회화에 관한 글들은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에서 예술을 관찰하는 조화로운 성격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음악에 관한 글들은 모두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에서 유일한 음악에 관한 글인 음악 지휘자 베르크링거의 이야기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이 이야기가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다른 이야기들과 구분되듯이, ≪예술에 관한 판타지≫에서 음악에 관한 글들도 앞에 나온 회화에 관한 글들보다 훨씬 많은 문제점들을 던지고 있다. 회화에 관한 글들은 어조나 내용에서 수도사의 글에 속하고, 음악에 관한 글들은 마음이 갈라진 음악 지휘자에 의해 직접 서술된다.
바켄로더와 티크에 따르면 예술을 참되게 관찰하는 것은 그렇게 많은 사전 지식이나 신중한 평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풍부한 감정이 예술 작품 앞에서 열려서 자신에게 작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즉, 예술은 느낌으로 경험하는 것이지, 이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작곡에 관해 객관적인 지식이나 예술의 기술이나 수단을 모으는 것이나, 미술 작품을 내용이나 완성도에 따라 판단을 내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대신 그 작품이 자기 자신의 마음과 소통하는 느낌이 일어날 때까지 작품에 있는 그대로 몰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예술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들어 있다.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와 ≪예술에 관한 판타지≫는 획기적인 의미를 가진 작품이고, 그 새로운 예술 이념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술과 감정이 일치한다는 생각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예술의 지평을 열어 주었으며, 19세기 중반까지 예술 창작을 규정했다. 귀족 사회로부터 예술의 독립과 음악의 신격화는 호프만(Hoffmann)과 쇼펜하우어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리하르트 바그너의 작품에서 그 정점에 이른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시민 사회의 전문적인 문화 영역에서 느낄 수 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아마도 예술에 신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그런 정신이 예술에 대해 그렇게 깊은 의문을 동시에 제기함으로써, 그 정신으로 이제 막 시작된 예술에 대한 숭배의 반작용을 미리 말해 버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빌헬름 바켄로더(Wilhelm Wackenroder
바켄로더의 아버지는 규칙을 강조하는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송가(頌歌) 시인이었던 람러(Karl Wilhelm Ramler, 1725∼1798)와 친했는데, 아들인 바켄로더는 그로부터 문학의 기본 개념들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점차 그로부터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아들의 예술적 성향이 낯설었던 아버지는 그에게 철저하고도 광범위한 교육을 받도록 했다. 이와 함께 성악과 바이올린 그리고 작곡을 공부하는 데도 동의했다. 그러나 이것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였다. 아버지는 그가 법률가가 되기를 바랐다. 아들을 엄하게 교육해서 그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대학을 다니지 못하게 하고 베를린에서 1년간 배석 판사한테서 교육받게 했다. 할레(Halle)와 괴팅겐에서 이미 대학 공부를 하고 있던 티크와 헤어지게 된 것도 바켄로더에게는 고통스런 일이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가 출판되고 1년 후인 1798년 2월 13일 바켄로더는 장티푸스로 죽었다.
저자 : 루트비히 티크(Ludwig Tieck)
루트비히 티크는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어 박식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계몽주의 시대나 질풍노도 시대의 최신 문학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고, 어머니로부터는 성경과 찬송가 그리고 동화의 세계에 대해 들으면서 자랐다. 1796년 티크는 계몽주의자 니콜라이의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단편을 썼으나, 바켄로더의 영향으로 계몽주의와 결별하고 중세 이후의 민담과 동화를 모아서 ≪페터 레브레히트의 전래 동화≫(1797)를 내놓았다. 1796년에 대부분을 바켄로더가 집필하고 자신이 가필했던 예술 평론집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를 발표한다. 그리고 1798년 2월 친구인 바켄로더가 죽은 후 그의 유고를 모으고 자신의 글을 합쳐서 ≪예술에 관한 판타지≫를 1799년에 내놓았다. 1798년에 발표한 ≪프란츠 슈테른발트의 방랑≫은 티크의 대표작으로 그해 죽은 친구 바켄로더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는 ‘예술가 소설’이다.
1799년에는 예나(Jena)로 이전해 슐레겔 형제와 노발리스(Novalis, 1772∼1801), 철학자 셸링(Schelling) 등과 친하게 교류하면서 전기 낭만주의의 중요한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노발리스가 1801년 죽은 후 티크가 드... 레스덴으로 옮기자 그 세력도 분산되었다. 중년기로 접어들자 ‘낭만적인 마법’ 사용을 멀리하고, 현실적 시민의 삶에 관심을 돌려 ‘교육적인 리얼리즘’으로 나아갔다. 이 시기의 티크는 낭만적인 감정의 고양을 피하고, 소박하고 친밀한 것을 더 좋아했다. 이것은 소시민적 생활 양식에 바탕을 둔 ‘비더마이어 시기’의 정서였고, 그 후의 19세기 리얼리즘으로 이행해 간 것이다.
만년에는 다시 고향인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통풍(痛風)으로 몸이 불편해 대부분 집에서 지냈고, 주위의 가족이 이미 모두 죽었기 때문에 외롭게 살았다. 티크를 대단히 높게 평가했던 빌헬름 4세는 그를 1842년에 새로 설립된 프로이센 학술원과 예술원의 창립회원으로 임명했다. 만년에 티크는 주로 연극에 관계된 일을 하면서, 특히 셰익스피어를 소개하는 데 전력을 다한 후 1853년 80세의 나이로 죽었다.
1799년 루트비히 티크가 편집해서 출판한 ≪예술의 친구들을 위한 예술에 관한 판타지≫는 형태나 내용으로 볼 때 2년 전에 익명으로 출판된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의 후속편이다. 전편의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마지막 부분에서 허구의 수도사는 만약 이 시도가 “아주 불만스럽지만 않다면 혹시 2부로 이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가 커다란 성공을 거두자 당연히 후속편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의 원래 저자였던 바켄로더는 1798년 2월 13일 25세의 나이로 죽었고, 친구인 티크가 이 책의 완성을 떠맡게 되었다. 그래서 티크는 바켄로더의 유고를 모으고 자신의 생각을 많이 보충해 공동의 책으로 출판했다.
≪예술에 관한 판타지≫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회화에 관한 글들이고, 2부는 음악에 관한 글들이다. 그러나 차이는 글의 소재가 되는 대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부분의 정신에도 있다. 회화에 관한 글들은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에서 예술을 관찰하는 조화로운 성격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음악에 관한 글들은 모두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에서 유일한 음악에 관한 글인 음악 지휘자 베르크링거의 이야기에서 발전시킨 것이다. 이 이야기가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다른 이야기들과 구분되듯이, ≪예술에 관한 판타지≫에서 음악에 관한 글들도 앞에 나온 회화에 관한 글들보다 훨씬 많은 문제점들을 던지고 있다. 회화에 관한 글들은 어조나 내용에서 수도사의 글에 속하고, 음악에 관한 글들은 마음이 갈라진 음악 지휘자에 의해 직접 서술된다.
바켄로더와 티크에 따르면 예술을 참되게 관찰하는 것은 그렇게 많은 사전 지식이나 신중한 평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풍부한 감정이 예술 작품 앞에서 열려서 자신에게 작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즉, 예술은 느낌으로 경험하는 것이지, 이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작곡에 관해 객관적인 지식이나 예술의 기술이나 수단을 모으는 것이나, 미술 작품을 내용이나 완성도에 따라 판단을 내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대신 그 작품이 자기 자신의 마음과 소통하는 느낌이 일어날 때까지 작품에 있는 그대로 몰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예술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들어 있다.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와 ≪예술에 관한 판타지≫는 획기적인 의미를 가진 작품이고, 그 새로운 예술 이념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술과 감정이 일치한다는 생각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예술의 지평을 열어 주었으며, 19세기 중반까지 예술 창작을 규정했다. 귀족 사회로부터 예술의 독립과 음악의 신격화는 호프만(Hoffmann)과 쇼펜하우어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리하르트 바그너의 작품에서 그 정점에 이른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시민 사회의 전문적인 문화 영역에서 느낄 수 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아마도 예술에 신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그런 정신이 예술에 대해 그렇게 깊은 의문을 동시에 제기함으로써, 그 정신으로 이제 막 시작된 예술에 대한 숭배의 반작용을 미리 말해 버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빌헬름 바켄로더(Wilhelm Wackenroder
바켄로더의 아버지는 규칙을 강조하는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송가(頌歌) 시인이었던 람러(Karl Wilhelm Ramler, 1725∼1798)와 친했는데, 아들인 바켄로더는 그로부터 문학의 기본 개념들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점차 그로부터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아들의 예술적 성향이 낯설었던 아버지는 그에게 철저하고도 광범위한 교육을 받도록 했다. 이와 함께 성악과 바이올린 그리고 작곡을 공부하는 데도 동의했다. 그러나 이것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였다. 아버지는 그가 법률가가 되기를 바랐다. 아들을 엄하게 교육해서 그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대학을 다니지 못하게 하고 베를린에서 1년간 배석 판사한테서 교육받게 했다. 할레(Halle)와 괴팅겐에서 이미 대학 공부를 하고 있던 티크와 헤어지게 된 것도 바켄로더에게는 고통스런 일이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가 출판되고 1년 후인 1798년 2월 13일 바켄로더는 장티푸스로 죽었다.
저자 : 루트비히 티크(Ludwig Tieck)
루트비히 티크는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어 박식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계몽주의 시대나 질풍노도 시대의 최신 문학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고, 어머니로부터는 성경과 찬송가 그리고 동화의 세계에 대해 들으면서 자랐다. 1796년 티크는 계몽주의자 니콜라이의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단편을 썼으나, 바켄로더의 영향으로 계몽주의와 결별하고 중세 이후의 민담과 동화를 모아서 ≪페터 레브레히트의 전래 동화≫(1797)를 내놓았다. 1796년에 대부분을 바켄로더가 집필하고 자신이 가필했던 예술 평론집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를 발표한다. 그리고 1798년 2월 친구인 바켄로더가 죽은 후 그의 유고를 모으고 자신의 글을 합쳐서 ≪예술에 관한 판타지≫를 1799년에 내놓았다. 1798년에 발표한 ≪프란츠 슈테른발트의 방랑≫은 티크의 대표작으로 그해 죽은 친구 바켄로더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는 ‘예술가 소설’이다.
1799년에는 예나(Jena)로 이전해 슐레겔 형제와 노발리스(Novalis, 1772∼1801), 철학자 셸링(Schelling) 등과 친하게 교류하면서 전기 낭만주의의 중요한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노발리스가 1801년 죽은 후 티크가 드... 레스덴으로 옮기자 그 세력도 분산되었다. 중년기로 접어들자 ‘낭만적인 마법’ 사용을 멀리하고, 현실적 시민의 삶에 관심을 돌려 ‘교육적인 리얼리즘’으로 나아갔다. 이 시기의 티크는 낭만적인 감정의 고양을 피하고, 소박하고 친밀한 것을 더 좋아했다. 이것은 소시민적 생활 양식에 바탕을 둔 ‘비더마이어 시기’의 정서였고, 그 후의 19세기 리얼리즘으로 이행해 간 것이다.
만년에는 다시 고향인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통풍(痛風)으로 몸이 불편해 대부분 집에서 지냈고, 주위의 가족이 이미 모두 죽었기 때문에 외롭게 살았다. 티크를 대단히 높게 평가했던 빌헬름 4세는 그를 1842년에 새로 설립된 프로이센 학술원과 예술원의 창립회원으로 임명했다. 만년에 티크는 주로 연극에 관계된 일을 하면서, 특히 셰익스피어를 소개하는 데 전력을 다한 후 1853년 80세의 나이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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