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저 순수하고 선량하고 씩씩한 웃음’
모차르트는 35년 10개월 9일의 짧은 생을 살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약 10년 2개월 동안 여행을 했다. 열세 살 때 이탈리아에서 보낸 이 책의 첫 편지부터 죽음을 약 두 달 앞두고 아내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까지 평생 동안 500여 통이나 되는 편지를(추산, 현재 남아 있는 편지는 300통) 쓴 것은 그의 수많은 여행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펴낸 『모차르트의 편지』에는 모차르트가 남긴 편지 중 209통과 아버지의 편지 5통을 합해 총 214통의 편지가 실려 있다.
모차르트가 편지에서 그의 심오한 예술론이나 인생에 관한 철학을 전개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모차르트 편지의 매력은 다른 곳에 있다. 그가 남긴 편지의 대부분은 신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생생한 보고이다. 참새가 지저귀듯이 명랑하고 도저히 숨길 수 없는 소년 모차르트의 천진난만한 장난기가 배어나오는 어린 시절의 편지부터, 잘츠부르크 대주교와의 결렬 경위를 가족에게 분노를 곁들여 자세하게 전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편지, 그가 타고난 음악의 천재적인 재능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 하지만 자신의 소질을 발휘할 기회를 얻으려고 갖은 애를 쓰지만 결국은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한 초조감이 엿보이는 편지, 궁핍한 가운데서 친구에게 무려 20회에 걸쳐 돈을 빌려 달라는 안쓰러운 편지, 그리고 때 이른 그의 삶의 만년에 온천으로 요양을 간 아내에게 보내는 너무도 애틋한 사랑의 편지 등 모차르트가 남긴 편지는 파란만장한 그의 삶의 굴곡이 그대로 반영된 한 편의 ‘로망’이자 한 음악가의 연대기적 자서전이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음악가 모차르트와는 다른 비속한 인간 모차르트의 이미지가 일반에게도 널리 알려졌지만 편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모차르트의 억제할 수 없는 유머와 장난기는 실로 인상적이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자신은 모차르트가 아니며 ‘트르차모’라는 사람이라고 말장난을 한다거나, 낙담하고 있는 아버지를 웃기려고 ‘몸이 한쪽만 있는 소를 봤다’고 하고, 유명한 ‘베즐레 서한’의 어이없을 정도로 저속한 편지들은 인간 모차르트의 강렬할 정도로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면모를 뚜렷하게 독자들에게 각인시켜 준다. 그런 반면에 여행에 동행했던 어머니의 죽음을 전할 때 가족들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차르트가 한 용의주도한 배려를 보면 그가 또한 얼마나 사려 깊은 인간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과중한 창작의 부담으로 나날이 깊어가는 병에 시달리면서도 온천에 요양 가 있는 아내에게 보낸 위안의 말과 일상적인 당부들을 보면 모차르트가 ‘그처럼 명랑하게 견뎌낸 불행’에 안타까움과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현재 유튜브에서 클래식 음악 중 압도적으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대중적이지만 당대에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음악의 신동으로 일찍이 전 유럽에 걸쳐 명성을 떨쳤지만 당시 예술의 후원자이자 가장 중요한 고객이라 할 왕족과 귀족들로부터 모차르트는 평생 안정적인 후원을 얻는 데 실패했다. 모차르트 음악의 천재성을 인정한 것은 음악가들과 일부 음악 애호가들, 그리고 대중들이었다. 모차르트 본인을 포함해서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그가 왕실과 귀족들에게서 받은 푸대접에 대해 분개했다. 모차르트가 음악가로서 취업에 실패한 것은 당연히 그의 음악 때문이 아니었다. 한 편지에 나오는 대로, 모차르트가 재능은 절반 정도로도 충분하지만 처신을 좀 더 약삭빠르게 하지 않으면 후원자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 친지의 말은 당시의 신분 질서와 그것에 극도의 반감을 품었던 모차르트의 성격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차르트는 어렸을 때부터 편지에, 손이 아파서 편지를 길게 쓸 수 없다, 는 말을 여러 차례 썼다. 열네 살 때 첫 오페라를 써서 큰 성공을 거두는 등 36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모차르트가 남긴 600편이 넘는 작품들을 생각하면 모차르트가 작곡에 쏟은 시간과 열정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그의 ‘손이 아프다’는 편지를 통해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모차르트는 작곡을 할 때야말로 자신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고, 그것이 자신에게 재능을 내려준 신에게 가장 보답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다. 모차르트는 자신이 천재임을 자각하고 있었지만, 당시 음악가들의 음악에 대한 모차르트의 짧은 비평들이나 자신보다 더 과거와 현재의 음악을 연구하는 사람은 없다고 단언한 글들을 보면 그는 노력하는 천재이기도 했다. 한 피아니스트가 모차르트의 피아노 연주를 보고 자신은 아무리 연습해도 저렇게 잘 칠 수 없을 것이라고 탄식하자 모차르트는 자신은 각고의 노력 끝에 이제 더 이상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유머러스하게 답한 것은 노력하는 천재의 자부심이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차르트의 편지는 인간 모차르트의 진솔한 면모를 전하는 것 말고도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내용들이 무수히 담겨 있다. 건반악기의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슈타인 피아노가 모차르트의 제안으로 개선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바티칸의 비곡인 『미제레레』는 모차르트가 성당에서 한 번 듣고 악보에 기록해서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탈리아풍의 음악이 음악계를 지배하고 이탈리아의 코믹 오페라가 무대를 석권하는 가운데서 모차르트가 얼마나 오페라를 쓰고 싶어 했으며 완벽한 독일 오페라의 주춧돌을 놓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는지,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로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술피리』 등의 걸작이 탄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모차르트의 수많은 걸작들의 배경 이야기와 모차르트가 자신의 작품들에 가졌던 자부심과 곡의 사연 등을 직접 모차르트의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모차르트 안에는 천상의 선율을 인간 세상에 전달한 위대한 천재 작곡가의 면모와 천진난만하면서 자유분방하지만 ‘사람들을 너무 잘 믿는’ 호인 기질에 너무도 형편없는 경제관념, 시시껄렁하고 지저분한 농담을 즐기는 인간적인 모차르트의 모습이 공존했다. 그의 음악과 동떨어진 듯한, 그래서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허구적으로 살리에리가 신의 불공평함을 원망하게 만들었던 어릿광대 같은 인간 모차르트의 모습은 일면 부조화의 극치로도 보인다. 하지만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모차르트의 불멸의 선율들과 그의 음악이 주는 편안함과 숭고함은 인간 모차르트와 결코 따로 떼어놓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모차르트가 편지 곳곳에 남긴 ‘저 선량하고 순수하고 씩씩한 웃음’을 한번 듣고 나면 모차르트의 음악은 그 전과는 조금은 다르게 들릴 것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그랬듯이 그의 음악을 평생의 반려로 삼게 만들 것이다.
작가 소개
저 : Wolfgang Amadeus Mozart
모차르트
서양 고전주의 음악의 완성자이자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 35년의 생애 동안 교향곡, 협주곡, 소나타, 오페라, 실내악, 미사곡 등 600개가 넘는 작품을 남겼으며 많은 작품이 각 장르의 정점에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다섯 살 때 첫 작곡을 했으며 열네 살 때 이탈리아 여행 중에 오페라 <폰투스의 왕 미트라다테스>를 무대에 올려 대성공을 거두었다.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유럽 전역을 여행했으나 경이적인 음악의 신동이라는 평판과 작품들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것을 얻는 데 실패했다. 고향인 잘츠부르크로 돌아와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잠깐 동안 일했으나 대주교와의 불화로 해고되고 이후 빈으로 거처를 옮겨 작곡과 연주에 전념했다. 피아니스트, 작곡가로서의 높은 명성과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등 오페라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것에 대한 보수는 그의 형편없는 경제관념과 낭비벽을 감당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안정적인 예술 활동을 위해서는 궁정이나 귀족으로부터의 후원이 필수적이었던 시대에 높은 급료를 안정적으로 지급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죽을 때까지 얻지 못했던 모차르트는 짧은 생애 동안 주로 생계를 위해 곡들을 썼고, 만년에는 닥치는 대로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런 불안정한 생활 속에서도 모차르트의 창작열은 죽기 직전까지 조금도 식지 않아 음악사에 영원히 남을 수많은 작품들을 썼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관한 일화는 무수히 많은데 바티칸에서 외부에 그 악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던 비곡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를 처음 듣고 거의 완벽하게 채보했고 이틀 뒤 두 번째에는 몇 개의 소소한 것들을 수정해 악보를 완성했다. 모차르트에 의해 처음으로 <미제레레>는 일반에 악보가 공개되었다. <교향곡 36번>을 사흘 만에 작곡했고 그의 3대 교향곡으로 평가받는 <교향곡 39번>부터 <교향곡 41번>까지를 6주 만에 완성했다. 모차르트 스스로 자신은 음악에 대한 천재를 타고났다고 자부했으나 작곡을 위해서 자신보다도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단언했을 정도로 그는 음악에 전념한 천재이기도 했다. 모차르트의 작품은 가볍고 경쾌한 장조의 작품이 대부분인데 만년에 접어들어서는 장조의 작품이라도 비장함과 애수에 넘치는 작품이 늘었고, 그런 작품들은 ‘천상의 음악’이라고 형용되었다. 죽기 두 달 전 건강이 이미 안 좋은 상황에서도 <마적>을 작곡해 초연하는 등 정력적으로 곡들을 썼으나 미완의 걸작 <레퀴엠>을 쓰던 도중 쓰러져 불과 2주 뒤에 35년 10개월의 젊은 나이로 빈에서 사망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하이든, 베버,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로시니, 베를리오즈 같은 음악가들뿐 아니라, 실러, 괴테, 나폴레옹을 비롯해 많은 저명인사와 유럽 왕족들의 장례식에서 연주되었다.
역 : 김유동
1936년생. 연서대 의예과를 중퇴했고 한글학회, 잡지사 등을 거쳐, 경향신문 부국장과 문화일보 편집위원을 지냈다. 저서로 『편집자도 헷갈리는 우리말』이 있고 『유희』 『주신구라』 『잃어버린 도시』 『빈 필-음과 향의 비밀』 『투명인간의 고백』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 차
대주교와의 알력
‘베즐레’, 알로이지아
어머니의 죽음
상심
대주교와의 결렬
이사
결혼, 부자간의 갈등
영광과 궁핍, 아버지의 죽음
핍박, 분주
권태, 저녁놀
죽음
폭풍의 장례
모차르트 연보
작품 색인
인명 색인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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