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편지 같은 영화, 영화 같은 편지의 만남
문자, 이메일, 전화로 간편히 소통하는 시대,
영화와 손으로 쓴 편지에 마음을 담다
2018년 7월. 태국 북부 치앙라이주 탐루엉 동굴에 유소년 축구팀 소년들이 매몰되었다. 소년들은 동굴 안에서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했는데 인터넷, 전화 같은 통신 기술이 전무한 환경에서 그들이 선택한 건 ‘손편지’였다. 자필로 쓰인 ‘괜찮다’, ‘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가족들은 그 어떤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을 받은 것보다 안도하지 않았을까. 자필 편지에는 당사자가 살아 있다는 확실한 증거와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21세기에 손으로 편지를 쓴다는 건 전화, 이메일, 문자 같은 통신 기술이 발달하기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기는 하다. 태국의 동굴 소년들처럼 편지 외 다른 소통 수단이 없는 환경에이나, 정성과 마음을 담았다는 걸 표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에야 손편지의 필요성이 생긴다. 하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일관되는 두 가지가 있다.
편지는 타인과 나의 ‘관계’를 전제로 한다
- 관계를 성숙하게 이어가도록 도와주는 편지와 영화의 만남
편지란 누군가에게 쓴다는 점에서 ‘관계’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보다 네 생각이 났어』는 제목부터 편지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수신자는 옛 친구, 형제자매, 동료이기도 하며, 평범한 사람과는 인연이 먼 듯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매가 주인공인 영화 [라벤더의 연인]을 보며 여동생과 자신의 관계를 돌아보고, 더 과거로 돌아가 자신처럼 어린 여동생을 돌보던 착한 친구 ‘I’를 떠올린다. 자신과 달리 “짜증 한번 내는 법 없이, 생색 같은 것도 낼 줄 모른 채 “주어진 환경에 그저 묵묵히 적응하던 I가 여전히 그러한지, 그런 친구를 보며 자신이 얼마나 속상했는지 편지로 마음을 전한다.
근미래를 그린 SF [그녀]는 현대 사회에서 편지란 어떤 의미인지 어느 영화보다 잘 보여준다. 미래 사회에도 편지의 가치, 특히 손으로 쓴 편지의 가치는 유효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을까. 주인공 시어도어의 직업은 편지 대필 작가다. 그는 아내와 별거에 들어간 뒤 컴퓨터 운영체제(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그가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고 실연을 경험하면서 이혼을 기다리는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간 수많은 편지를 대필해주었지만 처음으로 자신의 편지를 직접 쓴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고, 세상에 편지라는 소통 수단이 등장한 데에 큰 감동을 안겨준다.
“당신이 알아줬으면 하는 게 있어. / 내 속에는 늘 당신이 한 조각 있어. / 그리고 그게 너무 고마워.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되건 당신이 세상 어디에 있건 사랑을 보낼게.”
저자는 마치 위 편지에 답장이라도 하듯 과거의 ‘U’에게 편지를 띄운다.
“당신의 사랑이 머물렀던 나를 잘 간직하겠습니다. 당신도 당신을 잘 데리고 살아주길 바랍니다. 내 사랑의 시간이, 나의 일부가, 당신 속에 있습니다.”
미숙하게 끝났던 관계가 편지를 통해 성숙하게 마무리된다.
이 밖에도, 아내와 사별한 남자가 바다에 띄운 편지가 주인공에게 발견되면서 시작되는 영화 [병속에 담긴 편지]를 통해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위로와 용기를 건넨다.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이 주 의회로부터 도서 지원금을 받았을 때 느끼는 환희를 보며 방송작가로서 인연을 맺었던 과거의 열혈 청취자에게 편지를 띄운다. 왕이 된 자의 욕망과 비애가 잘 그려진 [맥베스]를 본 뒤에는 이 나라 대통령에게 편지를 띄우며 슬픔 없는 세상을 꿈꾸기도 한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던 인연부터 나와는 큰 인연이 없을 법한 정치인에게까지 띄운 글을 읽다 보면 “어디에나 있고, 어디로든 가고, 또 언젠가는 답장을 주고 비밀을 밝히고 영감”을 주는 편지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모든 편지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띄우는 글
- 오로지 자기 자신이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와 편지의 만남
편지는 타인에게 쓰지만 결국은 자신 자신에게 띄우는 글이라는 점 역시 불변의 사실이다.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한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전하는 수단이 편지이기 때문이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주인공 프란체스카가 자녀들에게 유서로 남긴 편지의 일부를 보면 더욱 그렇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은 늙어갈수록 두려움이 사라진단다. 자신을 알리는 일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 이승에서 짧은 기간 동안 사랑하는 이들에게 자신을 알리지 못하고 죽는 건 너무 슬픈 일인 것 같구나.”
프란체스카는 결혼 기간 중 행했던 불륜을 편지를 빌어 유서로 남긴다. ‘그런’ 일을 자녀에게 굳이 알리다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침묵함으로써 모범적인 어머니로 기억되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인용 구절에서 말하듯 인간은 “자신을 알리는 일이 가장 중요”한 존재이고, 그런 의미에서 편지도 결국 자신에게 띄우는 글이 된다. 저자는 남편도, 자녀도 존중해주지 않았던 한 여성으로의 삶을 단 나흘간 존중받았던 기억을 고백하는 주인공을 보며 자신의 ‘남자 사람 친구들’에게 말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서로의 진실에 가까워지고 비로소 자기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영화 [그을린 사랑]은 편지의 이런 성격을 더욱 잘 드러낸다. 이 영화도 주인공 나왈이 죽으면서 자녀들에게 유서로 편지를 남기며 시작된다. 두 자녀는 어머니 유서에 따라 또 다른 가족을 찾는 임무를 맡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끔찍한 가족사 특히 어머니가 겪었던 참혹한 사건이 드러난다. 무덤에까지 가져가야 할 듯한 진실을 굳이 자녀들에게 알린 이유는 무엇일까? 나왈은 마지막 편지에서 자녀들에게 “그 모든 것이 함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란다. 너희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에 답장이라도 하듯 자신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띄운다.
“당신에 대한 그리움 속에 미움이 있다는 것이, 그 미움 속에 내 삶을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 그 힘 속에 이 운명을 반복하지 않고자 하는 내 의지가 싹텄다는 것이 … 제게는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저자는 영화 [아가씨]를 “자신의 세계를 깨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두려움과 흥분으로 가득한 모험 이야기”로 정의하면서 친구 N에게 고백한다. ‘나는 너의 하녀 너의 아가씨’가 되어 자신만의 감옥을 넘어보고 싶다고. 한 소녀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된 이야기 [카드보도 복서]를 통해서는 자신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옛 친구에게 화해의 악수를 내민다. [남아 있는 나날]에서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무장한 고저택 집사 스티븐스를 통해서는 프리랜서 방송작가로서 마주했던 과거의 상사에게 편지를 띄우며 생계 노동으로 불의에 눈감아야 했던 자신의 삶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편지란 타인에게 보내지만 결국 자신에게 띄우는 글이라는 사실을 영화 이야기와 저자의 편지를 통해 알게 된다.
소통을 중시하고,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19통의 편지
- 때로는 머뭇거리고, 때로는 과감하게 풀어낸 서정적인 문장들
사실 손으로 쓰는 편지는 작성하는 데에도, 수신자에게 당도하기까지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굉장히 비효율적인 소통 수단이다. 하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이러한 손편지의 가치는 유효하다. 아니 더욱 가치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영화, 그중에서도 편지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영화와 자신의 실제 사연을 마치 영화 속 편지에 답장이라도 하듯이 풀어낸다.
누구나 가족, 친구, 동료 등 많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 관계는 이미 종료되었을 수도, 진행 중일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이 여러 관계에서 미숙하게 대처해 후회하거나 상처를 받곤 한다. 그런 관계들을 정리하거나 극복하는 방법으로 손편지를 써보면 어떨까. 때로는 머뭇거리고, 때로는 과감하게 토해내면서 문장 곳곳에 깊은 의미와 서정성을 담은 저자의 19통의 편지를 읽고 난 뒤에 결정해도 좋겠다. 쓰게 된다면,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띄우는 편지가 될 것이다.
작가 소개
저 : 이하영
책, 영화, 음악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 방송 원고든 칼럼이든 책이든 자신이 쓰는 모든 글이 누군가에게 띄우는 편지라고 생각한다. 2000년, [전호성 나현재의 감격시대]로 방송작가 일을 시작하여 [추억의 노래세상],[오늘 같은 밤 고영수입니다],[0시의 음악여행] 등에서 흘러간 옛 가요와 함께 청춘을 보냈고 KBS 클래식 FM의 [당신의 밤과 음악],[음악풍경] 등에서 작가로 일하며 클래식을 공부했다. 2011년 7월부터 2016년 봄까지 OBS TV에서 [전기현의 씨네뮤직]의 대본을 집필했으며 2016년 봄부터 KBS 1라디오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의 작가로 일했다. 대안연구공동체에서 [금요영화감상모임]을 6년째 이끌고 있다. 지은 책으로 『조제는 언제나 그책을 읽었다』, 『예술가의 서재』 등이 있다. 천천히 여행하고, 깊이 읽고, 오래도록 사랑하는 삶을 꿈꾸는 그녀는 현재 ㈜에듀니티 출판 부문에 몸담고 있다.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성장해가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새로운 편지들을 써내려가는 중이다.
목 차
프롤로그
part 1 어떻게 지내나요?
- I에게, 너는 늘 그렇게 짜증 한번 내는 법 없이 / [라벤더의 연인들]
- K에게, 창가에서 너를 생각한다 / [줄리아]
- L에게, 너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로든 가고 / [일 포스티노]
- W에게, 누구의 아내도 아닌 여인들이 등장할 때 / [레이디 수잔]
part 2 여전히 당신을 기억하고 있어요
- G에게, 당신이 살아 있다면 / [로즈]
- Y에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왜 숨기나요? / [오네긴]
- F에게, 함께 있다는 건 멋진 일이겠지요 / [그을린 사랑]
part 3 나를 잊지 말아요
- N에게, 맨손을 내밀어 너와 내가 서로를 움켜쥐고 /[아가씨]
- M에게, 당신 곁에 있는 그 사람이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 E에게, 영화를 보다 네 생각이 났어 / [카드보드 복서]
- H에게, 넌 어느 날 훌쩍 내게 왔지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part 4 영원히 함께한다는 말
- U에게, 앞으로도 당신을 항상 사랑할 거야 / [그녀]
- Q에게, 어떤 절망적인 순간에도 더 사랑하길 / [스틸 앨리스]
- V에게, 그 얘길 들려주세요 / [병 속에 담긴 편지]
- R에게, 사랑에 빠지면 판단력이 흐려져요 / [라빠르망]
part 5 정말 고마웠어요
- T에게, 빈집에 들어와 아무도 없는 줄 알면서 / [블랙]
- S씨에게, 때로 열정의 각도가 어긋나 헤어지더라도 / [쇼생크 탈출]
- J에게, 남김 없이 슬퍼하겠습니다 / [맥베스]
- O에게, 이제 그 실수를 바로잡으러 갑니다 / [남아 있는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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