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공각기동대〉〈아키라〉〈카우보이 비밥〉〈2020 우주의 원더키디〉〈녹색전차 해모수〉……
한국과 일본의 SF애니메이션이 그려낸 미래 디지털문명을 문화사회학적 시각으로 꿰뚫어보다
SF 작가들의 창작물 덕분에 우리는 수많은 미래를 만나왔다. 과학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미진한 점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상쇄하던 초창기의 한계를 뛰어넘어 SF 창작물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세련된 예술적 완성미를 구축하며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특히 경제성장률에 가속도가 붙었던 한국과 일본의 1970~80년대에 등장한 SF 애니메이션은 SF 장르에 대한 이해와 저변을 넓히는 한편, 장르의 발전과 변화를 촉진하기도 했다. 즉 더 이상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삼은 서사물은 'SF 장르'라는 한 울타리에 뭉뚱그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유형과 세계관을 선보이며 범위를 확장했다.
저자는 《SF, 포스트휴먼, 오토피아》에서 1970 년대 이후부터 최근까지 한국과 일본의 SF 애니메이션을 대상으로 SF 장르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유형과 관습에 따른 단순한 분류와 비교 작업이 아니라 SF 애니메이션 작품이 산출된 시공간적 맥락 속에서 다각적으로 재검토한다. 저자는 문화사회학적 시각으로, 작품을 '사건'으로 여기고 살펴본다. 그러한 접근 덕분에 이 책에서는 흥미로운 논제들이 펼쳐진다. SF 장르의 유형과 습관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한국과 일본의 주요 SF 애니메이션은 어떤 미래를 꿈꾸었는가, 당대 사회에 잠재된 문제들은 작품 속에 어떠한 방식으로 반영되었는가, 상당수 작품에 등장하는 트랜스휴먼·포스트휴먼 사회의 모습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이를 위해 저자는 '당대 최고'보다 문화사회학적 관점에서 쟁점을 품고 있는 작품을 선별했다. 멀게는 1978년에 제작된 《미래소년 코난(未來少年コナン)》에서 《아키라(アキラ) 》(1988), 《2020 우주의 원더키디》(1989), 《공각기동대(攻殼機動隊)》(1995)를 거쳐 《테라포마스(テラフォ-マ-ズ) 》(2014)까지 다양한 논점을 담은 작품들을 이 책에서 다루었다. SF 장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현실에 맞닿은 미래에 대한 성찰은 물론, 한국과 일본의 SF 애니메이션이 꿈꾼 세계의 진면목을 만나게 된다.
'비인간적인 인간/인간적인 비인간', '정보의 탈신체화', '휴먼에 대한 정의와 윤리의 기준'
우리가 마주해야 할 디지털문명의 문화적·사회적·윤리적 화두는 무엇일까?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SF 장르는 우리 문화에서 '공상과학' 이야기로 치부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SF가 담아낼 수 있는 철학적 깊이와 너비를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둔다. 저자가 SF 이 책에서 다루는 애니메이션을 공시적 사회조건을 텍스트로 살펴보며 진중하게 담겨 있는 철학적·정치적 메시지를 읽어낸다. 가령 은하철도 999(銀河鐵道999)〉(1979)는 엄마를 찾아 우주를 여행하는 모험담만이 담긴 '만화영화'가 아니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인간과 기술적 타자 사이의 균형이 가능한가를 진지하게 성찰한다. 더 나아가 인간과 기계화된 인간, 더 나아가 '비인간적인 인간/ 인간적인 비인간'으로 논의의 범위가 확장된다. 이는 허튼 공상이 아니라 우리가 맞이할지도 모르는 가능성의 세계인 것이다. SF 애니메이션은 그런 식으로 현재 안에 잠재된 미래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이를 두고 저자는 SF 장르의 이야기를 두고 "'미리 우리 안에 온 미래' 혹은 '이미 우리 안에 온 미래'"라고 언급한다.
21세기 과학기술은 SF의 영역을 현실로 실현하고 있다. '신체의 탈물질화', '정신의 정보화', '정보의 탈신체화'와 같은 현상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가시적 결과물을 앞두고 있다. 특히 신체와 정신의 경계가 해체·재구축되고 '몸'의 성립 조건이 달라지면서, 기계와 인간 사이의 경계가 해체된 풍경은 우리 가까이 다가와 있다. 과학, 기술, 의학 등이 통섭되면서 신체와 정신의 결함을 수정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생래적 능력을 확장하고, 세부 기능을 조작하는 기능적 장치도 상업화 과정에 있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재구성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이러한 문명의 발전에 따른 사회적·윤리적 문제의 파생은 피할 수 없는 당면과제이다.
저자는 기술적 타자와 인간 사이의 공존, 포스트휴먼(사이보그, 안드로이드)과의 인간이 함께하는 문명 속에서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도덕과 윤리 차원의 광범위한 변화를 예측해보고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성찰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는 SF가 '족보 없는 장르'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SF 작품이 품은, 가능성의 세계로 미래를 준비하고 현재를 성찰해볼 수 있는 가치 있는,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될 것이다.
작가 소개
2018년 현재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시인, 경기문화재단 언론홍보위원. 서울시 스토리텔링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출판이사로 일했다. EBS <시네마 천국>에서 진행자로 활약했고 부산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연맹상 심사위원 등을 맡은 바 있다. 현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정기적으로 영화비평을 쓰고 있으며 인문적 가치를 갖는 이야기콘텐츠 기획 및 비평에 매진 중이다.
저서로는 『북한을 읽는 해외 다큐멘터리의 시선들』, 『영화로 읽기, 영화로 쓰기』(공저), 시집 『무한으로 가는 순간들』, 『티티카카의 석양』, 콜라보레이션 아트북 『당신의 얼굴』(공저) 등이 있다.
목 차
1. ‘SF’와 ‘포스트휴먼’에 얽힌 논점들 01 1
미리 온 미래, 이미 온 미래 | SF가 말할 수 있(없)는 것 | SF 장르론에 관한 변명-사이버펑크와 그 이후 | 디지털 문명에의 종속과 불안 | 사이보그, 안드로이드, 그리고 ‘기술적 타자’로서 포스트휴먼 | 포스트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상상력
2. ‘오토피아’의 다른 의미들 067
당위적 미래 사회 모델로서 ‘오토피아’ | ‘오토피아’의 두 얼굴: 일본 아니메사를 중심으로
2장. 전후세대의 자기 성찰과 전복적 오토피아 095
1. 이상적 공산주의 공동체와 에코에티카: 〈미래소년 코난〉(1978) 097
원시 공산주의 공동체를 향한 비전: ‘하이하바’ 모델의 확장 | 반전주의, 반전체주의, 그리고 낙관적 미래
2. 실존에의 물음과 공론 영역 회복의 꿈: 〈기동전사 건담〉(1979) 120
오토피아를 묻는 여정의 출발점: ‘잉여성’과 ‘뿌리 상실’ | 확장된 공론장에 기초한 대안사회의 꿈
3장. 에코붐 세대를 향한 자유주의적 오토피아 141
1. 표피적 탈정치성, 봉합의 서사: 〈초시공요새 마크로스〉(1982) 143
통속적 오락물이라는 함정, 그리고 불가능한 반전주의 | 도착적 감상성과 비약적 봉합으로서 문화주의
2. 사이버펑크적 저항, 단절을 통한 초극: 〈아키라〉(1988) 166
네오도쿄의 허무와 초능력의 기원 | ‘훔친 자’, 포스트 프로메테우스의 비극적 최후
3. 포스트휴먼에 대한 저항과 퇴행적 오토피아: 〈2020 우주의 원더키디〉(1989) 179
테크노포비아와 상상력으로서 ‘역진화’ | 전통적 환경주의와 비현실적 오토피아
4장. 세기말적 상상력과 강박적 오토피아 203
1. 억압에 맞서는 미래세대의 존재확인: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 205
로스제네의 자폐적 내면 | 소외된 미래세대의 극적인 자기 전환
2. 트랜스휴먼 사회에 솟은 실존적 물음: 〈공각기동대〉(1995) 222
기술전체주의 사회와 분열적 정체감 | ‘묶인 자’, 포스트 프로메테우스의 능동적 진화
3. 결속에의 요구와 순응의 결과로서 오토피아: 〈녹색전차 해모수〉(1996) 232
시한부 종말론과 양가적 포스트휴먼 사회 | 강요된 성장과 강박적 모험
4. SF 하위 장르의 혼종적 진화, 반(反)오토피아: 〈카우보이 비밥〉(1998) 256
무정치적 지향성과 미시 서사적 전개 | SF 장르의 확장 가능성
5장. ‘기술 객체-인간’이 만드는 테크노포비아 277
1. ‘하드 SF’와 ‘하드고어’ 사이의 공포 : 〈테라포마스〉(2013) 279
반격하는 테라포머, 혹은 규제력 상실에의 공포 | 기술 조작적 인간의 역설
나가며: 미래‘들’로부터 돌아오기 309
찾아보기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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