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하이퍼리얼리즘 초상화가 정중원이 들려주는
우리 ‘얼굴’을 둘러싼 사유의 모험!
“나는 나를 보지 못한다. 고로 나는 나를 알지 못한다.”
하이퍼리얼리즘 초상화가 정중원이 이야기하는 우리 ‘얼굴’의 모든 것
우리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은 무엇일까. 문자 그대로 내 눈으로 직접 단 한 번도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나의 얼굴’이다. 그래서 인간은 거울을 만들고, 초상화를 그리고, 카메라를 발명해서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이미지를 얻지는 못했다. 자기 모습에 대한 호기심과 불확신, 기대와 불안은 계속되었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인간은 스스로의 복제상을 끝없이 생산하고 조작하며 공허한 환호와 절망을 반복하고 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유명한 말은 ‘내가 나를 가장 모른다.’라는 명제를 전제한다. 이 단순한 잠언이 수천 년에 걸쳐서 공명하는 까닭은, 이 말이 우리에게 ‘나 자신’의 불가지성을 적나라하게 상기시키기 때문이리라. 볼 수 없는 것을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오래되고 고리타분한 철학적 고민도 결국에는 내가 나를 바라볼 수 없다는 단순한 역설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나는 나를 보지 못한다. 고로 나는 나를 알지 못한다. -본문에서
2011년 보자르(Beaux-Arts) 미술 공모전 회화 부문 최우수상 수상, 2015년 스페인 로하 갤러리(Galeria Roja) 초청 작가 선정, 역대 최연소 작가로 19대 국회 의장, 5대 헌법재판소장의 공식 초상화 제작을 의뢰받았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주요 매스컴 및 일본, 말레이시아 등 세계 유수 매체에 출연한 바 있는, 하이퍼리얼리즘 초상화가 정중원의 에세이 『얼굴을 그리다』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처음에 ‘시각 디자인’을 전공했던 저자는 영화, 영상, 조명, 연출 등 ‘사실적’인 영역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2011년 무렵, 어느 ‘리얼리즘 회화전’에서 주태석 작가의 한 작품을 만나고 “나도 저렇게 해낼 수 있을까?”하는 자문과 함께, ‘사실’로 “갈 데까지 가 보자!”라고 결심하게 된다. 결국 대학원에서 회화를 선택한 그는 본격적으로 ‘하이퍼리얼리즘’을 탐구하며, 다른 많은 주제 중에서도 우리 ‘얼굴’을 선택하여 초상 영역에 다가선다. 저자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 등 동시대 인물은 물론,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 이육사, 이상 등 역사적 인물, 심지어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 속 아담과 신, 그리스 신화의 비너스까지 마치 살아 숨 쉬는 존재처럼 생생히 되살려 내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경우에는, 자신의 하이퍼리얼리즘 초상을 직접 공유해 가며 저자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놀라울 정도로 실제와 똑같은 그림’이라는 경이로움 이면에는, 늘 몇 가지 질문이 따라붙는다.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이 시대에, 도대체 왜 하이퍼리얼리즘 회화를 그리는가?” 또 “왜 하필 초상화인가?” 하는 문제다.
『얼굴을 그리다』는 스마트폰, 컴퓨터 기술에 힘입어 사실을 기록하는 ‘카메라―이미지’가 보편화된 시대에 ‘왜 하이퍼리얼리즘 초상화를 그리는가?’라고 묻는 질문에 대한 정중원의 섬세하고 밀도 있는 응답이다. 먼저 저자는 초상화를 탐구하기에 앞서 우리 얼굴을 둘러싼 신비, 즉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볼 수 없는 대상―자기 얼굴에 관해 살펴본다. 벌써 생활필수품이 되어 버린 ‘핸드폰’의 기능 중 가장 눈부시게 발전한 부분은 역시 ‘카메라’다. 우리는 일상의 거의 모든 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며, 유사 이래 그 어느 시대보다 자유롭고 빈번하게 셀카를 찍고 누군가의 얼굴을 촬영한다. 하지만 찬란한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얼굴을 ‘직접적으로’ 보는 일은 여전히 불가능하며, 아무리 정밀한 카메라조차 ‘왜곡’을 피할 수 없으므로 ‘나의 얼굴’은 먼 우주나 깊은 심해처럼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얼굴이라는 수수께끼는 ‘나’라는 존재를 성찰하려는 본원적 욕구와 맞닿아 있을 뿐 아니라, 한평생 인간의 삶을 감싸는 모든 타자의 얼굴들과도 밀접히 얽히고설켜 있다. 나와 너, 우리 그리고 자아와 성격, 생명과 죽음, 역사와 시대, 욕망과 초월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얼굴’은 인간을 이루고, 또 인류가 이룩한 거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얼굴’을 이해하고, 소유하고, 기억하고, 원하고 파괴하고자 하는 바람은, 결국 ‘인간 이해’의 첫걸음이자 전부다. 저자 정중원은 역사적 초상―윈스턴 처칠, 헨리 8세와 클리스브의 앤, 르네상스 시대의 교황 등―과 그것에 뒤얽힌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주며 ‘얼굴’을 향한 인류의 욕망과 초상 이미지의 복잡하고 기묘한 관계를 지적하고, CGI와 휴머노이드 로봇, 딥페이크 기술―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과 연관된 최첨단 초상의 현주소는 물론, 칼 세이건의 기획 아래 탄생한 ‘가장 웅장한 초상 ―지구 이미지’라 할 수 있는 ‘희미한 푸른 점’의 의의까지 두루 살핀다. 더불어 공공 기념물(마오쩌둥, 이승만, 영국 의회 광장의 밀리센트 포셋 등), 화폐 속 초상(우리 지폐 속 표준 영정, 스위스프랑의 자코메티, 영국 파운드의 터너와 앨런 튜링, 남아프리카공화국 란드권의 만델라 초상 등), 광고와 대중 매체(영화배우, 모델, 인플루언서, 햄릿과 도리언 그레이 등)가 그려 내고 재현하는 ‘얼굴’의 의미를 수많은 실례(實例)와 100여 장의 도판을 바탕으로 세세하게 규명한 뒤, 개별 인간뿐 아니라 거대하게 역동하는 사회와 시대가 요구하는 ‘얼굴’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 그런데 『얼굴을 그리다』의 강점은 여기서부터다. 정중원은 직접 하이퍼리얼리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로서, 단순한 미술사적 통찰을 뛰어넘어 ‘얼굴’을 매섭게 꿰뚫어 보고 열렬히 탐구하는 독자적인 시각을 통해 ‘얼굴’의 정체와 의미를 한층 폭넓게 이야기해 준다. 초상화 의뢰인과의 마찰, 성공적인 초상화 프로젝트,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초상화, 자화상, 친구들과 나눈 장난스러운 초상 스케치 등, 지난 세월 정중원이 ‘초상화가’로서 정체화해 오며 체득한 그만의 깨달음은, 수만 년 동안 ‘얼굴’을 사로잡기 위해 부단히 분투해 온 우리―인류에게 전혀 새로운 시야와 사유의 공간을 제공한다.
다시 같은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카메라―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수백여 시간의 공이 드는 하이퍼리얼리즘 초상화를 ‘왜 그리는가?’ 정중원은 답한다.
하이퍼리얼리즘은 원본과 복제, 실재와 가상의 전복된 위계를 보여 주는 데 본래의 목적이 있다. 그림을 얼마나 정교하게 잘 그렸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진과 그림의 관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는 행위, 즉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복제인지, 어디까지가 가상이고 어디까지가 실재인지 고민하도록 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데 방점이 있다. 사진이 그림을 따라 했는지 그림이 사진을 따라 했는지, 관객으로 하여금 잠시나마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카메라가 있는데 왜 그림으로 그리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역설적으로, ‘카메라가 있기 때문에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다.’가 된다. -본문에서
이것은 비단 ‘하이퍼리얼리즘’의 존재 이유만을 대변하지 않는다. ‘얼굴’의 신비가 우리를 성찰로 이끌듯이, ‘하이퍼리얼리즘 초상화’는 실재와 가상, 존재의 진실성을 깊이 있게 질문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욕망은 무엇인가?’, ‘나의 존재, 나의 욕망은 오롯이 나의 것인가?’ 등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원본보다 더욱 원본 같은 ‘하이퍼리얼리즘 초상화’의 아이러니는 우리로 하여금 ‘나’와 ‘나의 욕망’의 진실성을 되묻게 한다. 자아라고 하는, 누구나 의심하지 않고 의심할 수 없는 ‘원본’이 실상 무언가의 복제, 타인과 사회가 주입하고 강요하는 가치의 되풀이에 불과하다면 어떨까? 저자 정중원은 우리가 ‘얼굴(나와 너)’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과정이야말로 자아와 타자를 이해하고, 시비와 가치를 판단하는 가장 결정적인 첫발이 되리라고 힘주어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는 전 지구적 재난과 새로운 시대정신의 대두, 온갖 혼란과 분쟁 속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행위의 가치를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굴을 그리다』는 우리에게 나와 너의 얼굴을 다시금 마주 보라고, 다양성과 화합의 길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라고 열렬히 권한다.
작가 소개
홍익대학교에서 시각 디자인을, 같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인물을 사실적으로 그려 내는 작품들이 국내외로 알려지면서 다양한 전시 및 워크숍, 강연을 이어 가고 있다. 역대 최연소 작가로 국회의장 공식 초상화와 헌법재판소장 공식 초상화를 의뢰받아 제작했다. 연극에도 관심이 많아서 2011년부터 비영리 극단 ‘서울 셰익스피어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으며, 「햄릿」, 「헛소동」, 「겨울 이야기」 , 「리어 왕」 등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림을 그리고, 연극을 하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아름다운 이들과 교류하는, 이른바 ‘고대 그리스인처럼 살기’를 삶의 기조로 삼고 있다.
목 차
1부
얼굴을 그리다
-나는 나를 알지 못한다
-할머니의 초상화
-“저건 내가 아닙니다”
-초상화의 평가 기준
초상화가, 그 수난의 기록들
-헨리 어빙의 초상화
-포효하는 사자
-모던 아트의 훌륭한 모범
-진실 대 진실
-클리브스의 앤
-‘모두가 비평가다’
자화상
-내 얼굴의 초상화
-결점의 아름다움
-거울
-알브레히트 뒤러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희미한 푸른 점
사랑하는 사람의 초상화
-얼굴을 ‘생각한다’
-평균적인 얼굴이 매력적이다
-연인을 그리는 화가
-군대 그림
-피카소의 폭력
-프랜시스 베이컨과 조지 다이어
-신이 된 안티누스
-회화의 기원
사회와 초상화
-조선의 초상화
-데스마스크
-정부 표준 영정
-화폐와 초상화
-은행권에 새겨진 한국 근현대사
-지폐, 사회의 자화상
-관제 초상화
-독재자의 초상화
-저항하는 초상화
-초상, 사회의 기록
2부
초상화의 의의
-인물화 그리고 초상화
-인물을 지탱하는 그림
-존재하지 않는 대상의 초상화
-화가와 모델
-영화감독 노먼 록웰
-캐스팅 디렉터
-호메로스
페르소나의 초상
-배우가 그리는 초상
-‘호기심을 자극하는’ 초상화
-페르소나
-자유 의지
-페르소나의 초상화
최첨단 초상화, CGI
-CGI
-언캐니 밸리
-CGI 초상
-부활한 피터 쿠싱
-딥페이크와 재현의 윤리
실재와 재현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하이퍼리얼리티
-하이퍼리얼리즘
-뒤바뀐 순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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