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민중미술과 함께한 40년-(2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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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김정헌
출판사항창비, 발행일:2021/12/24
형태사항p.320 A5판:21
매장위치취미예술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36479008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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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어둠 속의 촛불로 태동한 민중미술

민중미술은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1980년대에 송곳 같은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등장했다. 미술평론가 성완경은 4ㆍ19혁명 20주년(1980)을 맞아 현실문제에 천착하고 현실을 토대로 하는 발언 방식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김정헌을 비롯한 진보적 미술인들에게 민중미술을 표방하는 단체 구성을 제안했고, 이들은 국내 최초의 민중미술 그룹 중 하나인 ‘현실과 발언’(이하 현발)을 창립한다. 현발은 당시의 엘리트주의적ㆍ심미주의적 화풍을 비판하는 한편, 우리의 삶과 현실을 반영하고 사회적 비판의식을 담은 미술을 추구했다. 하지만 1980년 10월에 열린 창립전에서부터 현발은 탄압에 직면해야 했다. 당시 전시가 열리는 미술관 관장이 현발 회원들의 작품을 보고는 전시장의 전등을 모두 끄고 전시회 자체를 취소해버린 것이다. 전두환 정권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그림이나 엄혹한 시대의 분위기를 거스르는 화풍의 출품작들이 많았던 까닭이다. 다음날 찾아온 관람객들은 컴컴한 어둠 속에서 촛불을 들고 더듬거리며 작품을 감상해야 했는데, 후에 이 전시는 ‘촛불 전시’라 일컬어졌다.


탄압의 역사 속에서 연마한 저항정신

촛불 전시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 격동의 세월을 지나온 저자가 회고하는 민중미술사는 탄압과 저항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비판적인 현발의 활동은 번번이 군사독재의 탄압에 직면했다. 민중미술은 그전까지만 해도 ‘비판적 현실주의’ 정도로 구분되었으나, 전두환 정권은 현발을 비롯한 미술운동의 동향을 주시했고, 이러한 미술 사조에 ‘민중미술’이라고 이름 붙였다. 여기엔 민중을 선동하는 불온한 미술로 평가하고 경계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실제로 안전기획부가 나서서 민중미술에 대한 내사를 진행해 ‘불온’ 작가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이들의 작품을 압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중미술의 열기는 전혀 꺾이지 않았고 오히려 거센 탄압에 맞서 여러 민중미술 진영이 결집하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전두환 정권을 비판적으로 다룬 ‘20대의 힘’전이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탄압받는 사태가 일어났고, 민중미술 화가들이 그린 벽화가 지워지고 작가들이 연행당해 조사받는 일까지 있었다. 이를 계기로 민중미술 진영은 힘을 한데 모아 ‘민족미술협의회’(이하 민미협)를 결성하고 자체적인 전시 및 모임 공간인 ‘그림마당 민’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현발의 동력은 1986년 초부터 급격히 민미협으로 이어졌고 민중미술의 활동과 영향력은 크게 확장되었다. 1987년 박종철 물고문 사건이 터지자 민미협을 중심으로 즉시 ‘반고문전’을 열었고, 그림마당 민은 문예활동의 중심지이자 민중미술의 해방공간이 되어 그곳에서 전시와 강좌, 토론회가 수시로 열렸다. 물론 민미협 결성 이후에도 항상 탄압이 뒤따랐다. 대공과 경찰들이 늘 작가들의 주위를 맴돌았고, 민미협 대표로서 김정헌 또한 공안 당국에 의해 연행되기도 했다. 작품이 당국에 의해 철거ㆍ파괴ㆍ압수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저자는 ‘민중미술’이라는 명칭이 비록 공안 당국에 의해 고안된 용어라 해도 엄혹한 시대에 독재정권을 향해 쉼 없이 저항하던 미술에 붙여진 명예로운 이름임을 강조한다. 또한 민중미술이 독재정권과 싸워온 ‘민주화’로 탄생했고, 저항정신 속에서 성장해왔다는 점을 우리 현대예술의 역사에서 되새겨야 한다고 주문한다. 자유와 정의와 평등을 내포하고 있는 저항정신이야말로 미술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신념이 여기서 드러난다.


사회를 품는 민중미술은 계속된다

한편 민주화 이후 민중미술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간의 성과를 정리한 ‘민중미술 15년전’이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었다. 노무현 정권기에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예술가들의 참여를 확대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로 전환되었다. 김정헌은 문예위 2기 위원장으로 선임되어 단체의 자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힘썼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의 임기는 1년 5개월 만에 갑작스레 끝난다. 이명박 정부가 재야단체, 특히 진보적 단체들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통해 ‘문화계 좌우균형화전략’을 감행해 진보 인사들에게 압박을 가한 탓이다. 김정헌은 위원회의 투자기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로 일방적인 해임 통보를 받았다. 부당 해임을 입증하려는 법적 투쟁 끝에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주었고 위원장 복직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그가 해임되자마자 그의 뒤를 이어 취임한 친정부 인사가 위원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정헌은 복귀하자마자 ‘출근 투쟁’을 시도했고 한동안 이 ‘한 지붕 두 위원장’ 사태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복직 이후 김정헌은 오랜 관심사였던 ‘마을 만들기’ 운동에 착수했다.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이하 예마네) 활동이다. 김정헌에게 농촌과 마을은 실로 오랜 화두였다. 공주사대 근무 시절부터 틈틈이 농촌을 돌아다닌 그는 사람들이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떠나버리고 남은 빈집들, 해체되어가는 마을들을 참담한 마음으로 목격했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땅과 흙이라는 생태적 삶의 본질로 확장된 그의 주제의식은 마을 공동체 확장이라는 사회운동으로 이어졌다. 예마네는 제천의 한 작은 마을 폐교를 빌려 ‘마을 이야기 학교’ 간판을 달며 활동을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로부터 마을의 내력과 그들이 살아온 사연을 취재하고 구술 녹음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로 마을 잡지와 마을 달력을 만들고 한글, 영어, 서예, 미술을 가르치는 교실도 운영했다. 4년의 활동 끝에 자금 문제에 부딪혀 예마네는 막을 내리게 되었지만 마을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그의 활동은 2010년대에도 꾸준히 지속되었다. 그의 제안으로 시작된 성북구의 ‘이야기청(廳)’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야기청은 지역 노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젊은 작가들이 청취하고 직접 미술을 비롯한 여러 예술장르로 재창조하는 사업이다. 이야기청 프로젝트는 서울의 다른 지역들로도 확산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김정헌은 이러한 다양한 마을운동들 또한 모두 자신의 미술활동이라고 자부한다. 캔버스 앞에서의 그림 그리기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이나 사회의 일각에 참여하는 활동이라면 민중미술에 포함될 수 있다 여기기 때문이다. 세상은 넓고 민중미술이 해야 할 일 또한 많다는 게 그의 견해다. 다방면을 뻗어나가는 스스로의 예술을 “잡”스러움으로 유쾌하게 표현하는 한편 예술의 “품격”을 추구한다는 그의 예술관은 책에 실린 다양한 그의 작품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민중미술의 문제의식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김정헌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이 자서전을 읽는 또 하나의 묘미라 하겠다.


예술과 사회 전반을 횡적 연대로 성장해온 민중미술 40년사

민중미술은 사회의 다른 여러 분야와 교류하면서 40년 넘게 성장해왔다고 김정헌은 말한다. 예술계에 한정되지 않은 사회 각 분야와의 횡적인 연대가 민중미술을 지켜내고 키워왔다는 의미로, 이 회고록이 사람 중심의 회우록(會友錄)으로 읽히기도 하는 이유다. 실제로 이 책에는 저자와 함께 활동했던 대표적인 민중미술가들의 활약상이 빼곡할 뿐 아니라 민주화에 헌신하며 민중미학의 정신을 불어넣어준 다양한 시민운동세력과 언론계ㆍ법조계ㆍ종교계ㆍ예술계 각계각층의 일화 또한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민중미술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혹자는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민중미술 15년전’을 두고 ‘민중미술의 장례식’이라 일컬었지만, 저자는 탄압의 대상이었던 민중미술이 달라진 정치ㆍ사회 환경에 발맞춰 제도권으로 진입한 것을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냉전의 해체와 민주화, 정권교체 등 주위 환경은 급변하는데 유독 민중미술만 아무 변화 없이 말뚝처럼 박혀 있을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민중미술 작품들의 분위기는 그전보다 다채롭게 바뀌고 있다. 꼭 캔버스 위에 그리는 작품 활동이 아니더라도 사회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가운데 공공 또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기류로 변화하는 것이다. 저자는 운동이란 한번 발동이 걸리면 그 뒤를 이어 계속 진행되는 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민중미술 또한 그 성격상 시대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역동적으로 변화해왔고, 앞으로도 그 생명력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정헌

1946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30년 동안 공주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로 일했다. 대표적인 미술운동가 중 한명으로서, 1980년대 민중미술의 발전을 주도한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했다. 민족미술협의회 대표, 전국민족미술인연합 공동의장, 문화개혁시민연대 상임집행위원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예술과마을네트워크 대표,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서울시교육청 예술교육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4·16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공주대학교 명예교수, 공주시립미술관 건립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책 읽기와 더불어 소장 작품들을 전국의 공공미술관에 기증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목 차

머리말


제1부 ‘민중미술가’로서의 40년

나의 어린시절

나의 청년시절

해방 이후 한국 미술계의 흐름

‘현실과 발언’의 탄생

현발에 참여하기까지

전두환정권의 출발과 함께한 현발 창립전

현발의 활약과 공주교도소 벽화 「꿈과 기도」

현발의 쇠퇴와 일본 JAALA전

민족미술협의회의 결성과 민중미술론

민미협과 그림마당 민, 그리고 군사정권의 탄압

문민정부의 등장과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전

광주비엔날레 등 대형 전시회들

이야기 그림과 나의 미술교육론

문화예술위원회 시절

위원장 해임과 ‘한 지붕 두 위원장’ 사건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 이야기

세상을 ‘보는 법’과 여행 이야기

2010년대의 활동들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리얼리즘론과 한국 민중미술이 걸어온 길

한국 민중미술의 연원

민중미술과 시대의 어른들

민중미술의 미래

닫는 글


제2부 예술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

그림은 살아남을 것인가

좋은 이야기는 세계를 확장한다

모든 보는 것은 미래로 열려 있다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에서 ‘인용과 훔침’

예술의 품격에 대하여

미술의 힘은 역시 리얼리즘이다

예술은 미래를 기억한다

예술의 ‘잡(雜)’에 대하여

다시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꺼내 들다

나! ‘코로나19 바이러스’

코로나 이후, 감성 회복이 우선이다

예술가의 일생: 추사 김정희와 김병기 화백 그리고 시인 이상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를 제안하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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