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슈가랜드 특급>(1974)에서 신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2021)까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생을 들려주는 국내 첫 책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감독을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이름 중 하나인 스티븐 스필버그. 다른 설명 없이 ‘스필버그 영화’라는 수식어만으로도 SF, 전쟁영화, 액션/모험 드라마 등 여러 장르의 영화들이 이해되곤 한다. 그중 뉴 할리우드의 본격적인 장을 연 <죠스>는 탄탄한 서사와 기술의 결합으로 블록버스터의 신기원을 열었으며, 미국 내에서 흥행수익 1억 달러를 넘긴 첫 영화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후 선보인, 외계 생명체와의 만남을 꿈꾸게 했던 <이티>와 더불어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그만의 독특한 세계로 관객을 초대했다. 그리고 1993년 <쉰들러 리스트>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쥐며, 스필버그는 대중의 사랑과 더불어 평단의 주목까지 받게 된다. 그 뒤로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다룬 <라이언 일병 구하기> <뮌헨> <더 포스트>뿐 아니라, 가상의 현실에 주목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레디 플레이어 원> 등의 다양한 영화들을 꾸준히 선보이며 풍성한 영화 세계를 통해 관객의 삶에까지 끝없는 활력을 불어넣었다.
마음산책 ‘말 시리즈’의 열여덟 번째 책으로 선보이는 『스필버그의 말』은, 감독으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그동안 소개된 적 없던 그의 개인적 삶까지 여실히 담아냈다. 1974년부터 2021년까지 48년 동안의 인터뷰 스물한 편을 소개하는 이번 책에는 <슈가랜드 특급> 같은 초기 영화뿐 아니라 <죠스> <쉰들러 리스트> <캐치 미 이프 유 캔>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들의 상세한 제작기가 수록되었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을 통과해 그의 인터뷰를 따라 읽다 보면 열정 가득한 신인의 모습은 물론, 처음 영화를 만들었던 열다섯 살의 기억,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몰래 잠입했던 일화처럼 지금은 거장이 된 감독의 소박한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재미와 가치를 더하고 있는 점은, 긴 세월 동안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의 가치관과 생각이 점차 변화하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그는 1989~90년 인터뷰에서 <영혼은 그대 곁에>의 제작을 결정하기까지 용기가 부족했던 탓에 9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하는 반면, 지난해 12월 영화 전문지 <콜라이더>와 진행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인터뷰에서는 명작의 리메이크에 대한 의지를 밀어붙이며, 거장의 노련한 여유를 보여준다. 1978, 1982, 1997년 인터뷰에서 꾸준히 밝혀온 뮤지컬영화에 대한 소망을 이룬 이번 신작에서 그는 제작 과정에 대해 <이티> 이후 맛본 가장 유쾌한, 모두가 하나의 가족이 된 듯한 경험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스필버그는 인터뷰 중간 “매번 영화를 보러 갈 때마다 마법이라고 느껴요” 혹은 “상상에서부터 이미지를 끄집어내서 3차원의 실체로 만드는 일, 그건 마법이에요”라고 말하며, 영화 만들기에 대한 환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모습을 내비친다. 바로 이런 그의 문장들에서 우리는 무한한 상상력의 원천을 발견하게 된다. 백 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자 제작자, 각본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영화의 신비로움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니, 그의 열정이 식어버리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진다.
어떤 한 부류의 감독이 되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요. 나는 액션을 사랑해요. 관객들의 마음을 꽉 움켜쥔 채, 그들이 난장판이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뭔가를 보며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구부리거나 움찔하는 걸 좋아하죠. 관객을 완전히 영화에 몰입하는 수준으로 끌고 가는 게 좋아요. 그러나 자동차 사고나 엔진 폭발 없이도 그런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65쪽
매번 영화를 보러 갈 때마다 마법이라고 느껴요. 어떤 내용을 다루든지요. (…) <쇼아>(홀로코스트를 다룬 긴 다큐멘터리영화)를 여덟 시간 보든, <고스트버스터즈>(신나는 오락용 영화)를 보든, 극장에서 불빛이 꺼지고 영화가 점점 뚜렷해질 때, 마법이 일어나죠.
―254쪽
우리를 기쁘게 하거나, 분노하게 하거나,
영화로 탐험하는 현실의 파동들
어린 시절, 가짜 콧수염을 붙이고 군복을 입거나 혹은 괴물로 분장한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던 스필버그는 오직 ‘홈 무비(home movie, 자가 제작 영화)’ 제작만이 탈출구였다고 말한다. 그가 속해 있던 보이스카우트의 친구들에게 처음 만든 영화를 보여주었을 때, 그들은 박수를 치면서 즐거워했다. 그리고 이 첫 시사회의 경험은 이후로도 스필버그로 하여금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게 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바다에 대한 도전 정신을 불어넣거나(<죠스>), 사랑스러운 외계인을 상상하게 하고(<이티>), 실제로는 떠나본 적 없는 모험을 기억 속에 각인시키며(‘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 우리의 유년을 기쁨으로 물들였다.
상업영화, 주로 오락영화에서 두각을 보이던 그의 영화 인생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은 <쉰들러 리스트>를 제작하고부터였다. 그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역사적 사실을 얼마나 진실하게 전달할지에 초점을 맞춰, ‘조금이라도 오락 같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 예로 그는 즐겨 사용하던 크레인 촬영, 줌렌즈 등의 기술들을 버렸으며, 컬러를 제거하고 흑백영화의 솔직함을 드러냈다. “기교와 때깔 면에서 내게 어느 정도 명성을 안겨준 상업적인 기술들에 기대기에는 이야기의 진실성이 너무도 중요했어요.”
영화는 스크린 바깥에도 또한 영향을 미쳤는데, 이 영화를 만들면서 그는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과 진정으로 대면할 수 있었다. 실제로 <쉰들러 리스트>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다음 해에 스필버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하기 위해 쇼아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현재 재단은 스필버그가 명예학위를 받기도 한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와 협력해 홀로코스트 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친다). 이어 노르망디상륙작전을 다룬 <라이언 일병 구하기>, 1972년 뮌헨올림픽 도중 일어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인질 사건을 그린 <뮌헨> 등의 역사적 사실을 섬세하게 포착한 영화들로, 그는 그동안 다채로운 방식으로 선사한 기쁨 대신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역사에 기록된 사건의 내면을 깊이 탐구함으로써 정당하게 얻어진 활력 넘치는 분노로, 영화를 보던 우리로 하여금 잠시 멈춰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만약 이 영화가 당신을 불편하게 하고 겁먹게 하고 화나게 한다면, 그걸 무시하는 게 좋은 생각은 아니라는 거예요. 아마 왜 스스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을 테죠.
―366쪽
무한한 상상력으로 인간성에 다가가기
SF와 휴머니즘이 결합된 세계
스필버그를 떠올렸을 때 블록버스터, 거대 공룡과 기계들의 이미지를 그리게 되는 것이 무색하게도 ‘휴머니즘’은 그의 영화 속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그의 영화 속 영웅이 정작 승리하는 까닭은 레이저를 쏘는 최신식 총이 아니라 풍부한 지략 덕택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들을 보다 보면,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스크린 속 인물들과 스스로를 동일시하게 되는 순간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러한 휴머니즘적 면면은 피부 아래 얼음같이 차가운 피가 흐를 것만 같은 악역들에도 부여된다. <뮌헨> 속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스필버그는 테러의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은 곧 희생자들의 기억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그러한 인물들을 비인간적으로 보는 시각은 악당을 악마로 변화시켜 윤리적 퇴행으로 이끄는 길이기 때문이다. 역사에 기입되지 않았던 순간들을 관찰해 장면으로 제시한 그의 영화들, 그리고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그의 진심은 스크린과 책장 너머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은 점점 책임감의 무게가 늘어간다고 그 어려움을 고백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영화 만들기에 대한 욕심은 전혀 줄어들지 않은 듯하다. 예술로서의 영화와 더불어 여전히 관객을 기쁘게 해주는 영화 역시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그에게 그 두 가지를 연결해주는 키워드가 있다면 바로 인간성, 휴머니즘일 것이다.
아시겠지만, 내게 최우선은 인간성이에요. 인간성이 없다면 아무도 내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성공하는 영화는 모두 인간적 차원에서 성공한다고 생각해요. 자기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을 좋아해야만 하죠. 매우 중요한 문제예요. 만약 그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으면 아무리 기술적으로 영화가 월등하다고 해도 성공하지 못해요.
-161~162쪽
나는 내 아이들이 자라나는 세상을 관찰해요. 거기에서 어두움을 보게 되면 그에 대해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순 없어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영화 만들기 같은 강력한 도구에 수반되는 책임감을 느껴요. 이제는 정말 뭔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다른 한편으로, 많은 관객에게 양질의 오락을 제공하는 것 또한 아주 좋아요. 나는 의지에 따라 종종 대중이 요구하는 영화들을 만들어왔어요. 영화 만들기와 예술로서의 영화 만들기 간에는 차이가 있어요. 그러나 둘 다 매력적이어서 모두 하고 싶습니다.
―381~382쪽
작가 소개
지은이 : 스티븐 스필버그
할리우드의 영화감독이자 제작자, 각본가로 활약하는 독보적인 영화예술가. 미국 오하이오의 신시내티 출생으로, 유대인 집안에서 피아노 연주자 어머니와 전기기사 아버지 사이 태어났다. 가족 여행에서 아버지가 찍어주던 홈 비디오에 매료돼 촬영과 영상을 공부하게 된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에 다닐 무렵,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오가며 감독, 편집 기사, 음향 담당자 등을 만난다. 그가 찍은 35밀리 단편영화 <앰블린>이 유니버설 제작부 사장 시드 샤인버그의 눈에 들어 1969년 유니버설과 계약을 맺는다. 여러 텔레비전 방송을 연출하던 중 ABC 주말의 영화로 방영되었던 <대결>이 유럽에서 극장 개봉한다. 이어 발표한 <슈가랜드 특급> <죠스> <미지와의 조우>로 영화계에 자리 잡았으며, <미지와의 조우>로는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른다.
이후 독특한 영화 세계를 구현한 시리즈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으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성취해낸다. 홀로코스트 학살을 다룬 <쉰들러 리스트>, 노르망디상륙작전을 그린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상업성이 부각되었던 스필버그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계기가 된 작품으로, 각각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후로도 <마이너리티 리포트> <더 포스트> 등의 영화들을 연출하며 SF와 실화 바탕의 서사물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제작자로서는 앰블린 엔터테인먼트(1981)와 드림웍스(1994)를 공동 설립했으며, 같은 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기 위해 쇼아재단을 설립했다. 독일연방공화국 공로장, 대영제국 훈장,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으며, 2015년에는 대통령자유훈장을 수훈했다. 2021년, 그의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뮤지컬영화의 꿈을 펼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통해 또 한 번 다채로운 ‘스필버그의 세계’를 선보였다.
엮은이 : 브렌드 낫봄
독립영화 제작자이자 위스콘신대학교의 영화영상 및 커뮤니케이션 예술학과 교수. 1994년 위스콘신대학교 밀워키에서 미대를 다녔고, 2000년 시러큐스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엮은이 : 레스터 D. 프리드먼
시러큐스대학교의 시각공연예술대학에서 영화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저서로 『시민 스필버그(Citizen Spielberg)』 『보니 앤드 클라이드(Bonnie and Clyde)』를 펴냈다.
옮긴이 : 이수원
파리3대학에서 영화미학을 전공한 후 10여 년간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영화에 관한 글쓰기와 번역을 병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하루의 로맨스가 영원이 된 도시』, 옮긴 책으로 『에리크 로메르』 『센소 비평 연구』 『발라시네』 『카이에 뒤 시네마』 『오션킹』 등이 있다.
목 차
서문_레스터 D. 프리드먼
끊임없는 시작의 여정
새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소우주
프라이멀 스크림
행간의 빈틈을 채우는 일
마치 여름방학 계획표처럼
내 안의 나를 가두며
25개의 배지, 25개의 모험
우리가 잊지 않도록
침대에서 일어나 곤경 속으로
또 다른 생명들의 세계
현실 자체가 엉성하기 때문이죠
영원할 청년의 모험들
감독은 자신의 공포를 이용해야만 해요
무기보다 큰 대화의 목소리로
결코 간단해서는 안 되는 대답들
현실이 뿜어내는 그 모든 파동들로부터
나는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지 않았어요
영화로 탐험한 내면의 기억
변하거나 변하지 않는 방식으로
어느 세계를 선택할 것인가
고친 뒤에도 남아 있는 장면
옮긴이의 말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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