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귀신 들리듯 사진 들린 영화를
찾아다니는 산책자의 움직임
사진이란 과거의 어느 순간 카메라 앞에 있었던 무언가의 흔적인 ‘동시에’ 그것의 생김새를 닮은 형상이고, 증거인 ‘동시에’ 유사-현존이며, 물질인 ‘동시에’ 이미지라는 것을, 종종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반성적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비유하자면, 주형과 모형이 한데 붙은 것이 사진이라고 보는 셈이다. 그런데 디지털 이미지의 시대가 도래하기 이미 한참 전부터 모형 없는 주형, 혹은 모형에서 떨어져 나온 재료 일부만 달라붙어 있는 주형으로서의 사진은 항상 존재해 왔고, 따라서 ‘동시에’가 함의하는 결합은 줄곧 의문에 부쳐져 왔다. 그런데도 정작 이러한 사진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은 기이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형상 없는 흔적, 유사-현존이 수반되지 않은 증거, 미처 이미지화되지 못한 물질로서의 사진에 대한 적절한 이론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책은 이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또한, 사진으로 포착된 인간의 형상은 종종 존재론적 양극성을 띠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영화적 이미지는 인물과 관련해서 허구와 사실의 동시적・모순적 공존을 배제하곤 한다. 우리는 영화를 볼 때 극영화의 경우 허구적으로, 다큐멘터리의 경우 사실적으로 인물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다. 그런데 영화의 스틸 사진은 영화적 이미지에서 억압되어 있던 존재론적 극을 다시 활성화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원본 영화에 대한 지식이나 아무런 정보가 없는 관람자에게 스틸 사진 속의 인물은 철저하게 존재론적 양극성을 띤 대상으로 비칠 것이다. 사진작가인 로버트 프랭크와 영화작가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사진과 영화 작업을 넘나들면서 이러한 양극성을 활성화하는 일에 골몰하곤 했다. 책에서는 이들 이외에도 장 외스타슈, 크리스 마커, 레이몽 드파르동등 여러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사진적인 것이 영화로 이식되는 다양한 양상들을 검토한다.
이 책이 사진과 영화의 관계를 탐색하는 방식은 두 매체 각각의 존재론으로부터 출발해 둘 사이의 연관성을 따지기보다는 마치 귀신 들리듯 ‘사진 들린 영화’들을 찾아다니는 산책에 가깝다. 여기서 저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이러한 산책자의 움직임을 가리키는 에세이, 즉 분석적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대상에 접근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에세이다.
작가 소개
유운성
영화평론가. 2001년 『씨네21』 영화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영화평을 쓰기 시작했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부장, 『인문예술잡지 F』 편집위원을 지냈고, 현재 영상비평지 『오큘로』의 공동발행인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유령과 파수꾼들』 『어쨌거나 밤은 무척 짧을 것이다』 등이 있다.
목 차
서문
1. 얼굴 없는 표면
2. 얼굴들의 연대기
3. 사진적 인물과 영화적 인물
4. 식물성의 유혹
5. 사진 없는 유토피아
6. 영화 없는 유토피아
나가며, 들어가며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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