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편지 루소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루소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서른이 넘어서야 악보 연구서를 발표하고 달랑베르의 부탁으로《백과전서》의 음악 관련 항목을 작성하는 등 본격적으로 집필 활동을 벌이기 시작한다. 마흔 전후로는 디종 아카데미의 공모에 제출한 논문《학문예술론》《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통해 근대 문명의 폐해를 지적하고 이성과 지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에 대한 회의를 나타냄으로써 신선한 파문을 일으킨다. 정치와 사회 예술과 학문에 관한 독창적 사유를 펼쳐나가면서 일약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이 와중에 루소는 프랑스 음악에 적대적인 입장을 보인《프랑스 음악에 대한 편지》로 오페라 극장 출입을 거절당하는가 하면《백과전서》의 ‘제네바’ 항목을 문제 삼고 무대예술을 공격한《달랑베르에게 보내는 연극에 관한 편지》로 한동안 교유하던 볼테르 디드로 등의 지식인들과 절연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루소는 서간체 글로 논쟁을 불러일으키곤 했는데 역시 편지 형식의 장편 연애소설《신엘로이즈》를 통해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며 큰 성공을 거둔다.
이로써 서간체 글이 갖는 힘과 호소력을 절감한 그는 평생에 걸쳐 편지 형식의 글을 즐겨 썼고 자신의 작품을 읽고 감상을 전하거나 고민을 털어놓는 독자의 편지에 일일이 답장하는 성실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가 쓴 편지와 동시대인들에게서 받은 편지 및 관련 글들을 모은《서한 전집》만 해도 52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데 주요 저작의 집필 동기와 경위 출판 전후에 겪은 일과 그 영향 인간관계 심리 상태 등을 소상히 전하고 있어 루소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긴요한 자료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편지가 루소의 작품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앞으로 발간될 루소전집에서는《그림에게 보내는 편지》《달랑베르에게 보내는 연극에 관한 편지》《산에서 쓴 편지들》《식물학에 관한 편지》 등 주요 서한들을 번역·소개할 예정이다.
보몽에게 보내는 편지
―《에밀》비판에 대한 반박 계시의 신에서 이성의 신으로
루소는 에밀이라는 고아가 출생에서 결혼까지 아주 이상적인 가정교사가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에밀》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선(善)을 보존하고 발전시킴으로써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이끈다는 교육론은 물론 인간관과 사회관을 총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당시의 전통과 기득권을 부정하고 기존의 제도와 질서를 타파하자는 주장이 담겨 있는 탓에 예수회의 출판 방해 공작을 받기도 한《에밀》은 네덜란드에서 출간되고 4개월이 지나서야 프랑스에서 판매되기 시작한다.
루소는 총 5부로 구성된《에밀》 제4부의〈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 고백〉에서 신을 인정하되 만물의 창조자이자 주관자라는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생활에 직접 관계하는 섭리와 은총 기적 계시 또한 인정하지 않는 일종의 이신론(理神論)을 펼쳐 보인다. 이 때문에 정통 유신론자들의 분노를 사서 구속 영장을 발부 받고 경찰에게 쫓기게 되며《에밀》은 판매 금지를 당하고 심지어 파리에서 불태워지기까지 한다. 도피처로 생각했던 고향 제네바에서도《에밀》과 《사회계약론》의 판매가 금지당하자 루소는 스위스 뇌샤텔 주의 모티에에서 은거한다. 이때 파리 대주교 크리스토프 드 보몽이《에밀》에 담긴 종교관이 신성 모독적이고 이단적이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하고자 1762년 8월 28일자로 발간한 교서를 접한다. 평소 존경해온 대주교가 자신을 비난했다는 데 큰 충격을 받은 그는 대주교가 자신의 견해를 올바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인신공격하려 한다고 판단하고 억울해한다. 루소는 교서의 내용을 반박하고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기 위해 10월경부터 서한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듬해 3월《보몽에게 보내는 편지》로 출판한다. ‘《보몽에게 보내는 편지》의 단편들’은 루소가 이 글의 초안에서 표현이 거슬리거나 또 다른 논쟁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제외한 부분을 나중에 모은 것이다.
루소는《에밀》을 비롯한 저서로 인해 겪은 일련의 사건들을 환기한 뒤 모든 원죄에 대한 생각들에 반대하는 자신의 견해에 내재한 근본 원리 전통적 교육에 대한 비판 이성과 양심의 신에 대한 신앙 고백 자연 종교의 신과 역사적 종교들의 신 기독교도로서의 긴 신앙 고백 교서에서 대주교가 언급한 기적과 계시 매개자 없는 종교에 대한 논평 등을 펼쳐 보인다. 결국 이 편지는 보몽 대주교가 교서를 통해 비난한《에밀》의 주장들을 되풀이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여러 사례로써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자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집요하리만치 보몽이 비난한 부분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자신을 변호한 루소는 “대주교 예하 당신은 저를 공개적으로 모욕하셨는데 앞에서 저는 당신이 저를 중상하셨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저와 같은 일개인이어서 공정한 법정에 당신을 소환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저는 저의 책을 가지고 당신은 당신의 교서를 가지고 함께 출두한다면 당신은 분명 그곳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당신이 공개적으로 모욕했던 것처럼 공개적으로 제게 사과할 것을 강요받았을 것”이라며 권위에 주눅 들지 않은 당당한 어조로 편지의 끝을 맺는다.
보몽을 극존칭하며 호명하면서도 끝끝내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루소의 담대함이 잘 드러난《보몽에게 보내는 편지》는 당대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파리에서 다시금 파문을 일으켰고 제네바 당국은 대주교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이 책의 판매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도덕에 관한 편지
―연인에게 들려준 미덕과 행복 이야기
《신엘로이즈》를 집필 중이던 1757년 봄 루소는 후원자 데피네 부인의 시누이로서 아름답지는 않지만 독특한 매력을 지닌 소피 두드토 백작부인에게 깊이 빠져 처음 세 달간 거의 매일 부인을 만나며 정열을 불태운다. 당시 두드토 부인에게 자신의 소설 주인공 쥘리의 모습을 투영하여 사랑에 도취되어 있었던 루소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쥘리와 생 프뢰의 사랑을 생생하고도 현실감 있게 묘사할 수 있었다.《도덕에 관한 편지》는 사랑하는 두드토 백작부인에게 ‘미덕과 행복에 대한 선생’ 역할을 자임하고 행복의 길로 인도하려는 목적에서 쓴 것이다. 루소는 서두에 이 편지를 쓰는 이유를 밝히면서 “이 편지들은 세상의 빛을 보기 위해 쓰이지 않았으니 당신의 동의 없이는 이 편지들이 결코 빛을 보지 못할 것임을 당신에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요”라고 했으나 내심 두드토 부인이 출판해주기를 바라며 심혈을 기울여 집필하고 교정했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인 두드토 부인에게는 끝내 이 글을 보내지 않았다.
루소는 총 6편으로 이루어진 이 편지에서 두드토 부인과 함께한 시간에 대한 추억 삶과 행복 도덕성 지식 감각 이성 신앙에 대해 자유로이 이야기한다. 그는 “무엇보다 먼저 당신 자신에게서 행복을 얻는 법을 배우세요. 그러한 행복만이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운 행복이며 다른 행복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하며 두드토 부인이 보다 행복해지려면 자신이 제시한 행동과 마음가짐을 따라야 한다고 부드럽게 권유한다.
이 편지는《에밀》제4부 속〈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 고백〉에 내용의 일부분이 차용된데다《신엘로이즈》에서 죽어가는 쥘리가 토로한 신앙 고백을 통해서도 관련 내용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기도 한다.
프랑키에르에게 보내는 편지
―신앙 미덕 자유 고통 철학에 대한 말년의 사유
1769년 사람들이 자신을 중상 모략한다고 생각하여 정신적 압박을 받던 루소가《고백》제7권을 집필할 당시에 쓴《프랑키에르에게 보내는 편지》는 프랑키에르라는 사람에게서 받은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추정된다. 프랑키에르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은데 “아마도 프랑스 도피네 지방의 귀족이었을 것”이라는 한 루소 연구가의 추측이 그에 대한 정보의 전부이다.
노쇠해진 루소는 잠시 기력을 되찾은 틈을 타 답장을 하는 것이라며 “당신 편지의 요점들에 대한 제 견해를 당신이 받아들이게끔 하려고 애쓰지 않고 그저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자신의 의도라고 밝힌다. 그리고 신 예수 신앙 기적 미덕 인간의 의무 자유 선행 고통 철학 등 그동안 여러 저서에서 표명했던 견해들을 기억을 더듬어 담담히 기술한다.
특히 루소는 그동안 도피 생활에 지치고 추적 망상 박해 망상에 시달리며 괴로워한 탓인지 고통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고통 자체가 무엇인지 고민해온 흔적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을 면밀히 살펴볼 때 저는 죽음에 대한 감정과 고통에 대한 감정은 자연의 질서 속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쩌면 증명했습니다. 이 감정들을 자극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들입니다. 기상천외하게 꾸민 그들의 말들과 야비한 기관(機關)들이 없다면 육체적인 고통이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고 우리에게 거의 부담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고통은! 그것은 인간의 또 다른 작품입니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준 것 외에 아무것도 관여하지 않았으니까요.
이처럼 신에게서 자유를 부여받은 인간이 스스로 자초하여 고통을 겪는다는 점을 지적한 루소는 신과 인간 생명 기쁨 자유에 대한 자신만의 통찰을 드러내며 말년에 이르러 자연스레 죽음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작가 소개
저 :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 1712년 유럽의 가장 작은 공화국’ 제네바의 시계 수리공 집안에서 태어난 루소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10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칼부림 사건으로 도피한 후부터는 외숙부 밑에서 자랐다. 그는 외사촌과 함께 한 목사의 집에서 라틴어를 비롯한 여러 교육을 받았으나 엄격하고 인위적인 교육 방법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 후 법원 서기의 필사 수습 사환 동판 조각사의 견습공 등으로 일했으나 독서열과 상상력을 펼칠 수 없는 나날은 그에게 크나큰 짐이 되었다.
열여섯에 제네바를 떠난 루소는 바랑 부인을 만나게 된다. 바랑 남작부인과 루소의 관계는 마치 모자간의 사랑과 이성간의 사랑이 기묘하게 뒤섞인 것 같았다고 한다. 바랑 부인은 그에게 지적 성장의 기회를 제공했고 루소는 이때 철학과 문학에 대한 소양을 풍부히 갖추게 된다. 불우한 소년기를 보낸 그는 스물여덟에 가정교사로 일하는 등 사회 활동을 하다가 파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1742년 파리로 나온 그는 디드로가 공동 편집을 진행하던『백과전서』의 여러 항목을 집필하면서 본격적인 저술가로 활동하게 된다. 선되었고 이것이 『학문과 예술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사상가로서의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그 후 저작에만 몰두하여 『불평등기원론』 『정치 경제론』 『신 엘로이즈』등 많은 저술활동을 하였다. 마흔이 되던 1762년 4월에 자유 실현에 관한『사회계약론』을 5월에 인간 교육에 관한 사상을 담은『에밀』을 출간했으나 파리 의회는『에밀』을 압수하는 한편 루소를 체포하라고 명령한다. 그는 스위스로 도피했지만 제네바 당국도『사회계약론』과『에밀』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책을 불태우는 등 적대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1768년에는 1745년 이래 지내온 테레즈 르바쇠르와 정식으로 이혼한 루소는 피해망상에 괴로워하기도 하였다. 1770년 파리로 돌아와 자기 변호를 위한 작품 『루소 장 자크를 재판하다』를 쓰기도 했다. 주변의 박해로 여러 곳을 떠돌던 그는 지라르댕 후작의 배려로 그의 영지에서 집필 활동을 하다가 집필 중이던 『고독한 산책가의 몽상』을 완성하지 못하고 1788년 생을 마쳤다.
그는 이성 중심의 사상을 허물고 낭만주의의 탄생에 공헌했으며 자유가 보편적인 동경의 대상이라고 역설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다. 그의 개혁 사상은 당시 예술에 혁신을 가져왔고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교육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혁명에서 그의 자유민권사상은 혁명지도자들의 사상적 지주가 되었으며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주요 저작으로『학예론』『인간 불평등 기원론』『신 엘로이즈』『음악 사전』『고백록』『고독한 산책자의 몽상』등이 있다.
역 : 김중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프랑스 낭시 2대학에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발자크―작가와 작품세계』 『발자크 연구』『사드』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사회계약론』 『인간불평등 기원론』『에밀』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신엘로이즈』 등이 있다.
편지 루소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루소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서른이 넘어서야 악보 연구서를 발표하고 달랑베르의 부탁으로《백과전서》의 음악 관련 항목을 작성하는 등 본격적으로 집필 활동을 벌이기 시작한다. 마흔 전후로는 디종 아카데미의 공모에 제출한 논문《학문예술론》《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통해 근대 문명의 폐해를 지적하고 이성과 지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에 대한 회의를 나타냄으로써 신선한 파문을 일으킨다. 정치와 사회 예술과 학문에 관한 독창적 사유를 펼쳐나가면서 일약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이 와중에 루소는 프랑스 음악에 적대적인 입장을 보인《프랑스 음악에 대한 편지》로 오페라 극장 출입을 거절당하는가 하면《백과전서》의 ‘제네바’ 항목을 문제 삼고 무대예술을 공격한《달랑베르에게 보내는 연극에 관한 편지》로 한동안 교유하던 볼테르 디드로 등의 지식인들과 절연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루소는 서간체 글로 논쟁을 불러일으키곤 했는데 역시 편지 형식의 장편 연애소설《신엘로이즈》를 통해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며 큰 성공을 거둔다.
이로써 서간체 글이 갖는 힘과 호소력을 절감한 그는 평생에 걸쳐 편지 형식의 글을 즐겨 썼고 자신의 작품을 읽고 감상을 전하거나 고민을 털어놓는 독자의 편지에 일일이 답장하는 성실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가 쓴 편지와 동시대인들에게서 받은 편지 및 관련 글들을 모은《서한 전집》만 해도 52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데 주요 저작의 집필 동기와 경위 출판 전후에 겪은 일과 그 영향 인간관계 심리 상태 등을 소상히 전하고 있어 루소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긴요한 자료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편지가 루소의 작품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앞으로 발간될 루소전집에서는《그림에게 보내는 편지》《달랑베르에게 보내는 연극에 관한 편지》《산에서 쓴 편지들》《식물학에 관한 편지》 등 주요 서한들을 번역·소개할 예정이다.
보몽에게 보내는 편지
―《에밀》비판에 대한 반박 계시의 신에서 이성의 신으로
루소는 에밀이라는 고아가 출생에서 결혼까지 아주 이상적인 가정교사가 주도면밀하게 계획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에밀》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선(善)을 보존하고 발전시킴으로써 행복한 인생을 살도록 이끈다는 교육론은 물론 인간관과 사회관을 총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당시의 전통과 기득권을 부정하고 기존의 제도와 질서를 타파하자는 주장이 담겨 있는 탓에 예수회의 출판 방해 공작을 받기도 한《에밀》은 네덜란드에서 출간되고 4개월이 지나서야 프랑스에서 판매되기 시작한다.
루소는 총 5부로 구성된《에밀》 제4부의〈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 고백〉에서 신을 인정하되 만물의 창조자이자 주관자라는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생활에 직접 관계하는 섭리와 은총 기적 계시 또한 인정하지 않는 일종의 이신론(理神論)을 펼쳐 보인다. 이 때문에 정통 유신론자들의 분노를 사서 구속 영장을 발부 받고 경찰에게 쫓기게 되며《에밀》은 판매 금지를 당하고 심지어 파리에서 불태워지기까지 한다. 도피처로 생각했던 고향 제네바에서도《에밀》과 《사회계약론》의 판매가 금지당하자 루소는 스위스 뇌샤텔 주의 모티에에서 은거한다. 이때 파리 대주교 크리스토프 드 보몽이《에밀》에 담긴 종교관이 신성 모독적이고 이단적이라며 공개적으로 비난하고자 1762년 8월 28일자로 발간한 교서를 접한다. 평소 존경해온 대주교가 자신을 비난했다는 데 큰 충격을 받은 그는 대주교가 자신의 견해를 올바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인신공격하려 한다고 판단하고 억울해한다. 루소는 교서의 내용을 반박하고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기 위해 10월경부터 서한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듬해 3월《보몽에게 보내는 편지》로 출판한다. ‘《보몽에게 보내는 편지》의 단편들’은 루소가 이 글의 초안에서 표현이 거슬리거나 또 다른 논쟁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제외한 부분을 나중에 모은 것이다.
루소는《에밀》을 비롯한 저서로 인해 겪은 일련의 사건들을 환기한 뒤 모든 원죄에 대한 생각들에 반대하는 자신의 견해에 내재한 근본 원리 전통적 교육에 대한 비판 이성과 양심의 신에 대한 신앙 고백 자연 종교의 신과 역사적 종교들의 신 기독교도로서의 긴 신앙 고백 교서에서 대주교가 언급한 기적과 계시 매개자 없는 종교에 대한 논평 등을 펼쳐 보인다. 결국 이 편지는 보몽 대주교가 교서를 통해 비난한《에밀》의 주장들을 되풀이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여러 사례로써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자 쓴 것이라 할 수 있다. 집요하리만치 보몽이 비난한 부분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자신을 변호한 루소는 “대주교 예하 당신은 저를 공개적으로 모욕하셨는데 앞에서 저는 당신이 저를 중상하셨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저와 같은 일개인이어서 공정한 법정에 당신을 소환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저는 저의 책을 가지고 당신은 당신의 교서를 가지고 함께 출두한다면 당신은 분명 그곳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당신이 공개적으로 모욕했던 것처럼 공개적으로 제게 사과할 것을 강요받았을 것”이라며 권위에 주눅 들지 않은 당당한 어조로 편지의 끝을 맺는다.
보몽을 극존칭하며 호명하면서도 끝끝내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루소의 담대함이 잘 드러난《보몽에게 보내는 편지》는 당대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파리에서 다시금 파문을 일으켰고 제네바 당국은 대주교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이 책의 판매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도덕에 관한 편지
―연인에게 들려준 미덕과 행복 이야기
《신엘로이즈》를 집필 중이던 1757년 봄 루소는 후원자 데피네 부인의 시누이로서 아름답지는 않지만 독특한 매력을 지닌 소피 두드토 백작부인에게 깊이 빠져 처음 세 달간 거의 매일 부인을 만나며 정열을 불태운다. 당시 두드토 부인에게 자신의 소설 주인공 쥘리의 모습을 투영하여 사랑에 도취되어 있었던 루소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쥘리와 생 프뢰의 사랑을 생생하고도 현실감 있게 묘사할 수 있었다.《도덕에 관한 편지》는 사랑하는 두드토 백작부인에게 ‘미덕과 행복에 대한 선생’ 역할을 자임하고 행복의 길로 인도하려는 목적에서 쓴 것이다. 루소는 서두에 이 편지를 쓰는 이유를 밝히면서 “이 편지들은 세상의 빛을 보기 위해 쓰이지 않았으니 당신의 동의 없이는 이 편지들이 결코 빛을 보지 못할 것임을 당신에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요”라고 했으나 내심 두드토 부인이 출판해주기를 바라며 심혈을 기울여 집필하고 교정했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인 두드토 부인에게는 끝내 이 글을 보내지 않았다.
루소는 총 6편으로 이루어진 이 편지에서 두드토 부인과 함께한 시간에 대한 추억 삶과 행복 도덕성 지식 감각 이성 신앙에 대해 자유로이 이야기한다. 그는 “무엇보다 먼저 당신 자신에게서 행복을 얻는 법을 배우세요. 그러한 행복만이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운 행복이며 다른 행복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라고 조언하며 두드토 부인이 보다 행복해지려면 자신이 제시한 행동과 마음가짐을 따라야 한다고 부드럽게 권유한다.
이 편지는《에밀》제4부 속〈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 고백〉에 내용의 일부분이 차용된데다《신엘로이즈》에서 죽어가는 쥘리가 토로한 신앙 고백을 통해서도 관련 내용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기도 한다.
프랑키에르에게 보내는 편지
―신앙 미덕 자유 고통 철학에 대한 말년의 사유
1769년 사람들이 자신을 중상 모략한다고 생각하여 정신적 압박을 받던 루소가《고백》제7권을 집필할 당시에 쓴《프랑키에르에게 보내는 편지》는 프랑키에르라는 사람에게서 받은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추정된다. 프랑키에르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은데 “아마도 프랑스 도피네 지방의 귀족이었을 것”이라는 한 루소 연구가의 추측이 그에 대한 정보의 전부이다.
노쇠해진 루소는 잠시 기력을 되찾은 틈을 타 답장을 하는 것이라며 “당신 편지의 요점들에 대한 제 견해를 당신이 받아들이게끔 하려고 애쓰지 않고 그저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자신의 의도라고 밝힌다. 그리고 신 예수 신앙 기적 미덕 인간의 의무 자유 선행 고통 철학 등 그동안 여러 저서에서 표명했던 견해들을 기억을 더듬어 담담히 기술한다.
특히 루소는 그동안 도피 생활에 지치고 추적 망상 박해 망상에 시달리며 괴로워한 탓인지 고통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고통 자체가 무엇인지 고민해온 흔적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을 면밀히 살펴볼 때 저는 죽음에 대한 감정과 고통에 대한 감정은 자연의 질서 속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쩌면 증명했습니다. 이 감정들을 자극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들입니다. 기상천외하게 꾸민 그들의 말들과 야비한 기관(機關)들이 없다면 육체적인 고통이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고 우리에게 거의 부담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고통은! 그것은 인간의 또 다른 작품입니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준 것 외에 아무것도 관여하지 않았으니까요.
이처럼 신에게서 자유를 부여받은 인간이 스스로 자초하여 고통을 겪는다는 점을 지적한 루소는 신과 인간 생명 기쁨 자유에 대한 자신만의 통찰을 드러내며 말년에 이르러 자연스레 죽음을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작가 소개
저 :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 1712년 유럽의 가장 작은 공화국’ 제네바의 시계 수리공 집안에서 태어난 루소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10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칼부림 사건으로 도피한 후부터는 외숙부 밑에서 자랐다. 그는 외사촌과 함께 한 목사의 집에서 라틴어를 비롯한 여러 교육을 받았으나 엄격하고 인위적인 교육 방법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 후 법원 서기의 필사 수습 사환 동판 조각사의 견습공 등으로 일했으나 독서열과 상상력을 펼칠 수 없는 나날은 그에게 크나큰 짐이 되었다.
열여섯에 제네바를 떠난 루소는 바랑 부인을 만나게 된다. 바랑 남작부인과 루소의 관계는 마치 모자간의 사랑과 이성간의 사랑이 기묘하게 뒤섞인 것 같았다고 한다. 바랑 부인은 그에게 지적 성장의 기회를 제공했고 루소는 이때 철학과 문학에 대한 소양을 풍부히 갖추게 된다. 불우한 소년기를 보낸 그는 스물여덟에 가정교사로 일하는 등 사회 활동을 하다가 파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1742년 파리로 나온 그는 디드로가 공동 편집을 진행하던『백과전서』의 여러 항목을 집필하면서 본격적인 저술가로 활동하게 된다. 선되었고 이것이 『학문과 예술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사상가로서의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그 후 저작에만 몰두하여 『불평등기원론』 『정치 경제론』 『신 엘로이즈』등 많은 저술활동을 하였다. 마흔이 되던 1762년 4월에 자유 실현에 관한『사회계약론』을 5월에 인간 교육에 관한 사상을 담은『에밀』을 출간했으나 파리 의회는『에밀』을 압수하는 한편 루소를 체포하라고 명령한다. 그는 스위스로 도피했지만 제네바 당국도『사회계약론』과『에밀』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책을 불태우는 등 적대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1768년에는 1745년 이래 지내온 테레즈 르바쇠르와 정식으로 이혼한 루소는 피해망상에 괴로워하기도 하였다. 1770년 파리로 돌아와 자기 변호를 위한 작품 『루소 장 자크를 재판하다』를 쓰기도 했다. 주변의 박해로 여러 곳을 떠돌던 그는 지라르댕 후작의 배려로 그의 영지에서 집필 활동을 하다가 집필 중이던 『고독한 산책가의 몽상』을 완성하지 못하고 1788년 생을 마쳤다.
그는 이성 중심의 사상을 허물고 낭만주의의 탄생에 공헌했으며 자유가 보편적인 동경의 대상이라고 역설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다. 그의 개혁 사상은 당시 예술에 혁신을 가져왔고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교육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혁명에서 그의 자유민권사상은 혁명지도자들의 사상적 지주가 되었으며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주요 저작으로『학예론』『인간 불평등 기원론』『신 엘로이즈』『음악 사전』『고백록』『고독한 산책자의 몽상』등이 있다.
역 : 김중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프랑스 낭시 2대학에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발자크―작가와 작품세계』 『발자크 연구』『사드』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사회계약론』 『인간불평등 기원론』『에밀』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신엘로이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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