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1부

고객평점
저자김홍정
출판사항솔, 발행일:2016/05/11
형태사항p.512 국판:22
매장위치문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86634882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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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오늘의 한국인은 지난 역사 속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무수한 선비들을 참혹하게 죽인 온갖 사화士禍들은 조정의 탐욕과 부패의 막장드라마였고 임진왜란으로 이어져 온 백성의 생활 터전은 무참하게 파괴되고 유린당했으니. 역사 해석에 있어서 지적인 관념과 허황을 극구 경계하는 자리에 서서 역사의 진정한 원동력으로서 백성들의 구체적인 경제 활동을 넉넉히 존중하고 이와 더불어서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생명력 가득한 문화 예술을 이 땅에 깊이 뿌리내리는 것!
『금강』 3부작의 세 주인공 연향 미금 부용은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새 역사를 이루려 하는 모든 한국인의 간절한 희망의 이름들이며 이 경이로운 역사 소설의 경지가 바로 김홍정의 소설 『금강』이 이룩한 한국문학사에서의 전인미답의 새 경지요 위업偉業이라 할 것이다.
- 임우기 문학평론가

『금강』 미리보기

동계의 수장인 남원과 이유 양현량 동계의 실천가 금석 한별장 수돌 그리고 불세출의 책사策士 송판관 그 무엇보다도 이 시기 상업의 발달을 가늠하게 하는 상단商團 ‘금수하방’과 소리채를 세워 동계의 경제와 문화를 이끌어가는 걸출한 여장부 연향 미금 부용 채선...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전쟁 중에 부패 권력에 저항하고 싸우기 위해 궐기하는 한산수와 창과 숭... 실존인물 임꺽정과 이몽학을 되살려 거침없이 풀어놓으며 저 경상 전라 충청에서 평안 함경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하며 정의로운 세상의 꿈을 펼쳐 보인다. ‘금강’의 침묵 속에 들끓고 있는 저 민중들의 애달프면서도 분노어린 온갖 소리 온갖 함성들을 유장하고도 힘찬 어조로 재생하고 있다.

1부. 연향
충암 김정으로부터 소리꾼이라 하대 받지 않고 후학으로 사랑을 받은 연향은 충암의 배려로 알게 된 양지수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이들 사랑이 더 깊어지기도 전에 충암은 격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고 공신들과 정국 운영을 둘러싼 대립으로 인해 제주로 유배를 당하게 된다. 이른바 남곤과 심정 이행 등 공신들이 주도한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정암 조광조는 죽고 충암 김정은 제주도 유배된 것이다.
스승 충암이 유배되자 후학들인 남원 이돈 정희중 양지수 등은 낙향하고 훗날을 기다린다. 연향은 양지수와의 사이에서 얻은 부용을 강천사 선방에 맡기고 스승을 따라 제주로 가서 스승을 모신다. 제주에 머물며 연향은 상술을 익히게 되고 제주 사람들에게서 갈옷을 만드는 염색법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연향은 선현들의 가르침인 천리를 베푸는 것은 군주에 의해 백성들에게 시혜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이루고 서로 어우러지며 사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고 이를 위해 부를 축적하고 서로 나누는 것을 터득하게 된다. 그러나 송사련에 의해 주도된 신사무옥에 의해 충암은 사사되자 스승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돌아와 한산에 터를 잡고 소리채와 상단을 꾸리고 남원이 주도하는 ‘충암동계’의 실질적인 대행수가 되는데…….

2부. 미금
금수하방의 미금은 경행상단의 도움을 받아 대국(명) 사행길에 나서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경행상단의 부행수 정우달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미금은 정우달의 구애를 모른 척하고 금수하방의 경영에 몰두한다.
한 별장은 갓개단의 장수 꺽쇠 수돌이와 연향의 죽음과 관련한 공신들에 대한 보복을 결의하고 우선 직접 죽음에 이르게 한 이 종사관의 수하 군관들을 의주와 경흥부에서 각각 모사를 꾸며 살해한다. 그러나 이 사건을 의심한 이 종사관이 도승지를 찾아가 자신의 복직을 호소한다. 도승지는 남원의 복직을 막고자 송사련 몰래 이 종사관을 사헌부로 복직시켜 의주로 조사를 하러 보낸다. 이를 아현각 행수 채선을 통해 알게 된 동계는 미금의 치밀한 준비와 한 별장의 계획에 의거 의주에서 이 종사관을 수행하는 갑사들을 하나하나 처치한다. 이 종사관은 음모의 낌새를 채고 동계가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의 증거를 얻고자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서로 움직임을 예리하게 관망하고 있었으나 느닷없이 나타난 채선의 움직임으로 죽음에 직면하게 되는데…….

3부. 부용
세월이 조금 흐르고 연향과 미금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가 치유되자 동계의 사람들은 다시 각자의 삶을 일군다. 정우달은 경행상단의 행수가 되었고 그 와중에 만상 행수의 딸 소연과 혼인을 한다. 금석은 소연의 아비 역할을 하고 한 별장이 정우달의 아비 역할을 하여 혼인잔치를 한다. 특히 미금의 아버지 금석은 딸 미금을 대하듯 소연을 위한 혼례예복을 지으며 슬픔을 달랜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아름다움이 넘치면 자연의 흐름도 순탄하여 재해도 없고 평온한 날들이 흐른다.
새로이 임금이 된 인종이 죽고 어린 명종이 등극하자 모후 문정왕후의 섭정이 길게 이어진다. 명종의 나이가 어느덧 스무 살에 가까워졌으나 모후를 중심으로 외척들이 정권을 잡고 사화가 이어져 양재역벽서사건을 일으켜 사림들을 죽음으로 몰고 다시 조정은 위기에 빠진다. 남원은 다시 분연히 일어선다. 남원의 상소는 사림의 공분을 불러 조정은 분란에 휘말린다.
다시 몇 해가 흘러 잠잠하던 왜구들이 침입을 시작하고 이어 남해안 고흥 일대와 서해안 일대를 유린한 왜구들은 결국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는데…….

『금강』 해설Ⅰ

여성적 살림의 세계와 기다림의 강물
(문학평론가 정홍수)

김홍정의 장편소설 『금강』은 조선조 중종 어간부터 임진란이 일어난 선조 때까지를 시대 배경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묘사화 신사무옥 을사사화 기축옥사 등 사림과 훈구파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권력 쟁탈이 벌어졌던 그 시기는 대외적으로 친명親明 외교에 의존하는 가운데 왜구의 침탈이 잦아지고 북방 여진과의 대치가 가팔라지던 때이기도 했다. 소설에도 핍진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백성들의 삶은 그들의 이름을 참칭한 소수 지배층의 권력 다툼의 와중에 궁핍과 재변 횡액의 우연에 던져져 있었다. 물론 자연과 역사의 냉혹한 무심함이 가져다주는 잠깐의 평화와 행복이 그들에게 전혀 도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소설 『금강』이 주목하고 있는 대목은 현실 역사에서 철저하게 좌절과 참화를 겪은 듯 보이는 사림파의 숨은 행로와 그것이 민심의 자생적 흐름과 만났을 가능성의 탐색이다. 인과 덕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왕도정치의 이상 ‘천심/민심’의 구현은 사림의 오랜 꿈이었지만 두루 아는 대로 그 ‘천심/민심’의 자리는 비어 있는 곳 무지無知의 장소다. 그것이 공백이고 무지인 한 실제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시대의 제약 속에 있는 덩어리진 인간 현실이다. 좀더 냉정하게 ‘역사’라는 좌표의 허구적 측면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누구나 우연히 세상에 던져진 채 유한한 삶을 살다 간다. 그 시간의 누적을 역사라고 할 때 역사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역사에는 기원과 목적이 있는가. 역사는 진보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러한가. 혹 그렇다고 한다면 그 역사는 누구의 역사인가. 우리는 흔히 역사의 희생을 말한다. 소설 『금강』에서도 숱한 사람들이 죽는다. 사화士禍가 한번 일어나면 세상이 피로 요동친다. 정쟁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주변의 일가권속이 함께 참화를 맞는다. 철저한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살림과 경제를 책임지며 ‘충암 동계’를 실질적으로 꾸려가는 『금강』의 여인들 연향과 미금도 그렇게 죽는다. 임진란 때 목멱산 밑 장수촌의 유린도 참혹하기 그지없지만 도원마을의 몰살(3권 ‘시적屍積골의 비사’) 장면은 그만 책장을 덮고 싶을 정도다. 말고도 이런저런 죽음들 죽음들. 도대체 이런 죽음들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결코 보상받거나 위로받을 수 없는 이런 죽음들 위에 ‘희생’과 가뭇없는 ‘정의의 미래’를 덧대온 ‘허구의 서사’ 그것이 혹 우리가 역사라 부르는 것은 아닌가.
그러니까 사림이 실현하려고 한 왕도정치의 이상은 그것이 하나의 이념적 담론에 그치는 한 역사를 전유한 또 하나의 ‘희생 서사’가 될 위험이 다분한 것이었고 의도와는 무관하게 현실에서는 ‘패도覇道’의 짝패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우리가 지난 역사에서 확인하는 사실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소설 『금강』의 시선은 복합적이고 사려 깊다. 『금강』에서 사림적 이상의 정점에 있는 인물은 충암 김정이다. 그는 정암 조광조와 함께 왕도정치의 실현을 꿈꾼 신진 사림의 주축이었다. 도승지를 거쳐 대사헌 형조판서를 역임했고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경연經筵을 맡아 군왕의 치도를 가르쳤다. 기묘사화 때 제주로 유배되어 거기서 세상을 뜬다. ‘현량과賢良科’를 통한 새로운 인재 등용의 길을 열고 그들로 하여금 정암 조광조의 도학정치의 근간을 뒷받침하게 했다. 성균관에 자유롭고 활발한 논쟁의 분위기를 만들고 여기서 형성된 사림의 뜻이 자연스레 조정에 전달되는 제자백가의 세상을 꿈꾸었다. 나라 곳곳으로 퍼져간 향약鄕約의 불씨는 지방 사림들의 위상을 높이며 새로운 자치와 공론정치의 전범을 만들었다. 사림의 뜻이 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광범위한 개혁 정치였다. 사림들은 일반 백성들의 행동거지와 마을의 질서를 조정하는 중심이 되었다. 그 이상의 끝에는 ‘대동사회’의 꿈이 있었다.

대동사회大同社會. 스승의 꿈이 하나로 모인 곳이다. 대동사회는 노인은 편안하고 장년들은 쓰일 곳이 많으며 젊은이와 어린 사람들은 쓰일 곳에 이를 때까지 의지하여 자라고 과부나 고아 홀로 사는 이들이 불쌍히 여김을 받고 백성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누리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대열에서 뒤처지지 않는 월인천강의 세상이다.
(1부 22쪽)

인류사에서 부단히 나타났다 사라져간 꿈의 세상. 맹자가 요순시대를 말하며 꿈꾼 왕도정치의 이상이 최종적으로 가닿으려고 했던 곳. 도스토옙스키가 『악령』에서 ‘그것이 없으면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다’고 했던 유토피아의 꿈. 20세기를 거대한 역사의 실험실로 만들었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서양 근대의 역사 속에서 또 다른 버전으로 그려보인 세상. 가깝게는 우리의 80년대가 급진적 정치혁명의 전망 속에서 꿈꾸었던 세상. 그러나 단 한 번도 이 세상에 실현된 적이 없는 세상. 언제나 실현 불가능한 ‘없는 땅’으로만 남을 유토피아.
소설 『금강』은 좌절된 충암의 왕도정치 대동사회의 꿈을 따르고 잇기 위해 만들어진 ‘충암 동계’라는 자생적 조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충암의 후학인 남원 이돈 정희중 양지수 등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충암 동계’는 사림들 간의 결의체를 넘어 농공상農工商의 일반 백성들을 아우르는 조직으로 커나가는데 이 과정에서 소리꾼 출신 여인 ‘연향’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엄격한 신분사회이자 남성 가부장주의가 지배하고 있던 당시에 연향을 비롯해 미금 부용 채선 등으로 이어지는 여성 인물들의 다소는 이상화된 캐릭터가 역사의 원근법을 건너뛴 작가의 소망적 투영인지 아니면 정형화된 역사의 틀을 부수고 살아 있는 당대의 삶을 복원해낸 오랜 탐구와 천착으로부터 나온 생생한 형상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조선조만 하더라도 남녀 재산 균등 분배의 상속 문서 같은 실증적 자료의 발굴을 통해 당시 사회의 새로운 이면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만큼 섣부른 예단은 거둘 일이겠다. 더구나 일반 백성들의 삶에서라면 살림과 양육에 몰두한 여성 노동의 일상으로부터 당연히 자라 나왔을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지혜와 열린 감성 모성적 헤아림은 충분히 그려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남성적 가부장 세계가 장악했던 것은 명분과 허위로 덧칠된 권력의 환상 혹은 세상의 거죽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정이 그렇다면 제주로 내려간 연향이 유배 중인 충암을 정성으로 모시는 한편 소리채를 열고 그곳 사람들로부터 상술을 익히며 갈옷을 만드는 염색법을 배우는 시간이야말로 소설 『금강』이 포착해낸 진실되고 생생한 삶의 모습이자 기나긴 서사의 중핵이라 할 만하다. 연향은 이 과정에서 제주 잠녀들의 소리를 익혀 자신의 소리를 바꾸기도 한다.

연향이 영주 땅으로 찾아온 것은 귤원의 푸른빛이 짙어지기 시작하는 만춘이었다. 아이를 품어낸 여인의 몸이 된 연향은 충암의 적소謫所 인근에 집을 구하고 먹을 것을 마련했다. 제법 실한 갈치와 도미로 국을 끓이고 작은 자리돔 젓갈을 반찬으로 적소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접했다. 학동들의 집에서 보내는 보리와 콩이나 관아의 현관들이 간간이 보내주는 미역 전복 등의 양식들로는 찾아오는 손객들의 입을 감당할 수 없어 연향은 감물을 들인 옷감을 팔았다. 감물 염색은 자맥질에 익숙한 잠녀들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영주의 햇살은 짙고 강하여 염료를 섞어 몇 번만 끓여도 뭍에서는 낼 수 없는 귀하고 부드러운 색채를 냈다. 연향은 뭍으로 오가는 이들에게 적은 이익을 내고 옷감을 거래했다. 또한 방 하나를 내어 기생들의 소리채로 활용하여 생계를 이었다. 기생들의 입소문으로 소리채는 사람들로 넘쳤다. 인근의 초가를 개조하여 제법 반반한 소리채를 만들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름을 지나며 잠녀들의 소리를 듣고 익혀 자신의 소리를 바꾸었다. 잠녀들은 일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연향의 소리를 듣고자 자주 모였다. 연향의 소리는 바닷속까지 울린다는 것이었다.
(1부 159~160쪽)

작가의 문장은 자연스럽고 단단하며 터질 듯이 아름답다. 약간의 들뜸까지 얹힌 채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연향이 충암의 적소에서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고 있는 노동이 그렇게 자연스럽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충암이 꿈꾼 대동사회는 여기서 그 진정한 씨앗을 만난다고 말할 수도 있다. 대동사회가 이념이나 추상적 명분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실현하는 길은 평등한 어울림을 구체적 삶의 계기 안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게 하는 것일 텐데 연향은 스스로의 욕망과 사랑에 충실한 가운데 타자 혹은 자기 밖의 세계와 섞이고 교섭하는 인간 노동의 마당을 열어간다. 제주 잠녀들의 노동요가 연향의 소리 속으로 스며들고 그렇게 해서 섞이고 바뀐 연향의 소리가 다시 잠녀들의 노동의 고통을 위무하는 소리로 재탄생하는 장면은 이 사태의 진실을 정확히 가리킨다. 열리고 어울린다는 것은 자신의 자리를 얼마간이라도 허물지 않고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어쩌면 보다 중요한 국면은 이 과정에서 연향이 우연찮은 계기로 감물 염색을 익히고 물산의 거래에 나서게 되었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의식주의 마련 물산의 채취와 생산 그리고 그것의 교환과 거래에 투여되는 인간 노동의 시간을 대상화하고 도구화하는 모든 이념과 관념이 허위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대동사회를 가로막는 것도 그 노동의 시간을 둘러싼 갈등과 적대며 마침내 가능하게 하는 터전도 그것일 테다. 충암으로 대표되는 사士의 세계는 농공상農工商으로 지탱되는 질서의 표현이자 그 중재와 조정 조화로운 넘어섬의 계기일 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조선조의 사대부들이 이 과업에 실패했다는 것은 역사가 확인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좌절되고 중단되었을망정 그들에게 지속적인 열망과 꿈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는 점에 소설 『금강』의 적지않은 의의가 있다면 그것이 연향 미금 부용 금석 한 별장 정우달 장쇠 등으로 이어지는 단단한 노동과 생활의 세계와 만났을 가능성을 타진하고 탐사하는 지점은 『금강』의 진정 돋보이는 소설적 성취라 할 만하다.
연향의 소리채는 점점 질 좋은 산물의 거래소로 소문이 나고 거래 물목도 늘어나기 시작한다. 영주산에서 나오는 석청이나 한약재들 말린 전복이나 해삼 숙성시켜 깊은 맛을 내는 젓갈 등 다양한 특산 물목들로 소리채의 곳간은 채워진다. 기존 상단과의 갈등은 영주(제주)의 주 상단인 영해상단의 우두머리와 담판을 지어 해결한다. 섬에서 번 돈은 단 한 푼도 뭍으로 가지고 나가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이후 상단의 본격적인 설립과 거래의 확장 사화士禍의 뒷수습 과정에서 연향이나 미금 등이 보여주는 대담한 결단과 책략 심모원려의 수읽기와 수완 자기희생의 용기는 종래 ‘여성성’에 들씌워진 모종의 편견과 틀을 거의 완벽하게 거절하고 배반한다. 얼마간 이상화의 우려가 없지는 않은 대로 소설 『금강』은 인물의 생생한 형상화 방대하고 치밀한 역사적 생활사적 탐구를 짐작게 하는 튼실한 리얼리티의 구축을 통해 신분제와 남성 가부장사회를 내파해온 여성적 살림의 지혜와 감성 노동의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우리를 충분히 설득해낸다.
신사무옥에 의해 충암이 사사賜死되자 연향은 한산으로 올라와 소리채와 상단을 꾸리고 남원 이돈이 주도하는 충암 동계의 실질적인 대행수가 된다. 연향은 정희중의 아들 금석으로 하여금 금강 갓개포에 전포를 꾸리게 하여 갓개포 상단을 출범시킨다. 금석의 딸 미금은 연향 못지않은 뛰어난 수완과 지혜로 거래처를 확보하고 발품꾼들을 조직해내면서 상단을 확장한다. 공주 정지포에 다시 거점을 마련한 상단은 상단의 거래망을 넓히는 한편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백성들의 구휼 대책에도 나선다. 대장간을 갖추고 각종 병장기를 확보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도성 경행상단과도 거래를 트게 되면서 연향은 금수하방을 열고 미금에게 도성 상단의 운영 책임을 맡긴다. 상단의 발품꾼들은 목멱산(남산) 아래 장수촌을 만들어 거주한다. 채선을 행수로 삼은 소리채 아현각은 정국의 동향을 파악하는 충암계의 도성 거점이 된다. 이후 갓개단은 개성의 송상 의주의 만상 등과도 거래를 트면서 전국적인 상단으로 커가고 사절외교와 함께 진행되는 명과의 교역에도 참여한다. 충암 동계의 실질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갓개단은 남원을 정신적 축으로 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조직으로 자라난다. 갓개단은 왜구와 맞서고 부패한 관리를 징치하는 일에도 힘을 보탠다. 이 과정에서 합류한 무장현의 한 별감은 충암 동계의 무장으로 자리잡는 한편 무량사의 과수원이 있는 마을을 확장하고 일에서 물러난 발품꾼들과 흘러들어온 난민들을 모아 도원마을을 일군다. 도원마을은 대동사회의 또 다른 씨앗이기도 하다.
당연히 이러한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을 리는 없다. 사림 세력에 대한 훈구공신들의 견제는 남원을 중심으로 한 충암 동계를 부단히 흔들어댔고 이 과정에서 연향과 미금 채선을 비롯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임진년의 왜란은 결정적 시련이 된다. 충암 동계가 주축이 된 의군은 반군의 무리로 몰리고 왜군의 가혹한 복수가 장수촌 아현각을 휩쓸고 도원마을은 시체의 골짜기를 이루며 완전히 유린된다. 왕실의 밀려난 후손으로 이 땅에 전륜성왕의 시대를 열고자 꿈꾸었던 한산수. 부용과 한산수의 사이에서 태어난 이창을 대장군으로 하여 충암 동계 갓개단의 사람들이 주축이 된 의군들은 백성들이 주인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분연히 일어난다.
그러나 이 같은 서사의 요약은 소설 『금강』에 대한 온당한 대접도 아니거니와 가능한 일도 아닐 테다. 대동세상의 꿈으로 뭉친 숱한 사람들의 열망과 노동이 금강의 물처럼 끊임없이 흘러가고 흘러드는 유장한 흐름만이 이 소설의 요약되지 않는 진실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단 충암 동계 갓개단 사람들에 국한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것이 바로 민중 혹은 백성들의 삶이지 않는가. 살아가는 것 살아가며 그렇게 흘러가는 것 말이다. 가령 온갖 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권력 다툼의 아수라장을 그린 직후에 『금강』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강의 흐름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러나 세상은 태평하였다. 세상은 궁중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달리 백성들은 삶의 터전에서 백성들의 곳간을 채우는 일에 열심이었고 인심과 인정에 따라 흥청거리거나 쪼들리기도 하였다.
(2부 476쪽)

참혹한 임진란의 와중에도 그러하다. 서른 남짓의 장수촌 사람들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길을 잡은 장쇠는 운 좋게 한강의 새벽 포구에서 세곡선을 만나고 두려움에 떠는 도사공을 설득해서 배에 오른다. 가는 길 교동도 섬에서 모처럼의 깊은 잠에 든 장쇠. 그러나 장수촌의 아이들은 어떠했던가.

그러나 아이들은 낯선 곳에서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장수촌의 아이들은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교동도 전체를 헤집고 다녔다. 덩달아서 섬 아이들도 그들과 합세하여 놀이를 벌였다. 처음에는 조개껍데기로 땅 따먹기를 하다가 재미가 덜하면 자치기를 했고 모래밭에서 씨름판을 열기도 했다.
(3부 380쪽)

생육과 번성의 질서는 전란도 막지 못하는 법이다. 아현각의 은우를 끝내 마음에서 놓지 못한 장쇠를 아내 곱례는 용서하기 힘들다. 더구나 곱례의 아비 동만은 장쇠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쓰다 돌아오는 길에 실족사하지 않았는가. 그러거나 부부의 인연은 이어진다. 피난길 장쇠를 따르는 아내 곱례의 걸음이 자꾸 뒤처진다. 판돌이가 슬쩍 말을 붙인다.

“뭐 하느라 그리 못 걷소? 누이.”
“두 사람이 함께 걷는다 생각하시오. 그런 소릴 할 수 있는지?”
“두 사람이라고? 또 아이가 들어섰다는 말인가?”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오? 사내들 하는 짓이. 참.”
“제수는 참 용하오. 어느 틈에 어루고 어루기만 하면 애도 잘 들어서고 놓기도 잘하고.”
(3부 385쪽)

그러나 피난 후 도원마을에 자리잡고 출산을 기다리던 장수댁 곱례는 왜군의 무자비한 칼날에 죽음을 맞는다. 뱃속의 아이와 함께(‘시적골의 비사’에 나오는 지옥도를 읽으며 80년 광주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소설 『금강』은 ‘지금-이곳’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마무리를 짓자. 관세음보살의 미소만을 그리며(이것은 어머니 연향에 대한 초발심이자 전륜성왕의 시대를 기원하는 모든 중생들에 대한 발원이기도 했다) 한정의 후원에 은거하고 있던 부용이 남원의 집을 찾는다. 한 편의 화상畵像을 완성하여 벽에 모신 뒤였다. 부용은 묻는다.

“어미가 꿈꾸었던 것은 진정 무엇이었습니까?”
“어미의 꿈이라? 꿈은 아닐세. 우린 그저 스승님의 가르침을 실현할 뿐이네. 그 가르침이란 생각해보면 너무도 당연하고 쉬운 일이네. 아침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 집에 음식을 나누는 일이고 지쳐 쉴 곳이 없는 이들에게 쉴 곳을 내주는 일일세. 이른 새벽 사람을 가리지 않고 들에 나가 서로 인사하고 함께 일을 하는 것이고 늦은 저녁 나란히 어깨를 하고 돌아와 얼굴을 보고 웃는 일이기도 하겠지. 노인이 아이를 돌보고 아이가 어른을 공경하면 더욱 좋을 것이고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한번 더 돌아본다면 아름다운 세상을 이룰 것이야. 어미는 그렇게 살아서 사람들을 중히 여기는 세상을 이루고자 하셨지.”
(3부 94~95쪽)

그렇다면 아름다운 세상은 어떻게 오는가. 아니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부용의 아들 창은 의군을 이끌고 새로운 세상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어서기로 결심한다. 출전을 앞두고 창은 무량사로 어미 부용을 찾는다. 창은 어미에게 절을 하고 부용도 아들에게 맞절을 한다. 부용이 입을 연다.

“어미가 장군을 낳기 전 한 꿈을 꾸었습니다. 용이 하늘을 나는 꿈이었습니다. (……) 이제 아들이 장수가 되어 용이 되고자 나간다 하니 감개무량합니다. 어미는 지금부터 이곳에 남아 그대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대는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것 한 가지만 약속하면 됩니다.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은 할머니 연향으로부터 이어온 것입니다. 장하십니다. 부디 물러서지 말고 나가세요. 휘하 장수들이 보고 있습니다. 자 어서 가세요.”(3부 497쪽)

아들은 아마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어미는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모성의 자연스런 발현이기도 할 테지만 흘러가고 흘러오는 역사에 대한 믿음이기도 할 테다. 어머니 연향으로부터 흘러온 꿈과 열망. 역사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누군가는 그 역사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그 의미가 바르고 고른 세상 뭇 생명과 함께하는 인간의 존엄을 향해 실현되기를 희망할 수는 있다. 이것은 수난과 희생을 역사의 대의로 포장하는 일과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그런 수난과 희생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 역사의 이름으로 명령할 수도 없다. 어떤 희생과 수난도 그 자체로는 보상되거나 위로될 수 없는 것이다.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어미 부용의 소망에는 바로 그 힘든 진실이 담겨 있다. 아들의 길은 죽음의 길이다. 어미는 그 죽음의 길을 훤히 보면서 “자 어서 가세요” 하고 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말한다. “그대는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삼킨 말은 ‘살아서’일 것이다. 이것은 양립 불가능한 사태다.
소설 『금강』의 목소리는 전체적으로 역사의 대의 쪽에 서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연향으로부터 부용으로 이어져온 모성적 기다림의 강물이 그 대의의 조급함과 날 선 칼날을 감싸면서 ‘기다림’이라는 보이지 않는 역사의 강물을 우리로 하여금 느끼고 상상하게 한다. 긴 소설의 마지막 양현량과 금석이 나누는 대화는 그렇게 끝난다.

“이곳에서 부용을 볼 수 있을까 하였습니다.”
“부용 아씨는 무량사에서 그들을 기다린다 하였습니다.”
(3부 503쪽)

어쩌면 우리 역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가 바로 그들이 기다린 사람일 것이다. 연향이 꿈꾸고 부용이 꿈꾸었던 아름다운 세상은 그 기다림 속에서 이미 우리 곁을 스쳐 흘러가고 있을 테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금강의 강물이다. 역작을 완성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 작가 소개

저자 : 김홍정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계간지 「문학사랑」 (오늘의 문학사) 신인작품상(소설)으로 등단하였으며 작품 활동으로는 단편집 『창천으로 오세요』(단편 한밭소설: 2014년) 『해가 서산에 지면』(단편 작가마루: 2014년) 『양자강 이야기』(단편 작가마루: 2015년)와 소설집 『그 겨울의 외출』(오늘의 문학사) 시집 『다시 바다보기』 등 다수가 있다. 현재는 공주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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