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불세출의 영웅 칭기즈칸”
인류의 역사에서 모든 전쟁 기록을 없애버리더라도
칭기즈 칸의 전쟁사만 남겨 놓는다면 그 가운데에서 모든
군사적 교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맥아더 원수
몽골족이 세계사 속에서 그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은 8세기 중엽 흑룡강의 중상류인 에르군네강 유역에서 였다. 그때 그들은 주변의 몇몇 제국들에 눌려 에르군네강 부근에 고요히 잠복해 있었다. 그러던 중 9세기 중엽 키르키즈족이 막강한 위구르제국을 붕괴시키면서 기존의 국제 정세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비슷한 시기에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던 토번제국과 중원의 당제국도 붕괴조짐을 보이게 되었다.
위구르·토번·당 이 3대 제국의 와해와 쇠퇴는 눌려서 지내던 군소 세력들에게 일대 발흥의 기회를 주었다. 몽골족도 그때를 틈타 동몽골 고원의 오난강과 컬렌호 일대로 이동해 나간다. 그들이 마침내 대망의 몽골고원 진입에 성공하게 된 것은 11~12세기 무렵이었다.
몽골왕국이 성립될 당시 고원의 곳곳에는 유력한 유목 부족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고원의 절반은 광활한 대초원 지대지만 그 나머지는 원시림과 호수 그리고 반사막 지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때문에 고원에 거주하던 유목 부족들 간에는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사육하는 가축의 종류와 생활양식에 차이가 있었다. 때문에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해간 여러 부족들 중 몽골고원의 정세를 변화시킬 수 있게 된 세력은 타타르·나이만·메르키트 몽골 등 다섯 부족이었다.
몽골왕국 성립 후 고원을 둘러싼 주변의 3대 세력은 금·서하·서요였다. 그 중 고원의 정세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세력은 중원의 금나라였다. 금나라의 여진족은 자신들이 확고한 우위를 지킬 수 있을 때까지 대화와 타협을 인정치 않는 철저한 제로섬 게임의 신봉자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몽골고원에 개입하는 순간 고원내의 세력들은 재앙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금나라의 대(對) 북방 내지 유목민 정책의 주안점은 거란과 마찬가지로 몽골고원에 대 세력이 형성되는 것을 사전에 막는 데 있었다. 고원 내의 제 세력들을 서로 분열 대립시키는 그 정책은 가장 작은 비용으로 가장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금나라는 먼저 타타르부를 분열시킨 뒤 그들은 자신들의 변방 용병부대로 삼았다. 그들을 통해 고원 내의 늑대들이 호랑이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타타르부를 앞세운 금나라의 대북방 정책은 즉각 효력을 발휘해 고원 안의 세력들은 서로 물고 물리는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금나라의 개입 정책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자를 본 세력은 몽골부였다. 몽골부는 카볼칸 때 몽골왕국이라는 정치적 독립체를 결성한 후 인근의 타타르는 물론 금나라의 변방까지도 공격했던 고원의 문제아였다. 몽골고원의 가장 배고픈 늑대였던 몽골부는 금나라와 타타르부의 집중 견제를 받아 2대 칸인 암바카이 칸이 사로잡히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몰렸다.
타타르의 용병 부대에 사로잡힌 암바카이 칸은 금나라로 끌려가 나무로 만들어진 당나귀 형틀에 못박혀 죽었다. 『몽골비사』에는 그가 죽음을 앞두고 남긴 다음과 같은 유언이 실려 있다.
나는 타타르인에게 잡혔다.
너희들은 다섯 손가락의 손톱이 모두 닳아 없어질 때까지
열 손가락이 모두 마모될 때까지 나의 원수를 갚아다오.
당시 몽골부가 처한 처절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 주는 유언이었다. 타타르 용병부대를 통한 금나라의 납치와 테러는 귀한 자와 천한 자를 가리지 않고 행해졌다. 때문에 위기에 싸인 몽골부는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들은 후계 칸의 자격을 제시 한 암바카이 칸의 유언에 따라 키야트씨족 출신인 괴력을 가진 용사 코톨라를 3대 칸으로 선출했다. 코톨라를 옹립한 몽골부는 출정에 앞서 몽골족을 지켜 주는 하늘 즉 멍케 텡게리(‘영원한 하늘’이란 뜻으로 커케 뎅게리 즉 ‘푸른 하늘’과 동의어임)에게 가호를 빌었다. 그러나 역사상 13차전(몽골부와 타타르부가 13번 전쟁을 했었기에 붙여 진 이름)으로 알려진 몽골부와 타타르부 간의 전쟁은 몽골부가 분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몽골 측의 패배로 끝났다.
타타르전에서의 패배는 코톨라칸의 전쟁 수행 자질과 능력에 대한 타이치오트씨족 출신 귀족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그 같은 반발은 키야트와 타이치오트 씨족 간의 내분으로 발전했으며 몽골왕족은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몽골왕국의 붕괴는 질서가 잡힌 대규모 늑대 집단을 개개의 늑대들로 흐트러뜨린 사건이었다. 원래부터 배고픈 늑대 집단이었던 몽골부의 붕괴는 몽골고원의 기존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변화를 몰고 오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적과 동지를 가리지 않고 서로 물어뜯었다.
몽골고원은 금나라가 원했던 대로 늑대들의 싸움터로 변하고 말았다. 지도자를 잃은 몽골부는 안팎에서 이전투구를 벌였다. 그런 와중에 몽골부의 새로운 칸을 꿈꾸는 자들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칭기즈 칸의 아버지 예수게이 바토르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 한편 금나라의 대북방 정책은 날이 갈수록 잔인해져 세종(1161~1189)은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과 같은 ‘유목민 줄이기 정책’을 만들었다. 몽골고원의 남자들을 모두 죽여 없앤다는 계획이었다. 세종의 유목민 학살 계획은 3년마다 어김없이 실행됐다. 3년 주기의 학살 계획은 몽골부족들에게 골수에 스며드는 원한을 심어 주었다. 건장한 남자들은 무참히 학살당했고 여자나 어린아이들은 굴비처럼 엮어져 울부짖으며 산동이나 하북의 농가에까지 팔려 나갔다.
진정한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는 말은 고원에서도 통하는 것이었는가. 몽골부에서 수많은 대권 주자들이 각자의 포부와 미래상을 제시하며 등장했다. 그들 중의 대부분은 몽골왕국의 지배 씨족이었던 타이치오트나 키야트계 귀족들이었다. 타이치오트나 키야트 씨족은 그 규모들이 다른 씨족의 10여 배가 될 만큼 컸다. 몽골왕국 붕괴 후 두 씨족에는 약 20개의 독립적인 무력 집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카볼 칸과 암바카이 칸의 후예들이 이끄는 그 무력 집단들은 서로가 서로를 노리며 대화나 타협을 거부했다. 특히 키야트와 타이치오트 씨족의 귀족들은 ‘13차전’을 기점으로 해서 상대방을 타타르부 이상으로 증오하고 경멸하고 있었다. 초기의 주자들 중에서 가장 빛을 발한 사람은 키야트계 출신의 예수게이 바토르였다. 예수게이가 처음으로 능력을 과시한 것은 몽골왕국과 타타르부 간의 13차전에서였다. 그는 그 전쟁에서 코리 보카와 테무진 우게를 비롯한 타타르족의 귀족들을 사로잡다.
몽골부가 타타르부에 밀리는 상황에서 거둔 예수게이의 놀라운 공적은 주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예수게이가 그때 태어난 첫 아들에게 적장의 이름인 ‘테무진’이라는 명칭을 붙여 준 것도 자신의 공적을 과시하려는 의도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주목받게 된 진짜 배경은 다른 데에 있었다.
예수게이는 카볼 칸의 둘째 아들인 바르탐 바아토르의 3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큰형은 키야트 창시오트 씨족의 시조인 멩게투 키얀이며 둘째 형은 네쿤 타이지다. 네쿤 타이지는 뒤에 칭기즈칸과 애증을 주고받았던 코차르 베키의 아버지인 사람이다. 또한 예수게이의 막내동생은 칭기즈 칸 때까지 생존했던 다아리타이 오드치긴이다. 고대 몽골 사회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유산을 장남이 상속했으며 나머지 아들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아주 적었다. 이는 예수게이에게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몽골고원은 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땅이었다. 예수게이에게는 누구도 갖지 못한 능력과 자질이 있었다. 그것은 뛰어난 대화와 타협술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직한 타협자라기 보다는 권모술수로 무장된 냉혹한 타협자라고 말할 수 있었다. 상대편에게 두려움을 품게 만드는 그 같은 능력은 13차전을 계기로 행동에 옮겨졌다.
예수게이의 첫 번째 대화 상대는 타이치오트 씨족의 귀족인 타르코타이 키릴토크였다. 그는 암바카이 칸의 장남인 아달칸의 아들로 타이치오트 씨족에서는 가장 강력한 무력을 가진 자였다.
양씨족의 귀족들이 극렬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맺어진 예수게이와 키릴토크 간의 동맹은 종전의 사고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비난 속에서 탄생한 이 동맹은 두 인물을 일거에 몽골부의 실력자로 부상시켰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피를 나눈 형제나 사촌들로부터 고립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했다.
예수게이의 두 번째 대화 상대는 케레이트부의 실력자 옹 칸이었다. 예수게이가 옹 칸에게 접근하는 수법은 그가 얼마나 타이밍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행동하는 냉철한 도박사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옹 칸은 예수게이와 나이가 같은 또래로 피비린내 나는 형제간의 유혈극을 거쳐 대 칸에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대칸에 등극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숙부인 구르칸의 쿠데타를 만나 실각당할 위기에 처했다. 궁지에 몰린 옹칸은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메0.0르키트부의 족장인 토그토아 베키에게 주는 등 동맹자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같은 노력도 헛되이 옹 칸은 고립되어 갔고 쿠데타의 주인공 구르 칸은 서서히 케레이트부의 대 칸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 같은 절망의 순간에 예수게이가 옹 칸 앞에 등장해 그의 입지를 회복시켜 주었다. 그리고 옹 칸이 감격에 겨워 눈물을 줄줄 흘리는 상황속에서 의형제의 맹약 즉 한편이라는 맹약을 맺었다. 태어난 곳은 달라도 죽는 곳은 같다.
이 카라툰의 한편이라는 맹약은 뜻밖의 재난을 당해서 죽은 예수게이가 어린 아들 칭기즈 칸에게 남겨 준 가장 고귀한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인 야망의 결정판이었다.
예수게이의 세 번째 대화 상대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던 몽골 내 씨족들이었다. 그들에 대한 접근법은 정략결혼이었다. 아마도 장성할 아들이 줄줄이 남아있던 예수 게이에게 있어서 정략결혼이라는 유혹은 매우 달콤한 꿈이었을 것이다.
2016년 03월
평 역 자
▣ 주요 목차
제1장 고난의 시작
아버지와 아들 15
부르테 21
예수게이의 죽음 27
제2장 시련의 시대
자므카와의 우정 39
수난 45
도둑맞은 말 55
결혼 62
제3장 일어날 기회
토그릴과의 첫 대면 73
새벽의 침입자들 88
메르키트 부족과의 전투 100
자므카와의 결별 118
테무친을 찾아오는 사람들 124
자므카와의 충돌 129
복수 143
코이텐의 전투 152
두 사람의 승리 159
타타르를 토벌하고... 172
제4장 전쟁의 서막
함정을 만들었지만... 189
자므카의 흉계 211
사막에서의 혈전 223
새로운 준비 239
다시 밀려 온 먹구름 242
옹 칸과 센굼의 최후 256
꽃을 사랑하는 왕 279
허망한 최후 291
쿨란과 자므카 305
제5장 대몽골제국 선포
대 쿠릴타이와 대망 319
원정을 위한 준비 330
고비사막을 넘어서 339
서하의 종말 352
제6장 칭기즈 칸의 시작
새로운 계획 373
이어지는 전투들 378
폭풍 폭풍... 388
선종의 항복 401
천도가 부른 재앙 412
코라즘 원정 421
코라즘의 멸망 424
제7장 칭기즈 칸의 최후
정복자의 최후 435
“불세출의 영웅 칭기즈칸”
인류의 역사에서 모든 전쟁 기록을 없애버리더라도
칭기즈 칸의 전쟁사만 남겨 놓는다면 그 가운데에서 모든
군사적 교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맥아더 원수
몽골족이 세계사 속에서 그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은 8세기 중엽 흑룡강의 중상류인 에르군네강 유역에서 였다. 그때 그들은 주변의 몇몇 제국들에 눌려 에르군네강 부근에 고요히 잠복해 있었다. 그러던 중 9세기 중엽 키르키즈족이 막강한 위구르제국을 붕괴시키면서 기존의 국제 정세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비슷한 시기에 중앙아시아를 지배하던 토번제국과 중원의 당제국도 붕괴조짐을 보이게 되었다.
위구르·토번·당 이 3대 제국의 와해와 쇠퇴는 눌려서 지내던 군소 세력들에게 일대 발흥의 기회를 주었다. 몽골족도 그때를 틈타 동몽골 고원의 오난강과 컬렌호 일대로 이동해 나간다. 그들이 마침내 대망의 몽골고원 진입에 성공하게 된 것은 11~12세기 무렵이었다.
몽골왕국이 성립될 당시 고원의 곳곳에는 유력한 유목 부족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고원의 절반은 광활한 대초원 지대지만 그 나머지는 원시림과 호수 그리고 반사막 지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때문에 고원에 거주하던 유목 부족들 간에는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사육하는 가축의 종류와 생활양식에 차이가 있었다. 때문에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해간 여러 부족들 중 몽골고원의 정세를 변화시킬 수 있게 된 세력은 타타르·나이만·메르키트 몽골 등 다섯 부족이었다.
몽골왕국 성립 후 고원을 둘러싼 주변의 3대 세력은 금·서하·서요였다. 그 중 고원의 정세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세력은 중원의 금나라였다. 금나라의 여진족은 자신들이 확고한 우위를 지킬 수 있을 때까지 대화와 타협을 인정치 않는 철저한 제로섬 게임의 신봉자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몽골고원에 개입하는 순간 고원내의 세력들은 재앙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금나라의 대(對) 북방 내지 유목민 정책의 주안점은 거란과 마찬가지로 몽골고원에 대 세력이 형성되는 것을 사전에 막는 데 있었다. 고원 내의 제 세력들을 서로 분열 대립시키는 그 정책은 가장 작은 비용으로 가장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금나라는 먼저 타타르부를 분열시킨 뒤 그들은 자신들의 변방 용병부대로 삼았다. 그들을 통해 고원 내의 늑대들이 호랑이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타타르부를 앞세운 금나라의 대북방 정책은 즉각 효력을 발휘해 고원 안의 세력들은 서로 물고 물리는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금나라의 개입 정책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자를 본 세력은 몽골부였다. 몽골부는 카볼칸 때 몽골왕국이라는 정치적 독립체를 결성한 후 인근의 타타르는 물론 금나라의 변방까지도 공격했던 고원의 문제아였다. 몽골고원의 가장 배고픈 늑대였던 몽골부는 금나라와 타타르부의 집중 견제를 받아 2대 칸인 암바카이 칸이 사로잡히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몰렸다.
타타르의 용병 부대에 사로잡힌 암바카이 칸은 금나라로 끌려가 나무로 만들어진 당나귀 형틀에 못박혀 죽었다. 『몽골비사』에는 그가 죽음을 앞두고 남긴 다음과 같은 유언이 실려 있다.
나는 타타르인에게 잡혔다.
너희들은 다섯 손가락의 손톱이 모두 닳아 없어질 때까지
열 손가락이 모두 마모될 때까지 나의 원수를 갚아다오.
당시 몽골부가 처한 처절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 주는 유언이었다. 타타르 용병부대를 통한 금나라의 납치와 테러는 귀한 자와 천한 자를 가리지 않고 행해졌다. 때문에 위기에 싸인 몽골부는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들은 후계 칸의 자격을 제시 한 암바카이 칸의 유언에 따라 키야트씨족 출신인 괴력을 가진 용사 코톨라를 3대 칸으로 선출했다. 코톨라를 옹립한 몽골부는 출정에 앞서 몽골족을 지켜 주는 하늘 즉 멍케 텡게리(‘영원한 하늘’이란 뜻으로 커케 뎅게리 즉 ‘푸른 하늘’과 동의어임)에게 가호를 빌었다. 그러나 역사상 13차전(몽골부와 타타르부가 13번 전쟁을 했었기에 붙여 진 이름)으로 알려진 몽골부와 타타르부 간의 전쟁은 몽골부가 분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몽골 측의 패배로 끝났다.
타타르전에서의 패배는 코톨라칸의 전쟁 수행 자질과 능력에 대한 타이치오트씨족 출신 귀족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그 같은 반발은 키야트와 타이치오트 씨족 간의 내분으로 발전했으며 몽골왕족은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몽골왕국의 붕괴는 질서가 잡힌 대규모 늑대 집단을 개개의 늑대들로 흐트러뜨린 사건이었다. 원래부터 배고픈 늑대 집단이었던 몽골부의 붕괴는 몽골고원의 기존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변화를 몰고 오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적과 동지를 가리지 않고 서로 물어뜯었다.
몽골고원은 금나라가 원했던 대로 늑대들의 싸움터로 변하고 말았다. 지도자를 잃은 몽골부는 안팎에서 이전투구를 벌였다. 그런 와중에 몽골부의 새로운 칸을 꿈꾸는 자들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칭기즈 칸의 아버지 예수게이 바토르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 한편 금나라의 대북방 정책은 날이 갈수록 잔인해져 세종(1161~1189)은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과 같은 ‘유목민 줄이기 정책’을 만들었다. 몽골고원의 남자들을 모두 죽여 없앤다는 계획이었다. 세종의 유목민 학살 계획은 3년마다 어김없이 실행됐다. 3년 주기의 학살 계획은 몽골부족들에게 골수에 스며드는 원한을 심어 주었다. 건장한 남자들은 무참히 학살당했고 여자나 어린아이들은 굴비처럼 엮어져 울부짖으며 산동이나 하북의 농가에까지 팔려 나갔다.
진정한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는 말은 고원에서도 통하는 것이었는가. 몽골부에서 수많은 대권 주자들이 각자의 포부와 미래상을 제시하며 등장했다. 그들 중의 대부분은 몽골왕국의 지배 씨족이었던 타이치오트나 키야트계 귀족들이었다. 타이치오트나 키야트 씨족은 그 규모들이 다른 씨족의 10여 배가 될 만큼 컸다. 몽골왕국 붕괴 후 두 씨족에는 약 20개의 독립적인 무력 집단이 존재하고 있었다. 카볼 칸과 암바카이 칸의 후예들이 이끄는 그 무력 집단들은 서로가 서로를 노리며 대화나 타협을 거부했다. 특히 키야트와 타이치오트 씨족의 귀족들은 ‘13차전’을 기점으로 해서 상대방을 타타르부 이상으로 증오하고 경멸하고 있었다. 초기의 주자들 중에서 가장 빛을 발한 사람은 키야트계 출신의 예수게이 바토르였다. 예수게이가 처음으로 능력을 과시한 것은 몽골왕국과 타타르부 간의 13차전에서였다. 그는 그 전쟁에서 코리 보카와 테무진 우게를 비롯한 타타르족의 귀족들을 사로잡다.
몽골부가 타타르부에 밀리는 상황에서 거둔 예수게이의 놀라운 공적은 주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예수게이가 그때 태어난 첫 아들에게 적장의 이름인 ‘테무진’이라는 명칭을 붙여 준 것도 자신의 공적을 과시하려는 의도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주목받게 된 진짜 배경은 다른 데에 있었다.
예수게이는 카볼 칸의 둘째 아들인 바르탐 바아토르의 3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큰형은 키야트 창시오트 씨족의 시조인 멩게투 키얀이며 둘째 형은 네쿤 타이지다. 네쿤 타이지는 뒤에 칭기즈칸과 애증을 주고받았던 코차르 베키의 아버지인 사람이다. 또한 예수게이의 막내동생은 칭기즈 칸 때까지 생존했던 다아리타이 오드치긴이다. 고대 몽골 사회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유산을 장남이 상속했으며 나머지 아들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아주 적었다. 이는 예수게이에게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몽골고원은 능력이 있는 자에게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땅이었다. 예수게이에게는 누구도 갖지 못한 능력과 자질이 있었다. 그것은 뛰어난 대화와 타협술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직한 타협자라기 보다는 권모술수로 무장된 냉혹한 타협자라고 말할 수 있었다. 상대편에게 두려움을 품게 만드는 그 같은 능력은 13차전을 계기로 행동에 옮겨졌다.
예수게이의 첫 번째 대화 상대는 타이치오트 씨족의 귀족인 타르코타이 키릴토크였다. 그는 암바카이 칸의 장남인 아달칸의 아들로 타이치오트 씨족에서는 가장 강력한 무력을 가진 자였다.
양씨족의 귀족들이 극렬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맺어진 예수게이와 키릴토크 간의 동맹은 종전의 사고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비난 속에서 탄생한 이 동맹은 두 인물을 일거에 몽골부의 실력자로 부상시켰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피를 나눈 형제나 사촌들로부터 고립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했다.
예수게이의 두 번째 대화 상대는 케레이트부의 실력자 옹 칸이었다. 예수게이가 옹 칸에게 접근하는 수법은 그가 얼마나 타이밍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행동하는 냉철한 도박사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옹 칸은 예수게이와 나이가 같은 또래로 피비린내 나는 형제간의 유혈극을 거쳐 대 칸에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대칸에 등극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숙부인 구르칸의 쿠데타를 만나 실각당할 위기에 처했다. 궁지에 몰린 옹칸은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메0.0르키트부의 족장인 토그토아 베키에게 주는 등 동맹자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같은 노력도 헛되이 옹 칸은 고립되어 갔고 쿠데타의 주인공 구르 칸은 서서히 케레이트부의 대 칸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 같은 절망의 순간에 예수게이가 옹 칸 앞에 등장해 그의 입지를 회복시켜 주었다. 그리고 옹 칸이 감격에 겨워 눈물을 줄줄 흘리는 상황속에서 의형제의 맹약 즉 한편이라는 맹약을 맺었다. 태어난 곳은 달라도 죽는 곳은 같다.
이 카라툰의 한편이라는 맹약은 뜻밖의 재난을 당해서 죽은 예수게이가 어린 아들 칭기즈 칸에게 남겨 준 가장 고귀한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인 야망의 결정판이었다.
예수게이의 세 번째 대화 상대는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던 몽골 내 씨족들이었다. 그들에 대한 접근법은 정략결혼이었다. 아마도 장성할 아들이 줄줄이 남아있던 예수 게이에게 있어서 정략결혼이라는 유혹은 매우 달콤한 꿈이었을 것이다.
2016년 03월
평 역 자
▣ 주요 목차
제1장 고난의 시작
아버지와 아들 15
부르테 21
예수게이의 죽음 27
제2장 시련의 시대
자므카와의 우정 39
수난 45
도둑맞은 말 55
결혼 62
제3장 일어날 기회
토그릴과의 첫 대면 73
새벽의 침입자들 88
메르키트 부족과의 전투 100
자므카와의 결별 118
테무친을 찾아오는 사람들 124
자므카와의 충돌 129
복수 143
코이텐의 전투 152
두 사람의 승리 159
타타르를 토벌하고... 172
제4장 전쟁의 서막
함정을 만들었지만... 189
자므카의 흉계 211
사막에서의 혈전 223
새로운 준비 239
다시 밀려 온 먹구름 242
옹 칸과 센굼의 최후 256
꽃을 사랑하는 왕 279
허망한 최후 291
쿨란과 자므카 305
제5장 대몽골제국 선포
대 쿠릴타이와 대망 319
원정을 위한 준비 330
고비사막을 넘어서 339
서하의 종말 352
제6장 칭기즈 칸의 시작
새로운 계획 373
이어지는 전투들 378
폭풍 폭풍... 388
선종의 항복 401
천도가 부른 재앙 412
코라즘 원정 421
코라즘의 멸망 424
제7장 칭기즈 칸의 최후
정복자의 최후 435
01. 반품기한
- 단순 변심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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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반품 배송비
반품사유 | 반품 배송비 부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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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
03. 배송상태에 따른 환불안내
진행 상태 | 결제완료 | 상품준비중 |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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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태 | 주문 내역 확인 전 | 상품 발송 준비 중 |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
환불 | 즉시환불 |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
04. 취소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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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환불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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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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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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