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44개의 사건 44개의 추리
그리고 44개의 휴머니티!
이 작품집은 한국 현대 추리문학의 아버지 김내성의 1937년 작품인「가상범인」부터 2012년 작품인 홍성호의 「B사감 하늘을 날다」까지 즉 근대에서 현대의 작품까지 아우른 만큼 추리문학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양과 질 모두에서 독자들을 만족시킬 것이다. 각 작품은 이야기의 트렌드와 반전 미스터리적인 재미를 추리소설이라는 하나의 코드를 통해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하 작품 해설에서 발췌)
* 추리소설 본래의 맛 본격 미스터리!
김내성의 「가상범인」은 1935년 12월 일본 잡지 『프로필』에 실린 「탐정 소설가의 살인」을 대폭 개작한 작품으로 탐정 유불란이 등장하는 첫 번째 작품이다. 유불란은 사랑하는 연인 이몽란을 위해 희대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진 살인 범인으로 내몰린 가련한 여인 그를 구하기 위한 탐정의 활약 등에서 본격 미스터리의 요소를 골고루 갖추었다.
김성종의 「회색의 벼랑」은 그의 소설에서 몇 되지 않는 본격물의 취향이 보이는 소설이다. 「회색의 벼랑」에는 호텔에서 자살한 한 여인 그녀의 신원을 파헤치는 한 홍콩 특파원이 등장한다. 이제 사건은 어떻게 될까?
이상우는 1961년 「신 임꺽정전」으로 문단에 데뷔한 후 대부분 본격 미스터리 계열의 작품을 발표했다. 「첫눈 속에 영혼을 묻다」 역시 드라이한 문체와 빠른 전개를 보여주며 본격 미스터리에 충실하게 한달음에 결말로 다가간다.
고 이경재 작가의 「광시곡」은 그가 남긴 몇 안 되는 본격 미스터리물이다. 자유분방한 패션계의 거물 김상섭 SS 김이 살해당한다. 살해 흉기는 가위. 곧바로 그와 스캔들을 일으킨 여자들이 지목된다. 범인이 만든 트릭은 어떻게 깨어질 것인가?
황미영의 「함정」은 아내의 자살이 살인으로 둔갑한 내막을 그리고 있다. 아내를 죄인으로 내몰고 정신병자처럼 대한 남편이 죽음으로 복수한 아내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 기저에는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고 자신의 아이마저 내버린 비정함이 깔려 있다. 아내가 베란다 난간에서 산화하기 직전 남편에게 한 말은 남편뿐만 아니라 독자의 귓전에서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소설 『마루타』로 이름을 알린 정현웅의 단편 「정형외과 의사 부인 살인사건」은 숨기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의 대결을 그린 수작이다. 마조히즘 성향의 사라진 아내. 그리고 간밤에 집을 방문한 의문의 여인. 남겨진 남편과 실종사건을 수사해야 하는 형사. 사실 이 정도의 구도만 들려줘도 미스터리 마니아들은 아 범인은 OO이네 하고 지목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면에 숨겨진 일들은 무엇일까?
서미애의 「반가운 살인자」는 동명의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져 그 우수성이 입증된 소설이다. 연쇄살인범을 쫓는 것은 형사만의 전유물인가. 그러한 설정을 살짝 비틀고 IMF 이후 당대 현실을 잘 버무린 이 소설은 많은 독자의 심금을 울렸다. 가장이라기엔 오히려 가족의 좀이 된 아빠가 살인자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은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공감을 갖게 한다.
강형원의 「7번째 신혼여행」은 어디서 보았음직한 본격의 클리셰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지금껏 살인을 저질러온 부인. 그것을 막으려는 남편.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그 외 이대환의 「알리바바의 알리바이와 불가사리한 불가사의」 정명섭의 「흙의 살인」 신재형의 「그들의 시선」 도진기의 「선택」 조동신의 「포인트」 홍성호의 「B사감 하늘을 날다」 등이 본격물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 본격? 모범생만 답인 줄 아니? 아웃사이더 범죄소설도 있다고!
영미권에서는 이제 ‘추리소설’을 지칭해 광의적 의미에서 ‘크라임노벨(Crime Novel)’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과거 탐정소설이야 ‘디텍티브 스토리(Detective Story)’로만 한정해도 됐겠지만 너무 많은 파생 장르와 함께 그것을 아우를 단어가 적절치 않았던 탓이다. 물론 여기서 지칭하는 범죄소설은 협의의 범죄소설이란 사실을 밝힌다.
황세연의 「IMF 나이트」는 범죄에 마주 선 인간 군상을 다양한 방편으로 문자화시킨 수작이다. 과연 내 눈앞에 시체 한 구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IMF 나이트」라는 제목에서처럼 각각의 등장인물은 비루하고 때론 안타까운 각각의 IMF스러운 한을 가진 인물들이다. 블랙코미디라기에는 가장 한국적이고 처절한 추리소설이 바로 「IMF 나이트」가 아닐까?
노원의 「위기의 연인들」은 완전범죄를 꿈꾸는 또 그것으로 여자와 재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한 청년의 몰락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완벽에 가까운 범죄소설의 플롯을 보여준다. 도심에서 벌어지는 총격전 거기에 끼어든 거대 마피아와 조무래기 청년 범죄자들 그리고 이어지는 결말 반전처럼 등장하는 산화한 주인공의 마지막 단언. “혜린은 코소보에 가기나 할까?”
현정의 「포말」은 물욕을 좇는 인간들의 내면을 범죄에 투영시켜 하나로 단안화시킨 작품이다. 목적을 가진 인간은 때론 얼마나 어리석을 수 있는가. “인간은 어쩌면 인간”이기에 모두가 힘들고 모두가 재물을 찾아 움직인다. 그러나 그것이 정상적이지 못한 경로일 때 어떤 파국을 가지고 오는지 추리소설의 형태를 빌어 구운 식빵에 잼을 바르듯 차근차근 보여준다.
김차애의 「살인 레시피」는 제목에서부터 흥미를 자극한다. 살인에도 레시피가 필요한 것일까? 김차애적인 상상력은 그것에 대해 때론 레시피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부추긴다. ‘메뉴를 짜고 예산을 세우며’ ‘미리 다지고 썰어두며’ ‘맛을 결정하는 숙성기간’ 등으로. 그리고 작가는 맛깔난 요리를 독자에게 던진다.
곽재동은 현실에서 있을지 모를 완전범죄에 관해 「안락사」를 끌어들였다. 할머니가 말한다. 나 좀 죽여줘. 당장 돈이 급한 주인공은 어물쩍 그것을 받아들이고 만다. 할머니가 주기로 한 도자기를 사례금처럼 받기로 하며. 곽재동의 「안락사」는 호기롭고 또 흥미로우며 잘 마무리된 결말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어때 이 정도면 완전범죄 아냐?’ 하고 독자에게 되묻듯이.
김연의 「그대 안의 악마」는 요란스러운 헤비메탈을 듣다 갑자기 멈추는 듯한 결말을 보여준다. 산 속의 고즈넉한 산장에서 벌어지는 록페스티벌. 그리고 벌어지는 살인 살인들. 살인자가 누군지도 알겠다. 왜 이 일이 벌어졌는지도 이제 알았다. 그래서 외치고 싶다. 살인자는 저들이고 나 여기 있다고.
박하익의 「마지막 장난」은 설마 하고 되묻게 만드는 소설이다. 범죄 그러나 크지 않은 그저 사람을 놀라게 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악동들의 재담이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처럼 커져 그들을 잠식하는 과정을 그렸다. 물론 현실에서 있기 힘들다. 그러나 있을 법한 일이다.
장세연의 「세 번째 표적」은 자본이라는 현대사회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에 얽혀든 사람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우리는 흔히 ‘돈이면 안 되는 게 어디 있느냐?’라고 말한다. 어쩌면 작가는 ‘돈으로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수사반장」을 오랫동안 집필했던 김남 작가는 적어도 한국의 범죄에 대해서만은 가장 많은 사례를 수집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2012년 여름호부터 『계간 미스터리』에 연재되는 「수사반장의 추억」에서 위트 넘치게 표현한 범죄 사례만 해도 그렇다. 그것을 작가적인 상상력으로 탄생시킨 작품이 「여자는 한 번 승부한다」일 것이다.
* 한국의 서스펜스 작품에 대해
권경희의 「내가 죽인 남자」는 모호함의 판타지를 극명화시킨 작품이다. 반드시 살인만이 즉 행위가 실행되는 살인만이 살인인 것인가 하는 지점에 작가적 상상력을 끌어다 놓았다. 작품을 위해서라면 ‘나’의 은밀한 내면까지 샅샅이 드러내 작품화시키는 비열한 나의 남자 송지훈. 그를 기다리는 나에게 갓 스무 살이 넘은 홍민아가 나타난다. 그녀 역시 송지훈을 나의 남자라고 말한다. 그녀의 이야기. 또 다른 그녀의 이야기. 맞부딪치는 지점에서 나는 결국 복수를 결심한다.
류성희의 「인간을 해부하다」는 해부 앞에 드러나는 인간의 살점을 Y자 절개로 낱낱이 잘라냈다 다시 꼼꼼히 꿰맨 작품이다. 살인 그리고 해부. 어쩌면 내가 당할지도 모른다는 무서움 앞에 주인공은 인간을 해부하는 것만으로 그것을 용해시킨다. 그러나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고 올 것은 결국 오고 마는 법.
송시우의 「사랑합니다 고객님」이 보여주는 결말의 파괴성은 극히 잔인하다. 마치 영화 「캐리」에서 피를 뒤집어쓴 채 거리를 헤매는 그녀를 보는 것처럼. 그러나 그것에 이르러가는 과정은 거대 서스펜스로서 손색이 없다.
김주동의 「탈출」은 범죄 앞에 무기력한 한 인간의 몰락을 극명하게 문자화시켰다. 어린 시절부터 거부할 수 없는 지배자가 된 친구. 그가 범죄의 대가를 받고 출소한다. 그는 눈앞에서 태연히 사체를 묻기도 했다. 그는 이제 아내까지 나누어 갖자고 요구하고 무작정돈을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아 현실의 지옥이여. 이곳을 탈출할 방법은 없을까? 내가 탈출할 방법은 무엇일까?
손선영의 「그녀는 알고 있다」는 반전소설이다. 그러나 그 반전을 이끌어가기까지 드러내는 서스펜스가 자못 흥미롭다. 본격 미스터리인 것도 같고 또 서스펜스의 법칙을 잘 따르기도 한 것 같다. 결말에 이르러 주인공의 어지러움에 아니 현실의 모호함에 독자가 공감한다면 커다란 반전으로 귀결을 맺을 것이다.
*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알아? 그것도 보여줄게!
흔히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을 풍미한 기업소설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사회파 추리소설은 정의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파헤쳐 인간성의 상실이나 자본주의의 폐해를 드러내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황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 등 물질이 주체이고 인간이 객체인 사회를 꼬집는 비판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한국의 단편에서 어떤 모습으로 소설화되었을까?
현재훈은 평생 추리문학을 음지에서 양지로 드러나게 하는 데에 일조했다. 그는 인간성과 사회성을 담는 추리작품을 썼으며 「절벽」은 그러한 사회성을 가미한 걸작이다. 한국전쟁 이후 혼란한 사회상을 뚫고 절벽에서 수직상승한 한 남자는 그가 갈망했던 허상으로서의 사랑 앞에 결국 수직낙하하고 만다. 그리고 그 뒤에는 부인의 죽음에 대해 복수를 다짐한 한 남자의 8년간의 절절한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이원두의 「정력 전화」는 우리 사회에서 정말 벌어졌을지 모를 자본에 천착한 한 인간의 몰락을 구체화시킨 작품이다. 단지 돈을 위해서라면 한 인간의 죽음쯤이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최 사장. 그는 자신의 회사를 불태울 계략을 실천하기에 이른다.
최종철의 「아내마저 사기 친 남자」는 몰락해버린 한 공무원의 행태를 내연녀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정말 현실에서 있을 법한 사회의 한 지점을 통렬하게 꼬집는다. 우리 사회에는 물론 정말 극명하고 미미한 숫자겠으나 뇌물을 받은 공무원들이 무시로 기사화된다. 그들은 어쩌다 뇌물을 받고 또 그 이후에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외모지상주의. 이제는 너무 많이 접해 사람들이 반응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 알고 있다. 최지수의 「다이어트 클럽」은 이제 아무도 반응하지 않으려는 즉 알면서도 무시하는 외모지상주의 ‘다이어트’의 무서움을 직접적으로 그렸다.
* 그래 지금까지 잘 봤다고. 그럼 그 나머지는?
『완전사회』를 통해 한국에서 최초의 장편 SF소설을 선보인 문윤성은 「덴버에서 생긴 일」에서 물질을 통해 현상을 밝히는 SF적 상상력을 구가했다. 그리고 그것을 사건에 접목시켜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소설을 읽어보았다면 물론 그것이 벌써 30년이 된 소설이라고 해도 실제 생겨났을지 모를 기술은 아닌가 되짚어보게 된다.
방재희의 「교환일기」는 평행이론 평행우주에 관해 상상력을 펼쳐낸 글이다. 반면 이야기의 구조는 확장일로보다는 고등학생의 사생활이라는 작은 복주머니 같은 플롯을 택했다. 나와 같은 내가 살고 있는 평행우주 그것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학교도 가기 싫고 왕따나 당하지 않아 다행인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 읽어봐야 맛을 안다고 발상부터 흥미롭지 않은가?
데실 해밋에 의해 시작되어 레이먼드 챈들러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지칭되는 하드보일드. 마초적인 남자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사건의 해결에 오로지 초점을 맞춘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모습이 될까?
한이의 「체류」는 하드보일드 작법에 충실하다. 주인공 서동해는 그를 찾아온 또안과 함께 베트남 여자 응옥을 찾아나선다. 이야기는 그것이 전부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렇게 응옥을 찾아가는 서동해와 또안의 모습에서 한국 사회의 편향성은 작가가 의도했든 아니든 극명하게 드러나고 만다.
김재희의 「오리엔트 히트」는 첩보물에 해당된다. 하드보일드에서 시작해 양차대전 이후 첩보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그것을 하드보일드에서 떼어내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007만 생각해도 하드보일드가 갖추어야 할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지 않은가. 반면 김재희의 「오리엔트 히트」는 조금 한국적인 정이 엿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결말에 이르러 주인공의 선택이 그것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이가형의 「비명」과 김재성의 「목 없는 인디언」은 배경형 추리소설로 구분할 수 있다. 배경형 추리소설은 사건의 해결보다는 그것이 일어난 배경이나 그 전반에 걸친 사실에 주안점을 둔 것으로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가 좋은 텍스트이다. 평생 영문학자이며 추리소설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에 힘써온 고 이가형의 「비명」은 그가 문학에도 상당한 수준의 혜안을 가졌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밀리터리 소설도 보인다. 반전을 장치한 김상윤의 「드래구노프」는 풍부한 무기 상식을 바탕으로 용병들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암투를 다루었다. 물론 이 용병들에게 신은 바로 돈이다. 그러나 몰락하지 않은 우리의 주인공은 그것을 이겨낸다. 바로 드래구노프를 들고서.
한때 큰 반향을 일으켰던 미국 드라마 「환상특급」에 어울리는 슈퍼내추럴한 작품도 있다. 바로 이수광의 「그 밤은 길었다」 오현리의 「포커」 정혁의 「빛이 닿지 않는 세계의 남자」이다. 이수광의 「그 밤은 길었다」는 유령이 되어버린 한 남자의 담담한 독백이 눈길을 끈다. 사실 이 작품은 3인칭이 줄 수 있는 즉 감정을 배제하고 철저히 관찰자로서의 매력을 한껏 살린 작품이다. 오현리의 「포커」는 「환상특급」의 모티브로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훌륭하다. 작가 스스로 사이킥 미스터리라고 단정했을 정도이니 사뭇 그 초자연적인 결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정혁의 「빛이 닿지 않는 세계의 남자」는 사랑을 놓지 못한 한 남자가 친구 앞에 나타나 이야기를 건넨다. 아직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사실 이 작품은 결말을 맺지 않은 리들 스토리로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설인효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동명의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을 제목으로 차용한 패기만만한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은 어느 한 장르에 규정하기가 모호하다. 그러나 ‘시추에이션 스토리’로 손색이 없다. 일단의 사람들이 클로즈드 서클에 모였다 하나씩 이슬이 되는 모습이 이 소설의 백미다.
이승영의 「살인의 가치」는 이 작품집에서 보기 드문 도서추리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물론 정현웅의 「정형외과 의사 부인 실종사건」도 같은 범주에 속하긴 하나 단정 짓기에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살인의 가치」는 그에게 달려와 목숨을 애걸하는 한 여인을 구해주며 시작된다. 그리고 벌어진 살인 그것을 덮어버린다면 이제 어떻게 될까? 그리고 여인은 놀라운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상으로 이 작품집에 실린 44편의 작품을 살펴보았다. 때론 겉핥기식으로 넘어간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짧지만 강렬하게 평한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천착하지 말고 독자 스스로 마음껏 즐기시길 바란다.
▣ 주요 목차
발간사
김내성 가상범인
현재훈 절벽
김성종 회색의 벼랑
문윤성 덴버에서 생긴 일
이상우 첫눈 속에 영혼을 묻다
이가형 비명(非命)
이경재 광시곡
이원두 정력 전화
이수광 그 밤은 길었다
황미영 함정
황세연 IMF 나이트
김상윤 드래구노프
노원 위기의 연인들
방재희 교환일기
권경희 내가 죽인 남자
정현웅 정형외과 의사 부인 실종사건
오현리 포커
류성희 인간을 해부하다
현정 포말
김차애 살인 레시피
서미애 반가운 살인자
강형원 7번째 신혼여행
44개의 사건 44개의 추리
그리고 44개의 휴머니티!
이 작품집은 한국 현대 추리문학의 아버지 김내성의 1937년 작품인「가상범인」부터 2012년 작품인 홍성호의 「B사감 하늘을 날다」까지 즉 근대에서 현대의 작품까지 아우른 만큼 추리문학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양과 질 모두에서 독자들을 만족시킬 것이다. 각 작품은 이야기의 트렌드와 반전 미스터리적인 재미를 추리소설이라는 하나의 코드를 통해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하 작품 해설에서 발췌)
* 추리소설 본래의 맛 본격 미스터리!
김내성의 「가상범인」은 1935년 12월 일본 잡지 『프로필』에 실린 「탐정 소설가의 살인」을 대폭 개작한 작품으로 탐정 유불란이 등장하는 첫 번째 작품이다. 유불란은 사랑하는 연인 이몽란을 위해 희대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진 살인 범인으로 내몰린 가련한 여인 그를 구하기 위한 탐정의 활약 등에서 본격 미스터리의 요소를 골고루 갖추었다.
김성종의 「회색의 벼랑」은 그의 소설에서 몇 되지 않는 본격물의 취향이 보이는 소설이다. 「회색의 벼랑」에는 호텔에서 자살한 한 여인 그녀의 신원을 파헤치는 한 홍콩 특파원이 등장한다. 이제 사건은 어떻게 될까?
이상우는 1961년 「신 임꺽정전」으로 문단에 데뷔한 후 대부분 본격 미스터리 계열의 작품을 발표했다. 「첫눈 속에 영혼을 묻다」 역시 드라이한 문체와 빠른 전개를 보여주며 본격 미스터리에 충실하게 한달음에 결말로 다가간다.
고 이경재 작가의 「광시곡」은 그가 남긴 몇 안 되는 본격 미스터리물이다. 자유분방한 패션계의 거물 김상섭 SS 김이 살해당한다. 살해 흉기는 가위. 곧바로 그와 스캔들을 일으킨 여자들이 지목된다. 범인이 만든 트릭은 어떻게 깨어질 것인가?
황미영의 「함정」은 아내의 자살이 살인으로 둔갑한 내막을 그리고 있다. 아내를 죄인으로 내몰고 정신병자처럼 대한 남편이 죽음으로 복수한 아내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 기저에는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고 자신의 아이마저 내버린 비정함이 깔려 있다. 아내가 베란다 난간에서 산화하기 직전 남편에게 한 말은 남편뿐만 아니라 독자의 귓전에서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소설 『마루타』로 이름을 알린 정현웅의 단편 「정형외과 의사 부인 살인사건」은 숨기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의 대결을 그린 수작이다. 마조히즘 성향의 사라진 아내. 그리고 간밤에 집을 방문한 의문의 여인. 남겨진 남편과 실종사건을 수사해야 하는 형사. 사실 이 정도의 구도만 들려줘도 미스터리 마니아들은 아 범인은 OO이네 하고 지목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면에 숨겨진 일들은 무엇일까?
서미애의 「반가운 살인자」는 동명의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져 그 우수성이 입증된 소설이다. 연쇄살인범을 쫓는 것은 형사만의 전유물인가. 그러한 설정을 살짝 비틀고 IMF 이후 당대 현실을 잘 버무린 이 소설은 많은 독자의 심금을 울렸다. 가장이라기엔 오히려 가족의 좀이 된 아빠가 살인자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은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공감을 갖게 한다.
강형원의 「7번째 신혼여행」은 어디서 보았음직한 본격의 클리셰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지금껏 살인을 저질러온 부인. 그것을 막으려는 남편.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그 외 이대환의 「알리바바의 알리바이와 불가사리한 불가사의」 정명섭의 「흙의 살인」 신재형의 「그들의 시선」 도진기의 「선택」 조동신의 「포인트」 홍성호의 「B사감 하늘을 날다」 등이 본격물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 본격? 모범생만 답인 줄 아니? 아웃사이더 범죄소설도 있다고!
영미권에서는 이제 ‘추리소설’을 지칭해 광의적 의미에서 ‘크라임노벨(Crime Novel)’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과거 탐정소설이야 ‘디텍티브 스토리(Detective Story)’로만 한정해도 됐겠지만 너무 많은 파생 장르와 함께 그것을 아우를 단어가 적절치 않았던 탓이다. 물론 여기서 지칭하는 범죄소설은 협의의 범죄소설이란 사실을 밝힌다.
황세연의 「IMF 나이트」는 범죄에 마주 선 인간 군상을 다양한 방편으로 문자화시킨 수작이다. 과연 내 눈앞에 시체 한 구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IMF 나이트」라는 제목에서처럼 각각의 등장인물은 비루하고 때론 안타까운 각각의 IMF스러운 한을 가진 인물들이다. 블랙코미디라기에는 가장 한국적이고 처절한 추리소설이 바로 「IMF 나이트」가 아닐까?
노원의 「위기의 연인들」은 완전범죄를 꿈꾸는 또 그것으로 여자와 재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 한 청년의 몰락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완벽에 가까운 범죄소설의 플롯을 보여준다. 도심에서 벌어지는 총격전 거기에 끼어든 거대 마피아와 조무래기 청년 범죄자들 그리고 이어지는 결말 반전처럼 등장하는 산화한 주인공의 마지막 단언. “혜린은 코소보에 가기나 할까?”
현정의 「포말」은 물욕을 좇는 인간들의 내면을 범죄에 투영시켜 하나로 단안화시킨 작품이다. 목적을 가진 인간은 때론 얼마나 어리석을 수 있는가. “인간은 어쩌면 인간”이기에 모두가 힘들고 모두가 재물을 찾아 움직인다. 그러나 그것이 정상적이지 못한 경로일 때 어떤 파국을 가지고 오는지 추리소설의 형태를 빌어 구운 식빵에 잼을 바르듯 차근차근 보여준다.
김차애의 「살인 레시피」는 제목에서부터 흥미를 자극한다. 살인에도 레시피가 필요한 것일까? 김차애적인 상상력은 그것에 대해 때론 레시피가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부추긴다. ‘메뉴를 짜고 예산을 세우며’ ‘미리 다지고 썰어두며’ ‘맛을 결정하는 숙성기간’ 등으로. 그리고 작가는 맛깔난 요리를 독자에게 던진다.
곽재동은 현실에서 있을지 모를 완전범죄에 관해 「안락사」를 끌어들였다. 할머니가 말한다. 나 좀 죽여줘. 당장 돈이 급한 주인공은 어물쩍 그것을 받아들이고 만다. 할머니가 주기로 한 도자기를 사례금처럼 받기로 하며. 곽재동의 「안락사」는 호기롭고 또 흥미로우며 잘 마무리된 결말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어때 이 정도면 완전범죄 아냐?’ 하고 독자에게 되묻듯이.
김연의 「그대 안의 악마」는 요란스러운 헤비메탈을 듣다 갑자기 멈추는 듯한 결말을 보여준다. 산 속의 고즈넉한 산장에서 벌어지는 록페스티벌. 그리고 벌어지는 살인 살인들. 살인자가 누군지도 알겠다. 왜 이 일이 벌어졌는지도 이제 알았다. 그래서 외치고 싶다. 살인자는 저들이고 나 여기 있다고.
박하익의 「마지막 장난」은 설마 하고 되묻게 만드는 소설이다. 범죄 그러나 크지 않은 그저 사람을 놀라게 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악동들의 재담이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처럼 커져 그들을 잠식하는 과정을 그렸다. 물론 현실에서 있기 힘들다. 그러나 있을 법한 일이다.
장세연의 「세 번째 표적」은 자본이라는 현대사회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에 얽혀든 사람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우리는 흔히 ‘돈이면 안 되는 게 어디 있느냐?’라고 말한다. 어쩌면 작가는 ‘돈으로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수사반장」을 오랫동안 집필했던 김남 작가는 적어도 한국의 범죄에 대해서만은 가장 많은 사례를 수집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2012년 여름호부터 『계간 미스터리』에 연재되는 「수사반장의 추억」에서 위트 넘치게 표현한 범죄 사례만 해도 그렇다. 그것을 작가적인 상상력으로 탄생시킨 작품이 「여자는 한 번 승부한다」일 것이다.
* 한국의 서스펜스 작품에 대해
권경희의 「내가 죽인 남자」는 모호함의 판타지를 극명화시킨 작품이다. 반드시 살인만이 즉 행위가 실행되는 살인만이 살인인 것인가 하는 지점에 작가적 상상력을 끌어다 놓았다. 작품을 위해서라면 ‘나’의 은밀한 내면까지 샅샅이 드러내 작품화시키는 비열한 나의 남자 송지훈. 그를 기다리는 나에게 갓 스무 살이 넘은 홍민아가 나타난다. 그녀 역시 송지훈을 나의 남자라고 말한다. 그녀의 이야기. 또 다른 그녀의 이야기. 맞부딪치는 지점에서 나는 결국 복수를 결심한다.
류성희의 「인간을 해부하다」는 해부 앞에 드러나는 인간의 살점을 Y자 절개로 낱낱이 잘라냈다 다시 꼼꼼히 꿰맨 작품이다. 살인 그리고 해부. 어쩌면 내가 당할지도 모른다는 무서움 앞에 주인공은 인간을 해부하는 것만으로 그것을 용해시킨다. 그러나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고 올 것은 결국 오고 마는 법.
송시우의 「사랑합니다 고객님」이 보여주는 결말의 파괴성은 극히 잔인하다. 마치 영화 「캐리」에서 피를 뒤집어쓴 채 거리를 헤매는 그녀를 보는 것처럼. 그러나 그것에 이르러가는 과정은 거대 서스펜스로서 손색이 없다.
김주동의 「탈출」은 범죄 앞에 무기력한 한 인간의 몰락을 극명하게 문자화시켰다. 어린 시절부터 거부할 수 없는 지배자가 된 친구. 그가 범죄의 대가를 받고 출소한다. 그는 눈앞에서 태연히 사체를 묻기도 했다. 그는 이제 아내까지 나누어 갖자고 요구하고 무작정돈을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아 현실의 지옥이여. 이곳을 탈출할 방법은 없을까? 내가 탈출할 방법은 무엇일까?
손선영의 「그녀는 알고 있다」는 반전소설이다. 그러나 그 반전을 이끌어가기까지 드러내는 서스펜스가 자못 흥미롭다. 본격 미스터리인 것도 같고 또 서스펜스의 법칙을 잘 따르기도 한 것 같다. 결말에 이르러 주인공의 어지러움에 아니 현실의 모호함에 독자가 공감한다면 커다란 반전으로 귀결을 맺을 것이다.
*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알아? 그것도 보여줄게!
흔히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을 풍미한 기업소설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사회파 추리소설은 정의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파헤쳐 인간성의 상실이나 자본주의의 폐해를 드러내는 데 있다. 다시 말하면 황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 등 물질이 주체이고 인간이 객체인 사회를 꼬집는 비판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한국의 단편에서 어떤 모습으로 소설화되었을까?
현재훈은 평생 추리문학을 음지에서 양지로 드러나게 하는 데에 일조했다. 그는 인간성과 사회성을 담는 추리작품을 썼으며 「절벽」은 그러한 사회성을 가미한 걸작이다. 한국전쟁 이후 혼란한 사회상을 뚫고 절벽에서 수직상승한 한 남자는 그가 갈망했던 허상으로서의 사랑 앞에 결국 수직낙하하고 만다. 그리고 그 뒤에는 부인의 죽음에 대해 복수를 다짐한 한 남자의 8년간의 절절한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이원두의 「정력 전화」는 우리 사회에서 정말 벌어졌을지 모를 자본에 천착한 한 인간의 몰락을 구체화시킨 작품이다. 단지 돈을 위해서라면 한 인간의 죽음쯤이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최 사장. 그는 자신의 회사를 불태울 계략을 실천하기에 이른다.
최종철의 「아내마저 사기 친 남자」는 몰락해버린 한 공무원의 행태를 내연녀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정말 현실에서 있을 법한 사회의 한 지점을 통렬하게 꼬집는다. 우리 사회에는 물론 정말 극명하고 미미한 숫자겠으나 뇌물을 받은 공무원들이 무시로 기사화된다. 그들은 어쩌다 뇌물을 받고 또 그 이후에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외모지상주의. 이제는 너무 많이 접해 사람들이 반응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 알고 있다. 최지수의 「다이어트 클럽」은 이제 아무도 반응하지 않으려는 즉 알면서도 무시하는 외모지상주의 ‘다이어트’의 무서움을 직접적으로 그렸다.
* 그래 지금까지 잘 봤다고. 그럼 그 나머지는?
『완전사회』를 통해 한국에서 최초의 장편 SF소설을 선보인 문윤성은 「덴버에서 생긴 일」에서 물질을 통해 현상을 밝히는 SF적 상상력을 구가했다. 그리고 그것을 사건에 접목시켜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소설을 읽어보았다면 물론 그것이 벌써 30년이 된 소설이라고 해도 실제 생겨났을지 모를 기술은 아닌가 되짚어보게 된다.
방재희의 「교환일기」는 평행이론 평행우주에 관해 상상력을 펼쳐낸 글이다. 반면 이야기의 구조는 확장일로보다는 고등학생의 사생활이라는 작은 복주머니 같은 플롯을 택했다. 나와 같은 내가 살고 있는 평행우주 그것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학교도 가기 싫고 왕따나 당하지 않아 다행인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 읽어봐야 맛을 안다고 발상부터 흥미롭지 않은가?
데실 해밋에 의해 시작되어 레이먼드 챈들러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지칭되는 하드보일드. 마초적인 남자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사건의 해결에 오로지 초점을 맞춘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모습이 될까?
한이의 「체류」는 하드보일드 작법에 충실하다. 주인공 서동해는 그를 찾아온 또안과 함께 베트남 여자 응옥을 찾아나선다. 이야기는 그것이 전부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렇게 응옥을 찾아가는 서동해와 또안의 모습에서 한국 사회의 편향성은 작가가 의도했든 아니든 극명하게 드러나고 만다.
김재희의 「오리엔트 히트」는 첩보물에 해당된다. 하드보일드에서 시작해 양차대전 이후 첩보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그것을 하드보일드에서 떼어내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007만 생각해도 하드보일드가 갖추어야 할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지 않은가. 반면 김재희의 「오리엔트 히트」는 조금 한국적인 정이 엿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결말에 이르러 주인공의 선택이 그것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이가형의 「비명」과 김재성의 「목 없는 인디언」은 배경형 추리소설로 구분할 수 있다. 배경형 추리소설은 사건의 해결보다는 그것이 일어난 배경이나 그 전반에 걸친 사실에 주안점을 둔 것으로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가 좋은 텍스트이다. 평생 영문학자이며 추리소설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에 힘써온 고 이가형의 「비명」은 그가 문학에도 상당한 수준의 혜안을 가졌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밀리터리 소설도 보인다. 반전을 장치한 김상윤의 「드래구노프」는 풍부한 무기 상식을 바탕으로 용병들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암투를 다루었다. 물론 이 용병들에게 신은 바로 돈이다. 그러나 몰락하지 않은 우리의 주인공은 그것을 이겨낸다. 바로 드래구노프를 들고서.
한때 큰 반향을 일으켰던 미국 드라마 「환상특급」에 어울리는 슈퍼내추럴한 작품도 있다. 바로 이수광의 「그 밤은 길었다」 오현리의 「포커」 정혁의 「빛이 닿지 않는 세계의 남자」이다. 이수광의 「그 밤은 길었다」는 유령이 되어버린 한 남자의 담담한 독백이 눈길을 끈다. 사실 이 작품은 3인칭이 줄 수 있는 즉 감정을 배제하고 철저히 관찰자로서의 매력을 한껏 살린 작품이다. 오현리의 「포커」는 「환상특급」의 모티브로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훌륭하다. 작가 스스로 사이킥 미스터리라고 단정했을 정도이니 사뭇 그 초자연적인 결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정혁의 「빛이 닿지 않는 세계의 남자」는 사랑을 놓지 못한 한 남자가 친구 앞에 나타나 이야기를 건넨다. 아직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사실 이 작품은 결말을 맺지 않은 리들 스토리로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설인효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동명의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을 제목으로 차용한 패기만만한 작품이다. 사실 이 작품은 어느 한 장르에 규정하기가 모호하다. 그러나 ‘시추에이션 스토리’로 손색이 없다. 일단의 사람들이 클로즈드 서클에 모였다 하나씩 이슬이 되는 모습이 이 소설의 백미다.
이승영의 「살인의 가치」는 이 작품집에서 보기 드문 도서추리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물론 정현웅의 「정형외과 의사 부인 실종사건」도 같은 범주에 속하긴 하나 단정 짓기에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살인의 가치」는 그에게 달려와 목숨을 애걸하는 한 여인을 구해주며 시작된다. 그리고 벌어진 살인 그것을 덮어버린다면 이제 어떻게 될까? 그리고 여인은 놀라운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상으로 이 작품집에 실린 44편의 작품을 살펴보았다. 때론 겉핥기식으로 넘어간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짧지만 강렬하게 평한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천착하지 말고 독자 스스로 마음껏 즐기시길 바란다.
▣ 주요 목차
발간사
김내성 가상범인
현재훈 절벽
김성종 회색의 벼랑
문윤성 덴버에서 생긴 일
이상우 첫눈 속에 영혼을 묻다
이가형 비명(非命)
이경재 광시곡
이원두 정력 전화
이수광 그 밤은 길었다
황미영 함정
황세연 IMF 나이트
김상윤 드래구노프
노원 위기의 연인들
방재희 교환일기
권경희 내가 죽인 남자
정현웅 정형외과 의사 부인 실종사건
오현리 포커
류성희 인간을 해부하다
현정 포말
김차애 살인 레시피
서미애 반가운 살인자
강형원 7번째 신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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