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문혁―― “회고적 화제가 아닌 미래에 관한 의제
2016년은 ‘10년 대동란十年浩劫’ ‘좌경적 오류의 극치’로 불리는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발생 50주년이 되는 해다. 국내외에서 문화대혁명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려는 움직임이 많았다. 중국 ‘심근문학心根文學’을 창시한 지성적 작가 한사오궁의 『혁명후/기』는 그러한 흐름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먼저 2013년 홍콩에서 출판된 『혁명후/기』는 중국 대륙에서는 오랜 검열과정에 걸려 아직 출간되지 못했다. 이번 한국어판은 홍콩판에도 미처 싣지 못한 이야기를 포함한 작가의 원고를 직접 받아 번역했으며, 저자 인터뷰와 전문 연구자이기도 한 역자의 자세한 해제까지 곁들여 『혁명후기』라는 ‘성찰의 극치’를 이 땅에 소개하고 있다. 국내 연구자 그룹과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문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진정성 있게 역사적 사안을 사유하는 자리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많은 사람이 문혁은 악인들의 소행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어느 곳에든 악인이 없었는가? 어느 지도자 그룹엔들 악인이 없었겠는가? 이러한 도덕만능주의적 추궁은 모든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역사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문혁’을 일반적인 형사 범죄와 등가화한다.
또 다른 일각에선 문혁을 일종의 비이성적 정치 광란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수억 명에 달하는 사람을 정신병자로 진단하는 행위도 이성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역사는 주사위 게임이 아니다. 어떤 경우든 초대형급 집단 사건에는 인연이 쌓이고 다함에 따라 생멸하는 특정한 조건과 변화 그리고 실질적인 이익 동력과 게임의 논리가 있다.
저자 한사오궁은 오늘날 중국이 G2로 세계적 강국으로 부상한 것도 문혁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복합성과 이러한 발전 도상으로 가는 험난함 및 반복적 교정 과정에서 ‘문혁’에 대한 중국인의 논쟁은 다시 한번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라는 게 한사오궁이 다시 ‘문혁’을 꺼내든 이유다.
‘문혁’은 사실과 감정의 거대한 총량
공부하고 있는 교실에 사람들이 와서 선생을 끌어내는 문혁의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서, 점점 줄어드는 ‘문혁’ 경험자 중 한 명으로서, 저자는 힙합족의 ‘문혁’을 견딜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들은 홍위병의 국토 행진을 ‘배낭족’ 탐험이나 리얼리티 쇼에 나오는 ‘지옥훈련’ 쯤으로 여긴다. “아, 그 시절의 ‘군대’란 정말 신났을 거야”라고 여기는 젊은이들 앞에서 아연실색한다. 또한 저자는 서양 좌파들의 ‘문혁’도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오래전부터 그들은 혁명 모범극이야말로 문화 영역에서 인민 주권의 신성한 표지이고, 홍위병이 모제르총을 메는 것은 가장 철저한 해방이며, 노동자들이 공장장을 몰아내는 것이야말로 공산주의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1990년대에 함께 논쟁을 벌인 서양의 문혁 연구자에게 “중국에 한번 와서 보고 난 다음 논문을 고치길 바란다”라고 충고한다.
중국 관료들의 장황한 언설도 참을 수 없긴 마찬가지다. “지금이 아직도 문혁인 줄 아시오? 당위黨委 투쟁을 정말 또 하고 싶소?” 어떤 형태의 불경죄와 마주칠 때마다, 논리 정연하게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 학생, 교수, 시민들을 대할 때마다, 그들은 이렇게 비장의 무기를 날린다. 한사오궁은 ‘문혁’이 없었다면 그들은 살이 피둥피둥 찌고 기고만장하는 천당생활을 영원히 누렸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문혁’은 사실과 감정의 거대한 총량이다. 수억 명 되는 사람의, 너무나 많은 분쟁과 곤혹, 부침과 은원恩怨, 망각과 과장으로 직조된, 그래서 걸어놓으면 어떤 판단도 줄줄 새는 그런 직물이다. 벌써 30여 년이 지났지만 논쟁이 줄기는커녕 더 늘어났으며 그 정도도 더 격렬해졌다. 반면 사실관계는 점점 덜 명료해지고 있어 험난한 여정을 예고한다. 베이징대 다이진화戴錦華 교수는 사석에서, 외국 학자들과 중국에 대
해 토론할 때 제일 어려운 것이 ‘문혁’이라고 한탄한 적이 있다. 우파들도 겉으로는 입장이 같아 보이지만 갈가리 찢어져 있다. ‘문혁’ 중의 ‘인민 문학’을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만 하더라도, 긍정파(양샤오카이楊小凱, 정이鄭義, 주쉐친朱學勸 등)는 늘 반대파(쉬유위徐有漁, 쉬번徐賁 등)의 공개적 비난을 받아왔다.
문혁사의 궁정화宮廷化 비판: ‘사람’과 ‘인식’이라는 두 함정
서구 ‘문혁학’의 중요한 창시자“맥파커 하버드대 종신교수는 “이 운동의 절반 이상은 마오쩌둥 개인의 책략의 결과”라고 말했다. 이 책의 결론은 “혁명의 순결성에 대한 마오의 무한한 추구”와 그의 “범상치 않은 권위의식” “포퓰리즘” 등이 이 운동의 방법과 성격 그리고 모든 과정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한사오궁이 ‘문혁사의 궁정화宮廷化’라고 비판하는 지점이다.
여기에 잠복한 논리는 첫째, 만약 마오쩌둥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문혁’은 발생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그가 머리를 좀 더 잘 쓰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해 수준이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문혁은 발생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사오궁은 수십 년의 역사를 놓고, 수억 명의 사람이 재수 없게 하필 제일 나쁜 패를 뽑아, 재채기 한번 잘못해서 중증 심근경색에 걸리고 만 것이라는 말을 믿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그는 말한다. 총체적으로 보면, 마오쩌둥은 마오쩌둥의 ‘집단적 발생 현상’ 중 가장 권위 있는 한 명에 불과하다.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가시성이 큰 한 명에 불과한 것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만큼 ‘문혁’에 대해 주요한 책임이 없을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마오에 초점을 맞춘 문혁 이야기에 대한 이런 비판이 필요한가. 지도자의 역사(속칭 제왕장상의 역사)는 개인의 역할을 과장한다. 지나치게 화려한 궁정 이야기와 우연한 계기로 꽉 찬 이 역사는, 독자들에게 작은 것에 치중하다가 큰 것을 놓치게 한다. 제도와 문화를 검토하는 것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문혁의 도덕화 비판
벨기에 출신 시몬 레이스는 『주석의 새 옷: 마오와 문혁』이라는 책에서 이런 견해를 펼쳤다. “중국의 문혁은 이름만 빼면 ‘혁명’ ‘문화’라는 말과 전혀 무관하며 그야말로 기만적이다. 그냥 대권이 남의 손에 떨어질 판이 되자 마오가 권력을 탈환하려고 발동한 운동에 불과하다. 그 결과 중국을 천길만길의 심연으로 빠뜨린 것이다.”
이는 사실 상당수 사람의 생각을 대표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사오궁은 마오쩌둥의 대권이 남에 손에 떨어질 판이었다는 것은 중국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때려죽여도 믿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강조한다. 특히 류사오치, 덩샤오핑 등이 문혁 초기에 이미 주변으로 밀려난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더 중요하게는, 10년 혹은 30년의 대국사를 단순히 권력 쟁탈전으로, 개인의 마음속 암흑과 욕망의 변태로, 지도자의 도덕적 해이로 귀결시키는 것은 다방에 모여 수다를 떠는 것과 같은 지나친 통속화일 뿐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에게 문혁 시대를 선전하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토론해야 할 몇 가지 문제
이 책은 문혁을 경험한 이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요즘, 문혁을 생생히 경험한 작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게다가 문혁 이후 사람들이 문혁을 회고하고, 평가하고, 말을 전하는 수십 년의 경험을 한데 녹아낸 기록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하나이다. 복잡한 현실을 복잡한대로 마주하여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혁명 이데올로기는 낡은 이익관계(빈/부 같은)를 반영하고 확장했다. 그러나 전능하고 획일적인 권력 체제 아래, 새로운 이익 형태와 이익관계(관료/민중/지식인으로 구성된 다변 관계)는 기존의 해석 틀을 벗어나 이름 없는 무명의 상태에 처하곤 한다. 전자는 과거시제이고 후자는 현재시제다. 두 가지 이익관계는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 단단히 얽혔고 그 낡음과 새로움이 교착되었다. 그런 얽힘과 교착 속에서 ‘문혁’이 발생했을 때, 수많은 복잡한 상황은 사실 복잡한 게 아니었다. 그저 낯설었을 뿐이다. 괴상한 게 아니라, 그저 미지였을 뿐이다. 오직 (일부 우익처럼) 이익을 신물神物로 떠받들거나 (일부 좌익처럼) 이익을 죄악으로 치부함으로써, 모두가 한목소리로 천하의 이익이 ‘문혁’을 방치하고 말았다며 그것을 광적이고 신비한 예외로 몰아갔던 것이다.” (본문 190쪽)
역자 해제에서
그의 전작 『열렬한 책읽기』가 포스트마오 시대 사회주의의 격랑이 지나간 폐허 속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소생시킬 비밀을 찾는 지적 오디세이였다면, 『귀거래』는 1980년대 지청知靑 시절 열정과 좌절, 죄의식이 하나로 응결된 실존적 그림자에 대한 연민을 다루고 있다. 한편 이번 『혁명후/기』는 이들 저작을 관통하는 작가 일생에 걸친 집요한 문제의식, 즉, 문화대혁명을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중국을 규명할 수 없으며 미래를 준비할 수도 없다는 고집스런 사색이 마침내 결실을 맺고 있다. 이는 역사라는 ‘거대한 나’를 망각하고 환골탈태의 환희에 들뜬 현 중국에 보내는 엄중한 경고다.
그렇다고 저자가 중국과 세계의 변화에 등을 돌린 채 과거의 유령과 씨름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변증법과 음양이 몸에 밴 그는 딱딱한 이념이나 이론의 틀 사이를 경쾌하게 넘나들며 날것으로서의 현실의 핵심을 매섭게 포착한다. 특히 그의 탄탄한 사유의 유연성은 문혁을 다루는 데서도 남다른 힘을 발휘한다. “문혁이 인구 대국의 우향우 궤도 전환을 위한 거대한 위치에너지를 축적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또 한 차례의 지구적 확산을 촉진시켰다”는 그의 말은 문혁이 불가해한 광기의 분출이 아니라 20세기 냉전사의 지극히 정상적인 일부이며, 나아가 전체 자본주의 역사의 불가피한 이면임을 암시한다.
‘악마들의 광란’이라는 하드 코드를 깨고 문혁을 살과 피가 도는 인간의 역사로 되돌리려는 한사오궁의 노력은, 문혁을 미화하거나 원천적으로 긍정하려는 중국 지식계 일각의 견해와는 첨예한 비판적 거리를 갖는다. 문혁을 역사 안으로 불러들이려는 그의 욕구는 궁극적으로는 인간 본성의 복잡한 다면성과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을 포착하려는 작가로서의 겸허하고 끈질긴 본능에서 비롯된다. 물질적 욕망의 발산 통로가 가로막힌 냉전시대 사회주의 사회, “모든 욕망이 산더미처럼, 해일처럼 일파만파 정치적 투기장으로 몰려드는” 현상으로 문혁을 해석하면서도, 그는 결코 자기 자신이나 중국 인민에게 면죄부를 내어주진 않는다. 문혁 발발의 본질적인 원인이 인간에 대한 과도한 낙관주의였다는 뼈아픈 반성 속에서, 그가 궁극적으로 경계하는 것은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광기와 폭력이다. 그가 볼 때, 문혁은 현재와 무관한 과거의 유령이 아니다. 가속화되는 자본주의의 위기 앞에서 인류가 그동안 일궈온 문명적 성취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이 요구되는 지금, 문혁은 결코 회고적인 의제일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전작 『열렬한 책읽기』에 감돌던 차가운 냉소에 비해 이 책 『혁명후/기』에는 인간에 대한 한사오궁의 온정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낙관론으로부터 철저한 거리 두기에 기반한 믿음, 즉 불완전한 인간에 보내는 구도자의 연민이다. “도덕은 인류의 거대한 고통과 슬픔, 연민이 있은 후에 생겨나는 정신의 반응”이라는 그의 발언은, 압도적인 비극을 겪지 않고서는 도덕이 생겨날 수 없다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비관과 도덕의 위기가 극에 달했을 때 그것을 치유할 인간의 자기 회복 능력에 대한 낙관 사이를 길항하는 사유의 곤혹을 드러낸다.
저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백지운 : 『혁명후/기』에서 제기하신 흥미로운 관점 중 하나는 문혁 종결의 실마리가 이미 문혁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문혁 중 물질적인 욕망에 대한 추구가 발생하면서 지하 시장이 성행했고 중국 정부도 사실상 이를 암중 지지했다고요. 거기에 1972년 중국이 미국, 영국,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했지요. 그러니까 문혁 중에 안으로는 시장경제의 초기 단계를 준비하고, 밖으로는 탈냉전의 기초를 마련했던 것이죠. 일반적으로는 마오쩌둥의 죽음으로 문혁이 종결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선생님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마오가 문혁의 종결을 준비한 셈이 되는 것이죠. 다시 말해 문혁이라는 극단적인 좌경 급류 속에 훗날의 우선회가 준비되고 있었던 셈인데, 이것이 역사의 우연일까요?
한사오궁 : 과거의 많은 학자가 저지른 과오는 문혁에 대해 몇몇 중요한 영도자를 중심으로 사고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회 저층에서 무엇이 발생했는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혁 종결의 시점을 1976년으로 보는 기존 관점에 대해 제가 1972년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주장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장칭江靑의 체포로 문혁이 끝났다는 것은 아주 얕은 생각이에요. 진정한 변화는 1972년부터 시작되었죠. 많은 사람이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은 선진 농업 기술이 결핍된 계획경제로서 평균 분배밖에 못 한다고 생각했죠. 인민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요. 그러나 사실 1972년이 되면 이미 잉여 생산이 발생하면서 시장경제의 조건이 생겨났습니다. 정부가 추동한 것이 아니라 밑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죠. 이것이 10명의 덩샤오핑보다 더 중요한 시장경제 발생의 조건입니다. 주목할 지점은 시장 경쟁이 생기면서 정치적 투기가 불필요해졌다는 겁니다. 전에는 살기 위해 정치투쟁을 하고 논리를 만들어야 했다면, 이때부터는 정치투쟁이 아니더라도 다른 새로운 살길이 생긴 거죠.
백지운 : 그렇다면 왜 1972년에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이 일어났을까요?
한사오궁 : 물론 1972년 이전부터 생산력은 점진적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구축한 수리시설과 도로 설비 등 인프라의 효과가 1972년 이후 가시적으로 드러났죠. 그러면서 지하 공산품 거래가 출현했고 또 향진鄕鎭기업이라는 새로운 출로가 생겼습니다. 이것이 문혁 종결의 보이지 않는 큰손입니다. 사실 1972년 이후의 문혁은 상층에서는 여전히 격렬했지만 이미 하부의 기초가 없는, 모래 위의 성이었습니다. 이것이 저와 다른 연구자들의 차이입니다. 그들은 상층을 보지만 저는 아래를 보지요.
▣ 작가 소개
저자 : 한사오궁
韓少功
후난 사범대학 중문과에서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받았다. 1981년 첫 소설집 『월란』을 출간했고, 이후 전국 우수 단편소설상을 수상한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다」를 비롯해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1985년 『작가』에 「문학의 뿌리」라는 글을 발표해 이른바 ‘심근문학心根文學’을 주창했으며, 같은 해 후난 성 작가협회의 전업 작가가 되었다. 한사오궁은 “문학의 뿌리란 마땅히 전통문화의 토양 깊은 곳에 놓여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향토색 짙은 고향 이야기, 전래의 옛이야기 등을 적극 재현하는 소설 양식인 ‘심근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다. 1987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중국어로 번역했고, 1988년 하이난 성으로 내려가 『하이난기실』 주편, 『천애』 지 대표를 역임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소비 시대의 여러 문화 현상에 대한 비판을 주도하는 문화비평가로도 활동했다. 1993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아빠아빠아빠』, 단편소설 『여자여자여자』, 1996년에 발표한 『마교사전』은 ‘심근문학’과 제3세계 문학의 영향 아래서 자신의 창작 방법을 심도 있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2002년에는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문... 예 기사 작위를 받았고, 수필집 『산남수북』으로 2007년 루쉰 문학상을 수상했다. 중국 최고의 지성이자 위화·모옌과 더불어 중국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한사오궁은 매년 중국 소설학회가 선정하는 우수 소설 일순위에 오르며,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역자 : 백지운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연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중국 근현대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한사오궁의 『귀거래』『열렬한 책읽기』를 비롯해 『일본과 아시아』(공역), 『제국의 눈』(공역), 『위미』, 『시간』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한국어판 서문
혁명후/기 │ 전언
1 냉장 저장된 담론
2 궁정화宮廷化
3 도덕화
4 하소연하기
5 또 하나의 문제 사회
6 방법 선택의 최대공산
7 유토피아의 유통기한
8 지위 경쟁의 두 가지 길
9 만민의 성도화 上
10 만민의 성도화 下
11 만민의 경찰화 上
12 만민의 경찰화 下
13 성도화×경찰화
14 천의 얼굴을 한 인간과 천의 얼굴을 한 ‘신’
15 이익 이성과 게임의 법칙
16 구조적 위기 上
17 구조적 위기 下
18 재再위계화의 물결
19 토론해야 할 몇 가지 문제
20 초록 막대기
부록 1 │ 상자 속에 갇힌 권력
부록 2 │ ‘문화대혁명’ 대사기大事記
인터뷰 │ 인간의 역사로서의 문화대혁명
옮긴이의 말
문혁―― “회고적 화제가 아닌 미래에 관한 의제
2016년은 ‘10년 대동란十年浩劫’ ‘좌경적 오류의 극치’로 불리는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발생 50주년이 되는 해다. 국내외에서 문화대혁명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려는 움직임이 많았다. 중국 ‘심근문학心根文學’을 창시한 지성적 작가 한사오궁의 『혁명후/기』는 그러한 흐름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먼저 2013년 홍콩에서 출판된 『혁명후/기』는 중국 대륙에서는 오랜 검열과정에 걸려 아직 출간되지 못했다. 이번 한국어판은 홍콩판에도 미처 싣지 못한 이야기를 포함한 작가의 원고를 직접 받아 번역했으며, 저자 인터뷰와 전문 연구자이기도 한 역자의 자세한 해제까지 곁들여 『혁명후기』라는 ‘성찰의 극치’를 이 땅에 소개하고 있다. 국내 연구자 그룹과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문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진정성 있게 역사적 사안을 사유하는 자리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많은 사람이 문혁은 악인들의 소행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어느 곳에든 악인이 없었는가? 어느 지도자 그룹엔들 악인이 없었겠는가? 이러한 도덕만능주의적 추궁은 모든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역사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문혁’을 일반적인 형사 범죄와 등가화한다.
또 다른 일각에선 문혁을 일종의 비이성적 정치 광란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수억 명에 달하는 사람을 정신병자로 진단하는 행위도 이성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역사는 주사위 게임이 아니다. 어떤 경우든 초대형급 집단 사건에는 인연이 쌓이고 다함에 따라 생멸하는 특정한 조건과 변화 그리고 실질적인 이익 동력과 게임의 논리가 있다.
저자 한사오궁은 오늘날 중국이 G2로 세계적 강국으로 부상한 것도 문혁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적 복합성과 이러한 발전 도상으로 가는 험난함 및 반복적 교정 과정에서 ‘문혁’에 대한 중국인의 논쟁은 다시 한번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라는 게 한사오궁이 다시 ‘문혁’을 꺼내든 이유다.
‘문혁’은 사실과 감정의 거대한 총량
공부하고 있는 교실에 사람들이 와서 선생을 끌어내는 문혁의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서, 점점 줄어드는 ‘문혁’ 경험자 중 한 명으로서, 저자는 힙합족의 ‘문혁’을 견딜 수 없다고 고백한다. 그들은 홍위병의 국토 행진을 ‘배낭족’ 탐험이나 리얼리티 쇼에 나오는 ‘지옥훈련’ 쯤으로 여긴다. “아, 그 시절의 ‘군대’란 정말 신났을 거야”라고 여기는 젊은이들 앞에서 아연실색한다. 또한 저자는 서양 좌파들의 ‘문혁’도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오래전부터 그들은 혁명 모범극이야말로 문화 영역에서 인민 주권의 신성한 표지이고, 홍위병이 모제르총을 메는 것은 가장 철저한 해방이며, 노동자들이 공장장을 몰아내는 것이야말로 공산주의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1990년대에 함께 논쟁을 벌인 서양의 문혁 연구자에게 “중국에 한번 와서 보고 난 다음 논문을 고치길 바란다”라고 충고한다.
중국 관료들의 장황한 언설도 참을 수 없긴 마찬가지다. “지금이 아직도 문혁인 줄 아시오? 당위黨委 투쟁을 정말 또 하고 싶소?” 어떤 형태의 불경죄와 마주칠 때마다, 논리 정연하게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 학생, 교수, 시민들을 대할 때마다, 그들은 이렇게 비장의 무기를 날린다. 한사오궁은 ‘문혁’이 없었다면 그들은 살이 피둥피둥 찌고 기고만장하는 천당생활을 영원히 누렸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문혁’은 사실과 감정의 거대한 총량이다. 수억 명 되는 사람의, 너무나 많은 분쟁과 곤혹, 부침과 은원恩怨, 망각과 과장으로 직조된, 그래서 걸어놓으면 어떤 판단도 줄줄 새는 그런 직물이다. 벌써 30여 년이 지났지만 논쟁이 줄기는커녕 더 늘어났으며 그 정도도 더 격렬해졌다. 반면 사실관계는 점점 덜 명료해지고 있어 험난한 여정을 예고한다. 베이징대 다이진화戴錦華 교수는 사석에서, 외국 학자들과 중국에 대
해 토론할 때 제일 어려운 것이 ‘문혁’이라고 한탄한 적이 있다. 우파들도 겉으로는 입장이 같아 보이지만 갈가리 찢어져 있다. ‘문혁’ 중의 ‘인민 문학’을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만 하더라도, 긍정파(양샤오카이楊小凱, 정이鄭義, 주쉐친朱學勸 등)는 늘 반대파(쉬유위徐有漁, 쉬번徐賁 등)의 공개적 비난을 받아왔다.
문혁사의 궁정화宮廷化 비판: ‘사람’과 ‘인식’이라는 두 함정
서구 ‘문혁학’의 중요한 창시자“맥파커 하버드대 종신교수는 “이 운동의 절반 이상은 마오쩌둥 개인의 책략의 결과”라고 말했다. 이 책의 결론은 “혁명의 순결성에 대한 마오의 무한한 추구”와 그의 “범상치 않은 권위의식” “포퓰리즘” 등이 이 운동의 방법과 성격 그리고 모든 과정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한사오궁이 ‘문혁사의 궁정화宮廷化’라고 비판하는 지점이다.
여기에 잠복한 논리는 첫째, 만약 마오쩌둥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문혁’은 발생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그가 머리를 좀 더 잘 쓰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해 수준이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문혁은 발생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사오궁은 수십 년의 역사를 놓고, 수억 명의 사람이 재수 없게 하필 제일 나쁜 패를 뽑아, 재채기 한번 잘못해서 중증 심근경색에 걸리고 만 것이라는 말을 믿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그는 말한다. 총체적으로 보면, 마오쩌둥은 마오쩌둥의 ‘집단적 발생 현상’ 중 가장 권위 있는 한 명에 불과하다.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가시성이 큰 한 명에 불과한 것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만큼 ‘문혁’에 대해 주요한 책임이 없을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마오에 초점을 맞춘 문혁 이야기에 대한 이런 비판이 필요한가. 지도자의 역사(속칭 제왕장상의 역사)는 개인의 역할을 과장한다. 지나치게 화려한 궁정 이야기와 우연한 계기로 꽉 찬 이 역사는, 독자들에게 작은 것에 치중하다가 큰 것을 놓치게 한다. 제도와 문화를 검토하는 것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문혁의 도덕화 비판
벨기에 출신 시몬 레이스는 『주석의 새 옷: 마오와 문혁』이라는 책에서 이런 견해를 펼쳤다. “중국의 문혁은 이름만 빼면 ‘혁명’ ‘문화’라는 말과 전혀 무관하며 그야말로 기만적이다. 그냥 대권이 남의 손에 떨어질 판이 되자 마오가 권력을 탈환하려고 발동한 운동에 불과하다. 그 결과 중국을 천길만길의 심연으로 빠뜨린 것이다.”
이는 사실 상당수 사람의 생각을 대표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사오궁은 마오쩌둥의 대권이 남에 손에 떨어질 판이었다는 것은 중국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때려죽여도 믿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강조한다. 특히 류사오치, 덩샤오핑 등이 문혁 초기에 이미 주변으로 밀려난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더 중요하게는, 10년 혹은 30년의 대국사를 단순히 권력 쟁탈전으로, 개인의 마음속 암흑과 욕망의 변태로, 지도자의 도덕적 해이로 귀결시키는 것은 다방에 모여 수다를 떠는 것과 같은 지나친 통속화일 뿐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에게 문혁 시대를 선전하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토론해야 할 몇 가지 문제
이 책은 문혁을 경험한 이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요즘, 문혁을 생생히 경험한 작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게다가 문혁 이후 사람들이 문혁을 회고하고, 평가하고, 말을 전하는 수십 년의 경험을 한데 녹아낸 기록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하나이다. 복잡한 현실을 복잡한대로 마주하여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혁명 이데올로기는 낡은 이익관계(빈/부 같은)를 반영하고 확장했다. 그러나 전능하고 획일적인 권력 체제 아래, 새로운 이익 형태와 이익관계(관료/민중/지식인으로 구성된 다변 관계)는 기존의 해석 틀을 벗어나 이름 없는 무명의 상태에 처하곤 한다. 전자는 과거시제이고 후자는 현재시제다. 두 가지 이익관계는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 단단히 얽혔고 그 낡음과 새로움이 교착되었다. 그런 얽힘과 교착 속에서 ‘문혁’이 발생했을 때, 수많은 복잡한 상황은 사실 복잡한 게 아니었다. 그저 낯설었을 뿐이다. 괴상한 게 아니라, 그저 미지였을 뿐이다. 오직 (일부 우익처럼) 이익을 신물神物로 떠받들거나 (일부 좌익처럼) 이익을 죄악으로 치부함으로써, 모두가 한목소리로 천하의 이익이 ‘문혁’을 방치하고 말았다며 그것을 광적이고 신비한 예외로 몰아갔던 것이다.” (본문 190쪽)
역자 해제에서
그의 전작 『열렬한 책읽기』가 포스트마오 시대 사회주의의 격랑이 지나간 폐허 속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소생시킬 비밀을 찾는 지적 오디세이였다면, 『귀거래』는 1980년대 지청知靑 시절 열정과 좌절, 죄의식이 하나로 응결된 실존적 그림자에 대한 연민을 다루고 있다. 한편 이번 『혁명후/기』는 이들 저작을 관통하는 작가 일생에 걸친 집요한 문제의식, 즉, 문화대혁명을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중국을 규명할 수 없으며 미래를 준비할 수도 없다는 고집스런 사색이 마침내 결실을 맺고 있다. 이는 역사라는 ‘거대한 나’를 망각하고 환골탈태의 환희에 들뜬 현 중국에 보내는 엄중한 경고다.
그렇다고 저자가 중국과 세계의 변화에 등을 돌린 채 과거의 유령과 씨름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변증법과 음양이 몸에 밴 그는 딱딱한 이념이나 이론의 틀 사이를 경쾌하게 넘나들며 날것으로서의 현실의 핵심을 매섭게 포착한다. 특히 그의 탄탄한 사유의 유연성은 문혁을 다루는 데서도 남다른 힘을 발휘한다. “문혁이 인구 대국의 우향우 궤도 전환을 위한 거대한 위치에너지를 축적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또 한 차례의 지구적 확산을 촉진시켰다”는 그의 말은 문혁이 불가해한 광기의 분출이 아니라 20세기 냉전사의 지극히 정상적인 일부이며, 나아가 전체 자본주의 역사의 불가피한 이면임을 암시한다.
‘악마들의 광란’이라는 하드 코드를 깨고 문혁을 살과 피가 도는 인간의 역사로 되돌리려는 한사오궁의 노력은, 문혁을 미화하거나 원천적으로 긍정하려는 중국 지식계 일각의 견해와는 첨예한 비판적 거리를 갖는다. 문혁을 역사 안으로 불러들이려는 그의 욕구는 궁극적으로는 인간 본성의 복잡한 다면성과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을 포착하려는 작가로서의 겸허하고 끈질긴 본능에서 비롯된다. 물질적 욕망의 발산 통로가 가로막힌 냉전시대 사회주의 사회, “모든 욕망이 산더미처럼, 해일처럼 일파만파 정치적 투기장으로 몰려드는” 현상으로 문혁을 해석하면서도, 그는 결코 자기 자신이나 중국 인민에게 면죄부를 내어주진 않는다. 문혁 발발의 본질적인 원인이 인간에 대한 과도한 낙관주의였다는 뼈아픈 반성 속에서, 그가 궁극적으로 경계하는 것은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광기와 폭력이다. 그가 볼 때, 문혁은 현재와 무관한 과거의 유령이 아니다. 가속화되는 자본주의의 위기 앞에서 인류가 그동안 일궈온 문명적 성취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이 요구되는 지금, 문혁은 결코 회고적인 의제일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전작 『열렬한 책읽기』에 감돌던 차가운 냉소에 비해 이 책 『혁명후/기』에는 인간에 대한 한사오궁의 온정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낙관론으로부터 철저한 거리 두기에 기반한 믿음, 즉 불완전한 인간에 보내는 구도자의 연민이다. “도덕은 인류의 거대한 고통과 슬픔, 연민이 있은 후에 생겨나는 정신의 반응”이라는 그의 발언은, 압도적인 비극을 겪지 않고서는 도덕이 생겨날 수 없다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비관과 도덕의 위기가 극에 달했을 때 그것을 치유할 인간의 자기 회복 능력에 대한 낙관 사이를 길항하는 사유의 곤혹을 드러낸다.
저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백지운 : 『혁명후/기』에서 제기하신 흥미로운 관점 중 하나는 문혁 종결의 실마리가 이미 문혁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문혁 중 물질적인 욕망에 대한 추구가 발생하면서 지하 시장이 성행했고 중국 정부도 사실상 이를 암중 지지했다고요. 거기에 1972년 중국이 미국, 영국,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했지요. 그러니까 문혁 중에 안으로는 시장경제의 초기 단계를 준비하고, 밖으로는 탈냉전의 기초를 마련했던 것이죠. 일반적으로는 마오쩌둥의 죽음으로 문혁이 종결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선생님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마오가 문혁의 종결을 준비한 셈이 되는 것이죠. 다시 말해 문혁이라는 극단적인 좌경 급류 속에 훗날의 우선회가 준비되고 있었던 셈인데, 이것이 역사의 우연일까요?
한사오궁 : 과거의 많은 학자가 저지른 과오는 문혁에 대해 몇몇 중요한 영도자를 중심으로 사고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회 저층에서 무엇이 발생했는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혁 종결의 시점을 1976년으로 보는 기존 관점에 대해 제가 1972년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주장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장칭江靑의 체포로 문혁이 끝났다는 것은 아주 얕은 생각이에요. 진정한 변화는 1972년부터 시작되었죠. 많은 사람이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은 선진 농업 기술이 결핍된 계획경제로서 평균 분배밖에 못 한다고 생각했죠. 인민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요. 그러나 사실 1972년이 되면 이미 잉여 생산이 발생하면서 시장경제의 조건이 생겨났습니다. 정부가 추동한 것이 아니라 밑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죠. 이것이 10명의 덩샤오핑보다 더 중요한 시장경제 발생의 조건입니다. 주목할 지점은 시장 경쟁이 생기면서 정치적 투기가 불필요해졌다는 겁니다. 전에는 살기 위해 정치투쟁을 하고 논리를 만들어야 했다면, 이때부터는 정치투쟁이 아니더라도 다른 새로운 살길이 생긴 거죠.
백지운 : 그렇다면 왜 1972년에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이 일어났을까요?
한사오궁 : 물론 1972년 이전부터 생산력은 점진적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구축한 수리시설과 도로 설비 등 인프라의 효과가 1972년 이후 가시적으로 드러났죠. 그러면서 지하 공산품 거래가 출현했고 또 향진鄕鎭기업이라는 새로운 출로가 생겼습니다. 이것이 문혁 종결의 보이지 않는 큰손입니다. 사실 1972년 이후의 문혁은 상층에서는 여전히 격렬했지만 이미 하부의 기초가 없는, 모래 위의 성이었습니다. 이것이 저와 다른 연구자들의 차이입니다. 그들은 상층을 보지만 저는 아래를 보지요.
▣ 작가 소개
저자 : 한사오궁
韓少功
후난 사범대학 중문과에서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받았다. 1981년 첫 소설집 『월란』을 출간했고, 이후 전국 우수 단편소설상을 수상한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다」를 비롯해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1985년 『작가』에 「문학의 뿌리」라는 글을 발표해 이른바 ‘심근문학心根文學’을 주창했으며, 같은 해 후난 성 작가협회의 전업 작가가 되었다. 한사오궁은 “문학의 뿌리란 마땅히 전통문화의 토양 깊은 곳에 놓여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향토색 짙은 고향 이야기, 전래의 옛이야기 등을 적극 재현하는 소설 양식인 ‘심근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다. 1987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중국어로 번역했고, 1988년 하이난 성으로 내려가 『하이난기실』 주편, 『천애』 지 대표를 역임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소비 시대의 여러 문화 현상에 대한 비판을 주도하는 문화비평가로도 활동했다. 1993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아빠아빠아빠』, 단편소설 『여자여자여자』, 1996년에 발표한 『마교사전』은 ‘심근문학’과 제3세계 문학의 영향 아래서 자신의 창작 방법을 심도 있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2002년에는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문... 예 기사 작위를 받았고, 수필집 『산남수북』으로 2007년 루쉰 문학상을 수상했다. 중국 최고의 지성이자 위화·모옌과 더불어 중국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한사오궁은 매년 중국 소설학회가 선정하는 우수 소설 일순위에 오르며,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역자 : 백지운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연세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중국 근현대 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한사오궁의 『귀거래』『열렬한 책읽기』를 비롯해 『일본과 아시아』(공역), 『제국의 눈』(공역), 『위미』, 『시간』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한국어판 서문
혁명후/기 │ 전언
1 냉장 저장된 담론
2 궁정화宮廷化
3 도덕화
4 하소연하기
5 또 하나의 문제 사회
6 방법 선택의 최대공산
7 유토피아의 유통기한
8 지위 경쟁의 두 가지 길
9 만민의 성도화 上
10 만민의 성도화 下
11 만민의 경찰화 上
12 만민의 경찰화 下
13 성도화×경찰화
14 천의 얼굴을 한 인간과 천의 얼굴을 한 ‘신’
15 이익 이성과 게임의 법칙
16 구조적 위기 上
17 구조적 위기 下
18 재再위계화의 물결
19 토론해야 할 몇 가지 문제
20 초록 막대기
부록 1 │ 상자 속에 갇힌 권력
부록 2 │ ‘문화대혁명’ 대사기大事記
인터뷰 │ 인간의 역사로서의 문화대혁명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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