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승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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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김익하
출판사항문학세계사, 발행일:2016/11/25
형태사항p.440 46판:20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70758312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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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1. 고려시대 미상의 역사 복원과 아우른 이승휴 일대기

김익하의 『소설 이승휴』는 이승휴(1224~1300)의 삶을 소재로 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부제 ‘휴휴와 죽죽선이 죽서루에 오르다’가 표상하듯 이승휴와 죽죽선의 관계가 죽서루를 매개로 펼쳐지는 것도 중심 내용이다. 김익하의 역사적 상상력은 이승휴의 일대기를 장편 서사물의 긴 호흡으로 생생히 재현해 낸다. 역사소설의 장르적 위상이 약화되는 시점에서, 그나마 흥미 위주의 판타지 역사물이 주류 경향인 문단 실정에서, 김익하의 이번 장편이 제기하는 문제는 사뭇 진지하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33장으로 분절되어 1,300매를 넘어서는 이 작품은 방대한 사료 섭렵과 그에 관한 주관적 판단을 견고히 전제한 채 전지자의 시점으로 진술해 나간다.

전체 서사는 이승휴를 중심으로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 먼저 죽죽선과의 만남과 그녀의 과거사가 소개되는 단계이다.(1-5장) 여기서는 이승휴의 과거 급제 시기와 삼척에 금의환향 후 죽죽선을 만나는 계기에 이어 죽죽선의 불운한 가족사와 이름의 배경이 액자 구조로 제시된다. 다음으로 이승휴가 삼척에 머무는 동안의 여러 에피소드를 다루며 서사가 전개되는 단계이다.(7-22장) 여기에는 죽서루 건립에 관여하는 배경, 죽죽선과의 교우와 이별, 요전산성에서 몽골에의 항전, 스승 최자의 부고와 강도행(江都行)을 결심하는 과정 등이 소개된다. 부분적으로는 임자방(壬子榜)에 오르는 정황, 고향의 소재, 유년 시절, 최자와의 인연 등이 플래시백으로 삽입되어 있다. 마지막은 강화 복귀 이후의 행적과 파직당한 뒤 낙향하여 『제왕운기』를 집필하는 단계이다.(24-33장) 여기서는 경흥도호부 판관겸장서기, 대원 서장관, 안렴사 등의 행적과 파면 후 동안거사로 작호하는 배경, 여승이 된 죽죽선의 내막과 회한 등이 제시되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2. 죽죽선과 이승휴, 죽서루에 얽힌 인연

오늘날 이승휴는 고려 시대의 학자이자 문인이며, 서장관으로 원나라에 가서 문명을 떨쳤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사적을 칠언시와 오언시로 기록한 역저 『제왕운기』를 낳은 이로 규정된다. 소설은 이러한 정형에 새로운 정동(affect)을 불어넣는다. 삼척 출신이자 죽죽선의 연인이요, 죽서루 건립의 주역이었던 삶이 다시 태어난다.

『소설 이승휴』의 스토리적 시대 배경은 “휴휴 나이는 서른하나였”던 “임금[고종]이 왕위에 오른 지 41년인 갑인년(1254)”(2장)으로부터 “쉰일곱에 구동으로 돌아”와 “7년이 구름처럼 막힘없이 또 흘”러 “나이 또한, 어김없이 예순넷을 꿰”(32장)어서 『제왕운기』를 집필한 때(1287)까지에 이른다. 이러한 이승휴의 서사를 씨줄로 하여, 죽죽선의 삶과 기구한 운명이 날줄로 교차된다. 또한, 이들이 엮이고 중첩되는 과정에서 플롯의 시간이 변주되고 있다. 휴휴와 죽죽선의 출신 배경, 죽서루의 기원 등이 플롯 시간을 타고 재현되는 대표적 사건이다.

소설에서 우선 부각되는 인물은 죽죽선이다. 그녀의 성장 과정을 다루는 초반부 서사는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죽죽선은 삼척현 당밑거리 출신인 진을녀(陳乙女)가 장돌림 사내를 만나 낳은 딸이다. 떠난 사내를 인정하지 않은 모친에 의해 부친의 성도 모르는 죽죽선은 출생 배경으로부터 기구한 운명을 예고한다. 그럼에도 미모와 정절을 피로 물려받은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고향의 명기로 정착한다.

죽죽선의 존재는 이 소설에 대중성을 가미하는 극적 요소라 할 수 있다. 우선 죽죽선은 이승휴의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운명적인 인연을 직감하는 이들은 소설 전편에서 애절하고도 인간적인 정분을 유지해 나간다. 이러한 죽죽선과의 관계 묘사는 뜨거운 감정을 지닌 인간 이승휴를 부각시킨다. 또한, 죽죽선은 죽서루라는 이름의 배경으로도 기능한다.

3. 영웅이 아닌 한계가 분명한 인간으로서의 이승휴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화소는 이승휴의 삶과 업적이다. 이승휴의 행적은 소설 전편을 관류하며 주요 사건으로 배치된다. 예컨대 초라한 죽서정을 누각으로 건립하자는 최초 건의(6장), 요전산성에서 현령을 도와 외침을 방어했던 역사(8장), 122운 병과시(病課詩) 제작의 구체적 과정(18장), 두 번에 걸친 서장관 수행 경로와 『빈왕록(賓王錄)』으로의 기록(28장), 안렴사 활동에 의한 좌천과 십사(十事) 상소에 따른 파면(30장), 낙향 후 『제왕운기』 집필(32장)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들 서사는 이승휴와 관련된 역사적인 사실을 구체적으로 복원할 뿐만 아니라 그가 지닌 민족사관과 문학사상에 대한 재해석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관련 사료에 대한 수용의 깊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면모는 이 작품이 소설적 형상화를 넘어서 하나의 비평적인 혹은 학술적인 담론 수위를 지니는 이유에 해당된다. 이승휴의 재구성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인간 이승휴의 면모가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 기록 속에서 문인이자 학자로서의 강직한 삶 이외에 이승휴의 사적 인생은 알려진 바가 적다. 이 소설은 인간 이승휴의 면모를 부각시키기 위해 다양한 기법과 에피소드를 활용한다. 죽죽선과의 애정 외에도 주변 인물과의 감정적 갈등, 인간적 번뇌, 권력을 향한 욕망 등은 세속적인 인간상의 전형적 양태들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초월적 영웅으로서가 아닌 한계가 분명한 하나의 인간으로서 이승휴를 형상화하고 있다.

4. 새로운 공동체 혹은 로컬 히스토리의 정립

이승휴와 죽죽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장편 서사물에는 이들 외에 또 다른 중심인물이 있다. 그는 인간이 아닌 로컬리티, 이를테면 장소로서의 죽서루이다.

이승휴를 삼척의 인물로 전유하려는 내포적 욕망은 자연스럽게 장소성 문제로 이 소설의 핵심을 전이해 간다. 공간적 배경에서도 이러한 지평을 확인할 수 있다. 텍스트의 핵심 서사는 역사를 복원하고 있으며, 자동기술적으로 역사적 장소의 재현이 수반된다. 이 작품의 주된 공간적 배경인 강원도 삼척이라는 장소가 대표적이다. 삼척은 이승휴의 역저 『제왕운기』의 산실이며, 이 소설을 쓴 김익하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런 관계 역시 문학의 장소성 문제와 긴밀히 연동된다.

작품을 관류하는 주요 화소 중 하나가 죽서루 건립이라는 점은 장소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이야기 서두에서 이승휴가 삼척에 머물며 당시 죽서정이던 것을 개축하려는 뜻을 현령에게 전하는 장면이 처음 등장한다. 이때 지역과 장소에 대한 묘사를 동반한다.

오불진[吳火鎭]이 바다와 강에다 공평하게 몸을 담고 있다.
요전산성(蓼田山城) 아래 오불진에서 오십 구비 타 내린 강줄기를 거슬러 온 해무가 서남쪽에 우뚝 솟아오른 단애에 부딪혀 소요했다. 절벽에 올라 바다를 멀리 등지고 고개 들면 옅은 해무 속으로 뚫고 나가는 시선에 나지막한 산들을 층층이 넘어 힘차게 솟아오른 두타산이 보였다. 오른쪽 귀퉁이로는 근산 뿌리인 남산이 꼬리를 물었고 왼쪽에는 오십천 줄기에서 솟아오른 갈야산(葛夜山)이 대숲을 두른 채 서풍마저 가로막고 서 있었다. 단애 끝자락에서 벗어난 강줄기는 새 을(乙) 자로 휘저어 부내 복판으로 흘러 봉황대 아래에서 소(沼)를 만들어 머물다 다시 한 번 ‘乙’ 자로 뒤틀며 거침없이 내달아 동해에 닿았다.(7장)

당대 삼척 지역의 풍광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구절이다. 이처럼 핍진한 묘사 자체가 해당 장소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과 경험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시점이 소거되고 풍경 자체가 물화된 듯한 장면이 연출된다. 이 작품의 문체미학이 고조되는 지점이 이러한 경우라 하겠다. 위와 같이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닌 장소에 죽서정은 하나의 지역적 상징처럼 존재한다. 주지하는 바대로 한국의 건축은 자연과의 조화를 근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죽서정 역시 자연의 일부로, 다만 소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승휴는 출신 배경으로부터 주변부적 인물이었다. 가리 이씨의 시조로서 전대 가문의 기록이 희박하다거나 출신지조차 불분명한 정황이 그것이다. 그 밖에 부친을 여의고 증조모 밑에서 수학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 간절한 구관(求官) 활동과 입신 과정, 정치 투쟁 끝의 파면과 낙향 등은 중심 권력으로부터 거리가 멀었던 이승휴의 입지를 반증한다. 『빈왕록』과 『제왕운기』 등은 그 축자적 의미 이외에도 치열했던 이승휴의 삶과 욕망이 내재된 정치적 서술이기도 하다. 그렇게 볼 때 이승휴 스스로가 자신의 저술을 통해 중심의 재편을 지향하고 소외된 타자의 자리를 갈구하였다. 그에 천착하는 김익하 소설은 700년의 시간을 소급하며 새로운 공동체 혹은 로컬 히스토리의 정립을 꿈꾸고 있다.

5. 『제왕운기』의 산실인 삼척의 장소성을 역사에 투영

김익하는 서문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드러나지 않은 미상(未詳)과 그 가치에 대한 관심이자 물음이고 여행”이라고 쓴다. 그 결과 『소설 이승휴』는 동안거사 이승휴의 삶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한 편의 서사시와 같이 탄생하였다. 『제왕운기』가 한 편의 민족 대서사시였듯이 이 소설도 이승휴와 죽서루를 소재로 인물과 지역의 장편 서사시를 재구성하려는 듯하다.

그렇다면 소설의 부재, 작가의 결여가 있다면 무엇일까. 역사소설의 고전적 예시인 홍명희의 『임꺽정』은 인물과 사건, 역사와 진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봉건 조선을 재현한다. 한편 장소는 위의 요소들이 전개되는 공간적 배경으로서의 의미로 한정된다. 현대적 고전이라 할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장소를 표제로 내세우지만 전경화되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다단했던 현실이다. 태백산맥이라는 장소는 민족적 운명과 연속성을 상징하는 기호의 성격이 강하다.

이에 비해 『소설 이승휴』는 장소를 전면에 드러낸다. 이승휴의 재현은 삼척이라는 장소의 역사적 정당성을 구현하고, 그 물화된 대상으로 죽서루를 복원하였다. 이러한 선험적 가치 아래에서 긴장의 밀도나 사건의 개연적 고리가 약화되는 것은 부득이한 결과일 수 있다. 이승휴를 포함한 현내 유지들이 기녀 죽죽선의 거처 수리를 공모하였다가 명분상 죽서루 건립으로 전환하였다는 설정은 약한 고리의 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 작품의 서사시적 구도가 방법론적으로 취한 의장이기도 하다.

루카치가 지적한 바와 같이 총체성을 상실한 현대사회는 소설의 시대가 되었다. 소설은 더 이상 서사시가 불가능한 파편화된 세계 속에서 한 개인이 내면의 총체성을 갈구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김익하의 소설은 역사와 장소, 인물과 사건이 하나의 총체성 아래 길항하는 우리 시대의 서사시를 표방한다. 더더욱 이 소설은 스스로 중층적 장소를 현전하는 사물이고자 한다. 소설적 형상화를 통해 문학담론의 지평을 끌어안고, 미완의 역사나 지방사적 결여를 보완하려는 학술적 입론을 과감히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제왕운기』의 산실인 삼척의 장소성을 역사에 투영한 르포르타주와 같다는 점도 텍스트적 중층성의 한 층위이다. 바로 이 부분이 이승휴의 현재성을 증거하는 논거이자 『소설 이승휴』가 전유하는 역사적 진실일 것이다. 그 과정에는 죽서루를 포함하여 자연이라는 타자가 또 하나의 주체이자 공동체 일원으로 부각된다. 작가의 의도를 떠나 이러한 타자의 지평은 김익하 소설이 역사와 인물에 주목하는 과정에서 산파되는 정치적 무의식이요, 독자의 입장에서 징후적 독서가 발견한 현재적 의미라고 할 수 있다.

▣ 작가 소개

저 : 김익하
강원도 삼척 출생. 1980년 『현대문학』에 단편 「설해목」, 「부황의 땅」 추천 완료. 소설집 『33년 만의 해후』, 『개미지옥』 등이 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지회지부 협력 위원장, 구로문협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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