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전문 연구자들이 최초로 밝힌 신사임당의 이미지 변천사
1551년 신사임당이 마흔여덟 살에 세상을 떠난 뒤 그녀에게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산수와 포도그림을 잘 그렸던 신사임당에게 당대 권력자들은 새로운 이미지들이 하나씩 덧붙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사임당의 이미지를 우리는 진짜라고 믿어왔다. 대체 신사임당은 누구인가?
그동안 부분적으로 조명되었던 신사임당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5명의 전문 연구자들이 모였다. 한국미술사와 한문학을 전공한 고연희는 예술가로서 신사임당을, 조선시대 사상사를 전공한 이경구는 송시열이 원했던 신사임당의 이미지를, 신사임당의 담론을 연구해온 동양철학 전공의 이숙인은 율곡의 어머니이자 교육자로 추앙 받게 된 신사임당을, 식민지 가족사와 여성사를 전공한 홍양희는 현모양처 신사임당의 이미지를, 신여성담론을 연구한 김수진은 국가 영웅이 된 신사임당에 주목하였다.
신사임당의 이미지 변천사를 더듬어 가다보면, 조선을 지배한 성리학 이데올로기는 물론이고, 일제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당대 지배계층이 신사임당의 이름으로 욕망했던 바가 무엇인지를 마주하게 된다.
5만 원 권 화폐 속의 ‘포도도’와 ‘초충도’는 가짜다
신사임당이 화폐 인물로 선정된 5만 원 권에는 그녀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포도도]와 [초충도수병] 중 ‘가지’ 화면의 일부가 도안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모두 신사임당의 작품이 아니다. 신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전칭작일 뿐, 거듭 모사되어 정형화된 그림들이다.
‘신씨의 예술혼, 미궁에 떠돌다’는 글에서 고연희는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논의된 신사임당의 작품과 현존하는 작품들과의 관계를 규명하며, 그녀의 진짜 모습은 어떠했을지를 추적한다. 신사임당은 산수와 포도 그림이 고위관료층 사이에서 널리 알려졌고, 서로 그림을 소장하려 했을 만큼 이름을 떨쳤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17세기 노론의 영수 송시열은 그녀의 산수화를 위작으로 몰아세운다. 대신 그녀가 그린 자그마한 초충도에 주목한다. 이는‘무심코 지나쳐 버리기 쉬운 길가의 잡초나 벌레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 아름다움을 표현’한 초충도가 송시열이 생각한 성리학의 사유체제 속에서 바람직했기 때문이다. 즉 만물을 두루 살피는 인자함과 세상을 염려하는 여성의 마음이 담겼다는 해석은 그로부터 오랜 시간 초충도에 대한 평가 기준이 되었다.
이후 18세기 조선에서 초충도는 폭발적 인기를 끌며 신사임당이 그렸다는 초충도가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그 결과 지금까지 사임당이 그렸다는 초충도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간송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등이 소장한 사임당의 그림이나 초충도는 신사임당의 진작은 아니다. 거듭 베끼는 동안 정형화된 18세기의 이미지를 반영한 작품이다. 고연희는 동아대, 오죽헌시립박물관, 간송미술관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초충도를 문헌 속에 등장하는 신사임당의 진작과 비교하며 이 의문을 상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율곡이 없다면 신사임당은 없다!
이경구는 ‘김장생과 송시열, 신사임당과 이율곡을 재해석하다’에서 율곡의 제자였던 김장생과 김장생의 제자인 송시열의 사임당에 대한 평가를 비교한다.
김장생은 임진왜란을 겪은 후 피폐한 조선을 재건하기 위해 예학을 바로세우고자 했다. 따라서 김장생은 시댁을 위해 헌신하거나 종법질서를 바로 세운 적이 없는 신사임당이 아니라 율곡의 부인인 노씨에 주목했다. 하지만 명의 멸망과 병자호란은 송시열에게 어마어마한 이념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송시열은 조선을 지키는 길은 주자학의 실현뿐이라고 믿었다. 이를 위해 공자-주자-율곡을 계보화 하고 흔들린 조선의 사회질서를 예를 통해 굳건히 하고자 했다. 우선 율곡의 학문적 오류를 걷어냈고 마찬가지로 신사임당의 작품 역시 유교적으로 해석했다. 송시열은 스님이 등장하는 신사임당의 산수화를 위작으로 부정해야 마땅했다. 송시열에게 사임당의 예술적 재능은 관심 밖이었으며, 신사임당은 위대한 현인 율곡을 강화하기 위한 보조적인 장치로 필요했다. 송시열은 율곡을 추숭하는 과정에서 신사임당에게도 그 어머니에 맞는 이미지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신사임당은 정말 용꿈을 꾸고 율곡을 낳았을까 ?
송시열에 의해 시작된 율곡에 대한 존숭은 17-18세기로 이어졌다. 이숙인은 아들 율곡과 함께 역사의 길을 걷게 되는 18세기의 사임당을 문헌 자료를 통해 살폈다. 송시열의 후예들은 신사임당을 초충도의 대가로 평가하였고, 신사임당의 이미지는 그 아들을 낳은 어머니에 걸맞게 변해갔다. 특히 이 시기에 사임당이 용꿈을 꾸고 아들 율곡을 낳았다는 잉태의 담론이 나온다. 사임당의 예술가적 기운은 율곡의 잉태와 연결되었고, 신사임당은 유교적 부덕을 갖춘 인물로 자리 잡는다. 자연스럽게 화가 신사임당의 존재는 희미해지고, 가족 역할에 충실한 어머니 신사임당이 도드라진다. 사임당의 초충도를 닭이 쪼았다는 이야기, 사임당의 호가 사임이 된 연유, 사임당이 꾸었다는 율곡의 태몽 이야기와 태교 등 교육적 의미가 더욱 강화된다. 아들 율곡과 함께 시작된 신사임당의 역사는 더욱 풍부해지며 유교 질서와 노론의 이데올로기를 완성해갔다.
신사임당의 남편 이원수는 정말로 변변치 못한 사람이었나?
신사임당이 근대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20세기 초 제국주의 침입에 맞서 민족주의적 담론이 풍미하던 시절이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은 문명개화를 위해 근대교육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홍양희는 ‘신사임당, 현모양처의 상징이 되다’에서 이 시기 여성의 교육을 강조하기 위해 자식 교육을 잘한 여성으로 신사임당이 불려나왔다고 지적한다. 이어 1930년대 일제 식민지하에서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의 이름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조선의 전통적 여성관은 현모양처가 아니라 열녀효부였다. 시부모와 남편에게 무조건적으로 순종하고 장자 생산과 양육을 중시하는 것이 유교적 여성관이었다. 반면 현모양처의 여성관에서 남성의 천직이 바깥일을 통해 처자를 부양하는 것이라면, 여성은 가사 노동과 자녀 양육에 전념해 남성의 내조자 역할을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는 차이가 존재한다.
이렇듯 조선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는 일본에서 유입된 것이지만 그대로 신사임당에게 투영된다. 이때부터 신사임당의 자녀교육자로서의 모습, 특히 남편에 대한 내조자로서의 모습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남편 이원수가 별 볼일 없는 인물이었으나 신사임당을 탁월한 내조로 남편을 사화에서 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죽거든 새로 장가를 가지 말 것을 부탁하였다는 등의 이야기는 모두 이 무렵 부각된 양처의 모습이다. 신사임당 하면 으레 떠올리는 율곡과 형제들을 잘 교육시킨 현모, 부족한 남편을 현명한 길로 이끈 내조 잘하는 양처의 모습은 이렇듯 1930년대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로부터 탄생되었다.
여기에 일제 말기 조선인 징병을 독려하기 위해 조선 여성들도 일본 여성들을 본받아 군국의 어머니로 거듭나자는 선전에 이용하기 위해 신사임당에게는 군국의 어머니라는 이미지까지 덧씌워진다.
박정희 체제는 왜 신사임당을 국가 영웅으로 소환했는가?
근대에 이르러 신사임당 담론은 민족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국가영웅화 작업 속에서 다시 등장한다. 김수진은 ‘현모양처, 신여성, 초여인의 얼굴을 지닌 사임당’에서 이 시기 만들어진 신사임당의 이미지를 크게 세 가지 부분에서 살핀다. 하나는 국가 영웅으로서의 신사임당, 두 번째는 여성계가 본 신사임당, 세 번째는 2009년 오만 원 권 화폐의 모델을 두고 벌어진 논쟁이다.
박정희 체제는 독재 체제를 옹호하기 위한 민족주의적 영웅화 작업을 진행하며 국난 극복의 상징이 될 역사 인물을 소환한다. 신사임당은 국가 영웅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무렵 김활란을 필두로 일부 여성계에서는 사임당을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고, 사회에 봉사한 일종의 초여인이자 슈퍼우먼의 모델로 간주한다. 당시 김활란은 가정에 있는 여성도 직업부인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 아래 현모양처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신사임당은 가정과 사회를 넘나들며 근대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초여성의 모범으로 자리매김했다.
신사임당의 만들어진 이미지에 관한 논란은 2009년에도 뜨거웠다. 오만 원 권 지폐 도안의 모델로 신사임당이 거론되며 여성계가 반발했다. 당시 여성계는 신사임당이 성역할 분담을 정당화하고 공고하게 만드는 현모양처의 상징으로 소비되어 왔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반대를 했다.
이렇듯 17세기부터 시작된 신사임당의 신화는 500여 년을 이어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 만들어진 신사임당 이미지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진실로 자리 잡았다. 역사가 전하는 많은 사건과 인물 역시 신사임당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이미지를 진실이라 믿어왔던 것은 아닐까. 2017년에는 이영애가 주인공을 맡은 드라마 ‘사임당-빛의 일기’가 방영 예정이어서 다시 한번 신사임당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과연 신사임당의 만들어진 이미지는 앞으로 어떻게 또 변해갈까. 여진히 진행중인 신사임당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더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 작가 소개
고연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선후기 산수기행문학과 기유도 연구」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중 영모화초도의 정치적 성격」으로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그림, 문학에 취하다』(2011), 『화상찬으로 읽은 사대부의 초상화』(2015) 등이 있고, 논문으로 「‘신사임당 초충도’ 18세기 회화문화의 한 양상」 등이 있다.
이경구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HK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울대학교 규장각 등에 재직하였다. 조선후기 사상사, 문화사, 정치사 전반에 걸친 연구를 진행하였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후기 안동 김문 연구』(2007), 『17세기 조선 지식인 지도』(2009), 『조선후기 사상사의 미래를 위하여』(2013), 『대동의 길 17세기』(공저, 2014) 등이 있다.
이숙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정절의 역사』(2014), 『동아시아 고대의 여성사상』(2005), 『조선 여성의 일생』... (공저, 2011)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조선후기 家政論의 성격: 養生과治産」(2013),「儒仙들의 풍류와 소통:『需雲雜方』을 통해 본 16세기 한사족의 문화정치학」(2012) 등이 있다.
홍양희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HK연구교수. 한양대학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편저로 『근대 한국, ‘제국’과 ‘민족’의 교차로』(2011), 『고아, 족보없는 자: 근대, 국민국가, 개인』(2014) 등이 있다. 논문으로 「식민지시기 ‘현모양처’론과 ‘모더니티’ 문제」(2010), 「현모양처의 상징, 신사임당: 식민지시기 신사임당의 재현과 젠더 정치학」(2016) 등이 있다.
김수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 「전통의 창안과 여성의 국민화: 신사임당을 중심으로」(2008), 「신사임당과 현모양처」(2009), 『신여성, 근대의 과잉-식민지조선의 신여성 담론과 젠더정치, 1920-1934』(2010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아이디 주체(IDSubject)와 여성의 정치적 주체화」(2014년 한국여성학회 우수학술논문상)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시대가 욕망하고 시대가 소환한 신사임당 _ 이숙인
1 신씨의 예술혼, 미궁에 떠돌다 _ 고연희
산수화로 이름을 떨친, 여성화가 신씨 _ 21
사라진 신씨의 산수화 _ 28
송시열이 칭송한 자그마한 원추리 그림 _ 32
초충도의 대가로 자리잡은 신사임당 _ 39
갑자기 등장하는 ‘사임당 초충도’들 _ 44
18세기, ‘사임당 초충도’를 베끼고 또 베꼈다 _ 46
송시열은 왜 초충도를 선택하였는가 _ 48
정선 또한 초충도를 그리다 _ 51
사임당이 그린 초충도는 전하지 않는다 _ 54
2 김장생과 송시열, 신사임당과 이율곡을 재해석하다 _ 이경구
신사임당이 아니라 율곡의 부인 노씨에 주목하다 _ 75
어머니 신사임당과 부인 노씨의 비중이 역전되다 _ 79
사임당을 부각시킨 해석자, 율곡의 후예들 _ 83
오늘날의 율곡을 만들어낸 제자 김장생 _ 85
임란 후 피폐해진 조선을 예로 재건하고자 _ 88
조선을 지키는 길은 주자학의 실현뿐이라 믿은 송시열 _ 92
사임당의 산수화에 대한 송시열의 평가 _ 100
사임당의 산수화를 평한 이경석의 또 다른 해석 _ 108
사임당-율곡에 대한 송시열의 이상화 _ 110
송시열의 재해석에 대한 우리의 재해석 _ 116
3 아들 율곡과 함께 역사의 길을
- 18세기 문헌으로 살핀 신사임당의 이미지 _ 이숙인
그녀 사후, 진정한 의미의 역사가 시작되다 _ 124
초충도에 갑자기 관심을 쏟는 송시열의 사람들 _ 130
사임당을 칭한 가짜 그림이 창궐하다 _ 137
유교적 부덕을 실천한 여성의 상징이 된 신사임당 _ 146
‘율곡을 길러낸 어머니’에 주목하다 _ 152
서인 노론의 프로젝트, 신사임당 _ 160
4 신사임당, 현모양처의 상징이 되다 _ 홍양희
여성 예술인인가 현모양처인가 _ 166
자녀 교육의 귀감, 여성 교육의 모델 _ 168
신사임당과‘현모양처’의 조우 _ 181
군국의 어머니, 총후부인 _ 195
신사임당 담론의 동반자, ‘신여성’에서 ‘된장녀’까지 _ 210
5 현모양처, 신여성, 초여인의 얼굴을 지닌 사임당_ 김수진
역사적 상상력, 변화하는 신사임당 _ 216
박정희 체제에서 우리나라의 대표 여성으로 자리잡다 _ 219
‘충’과 현모양처, 전통과 근대의 접합 _ 225
사임당의 현대적 현신, 육영수 _ 230
여성 운동이 만든 사임당상, 슈퍼우먼 _ 233
일과 가정을 완벽하게 병행한 신사임당-초여인의 역설 _ 238
절반의 성공, 최초의 여성 화폐 인물 _ 241
표준 영정과 지폐 초상화 제정을 둘러싼 논란 _ 243
착한 여자에서 유능한 여자로, 신 현모양처의 유혹 _ 247
부록
율곡의 「선비행장」 _ 254
신사임당 연보 _ 260
출처 _ 264
참고 문헌 _ 280
전문 연구자들이 최초로 밝힌 신사임당의 이미지 변천사
1551년 신사임당이 마흔여덟 살에 세상을 떠난 뒤 그녀에게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산수와 포도그림을 잘 그렸던 신사임당에게 당대 권력자들은 새로운 이미지들이 하나씩 덧붙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사임당의 이미지를 우리는 진짜라고 믿어왔다. 대체 신사임당은 누구인가?
그동안 부분적으로 조명되었던 신사임당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5명의 전문 연구자들이 모였다. 한국미술사와 한문학을 전공한 고연희는 예술가로서 신사임당을, 조선시대 사상사를 전공한 이경구는 송시열이 원했던 신사임당의 이미지를, 신사임당의 담론을 연구해온 동양철학 전공의 이숙인은 율곡의 어머니이자 교육자로 추앙 받게 된 신사임당을, 식민지 가족사와 여성사를 전공한 홍양희는 현모양처 신사임당의 이미지를, 신여성담론을 연구한 김수진은 국가 영웅이 된 신사임당에 주목하였다.
신사임당의 이미지 변천사를 더듬어 가다보면, 조선을 지배한 성리학 이데올로기는 물론이고, 일제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당대 지배계층이 신사임당의 이름으로 욕망했던 바가 무엇인지를 마주하게 된다.
5만 원 권 화폐 속의 ‘포도도’와 ‘초충도’는 가짜다
신사임당이 화폐 인물로 선정된 5만 원 권에는 그녀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포도도]와 [초충도수병] 중 ‘가지’ 화면의 일부가 도안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모두 신사임당의 작품이 아니다. 신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전칭작일 뿐, 거듭 모사되어 정형화된 그림들이다.
‘신씨의 예술혼, 미궁에 떠돌다’는 글에서 고연희는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논의된 신사임당의 작품과 현존하는 작품들과의 관계를 규명하며, 그녀의 진짜 모습은 어떠했을지를 추적한다. 신사임당은 산수와 포도 그림이 고위관료층 사이에서 널리 알려졌고, 서로 그림을 소장하려 했을 만큼 이름을 떨쳤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17세기 노론의 영수 송시열은 그녀의 산수화를 위작으로 몰아세운다. 대신 그녀가 그린 자그마한 초충도에 주목한다. 이는‘무심코 지나쳐 버리기 쉬운 길가의 잡초나 벌레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 아름다움을 표현’한 초충도가 송시열이 생각한 성리학의 사유체제 속에서 바람직했기 때문이다. 즉 만물을 두루 살피는 인자함과 세상을 염려하는 여성의 마음이 담겼다는 해석은 그로부터 오랜 시간 초충도에 대한 평가 기준이 되었다.
이후 18세기 조선에서 초충도는 폭발적 인기를 끌며 신사임당이 그렸다는 초충도가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그 결과 지금까지 사임당이 그렸다는 초충도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간송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등이 소장한 사임당의 그림이나 초충도는 신사임당의 진작은 아니다. 거듭 베끼는 동안 정형화된 18세기의 이미지를 반영한 작품이다. 고연희는 동아대, 오죽헌시립박물관, 간송미술관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초충도를 문헌 속에 등장하는 신사임당의 진작과 비교하며 이 의문을 상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율곡이 없다면 신사임당은 없다!
이경구는 ‘김장생과 송시열, 신사임당과 이율곡을 재해석하다’에서 율곡의 제자였던 김장생과 김장생의 제자인 송시열의 사임당에 대한 평가를 비교한다.
김장생은 임진왜란을 겪은 후 피폐한 조선을 재건하기 위해 예학을 바로세우고자 했다. 따라서 김장생은 시댁을 위해 헌신하거나 종법질서를 바로 세운 적이 없는 신사임당이 아니라 율곡의 부인인 노씨에 주목했다. 하지만 명의 멸망과 병자호란은 송시열에게 어마어마한 이념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송시열은 조선을 지키는 길은 주자학의 실현뿐이라고 믿었다. 이를 위해 공자-주자-율곡을 계보화 하고 흔들린 조선의 사회질서를 예를 통해 굳건히 하고자 했다. 우선 율곡의 학문적 오류를 걷어냈고 마찬가지로 신사임당의 작품 역시 유교적으로 해석했다. 송시열은 스님이 등장하는 신사임당의 산수화를 위작으로 부정해야 마땅했다. 송시열에게 사임당의 예술적 재능은 관심 밖이었으며, 신사임당은 위대한 현인 율곡을 강화하기 위한 보조적인 장치로 필요했다. 송시열은 율곡을 추숭하는 과정에서 신사임당에게도 그 어머니에 맞는 이미지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신사임당은 정말 용꿈을 꾸고 율곡을 낳았을까 ?
송시열에 의해 시작된 율곡에 대한 존숭은 17-18세기로 이어졌다. 이숙인은 아들 율곡과 함께 역사의 길을 걷게 되는 18세기의 사임당을 문헌 자료를 통해 살폈다. 송시열의 후예들은 신사임당을 초충도의 대가로 평가하였고, 신사임당의 이미지는 그 아들을 낳은 어머니에 걸맞게 변해갔다. 특히 이 시기에 사임당이 용꿈을 꾸고 아들 율곡을 낳았다는 잉태의 담론이 나온다. 사임당의 예술가적 기운은 율곡의 잉태와 연결되었고, 신사임당은 유교적 부덕을 갖춘 인물로 자리 잡는다. 자연스럽게 화가 신사임당의 존재는 희미해지고, 가족 역할에 충실한 어머니 신사임당이 도드라진다. 사임당의 초충도를 닭이 쪼았다는 이야기, 사임당의 호가 사임이 된 연유, 사임당이 꾸었다는 율곡의 태몽 이야기와 태교 등 교육적 의미가 더욱 강화된다. 아들 율곡과 함께 시작된 신사임당의 역사는 더욱 풍부해지며 유교 질서와 노론의 이데올로기를 완성해갔다.
신사임당의 남편 이원수는 정말로 변변치 못한 사람이었나?
신사임당이 근대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20세기 초 제국주의 침입에 맞서 민족주의적 담론이 풍미하던 시절이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은 문명개화를 위해 근대교육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홍양희는 ‘신사임당, 현모양처의 상징이 되다’에서 이 시기 여성의 교육을 강조하기 위해 자식 교육을 잘한 여성으로 신사임당이 불려나왔다고 지적한다. 이어 1930년대 일제 식민지하에서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의 이름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조선의 전통적 여성관은 현모양처가 아니라 열녀효부였다. 시부모와 남편에게 무조건적으로 순종하고 장자 생산과 양육을 중시하는 것이 유교적 여성관이었다. 반면 현모양처의 여성관에서 남성의 천직이 바깥일을 통해 처자를 부양하는 것이라면, 여성은 가사 노동과 자녀 양육에 전념해 남성의 내조자 역할을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는 차이가 존재한다.
이렇듯 조선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는 일본에서 유입된 것이지만 그대로 신사임당에게 투영된다. 이때부터 신사임당의 자녀교육자로서의 모습, 특히 남편에 대한 내조자로서의 모습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남편 이원수가 별 볼일 없는 인물이었으나 신사임당을 탁월한 내조로 남편을 사화에서 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죽거든 새로 장가를 가지 말 것을 부탁하였다는 등의 이야기는 모두 이 무렵 부각된 양처의 모습이다. 신사임당 하면 으레 떠올리는 율곡과 형제들을 잘 교육시킨 현모, 부족한 남편을 현명한 길로 이끈 내조 잘하는 양처의 모습은 이렇듯 1930년대 현모양처 이데올로기로부터 탄생되었다.
여기에 일제 말기 조선인 징병을 독려하기 위해 조선 여성들도 일본 여성들을 본받아 군국의 어머니로 거듭나자는 선전에 이용하기 위해 신사임당에게는 군국의 어머니라는 이미지까지 덧씌워진다.
박정희 체제는 왜 신사임당을 국가 영웅으로 소환했는가?
근대에 이르러 신사임당 담론은 민족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국가영웅화 작업 속에서 다시 등장한다. 김수진은 ‘현모양처, 신여성, 초여인의 얼굴을 지닌 사임당’에서 이 시기 만들어진 신사임당의 이미지를 크게 세 가지 부분에서 살핀다. 하나는 국가 영웅으로서의 신사임당, 두 번째는 여성계가 본 신사임당, 세 번째는 2009년 오만 원 권 화폐의 모델을 두고 벌어진 논쟁이다.
박정희 체제는 독재 체제를 옹호하기 위한 민족주의적 영웅화 작업을 진행하며 국난 극복의 상징이 될 역사 인물을 소환한다. 신사임당은 국가 영웅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무렵 김활란을 필두로 일부 여성계에서는 사임당을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고, 사회에 봉사한 일종의 초여인이자 슈퍼우먼의 모델로 간주한다. 당시 김활란은 가정에 있는 여성도 직업부인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 아래 현모양처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신사임당은 가정과 사회를 넘나들며 근대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초여성의 모범으로 자리매김했다.
신사임당의 만들어진 이미지에 관한 논란은 2009년에도 뜨거웠다. 오만 원 권 지폐 도안의 모델로 신사임당이 거론되며 여성계가 반발했다. 당시 여성계는 신사임당이 성역할 분담을 정당화하고 공고하게 만드는 현모양처의 상징으로 소비되어 왔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반대를 했다.
이렇듯 17세기부터 시작된 신사임당의 신화는 500여 년을 이어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 만들어진 신사임당 이미지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진실로 자리 잡았다. 역사가 전하는 많은 사건과 인물 역시 신사임당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이미지를 진실이라 믿어왔던 것은 아닐까. 2017년에는 이영애가 주인공을 맡은 드라마 ‘사임당-빛의 일기’가 방영 예정이어서 다시 한번 신사임당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과연 신사임당의 만들어진 이미지는 앞으로 어떻게 또 변해갈까. 여진히 진행중인 신사임당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더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 작가 소개
고연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선후기 산수기행문학과 기유도 연구」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중 영모화초도의 정치적 성격」으로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그림, 문학에 취하다』(2011), 『화상찬으로 읽은 사대부의 초상화』(2015) 등이 있고, 논문으로 「‘신사임당 초충도’ 18세기 회화문화의 한 양상」 등이 있다.
이경구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HK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울대학교 규장각 등에 재직하였다. 조선후기 사상사, 문화사, 정치사 전반에 걸친 연구를 진행하였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후기 안동 김문 연구』(2007), 『17세기 조선 지식인 지도』(2009), 『조선후기 사상사의 미래를 위하여』(2013), 『대동의 길 17세기』(공저, 2014) 등이 있다.
이숙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정절의 역사』(2014), 『동아시아 고대의 여성사상』(2005), 『조선 여성의 일생』... (공저, 2011)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조선후기 家政論의 성격: 養生과治産」(2013),「儒仙들의 풍류와 소통:『需雲雜方』을 통해 본 16세기 한사족의 문화정치학」(2012) 등이 있다.
홍양희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HK연구교수. 한양대학교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편저로 『근대 한국, ‘제국’과 ‘민족’의 교차로』(2011), 『고아, 족보없는 자: 근대, 국민국가, 개인』(2014) 등이 있다. 논문으로 「식민지시기 ‘현모양처’론과 ‘모더니티’ 문제」(2010), 「현모양처의 상징, 신사임당: 식민지시기 신사임당의 재현과 젠더 정치학」(2016) 등이 있다.
김수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 「전통의 창안과 여성의 국민화: 신사임당을 중심으로」(2008), 「신사임당과 현모양처」(2009), 『신여성, 근대의 과잉-식민지조선의 신여성 담론과 젠더정치, 1920-1934』(2010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아이디 주체(IDSubject)와 여성의 정치적 주체화」(2014년 한국여성학회 우수학술논문상)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시대가 욕망하고 시대가 소환한 신사임당 _ 이숙인
1 신씨의 예술혼, 미궁에 떠돌다 _ 고연희
산수화로 이름을 떨친, 여성화가 신씨 _ 21
사라진 신씨의 산수화 _ 28
송시열이 칭송한 자그마한 원추리 그림 _ 32
초충도의 대가로 자리잡은 신사임당 _ 39
갑자기 등장하는 ‘사임당 초충도’들 _ 44
18세기, ‘사임당 초충도’를 베끼고 또 베꼈다 _ 46
송시열은 왜 초충도를 선택하였는가 _ 48
정선 또한 초충도를 그리다 _ 51
사임당이 그린 초충도는 전하지 않는다 _ 54
2 김장생과 송시열, 신사임당과 이율곡을 재해석하다 _ 이경구
신사임당이 아니라 율곡의 부인 노씨에 주목하다 _ 75
어머니 신사임당과 부인 노씨의 비중이 역전되다 _ 79
사임당을 부각시킨 해석자, 율곡의 후예들 _ 83
오늘날의 율곡을 만들어낸 제자 김장생 _ 85
임란 후 피폐해진 조선을 예로 재건하고자 _ 88
조선을 지키는 길은 주자학의 실현뿐이라 믿은 송시열 _ 92
사임당의 산수화에 대한 송시열의 평가 _ 100
사임당의 산수화를 평한 이경석의 또 다른 해석 _ 108
사임당-율곡에 대한 송시열의 이상화 _ 110
송시열의 재해석에 대한 우리의 재해석 _ 116
3 아들 율곡과 함께 역사의 길을
- 18세기 문헌으로 살핀 신사임당의 이미지 _ 이숙인
그녀 사후, 진정한 의미의 역사가 시작되다 _ 124
초충도에 갑자기 관심을 쏟는 송시열의 사람들 _ 130
사임당을 칭한 가짜 그림이 창궐하다 _ 137
유교적 부덕을 실천한 여성의 상징이 된 신사임당 _ 146
‘율곡을 길러낸 어머니’에 주목하다 _ 152
서인 노론의 프로젝트, 신사임당 _ 160
4 신사임당, 현모양처의 상징이 되다 _ 홍양희
여성 예술인인가 현모양처인가 _ 166
자녀 교육의 귀감, 여성 교육의 모델 _ 168
신사임당과‘현모양처’의 조우 _ 181
군국의 어머니, 총후부인 _ 195
신사임당 담론의 동반자, ‘신여성’에서 ‘된장녀’까지 _ 210
5 현모양처, 신여성, 초여인의 얼굴을 지닌 사임당_ 김수진
역사적 상상력, 변화하는 신사임당 _ 216
박정희 체제에서 우리나라의 대표 여성으로 자리잡다 _ 219
‘충’과 현모양처, 전통과 근대의 접합 _ 225
사임당의 현대적 현신, 육영수 _ 230
여성 운동이 만든 사임당상, 슈퍼우먼 _ 233
일과 가정을 완벽하게 병행한 신사임당-초여인의 역설 _ 238
절반의 성공, 최초의 여성 화폐 인물 _ 241
표준 영정과 지폐 초상화 제정을 둘러싼 논란 _ 243
착한 여자에서 유능한 여자로, 신 현모양처의 유혹 _ 247
부록
율곡의 「선비행장」 _ 254
신사임당 연보 _ 260
출처 _ 264
참고 문헌 _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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