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사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경계의 이면
길고 괴로운 방황과 미혹의 세월을
견디며 써낸 희망의 서사
레너드 데이비스는 자신의 저서 『소설의 기원』에서 소설에 대해 진화론적 모델, 삼투형 모델, 혼합형 모델을 제시했다. 그러나 결국 소설은 서사이며, 다른 말로 하자면 이야기다. 해설을 쓴 전동진 시인의 말처럼 “원래 소설은 이야기의 다른 말이었고, 이야기는 역사와 같은 말로 쓰이기도 했다. 문자가 없었을 때 우리는 이야기로 역사적 사실을 전”했다. 또한 그것을 “사실대로 전하면 재미가 없”으니 특별한 작업을 거쳐 듣는 이의 흥미를 유발시켰다. 그것이 “스토리텔링”이다. 이번에 조성현 소설가가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소설집 『눈 내리는 마을』(문학들 刊)은 오늘날 문화의 시대가 원하는 소설을 쓰고자 매진한 그의 진득한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성현 소설가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현실이라는 세계의 판 위에 올려놓고 사실과 상상의 경계 사이에 갈대처럼 꽂아놓는다. 그리고 서사의 바람을 불어제친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갈대는 사정없이 흔들리고, 그럴 때마다 인물들은 사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혼돈 속에 빠진다.
그리폰의 모습이 소동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지우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오히려 그 모습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흰둥이 얼굴이 그리폰 얼굴 위에 겹쳐졌다. 흰둥이도 개였고 그리폰도 개였다. 흰둥이가 개울가에 웅크리고 앉아 비둘기 한 마리를 물어뜯고 있었다. 흰둥이조차 그리폰같이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눈 내리는 마을」부분
…감정을 통제하는 세포들이 전멸해 버린 것만 같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처럼 평화로운 순간들을 만끽하게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 잘된 것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언제 밝혀질지도 모른다…
-「엘리베이터」 부분
이러한 전개 방식은 작가의 말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결코 인정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인간의 다양성을 짓밟으며 자행되는 폭력에 부역해야 할” 의무도 없거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러한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땅 위에 작가 본인이 내던져진 까닭일 것이다. 즉 조성현의 소설집은 내장 속에서부터 역류하여 끓어오르는 분노를 폭력으로 표출하지 않고 희망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저항의 흔적이다. 오래된 감옥에 갇힌 죄수가 끝이 뾰족한 물건으로 자신을 자해하는 게 아닌 벽에 지나간 날짜를 기록하며, 창문 너머의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날만을 갈구하는 마음으로 기록한 상상의 나래다. 그 “길고 괴로운 방황과 미혹의 세월”을 견디며 써 낸 이야기가 단순히 상상에서 그치지 않고 역사적 사실의 근저에서 떠도는 것도 저자 자신 또한 등장인물들처럼 현실이라는 땅 위에 머무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 오랫동안 어머니는 밤만 되면 벽을 치며 울었다. 어떤 집에서 개가 요란스럽게 짓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안방에서 나온 어머니는 아름다운 나라 군인들이 형을 보호하고 있으니까 꼭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며 오히려 웃으며 그를 위로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 말을 그들에게 하고 다짐을 받았다. …어머니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말 미쳐가고 있었다.
-「선로의 선망」 부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라고! 할머니”
“그래, 너희 할아버지랑 마을 사람들이 죽고 몇 달 후에 붉은군인들이 들어왔제. 그러니까 전쟁이 나기 전이제.”
“할머니가 나이를 먹어서 잘못 기억하는 것 아냐? 그땐 붉은군인들도 내려오지 않아 없었는데… 누가 마을 사람들을 데려다 죽였어?”
“……”
할머니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넋을 잃은 듯 잠시 말을 멈췄다.
-「잃어버린 갈매기섬의 퍼즐」 부분
이처럼 조성현의 이번 소설집은 분노와 혼돈, 상실감과 적개심마저 이겨 내고 그것을 글쓰기라는 문화적 소비 형태로 승화시킨 결과물이다. 즉, 사실도 넘고 상상도 넘어서 언제나 새롭게 쓰려고 노력하는 문화적 글쓰기라 할 수 있다.
▣ 작가 소개
저자 : 조성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민족현실과 문학운동』에 「구암리 사람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광주?전남소설가협회장을 맡고 있다.
▣ 주요 목차
작가의 말
눈 내리는 마을
하늘 보는 집
잃어버린 갈매기섬의 퍼즐
밀고자
엘리베이터
선로의 섬망
팔암리 사람들
해설 ''비빔''과 소통의 서사_ 전동진
사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경계의 이면
길고 괴로운 방황과 미혹의 세월을
견디며 써낸 희망의 서사
레너드 데이비스는 자신의 저서 『소설의 기원』에서 소설에 대해 진화론적 모델, 삼투형 모델, 혼합형 모델을 제시했다. 그러나 결국 소설은 서사이며, 다른 말로 하자면 이야기다. 해설을 쓴 전동진 시인의 말처럼 “원래 소설은 이야기의 다른 말이었고, 이야기는 역사와 같은 말로 쓰이기도 했다. 문자가 없었을 때 우리는 이야기로 역사적 사실을 전”했다. 또한 그것을 “사실대로 전하면 재미가 없”으니 특별한 작업을 거쳐 듣는 이의 흥미를 유발시켰다. 그것이 “스토리텔링”이다. 이번에 조성현 소설가가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소설집 『눈 내리는 마을』(문학들 刊)은 오늘날 문화의 시대가 원하는 소설을 쓰고자 매진한 그의 진득한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성현 소설가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현실이라는 세계의 판 위에 올려놓고 사실과 상상의 경계 사이에 갈대처럼 꽂아놓는다. 그리고 서사의 바람을 불어제친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갈대는 사정없이 흔들리고, 그럴 때마다 인물들은 사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혼돈 속에 빠진다.
그리폰의 모습이 소동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지우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오히려 그 모습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흰둥이 얼굴이 그리폰 얼굴 위에 겹쳐졌다. 흰둥이도 개였고 그리폰도 개였다. 흰둥이가 개울가에 웅크리고 앉아 비둘기 한 마리를 물어뜯고 있었다. 흰둥이조차 그리폰같이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눈 내리는 마을」부분
…감정을 통제하는 세포들이 전멸해 버린 것만 같다. 너무 걱정하지 말자.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처럼 평화로운 순간들을 만끽하게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 잘된 것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언제 밝혀질지도 모른다…
-「엘리베이터」 부분
이러한 전개 방식은 작가의 말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결코 인정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인간의 다양성을 짓밟으며 자행되는 폭력에 부역해야 할” 의무도 없거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러한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땅 위에 작가 본인이 내던져진 까닭일 것이다. 즉 조성현의 소설집은 내장 속에서부터 역류하여 끓어오르는 분노를 폭력으로 표출하지 않고 희망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저항의 흔적이다. 오래된 감옥에 갇힌 죄수가 끝이 뾰족한 물건으로 자신을 자해하는 게 아닌 벽에 지나간 날짜를 기록하며, 창문 너머의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날만을 갈구하는 마음으로 기록한 상상의 나래다. 그 “길고 괴로운 방황과 미혹의 세월”을 견디며 써 낸 이야기가 단순히 상상에서 그치지 않고 역사적 사실의 근저에서 떠도는 것도 저자 자신 또한 등장인물들처럼 현실이라는 땅 위에 머무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 오랫동안 어머니는 밤만 되면 벽을 치며 울었다. 어떤 집에서 개가 요란스럽게 짓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안방에서 나온 어머니는 아름다운 나라 군인들이 형을 보호하고 있으니까 꼭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며 오히려 웃으며 그를 위로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 말을 그들에게 하고 다짐을 받았다. …어머니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말 미쳐가고 있었다.
-「선로의 선망」 부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라고! 할머니”
“그래, 너희 할아버지랑 마을 사람들이 죽고 몇 달 후에 붉은군인들이 들어왔제. 그러니까 전쟁이 나기 전이제.”
“할머니가 나이를 먹어서 잘못 기억하는 것 아냐? 그땐 붉은군인들도 내려오지 않아 없었는데… 누가 마을 사람들을 데려다 죽였어?”
“……”
할머니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넋을 잃은 듯 잠시 말을 멈췄다.
-「잃어버린 갈매기섬의 퍼즐」 부분
이처럼 조성현의 이번 소설집은 분노와 혼돈, 상실감과 적개심마저 이겨 내고 그것을 글쓰기라는 문화적 소비 형태로 승화시킨 결과물이다. 즉, 사실도 넘고 상상도 넘어서 언제나 새롭게 쓰려고 노력하는 문화적 글쓰기라 할 수 있다.
▣ 작가 소개
저자 : 조성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민족현실과 문학운동』에 「구암리 사람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광주?전남소설가협회장을 맡고 있다.
▣ 주요 목차
작가의 말
눈 내리는 마을
하늘 보는 집
잃어버린 갈매기섬의 퍼즐
밀고자
엘리베이터
선로의 섬망
팔암리 사람들
해설 ''비빔''과 소통의 서사_ 전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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