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법령은 왕업을 이루는 근본이고, 형벌은 백성들을 아끼는 실마리다”
전국시대가 막바지에 이르고 진(秦)나라가 천하를 호령하던 때, 군주와 신하들 사이에는 참된 마음이 엷어졌고, 통치자와 백성들 사이에는 믿음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이런 극심한 혼란을 바로잡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며 거대한 전환의 시대를 마련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법가의 통치철학이었다.
한비가 나오기 전 법가사상에는 이미 세 갈래의 큰 학파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법(法)을 강조한 상앙이고, 두 번째는 술(術)을 강조한 신불해, 세 번째는 세(勢)를 강조한 신도였다. 한비는 이 세 학파의 주장을 두루 수용해 사상을 발전시켰는데, 이 세 가지 요소가 갖춰진 후에야 비로소 법을 시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한비는 이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가지고 통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군주는 반드시 ‘법, 술, 세’ 이 세 가지를 통치 도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철저히 이기적 존재인 인간에게 공과에 따른 상벌만이 필요하다고 본 한비는 유가와 노자 사상을 아우르며 법가사상을 집대성했고, 중국 역대 군주들의 통치 지침이 되었다.
정천구 선생은 한비가 법치에 매진한 이유를 “영토가 나날이 줄어들고 쇠약해져 가고 있던 조국 한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열망에서였다”라고 설하고 있다. 한비는 왕 한안(韓安)에게 여러 차례 글을 올려 간언하며 법과 제도를 바로 닦아 군주가 권세를 확고하게 잡고 인재를 찾아서 기용하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소인배들을 기용했으며 공적이 없는 자를 뒷자리에 앉히면서 패망의 길을 재촉했다.
무릇 논의의 근거가 아무리 바르더라도 군주가 반드시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논리가 아무리 온전하더라도 반드시 써주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대왕께서 이런 이유로 믿지 않으신다면, 작게는 남을 헐뜯는 자로 여겨질 것이고 크게는 죽음을 부르는 재앙이 그 몸에 미칠지도 모릅니다. -「난언」 중에서
“하늘을 나는 용은 구름을 타고, 하늘을 오르는 뱀은 안개 속에 노닌다.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걷히면 용과 뱀은 지렁이나 개미와 같아지는데, 그것은 탈 것을 잃었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이 못난 자에게 굽히는 것은 권세가 가볍고 지위가 낮기 때문이며, 못난 자가 현명한 자를 굴복시키는 것은 권세가 무겁고 지위가 높기 때문이다.” -「난세」 중에서
신하가 큰 죄를 저지르는데도 군주가 막지 않는다면, 이는 군주의 큰 허물이다. 위에서 군주가 큰 허물을 짓고 아래에서 신하가 큰 죄를 저지른다면 나라가 망하지 않기를 바라더라도 그렇게 될 수 없다. -「고분」 중에서
망할 징조란 반드시 망한다는 말이 아니라 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무릇 성인인 요(堯)가 둘이 있더라도 둘 다 왕이 될 수 없고, 폭군인 걸(桀)이 둘이 있더라도 둘 다 망하는 것이 아니다. 망하느냐 왕 노릇하느냐 하는 것은 반드시 다스려지느냐 어지러워지느냐, 강해지느냐 약해지느냐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데에 달렸다. -「망징」 중에서
한비는 군주를 설득시키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에 말하기의 어려움을 이야기한 「난언」과 형세과 권세를 논한 「세난」을 지었다. 또한 자신의 의견이 쓰이지 못하고 소인배들이 등용되는 현실의 울분을 「고분」에 녹여냈고, 나라가 망할 여러 징조를 한나라에서 목도한 까닭에 「망징」을 지었다. 정천구 선생은 “한나라가 망하고 한비가 허망하게 죽음을 당했다고 해서 그의 저술을 무용지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의 의견이 묵살되고 그의 사상이 실행되지 못한 탓일 뿐이다”라며 “예나 지금이나 『한비자』는 난세를 헤쳐나가는 저술로 긴요하게 읽히며, 정치학과 경영학을 아우르는 고전으로 손꼽힌다”고 말했다.
『한비자』는 현실적, 실천적 정치 이론을 정연하고 치밀하게 담고 있어 시대를 초월한 공감을 얻으며, 인간관계의 부조리와 권모술수의 허와 실을 꿰뚫는다. 이러한 점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한비자』를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한비자』의 핵심은 통치술에 있다
『한비자』의 핵심은 통치술이다. 『한비자』는 역대 수많은 인물과 역사적 사건, 우화 등을 통해 고대 중국의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이를 통해 시공을 막론한 인간 관계의 모순과 경쟁을 발견하고, 분석함으로써 혼탁한 세상을 무탈하게 살아가는 길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 유교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필요하고 긴요한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비자』를 한낱 처세술이나 적어놓은 책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이는 『한비자』의 일면만을 본 것으로 『한비자』는 한 개인이나 집안, 나아가 기업이나 국가가 어지러워졌을 때, 다시 바로잡고 우뚝 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에 긴요한 방침과 방책들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해놓은 책이다. 엄정한 기본과 원칙을 기반으로 부국강병을 논하는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는 어떤 형태의 조직이든 그 속에서 생업을 영위해나가야 하는 현대인들이 조직의 생리를 파악하고 꿰뚫어 보는 데에도 더없이 유익한 고전이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한비자
비(韓非, 기원전 280~?)는 법가의 대표자이다. 비非는 그의 이름이며, 전국시대 한韓나라 명문귀족의 후예이다. 말더듬이였으나 논리적인 문장을 갈고 닦는 데에 힘써 탁월한 문장력을 지녔다. 그는 자라면서 이사李斯와 함께 유학자인 순자荀子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이때 이사는 자신의 능력이 한비만 못하다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비가 살았던 당시의 한나라는 전국칠웅戰國七雄 중에서도 가장 작고 약한 나라였다. 영토는 사방 천 리도 못 되는데다가 서쪽으로는 진秦나라, 동쪽으로는 송宋나라와 제齊나라, 북쪽으로는 위魏나라, 남쪽으로는 초楚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잠시도 평온할 날이 없었다. 한비는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약소국이 겪어야 하는 비애와 굴욕을 몸소 느끼며 살았다.
한비는 한나라 왕이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고 권력을 장악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어진 인재를 등용하는 데에 힘쓰기는커녕, 도리어 실속 없는 소인배들을 등용해 그들을 실질적인 공로자보다도 높은 자리에 앉히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또 유학을 내세우는 자들은 경전을 들먹이며 나라의 법도를 어지럽히고, 협객은 무력으로 나라의 법령을 어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군주가 나라가 태평할 때에는 이름을 날리는 유세가들만 총애하다가 나라가 위급해지면 허겁지겁 갑옷 입은 무사를 등용하는 점을 마뜩찮게 여겼다. 그래서 한비는 군주가 법으로써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리는 방법을 건의했으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초나라가 오기吳起를 등용하지 않은 결과로 영토를 빼앗기고 나라가 혼란스럽게 된 예를 들면서, 나라를 법률로 다스리는 방법을 아는 인사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울분을 터트리며 『한비자』라는 책을 지었던 것이다.
『한비자』가 세상에 나오고 진나라 시황제가 우연히 이 책을 읽고 감동하여 “아아! 과인이 이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진시황은 이토록 『한비자』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러나 객경客卿 벼슬에 오른 이사李斯는 동문수학한 친구 한비가 진시황의 총애를 받는 것을 꺼려 서슴지 않고 그를 모함했다. 이사는 한비가 한나라의 공자公子이기 때문에 진나라를 위해서 일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를 등용하지 않고 억류했다가 돌려보낸다면 후환이 될 것이니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시황은 이사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 한비를 가두고 사약을 보내 자살하도록 했다. 진시황은 뒤늦게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했지만, 이미 한비가 죽은 뒤였다. 한비는 본래 신하가 군주에게 유세하기 어렵다는 점을 터득하고 「난언」과 「세난」 등 여러 편에서 진언의 방법을 자세하게 말했지만, 결국 자신은 죽음을 당하는 화를 피하지 못했다.
한비는 비록 진나라에서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법가사상은 진시황의 통치원칙이 돼 훗날 진나라의 통치에 기여했다. 한漢나라 때의 철학자인 왕충王充은 『논형論衡』에서 한비의 조국 한韓나라가 망하고 적국인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게 된 것은 한비의 주장을 받아들였는지 여부에서 비롯된 차이라고 보았다.
역자 : 정천구
1967년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국유사를 연구의 축으로 삼아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학과 사상 등을 비교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는 대학 밖에서 ‘바까데미아(바깥+아카데미아)’라는 이름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저서로는 『논어, 그 일상의 정치』, 『맹자, 시대를 찌르다』, 『맹자독설』, 『삼국유사, 바다를 만나다』, 『중용, 어울림의 길』등이 있고, 역서로 『차의 책』, 『동양의 이상』, 『밝은 마음을 비추는 보배로운 거울』, 『원형석서』, 『일본영이기』, 『삼교지귀』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5권
41 문변(問辯)
42 문전(問田)
43 정법(定法)
44 설의(說疑)
45 궤사(詭使)
46 육반(六反)
47 팔설(八說)
48 팔경(八經)
49 오두(五?)
50 현학(顯學)
51 충효(忠孝)
52 인주(人主)
53 칙령(飭令)
54 심도(心度)
55 제분(制分)
법령은 왕업을 이루는 근본이고, 형벌은 백성들을 아끼는 실마리다”
전국시대가 막바지에 이르고 진(秦)나라가 천하를 호령하던 때, 군주와 신하들 사이에는 참된 마음이 엷어졌고, 통치자와 백성들 사이에는 믿음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이런 극심한 혼란을 바로잡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며 거대한 전환의 시대를 마련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법가의 통치철학이었다.
한비가 나오기 전 법가사상에는 이미 세 갈래의 큰 학파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법(法)을 강조한 상앙이고, 두 번째는 술(術)을 강조한 신불해, 세 번째는 세(勢)를 강조한 신도였다. 한비는 이 세 학파의 주장을 두루 수용해 사상을 발전시켰는데, 이 세 가지 요소가 갖춰진 후에야 비로소 법을 시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한비는 이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가지고 통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군주는 반드시 ‘법, 술, 세’ 이 세 가지를 통치 도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철저히 이기적 존재인 인간에게 공과에 따른 상벌만이 필요하다고 본 한비는 유가와 노자 사상을 아우르며 법가사상을 집대성했고, 중국 역대 군주들의 통치 지침이 되었다.
정천구 선생은 한비가 법치에 매진한 이유를 “영토가 나날이 줄어들고 쇠약해져 가고 있던 조국 한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열망에서였다”라고 설하고 있다. 한비는 왕 한안(韓安)에게 여러 차례 글을 올려 간언하며 법과 제도를 바로 닦아 군주가 권세를 확고하게 잡고 인재를 찾아서 기용하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소인배들을 기용했으며 공적이 없는 자를 뒷자리에 앉히면서 패망의 길을 재촉했다.
무릇 논의의 근거가 아무리 바르더라도 군주가 반드시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논리가 아무리 온전하더라도 반드시 써주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대왕께서 이런 이유로 믿지 않으신다면, 작게는 남을 헐뜯는 자로 여겨질 것이고 크게는 죽음을 부르는 재앙이 그 몸에 미칠지도 모릅니다. -「난언」 중에서
“하늘을 나는 용은 구름을 타고, 하늘을 오르는 뱀은 안개 속에 노닌다.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걷히면 용과 뱀은 지렁이나 개미와 같아지는데, 그것은 탈 것을 잃었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이 못난 자에게 굽히는 것은 권세가 가볍고 지위가 낮기 때문이며, 못난 자가 현명한 자를 굴복시키는 것은 권세가 무겁고 지위가 높기 때문이다.” -「난세」 중에서
신하가 큰 죄를 저지르는데도 군주가 막지 않는다면, 이는 군주의 큰 허물이다. 위에서 군주가 큰 허물을 짓고 아래에서 신하가 큰 죄를 저지른다면 나라가 망하지 않기를 바라더라도 그렇게 될 수 없다. -「고분」 중에서
망할 징조란 반드시 망한다는 말이 아니라 망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무릇 성인인 요(堯)가 둘이 있더라도 둘 다 왕이 될 수 없고, 폭군인 걸(桀)이 둘이 있더라도 둘 다 망하는 것이 아니다. 망하느냐 왕 노릇하느냐 하는 것은 반드시 다스려지느냐 어지러워지느냐, 강해지느냐 약해지느냐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데에 달렸다. -「망징」 중에서
한비는 군주를 설득시키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에 말하기의 어려움을 이야기한 「난언」과 형세과 권세를 논한 「세난」을 지었다. 또한 자신의 의견이 쓰이지 못하고 소인배들이 등용되는 현실의 울분을 「고분」에 녹여냈고, 나라가 망할 여러 징조를 한나라에서 목도한 까닭에 「망징」을 지었다. 정천구 선생은 “한나라가 망하고 한비가 허망하게 죽음을 당했다고 해서 그의 저술을 무용지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의 의견이 묵살되고 그의 사상이 실행되지 못한 탓일 뿐이다”라며 “예나 지금이나 『한비자』는 난세를 헤쳐나가는 저술로 긴요하게 읽히며, 정치학과 경영학을 아우르는 고전으로 손꼽힌다”고 말했다.
『한비자』는 현실적, 실천적 정치 이론을 정연하고 치밀하게 담고 있어 시대를 초월한 공감을 얻으며, 인간관계의 부조리와 권모술수의 허와 실을 꿰뚫는다. 이러한 점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한비자』를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한비자』의 핵심은 통치술에 있다
『한비자』의 핵심은 통치술이다. 『한비자』는 역대 수많은 인물과 역사적 사건, 우화 등을 통해 고대 중국의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이를 통해 시공을 막론한 인간 관계의 모순과 경쟁을 발견하고, 분석함으로써 혼탁한 세상을 무탈하게 살아가는 길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 유교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필요하고 긴요한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비자』를 한낱 처세술이나 적어놓은 책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이는 『한비자』의 일면만을 본 것으로 『한비자』는 한 개인이나 집안, 나아가 기업이나 국가가 어지러워졌을 때, 다시 바로잡고 우뚝 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에 긴요한 방침과 방책들을 일목요연하게 서술해놓은 책이다. 엄정한 기본과 원칙을 기반으로 부국강병을 논하는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는 어떤 형태의 조직이든 그 속에서 생업을 영위해나가야 하는 현대인들이 조직의 생리를 파악하고 꿰뚫어 보는 데에도 더없이 유익한 고전이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한비자
비(韓非, 기원전 280~?)는 법가의 대표자이다. 비非는 그의 이름이며, 전국시대 한韓나라 명문귀족의 후예이다. 말더듬이였으나 논리적인 문장을 갈고 닦는 데에 힘써 탁월한 문장력을 지녔다. 그는 자라면서 이사李斯와 함께 유학자인 순자荀子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이때 이사는 자신의 능력이 한비만 못하다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비가 살았던 당시의 한나라는 전국칠웅戰國七雄 중에서도 가장 작고 약한 나라였다. 영토는 사방 천 리도 못 되는데다가 서쪽으로는 진秦나라, 동쪽으로는 송宋나라와 제齊나라, 북쪽으로는 위魏나라, 남쪽으로는 초楚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잠시도 평온할 날이 없었다. 한비는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약소국이 겪어야 하는 비애와 굴욕을 몸소 느끼며 살았다.
한비는 한나라 왕이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고 권력을 장악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어진 인재를 등용하는 데에 힘쓰기는커녕, 도리어 실속 없는 소인배들을 등용해 그들을 실질적인 공로자보다도 높은 자리에 앉히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또 유학을 내세우는 자들은 경전을 들먹이며 나라의 법도를 어지럽히고, 협객은 무력으로 나라의 법령을 어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군주가 나라가 태평할 때에는 이름을 날리는 유세가들만 총애하다가 나라가 위급해지면 허겁지겁 갑옷 입은 무사를 등용하는 점을 마뜩찮게 여겼다. 그래서 한비는 군주가 법으로써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리는 방법을 건의했으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초나라가 오기吳起를 등용하지 않은 결과로 영토를 빼앗기고 나라가 혼란스럽게 된 예를 들면서, 나라를 법률로 다스리는 방법을 아는 인사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울분을 터트리며 『한비자』라는 책을 지었던 것이다.
『한비자』가 세상에 나오고 진나라 시황제가 우연히 이 책을 읽고 감동하여 “아아! 과인이 이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진시황은 이토록 『한비자』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러나 객경客卿 벼슬에 오른 이사李斯는 동문수학한 친구 한비가 진시황의 총애를 받는 것을 꺼려 서슴지 않고 그를 모함했다. 이사는 한비가 한나라의 공자公子이기 때문에 진나라를 위해서 일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를 등용하지 않고 억류했다가 돌려보낸다면 후환이 될 것이니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시황은 이사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 한비를 가두고 사약을 보내 자살하도록 했다. 진시황은 뒤늦게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했지만, 이미 한비가 죽은 뒤였다. 한비는 본래 신하가 군주에게 유세하기 어렵다는 점을 터득하고 「난언」과 「세난」 등 여러 편에서 진언의 방법을 자세하게 말했지만, 결국 자신은 죽음을 당하는 화를 피하지 못했다.
한비는 비록 진나라에서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법가사상은 진시황의 통치원칙이 돼 훗날 진나라의 통치에 기여했다. 한漢나라 때의 철학자인 왕충王充은 『논형論衡』에서 한비의 조국 한韓나라가 망하고 적국인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게 된 것은 한비의 주장을 받아들였는지 여부에서 비롯된 차이라고 보았다.
역자 : 정천구
1967년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삼국유사를 연구의 축으로 삼아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학과 사상 등을 비교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는 대학 밖에서 ‘바까데미아(바깥+아카데미아)’라는 이름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저서로는 『논어, 그 일상의 정치』, 『맹자, 시대를 찌르다』, 『맹자독설』, 『삼국유사, 바다를 만나다』, 『중용, 어울림의 길』등이 있고, 역서로 『차의 책』, 『동양의 이상』, 『밝은 마음을 비추는 보배로운 거울』, 『원형석서』, 『일본영이기』, 『삼교지귀』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5권
41 문변(問辯)
42 문전(問田)
43 정법(定法)
44 설의(說疑)
45 궤사(詭使)
46 육반(六反)
47 팔설(八說)
48 팔경(八經)
49 오두(五?)
50 현학(顯學)
51 충효(忠孝)
52 인주(人主)
53 칙령(飭令)
54 심도(心度)
55 제분(制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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