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질문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탄식을 분노로, 분노를 희망으로 - 우리는 어떤 나라에 살고 싶은가?
경향신문이 2016년 창간 70주년 기획으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라는 화두를 제기한 것도 그러한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창간 70주년 특별취재팀을 꾸린 열한 명의 기자들은 지난해 7~9월 3개월여 동안 노동자, 장애인, 활동가, 지식인 등 100여 명의 시민을 만나 이 물음을 탐색하고, 거기서 타전된 뜨거운 목소리들을 10~11월 동안 연재했으며, 연재 후에도 웹?모바일 특집 페이지를 마련해 지면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까지 충실하게 담아냈다. 이 책은 그 6개월에 걸친 질문과 대답, 탐사와 분노와 희망의 기록이다. 이 여정에 함께한 시민과 지식인들은 불평등, 노동 탄압, 특권 세습, 권력 독점, 법치 실종, 부정부패, 대의제 한계 등 ‘민주공화국’의 부재와 위기를 진단하고, 이 폐허 위에서 새로 지어야 할 민주공화국의 모습을 모색한다. 특별취재팀의 현장 취재가 한국 사회의 처절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면,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10명 지식인(김상봉, 박명림, 정희진, 하승수, 최갑수, 홍세화, 김육훈, 김종철, 김상조, 권명아)의 인터뷰는 대한민국을 참된 공화국으로 만들기 위해 절실한 과제에 대한 지적?실천적 모색을 담고 있다.
(“이대로 국정의 혼란과 부패가 지속된다면 내년에 박근혜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도 일어날 수 있다.” 2016년 7월 11일 첫 번째 인터뷰에서 김상봉 교수가 한 말이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 믿지 않았으나, 몇 개월 후 그의 예견은 현실이 되었다.)
현장 취재와 심층 인터뷰를 결합해 ‘민주’와 ‘공화(국)’의 가치를 탐색한 심층 저널리즘의 성과인 이 책은 당대의 첨예한 자화상이자 한 시대의 아카이브를 자임한다. 지난 몇 달 동안 광장에서 울려 퍼진 “이것이 나라냐” “어쩌다 이런 나라에 살게 되었나”라는 분노와 탄식을 “어떤 나라에 살고 싶은가” “우리가 만들어갈 새로운 민주공화국은 어떤 모습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꾸고 싶은 것이 이 책의 지향점이다. 탄핵 소추 이후 많은 것이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차가운 광장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걸었던 2016년의 경험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영원한 불씨로 살아 있을 것이다.
민주와 공화와 주권의 부재, 국민을 지켜야 할 국가의 부재…
거기 시민의 자리, 공화국은 없다
삶의 고통을 응축한 농성장, 길에서 공화국을 묻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대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맞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이다. 질문을 배반하듯, 아니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게 대부분의 시민과 지식인들이 아니오, 라고 대답한다. 한국 사회가 껍데기만 민주공화국일 뿐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현실 인식이 뼈아프다. 책의 첫 장에서 만나게 되는 장기농성장의 시민들은, 그들이 싸우는 이유가 헌법 1조의 실현과 직결될 테지만, 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노조 지회장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나서야 투쟁이 ‘조금’ 알려진 하이디스 해고 노동자들은 동료의 죽음 전 “언론에 나려면 사람이 하나 죽든가”라는 말을 들었다. 노동자, 농민, 장애인 들이 자본과 권력에 맞서 끝 모를 싸움을 이어가는 길 위의 농성장에 민주주의, 공화주의, 주권은 부재하다. 삶의 고통이 응축된 그곳에 권력을 가진 자들의 ‘법과 원칙’이라는 칼날만 번득인다. “자발적 가난과 고난을 감당하는 이들은 지금 이 시대의 ‘장기수’ 같아 보였다.”
출발선과 기회가 다른 나라, 대한민국은 다시 봉건사회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으로 서려면 신분·지위·재산 같은 조건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예속되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지배 없는 자유가 보장되고 사람이 아닌 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공화국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한민국은 누구나 똑같이 배우고 도전하고 꿈꿀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사회”라고, “금수저 친구들의 생활을 보면 마치 다른 나라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학벌, 재산, 직업에 따라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가 구분되는 대한민국은 다시 봉건 사회다. 특히 외환위기/신자유주의화 이후 양극화가 심화되고, 과거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했던 교육마저 계층 굳히기의 수단이 됐다. “자기 자식은 이미 평등의 고원 위로 올라갔다는 겁니다. 고원 위에 있는 자기들 사이에서 불평등은 문제가 될 수 있어도, 고원 아래 ‘개·돼지’들과의 평등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법 위에 군림하는 피고 대한민국 또는 원고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핵심 운영 원리는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삼권의 분리와 견제에 있다. 그러나 세계에서 드물게 정부도 입법권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은 말만 삼권분립일 뿐 제일 막강한 정부로 삼권이 통일되는 형국이다. 국가의 위법 행위에 배상을 구하는 국가 배상 사건 추이를 보면 2015년 국민 승소 비율 34.7퍼센트, 패소 비율 62.2퍼센트다. ‘피고 대한민국’을 법정에 세워도 사법부가 스스로 국가의 일부라는 속성을 버리지 않으면 국가와의 싸움이라는 심판을 또 다른 이름의 국가에 맡기는 셈이 되는 것이다. 국가는 때로 원고가 되기도 한다. 6년 만에 복직하는 쌍용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경찰은 정리해고 반대 파업 진압 당시의 장비 파손 등을 이유로 42억 원의 손해배상과 8억 9천만 원의 가압류를 청구했다. 1?2심 원고 승소, 이 판결이 확정되면 해직자들은 경찰에 15억 원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줘야 한다. 검찰은 2015년에만 509억 원의 형사보상금을 지급했는데, 검찰이 기소를 잘못해 발생한 최소한의 재판 비용으로 모두 세금이다. ‘원고 대한민국’은 이런 일을 한다.
국가는 공공성의 총합이다 - 인민의 인민다움, 공공성 회복이 민주공화국의 핵심
민주공화국의 부재와 위기에 대한 진단은 지식인들도 다르지 않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해일처럼” 무너지고 있다는 인식 아래,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새로운 공화국의 과제를 모색한다. 우리의 민주공화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쓰라린 현실 위에 민주헌법 30주년(2017), 정부 수립과 제헌 70주년(2018),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2019)이라는 역사적 계기들이 맞물려 민주공화국에 대한 논의가 우리 사회의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새로운 민주공화국 재구성이 대통령 탄핵이나 정권 창출보다 더 중요한 시점인 것이다.
많은 논자가 ‘공공의 것(공공적인 일)’ ‘인민의 것’이라는 고전적 공화국 개념을 성찰한다. 김상봉은 “공화국이란 인민의 것”이며 “인민이란 법에 대한 합의와 이익의 공유를 통해 결속된 대중의 집단”이라는 키케로의 말을 빌려 공화국의 요체가 인민의 인민다움에 존립함을 이야기하고, 박명림은 민주공화국의 핵심 과제가 공공성 회복에 있다고 강조한다. 국가가 공공재임을 짚은 최갑수는 “그래서 공화국의 시민이라면 혼자만 부자로 잘살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의 문제를, 우리의 삶을 우리가 결정해야 민주공화국”(하승수)이라는 주장도, “공화국은 사유물이 아니다”(김종철)라는 선언도 같은 맥락에 있다. 여기에 더해, “민주공화국은 뻔뻔한 사람, 인간쓰레기가 없어진 사회”(정희진), “우리가 말하는 공화국은 젠더 중립적이지 않다”(권명아)는 일침은 이 책의 물음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정치 개혁, 경제 민주화, 교육 혁명 - 어떤 정책과 제도를 마련할 것인가
민주공화국의 개념과 과제에 대한 사유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과 제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민주공화국은 “헌법정신의 선언인 동시에 구체적인 구현 과제”이기 때문이다. 정치 영역에서는 ‘개헌’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시대 화두로 내세운 김상봉은 이제 ‘내각제’로 갈 때가 되었다고 진단하며, 박명림은 초대통령제 국가라는 현실에서 분권을 위한 의회책임제로의 헌법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김종철, 하승수, 홍세화는 개헌보다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을 강조하는데, 하승수는 여기에 더해 국민발안, 국민소환 등 직접민주주의의 경험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식인들은 또한 공화국의 조건으로 경제적 평등을 이야기한다. 오랫동안 노동자 주권을 강조해온 김상봉은 노동자의 ‘동등권’으로 경제 민주화를 설명하면서 노사공동결정제도 등 시장경제와 사회적 공공성의 결합으로서의 독일식 모델에서 시사점을 찾고 있다. 임금 제도 개선을 주장하는 박명림은 생애 노동, 생애 임금, 생애 여가 시간이 비슷한 공화국의 삶을 제시한다. 투명한 시장경제질서 확립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천착해온 김상조는 헌법 119조 경제 민주화 조항의 수정을 제안하는 등 진영 논리를 벗어나 헌법을 재해석하고 변화된 환경에 걸맞은 경제 민주화의 의미와 수단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화국을 위한 정책, 공공성 회복의 방향을 고민하는 지식인들은 공통적으로 ‘교육’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공화국이라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핵심은 교육비를 국가가 부담하는 겁니다.“(박명림) “한국 교육은 개인적으로는 출세 교육, 사회적으로는 노예 교육입니다. 그걸 위한 장치가 대학 서열이고요. 그래서 대학을 평준화해야 합니다. 공교육을 차별을 재생산하는 장치가 아니라 평등의 기제로 만들어야 합니다.”(김상봉) 공교육의 정상화로 민주공화국의 시민을 양성하고 평등한 시민 사회를 만드는 것, 이는 단지 두 학자의 신념이 아니라 이 책을 관통하는 새로운 사회의 희망이며,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여왕’에서 ‘꼭두각시’로 - 우리의 공화국은 젠더 중립적인가
마지막 장에서 권명아는 젠더와 소수자 정치의 문제를 제기한다. 공화국이라는 규정이 젠더 중립적이지 않기에 그 개념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는 그의 지적은 첨예하다. “박근혜 정부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면서 젠더적인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 박 대통령을 여왕으로 만들어 조롱하고 풍자하는 과정에서 공화국의 내용을 채워야 할 구체적인 내용들은 사라지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여왕’ 표상을 문제 삼았던 권명아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그것이 ‘꼭두각시/무당’ 표상으로 변했을 뿐 기저의 문제는 그대로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 패러다임의 혐오 발화와 차별적 표현을 문제시하고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적 소통을 요청한 페미니즘과 소수자 정치에서 우리가 만들어낼 새로운 민주주의와 시민성, 시민적 주권성을 발견하고 있다.
또 이름도 서명도 없는 기록의 공동체를 만든 강남역 포스트잇 추도 공간에서 낡은 사유와 결별하는 혁명적 전환을 발견해낸다. “지식인 시국 선언은 이름을 밝히고 소속을 밝히고 그런 이름과 서명을 통해서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선언은 그 이름과 서명으로 귀속되고 환원되지요. 결코 모두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강남역 포스트잇 선언은 이런 서명과 이름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이 선언이 하나의 이름으로, 하나의 대표성으로 환원되고 귀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 것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선언은 모두의 것이 되었어요. 누구도 그 선언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당연히 ‘저작권’도 없지요. 그렇게 이 선언은 모두를 위한 정치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위협과 투쟁의 시공간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분투 속에서, 무수한 무명의 말과 선언과 행동을 통해서 새로운 사유와 새로운 정치는 탄생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시대 지식인 10인에게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김상봉 : : “선출된 왕정을 최소한 원로원 체제로 가져가야”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민주주의 급진화가 시대 화두예요. 87년 민주화로 정치적 민주화, 그것도 간신히 제일 꼭대기만 민주화되었을 뿐입니다. 중앙 권력을 선거로 선출하는 데 머물러 있는 거죠. 지금 지방 자치는 빈껍데기니까. 대통령은 그냥 선출된 왕이에요. 역사가 하루아침에 비약할 수는 없습니다. 선출에 의한 왕정을 최소한 원로원 체제로 가져가야 하는 게 지금 한국 정치의 과제예요. 내각제로 가야 할 때가 된 거지요…공교육을 차별을 재생산하는 장치가 아니라 평등의 기제로 만들어야 합니다. 시민 교육은 곧 평등 교육입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자연적인 불평등이 조성될 수밖에 없으니까, 국가가 인위적으로 시민을 평등하게 만드는 제도가 바로 공교육 시스템입니다.”
박명림 : : “부자?재벌?시장?기업?보수만을 대변하는 나라, 공화국이라고 할 수 없어”
“국가가 시장화?사사화私事化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신자유주의 논리가 사회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시장뿐만 아니라 공공 영역까지도 경쟁과 효율성, 사사성의 원리가 지배하다 보니 교육, 법조, 언론, 종교, 금융은 말할 것도 없고 공공성의 골간인 국가까지 시장화?사사화돼서, 국가가 이른바 ‘재산 관리 국가’로 전락한 겁니다. 흔히 한국에서 국가가 강하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런가요? 가계-기업-국가의 소득 분포, 공무원 숫자와 비율, 공적 재정 규모, 공공 교육, 복지 역할 등을 보면 OECD 꼴찌 수준입니다. 공공성의 형해화가 이토록 심각한데 강한 국가라고 할 수는 없지요.”
정희진 : : “민주공화국은 뻔뻔한 사람이 없는 사회”
“민주공화국이라는 건 인간쓰레기와 말종이 없어지는 사회예요. 현실 정치가 있고 일상 정치가 있어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있고 거시와 미시, 절차적 민주주의와 일상의 민주주의…이걸 사람들이 나누죠. 사실은 이게 분리되지 않는 건데 우리의 경우에는 이 둘이 분리돼 있고 위계화되어 있어요. 그리고 성별화?계급화되어 있어요. 일상의 민주주의가 진짜 민주주의고 현실 정치는 일종의 ‘그림’이에요. 근본적으로 정치의 개념을 달리해야죠. 자원과 권력을 배분하는 장치가 정치예요. 문제는 그 정치가 어떤 기준으로 작동하는가이고요.”
하승수 : : “우리의 삶을 우리가 결정해야 민주공화국”
“공화주의 얘기를 하는 것은 좋은데, ‘공화국’ 앞에는 반드시 민주라는 말이 붙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한국은 사실상 민주 국가가 아니라 소수가 지배하는 과두정 상태인데, ‘공화주의’만 강조하면 자칫 ‘소수 엘리트가 사회 공공선을 실현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왜곡될 수 있습니다. 무엇이 공동체의 이익이고 가치인지도 시민들이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서 가려질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게 중요합니다.”
최갑수 : : “공화국 시민이라면 빈부 격차를 부끄럽게 느껴야”
“국가는 엄밀히 말하면 우리 모두의 공공성의 총합입니다. 이게 국가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바로 국가인 겁니다. 군림하는 대통령한테는 너는 우리의 대리인이고 하수인일 뿐이라고 말해줘야 합니다…공화국의 핵심은 국가가 공공재고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공화국의 시민이라면 나만 혼자 너무 부자로 잘살면 부담을 느끼고 심지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공화주의 원리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소수만 너무 잘살면 공화국의 수치가 되는 겁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홍세화 : : “최순실 게이트는 대한민국이 사적 소유물이라는 점을 오롯이 드러낸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대한민국이 ‘사적 소유물’이라는 점을 오롯이 드러냈습니다. 전근대적인 ‘국가의 사유화’에서 정부, 국회, 사법부, 검경찰, 국정원 등 국가의 공적 기관들이 거의 모두 사적 이익 추구의 발판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될 것입니다…제일 중요한 건 공공성이죠. 공화주의 틀 속에서 어떤 구체적, 공공적 가치를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는 공공 부분이 워낙 취약합니다. 공유, 공공적인 것, 공공성, 공익은 그 개념 자체가 애매한 점이 없지 않지만, 한국에선 그 토대 자체가 비어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육훈 : : “국정화는 한 해 먼저 터진 국정 농단 사건”
“공화주의보다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민주주의를 하나의 정치 형태로 보기보다 ‘인민의 지배’가 관철되고 ‘인간의 권리가 제도화’된 사회라고 이해합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우리 역사에서 민주공화제의 역사를 보는 방식도 조금 달라진다고 봐요…민주공화국이란 어떤 나라인가를, 독립운동가들이 꿈꿨던 국가는 어떤 것이었는지, 임시정부 건국 강령에 나와 있는 국가상은 어떤 것이었는지, 해방 이후 남과 북에서 꿈꿨던 공화국은 무엇이었는지, 현재 우리 국민들이 대한민국이 어떤 국가이길 원하는지 확인하는 데서 출발하면 좋겠어요.”
김종철 : : “공화국은 사유물이 아니다”
“공화국이란 사유물이 아닙니다. 국가는 공적인 것, 즉 공유재라는 거죠. 공화주의는 공화국 구성원들의 평등한 관계를 전제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공화주의자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나는 개헌의 내용보다 더 중요한 건 개헌의 주체라고 생각합니다. 기성 정치가들에게 맡길 게 아니라 시민들이 개헌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추첨으로 대표자들을 뽑아 시민 의회를 구성하면 엘리트 지배 체제에 대한 대항체가 될 수 있어요. 세월호 참사나 사드 배치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시민 의회를 열어서 전체 민중의 의사를 물어야죠.”
김상조 : : “경제 민주화 조항을 다시 쓰자”
“1987년 헌법의 119조 2항은 우리가 거둔 반민주 투쟁의 정치적 성과를 경제적으로 확산한다는 문제의식하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 당시는 경제적으로 한국 사회가 고도성장을 하던 때입니다. 그 성장의 과실이 일부에게만 귀속되어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진 게 경제 민주화 조항인데요, 지금의 변화된 국내외 경제 환경에서 경제 민주화의 의미와 수단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내용으로 변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같은 뉴노멀 시대에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그런 고민을 담는 그릇으로 119조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권명아 : : “우리가 말하는 ‘공화국’은 젠더 중립적이지 않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꼭두각시/타락한 무당이라는 스펙터클은 보수 매체가 만들었던 소녀/퀸 표상의 전도된 형식일 뿐이어서, 근본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문제를 비판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아닙니다. 이는 자칫 사회를 탈정치화된 반동적 복고로 이끌 위험을 갖고 있었어요. 페미니즘과 소수자 정치가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면서, 새로운 방향의 민주주의와 시민성, 시민적 주권성의 표현과 구성에 대한 논의가 가닥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젠더 편향적인 대표성, 그리고 그 대표성이 만드는 사회적인 것의 이념과 이상에 안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작가 소개
저자 : 경향신문 창간 70주년 특별취재팀
지식인 인터뷰
김상봉 _전남대 철학과 교수
박명림 _연세대 지역학 협동과정 교수
정희진 _여성학자
하승수 _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최갑수 _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홍세화 _장발장은행장
김육훈 _역사교육연구소장
김종철 _녹색평론 발행인
김상조 _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권명아 _동아대 국문과 교수
▣ 주요 목차
서문 | 공화국의 참뜻에 대한 성찰을 위하여
_김상봉 / 007
길에서 민주공화국을 묻다
_김종목 · 박광연 · 이유진 · 최민지 · 허진무 기자 / 017
돈이 지배하는 갑·을의 사회, 중세 신분제와 뭐가 다른가
_황경상 · 최민지 · 허진무 · 박광연 · 이유진 기자 / 035
“선출된 왕정을 최소한 원로원 체제로 가져가야”
김상봉 _전남대 철학과 교수 / 045
“부자·재벌·시장·기업·보수만을 대변하는 나라, 공화국이라고 할 수 없어”
박명림 _연세대 지역학 협동과정 교수 / 077
여자라서 안 되고, 덜 받고…남녀, 같은 국민 맞습니까
_이주영 · 김형규 · 심진용 · 이유진 · 허진무 기자 / 097
“민주공화국은 뻔뻔한 사람이 없는 사회”
정희진 _여성학자 / 107
무능한 정치, 비겁한 판결… 법 위에 군림하는 ‘피고 대한민국’
_장은교 기자 / 129
권력이 그 주인을 억압할 때, 국민은 ‘헌법 제1조’ 떠올렸다
_황경상 · 최민지 · 허진무 · 박광연 · 이유진 기자 / 147
“우리의 삶을 우리가 결정해야 민주공화국”
하승수 _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 159
“공화국 시민이라면 빈부 격차를 부끄럽게 느껴야”
최갑수 _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 171
붕괴된 공동체, ‘각자도생’의 시대
_이주영 · 장은교 · 김형규 · 박광연 · 최민지 기자 / 187
지배할 뿐 책임지지 않는 권력, 여기 시민의 자리는 없다
_심진용 · 장은교 · 김형규 기자 / 207
“최순실 게이트는 대한민국이 사적 소유물이라는 점을 오롯이 드러낸다”
홍세화 _장발장은행장 / 223
“국정화는 한 해 먼저 터진 국정 농단 사건”
김육훈 _역사교육연구소장 / 243
“공화국은 사유물이 아니다”
김종철 _녹색평론 발행인 / 257
시민이 개헌 주도한 아이슬란드… 이런 게 ‘주권자 권리’
_김형규 기자 / 275
대한민국 하면/ “야근이 떠올라요”
_장은교 기자 / 285
“경제 민주화 조항을 다시 쓰자”
김상조 _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 299
“우리가 말하는 ‘공화국’은 젠더 중립적이지 않아”
권명아 _ 동아대 국문과 교수 / 321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질문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탄식을 분노로, 분노를 희망으로 - 우리는 어떤 나라에 살고 싶은가?
경향신문이 2016년 창간 70주년 기획으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라는 화두를 제기한 것도 그러한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창간 70주년 특별취재팀을 꾸린 열한 명의 기자들은 지난해 7~9월 3개월여 동안 노동자, 장애인, 활동가, 지식인 등 100여 명의 시민을 만나 이 물음을 탐색하고, 거기서 타전된 뜨거운 목소리들을 10~11월 동안 연재했으며, 연재 후에도 웹?모바일 특집 페이지를 마련해 지면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까지 충실하게 담아냈다. 이 책은 그 6개월에 걸친 질문과 대답, 탐사와 분노와 희망의 기록이다. 이 여정에 함께한 시민과 지식인들은 불평등, 노동 탄압, 특권 세습, 권력 독점, 법치 실종, 부정부패, 대의제 한계 등 ‘민주공화국’의 부재와 위기를 진단하고, 이 폐허 위에서 새로 지어야 할 민주공화국의 모습을 모색한다. 특별취재팀의 현장 취재가 한국 사회의 처절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면,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10명 지식인(김상봉, 박명림, 정희진, 하승수, 최갑수, 홍세화, 김육훈, 김종철, 김상조, 권명아)의 인터뷰는 대한민국을 참된 공화국으로 만들기 위해 절실한 과제에 대한 지적?실천적 모색을 담고 있다.
(“이대로 국정의 혼란과 부패가 지속된다면 내년에 박근혜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도 일어날 수 있다.” 2016년 7월 11일 첫 번째 인터뷰에서 김상봉 교수가 한 말이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 믿지 않았으나, 몇 개월 후 그의 예견은 현실이 되었다.)
현장 취재와 심층 인터뷰를 결합해 ‘민주’와 ‘공화(국)’의 가치를 탐색한 심층 저널리즘의 성과인 이 책은 당대의 첨예한 자화상이자 한 시대의 아카이브를 자임한다. 지난 몇 달 동안 광장에서 울려 퍼진 “이것이 나라냐” “어쩌다 이런 나라에 살게 되었나”라는 분노와 탄식을 “어떤 나라에 살고 싶은가” “우리가 만들어갈 새로운 민주공화국은 어떤 모습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꾸고 싶은 것이 이 책의 지향점이다. 탄핵 소추 이후 많은 것이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차가운 광장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걸었던 2016년의 경험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영원한 불씨로 살아 있을 것이다.
민주와 공화와 주권의 부재, 국민을 지켜야 할 국가의 부재…
거기 시민의 자리, 공화국은 없다
삶의 고통을 응축한 농성장, 길에서 공화국을 묻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대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맞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이다. 질문을 배반하듯, 아니 사실은 너무도 당연하게 대부분의 시민과 지식인들이 아니오, 라고 대답한다. 한국 사회가 껍데기만 민주공화국일 뿐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현실 인식이 뼈아프다. 책의 첫 장에서 만나게 되는 장기농성장의 시민들은, 그들이 싸우는 이유가 헌법 1조의 실현과 직결될 테지만, 권력은 국민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노조 지회장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나서야 투쟁이 ‘조금’ 알려진 하이디스 해고 노동자들은 동료의 죽음 전 “언론에 나려면 사람이 하나 죽든가”라는 말을 들었다. 노동자, 농민, 장애인 들이 자본과 권력에 맞서 끝 모를 싸움을 이어가는 길 위의 농성장에 민주주의, 공화주의, 주권은 부재하다. 삶의 고통이 응축된 그곳에 권력을 가진 자들의 ‘법과 원칙’이라는 칼날만 번득인다. “자발적 가난과 고난을 감당하는 이들은 지금 이 시대의 ‘장기수’ 같아 보였다.”
출발선과 기회가 다른 나라, 대한민국은 다시 봉건사회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으로 서려면 신분·지위·재산 같은 조건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예속되지 않고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지배 없는 자유가 보장되고 사람이 아닌 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공화국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한민국은 누구나 똑같이 배우고 도전하고 꿈꿀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사회”라고, “금수저 친구들의 생활을 보면 마치 다른 나라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학벌, 재산, 직업에 따라 지배하는 자와 지배받는 자가 구분되는 대한민국은 다시 봉건 사회다. 특히 외환위기/신자유주의화 이후 양극화가 심화되고, 과거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했던 교육마저 계층 굳히기의 수단이 됐다. “자기 자식은 이미 평등의 고원 위로 올라갔다는 겁니다. 고원 위에 있는 자기들 사이에서 불평등은 문제가 될 수 있어도, 고원 아래 ‘개·돼지’들과의 평등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법 위에 군림하는 피고 대한민국 또는 원고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핵심 운영 원리는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삼권의 분리와 견제에 있다. 그러나 세계에서 드물게 정부도 입법권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은 말만 삼권분립일 뿐 제일 막강한 정부로 삼권이 통일되는 형국이다. 국가의 위법 행위에 배상을 구하는 국가 배상 사건 추이를 보면 2015년 국민 승소 비율 34.7퍼센트, 패소 비율 62.2퍼센트다. ‘피고 대한민국’을 법정에 세워도 사법부가 스스로 국가의 일부라는 속성을 버리지 않으면 국가와의 싸움이라는 심판을 또 다른 이름의 국가에 맡기는 셈이 되는 것이다. 국가는 때로 원고가 되기도 한다. 6년 만에 복직하는 쌍용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경찰은 정리해고 반대 파업 진압 당시의 장비 파손 등을 이유로 42억 원의 손해배상과 8억 9천만 원의 가압류를 청구했다. 1?2심 원고 승소, 이 판결이 확정되면 해직자들은 경찰에 15억 원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줘야 한다. 검찰은 2015년에만 509억 원의 형사보상금을 지급했는데, 검찰이 기소를 잘못해 발생한 최소한의 재판 비용으로 모두 세금이다. ‘원고 대한민국’은 이런 일을 한다.
국가는 공공성의 총합이다 - 인민의 인민다움, 공공성 회복이 민주공화국의 핵심
민주공화국의 부재와 위기에 대한 진단은 지식인들도 다르지 않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해일처럼” 무너지고 있다는 인식 아래,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새로운 공화국의 과제를 모색한다. 우리의 민주공화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쓰라린 현실 위에 민주헌법 30주년(2017), 정부 수립과 제헌 70주년(2018),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2019)이라는 역사적 계기들이 맞물려 민주공화국에 대한 논의가 우리 사회의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새로운 민주공화국 재구성이 대통령 탄핵이나 정권 창출보다 더 중요한 시점인 것이다.
많은 논자가 ‘공공의 것(공공적인 일)’ ‘인민의 것’이라는 고전적 공화국 개념을 성찰한다. 김상봉은 “공화국이란 인민의 것”이며 “인민이란 법에 대한 합의와 이익의 공유를 통해 결속된 대중의 집단”이라는 키케로의 말을 빌려 공화국의 요체가 인민의 인민다움에 존립함을 이야기하고, 박명림은 민주공화국의 핵심 과제가 공공성 회복에 있다고 강조한다. 국가가 공공재임을 짚은 최갑수는 “그래서 공화국의 시민이라면 혼자만 부자로 잘살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의 문제를, 우리의 삶을 우리가 결정해야 민주공화국”(하승수)이라는 주장도, “공화국은 사유물이 아니다”(김종철)라는 선언도 같은 맥락에 있다. 여기에 더해, “민주공화국은 뻔뻔한 사람, 인간쓰레기가 없어진 사회”(정희진), “우리가 말하는 공화국은 젠더 중립적이지 않다”(권명아)는 일침은 이 책의 물음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정치 개혁, 경제 민주화, 교육 혁명 - 어떤 정책과 제도를 마련할 것인가
민주공화국의 개념과 과제에 대한 사유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과 제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민주공화국은 “헌법정신의 선언인 동시에 구체적인 구현 과제”이기 때문이다. 정치 영역에서는 ‘개헌’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시대 화두로 내세운 김상봉은 이제 ‘내각제’로 갈 때가 되었다고 진단하며, 박명림은 초대통령제 국가라는 현실에서 분권을 위한 의회책임제로의 헌법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김종철, 하승수, 홍세화는 개헌보다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을 강조하는데, 하승수는 여기에 더해 국민발안, 국민소환 등 직접민주주의의 경험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식인들은 또한 공화국의 조건으로 경제적 평등을 이야기한다. 오랫동안 노동자 주권을 강조해온 김상봉은 노동자의 ‘동등권’으로 경제 민주화를 설명하면서 노사공동결정제도 등 시장경제와 사회적 공공성의 결합으로서의 독일식 모델에서 시사점을 찾고 있다. 임금 제도 개선을 주장하는 박명림은 생애 노동, 생애 임금, 생애 여가 시간이 비슷한 공화국의 삶을 제시한다. 투명한 시장경제질서 확립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천착해온 김상조는 헌법 119조 경제 민주화 조항의 수정을 제안하는 등 진영 논리를 벗어나 헌법을 재해석하고 변화된 환경에 걸맞은 경제 민주화의 의미와 수단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화국을 위한 정책, 공공성 회복의 방향을 고민하는 지식인들은 공통적으로 ‘교육’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공화국이라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핵심은 교육비를 국가가 부담하는 겁니다.“(박명림) “한국 교육은 개인적으로는 출세 교육, 사회적으로는 노예 교육입니다. 그걸 위한 장치가 대학 서열이고요. 그래서 대학을 평준화해야 합니다. 공교육을 차별을 재생산하는 장치가 아니라 평등의 기제로 만들어야 합니다.”(김상봉) 공교육의 정상화로 민주공화국의 시민을 양성하고 평등한 시민 사회를 만드는 것, 이는 단지 두 학자의 신념이 아니라 이 책을 관통하는 새로운 사회의 희망이며,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여왕’에서 ‘꼭두각시’로 - 우리의 공화국은 젠더 중립적인가
마지막 장에서 권명아는 젠더와 소수자 정치의 문제를 제기한다. 공화국이라는 규정이 젠더 중립적이지 않기에 그 개념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는 그의 지적은 첨예하다. “박근혜 정부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면서 젠더적인 왜곡이 일어나고 있다. 박 대통령을 여왕으로 만들어 조롱하고 풍자하는 과정에서 공화국의 내용을 채워야 할 구체적인 내용들은 사라지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여왕’ 표상을 문제 삼았던 권명아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그것이 ‘꼭두각시/무당’ 표상으로 변했을 뿐 기저의 문제는 그대로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 패러다임의 혐오 발화와 차별적 표현을 문제시하고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적 소통을 요청한 페미니즘과 소수자 정치에서 우리가 만들어낼 새로운 민주주의와 시민성, 시민적 주권성을 발견하고 있다.
또 이름도 서명도 없는 기록의 공동체를 만든 강남역 포스트잇 추도 공간에서 낡은 사유와 결별하는 혁명적 전환을 발견해낸다. “지식인 시국 선언은 이름을 밝히고 소속을 밝히고 그런 이름과 서명을 통해서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선언은 그 이름과 서명으로 귀속되고 환원되지요. 결코 모두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강남역 포스트잇 선언은 이런 서명과 이름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이 선언이 하나의 이름으로, 하나의 대표성으로 환원되고 귀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 것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선언은 모두의 것이 되었어요. 누구도 그 선언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당연히 ‘저작권’도 없지요. 그렇게 이 선언은 모두를 위한 정치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위협과 투쟁의 시공간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분투 속에서, 무수한 무명의 말과 선언과 행동을 통해서 새로운 사유와 새로운 정치는 탄생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시대 지식인 10인에게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김상봉 : : “선출된 왕정을 최소한 원로원 체제로 가져가야”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민주주의 급진화가 시대 화두예요. 87년 민주화로 정치적 민주화, 그것도 간신히 제일 꼭대기만 민주화되었을 뿐입니다. 중앙 권력을 선거로 선출하는 데 머물러 있는 거죠. 지금 지방 자치는 빈껍데기니까. 대통령은 그냥 선출된 왕이에요. 역사가 하루아침에 비약할 수는 없습니다. 선출에 의한 왕정을 최소한 원로원 체제로 가져가야 하는 게 지금 한국 정치의 과제예요. 내각제로 가야 할 때가 된 거지요…공교육을 차별을 재생산하는 장치가 아니라 평등의 기제로 만들어야 합니다. 시민 교육은 곧 평등 교육입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자연적인 불평등이 조성될 수밖에 없으니까, 국가가 인위적으로 시민을 평등하게 만드는 제도가 바로 공교육 시스템입니다.”
박명림 : : “부자?재벌?시장?기업?보수만을 대변하는 나라, 공화국이라고 할 수 없어”
“국가가 시장화?사사화私事化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신자유주의 논리가 사회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시장뿐만 아니라 공공 영역까지도 경쟁과 효율성, 사사성의 원리가 지배하다 보니 교육, 법조, 언론, 종교, 금융은 말할 것도 없고 공공성의 골간인 국가까지 시장화?사사화돼서, 국가가 이른바 ‘재산 관리 국가’로 전락한 겁니다. 흔히 한국에서 국가가 강하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런가요? 가계-기업-국가의 소득 분포, 공무원 숫자와 비율, 공적 재정 규모, 공공 교육, 복지 역할 등을 보면 OECD 꼴찌 수준입니다. 공공성의 형해화가 이토록 심각한데 강한 국가라고 할 수는 없지요.”
정희진 : : “민주공화국은 뻔뻔한 사람이 없는 사회”
“민주공화국이라는 건 인간쓰레기와 말종이 없어지는 사회예요. 현실 정치가 있고 일상 정치가 있어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있고 거시와 미시, 절차적 민주주의와 일상의 민주주의…이걸 사람들이 나누죠. 사실은 이게 분리되지 않는 건데 우리의 경우에는 이 둘이 분리돼 있고 위계화되어 있어요. 그리고 성별화?계급화되어 있어요. 일상의 민주주의가 진짜 민주주의고 현실 정치는 일종의 ‘그림’이에요. 근본적으로 정치의 개념을 달리해야죠. 자원과 권력을 배분하는 장치가 정치예요. 문제는 그 정치가 어떤 기준으로 작동하는가이고요.”
하승수 : : “우리의 삶을 우리가 결정해야 민주공화국”
“공화주의 얘기를 하는 것은 좋은데, ‘공화국’ 앞에는 반드시 민주라는 말이 붙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한국은 사실상 민주 국가가 아니라 소수가 지배하는 과두정 상태인데, ‘공화주의’만 강조하면 자칫 ‘소수 엘리트가 사회 공공선을 실현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왜곡될 수 있습니다. 무엇이 공동체의 이익이고 가치인지도 시민들이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서 가려질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게 중요합니다.”
최갑수 : : “공화국 시민이라면 빈부 격차를 부끄럽게 느껴야”
“국가는 엄밀히 말하면 우리 모두의 공공성의 총합입니다. 이게 국가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바로 국가인 겁니다. 군림하는 대통령한테는 너는 우리의 대리인이고 하수인일 뿐이라고 말해줘야 합니다…공화국의 핵심은 국가가 공공재고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공화국의 시민이라면 나만 혼자 너무 부자로 잘살면 부담을 느끼고 심지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공화주의 원리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소수만 너무 잘살면 공화국의 수치가 되는 겁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홍세화 : : “최순실 게이트는 대한민국이 사적 소유물이라는 점을 오롯이 드러낸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대한민국이 ‘사적 소유물’이라는 점을 오롯이 드러냈습니다. 전근대적인 ‘국가의 사유화’에서 정부, 국회, 사법부, 검경찰, 국정원 등 국가의 공적 기관들이 거의 모두 사적 이익 추구의 발판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될 것입니다…제일 중요한 건 공공성이죠. 공화주의 틀 속에서 어떤 구체적, 공공적 가치를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는 공공 부분이 워낙 취약합니다. 공유, 공공적인 것, 공공성, 공익은 그 개념 자체가 애매한 점이 없지 않지만, 한국에선 그 토대 자체가 비어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육훈 : : “국정화는 한 해 먼저 터진 국정 농단 사건”
“공화주의보다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민주주의를 하나의 정치 형태로 보기보다 ‘인민의 지배’가 관철되고 ‘인간의 권리가 제도화’된 사회라고 이해합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우리 역사에서 민주공화제의 역사를 보는 방식도 조금 달라진다고 봐요…민주공화국이란 어떤 나라인가를, 독립운동가들이 꿈꿨던 국가는 어떤 것이었는지, 임시정부 건국 강령에 나와 있는 국가상은 어떤 것이었는지, 해방 이후 남과 북에서 꿈꿨던 공화국은 무엇이었는지, 현재 우리 국민들이 대한민국이 어떤 국가이길 원하는지 확인하는 데서 출발하면 좋겠어요.”
김종철 : : “공화국은 사유물이 아니다”
“공화국이란 사유물이 아닙니다. 국가는 공적인 것, 즉 공유재라는 거죠. 공화주의는 공화국 구성원들의 평등한 관계를 전제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공화주의자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나는 개헌의 내용보다 더 중요한 건 개헌의 주체라고 생각합니다. 기성 정치가들에게 맡길 게 아니라 시민들이 개헌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추첨으로 대표자들을 뽑아 시민 의회를 구성하면 엘리트 지배 체제에 대한 대항체가 될 수 있어요. 세월호 참사나 사드 배치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시민 의회를 열어서 전체 민중의 의사를 물어야죠.”
김상조 : : “경제 민주화 조항을 다시 쓰자”
“1987년 헌법의 119조 2항은 우리가 거둔 반민주 투쟁의 정치적 성과를 경제적으로 확산한다는 문제의식하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 당시는 경제적으로 한국 사회가 고도성장을 하던 때입니다. 그 성장의 과실이 일부에게만 귀속되어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진 게 경제 민주화 조항인데요, 지금의 변화된 국내외 경제 환경에서 경제 민주화의 의미와 수단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내용으로 변화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같은 뉴노멀 시대에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그런 고민을 담는 그릇으로 119조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권명아 : : “우리가 말하는 ‘공화국’은 젠더 중립적이지 않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꼭두각시/타락한 무당이라는 스펙터클은 보수 매체가 만들었던 소녀/퀸 표상의 전도된 형식일 뿐이어서, 근본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문제를 비판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아닙니다. 이는 자칫 사회를 탈정치화된 반동적 복고로 이끌 위험을 갖고 있었어요. 페미니즘과 소수자 정치가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면서, 새로운 방향의 민주주의와 시민성, 시민적 주권성의 표현과 구성에 대한 논의가 가닥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젠더 편향적인 대표성, 그리고 그 대표성이 만드는 사회적인 것의 이념과 이상에 안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작가 소개
저자 : 경향신문 창간 70주년 특별취재팀
지식인 인터뷰
김상봉 _전남대 철학과 교수
박명림 _연세대 지역학 협동과정 교수
정희진 _여성학자
하승수 _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최갑수 _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홍세화 _장발장은행장
김육훈 _역사교육연구소장
김종철 _녹색평론 발행인
김상조 _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권명아 _동아대 국문과 교수
▣ 주요 목차
서문 | 공화국의 참뜻에 대한 성찰을 위하여
_김상봉 / 007
길에서 민주공화국을 묻다
_김종목 · 박광연 · 이유진 · 최민지 · 허진무 기자 / 017
돈이 지배하는 갑·을의 사회, 중세 신분제와 뭐가 다른가
_황경상 · 최민지 · 허진무 · 박광연 · 이유진 기자 / 035
“선출된 왕정을 최소한 원로원 체제로 가져가야”
김상봉 _전남대 철학과 교수 / 045
“부자·재벌·시장·기업·보수만을 대변하는 나라, 공화국이라고 할 수 없어”
박명림 _연세대 지역학 협동과정 교수 / 077
여자라서 안 되고, 덜 받고…남녀, 같은 국민 맞습니까
_이주영 · 김형규 · 심진용 · 이유진 · 허진무 기자 / 097
“민주공화국은 뻔뻔한 사람이 없는 사회”
정희진 _여성학자 / 107
무능한 정치, 비겁한 판결… 법 위에 군림하는 ‘피고 대한민국’
_장은교 기자 / 129
권력이 그 주인을 억압할 때, 국민은 ‘헌법 제1조’ 떠올렸다
_황경상 · 최민지 · 허진무 · 박광연 · 이유진 기자 / 147
“우리의 삶을 우리가 결정해야 민주공화국”
하승수 _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 159
“공화국 시민이라면 빈부 격차를 부끄럽게 느껴야”
최갑수 _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 171
붕괴된 공동체, ‘각자도생’의 시대
_이주영 · 장은교 · 김형규 · 박광연 · 최민지 기자 / 187
지배할 뿐 책임지지 않는 권력, 여기 시민의 자리는 없다
_심진용 · 장은교 · 김형규 기자 / 207
“최순실 게이트는 대한민국이 사적 소유물이라는 점을 오롯이 드러낸다”
홍세화 _장발장은행장 / 223
“국정화는 한 해 먼저 터진 국정 농단 사건”
김육훈 _역사교육연구소장 / 243
“공화국은 사유물이 아니다”
김종철 _녹색평론 발행인 / 257
시민이 개헌 주도한 아이슬란드… 이런 게 ‘주권자 권리’
_김형규 기자 / 275
대한민국 하면/ “야근이 떠올라요”
_장은교 기자 / 285
“경제 민주화 조항을 다시 쓰자”
김상조 _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 299
“우리가 말하는 ‘공화국’은 젠더 중립적이지 않아”
권명아 _ 동아대 국문과 교수 /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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