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 평전 - 불굴의 정신과 탁월한 전략으로 세계를 지배한 제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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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주야오팅
출판사항민음사, 발행일:2017/02/24
형태사항p.766 B5판:24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37433504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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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정복자, 칭기즈 칸
동서양 장벽을 허문 힘의 근원을 밝히다

전쟁이 세계사를 뒤흔든 13세기, 100만 인구와 10만 군대의 몽골은 수천만 인구와 수백만 대군을 거느린 제국들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그 선봉에는 창의적인 전략 수립, 군사 제도와 장비의 혁신, 뛰어난 전술 운용과 통솔력을 바탕으로 강하고 효율적인 군대를 키워 낸 ‘전쟁의 신’ 칭기즈 칸이 있었다. 정복자로서 칭기즈 칸은 알렉산더나 나폴레옹에 비견되나 그가 정복한 땅의 면적은 비교할 수 없이 광대하다. 게다가 전무후무한 세계 최대 제국을 건설한 데서 그치지 않고, 무리한 동화 정책을 펴지 않고 법질서를 강조하며 무역을 장려하여 제국을 위한 튼튼한 기틀을 마련했다. 아울러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경제?문화 교류의 물꼬를 터 역사의 진보를 촉진했다.
계속되는 시련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몽골을 통일하고 나아가 유라시아 대륙을 제패한 칭기즈 칸의 힘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베이징대학 역사학과에서 몽골사와 베이징 문화사 연구에 전념한 명망 있는 역사학자 주야오팅은 이 책 『칭기즈 칸 평전』에서 모순과 논쟁에 싸인 칭기즈 칸의 일생을 생생하게 그려 낸다. 이 책은 『몽골비사』, 『원사』, 『집사』 등 여러 문헌을 고루 조명하고 비교하여 믿음직한 전기로서의 소임을 다하였으며, 특히 한 장을 통째로 할애하여 서정(西征)이라 일컬어지는 호라즘 왕국 진공을 상세히 서술함으로써 기존 칭기즈 칸 전기들과 자못 다른 시선을 획득하고 동서를 잇는 대제국 건설 과정의 현장감을 확보하고 있다. 몽골과 중국 안팎의 풍부한 사료, 드라마 「칭기즈 칸」 극본을 맡은 저자의 탄탄한 스토리텔링를 바탕으로 되살아나는 칭기즈 칸의 삶 속에서 대제국 건설의 과업을 이룬 힘의 원천이 밝혀진다.

죽음과 패배를 두려워 않고 쉼 없이 자신을 단련하다

칭기즈 칸, 즉 테무친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의 나이 아홉 살 때 부친이 독살당한 후 친족들의 배신과 외면 속에 테무친 일가는 풀뿌리를 캐고 들쥐를 잡아먹을 정도로 굶주림에 시달렸다. 결혼한 지 한 달여 만에 부인을 다른 부족에 빼앗겼고, 타이치우트, 잘라이르, 메르키트, 타타르, 나이만, 케레이트 등 관계의 멀고 가까움을 떠나 수많은 부족이 테무친을 죽이려 했다. 말 그대로 그의 머리 위에 고난과 어려움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테무친 모자와 형제들은 위협과 압박에 굴하지 않고 역경에 대항하며 적들과 격렬하게 싸워 나갔다. 부족 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불과 몇십 명의 패잔병과 함께 야생에서 겨우 연명해 나갈 때도 테무친의 마음속에는 몽골을 일으켜 세우리라는 대업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처럼 스스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끊임없는 분투 정신으로 인하여 테무친은 시련을 딛고 일어나 역사의 중책을 수행할 수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죽음과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고난에 굴복하지 않았던 칭기즈 칸의 정신은 약소 부족의 수령이었던 그가 가족의 원수를 갚고, 여러 세력으로 흩어져 있던 몽골 초원을 통일하고, 중국 북방을 정복하고, 종국에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호령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천재적인 군사 전략가이자 통솔력이 탁월한 지휘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사 이론가가 손자라면, 가장 위대한 군사 실천가는 칭기즈 칸이라는 말이 있다. 비록 몽골족이 사냥과 전투에 익숙한 타고난 전사라고는 하나 그들이 싸움에서 지지 않은 것은 칭기즈 칸이 병제(兵制)부터 병기, 병법과 책략에 이르기까지 전투의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먼저 칭기즈 칸은 기존 씨족 부락의 한계를 타파하고 십진 단위의 천호제를 실시했다. 천호제하에서 군대와 백성은 하나였고, 성인 남성은 모두 군역을 졌다. 오로지 전쟁에 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 민족을 조직한 것은 칭기즈 칸이 처음이었다. 그는 일사불란한 지휘 체계를 확립한 아흔다섯 개의 천호군에 의지하여 금나라와 서하를 차례로 패배시키고 서방을 정복했다. 또한 전쟁을 치를 때마다 다른 민족의 선진적인 군사 조직와 장비에 주의를 기울였다. 몽골의 여러 부족을 통일할 때에는 주로 기병에 의존하였지만, 금과 서하, 호라즘을 공격하면서 포병을 조직했으며 무기 면에서도 몽골 전통 칼과 활에서 벗어나 공성 기계와 화기 등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중국 내지의 군사 기술을 흡수했다. 장인을 아주 중시하여 포로 중에서도 장인은 죽이지 않고 다음 전투 시 선진 무기와 공성 기계를 제작하도록 했다.
칭기즈 칸은 그 자신이 뛰어난 전사였을뿐더러 전략 전술에 정통하고 치국의 도를 아는 군사 전략가이자 정치가였다. 상대방 부족이나 나라 간의 갈등을 이용할 줄 알았고, 몽골 부족의 규모와 상황에 맞게 군사 조직과 정책, 기율을 채택했다. 적군의 포로를 활용해 전선에서 바로 인력을 획득하고 보충하는, 즉 ‘적의 힘에 의지해 적을 공격하는’ 책략으로 몽골의 수적 열세를 극복하였다. 칭기즈 칸의 군대는 항상 적의 상황을 정확하고 면밀하게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승리를 거듭하면서도 결코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결과 100만 명의 인구와 10만 명의 군대로 수천만의 인구와 수십만, 수백만의 대군을 상대할 수 있었으며 낙후한 유목 민족으로서 경제와 문화 면에서 월등한 대국에 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칭기즈 칸은 일생 동안 크고 작은 전쟁을 약 60여 차례 치렀는데, 초기의 ‘13익 전투’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능력과 충성심만 보증되면 원수까지도 중용했던 용인술

칭기즈 칸의 용인술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 그는 민족과 출신을 묻지 않고, 신분과 재산을 따지지 않고, 자신을 반대했던 사람이나 적도 괘념하지 않고 사람을 임용했다. 후에 ‘4구(四拘)’ 중 하나가 되어 남정과 서정의 선봉에 서게 되는 명장 제베는 본래 타이치우트 부족의 예속민이었으며 심지어 전투 중 칭기즈 칸의 목덜미에 화살을 쏘아 맞히기까지 했다. 그러나 제베의 실력과 실력을 높이 산 칭기즈 칸은 이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파격적으로 중용했다. 한편으로 그는 재주가 있으면 기용하고 재주가 없으면 기용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또한 부하는 반드시 주인에게 충성해야 하고, 주인을 배신하는 자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다. 설령 적의 부하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주인을 배신하고 의탁해 온 자를 칭기즈 칸은 살려 두는 법이 없었다.
자신과 몽골 부족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적절한 동지, 부하와 함께한 점도 특색이다. 칭기즈 칸이 처음 뜻을 세웠을 때 수하에는 겨우 하인 두 사람뿐이었다. 동생 네 명을 합해도 예닐곱 명을 넘지 못했다. 세력이 미약한 그는 안다(맹우)인 옹 칸, 자무카와 쿠다(인척)에 의지했다. 몽골 초원에서 차츰 세력이 커지고 정치적, 군사적 능력을 드러내면서부터는 수많은 사람이 칭기즈 칸에게 귀부해 왔다. 특히 이 시기에 무칼리, 칠라운, 보로굴, 제베, 젤메, 수베에테이 등 후에 정복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는 용맹한 무장들을 한편으로 삼았다. 말년에 이르러서는 몽골 부족의 약탈적 유목 생활, 원시적 노예제로 제국의 기초를 다질 수 없음을 알았기에 유학과 불교 사상에 조예가 깊은 야율초재로 하여금 팽창한 영토에 맞는 정치, 경제 제도를 실시하게 했다. 야율초재가 초석을 닦은 각종 제도에 힘입어 몽골 정권은 봉건제 국가인 원 제국으로 공고히 자리 잡았으니 칭기즈 칸의 안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세계의 제왕 칭기즈 칸, 누가 어떻게 평가하였나
“지난 1000년 동안 가장 위대한 인물” ―《워싱턴 포스트》
“어느 지역 어느 곳에도 만사에 그렇게 뛰어난 군주는 없었다.” ㅡ제프리 초서, 『캔터베리 이야기』
“알렉산더가 칭기즈 칸 시대에 살았다면 전략 전술에 대해 칭기즈 칸에게 배워야 했을 것이다. 도시와 성을 공략하는 각종 묘책에 대해서도 칭기즈 칸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만 한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주바이니, 『세계정복자사』
“몽골인들이 전장에서 위대한 승리를 얻은 것은 병마가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엄격한 규율과 제도, 편리한 조직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그렇게 휘황찬란한 성취는 곧 칭기즈 칸의 지휘 예술에서 온 것이다.” ―인도 전 총리 네루
“전쟁과 관련된 기록을 역사에서 지워 버린다 해도 칭기즈 칸이 벌인 전투의 상세한 기록만 남겨서 잘 보존한다면 군인들에게는 여전히 무궁무진한 재산이 될 것이다.” ―더글러스 맥아더
“21세기는 새로운 유목 사회다. 나는 칭기즈 칸을 닮겠다.” ㅡ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잭 웰치

▣ 작가 소개

저자 : 주야오팅
1944년 태어나 베이징대학교(北京大學敎)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다. 몽골사, 베이징 문화사 연구에 전념하여 30권 이상의 책과 40편 이상의 논문을 집필했다. 특히 칭기즈 칸의 전기를 여러 차례 출간했으며 텔레비전 시리즈로도 방영된 역사 소설 『칭기즈 칸』, 『쿠빌라이 칸』을 썼다. 그가 극본을 맡고 중국중앙방송(CCTV)에서 제작한 드라마 「칭기즈 칸」은 2005년 KBS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2010년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주요 저서로 칭기즈 칸의 전기를 비롯하여 『원의 열다섯 황제를 말하다(正說元朝十五帝)』가 있고 『원 세조 연구(元世祖硏究)』, 『중국 전통문화 통론(中國傳統文化通論)』, 『제자백가와 현대 문화(諸子百家與現代文化)』, 『베이징 문화유산 여행(北京文化古蹟旅遊)』, 『베이징 문화사(北京文化史)』 등을 편집했다.

역자 : 이진복
성균관 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 대학교, 한양 대학교, 청주 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2009년 현재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대우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유목민이 본 세계사』, 『세계사의 탄생』, 『상업의 세계사』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 5

1장 전쟁과 원한으로 어지러운 몽골 초원 ․ 21
2장 고난 속에 성장하여 우뚝 일어서다 ․ 77
3장 전쟁을 거듭하여 몽골 초원을 통일하다 ․ 139
4장 몽골국을 건립하고 날로 위세를 더하다 ․ 293
5장 남하하여 금을 정벌하다 ․ 389
6장 서정에 오르다 ․ 461
7장 군대를 돌려 서하를 멸하다 ․ 591
8장 칭기즈 칸을 해독하다 ․ 661

부록 ․ 743
참고 문헌 ․ 753
옮긴이의 말 ․ 755
찾아보기 ․ 759

작가 소개

목 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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