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30년간 시 분야에서 가장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킨 랩!
힙합의 예술가적 언어와 기교…
당신이 새로운 눈과 귀로 랩을 다시 마주한다면
리듬과 라임의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랩은 길거리의 시’라는 간단한 말이 얼마나 깊고 광대하며 포괄적으로 이 둘의 감동적인 관계를 담아내는 표현인지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극적으로 깨닫게 된다. 시는 랩을 품었고 랩은 시를 낳았다. 시가 먼저인지 랩이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말과 노래, 문학과 음악의 경계를 흐르던 그 어떤 것이 고대에서 현대까지 여전히 살아 숨 쉰다는 것, 시와 랩이 꿈꾸는 것은 같은 것이다._MC Meta 래퍼?뮤지션
누군가는 소음을 들을 때, 애덤 브래들리는 거기서 시의 과거와 미래를 듣는다. 이 책은 힙합이 그러하듯, 대답하고 서정적이며 창조적인 방식으로, 더욱이 감각과 정교함, 스타일을 담아 랩의 미학을 풀어놓는다. 이 훌륭한 작품은 전문가와 이론가들이 사랑하고, 한편으로 논쟁할 만한 여러 지점을 담고 있다._제프 창,「완전한 혼돈: 힙합의 예술과 미학」저자
브래들리는 뜨거운 논쟁과 놀라운 연구로 전통적 힙합 연구에 도전하며 지적 다이너마이트를 전달한다. 모든 층위가 멋지고, 우리를 일깨워주며, 즐겁게 해준다._주노 디아스,「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저자
브래들리의 이 책은 랩의 뛰어난 시적 묘미와 힙합의 문화적 장악력에 대한 놀라운 연구서다. 그의 분석은 미묘하고 정교하며 감동적이다._코넬 웨스트
시와 힙합은 얼마나 닮았을까?
윤동주가 뉴욕의 할렘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한용운이 시카고의 뒷골목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시를 통한 아름다운 언어로 항일정신을 드러냈던 두 명의 시인이 뉴욕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면, 그들은 어쩌면 리듬이 있고, 라임이 있으며 마주 보고 논쟁을 하는 그런 방식을 통해 저항정신을 드러냈을지도 모른다. 바로 힙합을 통해서 말이다. 왜냐하면 힙합과 시는 리듬이나 라임에서, 혹은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신을 가사에 은유적으로 담아 언어유희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그리고 래퍼 자신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흡사 래퍼들의 전생은 시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역자인 김경주는 이 책을 ‘시와 랩의 연결 고리 어디쯤에선가 서성거리는 말들의 웅성거림’이라 표현했으며 김봉현은 ‘랩은 곧 시’이고, 이 책은 랩과 시를 아우르며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이 책은 무조건적으로 힙합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과의 관계를 통해 힙합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확장할 기회를 가져다준다.
흔히 힙합을 떠올리면 사람들은 다소 반항적인 젊은이들이 욕과 음담패설, 여성혐오적인 발언을 가사로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텔레비전 매체에서 힙합에 대해 경연 형식의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고 이제는 대중 친화적인 힙합 가수가 많이 나왔다고 하지만 힙합에 대한 다소 협소한 인식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힙합을 매개로 한 경연에서는 언제나 혐오 발언이 문제시되었고 힙합 래퍼들의 사생활이 지적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힙합은 ‘고유의 작법이 존재하는 하나의 장르’로 존재하기보다는 젊은이들의 치기어린 반항으로 치부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힙합에 대한 이러한 편견은 그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힙합 특유의 거친 가사는 언제나 “어째서 이들은 여성혐오를 문제시하지 않는가?” “왜 반드시 욕설과 음담패설이 들어가는가?”와 같은 지적과 야유를 받아왔다. 또한 “그것이 과연 힙합의 저항정신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가?” 혹은 “저항정신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치기 아닌가?”라는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인 애덤 브래들리는 힙합에 대한 이 같은 편견을 시와 힙합이 갖는 작법의 유사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랩과 시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랩과 시는 무엇이 같은지 혹은 다른지에 대해 실제 노래 가사와 다양한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어째서 랩과 시가 함께 설명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논리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또한 힙합 가사가 드러내는 공격성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옹호보다는‘맥락’으로 이해할 것을 말하며 그 근거로 시적 형태의 다양성과 섬세함을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힙합을 이루는 핵심 요소를 크게 여섯 개로 분류했다. ‘리듬, 라임, 워드플레이, 스타일, 스토리텔링, 설전’으로 나눈 이 요소들은 사실상 힙합의 가사를 쓰는 데 반드시 필요하고, 래퍼라면 누구나 공부해야 하는 필수적인 것들이다. 다른 한편 시인들이 시를 쓰거나 낭독할 때도 염두에 두는 요소들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랩이 텍스트를 벗어난 시의 또 다른 형태라고 규정지으며 시라고 규명되어온 성분들이 랩의 구조와 스토리 안에서 어떻게 발화되는지 흥미롭고 다양한 텍스트의 사례를 통해 고찰하고 있다.
리듬과 라임, 언어유희는 어떻게 시를 짓고 랩을 만들어냈나
이 책은 힙합과 시의 유사성으로 ‘리듬, 라임, 워드플레이, 스타일, 스토리텔링, 설전’이라는 여섯 개의 키워드로 분류하고 있다. 이 분류를 실제 잘 알려져 있는 힙합 가사와 유명 가수들의 경험 사례에 적용해 설명한다.
많은 비평가가 음악의 가사와 시 문학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평가들은 노래 가사가 시적일수록 오히려 음악에서는 형편없는 가사가 된다며 염려한다. 이러한 맥락을 따른다면 문학 영역에서 좋은 시는 음악의 영역에서는 별로인 가사가 되고, 음악 영역에서 위대한 가사는 문학의 영역에서는 이류 시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바로 랩이 이러한 관습적 고정관념에 저항한다고 본다. 랩은 분명 음악적 양식 중 하나이지만 여느 음악과 다르게 시적 질감을 자유롭게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고정관념으로 대중음악 가사는 문학적 서사 구조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있다. 그러나 랩은 사운드와 라임이 어우러지는 복합 구조를 통해 오늘날 가장 각광받는 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이 책의 논지다. 그렇다면 시와 힙합은 어떤 면에서 닮았는가?
첫째는 리듬이다. 저자는 시와 랩이 유사한 이유를 ‘리듬감’에서 찾는다. 여러 비평가가 리듬은 랩의 존재 그 자체로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고대에 시 또한 언어보다는 리듬으로부터 생겨났다고 한다. 즉, 시와 랩은 모두 리듬을 갖는 ‘구절의 예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이 의도한 리듬을 맞추기 위해 시구절의 길이를 조절한다. 가령 그들은 약강 오보격iambic pentameter에 맞춰 시를 쓰거나 그들이 원하는 운율을 선택한다. 한편 자유시를 쓰는 시인은 특정한 단어를 강조한다거나 기타 여러 시적인 목적을 위해 줄바꿈을 적절히 활용하기도 한다. 훌륭한 시는 절대 단순하거나 충동적인 줄바꿈을 하지 않는다. 줄바꿈에 의해 시는 다른 모든 문학과 구별이 가능해진다고도 볼 수 있다. 시인은 자유로운 줄바꿈을 통해 자신의 글을 의도대로 디자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시의 이러한 특징들이 힙합의 랩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말한다. 래퍼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사를 줄을 바꾸거나 문장의 길이를 조절하고 단어를 배열하는 방법 등을 통해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랩의 토대는 곧 시라고 할 수 있다.
랩과 시의 유사성을 리듬으로부터 찾는 것에 대해 이 책은 아일랜드의 대시인 예이츠의 말을 빌린다. 그는 시를 가리켜 “일상 발화가 지닌 리듬을 한층 정교화시켜 그것을 깊은 감정과 결합시킨 것”이라고 했다. 이는 랩의 가사가 가진 매력과 유사하다. 랩의 매력은 언뜻 ‘알아들을 수 있다’는 점으로부터 일상 발화와 유사한 듯 보이지만 때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랩에서도 매력을 느끼는 것은, 시가 그러하듯 그 안에 깊은 감정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즉, 랩과 시를 연결 짓는 것은 랩을 시로 만드는 리듬이다.
두 번째는 라임이다. 라임이란 엠시들이 입으로 만드는 음악이다. 단어들로 라임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랩에 노래다움을 불어넣어주는 것으로, 미미하지만 놀라운 언어의 음악성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다. 라임은 다음과 같이 작용한다. 먼저 듣는 이의 머릿속에 예상하는 습관을 심어놓은 뒤 소리 양식을 인식하도록 훈련하여, 본능적으로 ‘연관은 있으나 별개인 것으로’?인식하게 되는 말을 연결하도록 한다. 모든 라임은 양식을 인식하고 다음을 예측하고자 하는 인간의 선천적인 충동 기질에 기대고 있다.
가장 흔한 라임은 각운end rhyme인데, 이는 음악적 단위의 마지막 박자에 위치한다. 각운이 붙은 이어진 두 행은 하나의 대구를 만드는데, 올드스쿨 랩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스타일의 라임이다. 라임은 행을 드러내는 역할 외에도, 소리를?인식 가능한 단위로?나누어 리듬을 조직하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라임이 단지 랩을 만드는 데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시에서도 라임은 매우 중요한 기법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많은 이가 간과하는 라임의 쓰임과 배열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시와 랩의 구조적 유사성을 말해준다.
세 번째 키워드는 워드플레이(언어유희)다. 언어유희는 힙합의 가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그런 까닭에 숱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힙합 팬들조차도 힙합 가사에는 대체 왜 그토록 여성혐오와 조롱, 욕설이 난무하는지 궁금해할 정도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만 하는지에 대해 늘 의문을 제기한다. 불쾌감까지 유발하는 이런 사례들은 랩 가사를 시로 봐야 한다고 변론하는 이들에게는 특히 해명하기 어려운 난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힙합의 이런 언어유희에 대해 힙합 역사학자인 윌리엄 젤라니 콥의 말을 빌려 설명한다. 콥은 “랩은 쓸모없는 인간의 소외된 표현”으로 진화해왔다면서, 이런 맥락에서 일찍이 사회 밑바닥에서 사용되어온 관습적 표현들과 다를 바 없었고 그런 까닭에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가사들이 종종 등장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시인이 자기 주변을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한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시인들이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할 고유한 언어를 재창조했듯이 힙합 1세대 또한 자신들만의 복잡한 감정을 담는 새로운 언어를 구축했고 그것이 바로 힙합에서의 언어유희의 기초가 되었으므로 가사는 다소 거친 면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의 흑인 여자아이의 말에 세상이 관심이나 두겠나? 랩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엠시 라이트)
즉, 힙합을 만들어낸 주요 계층인 흑인의 소외당하는 삶과 그 삶의 컴컴한 부분을 집중 조명하며 그것을 자신들만의 언어로 설명하다보니 거칠고 때론 불쾌감을 조성할 수밖에 없었다.
랩, 가장 뛰어난 스토리텔링과 설전의 역사
네 번째 키워드는 바로 ‘스타일’이다. 스타일은 아티스트가 예술작품에 녹이는 것과 관객이 그로부터 얻는 것 모두를 일컫는다. 즉 스타일은 예술 창작 과정 내에서와 그 바깥에서 봤을 때 각각 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창작 과정 내에서의 스타일은 아티스트가 예술작품을 만드는 방식에 관한 것으로, 예술적 완성물의 제작까지 이루어지는 선택들을 모은 것이다. 스타일의 중요성은 랩의 세계에서도 유효하다. 스타일과 관련해 래퍼들은 참신함, 소유권, 자유에 집착한다. 한 예로 1986년에 비스티 보이즈가 “이게 새로운 스타일이야!”라고 소리 질렀던 건 가사의 독립성 선언이었다. 그가 그런 선언을 한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런 디엠시가 비스티 보이즈의 가사를 일부 써주던 때였다. 그러니 오히려 그 선언이 힙합에서 래퍼들이 얼마나 고유의 스타일을 가지고 싶어하고 지켜내길 원하는가를 보여주는 셈이 되었다.
“내 스타일은 네 스타일과는 달라, 내 스타일이 네 스타일보다 나아.”
이것은 랩에서 가장 흔한 비유 중 하나다. 랩의 가장 큰 성과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부터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창조했다는 점에 있다. 턴테이블 두 대, 마이크 한 대, 한 가지 가사 스타일이 합쳐져 문화가 되었다. 게다가 대부분 자신들의 배경을 토대로 한 가치관이나 지향점을 가사로 드러내고 있다. 다섯 번째 키워드는 스토리텔링이다.
랩에는 정말 아주 많은 스토리텔링이 있다. 라임으로 스토리를 전하지 않는 노래를 랩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다. 그러나 랩을 비판하는 이들은 도를 넘어선 폭력과 여성 혐오, 상업주의를 찬양하는 소위 ‘갱스터 랩’의 노골적인 스토리텔링을 예로 들며 각을 세운다.
하지만 많은 이가 생각하는 바와 달리, 이 책의 저자는 랩에서 주로 다루는 이야기가 비단 날카로운 사회 비판이나 갱 조직에 대한 환상만은 아니라면서 힙합 팬들은 랩을 통해 모든 분야를 ‘상상’할 기회를 얻는다고 말한다. 가령 소위 갱스터 랩에서도 단순히 경험을 기록한다기보다는 있을 법한 이야기를 상상한다. 물론 갱스터 랩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아이스-티는 ‘리얼리티 랩’이라는 호칭을 더 선호한다. 포주와 매춘부, 사기꾼의 실제 힘겨운 일상이 랩에 담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랩의 리얼리즘이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만큼이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도 존재한다. 결국 랩에서의 스토리텔링은 힙합이 날것을 고발하는 게 아닌, 치밀하게 다듬어진 예술의 한 분야로 존재함을 증명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저자는 힙합 팬들이 랩 이야기를 가장 잘 듣기 위해서는 리듬과 라임에 푹 빠진 채 일상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를 경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힙합의 랩이 다루는 다양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랩에서 최고의 이야기꾼들을 현존하는 최고의 이야기꾼 중 하나로 꼽는데, 그것은 랩 가사가 서술 기법에 혁신을 꾀하면서도 일상 언어의 분위기에서 멀어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랩의 스토리텔링과 시의 작법은 다시 한번 유사성을 갖게 되는데, 랩의 스토리텔링이 단순히 오락적이거나 선정적인 면만을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 암묵적인 규정은 시인들이 시를 지을 때 일상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측면까지 두루 고민한다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스토리텔링에서 랩과 시의 유사성은 또 찾을 수 있다. 구전이 대표적이다. 랩 또한 초기의 시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이 기본적인 형식 중 하나다. 물론 랩은 스스로 구전의 의미를 더 확장시키고 있지만 이러한 유사성은 랩의 스토리텔링과 시적 작법이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또다시 증명한다.
여섯 번째 키워드는 ‘설전’이다. 그리스에서는 전통적인 경연이 하나 있었다. ‘구절 잇기capping’라는 이름의 이 경연에서는 두 명 이상의 시인이 정해진 주제를 놓고 그에 맞는 소절을 지어서 겨루었다. 예를 들면 둘이 마주보고 서로에게 주제를 변형하거나, 언어유희를 활용하거나, 교묘하게 말을 바꾸는 식으로 상대방에게 응수하는 것이었다. 이는 마치 오늘날 래퍼 간의 프리스타일 랩 배틀과 유사했던 것 같다. 그리스의 이 시 대결은 대개 즉흥적이었다. 그러나 단지 그리스의 이 ‘구절 잇기’뿐만 아니라 시 전통에서 대결적 면모는 언제나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시 경연은 매우 흔한 것으로서 기능과 축제의 목적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 책에서는 유명한 힙합 래퍼인 제이-지가 랩에서 배틀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며 랩 배틀과 고대 시 경연의 유사성에 대해 밝힌다.
“사람들은 랩을 다른 장르의 음악과 비교한다. 재즈나 로큰롤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이건 스포츠 같은 것이다. 복싱이 정확하다. 랩은 복싱과 닮아 있다. 스태미너, 한 사람만 있는 군대, 전투라는 속성, 링, 무대, 그리고 그만두어야 할 때 절대 그만두지 않는다는 사실 등이.”
즉, 둘이 마주보고 겨루는 복싱과 랩 배틀은 굉장히 유사하며 이는 곧 고대 시 배틀과 유사하는 것이다. 또한 랩의 대결적 면모는 경쟁자 사이만이 아니라 래퍼들과 그들이 뱉는 가사 자체 사이에도 존재하는데, 랩의 이러한 면모는 앞서 설명한 그리스의 구절 잇기 전통이나 아프리카의 시 경연과 매우 유사하다. 랩 배틀에서 승자를 가리는 것처럼 고대 시 경연에서도 승자는 반드시 가려지고 승자가 되기 위해 서슴없는 대화들이 오갔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설전’은 힙합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점을 설명하고 이러한 랩의 중요한 요소를 고대 시와의 유사성으로 설명하면서 랩의 기원이 결국 시와 비슷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
▣ 작가 소개
저자 : 애덤 브래들리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콜로라도 대학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종 및 대중문화에 관한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워싱턴포스트』등에 기고했다. 주요 저서로는 이 책 외에 『랩 앤솔러지The Anthology of Rap』, 커먼의 자서전인『언젠가 다 통할 거야One Day It’ll All Make Sense』등이 있고 『팝의 시가The Poetry of Pop』를 출간할 예정이다.
역자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 대중음악, 그중에서도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네이버뮤직, 에스콰이어, 씨네21 등에 글을 쓰고 있고 레진코믹스에서는 힙합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 ‘서울힙합영화제’를 주최하고 있으며 김경주 시인, MC 메타와 함께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팀 ‘포에틱 저스티스’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등이 있고 주요 역서로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역자 : 김경주
시인, 극작가, 포에트리 슬램 운동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기담』 『시차의 눈을 달랜다』 『고래와 수증기』 희곡집으로 『나비잠』 『블랙박스』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밀어』 『패스포트』 『펄프극장』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 『애너벨 리』 『1963 발칙한 혁명』 『비트 제너레이션』 『어린 왕자』 『골리앗』 『존 레논 평전』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프롤로그
랩 포이트리 101
1부
1장 리듬
2장 라임
3장 워드플레이 (언어유희)
2부
4장 스타일
5장 스토리텔링
6장 시그니파잉 (설전)
에필로그
옮긴이의 말
30년간 시 분야에서 가장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킨 랩!
힙합의 예술가적 언어와 기교…
당신이 새로운 눈과 귀로 랩을 다시 마주한다면
리듬과 라임의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랩은 길거리의 시’라는 간단한 말이 얼마나 깊고 광대하며 포괄적으로 이 둘의 감동적인 관계를 담아내는 표현인지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극적으로 깨닫게 된다. 시는 랩을 품었고 랩은 시를 낳았다. 시가 먼저인지 랩이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말과 노래, 문학과 음악의 경계를 흐르던 그 어떤 것이 고대에서 현대까지 여전히 살아 숨 쉰다는 것, 시와 랩이 꿈꾸는 것은 같은 것이다._MC Meta 래퍼?뮤지션
누군가는 소음을 들을 때, 애덤 브래들리는 거기서 시의 과거와 미래를 듣는다. 이 책은 힙합이 그러하듯, 대답하고 서정적이며 창조적인 방식으로, 더욱이 감각과 정교함, 스타일을 담아 랩의 미학을 풀어놓는다. 이 훌륭한 작품은 전문가와 이론가들이 사랑하고, 한편으로 논쟁할 만한 여러 지점을 담고 있다._제프 창,「완전한 혼돈: 힙합의 예술과 미학」저자
브래들리는 뜨거운 논쟁과 놀라운 연구로 전통적 힙합 연구에 도전하며 지적 다이너마이트를 전달한다. 모든 층위가 멋지고, 우리를 일깨워주며, 즐겁게 해준다._주노 디아스,「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저자
브래들리의 이 책은 랩의 뛰어난 시적 묘미와 힙합의 문화적 장악력에 대한 놀라운 연구서다. 그의 분석은 미묘하고 정교하며 감동적이다._코넬 웨스트
시와 힙합은 얼마나 닮았을까?
윤동주가 뉴욕의 할렘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한용운이 시카고의 뒷골목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시를 통한 아름다운 언어로 항일정신을 드러냈던 두 명의 시인이 뉴욕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면, 그들은 어쩌면 리듬이 있고, 라임이 있으며 마주 보고 논쟁을 하는 그런 방식을 통해 저항정신을 드러냈을지도 모른다. 바로 힙합을 통해서 말이다. 왜냐하면 힙합과 시는 리듬이나 라임에서, 혹은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신을 가사에 은유적으로 담아 언어유희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그리고 래퍼 자신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흡사 래퍼들의 전생은 시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역자인 김경주는 이 책을 ‘시와 랩의 연결 고리 어디쯤에선가 서성거리는 말들의 웅성거림’이라 표현했으며 김봉현은 ‘랩은 곧 시’이고, 이 책은 랩과 시를 아우르며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이 책은 무조건적으로 힙합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과의 관계를 통해 힙합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확장할 기회를 가져다준다.
흔히 힙합을 떠올리면 사람들은 다소 반항적인 젊은이들이 욕과 음담패설, 여성혐오적인 발언을 가사로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텔레비전 매체에서 힙합에 대해 경연 형식의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고 이제는 대중 친화적인 힙합 가수가 많이 나왔다고 하지만 힙합에 대한 다소 협소한 인식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힙합을 매개로 한 경연에서는 언제나 혐오 발언이 문제시되었고 힙합 래퍼들의 사생활이 지적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힙합은 ‘고유의 작법이 존재하는 하나의 장르’로 존재하기보다는 젊은이들의 치기어린 반항으로 치부되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힙합에 대한 이러한 편견은 그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힙합 특유의 거친 가사는 언제나 “어째서 이들은 여성혐오를 문제시하지 않는가?” “왜 반드시 욕설과 음담패설이 들어가는가?”와 같은 지적과 야유를 받아왔다. 또한 “그것이 과연 힙합의 저항정신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가?” 혹은 “저항정신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치기 아닌가?”라는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인 애덤 브래들리는 힙합에 대한 이 같은 편견을 시와 힙합이 갖는 작법의 유사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랩과 시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랩과 시는 무엇이 같은지 혹은 다른지에 대해 실제 노래 가사와 다양한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어째서 랩과 시가 함께 설명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논리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또한 힙합 가사가 드러내는 공격성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옹호보다는‘맥락’으로 이해할 것을 말하며 그 근거로 시적 형태의 다양성과 섬세함을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힙합을 이루는 핵심 요소를 크게 여섯 개로 분류했다. ‘리듬, 라임, 워드플레이, 스타일, 스토리텔링, 설전’으로 나눈 이 요소들은 사실상 힙합의 가사를 쓰는 데 반드시 필요하고, 래퍼라면 누구나 공부해야 하는 필수적인 것들이다. 다른 한편 시인들이 시를 쓰거나 낭독할 때도 염두에 두는 요소들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랩이 텍스트를 벗어난 시의 또 다른 형태라고 규정지으며 시라고 규명되어온 성분들이 랩의 구조와 스토리 안에서 어떻게 발화되는지 흥미롭고 다양한 텍스트의 사례를 통해 고찰하고 있다.
리듬과 라임, 언어유희는 어떻게 시를 짓고 랩을 만들어냈나
이 책은 힙합과 시의 유사성으로 ‘리듬, 라임, 워드플레이, 스타일, 스토리텔링, 설전’이라는 여섯 개의 키워드로 분류하고 있다. 이 분류를 실제 잘 알려져 있는 힙합 가사와 유명 가수들의 경험 사례에 적용해 설명한다.
많은 비평가가 음악의 가사와 시 문학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평가들은 노래 가사가 시적일수록 오히려 음악에서는 형편없는 가사가 된다며 염려한다. 이러한 맥락을 따른다면 문학 영역에서 좋은 시는 음악의 영역에서는 별로인 가사가 되고, 음악 영역에서 위대한 가사는 문학의 영역에서는 이류 시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바로 랩이 이러한 관습적 고정관념에 저항한다고 본다. 랩은 분명 음악적 양식 중 하나이지만 여느 음악과 다르게 시적 질감을 자유롭게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고정관념으로 대중음악 가사는 문학적 서사 구조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있다. 그러나 랩은 사운드와 라임이 어우러지는 복합 구조를 통해 오늘날 가장 각광받는 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이 책의 논지다. 그렇다면 시와 힙합은 어떤 면에서 닮았는가?
첫째는 리듬이다. 저자는 시와 랩이 유사한 이유를 ‘리듬감’에서 찾는다. 여러 비평가가 리듬은 랩의 존재 그 자체로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고대에 시 또한 언어보다는 리듬으로부터 생겨났다고 한다. 즉, 시와 랩은 모두 리듬을 갖는 ‘구절의 예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이 의도한 리듬을 맞추기 위해 시구절의 길이를 조절한다. 가령 그들은 약강 오보격iambic pentameter에 맞춰 시를 쓰거나 그들이 원하는 운율을 선택한다. 한편 자유시를 쓰는 시인은 특정한 단어를 강조한다거나 기타 여러 시적인 목적을 위해 줄바꿈을 적절히 활용하기도 한다. 훌륭한 시는 절대 단순하거나 충동적인 줄바꿈을 하지 않는다. 줄바꿈에 의해 시는 다른 모든 문학과 구별이 가능해진다고도 볼 수 있다. 시인은 자유로운 줄바꿈을 통해 자신의 글을 의도대로 디자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시의 이러한 특징들이 힙합의 랩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말한다. 래퍼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사를 줄을 바꾸거나 문장의 길이를 조절하고 단어를 배열하는 방법 등을 통해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랩의 토대는 곧 시라고 할 수 있다.
랩과 시의 유사성을 리듬으로부터 찾는 것에 대해 이 책은 아일랜드의 대시인 예이츠의 말을 빌린다. 그는 시를 가리켜 “일상 발화가 지닌 리듬을 한층 정교화시켜 그것을 깊은 감정과 결합시킨 것”이라고 했다. 이는 랩의 가사가 가진 매력과 유사하다. 랩의 매력은 언뜻 ‘알아들을 수 있다’는 점으로부터 일상 발화와 유사한 듯 보이지만 때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랩에서도 매력을 느끼는 것은, 시가 그러하듯 그 안에 깊은 감정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즉, 랩과 시를 연결 짓는 것은 랩을 시로 만드는 리듬이다.
두 번째는 라임이다. 라임이란 엠시들이 입으로 만드는 음악이다. 단어들로 라임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랩에 노래다움을 불어넣어주는 것으로, 미미하지만 놀라운 언어의 음악성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다. 라임은 다음과 같이 작용한다. 먼저 듣는 이의 머릿속에 예상하는 습관을 심어놓은 뒤 소리 양식을 인식하도록 훈련하여, 본능적으로 ‘연관은 있으나 별개인 것으로’?인식하게 되는 말을 연결하도록 한다. 모든 라임은 양식을 인식하고 다음을 예측하고자 하는 인간의 선천적인 충동 기질에 기대고 있다.
가장 흔한 라임은 각운end rhyme인데, 이는 음악적 단위의 마지막 박자에 위치한다. 각운이 붙은 이어진 두 행은 하나의 대구를 만드는데, 올드스쿨 랩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스타일의 라임이다. 라임은 행을 드러내는 역할 외에도, 소리를?인식 가능한 단위로?나누어 리듬을 조직하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라임이 단지 랩을 만드는 데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시에서도 라임은 매우 중요한 기법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많은 이가 간과하는 라임의 쓰임과 배열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시와 랩의 구조적 유사성을 말해준다.
세 번째 키워드는 워드플레이(언어유희)다. 언어유희는 힙합의 가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그런 까닭에 숱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힙합 팬들조차도 힙합 가사에는 대체 왜 그토록 여성혐오와 조롱, 욕설이 난무하는지 궁금해할 정도다. 그리고 그런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만 하는지에 대해 늘 의문을 제기한다. 불쾌감까지 유발하는 이런 사례들은 랩 가사를 시로 봐야 한다고 변론하는 이들에게는 특히 해명하기 어려운 난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힙합의 이런 언어유희에 대해 힙합 역사학자인 윌리엄 젤라니 콥의 말을 빌려 설명한다. 콥은 “랩은 쓸모없는 인간의 소외된 표현”으로 진화해왔다면서, 이런 맥락에서 일찍이 사회 밑바닥에서 사용되어온 관습적 표현들과 다를 바 없었고 그런 까닭에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가사들이 종종 등장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시인이 자기 주변을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한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시인들이 자신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할 고유한 언어를 재창조했듯이 힙합 1세대 또한 자신들만의 복잡한 감정을 담는 새로운 언어를 구축했고 그것이 바로 힙합에서의 언어유희의 기초가 되었으므로 가사는 다소 거친 면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의 흑인 여자아이의 말에 세상이 관심이나 두겠나? 랩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엠시 라이트)
즉, 힙합을 만들어낸 주요 계층인 흑인의 소외당하는 삶과 그 삶의 컴컴한 부분을 집중 조명하며 그것을 자신들만의 언어로 설명하다보니 거칠고 때론 불쾌감을 조성할 수밖에 없었다.
랩, 가장 뛰어난 스토리텔링과 설전의 역사
네 번째 키워드는 바로 ‘스타일’이다. 스타일은 아티스트가 예술작품에 녹이는 것과 관객이 그로부터 얻는 것 모두를 일컫는다. 즉 스타일은 예술 창작 과정 내에서와 그 바깥에서 봤을 때 각각 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창작 과정 내에서의 스타일은 아티스트가 예술작품을 만드는 방식에 관한 것으로, 예술적 완성물의 제작까지 이루어지는 선택들을 모은 것이다. 스타일의 중요성은 랩의 세계에서도 유효하다. 스타일과 관련해 래퍼들은 참신함, 소유권, 자유에 집착한다. 한 예로 1986년에 비스티 보이즈가 “이게 새로운 스타일이야!”라고 소리 질렀던 건 가사의 독립성 선언이었다. 그가 그런 선언을 한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런 디엠시가 비스티 보이즈의 가사를 일부 써주던 때였다. 그러니 오히려 그 선언이 힙합에서 래퍼들이 얼마나 고유의 스타일을 가지고 싶어하고 지켜내길 원하는가를 보여주는 셈이 되었다.
“내 스타일은 네 스타일과는 달라, 내 스타일이 네 스타일보다 나아.”
이것은 랩에서 가장 흔한 비유 중 하나다. 랩의 가장 큰 성과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부터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창조했다는 점에 있다. 턴테이블 두 대, 마이크 한 대, 한 가지 가사 스타일이 합쳐져 문화가 되었다. 게다가 대부분 자신들의 배경을 토대로 한 가치관이나 지향점을 가사로 드러내고 있다. 다섯 번째 키워드는 스토리텔링이다.
랩에는 정말 아주 많은 스토리텔링이 있다. 라임으로 스토리를 전하지 않는 노래를 랩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다. 그러나 랩을 비판하는 이들은 도를 넘어선 폭력과 여성 혐오, 상업주의를 찬양하는 소위 ‘갱스터 랩’의 노골적인 스토리텔링을 예로 들며 각을 세운다.
하지만 많은 이가 생각하는 바와 달리, 이 책의 저자는 랩에서 주로 다루는 이야기가 비단 날카로운 사회 비판이나 갱 조직에 대한 환상만은 아니라면서 힙합 팬들은 랩을 통해 모든 분야를 ‘상상’할 기회를 얻는다고 말한다. 가령 소위 갱스터 랩에서도 단순히 경험을 기록한다기보다는 있을 법한 이야기를 상상한다. 물론 갱스터 랩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아이스-티는 ‘리얼리티 랩’이라는 호칭을 더 선호한다. 포주와 매춘부, 사기꾼의 실제 힘겨운 일상이 랩에 담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랩의 리얼리즘이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만큼이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도 존재한다. 결국 랩에서의 스토리텔링은 힙합이 날것을 고발하는 게 아닌, 치밀하게 다듬어진 예술의 한 분야로 존재함을 증명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저자는 힙합 팬들이 랩 이야기를 가장 잘 듣기 위해서는 리듬과 라임에 푹 빠진 채 일상의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를 경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힙합의 랩이 다루는 다양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랩에서 최고의 이야기꾼들을 현존하는 최고의 이야기꾼 중 하나로 꼽는데, 그것은 랩 가사가 서술 기법에 혁신을 꾀하면서도 일상 언어의 분위기에서 멀어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랩의 스토리텔링과 시의 작법은 다시 한번 유사성을 갖게 되는데, 랩의 스토리텔링이 단순히 오락적이거나 선정적인 면만을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 암묵적인 규정은 시인들이 시를 지을 때 일상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측면까지 두루 고민한다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스토리텔링에서 랩과 시의 유사성은 또 찾을 수 있다. 구전이 대표적이다. 랩 또한 초기의 시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이 기본적인 형식 중 하나다. 물론 랩은 스스로 구전의 의미를 더 확장시키고 있지만 이러한 유사성은 랩의 스토리텔링과 시적 작법이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또다시 증명한다.
여섯 번째 키워드는 ‘설전’이다. 그리스에서는 전통적인 경연이 하나 있었다. ‘구절 잇기capping’라는 이름의 이 경연에서는 두 명 이상의 시인이 정해진 주제를 놓고 그에 맞는 소절을 지어서 겨루었다. 예를 들면 둘이 마주보고 서로에게 주제를 변형하거나, 언어유희를 활용하거나, 교묘하게 말을 바꾸는 식으로 상대방에게 응수하는 것이었다. 이는 마치 오늘날 래퍼 간의 프리스타일 랩 배틀과 유사했던 것 같다. 그리스의 이 시 대결은 대개 즉흥적이었다. 그러나 단지 그리스의 이 ‘구절 잇기’뿐만 아니라 시 전통에서 대결적 면모는 언제나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시 경연은 매우 흔한 것으로서 기능과 축제의 목적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 책에서는 유명한 힙합 래퍼인 제이-지가 랩에서 배틀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며 랩 배틀과 고대 시 경연의 유사성에 대해 밝힌다.
“사람들은 랩을 다른 장르의 음악과 비교한다. 재즈나 로큰롤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이건 스포츠 같은 것이다. 복싱이 정확하다. 랩은 복싱과 닮아 있다. 스태미너, 한 사람만 있는 군대, 전투라는 속성, 링, 무대, 그리고 그만두어야 할 때 절대 그만두지 않는다는 사실 등이.”
즉, 둘이 마주보고 겨루는 복싱과 랩 배틀은 굉장히 유사하며 이는 곧 고대 시 배틀과 유사하는 것이다. 또한 랩의 대결적 면모는 경쟁자 사이만이 아니라 래퍼들과 그들이 뱉는 가사 자체 사이에도 존재하는데, 랩의 이러한 면모는 앞서 설명한 그리스의 구절 잇기 전통이나 아프리카의 시 경연과 매우 유사하다. 랩 배틀에서 승자를 가리는 것처럼 고대 시 경연에서도 승자는 반드시 가려지고 승자가 되기 위해 서슴없는 대화들이 오갔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설전’은 힙합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점을 설명하고 이러한 랩의 중요한 요소를 고대 시와의 유사성으로 설명하면서 랩의 기원이 결국 시와 비슷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
▣ 작가 소개
저자 : 애덤 브래들리
하버드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콜로라도 대학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종 및 대중문화에 관한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워싱턴포스트』등에 기고했다. 주요 저서로는 이 책 외에 『랩 앤솔러지The Anthology of Rap』, 커먼의 자서전인『언젠가 다 통할 거야One Day It’ll All Make Sense』등이 있고 『팝의 시가The Poetry of Pop』를 출간할 예정이다.
역자 : 김봉현
힙합 저널리스트. 대중음악, 그중에서도 힙합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네이버뮤직, 에스콰이어, 씨네21 등에 글을 쓰고 있고 레진코믹스에서는 힙합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 ‘서울힙합영화제’를 주최하고 있으며 김경주 시인, MC 메타와 함께 시와 랩을 잇는 프로젝트 팀 ‘포에틱 저스티스’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 『힙합-블랙은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는가』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우리 시대의 클래식』 등이 있고 주요 역서로 『제이 지 스토리』 『더 에미넴 북』 『더 랩: 힙합의 시대』 등이 있다.
역자 : 김경주
시인, 극작가, 포에트리 슬램 운동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기담』 『시차의 눈을 달랜다』 『고래와 수증기』 희곡집으로 『나비잠』 『블랙박스』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밀어』 『패스포트』 『펄프극장』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 『애너벨 리』 『1963 발칙한 혁명』 『비트 제너레이션』 『어린 왕자』 『골리앗』 『존 레논 평전』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프롤로그
랩 포이트리 101
1부
1장 리듬
2장 라임
3장 워드플레이 (언어유희)
2부
4장 스타일
5장 스토리텔링
6장 시그니파잉 (설전)
에필로그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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