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공감’과 ‘전이轉移’로 맺어진 두 사람, 그리고 그들의 공통된 운명
“제가 쓴 모든 것은 교수님에게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제 책들의 본질적인 것은 어쩌면 교수님에게 물려받은, 진실을 향한 용기라는 것을 교수님은 알아채셨겠지요. 교수님은 한 세대 전체에 하나의 본보기를 제시하셨습니다.”
평전 『마리 앙투아네트』를 읽고 호의적인 감상을 전한 프로이트에게 보내는 편지(1932년 10월 21일)’에서 츠바이크는 이렇게 답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 감화되어 인간의 내면에 스스럼없이 다가갈 용기를 얻었고, 이 용기가 창작의 동인이 되었음을 고백한 것이다. 인물의 마음속 깊은 곳을 파헤치고 심리의 추이를 섬세하게 추적하는 한편, 유년 시절의 경험이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인물이 태어나서부터 성장해가는 과정을 면밀히 탐색하는 츠바이크 특유의 서술 방식은 과연 프로이트의 이론에 힘입은 바 크다. 또한 프로이트는 일로 바쁜 와중에도 츠바이크의 작품을 즐겨 탐독했고 열광적인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자신의 의견은 어떤지 소상히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꾸준히 경의를 표해온 두 사람은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망명 생활을 했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프로이트는 1923년에 처음으로 구강암 수술을 받은 이래 32차례의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 끔찍한 과정을 강인한 의지로 버텨내던 그이지만 말년에 암이 악화되어 고통이 극심해지자 주치의에게 모르핀을 치사량까지 투여해달라고 부탁했다.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고자 한 것이다. 그로부터 3년 후, 자신의 ‘정신적 고향’ 유럽의 붕괴와 몰락을 지켜보며 괴로워하던 츠바이크는 “자유로운 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죽기로 마음먹고 아내와 동반 자살했다.
줄곧 편지에서 “존경하는 프로이트 교수님”이라며 공적인 호칭을 사용하던 츠바이크는 프로이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1939년 9월 14일)에서 처음으로 “나의 소중한 벗이자 존경하는 스승”이라고 허물없이 부르며 친근감을 표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을 쓰지도 못하고 9일 후 숨을 거두었다. 곧 다가올 이별을 예감하지 못한 채 프로이트의 안위를 걱정하는 츠바이크의 목소리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바라옵건대 당신께서도 우리 모두처럼 이 시대만을 아파하시고 신체적 고통은 더하지 않기를. 이제 우리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합니다. (…) 진심을 다하여 건강하시기를!”
“니체가 망치를 들고 철학을 했다면, 프로이트는 평생 동안 메스를 들고 철학을 했다”
1부 프로이트 평전(1931)
-츠바이크가 바라본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류가 자신에 관해 더 명백하게 알게 해주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위대한 업적이다. 나는 더 명백하게라고 말하지, 더 행복하게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는 한 세대 전체의 세계상을 심화했다. 나는 심화했다고 말하지, 미화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과격한 것은 행복을 주지 않고 결단을 가져올 뿐이다. 그러나 인류의 영원한 동심을 언제까지나 꿈결 속에서 달래어 재우는 일은 학문의 과제가 아니다. 학문의 과제는 이 무정한 대지 위에서 올곧게 걸어갈 것을 인류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불가결한 작업을 함으로써 자기 몫을 모범적으로 행했다.
_‘세기말의 상황’에서
현재 우리는 프로이트 덕분에 처음으로 개인의 중요성을, 모든 인간 영혼의 대체 불가능한 일회적 가치를 새롭고 생생하게 깨닫게 되었다. 유럽에서 예술, 연구, 생명과학의 모든 영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찬성하든 반대하든 프로이트의 사상 체계로부터, 그의 견해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창조적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_‘시대에 통하다’에서
이 책의 1부는 현대 심리학의 개척자 3인을 다룬 『정신에 의한 치유』에서 ‘들어가는 말’과 프로이트에 온전히 할애한 3부를 발췌한 것이다. (『정신에 의한 치유』는 『정신의 탐험가들』〔푸른숲, 2000〕로 번역 출판된 바 있다.) 츠바이크는 『정신에 의한 치유』를 통해, 질병 치료에서 정신의 중요성에 주목하여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세 인물로, 근대적 최면술의 창시자 프란츠 안톤 메스머, 종교단체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창립자 메리 베이커 에디와 함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츠바이크는 이 평전에서 정신분석학이 탄생하기 이전의 시대 상황, 프로이트의 성격적 특징과 이력, 정신분석의 주요 개념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한편, 프로이트가 “정신적·도덕적 세계상 전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대체로 호의적이지만 공정성을 잃지 않은 자세로 평가하고 있다.
인간은 합리적인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지배받는다고 보고 감정과 본능의 영향력에 주목한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대표적인 산물인 꿈을 진지한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성 충동은 어린이의 몸속에 이미 잠재되어 있다가 훗날 깨어날 뿐이며 신경증은 주로 성적인 억압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것이 이성에 의해 진보하리라는 낙관이 지배적인데다 성과 관련해 보수적인 분위기가 여전했던 당시에 그의 이론은 불온하게 여겨져 배척당했고, 프로이트는 긴 세월 몰이해와 편견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도 더해져서 1902년이 되어서야 겨우 빈 의과 대학 비정규 교수직을 얻을 정도였다. 프로이트를 거듭 좌절케 하고 결국 인정받기를 체념하게 만든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츠바이크는 평전에서 정신분석학이 얼마나 혁명적인 학문인지, 어떤 점에서 창조적 성과를 거두었는지를 작가 특유의 감성적 언어와 철학자의 냉철한 분별력으로 서술한다.
츠바이크는 마젤란, 에라스무스, 마리 앙투아네트, 메리 스튜어트, 발자크, 횔덜린 등 주로 이미 세상을 떠난 인물을 평전의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당사자가 살아 있을 당시에, 그러니까 사후에 종합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평전을 썼다. 그런 만큼 츠바이크가 프로이트를 얼마나 존경했고 그의 업적에 얼마나 경의를 표했는지, 나아가 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혜안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보여준다. 프로이트가 남긴 방대한 저작들을 일일이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독자에게 이 평전은 프로이트라는 인물과 그의 정신분석학을 개괄해주는 훌륭한 입문서 역할을 해준다. 정신사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꿰뚫어보는 츠바이크의 통찰, 탁월한 비유와 유려한 문장이 어우러져 하나의 문학작품을 읽는 듯한 도취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나 역시 당신〔츠바이크〕처럼 이 시대를 아파하고,
당신처럼 몇몇 타인과의 공속감에서 유일한 위로를 찾습니다.
확신하건대, 우리는 똑같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똑같은 가치에 동의합니다”
2부 프로이트-츠바이크 서한집(1908~1939)
-두 지성이 나눈 내밀한 우정과 공감의 기록
당신에게 한번은 말해야겠습니다. 내가 아는 한, 당신은 다른 누구도 구현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언어로 달성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표현을 대상에 접근시킬 줄 압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대상에 대한 가장 세부적인 것들을 포착할 수 있게 되고, 우리는 이제까지 도무지 말로는 포착할 수 없었던 관계들과 특성들을 파악했다고 믿게 됩니다.
_‘프로이트가 츠바이크에게 보내는 편지(1925년 4월 14일)’에서
교수님은 우리에게 ‘용기’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사물들에 다가갈 용기를, ‘두려움 없이’ 그리고 모든 그릇된 수치심 없이 가장 내면적인 감정은 물론이고 가장 극단적인 감정에 다가갈 용기를 말입니다. 또한 진실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우리 시대에는 오직 교수님의 저서만이 그런 용기를 보여줍니다. _‘츠바이크가 프로이트에게 보내는 편지(1925년 4월 15일)’에서
이 책의 2부는 두 사람이 30여 년간 주고받은 편지 74통을 모은 것이다. 서로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담긴 이 편지들을 통해 주요 저작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그 과정, 출간 후의 반응은 물론이고, 츠바이크의 주선으로 로맹 롤랑, 쥘 로맹, 허버트 조지 웰스, 살바도르 달리 등 유명 작가들이 프로이트와 만나게 된 경위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서한집에는 츠바이크가 프로이트의 평전을 집필한 의도와 그 과정, 이 평전을 읽은 프로이트의 호평과 오류에 대한 지적, 이 지적을 인정하고 겸허히 수용하는 츠바이크의 반응도 담겨 있다. 한편, 애연가이자 골동품 수집광임을 자인하거나 80세 생일 축하에 감사하며 늙어감에 대한 서글픈 심정을 드러내는 프로이트의 모습에서, 불안한 망명 생활 중에 “빙빙 도는 소포처럼 이리저리 치이고” 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스승을 안심시키는 츠바이크의 모습에서 솔직하고 인간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다.
프로이트와 츠바이크의 관계가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1929년 프로이트의 비방자 찰스 메일런이 반反 프로이트 강연을 알리는 벽보에 츠바이크가 보낸 편지의 구절을 따서 악용함으로써 빚어진, 일명 ‘메일런 사건’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사과한 츠바이크를 프로이트가 너그러이 받아들임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원만히 지속될 수 있었다. 요제프 브로이어, 빌헬름 플리스를 위시한 동료들뿐만 아니라 카를 구스타프 융, 알프레트 아들러 같은 제자들과도 견해 차이로 결별하고 만 프로이트에게 츠바이크는 평생을 두고 이어간 흔치 않은 인연인 셈이다.
“그의 관을 영국 땅에 묻었을 때, 우리는 조국에서 가장 훌륭한 것을 그곳에 바쳤음을 깨달았다”
3부 프로이트에 관한 기록들(1930~1941)
-변치 않는 애정과 존경심의 증표…서평·일기·추모 연설·회고
친애하고 존경하는 친구여, 그대의 위대하고 창조적인 생에 감사합니다. 그대의 업적과 저서 하나하나에 감사합니다. 그대가 있었다는 것과 그대가 우리에게 선사해준 그대의 것에 감사합니다. 그대가 우리에게 열어준 세계, 이제는 안내자 없이 우리 홀로 여행해야 하는 그 세계에 대해 감사합니다. 언제까지나 그대를 따르겠습니다. 언제까지나 그대를 우러르며 기억하겠습니다. 그대, 너무도 소중한 친구. 그대, 너무도 사랑하는 스승. 지그문트 프로이트.
_‘프로이트 추모 연설(1939년 9월 26일)’에서
이 책의 3부에는 츠바이크가 프로이트의 장례식에서 낭독한 추모 연설문과 함께 『문명 속의 불만』(1930) 출간 당시 신문 『베를리너 타게블라트』에 기고한 서평, 프로이트의 마지막 나날들을 기록한 일기, 회고록 『어제의 세계』에서 발췌한 프로이트와 관련된 대목들을 발췌해 실었다. 동향의 다정한 친구, 정신적인 스승이자 아버지 프로이트에 대한 츠바이크의 변치 않는 존경과 애정이 묻어나는 글들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던 프로이트 관련 기록들을 한데 모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츠바이크는 서평을 통해, 개인의 무의식에서 사회적 무의식으로 분석 대상의 폭을 넓혀가며 자신의 세계관을 전환 및 확장하던(『환상의 미래』, 1927) 프로이트가 『문명 속의 불만』에 이르러 철학적 세계상을 완성시켰다고 평가했다. 이 저작을 프로이트의 업적에서 정신적 정점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호평하면서 프로이트의 이론이 장차 “지적 생산 활동의 모든 영역에 창조적 활기를 불어넣으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 예견하기도 했다. 한편, 『어제의 세계』에서 프로이트 사후 그를 회고하고 있는 대목들을 발췌하여 시간 순으로 재배열한 ‘회고’에서 츠바이크는 프로이트가 나치에 점령된 빈을 탈출해 런던으로 망명하는 데 성공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날을 “나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였다”고 기록했다. 하마터면 잃을 뻔한 존경하는 친구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가슴 벅찬 안도감을 토로한 그는 이후 1년 동안 온화한 동시에 냉철했던 말년의 프로이트와 나눈 우정을 담담히 술회하고 있다.
▣ 작가 소개
저 : 지그문트 프로이트
마르크스, 니체 등과 함께 현대의 3대 혁명적 사상가로 꼽히는 인물.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의 창시자라고 불리운다. 1990년 기념비적인 서적,『꿈의 해석』을 통하여 ''무의식''이라는 인간 심리학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 심리학, 정신의학, 인문학 등 현대 사상의 모든 분야는 프로이트 사상의 영향 아래 발전했다.
그는 나치즘의 시기를 보낸 유대인이었다. 그가 정신분석을 하게 된 두 가지 요소 역시 유대혈통과 특수했던 가족환경을 들었다. 그는 편견이나 선입관에서 벗어나는 법을 자신의 혈통을 통해 배웠고, 나이 차이가 많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심리학적 현상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그가 좋아했던 성경과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들은 그의 정신분석학적 텍스트에 큰 영향을 끼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나르시즘’ 같은 이론은 문학작품이나 신화를 통해 설명되었으며, 그의 작품 곳곳에는 성경이 등장하게 되고 무의식 개념을 새로운 미학으로 인문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프로이트의 특징은 수많은 임상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킨다는 점이다. 당대에 유행하던 최면요법 대신 그는 수많은 환자들과의 면대면 대화를 통하여 그의 무의식 이론체계의 핵심이 될 개념을 도출했고 개별적인 치료가 아닌 보편적인 무의식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미숙한 인간이 성인으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무의식이 생성되며, 꿈과 환상은 기억 조각 사이의 공백을 메워주는 중요한 요소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과거를 객관적으로 복원하는 일은 불가능하며 언제나 기억은 환상이나 욕망에 의해 왜곡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수많은 사례들을 통하여 전개되고 있는 그의 논리들은 책 속에 담겨졌다. 그리고 끊임없이 학문들과 작용하며 나치가 현대에 부여했던 끔찍했던 보편성으로 부정되었던 개별성과 주관성을 존중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게 되었다.
1939년 9월 23일 영국의 런던에서 8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프로이트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연구를 중단하지 않았다. 사망할 때까지 「일상생활의 정신병리」,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 「성性이론에 관한 세 가지 논문」, 「토뎀과 터부」, 「자아와 이드」, 「모세와 유일 신앙」 등 24권의 저서를 남겼다.
저 : 슈테판 츠바이크
뛰어난 소설가이자 전기작가로 널리 알려진 독일 문학계의 거장 슈테판 츠바이크는 188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남다른 시적 감수성을 보였던 츠바이크는 김나지움 시절부터 호프만슈탈, 릴케 등에게서 영향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고, 빈과 베를린 대학에서 독일 문학과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다. 1901년 첫 시집 『은빛 현』을 출간하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고, 이후 소설, 시, 희곡을 발표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자원입대하여 군 신문의 기자로 활동했는데, 이 시기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의 영향으로 반전(反戰)에 대한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발자크, 디킨스,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에세이 『세 거장』을 비롯하여 『악마와의 투쟁』 『세 작가의 인생』 『로맹 롤랑』 등 유명 작가들에 대한 평전을 출간했고,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과 역사적 인물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로 전기 『조제프 푸셰』 『마리 앙투아네트』 『메리 스튜어트』 등을 집필하며 세계 3대 전기 작가 중 한 사람으로 명성을 떨쳤다.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인간 내면을 깊이 탐색하고 인간관계에서의 심리작용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품을 많이 선보였는데, 「낯선 여인의 편지」 『아모크』 『연민』 등 그가 쓴 대부분의 소설은 뛰어난 심리묘사가 돋보인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나치가 자신의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압박해오자 1934년 런던으로 피신해 영국 시민권을 획득했고, 이후 유럽을 떠나 브라질로 망명했다. 1941년 자전적 회고록이자 자신의 삶을 축으로 하여 유럽의 문화사를 기록한 작품 『어제의 세계』를 출간하고, 소설 「체스 이야기」를 완성했다. 정신적 고향인 유럽의 자멸로 우울증을 겪던 츠바이크는 1942년 “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다는 유서를 남기고 부인과 함께 약물 과다복용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 외 저서로는 『인류사를 바꾼 순간』이 있다.
역 : 양진호
YANG,JIN-HO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인문학 교육을 연구 및 실행하는 ‘인문학교육연구소’(www.paideia.re.kr)의 소장직을 맡고 있다. ‘교육공간 오름’, ‘래미학교’ 등 학교 안팎에서 청소년들과 더불어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대학에도 출강하면서 고전 번역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서양의 초기 근대철학을 중심으로 공부를 했고, 현재는 관심 영역을 서양 문명 전체로 확장시키는 중이다. 수년 전 어느 지인의 소개로 읽은 《발자크》에 매료되어 츠바이크에 관한 관심을 넓히던 중에 〈프로이트 평전〉을 읽게 되었고 이를 통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지닌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가 있다는 소식에 서한집을 구해 한 장 한 장 읽으며 두 사람의 관계에 깊은 인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 츠바이크가 프로이트에 관해 남긴 기록을 뒤지기 시작하여 서평, 일기, 추모 연설문, 회고록까지 모으게 되었다. 이 책은 그 과정의 결실이다.
옮긴 책으로는 데카르트의 《성찰》, 스피노자의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가 있다.
▣ 주요 목차
추천의 말 작가의 언어로, 철학자의 눈으로
프로이트와 그의 사상을 그려내다 _이창재
1부 프로이트 평전(1931)
들어가는 말
세기말의 상황
성격 초상
출발
무의식의 세계
꿈의 해석
정신분석의 기술
성性의 세계
먼 곳을 향한 황혼의 시선
시대에 통하다
2부 프로이트-츠바이크 서한집(1908~1939)
3부 프로이트에 관한 기록들(1930~1941)
서평 프로이트의 신간 《문명 속의 불만》(1930)
일기 〈2차대전 일기〉(1939) 중에서
연설 프로이트 추모 연설(1939)
회고 《어제의 세계》(1941) 중에서
출처
주
지그문트 프로이트 연보 / 슈테판 츠바이크 연보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인명 / 찾아보기-용어?작품
‘공감’과 ‘전이轉移’로 맺어진 두 사람, 그리고 그들의 공통된 운명
“제가 쓴 모든 것은 교수님에게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제 책들의 본질적인 것은 어쩌면 교수님에게 물려받은, 진실을 향한 용기라는 것을 교수님은 알아채셨겠지요. 교수님은 한 세대 전체에 하나의 본보기를 제시하셨습니다.”
평전 『마리 앙투아네트』를 읽고 호의적인 감상을 전한 프로이트에게 보내는 편지(1932년 10월 21일)’에서 츠바이크는 이렇게 답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 감화되어 인간의 내면에 스스럼없이 다가갈 용기를 얻었고, 이 용기가 창작의 동인이 되었음을 고백한 것이다. 인물의 마음속 깊은 곳을 파헤치고 심리의 추이를 섬세하게 추적하는 한편, 유년 시절의 경험이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인물이 태어나서부터 성장해가는 과정을 면밀히 탐색하는 츠바이크 특유의 서술 방식은 과연 프로이트의 이론에 힘입은 바 크다. 또한 프로이트는 일로 바쁜 와중에도 츠바이크의 작품을 즐겨 탐독했고 열광적인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자신의 의견은 어떤지 소상히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꾸준히 경의를 표해온 두 사람은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망명 생활을 했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프로이트는 1923년에 처음으로 구강암 수술을 받은 이래 32차례의 재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 끔찍한 과정을 강인한 의지로 버텨내던 그이지만 말년에 암이 악화되어 고통이 극심해지자 주치의에게 모르핀을 치사량까지 투여해달라고 부탁했다.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고자 한 것이다. 그로부터 3년 후, 자신의 ‘정신적 고향’ 유럽의 붕괴와 몰락을 지켜보며 괴로워하던 츠바이크는 “자유로운 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죽기로 마음먹고 아내와 동반 자살했다.
줄곧 편지에서 “존경하는 프로이트 교수님”이라며 공적인 호칭을 사용하던 츠바이크는 프로이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1939년 9월 14일)에서 처음으로 “나의 소중한 벗이자 존경하는 스승”이라고 허물없이 부르며 친근감을 표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을 쓰지도 못하고 9일 후 숨을 거두었다. 곧 다가올 이별을 예감하지 못한 채 프로이트의 안위를 걱정하는 츠바이크의 목소리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바라옵건대 당신께서도 우리 모두처럼 이 시대만을 아파하시고 신체적 고통은 더하지 않기를. 이제 우리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합니다. (…) 진심을 다하여 건강하시기를!”
“니체가 망치를 들고 철학을 했다면, 프로이트는 평생 동안 메스를 들고 철학을 했다”
1부 프로이트 평전(1931)
-츠바이크가 바라본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류가 자신에 관해 더 명백하게 알게 해주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위대한 업적이다. 나는 더 명백하게라고 말하지, 더 행복하게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는 한 세대 전체의 세계상을 심화했다. 나는 심화했다고 말하지, 미화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과격한 것은 행복을 주지 않고 결단을 가져올 뿐이다. 그러나 인류의 영원한 동심을 언제까지나 꿈결 속에서 달래어 재우는 일은 학문의 과제가 아니다. 학문의 과제는 이 무정한 대지 위에서 올곧게 걸어갈 것을 인류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불가결한 작업을 함으로써 자기 몫을 모범적으로 행했다.
_‘세기말의 상황’에서
현재 우리는 프로이트 덕분에 처음으로 개인의 중요성을, 모든 인간 영혼의 대체 불가능한 일회적 가치를 새롭고 생생하게 깨닫게 되었다. 유럽에서 예술, 연구, 생명과학의 모든 영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찬성하든 반대하든 프로이트의 사상 체계로부터, 그의 견해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창조적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_‘시대에 통하다’에서
이 책의 1부는 현대 심리학의 개척자 3인을 다룬 『정신에 의한 치유』에서 ‘들어가는 말’과 프로이트에 온전히 할애한 3부를 발췌한 것이다. (『정신에 의한 치유』는 『정신의 탐험가들』〔푸른숲, 2000〕로 번역 출판된 바 있다.) 츠바이크는 『정신에 의한 치유』를 통해, 질병 치료에서 정신의 중요성에 주목하여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세 인물로, 근대적 최면술의 창시자 프란츠 안톤 메스머, 종교단체 ‘크리스천 사이언스’의 창립자 메리 베이커 에디와 함께 프로이트의 삶과 업적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츠바이크는 이 평전에서 정신분석학이 탄생하기 이전의 시대 상황, 프로이트의 성격적 특징과 이력, 정신분석의 주요 개념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한편, 프로이트가 “정신적·도덕적 세계상 전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대체로 호의적이지만 공정성을 잃지 않은 자세로 평가하고 있다.
인간은 합리적인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지배받는다고 보고 감정과 본능의 영향력에 주목한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대표적인 산물인 꿈을 진지한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성 충동은 어린이의 몸속에 이미 잠재되어 있다가 훗날 깨어날 뿐이며 신경증은 주로 성적인 억압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것이 이성에 의해 진보하리라는 낙관이 지배적인데다 성과 관련해 보수적인 분위기가 여전했던 당시에 그의 이론은 불온하게 여겨져 배척당했고, 프로이트는 긴 세월 몰이해와 편견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도 더해져서 1902년이 되어서야 겨우 빈 의과 대학 비정규 교수직을 얻을 정도였다. 프로이트를 거듭 좌절케 하고 결국 인정받기를 체념하게 만든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츠바이크는 평전에서 정신분석학이 얼마나 혁명적인 학문인지, 어떤 점에서 창조적 성과를 거두었는지를 작가 특유의 감성적 언어와 철학자의 냉철한 분별력으로 서술한다.
츠바이크는 마젤란, 에라스무스, 마리 앙투아네트, 메리 스튜어트, 발자크, 횔덜린 등 주로 이미 세상을 떠난 인물을 평전의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당사자가 살아 있을 당시에, 그러니까 사후에 종합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평전을 썼다. 그런 만큼 츠바이크가 프로이트를 얼마나 존경했고 그의 업적에 얼마나 경의를 표했는지, 나아가 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혜안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보여준다. 프로이트가 남긴 방대한 저작들을 일일이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독자에게 이 평전은 프로이트라는 인물과 그의 정신분석학을 개괄해주는 훌륭한 입문서 역할을 해준다. 정신사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꿰뚫어보는 츠바이크의 통찰, 탁월한 비유와 유려한 문장이 어우러져 하나의 문학작품을 읽는 듯한 도취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나 역시 당신〔츠바이크〕처럼 이 시대를 아파하고,
당신처럼 몇몇 타인과의 공속감에서 유일한 위로를 찾습니다.
확신하건대, 우리는 똑같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똑같은 가치에 동의합니다”
2부 프로이트-츠바이크 서한집(1908~1939)
-두 지성이 나눈 내밀한 우정과 공감의 기록
당신에게 한번은 말해야겠습니다. 내가 아는 한, 당신은 다른 누구도 구현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언어로 달성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표현을 대상에 접근시킬 줄 압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대상에 대한 가장 세부적인 것들을 포착할 수 있게 되고, 우리는 이제까지 도무지 말로는 포착할 수 없었던 관계들과 특성들을 파악했다고 믿게 됩니다.
_‘프로이트가 츠바이크에게 보내는 편지(1925년 4월 14일)’에서
교수님은 우리에게 ‘용기’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사물들에 다가갈 용기를, ‘두려움 없이’ 그리고 모든 그릇된 수치심 없이 가장 내면적인 감정은 물론이고 가장 극단적인 감정에 다가갈 용기를 말입니다. 또한 진실에는 용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우리 시대에는 오직 교수님의 저서만이 그런 용기를 보여줍니다. _‘츠바이크가 프로이트에게 보내는 편지(1925년 4월 15일)’에서
이 책의 2부는 두 사람이 30여 년간 주고받은 편지 74통을 모은 것이다. 서로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담긴 이 편지들을 통해 주요 저작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그 과정, 출간 후의 반응은 물론이고, 츠바이크의 주선으로 로맹 롤랑, 쥘 로맹, 허버트 조지 웰스, 살바도르 달리 등 유명 작가들이 프로이트와 만나게 된 경위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서한집에는 츠바이크가 프로이트의 평전을 집필한 의도와 그 과정, 이 평전을 읽은 프로이트의 호평과 오류에 대한 지적, 이 지적을 인정하고 겸허히 수용하는 츠바이크의 반응도 담겨 있다. 한편, 애연가이자 골동품 수집광임을 자인하거나 80세 생일 축하에 감사하며 늙어감에 대한 서글픈 심정을 드러내는 프로이트의 모습에서, 불안한 망명 생활 중에 “빙빙 도는 소포처럼 이리저리 치이고” 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스승을 안심시키는 츠바이크의 모습에서 솔직하고 인간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다.
프로이트와 츠바이크의 관계가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1929년 프로이트의 비방자 찰스 메일런이 반反 프로이트 강연을 알리는 벽보에 츠바이크가 보낸 편지의 구절을 따서 악용함으로써 빚어진, 일명 ‘메일런 사건’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사과한 츠바이크를 프로이트가 너그러이 받아들임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원만히 지속될 수 있었다. 요제프 브로이어, 빌헬름 플리스를 위시한 동료들뿐만 아니라 카를 구스타프 융, 알프레트 아들러 같은 제자들과도 견해 차이로 결별하고 만 프로이트에게 츠바이크는 평생을 두고 이어간 흔치 않은 인연인 셈이다.
“그의 관을 영국 땅에 묻었을 때, 우리는 조국에서 가장 훌륭한 것을 그곳에 바쳤음을 깨달았다”
3부 프로이트에 관한 기록들(1930~1941)
-변치 않는 애정과 존경심의 증표…서평·일기·추모 연설·회고
친애하고 존경하는 친구여, 그대의 위대하고 창조적인 생에 감사합니다. 그대의 업적과 저서 하나하나에 감사합니다. 그대가 있었다는 것과 그대가 우리에게 선사해준 그대의 것에 감사합니다. 그대가 우리에게 열어준 세계, 이제는 안내자 없이 우리 홀로 여행해야 하는 그 세계에 대해 감사합니다. 언제까지나 그대를 따르겠습니다. 언제까지나 그대를 우러르며 기억하겠습니다. 그대, 너무도 소중한 친구. 그대, 너무도 사랑하는 스승. 지그문트 프로이트.
_‘프로이트 추모 연설(1939년 9월 26일)’에서
이 책의 3부에는 츠바이크가 프로이트의 장례식에서 낭독한 추모 연설문과 함께 『문명 속의 불만』(1930) 출간 당시 신문 『베를리너 타게블라트』에 기고한 서평, 프로이트의 마지막 나날들을 기록한 일기, 회고록 『어제의 세계』에서 발췌한 프로이트와 관련된 대목들을 발췌해 실었다. 동향의 다정한 친구, 정신적인 스승이자 아버지 프로이트에 대한 츠바이크의 변치 않는 존경과 애정이 묻어나는 글들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던 프로이트 관련 기록들을 한데 모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츠바이크는 서평을 통해, 개인의 무의식에서 사회적 무의식으로 분석 대상의 폭을 넓혀가며 자신의 세계관을 전환 및 확장하던(『환상의 미래』, 1927) 프로이트가 『문명 속의 불만』에 이르러 철학적 세계상을 완성시켰다고 평가했다. 이 저작을 프로이트의 업적에서 정신적 정점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호평하면서 프로이트의 이론이 장차 “지적 생산 활동의 모든 영역에 창조적 활기를 불어넣으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 예견하기도 했다. 한편, 『어제의 세계』에서 프로이트 사후 그를 회고하고 있는 대목들을 발췌하여 시간 순으로 재배열한 ‘회고’에서 츠바이크는 프로이트가 나치에 점령된 빈을 탈출해 런던으로 망명하는 데 성공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날을 “나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였다”고 기록했다. 하마터면 잃을 뻔한 존경하는 친구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가슴 벅찬 안도감을 토로한 그는 이후 1년 동안 온화한 동시에 냉철했던 말년의 프로이트와 나눈 우정을 담담히 술회하고 있다.
▣ 작가 소개
저 : 지그문트 프로이트
마르크스, 니체 등과 함께 현대의 3대 혁명적 사상가로 꼽히는 인물.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의 창시자라고 불리운다. 1990년 기념비적인 서적,『꿈의 해석』을 통하여 ''무의식''이라는 인간 심리학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 심리학, 정신의학, 인문학 등 현대 사상의 모든 분야는 프로이트 사상의 영향 아래 발전했다.
그는 나치즘의 시기를 보낸 유대인이었다. 그가 정신분석을 하게 된 두 가지 요소 역시 유대혈통과 특수했던 가족환경을 들었다. 그는 편견이나 선입관에서 벗어나는 법을 자신의 혈통을 통해 배웠고, 나이 차이가 많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심리학적 현상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그가 좋아했던 성경과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들은 그의 정신분석학적 텍스트에 큰 영향을 끼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나르시즘’ 같은 이론은 문학작품이나 신화를 통해 설명되었으며, 그의 작품 곳곳에는 성경이 등장하게 되고 무의식 개념을 새로운 미학으로 인문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프로이트의 특징은 수많은 임상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킨다는 점이다. 당대에 유행하던 최면요법 대신 그는 수많은 환자들과의 면대면 대화를 통하여 그의 무의식 이론체계의 핵심이 될 개념을 도출했고 개별적인 치료가 아닌 보편적인 무의식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미숙한 인간이 성인으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무의식이 생성되며, 꿈과 환상은 기억 조각 사이의 공백을 메워주는 중요한 요소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과거를 객관적으로 복원하는 일은 불가능하며 언제나 기억은 환상이나 욕망에 의해 왜곡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수많은 사례들을 통하여 전개되고 있는 그의 논리들은 책 속에 담겨졌다. 그리고 끊임없이 학문들과 작용하며 나치가 현대에 부여했던 끔찍했던 보편성으로 부정되었던 개별성과 주관성을 존중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게 되었다.
1939년 9월 23일 영국의 런던에서 8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프로이트는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연구를 중단하지 않았다. 사망할 때까지 「일상생활의 정신병리」,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 「성性이론에 관한 세 가지 논문」, 「토뎀과 터부」, 「자아와 이드」, 「모세와 유일 신앙」 등 24권의 저서를 남겼다.
저 : 슈테판 츠바이크
뛰어난 소설가이자 전기작가로 널리 알려진 독일 문학계의 거장 슈테판 츠바이크는 188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남다른 시적 감수성을 보였던 츠바이크는 김나지움 시절부터 호프만슈탈, 릴케 등에게서 영향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고, 빈과 베를린 대학에서 독일 문학과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다. 1901년 첫 시집 『은빛 현』을 출간하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고, 이후 소설, 시, 희곡을 발표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자원입대하여 군 신문의 기자로 활동했는데, 이 시기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의 영향으로 반전(反戰)에 대한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발자크, 디킨스,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에세이 『세 거장』을 비롯하여 『악마와의 투쟁』 『세 작가의 인생』 『로맹 롤랑』 등 유명 작가들에 대한 평전을 출간했고,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과 역사적 인물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로 전기 『조제프 푸셰』 『마리 앙투아네트』 『메리 스튜어트』 등을 집필하며 세계 3대 전기 작가 중 한 사람으로 명성을 떨쳤다.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인간 내면을 깊이 탐색하고 인간관계에서의 심리작용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품을 많이 선보였는데, 「낯선 여인의 편지」 『아모크』 『연민』 등 그가 쓴 대부분의 소설은 뛰어난 심리묘사가 돋보인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나치가 자신의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압박해오자 1934년 런던으로 피신해 영국 시민권을 획득했고, 이후 유럽을 떠나 브라질로 망명했다. 1941년 자전적 회고록이자 자신의 삶을 축으로 하여 유럽의 문화사를 기록한 작품 『어제의 세계』를 출간하고, 소설 「체스 이야기」를 완성했다. 정신적 고향인 유럽의 자멸로 우울증을 겪던 츠바이크는 1942년 “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다는 유서를 남기고 부인과 함께 약물 과다복용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 외 저서로는 『인류사를 바꾼 순간』이 있다.
역 : 양진호
YANG,JIN-HO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인문학 교육을 연구 및 실행하는 ‘인문학교육연구소’(www.paideia.re.kr)의 소장직을 맡고 있다. ‘교육공간 오름’, ‘래미학교’ 등 학교 안팎에서 청소년들과 더불어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대학에도 출강하면서 고전 번역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서양의 초기 근대철학을 중심으로 공부를 했고, 현재는 관심 영역을 서양 문명 전체로 확장시키는 중이다. 수년 전 어느 지인의 소개로 읽은 《발자크》에 매료되어 츠바이크에 관한 관심을 넓히던 중에 〈프로이트 평전〉을 읽게 되었고 이를 통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지닌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가 있다는 소식에 서한집을 구해 한 장 한 장 읽으며 두 사람의 관계에 깊은 인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 츠바이크가 프로이트에 관해 남긴 기록을 뒤지기 시작하여 서평, 일기, 추모 연설문, 회고록까지 모으게 되었다. 이 책은 그 과정의 결실이다.
옮긴 책으로는 데카르트의 《성찰》, 스피노자의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가 있다.
▣ 주요 목차
추천의 말 작가의 언어로, 철학자의 눈으로
프로이트와 그의 사상을 그려내다 _이창재
1부 프로이트 평전(1931)
들어가는 말
세기말의 상황
성격 초상
출발
무의식의 세계
꿈의 해석
정신분석의 기술
성性의 세계
먼 곳을 향한 황혼의 시선
시대에 통하다
2부 프로이트-츠바이크 서한집(1908~1939)
3부 프로이트에 관한 기록들(1930~1941)
서평 프로이트의 신간 《문명 속의 불만》(1930)
일기 〈2차대전 일기〉(1939) 중에서
연설 프로이트 추모 연설(1939)
회고 《어제의 세계》(1941) 중에서
출처
주
지그문트 프로이트 연보 / 슈테판 츠바이크 연보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인명 / 찾아보기-용어?작품
01. 반품기한
- 단순 변심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신청
- 상품 불량/오배송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3개월 이내, 혹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30일 이내 반품 신청 가능
02. 반품 배송비
반품사유 | 반품 배송비 부담자 |
---|---|
단순변심 |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
03. 배송상태에 따른 환불안내
진행 상태 | 결제완료 | 상품준비중 |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
---|---|---|---|
어떤 상태 | 주문 내역 확인 전 | 상품 발송 준비 중 |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
환불 | 즉시환불 |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
04. 취소방법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결제수단 | 환불시점 | 환불방법 |
---|---|---|
신용카드 |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 신용카드 승인취소 |
계좌이체 |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
계좌입금 |
휴대폰 결제 |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
포인트 |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 환불 포인트 적립 |
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
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 |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