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백제 곤지왕을 말하다
1500여 년 전, 한국의 한 사내가 처자식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사내는 일본에서 10여 년간 머물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돌연 어떤 사연으로 죽었다.
여기서 한국은 [백제百濟]를 일본은 [야마토大和·倭]를 말한다.
5세기 중엽, 백제사람 [곤지昆支]에 대한 이야기다.
왕족인 곤지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이야기는《일본서기》(720년)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죽은 이야기는
《삼국사기》(1145년)에 실려 있다.
특히,《일본서기》는 곤지를 [왕] 또는 [왕자]로 기록하고 있다.
곤지의 직계후손이 살았던 일본 고대국가 야마토의 중심지역인 가와치아스카河內飛鳥에는 [아스카베신사飛鳥戶神社] 일명 [곤지왕신사]가 지금까지 유지해오고 있다.
곤지왕은 5세기 한일 고대사에 있어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많지 않은 기록이지만 한국과 일본 사서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특히《일본서기》는 461년 곤지가 야마토에 입경했는데 "5명의 아들이 있다."라고 전하고 있으며 그의 아들들은 백제 동성왕東城王·무령왕武寧王이 되었고, 야마토의 천황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아마도 이런 사유로 곤지를 왕이라 칭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곤지를 [백제百濟 곤지왕] 또는 [아스카飛鳥 곤지왕]이라 부르고자 한다.
[작가의 말에서]
시대적 배경
5세기 동아시아 시대상황과 곤지의 역할
[광개토왕비문]에 의하면 고구려 광개토왕은 4세기말 5세기초 3차에 걸쳐 대대적인 남벌을 단행, 백제를 초토화 한다. 396년에는 금강유역과 한강유역이, 400년에는 낙동강유역이, 407년에는 영산강유역과 남해안일대(*추정)이다.
이때 한강유역의 백제 아신왕은 노객을 자처하여 항복함으로써 인적·물적 피해를 면하나 극심한 피해를 입은 금강유역과 영산강유역의 삼한세력 지배층과 백성은 대규모로 일본 열도로 망명하여 [응신·인덕천황] 계열의 야마토大倭를 오사카 일대에 건국한다.
한편 백제 아신왕은 태자 전지를 야마토에 볼모로 보내 기존의 삼한세력이 지배했던 곡나, 지침, 현남, 동한 등 한강유역을 제외한 나머지 삼한영토 대부분을 인계받는다. 이때부터 백제는 한강유역에 국한되지 않고 삼한 전체를 아우른다. 그러나 야마토의 열도 안착이 안정화되면서 야마토왕들은 망명 이전 지배했던 삼한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이 문제로 백제와 갈등을 일으킨다. 영유권 주장은 438년 야마토왕 진珍이 유송에 요구한 왜, 백제, 신라, 임나, 진한, 모한 등 6국제군사 요구에서 확인된다. 그 와중에 백제 왕통이 온조계열의 해解씨에서 구태계열의 부여夫餘씨(비유왕)로 바뀌어 백제와 야마토는 형제국임에도 불구하고 삼한영토를 두고 정치적 헤게모니 싸움을 벌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61년 곤지가 야마토에 파견되었다. 곤지는 야마토에 머무르면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백제 개로왕은 고구려와 전면전을 준비하다 오히려 475년 장수왕으로부터 역공을 당하여 아차성에서 지배층과 함께 죽임을 당하고 한성의 백제는 멸망한다.
이후 신라의 지원을 받은 문주왕이 웅진(공주)에 수도를 정하고 백제를 일시 재건한다. 이 시기에 귀국한 곤지는 내신좌평의 중책을 맡아 왕권의 안정화와 전후 복구사업에 매진하다 정적에 의해 갑자기 암살당한다. 곤지의 죽음은 웅진내 정치적 기반이 빈약한 탓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또 반전을 한다. 문주왕, 삼근왕이 단명으로 끝나자 곤지의 직계인 동성왕과 무령왕이 백제왕통을 잇는다. 이후 백제는 660년 멸망하기까지 200여 년 간 곤지계가 왕통을 이어간다.
등장 인물 [상권]
여비餘毗
비유毗有, 백제 제20대 비유왕(427~455).
백제 최초의 여씨 왕.
백제 강역을 한성에서 삼한 전체로 확대함. 해씨가의 유마왕후에게 독살됨.
여신餘信, 해수解須
여씨가와 해씨가의 수장으로 둘 다 상좌평 역임.
밀약을 통해 해씨가의 구이신왕을 몰아내고 여씨가의 비유왕을 옹립함.
유마柳麻왕후
해씨가의 여자로 비유왕의 왕후가 되었으나 자식을 낳지 못함.
남편 비유왕을 독살하고 개로왕을 옹립한 후 태후가 되어 장기간 섭정함.
연길燕吉
백제 최고의 상단 총수로 비유의 재정 후원자. 비유왕 옹립에 기여하여 내두좌평을 역임함.
호가부好嘉夫, 공가부公嘉夫, 소시매蘇時昧
비유왕의 의형제로 호가부는 비유왕 옹립에 기여하고 공가부는 비유왕의 왕권강화에 기여함.
소시매는 비유왕의 여동생으로 신라 자비마립간의 후궁이 됨.
해구解丘, 해충解忠
백제 전지왕을 옹립한 일등공신으로 병관좌평과 위사좌평을 역임.
여신 등 여씨 일족을 몰아내려다 오히려 역공을 당해 한성에서 축출됨.
여채餘?
비유왕 말기 상좌평 역임. 비유왕의 장자 여은을 후계자로 옹립하려다 개로왕과 해씨가의 역습으로 몰락함.
▣ 작가 소개
저자 : 정재수
전북 김 출생으로 전주영생고, 전북대학교, 학사장교를 통해 배움의 길을 닦았다. 교보생명은 삶의 공간이었다. 현재 한일고대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 주요 목차
하권
작가의 말
들어가며
흑룡의 출현과 좌절
현해탄을 건너
강대한 야마토의 길
개로대왕의 늪
한성의 몰락
문주와 곤지
곤지의 나라
후기
백제 곤지왕을 말하다
1500여 년 전, 한국의 한 사내가 처자식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사내는 일본에서 10여 년간 머물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돌연 어떤 사연으로 죽었다.
여기서 한국은 [백제百濟]를 일본은 [야마토大和·倭]를 말한다.
5세기 중엽, 백제사람 [곤지昆支]에 대한 이야기다.
왕족인 곤지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이야기는《일본서기》(720년)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죽은 이야기는
《삼국사기》(1145년)에 실려 있다.
특히,《일본서기》는 곤지를 [왕] 또는 [왕자]로 기록하고 있다.
곤지의 직계후손이 살았던 일본 고대국가 야마토의 중심지역인 가와치아스카河內飛鳥에는 [아스카베신사飛鳥戶神社] 일명 [곤지왕신사]가 지금까지 유지해오고 있다.
곤지왕은 5세기 한일 고대사에 있어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많지 않은 기록이지만 한국과 일본 사서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특히《일본서기》는 461년 곤지가 야마토에 입경했는데 "5명의 아들이 있다."라고 전하고 있으며 그의 아들들은 백제 동성왕東城王·무령왕武寧王이 되었고, 야마토의 천황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아마도 이런 사유로 곤지를 왕이라 칭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곤지를 [백제百濟 곤지왕] 또는 [아스카飛鳥 곤지왕]이라 부르고자 한다.
[작가의 말에서]
시대적 배경
5세기 동아시아 시대상황과 곤지의 역할
[광개토왕비문]에 의하면 고구려 광개토왕은 4세기말 5세기초 3차에 걸쳐 대대적인 남벌을 단행, 백제를 초토화 한다. 396년에는 금강유역과 한강유역이, 400년에는 낙동강유역이, 407년에는 영산강유역과 남해안일대(*추정)이다.
이때 한강유역의 백제 아신왕은 노객을 자처하여 항복함으로써 인적·물적 피해를 면하나 극심한 피해를 입은 금강유역과 영산강유역의 삼한세력 지배층과 백성은 대규모로 일본 열도로 망명하여 [응신·인덕천황] 계열의 야마토大倭를 오사카 일대에 건국한다.
한편 백제 아신왕은 태자 전지를 야마토에 볼모로 보내 기존의 삼한세력이 지배했던 곡나, 지침, 현남, 동한 등 한강유역을 제외한 나머지 삼한영토 대부분을 인계받는다. 이때부터 백제는 한강유역에 국한되지 않고 삼한 전체를 아우른다. 그러나 야마토의 열도 안착이 안정화되면서 야마토왕들은 망명 이전 지배했던 삼한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이 문제로 백제와 갈등을 일으킨다. 영유권 주장은 438년 야마토왕 진珍이 유송에 요구한 왜, 백제, 신라, 임나, 진한, 모한 등 6국제군사 요구에서 확인된다. 그 와중에 백제 왕통이 온조계열의 해解씨에서 구태계열의 부여夫餘씨(비유왕)로 바뀌어 백제와 야마토는 형제국임에도 불구하고 삼한영토를 두고 정치적 헤게모니 싸움을 벌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61년 곤지가 야마토에 파견되었다. 곤지는 야마토에 머무르면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백제 개로왕은 고구려와 전면전을 준비하다 오히려 475년 장수왕으로부터 역공을 당하여 아차성에서 지배층과 함께 죽임을 당하고 한성의 백제는 멸망한다.
이후 신라의 지원을 받은 문주왕이 웅진(공주)에 수도를 정하고 백제를 일시 재건한다. 이 시기에 귀국한 곤지는 내신좌평의 중책을 맡아 왕권의 안정화와 전후 복구사업에 매진하다 정적에 의해 갑자기 암살당한다. 곤지의 죽음은 웅진내 정치적 기반이 빈약한 탓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또 반전을 한다. 문주왕, 삼근왕이 단명으로 끝나자 곤지의 직계인 동성왕과 무령왕이 백제왕통을 잇는다. 이후 백제는 660년 멸망하기까지 200여 년 간 곤지계가 왕통을 이어간다.
등장 인물 [상권]
여비餘毗
비유毗有, 백제 제20대 비유왕(427~455).
백제 최초의 여씨 왕.
백제 강역을 한성에서 삼한 전체로 확대함. 해씨가의 유마왕후에게 독살됨.
여신餘信, 해수解須
여씨가와 해씨가의 수장으로 둘 다 상좌평 역임.
밀약을 통해 해씨가의 구이신왕을 몰아내고 여씨가의 비유왕을 옹립함.
유마柳麻왕후
해씨가의 여자로 비유왕의 왕후가 되었으나 자식을 낳지 못함.
남편 비유왕을 독살하고 개로왕을 옹립한 후 태후가 되어 장기간 섭정함.
연길燕吉
백제 최고의 상단 총수로 비유의 재정 후원자. 비유왕 옹립에 기여하여 내두좌평을 역임함.
호가부好嘉夫, 공가부公嘉夫, 소시매蘇時昧
비유왕의 의형제로 호가부는 비유왕 옹립에 기여하고 공가부는 비유왕의 왕권강화에 기여함.
소시매는 비유왕의 여동생으로 신라 자비마립간의 후궁이 됨.
해구解丘, 해충解忠
백제 전지왕을 옹립한 일등공신으로 병관좌평과 위사좌평을 역임.
여신 등 여씨 일족을 몰아내려다 오히려 역공을 당해 한성에서 축출됨.
여채餘?
비유왕 말기 상좌평 역임. 비유왕의 장자 여은을 후계자로 옹립하려다 개로왕과 해씨가의 역습으로 몰락함.
▣ 작가 소개
저자 : 정재수
전북 김 출생으로 전주영생고, 전북대학교, 학사장교를 통해 배움의 길을 닦았다. 교보생명은 삶의 공간이었다. 현재 한일고대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 주요 목차
하권
작가의 말
들어가며
흑룡의 출현과 좌절
현해탄을 건너
강대한 야마토의 길
개로대왕의 늪
한성의 몰락
문주와 곤지
곤지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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