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제국들은 다양성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되었고, 어째서 무너졌는가
서사적이며 해석적인 ‘세계제국사’
우리는 현재 민족국가의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하지만, 600년 역사의 오스만 제국, 수천 년간 왕조를 대물림한 중국 제국과 비교해보면 ‘제국(Empire)의 역사’에서 잠시 일탈한 시기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상 모든 역사는 제국과 그 식민지의 역사”이며, 특히 현대는 “모든 국가가 동일하게 전 지구적인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힘에 의존”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아프리카에서 운영한 식민 제국들에 관한 전문가 프레더릭 쿠퍼와 러시아 제국과 소비에트 제국을 연구하는 역사가 제인 버뱅크, 두 사람이 만나 세계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넓혀주는 서사적이며 해석적인 ‘세계제국사’가 탄생했다. 역사를 제국에서 민족국가로의 이행으로 파악하는 관점, 전근대 국가와 근대 국가를 뚜렷하게 구별하는 관점, 좋든 나쁘든 변화를 일으키는 유례없이 강력한 행위자로서의 유럽과 서구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 등 일반적인 역사 인식에 의존하지 않고 세계의 정치사를 바라보는 관점들을 넓히고자 시도했다.
이 책은 유라시아에 초점을 맞춰 고대 로마와 중국에서 시작하여 이로부터 제국의 유형들을 폭넓게 제시하면서 제국들이 장기간 밀접하게 상호작용한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제국의 통치 전략과 정치 이념, 소속감을 빚어온 방식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제국의 권력이 수천 년간 어떻게 사회와 국가를 배치하고 야망과 상상을 고무하고 정치적 가능성을 열어젖히고 차단했는지를 보여준다. 중국, 러시아, 미국은 스스로를 제국으로 여기지 않지만, 세 나라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만든 것은 제국적 경로였다. 이 경로들이 어떻게 교차했는지에 주목하면서 세계사의 향방이 어떻게, 언제, 어디서 바뀌었는지를 추적한다.
이 책은,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간 동안 사람들이 제국들 자체와 제국들의 상호작용이라는 맥락에서 정치적 가능성을 판단하고, 야망을 추구하고, 사회를 구상해왔다는 관점으로 세계사를 바라본다. 그리하여 큰 국가나 작은 국가, 반역자나 국왕 지지자 또는 정치에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사람 등, 모두가 등장하는 방대한 스케일의 역사를 펼쳐놓는다.
제국들의 궤도를 추적하기 위한 다섯 가지 논제
고대부터 현대까지 거의 전 세계를 아우르는 이 책은 제국들의 역사를 어떻게 탐구하는가? 저자들은 제국들의 발흥과 쇠퇴보다 ‘운영’에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해 제국들이 어떻게 길게는 수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권력과 내구성을 강하게 유지했느냐는 물음에 주목한다. 이 물음은 제국의 정의와 연관되는데, 저자들에 따르면 제국이란 “정복하고 통합한 사람들의 다양성을 자각적으로 유지하는 정치체”, “팽창주의적이거나 한때 공간을 가로질러 팽창했던 기억을 간직한 커다란 정치 단위, 새로운 사람들을 통합하면서 구별과 위계를 유지하는 정치체”다. 즉 민족국가와 달리 제국은 다양성(차이)을 체제의 정상적인 현실로서 전제하며, 국가 안팎의 그런 다양성을 통합하고 분화하고 안정화하여 수직적 위계구조와 연계를 구축한다. 요컨대 제국들은 차이를 내부의 동질성을 침해하는 유해한 요소로서 제거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정치의 도구로 활용한다.
이러한 까닭에 이 책은 제국들이 차이의 정치를 이용한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제국 내부의 차이’, ‘제국의 중개인’, ‘제국의 교차로’, ‘제국의 상상계’, ‘권력 레퍼토리’라는 다섯 가지 논제를 고찰한다.
첫째, 제국은 차이의 정치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이 책은 제국이 의도적으로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거나 유지해간 과정을 탐구한다. 예를 들어, 로마 제국은 팽창 과정에서 발달한 뚜렷한 문화를 토대로 동질화를 지향했으며, 몽골 통치자들은 유라시아 도처에서 무슬림 행정관을 고용하고 아랍·페르시아·중국 문명이 일군 예술과 학문을 육성하는 등 다양성 자체를 정상적이고도 유용한 것으로 여겼다. 둘째, 제국은 총독·장군·세리 등 중층적 집단이라는 범주를 넘어서 위아래 집단들과 밀고 당기는 힘의 역학 관계를 보여주는 대리인들을 파견해 통합한 영토를 관리했다. 이 대리인들이 바로 ‘제국의 중개인’이다. 셋째, 제국들은 홀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제국의 교차로’에서 경쟁·모방·혁신, 그리고 전쟁·평화를 이루었으며, 이를 통해 정치와 지식, 삶을 변형해왔다. 넷째, 제국의 지도자들은 국가를 운영하는 수많은 방식들을 상상하는 것에서 시작하였다. 제국은 ‘상상계’에서 시작하여 제국의 맥락과 경험을 쌓았으며, 이는 또한 정치적 창의성을 고무했다. 다섯째, 제국들은 정복을 통치로 전환하고 차이를 관리하기 위해 ‘권력 레퍼토리’, 즉 일군의 정치적 선택지 또는 전략을 사용했다. 이는 제국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유용한 개념이다.
제국들은 이처럼 특정한 조건에 맞추어 권력과 특권(일례로 시민권)을 ‘차별적으로’ 배분했고, 유인책을 제공하거나 요구를 억압했고, 중개인과 대리인에게 행정을 맡겼고, 중앙집권적 관료제와 황제와의 개인적 유대를 강화했고, 정치와 종교를 결합했고, 보호령·자치령·식민지·고립 영토를 운영했고, 이민족 병력을 고용했고, 토지를 양여했고, 결혼 동맹을 이용했고, 상업과 산업을 발전시켰고, 무엇보다 군대를 동원했다. 제국들은 이러한 유연성에 힘입어 오랫동안 존속하기도 했고, 그 한계를 경험하기도 했다.
새로운 세계사, ‘제국들의 이야기’
과거가 예정된 미래로 이어지는 단일한 경로가 아니라고 한다면, 제국 또한 끝나지 않은 주제이다. 제국의 구조가 되살아나고 있고 따라서 제국이 여전히 유의미한 개념이냐는 물음, 미국과 러시아를 제국으로 보아야 하느냐는 물음 등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제국의 현재성은 특히 1990년대 이래로 학계는 물론 현실 정치에서도 논쟁이 분분한 주제가 되어왔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이 지적하는 대로,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이른바 민족국가들의 세계는 겨우 60년 전에야 출현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틀어 대다수 사람들은 단일한 민족을 대표한다고 주장하지 않은 정치 단위에서 살아왔다. 국가와 민족을 합치시키는 것은 최근에 나타난 현상으로, 완결된 현상도 아니고 어디서나 원하는 현상도 아니다.” 역사의 궤도들이 민족국가라는 단일한 목적지로 수렴한다는 관습적인 서사는 역사의 장기적 추세와 복잡성을 단순화하는 근시안적인 서사에 불과하다. 저자들의 견해대로 “민족국가는 역사의 지평선 위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이며, 근래 들어 제국들의 하늘 아래에서 등장한 국가 형태로서 훗날 세계의 정치적 상상을 일부만 또는 한시적으로만 사로잡았던 것으로 드러날지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지난 2000년의 대부분 기간 동안 제국과 그 경쟁자 들은 지역에서든 전 세계에서든 사람들이 연계를 맺는 맥락”을 창출했고, “제국의 정치, 제국의 관행, 제국의 문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형성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궤도들을 되짚어보기 위해서도, 그 궤도들의 결과물인 오늘날의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현존하는 정치 조직들과는 다른 정치체들을 구상하고 만들어내기 위해서도 제 국들의 역사를 탐구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제국들을 시간 순서대로 다루는 연대기적 구성을 채택하고 있으나 각 제국을 개관하는 통사는 아니다. 오히려 앞에서 말한 다섯 논제를 중심으로 제국들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책에 더 가깝다. 이를 위해 제1장에서는 방대하고 복잡한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논의를 담고 있다.
지난 2000년 동안 주요 제국들이 걸어온 역사적 궤도들을 탐구하는 이 책은 “민족국가가 자연스럽고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다는 생각”에 도전하고, “현재가 언제나 한결같았던 것은 아니며 앞으로도 한결같지 않으리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미래의 세계가 지금처럼 민족국가들의 세계로 남을지, G2를 중심으로 한 제국들의 세계로 재편될지, 또는 국가들의 질서에 제국적 구조가 중첩되는 세계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렇지만 “다양성 과 정치적 야심이 존재하는 한, 제국 건설은 언제나 하나의 유인”이며, 우리는 ‘차이의 정치’에 초점을 맞추어 제국의 정치와 역학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새로운 정치체들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
중국과 로마, 두 제국이 세계의 정치사에서 그처럼 오랫동안 그토록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기원전 3세기 중국과 로마는, 제국 건설 과정에 동참한 이들과 유목민이나 야만인 딱지가 붙은 외부인들을 확연히 구별하는 기법을 포함하여 각종 통치 기법들을 만들어냈다. 그중 관료들을 통한 통치는 중국 황제들이 지역 영주들에 의존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되었고, 그리하여 중국의 제국 궤도가 로마의 궤도 및 로마 이후 서유럽 정치체들의 궤도와 달라지는 데 영향을 미쳤다.
풍부하고 통일적인 로마 문화는 광대한 공간에서 충성과 모방을 이끌어냈고, 각지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제국의 시민이 되고 정치체 전역에서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은 훗날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운동들에서 되풀이하여 나타났다. 또한 로마가 택한 단일한 보편 신앙(기독교)과 연결된 보편 제국이라는 관념은 훗날 로마를 모방한 제국들에 영속적인 흔적을 남겼다.
신앙은 제국을 통일하는 힘이었는가? 일신교와 제국의 결합은 제국 정치체들에 응집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그 결합이 제국 체제들에 미친 영향은 깊고도 변덕스러웠다. 이슬람 칼리프국들은 옛 로마 제국 영역의 남부와 동부에서 새로운 일신교에 기반을 둔 제국들을 건설했다. 그러나 칼리프국들은 종파 분립과, 서로 경쟁하는 통치자 후보들의 공격으로 인해 파멸했다.
서유럽에서 무장한 수하들을 거느린 유력한 영주들의 정치는 로마의 중심부가 붕괴하면서 등장했다. 영주들은 황제 지망자들에게 종사단을 제공했지만, 특정 지망자의 적수들에게 제공할 수도 있었다. 샤를마뉴 대제는 보편 제국을 재건하는 목표에 가장 근접했지만, 그의 계승자들은 곧 경쟁 구도와 귀족 결사의 희생양이 되었다. 유럽에서 권력의 파편화는 로마 제국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계속 방해했다.
우마이야 왕조부터 시작하여 이슬람 제국들은 황실에 귀족 대신 노예, 대리인, 최근에 개종한 사람 등 외부인들로 충원했으며, 유라시아 스텝 지대의 제국 건설자들은 중개인을 확보하기 위해 의형제 관계, 결혼 정치, 부족 동맹 같은 전술을 구사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유목민들에 대항하는 동시에 그들을 관리할 수 있는 정치체를 건설해야만 했다. 1055년에 바그다드를 점령한 셀주크족과 1258년에 이 도시를 장악한 몽골족은 유라시아 원칙에 따라 조직되었고, 튀르크와 몽골의 관행을 지중해 일대에 들여왔다.
폭력적 정복은 어떻게 13세기 후반 ‘몽골의 평화’를 이뤄냈을까? 칭기즈 칸과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 치세에 몽골족은 대륙을 횡단하는 역참 제도와 기동력 있는 군대를 바탕으로, 도나우 강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공간을 통치했다. 나아가 원 왕조를 창건하고 쪼개진 제국을 다시 합쳤다.
튀르크, 아랍, 페르시아, 몽골, 비잔티움의 경험에 의지하여 내구성이 가장 강한 이슬람 제국을 만들어낸 오스만 왕조는 각양각색의 공동체들을 하나의 제국 전체에 통합했다. 이로써 오스만 제국은 흥기하기 시작한 14세기부터 붕괴한 20세기까지 세계 경제와 정치의 숱한 변동을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편 지중해 동부와 남부에서 오스만 제국에 차단당하고 국내에서는 귀족-왕조 정치에 속박당하는 처지였던 서유럽의 황제 지망자들은 해외로 눈길을 돌려야만 했다. 대양 횡단 경제의 진짜 개척자들은 인도부터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이르는 아시아에 가 있었고, 콜럼버스는 아메리카에 도착해서 재화를 한데 모으는 능력을 가진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아메리카에서 들여온 은 덕분에 유럽인들은 아시아에서 상품을 구입할 수 있었고, 18세기 영국에서는 노동자들이 산업혁명을 전개하여 전 세계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하는 상품을 공급했다.
제국 건설 과정은 때로 경쟁자들의 연계를 제한하려 한 건설자들의 의도를 넘어서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슬람의 메카 순례는 어떤 칼리프국의 경계도 넘어서는 무슬림 세계를 창출했다. 구자라트인들은 유럽인들이 도착하기에 앞서 인도양을 횡단했고, 훗날 유럽의 무역로들이 작동하도록 도왔고, 유럽 제국들이 자리 잡은 후에는 제국 간 경계를 가로지르며 돌아다녔다. 중국 무역상들은 명 황제가 해외 무역을 지원하지 않을 때에도 동남아시아 전역의 교환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해외에서 유럽 제국들은 많은 경로들을 따라 팽창했다. 해외 제국은 신민들의 노동만이 아니라 그들의 조직?행정 수완에 의지하여 존속했고, 나아가 일부 식민지 주민들은 새로운 제국을 자력으로 건설하기를 열망했다. 예컨대 미국 혁명가들은 ‘자유의 제국’을 건설했고, 포르투갈 왕실 일가는 브라질 제국을 건설했다.
미국 제국은 20세기 들어 한참 후까지도 아메리카 토착민들을 정치체 외부에 두었고, 노예 후손들을 위한 평등한 권리를 확립하지 못했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도덕적 공동체라는 이데올로기를 굳게 믿었던 까닭 에, 자신들의 제국 역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스스로를 단일한 큰 국가로 인식했다.
유럽은 분화된 실체로서의 정치체에 익숙했고, 정치체를 구성하는 성분들에 맞추어 전략을 바꿀 수 있었다. 제국 조직은 여러 차례의 혁명 이후에도 존속했고, 나폴레옹에 의해 확대되었으며, 나폴레옹이 패한 뒤 다시 한 번 재구축되었다. 영국에게 자유무역 제국주의는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캐나다, 인도, 카리브해 섬들, 그리고 훗날 아프리카의 많은 공간에 행사한 갖가지 권위 못지않게 중요한 전략이 되었다.
19세기의 식민화가 완전히 새로운 제국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오히려 19세기의 식민화는 제국 기법의 레퍼토리를 쌓아올리고 늘렸고, 서로 교차하는 관계망들을 확장했고, 제국 간 경쟁에 걸린 판돈을 올렸다. 그러나 노예 봉기와 초대륙적 노예제 폐지 운동의 도전을 받는 상황에서, 영국은 1833년에, 프랑스는 1848년에, 브라질과 쿠바는 1880년대에 노예제를 포기했다. 식민 권위의 한계와 피식민자를 문명 수준으로 ‘고양’할 가능성은 논쟁 주제가 되었다.
19세기 후반 들어 아프리카 쟁탈전이 벌어지자 아프리카를 급격히 변형하는 방안을 옹호하던 이들마저도 중개인을 배치하여 광대한 공간을 통치하는 일 등 해결이 난망한 문제들 앞에서 뒷걸음질쳤다. 식민 본국 공중이 합의한 식민 통치 형태는 없었고, 피식민자들을 두루 납득시킨 식민 통치 형태도 없었다.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들은 식민자들의 정치적 언어를 사용하여 자유 이념을 자기들에게도 적용할 것을 역설했다.
19세기 후반 유럽 내부와 가장자리에서 제국들은 정치 개혁의 형태들과 사람들을 제국 구조에 더욱 정력적으로 통합하는 방법들을 시험했다. 제국들이 교묘히 조장한 민족주의 정서는 충분히 현실적이었고, 때로는 맹렬했다. 민족적 이념은 흔히 특정한 시민권과 연관되었다. 단결한 사람들은 민주적 수단을 사용하여 그들의 바람을 표명했고, 안녕에 필요한 자원을 ‘그들의’ 국가에 요구했고, 때로는 자본주의와 시장이 초래한 불평등을 바로잡고자 했다.
18세기 잉글랜드에서 발전하기 시작하여 바깥으로 퍼져나간 산업 자본주의는 유럽 제국들이 새로운 해외 영토로 통제권을 확대한 과정과 그들 간의 경쟁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 세계 국가들이 지닌 권력의 불균등성은 자본주의가 미치는 영향의 불균등성을 심화했다. 이에 유럽 내 분쟁이 크림 전쟁에서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폭력의 악순환을 일으킨 것은 제국들의 진화하는 체제였다.
1895년과 1905년에 각각 중국 제국과 러시아 제국을 희생양 삼아 자신의 힘을 입증한 일본은 20세기 초엽에 제국 시합에 뛰어들어 그 양상을 바꾸어놓았다. 유럽 제국의 아시아식 대안을 추구한 일본은 이미 동남아시아의 자원을 대부분 통제하고 있던 유럽과 아메리카 열강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1차 세계대전을 종결지은 강화 회의를 통해 제국들은 독일의 해외 식민지들을 박탈했을 뿐더러 유럽 안에서 독일의 크기를 줄이기까지 했다. 소련은 나치 독일을 꺾고 뒤늦게 일본을 꺾은 승전국이었다. 종전 무렵 스탈린은 러시아의 1914년 국경 너머로 소련의 영토를 넓힐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전시 동맹국들의 동의하에 전쟁의 발원지인 말썽 많은 중부 유럽에서 종속 정치체들로 이루어진 넉넉한 완충 지대까지 얻을 수 있었다. 승전을 계기로 소비에트식 러시아 제국은 수명을 연장하고 전 세계에서 새로운 영향력을 얻었다.
1930년대에 식민 열강은 야심을 제한하고 병력을 반란 진압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반식민 운동을 억제했다. 식민 제국이라는 거대 건축물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전쟁 도중과 그 직후였다. 영토 국가 형태의 독립은 식민 강대국들과 식민지 정치 운동들이 동의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되었다. 이로써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도처에서 마지막 식민화가 진행된 때부터 식민지들이 독립할 때까지의 시간은 고작 70~80년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소련의 수명도, 일본이 타이완을 통치한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미국은 제국들의 세계에서 활동하면서도 오랫동안 자신은 다르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미국은 익숙한 제국 도구들을 포함하는 권력 레퍼토리를 개발하여 공식적인 식민화 대신 자신의 입맛에 맞게 골라서 썼다. 20세기 후반에 미국은 잔존하는 다른 초강대국과의 경쟁에 직면하여 정력적으로 피후견국을 구했고, 다른 나라들의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쿠데타, 침공, 점령, 수차례 전쟁을 조장했다.
양극 경쟁 구도가 막을 내린 1991년 이후,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 둘 다 모략의 대상으로 삼았던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 같은 장소들은 경우에 따라 그들 운명에 내맡겨졌으며, 과거에 제국의 수많은 중개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 역시 피후견인에서 적으로 돌아섰다.
“여러 측면에서 한국은 중국과 미국 때로는 러시아가 규정한 세계에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국과 미국을 이웃으로 두고 한국이 제국으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한국과 비슷한 입장에 처한 국가들은 특정한 상황에서 외부 세력들을 조종하거나 그들로부터 각각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보는 데 능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경제적 이득이나 군사적 보호를 제공받기도 하고 문화의 융합 혹은 지식 등 다양한 이득을 보았지요. 다시 말해, 강대국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국가가 가지는 강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특히 문화적 영역에서 두드러지지요.” - EBS 다큐프라임 『강대국의 비밀』 제인 버뱅크 인터뷰
▣ 작가 소개
저자 : 제인 버뱅크
Jane Burbank
뉴욕 대학 역사학 교수 겸 러시아·슬라브학 교수.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하버드 대학,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 대학, 미시건 대학에서 가르쳤다.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프랑스 고등사범학교, 독일 훔볼트 대학의 초빙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법정에서 다툰 러시아 농민들》 《인텔리겐치아와 혁명》, 편저로 《러시아 제국》 등이 있다.
저자 : 프레더릭 쿠퍼
Frederick Cooper
뉴욕 대학 역사학과 교수. 예일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시건 대학에서 가르쳤다.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프랑스 고등사범학교, 파리 7대학의 초빙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제국과 민족 사이의 시민권》 《세계 속의 아프리카》 《문제의 식민주의》, 편저로 《제국의 교훈》 《노예제 이후의 사회》 등이 있다.
역자 : 이재만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옮긴 책으로 《제국의 폐허에서》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공부하는 삶》 《영국 외교관, 평양에서 보낸 900일》 《역사와 역사가들》(공역)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CHAPTER 1 제국의 궤도
CHAPTER 2 로마와 중국의 제국 통치
CHAPTER 3 로마 이후 : 제국, 기독교, 이슬람
CHAPTER 4 유라시아의 연계 : 몽골 제국들
CHAPTER 5 지중해 너머 : 오스만 제국과 에스파냐 제국
CHAPTER 6 대양 경제와 식민 사회 :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CHAPTER 7 스텝 지대 너머 : 러시아와 중국의 제국 건설
CHAPTER 8 혁명 시대의 제국, 민족, 시민권
CHAPTER 9 대륙을 가로지른 제국 : 미합중국과 러시아
CHAPTER 10 제국의 레퍼토리와 근대 식민주의의 신화
CHAPTER 11 주권과 제국 : 19세기 유럽과 가까운 외국
CHAPTER 12 제국 세계의 전쟁과 혁명 : 1914년부터 1945년까지
CHAPTER 13 제국의 종언?
CHAPTER 14 제국들, 국가들, 그리고 정치적 상상
옮긴이 후기
추천 도서와 인용 출처/ 도판과 지도 목록/ 찾아보기
제국들은 다양성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유지되었고, 어째서 무너졌는가
서사적이며 해석적인 ‘세계제국사’
우리는 현재 민족국가의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하지만, 600년 역사의 오스만 제국, 수천 년간 왕조를 대물림한 중국 제국과 비교해보면 ‘제국(Empire)의 역사’에서 잠시 일탈한 시기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상 모든 역사는 제국과 그 식민지의 역사”이며, 특히 현대는 “모든 국가가 동일하게 전 지구적인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힘에 의존”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아프리카에서 운영한 식민 제국들에 관한 전문가 프레더릭 쿠퍼와 러시아 제국과 소비에트 제국을 연구하는 역사가 제인 버뱅크, 두 사람이 만나 세계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넓혀주는 서사적이며 해석적인 ‘세계제국사’가 탄생했다. 역사를 제국에서 민족국가로의 이행으로 파악하는 관점, 전근대 국가와 근대 국가를 뚜렷하게 구별하는 관점, 좋든 나쁘든 변화를 일으키는 유례없이 강력한 행위자로서의 유럽과 서구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 등 일반적인 역사 인식에 의존하지 않고 세계의 정치사를 바라보는 관점들을 넓히고자 시도했다.
이 책은 유라시아에 초점을 맞춰 고대 로마와 중국에서 시작하여 이로부터 제국의 유형들을 폭넓게 제시하면서 제국들이 장기간 밀접하게 상호작용한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제국의 통치 전략과 정치 이념, 소속감을 빚어온 방식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제국의 권력이 수천 년간 어떻게 사회와 국가를 배치하고 야망과 상상을 고무하고 정치적 가능성을 열어젖히고 차단했는지를 보여준다. 중국, 러시아, 미국은 스스로를 제국으로 여기지 않지만, 세 나라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만든 것은 제국적 경로였다. 이 경로들이 어떻게 교차했는지에 주목하면서 세계사의 향방이 어떻게, 언제, 어디서 바뀌었는지를 추적한다.
이 책은,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간 동안 사람들이 제국들 자체와 제국들의 상호작용이라는 맥락에서 정치적 가능성을 판단하고, 야망을 추구하고, 사회를 구상해왔다는 관점으로 세계사를 바라본다. 그리하여 큰 국가나 작은 국가, 반역자나 국왕 지지자 또는 정치에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사람 등, 모두가 등장하는 방대한 스케일의 역사를 펼쳐놓는다.
제국들의 궤도를 추적하기 위한 다섯 가지 논제
고대부터 현대까지 거의 전 세계를 아우르는 이 책은 제국들의 역사를 어떻게 탐구하는가? 저자들은 제국들의 발흥과 쇠퇴보다 ‘운영’에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해 제국들이 어떻게 길게는 수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권력과 내구성을 강하게 유지했느냐는 물음에 주목한다. 이 물음은 제국의 정의와 연관되는데, 저자들에 따르면 제국이란 “정복하고 통합한 사람들의 다양성을 자각적으로 유지하는 정치체”, “팽창주의적이거나 한때 공간을 가로질러 팽창했던 기억을 간직한 커다란 정치 단위, 새로운 사람들을 통합하면서 구별과 위계를 유지하는 정치체”다. 즉 민족국가와 달리 제국은 다양성(차이)을 체제의 정상적인 현실로서 전제하며, 국가 안팎의 그런 다양성을 통합하고 분화하고 안정화하여 수직적 위계구조와 연계를 구축한다. 요컨대 제국들은 차이를 내부의 동질성을 침해하는 유해한 요소로서 제거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정치의 도구로 활용한다.
이러한 까닭에 이 책은 제국들이 차이의 정치를 이용한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제국 내부의 차이’, ‘제국의 중개인’, ‘제국의 교차로’, ‘제국의 상상계’, ‘권력 레퍼토리’라는 다섯 가지 논제를 고찰한다.
첫째, 제국은 차이의 정치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이 책은 제국이 의도적으로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거나 유지해간 과정을 탐구한다. 예를 들어, 로마 제국은 팽창 과정에서 발달한 뚜렷한 문화를 토대로 동질화를 지향했으며, 몽골 통치자들은 유라시아 도처에서 무슬림 행정관을 고용하고 아랍·페르시아·중국 문명이 일군 예술과 학문을 육성하는 등 다양성 자체를 정상적이고도 유용한 것으로 여겼다. 둘째, 제국은 총독·장군·세리 등 중층적 집단이라는 범주를 넘어서 위아래 집단들과 밀고 당기는 힘의 역학 관계를 보여주는 대리인들을 파견해 통합한 영토를 관리했다. 이 대리인들이 바로 ‘제국의 중개인’이다. 셋째, 제국들은 홀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제국의 교차로’에서 경쟁·모방·혁신, 그리고 전쟁·평화를 이루었으며, 이를 통해 정치와 지식, 삶을 변형해왔다. 넷째, 제국의 지도자들은 국가를 운영하는 수많은 방식들을 상상하는 것에서 시작하였다. 제국은 ‘상상계’에서 시작하여 제국의 맥락과 경험을 쌓았으며, 이는 또한 정치적 창의성을 고무했다. 다섯째, 제국들은 정복을 통치로 전환하고 차이를 관리하기 위해 ‘권력 레퍼토리’, 즉 일군의 정치적 선택지 또는 전략을 사용했다. 이는 제국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유용한 개념이다.
제국들은 이처럼 특정한 조건에 맞추어 권력과 특권(일례로 시민권)을 ‘차별적으로’ 배분했고, 유인책을 제공하거나 요구를 억압했고, 중개인과 대리인에게 행정을 맡겼고, 중앙집권적 관료제와 황제와의 개인적 유대를 강화했고, 정치와 종교를 결합했고, 보호령·자치령·식민지·고립 영토를 운영했고, 이민족 병력을 고용했고, 토지를 양여했고, 결혼 동맹을 이용했고, 상업과 산업을 발전시켰고, 무엇보다 군대를 동원했다. 제국들은 이러한 유연성에 힘입어 오랫동안 존속하기도 했고, 그 한계를 경험하기도 했다.
새로운 세계사, ‘제국들의 이야기’
과거가 예정된 미래로 이어지는 단일한 경로가 아니라고 한다면, 제국 또한 끝나지 않은 주제이다. 제국의 구조가 되살아나고 있고 따라서 제국이 여전히 유의미한 개념이냐는 물음, 미국과 러시아를 제국으로 보아야 하느냐는 물음 등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제국의 현재성은 특히 1990년대 이래로 학계는 물론 현실 정치에서도 논쟁이 분분한 주제가 되어왔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이 지적하는 대로,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이른바 민족국가들의 세계는 겨우 60년 전에야 출현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틀어 대다수 사람들은 단일한 민족을 대표한다고 주장하지 않은 정치 단위에서 살아왔다. 국가와 민족을 합치시키는 것은 최근에 나타난 현상으로, 완결된 현상도 아니고 어디서나 원하는 현상도 아니다.” 역사의 궤도들이 민족국가라는 단일한 목적지로 수렴한다는 관습적인 서사는 역사의 장기적 추세와 복잡성을 단순화하는 근시안적인 서사에 불과하다. 저자들의 견해대로 “민족국가는 역사의 지평선 위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이며, 근래 들어 제국들의 하늘 아래에서 등장한 국가 형태로서 훗날 세계의 정치적 상상을 일부만 또는 한시적으로만 사로잡았던 것으로 드러날지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지난 2000년의 대부분 기간 동안 제국과 그 경쟁자 들은 지역에서든 전 세계에서든 사람들이 연계를 맺는 맥락”을 창출했고, “제국의 정치, 제국의 관행, 제국의 문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형성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궤도들을 되짚어보기 위해서도, 그 궤도들의 결과물인 오늘날의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현존하는 정치 조직들과는 다른 정치체들을 구상하고 만들어내기 위해서도 제 국들의 역사를 탐구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제국들을 시간 순서대로 다루는 연대기적 구성을 채택하고 있으나 각 제국을 개관하는 통사는 아니다. 오히려 앞에서 말한 다섯 논제를 중심으로 제국들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책에 더 가깝다. 이를 위해 제1장에서는 방대하고 복잡한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논의를 담고 있다.
지난 2000년 동안 주요 제국들이 걸어온 역사적 궤도들을 탐구하는 이 책은 “민족국가가 자연스럽고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다는 생각”에 도전하고, “현재가 언제나 한결같았던 것은 아니며 앞으로도 한결같지 않으리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미래의 세계가 지금처럼 민족국가들의 세계로 남을지, G2를 중심으로 한 제국들의 세계로 재편될지, 또는 국가들의 질서에 제국적 구조가 중첩되는 세계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렇지만 “다양성 과 정치적 야심이 존재하는 한, 제국 건설은 언제나 하나의 유인”이며, 우리는 ‘차이의 정치’에 초점을 맞추어 제국의 정치와 역학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새로운 정치체들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
중국과 로마, 두 제국이 세계의 정치사에서 그처럼 오랫동안 그토록 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기원전 3세기 중국과 로마는, 제국 건설 과정에 동참한 이들과 유목민이나 야만인 딱지가 붙은 외부인들을 확연히 구별하는 기법을 포함하여 각종 통치 기법들을 만들어냈다. 그중 관료들을 통한 통치는 중국 황제들이 지역 영주들에 의존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되었고, 그리하여 중국의 제국 궤도가 로마의 궤도 및 로마 이후 서유럽 정치체들의 궤도와 달라지는 데 영향을 미쳤다.
풍부하고 통일적인 로마 문화는 광대한 공간에서 충성과 모방을 이끌어냈고, 각지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제국의 시민이 되고 정치체 전역에서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은 훗날 헌법 개정을 요구하는 운동들에서 되풀이하여 나타났다. 또한 로마가 택한 단일한 보편 신앙(기독교)과 연결된 보편 제국이라는 관념은 훗날 로마를 모방한 제국들에 영속적인 흔적을 남겼다.
신앙은 제국을 통일하는 힘이었는가? 일신교와 제국의 결합은 제국 정치체들에 응집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그 결합이 제국 체제들에 미친 영향은 깊고도 변덕스러웠다. 이슬람 칼리프국들은 옛 로마 제국 영역의 남부와 동부에서 새로운 일신교에 기반을 둔 제국들을 건설했다. 그러나 칼리프국들은 종파 분립과, 서로 경쟁하는 통치자 후보들의 공격으로 인해 파멸했다.
서유럽에서 무장한 수하들을 거느린 유력한 영주들의 정치는 로마의 중심부가 붕괴하면서 등장했다. 영주들은 황제 지망자들에게 종사단을 제공했지만, 특정 지망자의 적수들에게 제공할 수도 있었다. 샤를마뉴 대제는 보편 제국을 재건하는 목표에 가장 근접했지만, 그의 계승자들은 곧 경쟁 구도와 귀족 결사의 희생양이 되었다. 유럽에서 권력의 파편화는 로마 제국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계속 방해했다.
우마이야 왕조부터 시작하여 이슬람 제국들은 황실에 귀족 대신 노예, 대리인, 최근에 개종한 사람 등 외부인들로 충원했으며, 유라시아 스텝 지대의 제국 건설자들은 중개인을 확보하기 위해 의형제 관계, 결혼 정치, 부족 동맹 같은 전술을 구사했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유목민들에 대항하는 동시에 그들을 관리할 수 있는 정치체를 건설해야만 했다. 1055년에 바그다드를 점령한 셀주크족과 1258년에 이 도시를 장악한 몽골족은 유라시아 원칙에 따라 조직되었고, 튀르크와 몽골의 관행을 지중해 일대에 들여왔다.
폭력적 정복은 어떻게 13세기 후반 ‘몽골의 평화’를 이뤄냈을까? 칭기즈 칸과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 치세에 몽골족은 대륙을 횡단하는 역참 제도와 기동력 있는 군대를 바탕으로, 도나우 강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공간을 통치했다. 나아가 원 왕조를 창건하고 쪼개진 제국을 다시 합쳤다.
튀르크, 아랍, 페르시아, 몽골, 비잔티움의 경험에 의지하여 내구성이 가장 강한 이슬람 제국을 만들어낸 오스만 왕조는 각양각색의 공동체들을 하나의 제국 전체에 통합했다. 이로써 오스만 제국은 흥기하기 시작한 14세기부터 붕괴한 20세기까지 세계 경제와 정치의 숱한 변동을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편 지중해 동부와 남부에서 오스만 제국에 차단당하고 국내에서는 귀족-왕조 정치에 속박당하는 처지였던 서유럽의 황제 지망자들은 해외로 눈길을 돌려야만 했다. 대양 횡단 경제의 진짜 개척자들은 인도부터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이르는 아시아에 가 있었고, 콜럼버스는 아메리카에 도착해서 재화를 한데 모으는 능력을 가진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아메리카에서 들여온 은 덕분에 유럽인들은 아시아에서 상품을 구입할 수 있었고, 18세기 영국에서는 노동자들이 산업혁명을 전개하여 전 세계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하는 상품을 공급했다.
제국 건설 과정은 때로 경쟁자들의 연계를 제한하려 한 건설자들의 의도를 넘어서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슬람의 메카 순례는 어떤 칼리프국의 경계도 넘어서는 무슬림 세계를 창출했다. 구자라트인들은 유럽인들이 도착하기에 앞서 인도양을 횡단했고, 훗날 유럽의 무역로들이 작동하도록 도왔고, 유럽 제국들이 자리 잡은 후에는 제국 간 경계를 가로지르며 돌아다녔다. 중국 무역상들은 명 황제가 해외 무역을 지원하지 않을 때에도 동남아시아 전역의 교환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해외에서 유럽 제국들은 많은 경로들을 따라 팽창했다. 해외 제국은 신민들의 노동만이 아니라 그들의 조직?행정 수완에 의지하여 존속했고, 나아가 일부 식민지 주민들은 새로운 제국을 자력으로 건설하기를 열망했다. 예컨대 미국 혁명가들은 ‘자유의 제국’을 건설했고, 포르투갈 왕실 일가는 브라질 제국을 건설했다.
미국 제국은 20세기 들어 한참 후까지도 아메리카 토착민들을 정치체 외부에 두었고, 노예 후손들을 위한 평등한 권리를 확립하지 못했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도덕적 공동체라는 이데올로기를 굳게 믿었던 까닭 에, 자신들의 제국 역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스스로를 단일한 큰 국가로 인식했다.
유럽은 분화된 실체로서의 정치체에 익숙했고, 정치체를 구성하는 성분들에 맞추어 전략을 바꿀 수 있었다. 제국 조직은 여러 차례의 혁명 이후에도 존속했고, 나폴레옹에 의해 확대되었으며, 나폴레옹이 패한 뒤 다시 한 번 재구축되었다. 영국에게 자유무역 제국주의는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캐나다, 인도, 카리브해 섬들, 그리고 훗날 아프리카의 많은 공간에 행사한 갖가지 권위 못지않게 중요한 전략이 되었다.
19세기의 식민화가 완전히 새로운 제국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오히려 19세기의 식민화는 제국 기법의 레퍼토리를 쌓아올리고 늘렸고, 서로 교차하는 관계망들을 확장했고, 제국 간 경쟁에 걸린 판돈을 올렸다. 그러나 노예 봉기와 초대륙적 노예제 폐지 운동의 도전을 받는 상황에서, 영국은 1833년에, 프랑스는 1848년에, 브라질과 쿠바는 1880년대에 노예제를 포기했다. 식민 권위의 한계와 피식민자를 문명 수준으로 ‘고양’할 가능성은 논쟁 주제가 되었다.
19세기 후반 들어 아프리카 쟁탈전이 벌어지자 아프리카를 급격히 변형하는 방안을 옹호하던 이들마저도 중개인을 배치하여 광대한 공간을 통치하는 일 등 해결이 난망한 문제들 앞에서 뒷걸음질쳤다. 식민 본국 공중이 합의한 식민 통치 형태는 없었고, 피식민자들을 두루 납득시킨 식민 통치 형태도 없었다.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들은 식민자들의 정치적 언어를 사용하여 자유 이념을 자기들에게도 적용할 것을 역설했다.
19세기 후반 유럽 내부와 가장자리에서 제국들은 정치 개혁의 형태들과 사람들을 제국 구조에 더욱 정력적으로 통합하는 방법들을 시험했다. 제국들이 교묘히 조장한 민족주의 정서는 충분히 현실적이었고, 때로는 맹렬했다. 민족적 이념은 흔히 특정한 시민권과 연관되었다. 단결한 사람들은 민주적 수단을 사용하여 그들의 바람을 표명했고, 안녕에 필요한 자원을 ‘그들의’ 국가에 요구했고, 때로는 자본주의와 시장이 초래한 불평등을 바로잡고자 했다.
18세기 잉글랜드에서 발전하기 시작하여 바깥으로 퍼져나간 산업 자본주의는 유럽 제국들이 새로운 해외 영토로 통제권을 확대한 과정과 그들 간의 경쟁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 세계 국가들이 지닌 권력의 불균등성은 자본주의가 미치는 영향의 불균등성을 심화했다. 이에 유럽 내 분쟁이 크림 전쟁에서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폭력의 악순환을 일으킨 것은 제국들의 진화하는 체제였다.
1895년과 1905년에 각각 중국 제국과 러시아 제국을 희생양 삼아 자신의 힘을 입증한 일본은 20세기 초엽에 제국 시합에 뛰어들어 그 양상을 바꾸어놓았다. 유럽 제국의 아시아식 대안을 추구한 일본은 이미 동남아시아의 자원을 대부분 통제하고 있던 유럽과 아메리카 열강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1차 세계대전을 종결지은 강화 회의를 통해 제국들은 독일의 해외 식민지들을 박탈했을 뿐더러 유럽 안에서 독일의 크기를 줄이기까지 했다. 소련은 나치 독일을 꺾고 뒤늦게 일본을 꺾은 승전국이었다. 종전 무렵 스탈린은 러시아의 1914년 국경 너머로 소련의 영토를 넓힐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전시 동맹국들의 동의하에 전쟁의 발원지인 말썽 많은 중부 유럽에서 종속 정치체들로 이루어진 넉넉한 완충 지대까지 얻을 수 있었다. 승전을 계기로 소비에트식 러시아 제국은 수명을 연장하고 전 세계에서 새로운 영향력을 얻었다.
1930년대에 식민 열강은 야심을 제한하고 병력을 반란 진압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반식민 운동을 억제했다. 식민 제국이라는 거대 건축물이 허물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전쟁 도중과 그 직후였다. 영토 국가 형태의 독립은 식민 강대국들과 식민지 정치 운동들이 동의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되었다. 이로써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도처에서 마지막 식민화가 진행된 때부터 식민지들이 독립할 때까지의 시간은 고작 70~80년이었다. 이와 비슷하게 소련의 수명도, 일본이 타이완을 통치한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미국은 제국들의 세계에서 활동하면서도 오랫동안 자신은 다르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미국은 익숙한 제국 도구들을 포함하는 권력 레퍼토리를 개발하여 공식적인 식민화 대신 자신의 입맛에 맞게 골라서 썼다. 20세기 후반에 미국은 잔존하는 다른 초강대국과의 경쟁에 직면하여 정력적으로 피후견국을 구했고, 다른 나라들의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쿠데타, 침공, 점령, 수차례 전쟁을 조장했다.
양극 경쟁 구도가 막을 내린 1991년 이후,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 둘 다 모략의 대상으로 삼았던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 같은 장소들은 경우에 따라 그들 운명에 내맡겨졌으며, 과거에 제국의 수많은 중개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 역시 피후견인에서 적으로 돌아섰다.
“여러 측면에서 한국은 중국과 미국 때로는 러시아가 규정한 세계에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국과 미국을 이웃으로 두고 한국이 제국으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한국과 비슷한 입장에 처한 국가들은 특정한 상황에서 외부 세력들을 조종하거나 그들로부터 각각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보는 데 능한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경제적 이득이나 군사적 보호를 제공받기도 하고 문화의 융합 혹은 지식 등 다양한 이득을 보았지요. 다시 말해, 강대국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국가가 가지는 강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특히 문화적 영역에서 두드러지지요.” - EBS 다큐프라임 『강대국의 비밀』 제인 버뱅크 인터뷰
▣ 작가 소개
저자 : 제인 버뱅크
Jane Burbank
뉴욕 대학 역사학 교수 겸 러시아·슬라브학 교수.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하버드 대학,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 대학, 미시건 대학에서 가르쳤다.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프랑스 고등사범학교, 독일 훔볼트 대학의 초빙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법정에서 다툰 러시아 농민들》 《인텔리겐치아와 혁명》, 편저로 《러시아 제국》 등이 있다.
저자 : 프레더릭 쿠퍼
Frederick Cooper
뉴욕 대학 역사학과 교수. 예일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시건 대학에서 가르쳤다.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프랑스 고등사범학교, 파리 7대학의 초빙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제국과 민족 사이의 시민권》 《세계 속의 아프리카》 《문제의 식민주의》, 편저로 《제국의 교훈》 《노예제 이후의 사회》 등이 있다.
역자 : 이재만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옮긴 책으로 《제국의 폐허에서》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공부하는 삶》 《영국 외교관, 평양에서 보낸 900일》 《역사와 역사가들》(공역)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CHAPTER 1 제국의 궤도
CHAPTER 2 로마와 중국의 제국 통치
CHAPTER 3 로마 이후 : 제국, 기독교, 이슬람
CHAPTER 4 유라시아의 연계 : 몽골 제국들
CHAPTER 5 지중해 너머 : 오스만 제국과 에스파냐 제국
CHAPTER 6 대양 경제와 식민 사회 :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CHAPTER 7 스텝 지대 너머 : 러시아와 중국의 제국 건설
CHAPTER 8 혁명 시대의 제국, 민족, 시민권
CHAPTER 9 대륙을 가로지른 제국 : 미합중국과 러시아
CHAPTER 10 제국의 레퍼토리와 근대 식민주의의 신화
CHAPTER 11 주권과 제국 : 19세기 유럽과 가까운 외국
CHAPTER 12 제국 세계의 전쟁과 혁명 : 1914년부터 1945년까지
CHAPTER 13 제국의 종언?
CHAPTER 14 제국들, 국가들, 그리고 정치적 상상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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