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제국/식민지 검열의 경험은
어떻게 우리의 문화 속에 각인되어 있으며,
또 어떻게 반복되는가?
검열, 우리의 20세기를 이해하는 또 다른 열쇠
검열, 식민지배의 기술
1. 황실의 존엄을 모독하는 사항
2. 신궁, 황릉, 신사 등을 모독할 우려가 있는 기사
3. 조국肇國의 유래, 국사의 대체를 곡설 분경하여 국체 관념을 동요시킬 우려가 있는 사항
4. 국기, 국장, 군기 또는 국가를 모독할 우려가 있는 기사
5. 군주제를 부인하는 사항
6.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등의 이론 내지 전략, 전술을 선전하거나 그 운동실행을 선동하거나 그 혁명단체를 지지하는 사항
7. 혁명운동을 선동하거나 찬양하는 사항
8. 법률, 재판소 등 국가권력 작용의 계급성을 고조시키고 왜곡하는 사항
9. 폭력행위, 직접행동, 대중폭동 등을 선동하는 사항
10. 납세 기타 국민의 의무를 부인하는 사항 …….
이상은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작성한 1936년 《조선출판경찰개관》에 들어 있는 ‘검열기준’의 일부 내용이다. 이 항목들은 일본 내부와 식민지 대만과 조선에 공히 적용되었지만 각 지역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었다.
일본의 근대적 검열은 제국의 역사와 함께 태어나고 함께 사라져갔다. 일본 제국의 탄생부터 검열은 폭력적 지배기술이었다. 1868년 6월 서적출판에 관련된 태정관太政官 포고를 발령하여 출판의 무허가 발행을 금지했고 같은 해 8월 메이지 천황이 즉위한 후 1869년 신문지인행조례와 출판조례가 제정되었다. 이러한 검열 관련법과 행정체계는 대만과 조선 등 일본의 동아시아 식민지화와 침략의 과정 속에서 식민지배의 기술로 진화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전후 일본은 한국정부에 한국인이 발행하는 신문과 출판물에 대한 검열을 요구했으며, 이후 본격화된 이른바 ‘합방’의 과정은 반일주의, 반식민주의 출판물을 시중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검열의 연속 속에서 이루어졌다.
검열, 일본 제국의 운영원리의 축소판에서 냉전검열의 시대로
일본의 침략이 진행될수록 일본 본토와 식민지를 관통하면서 동시에 그 차이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제국의 검열체제였다. 식민지는 제국의 ‘내부’였지만 완전한 동일화는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배제된 ‘외부’였다. 검열은 폭력과 차별을 전제로 탄생한 일본 제국의 운영원리의 축소판이었다. 전쟁과 점령이 전면적인 검열을 수반하고 강화한다는 사실은 해방 이후 한국의 문학사가들이 오랫동안 ‘암흑기’라고 명명한 시기에 더욱 명백해졌다. 일본이 많은 아시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태평양전쟁 시기, 식민지와 점령지의 인민들은 서로가 서로의 감시자와 검열자가 된 검열사회의 쇠우리 속에서 모멸스럽게 생존했던 것이다.
1945년 8·15 해방 이후 많은 한국의 문인과 지식인들은 이 사태를 증언하고 참회하는 의식을 치러야 했지만,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 냉전은 새로운 검열체제를 요구했다. 검열을 매개로한 전쟁 전후의 이 기묘한 동일화, 즉 일본제국의 검열체제와 냉전검열의 유사성을 상호 참조하지 않고서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20세기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한일 학자들의 공동 성과
《검열의 제국-문화의 통제와 재생산》은 한국과 일본에서 총 20명의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만들어낸 성과이다. 이 연구자들은 대부분 문학연구자들이지만, 사회학자와 역사학자도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검열이라는 문제가, 현실의 세계와 재현의 세계를 아우르는 넓은 의미의 문학 전체와 다층적이고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검열 연구란 작가와 작품만이 아니라, 신문사와 잡지사, 출판사와 편집인, 기자, 사법경찰과 재판소, 극장, 감옥과 봉기와 전장을 탐문하는 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어판의 편집을 맡은 정근식, 한기형, 이혜령은 일본어판과 목차 편제를 달리하면서 무엇보다 제국 일본의 공공연하고도 비밀스러운 업무였던 검열을 통해, 제국의 심장부에서 뻗어 나온 요동치는 핏줄들을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안녕질서문란’(또는 ‘치안방해’)나 ‘풍속괴란’으로 붉은 도장이 찍혀 햇빛을 보지 못하고 폐기되거나 이리저리 상처를 입은 모습으로 나타난 출판물들, 심지어 무사히 검열을 통과하여 제 모습을 드러낸 출판물조차 제국의 중심부에서 식민지의 변방, 심지어 제국의 영토 밖에 있는 도시들에까지 뻗쳐 있는, 불온한 맥박과 그것을 포착하려는 노력을 증언하는 문화적 산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해방과 광복을 계기로 주어진 탈제국/탈식민의 과제가 세계적 냉전으로 지연되고, 동아시아가 열전의 전장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제국 일본의 유제가 냉전 검열체제로 변형되는지를 탐색하고자 했다. 검열이 정치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문화적인 문제이며, 정신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신체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풍속괴란”을 별도로 다룸으로써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더 격한 차이와, 검열은 근본적으로 민족·인종적·젠더적 신체, 그리고 그 신체가 점유하는 공간에 대한 스캐닝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다루고자 했다.
이 책의 마지막에 들어 있는 〈한일검열연표〉도 주목해주기 바란다. 이 연표는 한일 양국의 근대검열연구의 성과를 총괄하여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개괄한 것이다. 이 연표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검열사의 흐름과 맥락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기획한 편자들은 5년여에 걸친 공동연구를 수행하면서, 서울과 도쿄에서 예닐곱 차례 학술회의와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이를 통하여 한국과 일본에서 연구의 성과를 함께 출판하는 것에 합의했다. 이 책의 일본어판은 2014년 신요샤新曜社에서 출간되었으며, 한국어판은 번역상의 문제를 바로잡는 데 시간이 소용되어 좀 더 늦게 출간될 수밖에 없었다. 5년여에 걸친 학술교류는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인문한국연구소와 니혼대日本大 인문과학연구소의 뒷받침 속에 이루어졌다.
《검열의 제국》,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제국의 검열체제
제1부 〈제국의 검열체제〉는 제국 일본의 검열정책과 검열효과를 다룬 다섯 편의 글을 담았다. 한기형은 〈법역과 문역: 제국 내부의 표현력 차이와 식민지 텍스트〉에서 ‘문역文域’이라는 개념을 통해 ‘법역’의 차이로 인해 생성된 표현의 차별적 임계를 가시화했다. ‘내지’와 ‘외지’ 사이에 엄존했던 검열기준의 편차와 변동성이 각 지역의 문화수준과 사유방식을 장악함으로써 정치적으로는 통합되었지만 근본적으로 분열된 제국체제를 구축했다는 발상이다. 예컨대 식민지인들에게 ‘문역’은 표현의 가능성을 최대한 확대하려는 열려진 실천의 장이었지만, 일본 출판자본에게는 식민지인의 지적 갈망과 표현의 욕구를 부추겨 자기 상품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본원적 기득권의 하나였다.
고노 겐스케紅野謙介는 〈문학을 검열하다, 권력을 감시하다: 나카니시 이노스케中西伊之助와 후세 다쓰지布施辰治의 공투共鬪〉를 통해 일본인 작가 나카니시 이노스케가 조선이라는 식민지의 감옥에서 참혹한 비인간적인 폭력을 경험하고 그 과정을 통해 얻어낸 식민주의 비판의 시각을 ‘내지’로 전이하는 특별한 인식의 흐름을 추적했다. 문학이 검열의 도마 위에 올라가거나 사법체제의 심문에 처해지게 되는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바깥의 삶’을 끌어들이는 것을 본질로 삼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카니시는 일본인들이 자세히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일본, 혹은 일본의 외부였던 식민지의 실상을 말하고자 했다. 이 연구는 불온한 ‘바깥’의 존재를 드러낸 한 일본인 소설가의 삶에 주목함으로써 검열연구의 가능성과 의미를 확장하고 심화한다.
일본 제국의 검열정책은 복잡한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중층구조를 본질로 하고 있었다. 정근식은 〈식민지검열과 ‘검열표준’: 일본 및 대만과의 비교를 통하여〉에서 그 증거로 내지 일본, 그리고 외지인 대만과 조선에서 시행된 ‘검열표준’의 형성과정을 추적한다. 검열표준은 법률적인 사안뿐 아니라 피검열자에게 공개되지 않지만 실제 검열과정에서 적용되는 내부의 기준까지를 포괄한다. 지배의 기술로서 제국의 검열행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도화되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안이 권력의 의도대로 처리되지는 않았다. 검열표준이 체계화되고 그 적용방식이 진화할수록 표현주체들 또한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제국의 검열당국은 각 지역의 특수한 상황에 대응하면서 ‘내지’와 ‘외지’를 구별하는 차별의 의도까지를 관철해야 하는 이중의 목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이민주는 〈식민지 조선에 있어서 민간신문의 사진검열에 대한 연구: 《조선출판경찰월보》와 신문지면의 대조분석을 중심으로〉를 통해 총독부가 작성한 검열기록 《조선출판경찰월보》를 대상으로 1920년대 후반 신문사진 검열의 양상과 추이를 밝혔다. 광주학생운동, 동맹휴학사건,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모금이나 폭탄테러사건, 공산당사건 등과 관련된 사진, 배후에 음란한 의도가 있는지를 의심당한 이른바 풍속 관련 사진들이 당시 식민지검열의 주요한 관심대상이었다. 삭제된 사진의 피사체는 어떤 사람들 혹은 그들의 몸짓이었을 터인데, 검열자들은 그것을 공개하거나 드러내서는 안 될 위험하고 다루기 힘든 신체로 간주했다.
1925년 발발한 중국 노동자들의 반제국주의 봉기를 다룬 요코미쓰 리이치의 소설 《상하이》가 내무성의 검열과 패전 후 GHQ/SCAP의 검열 하에서 처해진 운명을 다룬 도에다 히로카즈十重田裕一의 글 〈식민지 배경 소설과 일본의 두 개의 검열: 요코미쓰 리이치의 《상하이》를 둘러싼 언론통제와 창작 사이의 갈등〉은 냉전체제가 식민주의를 온존, 지속시켰음을 논증하는 근거로 미국 점령기 검열이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필자의 섬세한 분석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상하이》는 ‘복자’와의 격렬한 투쟁의 과정을 거쳐 출판된 소설이다. 그것은 검열권력과의 대결이 근대 작가의 존재론적 본령임을 새삼스럽게 확인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패전 후 《상하이》의 재출간이 상당 기간 미루어졌다는 점이다. 그것은 미군정에 의한 문화지배의 정도가 과거에 비해 훨씬 심각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풍속괴란, 검열되는 텍스트·신체·공간
제2부 〈풍속괴란, 검열되는 텍스트·신체·공간〉의 첫 번째 글인 가네코 아키오金子明雄의 〈‘풍속괴란’에 대한 시선: 러일전쟁 이후의 ‘필화’를 중심으로〉는 ‘풍속괴란’을 이유로 본격적인 검열의 대상이 된 문학을 통해 형성된 독해코드를 추적했다. 표현의 부재를 표상하는 복자伏字나 표현 자체의 공백은 ‘육肉’이나 ‘성욕’을 읽어내는 독해문법을 활성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텍스트 외부에 그러한 사태가 존재한다는 발상을 가능하게 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려 그 배후의 진실을 추구한다는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독해문법과 유사하다. 이처럼 텍스트 외부를 확인하게 만드는 검열의 효과는 문학/외설이라는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하지만 텍스트의 공백이 만들어내는 어떤 ‘외부’보다도 지배적이고 압도적인 현실이야말로 복자로도 표현될 수 없는 암흑의 핵심일 수 있다.
이혜령은 〈식민지 섹슈얼리티와 검열〉에서 식민지 조선인은 ‘풍속괴란’의 시비에 부쳐질만한 포르노그라피를 제작하거나 에로티즘 문학을 창작할 수 없었다고 단정한다. 치안방해에 의해 처분된 출판물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식민지 검열의 추이는 조선인들이 반제국주의 출판물의 생산자일 수는 있어도 근대적 인쇄기술에 기반한 포르노그라피의 적극적인 생산자이기는 어렵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 직접적 원인은 가혹한 사전검열과 상대적으로 높게 설정된 금지의 수위에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침략과 함께 창궐한 성매매 산업이 갈수록 식민지 원주민의 공간과 생활을 잠식해 들어간 사정 또한 직시해야 한다.
식민지 원주민의 생활세계로 침투한 일본인을 종족적 기호로 표현할 수 없었던 데서 식민지 문학의 성격과 권위가 민족주의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 사정은 또한 검열체제가 식민지 원주민 문화의 민족주의적 코드를 어느 정도 용인해야 했던 조건이기도 했다. 이승희는 〈식민지조선 흥행시장의 병리학과 검열체제〉를 통해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영화 〈아리랑〉에 대한 기존의 통설을 근본적으로 뒤집는다. 치안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보존된 조선인극장이라는 인종주의적 게토에서 소통되는 극소의 ‘조선산’ 문화물에 대한 ‘관용’의 결과가 〈아리랑〉의 생존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것은 영리한 검열체제와 병약한 조선의 흥행시장이 공모한 결과였다. 이 글은 끊임없이 이야기되고 기억되며 지금까지도 막대한 문화적 파생물을 낳는 민족의 신화를 만든 것이 바로 식민지 검열체제임을 주장한다.
나이토 치즈코?藤千珠子의 〈눈에 보이는 징벌처럼: 1936년 사토 도시코佐藤俊子와 이동하는 여자들〉은 사토 도시코와 하야시 후미코의 작품을 통해 검열권력의 젠더를 묻고 있다. 그는 검열을 매개로 검열자와 피검열자들의 협상과 타협으로 형성된 문단 자체가 남성 연대적이고 동성 사회적이라 비판한다. 그는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인종과 계급, 성의 차별과 결합했던 일본문단에서 작품을 썼으나 문학사에서 배제된 여성작가들인 사토 도시코와 하야시 후미코의 작품의 내적 의미에 주목한다. 이들 소설가들이 여성의 이동을 서사화한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이야기되었으나 끝내 사라지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것은 존재하지만 예외화되는 복자覆字의 효과와 유비적인 상황이다. 나이토 치즈코는 무엇인 주인공들을 ‘복자’의 상태로 만들었는지 성찰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한다.
검열과 선전 사이: 전쟁·동원의 텍스트 정치
제3부 〈검열과 선전 사이: 전쟁·동원의 텍스트 정치〉에서는 검열을 상시화, 직접화, 극대화함으로써 선전의 텍스트를 생산했던 전쟁과 동원의 상황을 다루었다. 이 시기 제국의 검열은 그 목적을 가장 고도화한다. 검열의 궁극적 목표가 특정한 표현의 억압이 아니라 권력이 의도하는 표현의 창출에 있었다면, 선전은 가장 적극화된 검열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고미부치 노리쓰구五味?典嗣는 〈펜과 병대: 중일전쟁기 전기戰記텍스트와 정보전〉에서 중일전쟁 시기 발표되어 극단적으로 상반된 상황을 겪었던 두 편의 전기문학戰記文學 《살아 있는 병사》와 《보리와 병정》을 둘러싼 담론을 추적하여, 문학이 정보전의 유용한 도구로 인식되고 활용되는 과정을 밝혔다. 《살아 있는 병사》의 저자 이시카와 다쓰조는 자신은 소설을 썼을 뿐이라고 했지만 난징사건의 현실을 드러낸 탓에 필화를 겪었다. 반면 《보리와 병정》의 작가 히노 아시헤이는 체험만을 기록했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소설 속에는 중국군의 얼굴이나 중국 인민들, 전장의 고통은 등장하지 않는다. 고도의 통제 속에서 생산된 텍스트인 것이다.
이종호는 〈검열의 상전이相轉移, ‘친일문학’이라는 프로세스〉에서 총력전기 작가의 글쓰기 행위가 갖는 사회사적 의미를 부각시켰다. 국가 전체가 전쟁 수행을 위한 거대한 기계장치가 된 상황에서, 작가는 그 기계장치의 일부이거나 기계장치를 작동시키는 노동자로서 글을 쓴 것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식민지 조선인의 황국신민화 과정은 주민들을 상호 감시자로 만드는 사태 속에서 진행된 것처럼, 기계장치의 산물인 친일문학 또는 국민문학이라는 대량의 텍스트는 문인들 스스로가 적극적 검열관이 되는 사태의 심화를 수반했다. 기계화된 작가라는 가혹한 형용모순의 시대에 대한 풍자의 의도가 숨어있는 연구다.
1930년대 전반부터 시작된 사회주의자들의 전향은 종국에는 ‘사상동원’으로 이어졌고 전향소설은 태평양전쟁 발발 이전까지 시대의 징후를 드러내는 하나의 문학적 경향을 이루었다. 〈식민지 전향소설과 ‘감상록’의 전향서사〉을 통해 그 해석의 방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내놓은 정종현은 사법체계 속에서 이루어진 사상범들의 자필기록인 전향서와의 연동 속에서 전향소설의 의미가 독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검열체제에서 유통 가능한 지배담론을 전유하고 차용한 글쓰기인 전향서가 전향소설의 문법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는 백남운, 이순탁 같은 사회주의자의 전향서와 김남천의 전향소설을, 지배담론을 받아쓰되 ‘얼룩’이 남은 텍스트로 읽을 것을 주문한다. 그 ‘얼룩’은 끝까지 남기려했던 주체의 내면이었거나 혹은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랬던 미래에 대한 흔적이었는지 모른다.
오다이라 마이코?藤千珠子는 〈누가 연극의 적인가-경시청 보안부 보안과 흥행계: 데라자와 다카노부寺?高信를 중심으로〉에서 ‘극본을 쓴 검열관’이라는 흥미로운 사실을 통해, 검열이란 결국 표현에 대한 국가 독점의 상황에 불과했음을 날카롭게 환기한다. 제국 일본의 공식적 통치행위였던 검열이 실제로는 비정상적 국가권력의 자기 욕망을 실현시키는 도구에 불과했다는 것이 연구자의 통찰이다. 도쿄의 극장가에 등장해 활약한 검열관이라는 기상천외한 ‘희극’은 경쟁자를 제거했지만 결국은 대부분 비극으로 추락하는 독재자의 나르시시즘과 그 종말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검열체제에 내재한 근원적 자의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탈제국/탈식민 검열과 냉전
1945년 8월 15일 이후,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철폐될 줄 알았던 검열은 한반도의 분할점령으로 가시화된 냉전체제 구축 속에서 공고한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4부 〈탈제국/탈식민 검열과 냉전〉의 첫 번째 글인 도바 고지鳥羽耕史의 〈‘원폭시인’ 상像의 형성과 검열/편집: 도게 산키치峠三吉의 텍스트가 놓여 있던 정치적 환경〉은 이러한 검열의 새로운 연쇄를 다룬다. 그는 히로시마 원폭을 직접 경험한 시인이자 일본 공산당원인 도게 산키치가 시운동을 통해 펼친 반전운동과 미점령군에 의한 검열의 관계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고영란은 1953년 사망 이후 도게의 시와 일기가 일본공산당의 분열에 따른 당파적 입장에 따라 편집되고 개변된 것임을 강조하여 검열의 폭력이 국가권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환기한다.
1950년 분파투쟁의 와중에서 일본공산당이 또 하나의 검열기구가 되는 상황은 고영란의 글 〈‘조선/한국전쟁’ 혹은 ‘분열/분단’: 기억의 승인을 둘러싸고〉에서도 다뤄졌다. 고영란은 조직의 충실한 구성원이었던 조선인에 대한 일본공산당의 모호한 입장이 재일조선인을 연합국민에서 배제한 미국, 그들을 외국인으로 취급한 일본의 태도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시각 속에서 일본공산당의 분열이 어떻게 ‘조선전쟁’의 서사에 기입되었는지를 분석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제국의 해체 이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조성된 검열의 역학이 드러났으며, 재일조선인의 존재가 그들이 뛰어들었던 일본 내 좌익운동에 의해 지워지는 역설의 암면이 파헤쳐졌다.
일본의 권역이 열도로 수축되는 것은 패전의 본질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현상이었다. 이 결과로 일어난 엄청난 이동은 본래의 공동체 혹은 조국으로의 돌아감을 의미하는 ‘귀환’(한국)이나 ‘인양’(일본)이라는 용어로 명명되었다. 사카키바라 리치?原理智는 〈이동과 번역: 점령기 소설의 양상들〉을 통해 점령지에서 패전의 소식을 듣게 된 일본인의 이동의 서사를 다룬다. 다케다 타이준의 상하이 연작은 패전과 함께 갑자기 찾아온 ‘돌아간다는 것’의 문제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님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글은 소설의 주인공이 점령지에서 맺는 ‘관계’와 그로 인해 생겨난 ‘감정’의 불가피함 이면에 침식되어 있는 제국의 역사를 불러낸다. 그러한 의도 속에는 것은 ‘패망’ 이후의 시간이 그 이전의 시간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려는 필자의 의도가 들어 있다.
일본의 패망 직후 한반도의 상황은 일본의 경우와 근본적으로 달랐다. 한반도는 열전으로 치닫던 새로운 대결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미군정 검열은 일본에서의 GHQ의 그것처럼 검열기록이 남는 형태가 아니었다. 삭제나 차압 등 텍스트에 대한 행정적 처분 형태가 아니라 체포와 단체해산, 묵인되고 방조된 테러 등 직접적 폭력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검열기록의 아카이브 대신 다수의 월북문인과 오랜 역사의 금서를 갖게 된 원인도 여기에 있었다.
임경순은 〈새로운 금기의 형성과 계층화된 검열기구로서의 문단〉을 통해 텍스트를 매개로 한 검열/반검열의 전선이 단독정부의 수립과 함께 광범위한 문인들의 전향이 강요되면서 붕괴되었음을 지적한다. 어떤 작가들은 침묵의 권리마저 박탈당했고 국가정체성 형성에 기여한 문인들은 전향을 심사하는 검열권력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특히 한국의 문인들이 특정그룹이나 이념정파에 대한 억압이라는 냉전적 정치논리로 검열을 용인하게 되었다는 임경순의 주장은 냉전과 식민주의 메커니즘의 상보성이 해방 정국의 와중에서 관철되는 하나의 방식을 보여준다. 식민지에서의 벗어남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실현되는 계기가 아니었다는 뼈아픈 문제제기인 것이다.
후지이 다케시藤井たけし는 〈한 ‘정치학개론’의 운명: 탈식민국가와 냉전〉을 통해 역사논쟁의 촉발과 패턴을 규정해온 민족주의 문제를 대한민국의 태생적 성격과 결부지어 논증하고자 했다. 대한민국 수립 당시 ‘국시’인 ‘일민주의’는 반제국주의를 기조로 자본주의 비판과 근대 비판을 수렴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융합시킨 형태였으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세계’에서 그러한 이데올로기는 허용될 수 없었다. 이 글은 국가주의의 입장에서 제기된 각종 ‘근대화론’이 과거 식민/탈식민 경험에 기초한 역사서사에 대한 냉전 분단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진 포획의 시도이지만 그것이 완전히 성공할 수 없었음을 지적한다. 필자가 주목한 어느 정치학자의 고쳐 쓴 정치학개론처럼, 개정하고 증보한다고 하더라도 지나온 궤적은 그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고쳐지고 덧쓴 것조차 ‘복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복자’는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워질 수 없는 정치와 역사의 요동, 그리고 구부러진 삶의 현실을 증명한다.
▣ 작가 소개
한기형 :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한국근대문학/문화. 저서로는 《식민지검열: 제도·텍스트·실천》(공저), 《염상섭문장전집》(공편).
고노 겐스케紅野謙介 : 니혼대 문리학부. 일본근대문학. 저서로는《검열과 문학檢閱と文學》, 《이야기 이와나미서점 백년사物語岩波書店百年史》.
정근식 : 서울대 사회학과. 역사사회학. 저서로는 《식민지 유산, 국가형성, 민주주의》(편자).
도에다 히로카즈十重田裕一 : 와세다대 문학학술원. 일본근대문학. 저서로는 《이와나미 시게오岩波茂雄》.
이민주 : 극동대 언론홍보학과. 언론사. 저서로는 《일제시대 조선어민간신문에 대한 검열 연구》(박사학위논문), 《아시아이벤트-(서로 다른) 아시아들의 경합》(공저).
가네코 아키오金子明雄 : 닛쿄대학 문학부. 일본근대문학. 저서로는 《마에다 아이대화 집성》 I, II(공편).
이혜령 :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한국근현대문학/문화. 저서로는 《한국근대소설과 섹슈얼리티의 서사학》, 《염상섭문장전집》(공편).
이승희 : 성균관대 문과대학. 한국근대연극사. 저서로는 《한국사실주의 희곡, 그 욕망의 식민성》, 논문으로 〈흥행장의 정치경제학과 폭력의 구조 1945~1... 961〉.
나이토 치즈코內藤千珠子 오쓰마여자대 문학부. 저서로는 《암살이라는 스캔들》, , 《문화 속의 텍스트文化のなかのテクスト》(편저).
고미부치 노리쓰구五味典嗣 : 오쓰마여자대 문학부. 근대일본문학/문화. 저서로는 《어휘를 먹다-다니자키 준이치로言葉を食べる-谷崎潤一》.
이종호 : 성균관대 문과대학. 한국근현대문학. 저서로는 《전쟁하는 신민, 식민지의 국민문화》(공저), 《자본의 코뮤니즘, 우리의 코뮤니즘》(공저).
정종현 :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한국근현대문학. 저서로는 《동양론과 식민지 조선의 문학》, 《제국의 기억과 전유》.
오다이라 마이코小平麻衣子 : 니혼대 문리학부. 일본근대문학·젠더. 저서로는 《여자가 여자를 연주하다女が女を演じる》.
도바 고지鳥羽耕史 : 와세다대 문학학술원. 일본근대문학/전후문화운동. 저서로는 《1950년대 ‘기록’의 시대1950年代〈記錄〉の時代》, 《아베 코보 미디어의 월경자安部公房 メディアの越境者》(편저).
고영란 : 니혼대 문리학부. 일본근대문학. 저서로는 《전후라는 이데올로기》, 《안과 밖岩波講座 日本の思想3 內と外》(공저).
사카키바라 리치 :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일본근대문학. 저서로는 《포스트콜로니얼의 지평ポストコロニアルの地平》, Textuality, Linguistic Theory, and Literary Studies in Japan(공저).
임경순 : 성균관대 학부대학. 한국근현대문학. 논문으로 〈남정현소설과 성-여성과 윤리, 그리고 반공주의〉, 〈내면화된 폭력과 서사의 분열〉.
후지이 다케시藤井たけし 성균관대 문과대학. 한국현대사. 저서로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 《죽엄으로써 나라를 지키자-1950년대 반공·동원·감시의 시대》(공저).
손성준 : 부산대 점필재연구소. 동아시아문학. 〈번역과 전기의 ‘종횡’-1900년대 소설인식의 한국적 특수성〉, 〈텍스트의 시차와 공간적 재맥락화-염상섭의 러시아 소설 번역이 의미하는 것〉.
오사키 나쓰코尾崎名津子 : 니혼대 문리학부. 일본근대문학. 논문으로 〈오사카라는 장소의 기능: 오다사케 노스케의 〈세상〉을 중심으로〈大阪〉という場の機能: 織田作之助〈世相〉を中心に〉, 〈오다사케 노스케의 《세상》 성립에 관한 일고찰織田作之助《世相》成立にする一考察〉.
▣ 주요 목차
서문
일본어판 서문
제1부 제국의 검열체제
법역과 문역: 제국 내부의 표현력 차이와 식민지 텍스트...한기형
문학을 검열하다, 권력을 감시하다: 나카니시 이노스케中西伊之助와 후세 다쓰지布施辰治의 공투共鬪...고노 겐스케紅野謙介
식민지검열과 ‘검열표준’: 일본 및 대만과의 비교를 통하여...정근식
일제하 조선어 민간신문 사진검열에 대한 연구: 《조선출판경찰월보》와 신문지면의 대조분석을 중심으로...이민주
식민지 배경 소설과 일본의 두 개의 검열: 요코미쓰 리이치의 《상하이》를 둘러싼 언론통제와 창작 사이의 갈등...도에다 히로카즈十重田裕一
제2부 풍속괴란, 검열되는 텍스트·신체·공간
‘풍속괴란’에 대한 시선: 러일전쟁 이후의 ‘필화’를 중심으로...가네코 아키오金子明雄
식민지 섹슈얼리티와 검열...이혜령
식민지조선 흥행시장의 병리학과 검열체제...이승희
보이지 않는 징벌처럼: 1936년 사토 도시코佐藤俊子와 이동하는 여자들...나이토 치즈코.藤千珠子
제3부 검열과 선전 사이: 전쟁·동원의 텍스트 정치
펜과 병대: 중일전쟁기 전기戰記텍스트와 정보전...고미부치 노리쓰구五味典嗣
검열의 상전이相轉移, ‘친일문학’이라는 프로세스...이종호
식민지 전향소설과 ‘감상록’의 전향서사...정종현
누가 연극의 적인가-경시청 보안부 보안과 흥행계: 데라자와 다카노부寺高信를 중심으로...오다이라 마이코小平麻衣子
제4부 탈제국/탈식민 검열과 냉전
‘원폭시인’ 상像의 형성과 검열/편집: 도게 산키치峠三吉의 텍스트가 놓여 있던 정치적 환경...도바 고지鳥羽耕史
‘조선/한국전쟁’ 혹은 ‘분열/분단’: 기억의 승인을 둘러싸고...고영란
이동과 번역: 점령기 소설의 양상들...사카키바라 리치?原理智
새로운 금기의 형성과 계층화된 검열기구로서의 문단...임경순
한 ‘정치학개론’의 운명: 탈식민국가와 냉전...후지이 다케시藤井たけし
한일검열연표_손성준·오자키 나츠코尾崎名津子
주석
찾아보기
제국/식민지 검열의 경험은
어떻게 우리의 문화 속에 각인되어 있으며,
또 어떻게 반복되는가?
검열, 우리의 20세기를 이해하는 또 다른 열쇠
검열, 식민지배의 기술
1. 황실의 존엄을 모독하는 사항
2. 신궁, 황릉, 신사 등을 모독할 우려가 있는 기사
3. 조국肇國의 유래, 국사의 대체를 곡설 분경하여 국체 관념을 동요시킬 우려가 있는 사항
4. 국기, 국장, 군기 또는 국가를 모독할 우려가 있는 기사
5. 군주제를 부인하는 사항
6.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등의 이론 내지 전략, 전술을 선전하거나 그 운동실행을 선동하거나 그 혁명단체를 지지하는 사항
7. 혁명운동을 선동하거나 찬양하는 사항
8. 법률, 재판소 등 국가권력 작용의 계급성을 고조시키고 왜곡하는 사항
9. 폭력행위, 직접행동, 대중폭동 등을 선동하는 사항
10. 납세 기타 국민의 의무를 부인하는 사항 …….
이상은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작성한 1936년 《조선출판경찰개관》에 들어 있는 ‘검열기준’의 일부 내용이다. 이 항목들은 일본 내부와 식민지 대만과 조선에 공히 적용되었지만 각 지역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었다.
일본의 근대적 검열은 제국의 역사와 함께 태어나고 함께 사라져갔다. 일본 제국의 탄생부터 검열은 폭력적 지배기술이었다. 1868년 6월 서적출판에 관련된 태정관太政官 포고를 발령하여 출판의 무허가 발행을 금지했고 같은 해 8월 메이지 천황이 즉위한 후 1869년 신문지인행조례와 출판조례가 제정되었다. 이러한 검열 관련법과 행정체계는 대만과 조선 등 일본의 동아시아 식민지화와 침략의 과정 속에서 식민지배의 기술로 진화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전후 일본은 한국정부에 한국인이 발행하는 신문과 출판물에 대한 검열을 요구했으며, 이후 본격화된 이른바 ‘합방’의 과정은 반일주의, 반식민주의 출판물을 시중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검열의 연속 속에서 이루어졌다.
검열, 일본 제국의 운영원리의 축소판에서 냉전검열의 시대로
일본의 침략이 진행될수록 일본 본토와 식민지를 관통하면서 동시에 그 차이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제국의 검열체제였다. 식민지는 제국의 ‘내부’였지만 완전한 동일화는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배제된 ‘외부’였다. 검열은 폭력과 차별을 전제로 탄생한 일본 제국의 운영원리의 축소판이었다. 전쟁과 점령이 전면적인 검열을 수반하고 강화한다는 사실은 해방 이후 한국의 문학사가들이 오랫동안 ‘암흑기’라고 명명한 시기에 더욱 명백해졌다. 일본이 많은 아시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태평양전쟁 시기, 식민지와 점령지의 인민들은 서로가 서로의 감시자와 검열자가 된 검열사회의 쇠우리 속에서 모멸스럽게 생존했던 것이다.
1945년 8·15 해방 이후 많은 한국의 문인과 지식인들은 이 사태를 증언하고 참회하는 의식을 치러야 했지만,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 냉전은 새로운 검열체제를 요구했다. 검열을 매개로한 전쟁 전후의 이 기묘한 동일화, 즉 일본제국의 검열체제와 냉전검열의 유사성을 상호 참조하지 않고서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20세기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한일 학자들의 공동 성과
《검열의 제국-문화의 통제와 재생산》은 한국과 일본에서 총 20명의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만들어낸 성과이다. 이 연구자들은 대부분 문학연구자들이지만, 사회학자와 역사학자도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검열이라는 문제가, 현실의 세계와 재현의 세계를 아우르는 넓은 의미의 문학 전체와 다층적이고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검열 연구란 작가와 작품만이 아니라, 신문사와 잡지사, 출판사와 편집인, 기자, 사법경찰과 재판소, 극장, 감옥과 봉기와 전장을 탐문하는 일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어판의 편집을 맡은 정근식, 한기형, 이혜령은 일본어판과 목차 편제를 달리하면서 무엇보다 제국 일본의 공공연하고도 비밀스러운 업무였던 검열을 통해, 제국의 심장부에서 뻗어 나온 요동치는 핏줄들을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안녕질서문란’(또는 ‘치안방해’)나 ‘풍속괴란’으로 붉은 도장이 찍혀 햇빛을 보지 못하고 폐기되거나 이리저리 상처를 입은 모습으로 나타난 출판물들, 심지어 무사히 검열을 통과하여 제 모습을 드러낸 출판물조차 제국의 중심부에서 식민지의 변방, 심지어 제국의 영토 밖에 있는 도시들에까지 뻗쳐 있는, 불온한 맥박과 그것을 포착하려는 노력을 증언하는 문화적 산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해방과 광복을 계기로 주어진 탈제국/탈식민의 과제가 세계적 냉전으로 지연되고, 동아시아가 열전의 전장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제국 일본의 유제가 냉전 검열체제로 변형되는지를 탐색하고자 했다. 검열이 정치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문화적인 문제이며, 정신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신체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풍속괴란”을 별도로 다룸으로써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더 격한 차이와, 검열은 근본적으로 민족·인종적·젠더적 신체, 그리고 그 신체가 점유하는 공간에 대한 스캐닝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다루고자 했다.
이 책의 마지막에 들어 있는 〈한일검열연표〉도 주목해주기 바란다. 이 연표는 한일 양국의 근대검열연구의 성과를 총괄하여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개괄한 것이다. 이 연표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검열사의 흐름과 맥락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기획한 편자들은 5년여에 걸친 공동연구를 수행하면서, 서울과 도쿄에서 예닐곱 차례 학술회의와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이를 통하여 한국과 일본에서 연구의 성과를 함께 출판하는 것에 합의했다. 이 책의 일본어판은 2014년 신요샤新曜社에서 출간되었으며, 한국어판은 번역상의 문제를 바로잡는 데 시간이 소용되어 좀 더 늦게 출간될 수밖에 없었다. 5년여에 걸친 학술교류는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인문한국연구소와 니혼대日本大 인문과학연구소의 뒷받침 속에 이루어졌다.
《검열의 제국》,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제국의 검열체제
제1부 〈제국의 검열체제〉는 제국 일본의 검열정책과 검열효과를 다룬 다섯 편의 글을 담았다. 한기형은 〈법역과 문역: 제국 내부의 표현력 차이와 식민지 텍스트〉에서 ‘문역文域’이라는 개념을 통해 ‘법역’의 차이로 인해 생성된 표현의 차별적 임계를 가시화했다. ‘내지’와 ‘외지’ 사이에 엄존했던 검열기준의 편차와 변동성이 각 지역의 문화수준과 사유방식을 장악함으로써 정치적으로는 통합되었지만 근본적으로 분열된 제국체제를 구축했다는 발상이다. 예컨대 식민지인들에게 ‘문역’은 표현의 가능성을 최대한 확대하려는 열려진 실천의 장이었지만, 일본 출판자본에게는 식민지인의 지적 갈망과 표현의 욕구를 부추겨 자기 상품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본원적 기득권의 하나였다.
고노 겐스케紅野謙介는 〈문학을 검열하다, 권력을 감시하다: 나카니시 이노스케中西伊之助와 후세 다쓰지布施辰治의 공투共鬪〉를 통해 일본인 작가 나카니시 이노스케가 조선이라는 식민지의 감옥에서 참혹한 비인간적인 폭력을 경험하고 그 과정을 통해 얻어낸 식민주의 비판의 시각을 ‘내지’로 전이하는 특별한 인식의 흐름을 추적했다. 문학이 검열의 도마 위에 올라가거나 사법체제의 심문에 처해지게 되는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바깥의 삶’을 끌어들이는 것을 본질로 삼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카니시는 일본인들이 자세히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일본, 혹은 일본의 외부였던 식민지의 실상을 말하고자 했다. 이 연구는 불온한 ‘바깥’의 존재를 드러낸 한 일본인 소설가의 삶에 주목함으로써 검열연구의 가능성과 의미를 확장하고 심화한다.
일본 제국의 검열정책은 복잡한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중층구조를 본질로 하고 있었다. 정근식은 〈식민지검열과 ‘검열표준’: 일본 및 대만과의 비교를 통하여〉에서 그 증거로 내지 일본, 그리고 외지인 대만과 조선에서 시행된 ‘검열표준’의 형성과정을 추적한다. 검열표준은 법률적인 사안뿐 아니라 피검열자에게 공개되지 않지만 실제 검열과정에서 적용되는 내부의 기준까지를 포괄한다. 지배의 기술로서 제국의 검열행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도화되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안이 권력의 의도대로 처리되지는 않았다. 검열표준이 체계화되고 그 적용방식이 진화할수록 표현주체들 또한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제국의 검열당국은 각 지역의 특수한 상황에 대응하면서 ‘내지’와 ‘외지’를 구별하는 차별의 의도까지를 관철해야 하는 이중의 목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이민주는 〈식민지 조선에 있어서 민간신문의 사진검열에 대한 연구: 《조선출판경찰월보》와 신문지면의 대조분석을 중심으로〉를 통해 총독부가 작성한 검열기록 《조선출판경찰월보》를 대상으로 1920년대 후반 신문사진 검열의 양상과 추이를 밝혔다. 광주학생운동, 동맹휴학사건,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모금이나 폭탄테러사건, 공산당사건 등과 관련된 사진, 배후에 음란한 의도가 있는지를 의심당한 이른바 풍속 관련 사진들이 당시 식민지검열의 주요한 관심대상이었다. 삭제된 사진의 피사체는 어떤 사람들 혹은 그들의 몸짓이었을 터인데, 검열자들은 그것을 공개하거나 드러내서는 안 될 위험하고 다루기 힘든 신체로 간주했다.
1925년 발발한 중국 노동자들의 반제국주의 봉기를 다룬 요코미쓰 리이치의 소설 《상하이》가 내무성의 검열과 패전 후 GHQ/SCAP의 검열 하에서 처해진 운명을 다룬 도에다 히로카즈十重田裕一의 글 〈식민지 배경 소설과 일본의 두 개의 검열: 요코미쓰 리이치의 《상하이》를 둘러싼 언론통제와 창작 사이의 갈등〉은 냉전체제가 식민주의를 온존, 지속시켰음을 논증하는 근거로 미국 점령기 검열이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필자의 섬세한 분석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상하이》는 ‘복자’와의 격렬한 투쟁의 과정을 거쳐 출판된 소설이다. 그것은 검열권력과의 대결이 근대 작가의 존재론적 본령임을 새삼스럽게 확인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패전 후 《상하이》의 재출간이 상당 기간 미루어졌다는 점이다. 그것은 미군정에 의한 문화지배의 정도가 과거에 비해 훨씬 심각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풍속괴란, 검열되는 텍스트·신체·공간
제2부 〈풍속괴란, 검열되는 텍스트·신체·공간〉의 첫 번째 글인 가네코 아키오金子明雄의 〈‘풍속괴란’에 대한 시선: 러일전쟁 이후의 ‘필화’를 중심으로〉는 ‘풍속괴란’을 이유로 본격적인 검열의 대상이 된 문학을 통해 형성된 독해코드를 추적했다. 표현의 부재를 표상하는 복자伏字나 표현 자체의 공백은 ‘육肉’이나 ‘성욕’을 읽어내는 독해문법을 활성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텍스트 외부에 그러한 사태가 존재한다는 발상을 가능하게 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려 그 배후의 진실을 추구한다는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독해문법과 유사하다. 이처럼 텍스트 외부를 확인하게 만드는 검열의 효과는 문학/외설이라는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하지만 텍스트의 공백이 만들어내는 어떤 ‘외부’보다도 지배적이고 압도적인 현실이야말로 복자로도 표현될 수 없는 암흑의 핵심일 수 있다.
이혜령은 〈식민지 섹슈얼리티와 검열〉에서 식민지 조선인은 ‘풍속괴란’의 시비에 부쳐질만한 포르노그라피를 제작하거나 에로티즘 문학을 창작할 수 없었다고 단정한다. 치안방해에 의해 처분된 출판물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는 식민지 검열의 추이는 조선인들이 반제국주의 출판물의 생산자일 수는 있어도 근대적 인쇄기술에 기반한 포르노그라피의 적극적인 생산자이기는 어렵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 직접적 원인은 가혹한 사전검열과 상대적으로 높게 설정된 금지의 수위에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침략과 함께 창궐한 성매매 산업이 갈수록 식민지 원주민의 공간과 생활을 잠식해 들어간 사정 또한 직시해야 한다.
식민지 원주민의 생활세계로 침투한 일본인을 종족적 기호로 표현할 수 없었던 데서 식민지 문학의 성격과 권위가 민족주의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 사정은 또한 검열체제가 식민지 원주민 문화의 민족주의적 코드를 어느 정도 용인해야 했던 조건이기도 했다. 이승희는 〈식민지조선 흥행시장의 병리학과 검열체제〉를 통해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는 영화 〈아리랑〉에 대한 기존의 통설을 근본적으로 뒤집는다. 치안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보존된 조선인극장이라는 인종주의적 게토에서 소통되는 극소의 ‘조선산’ 문화물에 대한 ‘관용’의 결과가 〈아리랑〉의 생존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것은 영리한 검열체제와 병약한 조선의 흥행시장이 공모한 결과였다. 이 글은 끊임없이 이야기되고 기억되며 지금까지도 막대한 문화적 파생물을 낳는 민족의 신화를 만든 것이 바로 식민지 검열체제임을 주장한다.
나이토 치즈코?藤千珠子의 〈눈에 보이는 징벌처럼: 1936년 사토 도시코佐藤俊子와 이동하는 여자들〉은 사토 도시코와 하야시 후미코의 작품을 통해 검열권력의 젠더를 묻고 있다. 그는 검열을 매개로 검열자와 피검열자들의 협상과 타협으로 형성된 문단 자체가 남성 연대적이고 동성 사회적이라 비판한다. 그는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인종과 계급, 성의 차별과 결합했던 일본문단에서 작품을 썼으나 문학사에서 배제된 여성작가들인 사토 도시코와 하야시 후미코의 작품의 내적 의미에 주목한다. 이들 소설가들이 여성의 이동을 서사화한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이야기되었으나 끝내 사라지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것은 존재하지만 예외화되는 복자覆字의 효과와 유비적인 상황이다. 나이토 치즈코는 무엇인 주인공들을 ‘복자’의 상태로 만들었는지 성찰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한다.
검열과 선전 사이: 전쟁·동원의 텍스트 정치
제3부 〈검열과 선전 사이: 전쟁·동원의 텍스트 정치〉에서는 검열을 상시화, 직접화, 극대화함으로써 선전의 텍스트를 생산했던 전쟁과 동원의 상황을 다루었다. 이 시기 제국의 검열은 그 목적을 가장 고도화한다. 검열의 궁극적 목표가 특정한 표현의 억압이 아니라 권력이 의도하는 표현의 창출에 있었다면, 선전은 가장 적극화된 검열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고미부치 노리쓰구五味?典嗣는 〈펜과 병대: 중일전쟁기 전기戰記텍스트와 정보전〉에서 중일전쟁 시기 발표되어 극단적으로 상반된 상황을 겪었던 두 편의 전기문학戰記文學 《살아 있는 병사》와 《보리와 병정》을 둘러싼 담론을 추적하여, 문학이 정보전의 유용한 도구로 인식되고 활용되는 과정을 밝혔다. 《살아 있는 병사》의 저자 이시카와 다쓰조는 자신은 소설을 썼을 뿐이라고 했지만 난징사건의 현실을 드러낸 탓에 필화를 겪었다. 반면 《보리와 병정》의 작가 히노 아시헤이는 체험만을 기록했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소설 속에는 중국군의 얼굴이나 중국 인민들, 전장의 고통은 등장하지 않는다. 고도의 통제 속에서 생산된 텍스트인 것이다.
이종호는 〈검열의 상전이相轉移, ‘친일문학’이라는 프로세스〉에서 총력전기 작가의 글쓰기 행위가 갖는 사회사적 의미를 부각시켰다. 국가 전체가 전쟁 수행을 위한 거대한 기계장치가 된 상황에서, 작가는 그 기계장치의 일부이거나 기계장치를 작동시키는 노동자로서 글을 쓴 것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식민지 조선인의 황국신민화 과정은 주민들을 상호 감시자로 만드는 사태 속에서 진행된 것처럼, 기계장치의 산물인 친일문학 또는 국민문학이라는 대량의 텍스트는 문인들 스스로가 적극적 검열관이 되는 사태의 심화를 수반했다. 기계화된 작가라는 가혹한 형용모순의 시대에 대한 풍자의 의도가 숨어있는 연구다.
1930년대 전반부터 시작된 사회주의자들의 전향은 종국에는 ‘사상동원’으로 이어졌고 전향소설은 태평양전쟁 발발 이전까지 시대의 징후를 드러내는 하나의 문학적 경향을 이루었다. 〈식민지 전향소설과 ‘감상록’의 전향서사〉을 통해 그 해석의 방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내놓은 정종현은 사법체계 속에서 이루어진 사상범들의 자필기록인 전향서와의 연동 속에서 전향소설의 의미가 독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검열체제에서 유통 가능한 지배담론을 전유하고 차용한 글쓰기인 전향서가 전향소설의 문법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는 백남운, 이순탁 같은 사회주의자의 전향서와 김남천의 전향소설을, 지배담론을 받아쓰되 ‘얼룩’이 남은 텍스트로 읽을 것을 주문한다. 그 ‘얼룩’은 끝까지 남기려했던 주체의 내면이었거나 혹은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랬던 미래에 대한 흔적이었는지 모른다.
오다이라 마이코?藤千珠子는 〈누가 연극의 적인가-경시청 보안부 보안과 흥행계: 데라자와 다카노부寺?高信를 중심으로〉에서 ‘극본을 쓴 검열관’이라는 흥미로운 사실을 통해, 검열이란 결국 표현에 대한 국가 독점의 상황에 불과했음을 날카롭게 환기한다. 제국 일본의 공식적 통치행위였던 검열이 실제로는 비정상적 국가권력의 자기 욕망을 실현시키는 도구에 불과했다는 것이 연구자의 통찰이다. 도쿄의 극장가에 등장해 활약한 검열관이라는 기상천외한 ‘희극’은 경쟁자를 제거했지만 결국은 대부분 비극으로 추락하는 독재자의 나르시시즘과 그 종말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검열체제에 내재한 근원적 자의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탈제국/탈식민 검열과 냉전
1945년 8월 15일 이후,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철폐될 줄 알았던 검열은 한반도의 분할점령으로 가시화된 냉전체제 구축 속에서 공고한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4부 〈탈제국/탈식민 검열과 냉전〉의 첫 번째 글인 도바 고지鳥羽耕史의 〈‘원폭시인’ 상像의 형성과 검열/편집: 도게 산키치峠三吉의 텍스트가 놓여 있던 정치적 환경〉은 이러한 검열의 새로운 연쇄를 다룬다. 그는 히로시마 원폭을 직접 경험한 시인이자 일본 공산당원인 도게 산키치가 시운동을 통해 펼친 반전운동과 미점령군에 의한 검열의 관계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고영란은 1953년 사망 이후 도게의 시와 일기가 일본공산당의 분열에 따른 당파적 입장에 따라 편집되고 개변된 것임을 강조하여 검열의 폭력이 국가권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환기한다.
1950년 분파투쟁의 와중에서 일본공산당이 또 하나의 검열기구가 되는 상황은 고영란의 글 〈‘조선/한국전쟁’ 혹은 ‘분열/분단’: 기억의 승인을 둘러싸고〉에서도 다뤄졌다. 고영란은 조직의 충실한 구성원이었던 조선인에 대한 일본공산당의 모호한 입장이 재일조선인을 연합국민에서 배제한 미국, 그들을 외국인으로 취급한 일본의 태도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는 시각 속에서 일본공산당의 분열이 어떻게 ‘조선전쟁’의 서사에 기입되었는지를 분석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제국의 해체 이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조성된 검열의 역학이 드러났으며, 재일조선인의 존재가 그들이 뛰어들었던 일본 내 좌익운동에 의해 지워지는 역설의 암면이 파헤쳐졌다.
일본의 권역이 열도로 수축되는 것은 패전의 본질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현상이었다. 이 결과로 일어난 엄청난 이동은 본래의 공동체 혹은 조국으로의 돌아감을 의미하는 ‘귀환’(한국)이나 ‘인양’(일본)이라는 용어로 명명되었다. 사카키바라 리치?原理智는 〈이동과 번역: 점령기 소설의 양상들〉을 통해 점령지에서 패전의 소식을 듣게 된 일본인의 이동의 서사를 다룬다. 다케다 타이준의 상하이 연작은 패전과 함께 갑자기 찾아온 ‘돌아간다는 것’의 문제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님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글은 소설의 주인공이 점령지에서 맺는 ‘관계’와 그로 인해 생겨난 ‘감정’의 불가피함 이면에 침식되어 있는 제국의 역사를 불러낸다. 그러한 의도 속에는 것은 ‘패망’ 이후의 시간이 그 이전의 시간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려는 필자의 의도가 들어 있다.
일본의 패망 직후 한반도의 상황은 일본의 경우와 근본적으로 달랐다. 한반도는 열전으로 치닫던 새로운 대결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미군정 검열은 일본에서의 GHQ의 그것처럼 검열기록이 남는 형태가 아니었다. 삭제나 차압 등 텍스트에 대한 행정적 처분 형태가 아니라 체포와 단체해산, 묵인되고 방조된 테러 등 직접적 폭력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검열기록의 아카이브 대신 다수의 월북문인과 오랜 역사의 금서를 갖게 된 원인도 여기에 있었다.
임경순은 〈새로운 금기의 형성과 계층화된 검열기구로서의 문단〉을 통해 텍스트를 매개로 한 검열/반검열의 전선이 단독정부의 수립과 함께 광범위한 문인들의 전향이 강요되면서 붕괴되었음을 지적한다. 어떤 작가들은 침묵의 권리마저 박탈당했고 국가정체성 형성에 기여한 문인들은 전향을 심사하는 검열권력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특히 한국의 문인들이 특정그룹이나 이념정파에 대한 억압이라는 냉전적 정치논리로 검열을 용인하게 되었다는 임경순의 주장은 냉전과 식민주의 메커니즘의 상보성이 해방 정국의 와중에서 관철되는 하나의 방식을 보여준다. 식민지에서의 벗어남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실현되는 계기가 아니었다는 뼈아픈 문제제기인 것이다.
후지이 다케시藤井たけし는 〈한 ‘정치학개론’의 운명: 탈식민국가와 냉전〉을 통해 역사논쟁의 촉발과 패턴을 규정해온 민족주의 문제를 대한민국의 태생적 성격과 결부지어 논증하고자 했다. 대한민국 수립 당시 ‘국시’인 ‘일민주의’는 반제국주의를 기조로 자본주의 비판과 근대 비판을 수렴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융합시킨 형태였으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세계’에서 그러한 이데올로기는 허용될 수 없었다. 이 글은 국가주의의 입장에서 제기된 각종 ‘근대화론’이 과거 식민/탈식민 경험에 기초한 역사서사에 대한 냉전 분단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진 포획의 시도이지만 그것이 완전히 성공할 수 없었음을 지적한다. 필자가 주목한 어느 정치학자의 고쳐 쓴 정치학개론처럼, 개정하고 증보한다고 하더라도 지나온 궤적은 그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고쳐지고 덧쓴 것조차 ‘복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복자’는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워질 수 없는 정치와 역사의 요동, 그리고 구부러진 삶의 현실을 증명한다.
▣ 작가 소개
한기형 :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한국근대문학/문화. 저서로는 《식민지검열: 제도·텍스트·실천》(공저), 《염상섭문장전집》(공편).
고노 겐스케紅野謙介 : 니혼대 문리학부. 일본근대문학. 저서로는《검열과 문학檢閱と文學》, 《이야기 이와나미서점 백년사物語岩波書店百年史》.
정근식 : 서울대 사회학과. 역사사회학. 저서로는 《식민지 유산, 국가형성, 민주주의》(편자).
도에다 히로카즈十重田裕一 : 와세다대 문학학술원. 일본근대문학. 저서로는 《이와나미 시게오岩波茂雄》.
이민주 : 극동대 언론홍보학과. 언론사. 저서로는 《일제시대 조선어민간신문에 대한 검열 연구》(박사학위논문), 《아시아이벤트-(서로 다른) 아시아들의 경합》(공저).
가네코 아키오金子明雄 : 닛쿄대학 문학부. 일본근대문학. 저서로는 《마에다 아이대화 집성》 I, II(공편).
이혜령 :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한국근현대문학/문화. 저서로는 《한국근대소설과 섹슈얼리티의 서사학》, 《염상섭문장전집》(공편).
이승희 : 성균관대 문과대학. 한국근대연극사. 저서로는 《한국사실주의 희곡, 그 욕망의 식민성》, 논문으로 〈흥행장의 정치경제학과 폭력의 구조 1945~1... 961〉.
나이토 치즈코內藤千珠子 오쓰마여자대 문학부. 저서로는 《암살이라는 스캔들》, , 《문화 속의 텍스트文化のなかのテクスト》(편저).
고미부치 노리쓰구五味典嗣 : 오쓰마여자대 문학부. 근대일본문학/문화. 저서로는 《어휘를 먹다-다니자키 준이치로言葉を食べる-谷崎潤一》.
이종호 : 성균관대 문과대학. 한국근현대문학. 저서로는 《전쟁하는 신민, 식민지의 국민문화》(공저), 《자본의 코뮤니즘, 우리의 코뮤니즘》(공저).
정종현 :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한국근현대문학. 저서로는 《동양론과 식민지 조선의 문학》, 《제국의 기억과 전유》.
오다이라 마이코小平麻衣子 : 니혼대 문리학부. 일본근대문학·젠더. 저서로는 《여자가 여자를 연주하다女が女を演じる》.
도바 고지鳥羽耕史 : 와세다대 문학학술원. 일본근대문학/전후문화운동. 저서로는 《1950년대 ‘기록’의 시대1950年代〈記錄〉の時代》, 《아베 코보 미디어의 월경자安部公房 メディアの越境者》(편저).
고영란 : 니혼대 문리학부. 일본근대문학. 저서로는 《전후라는 이데올로기》, 《안과 밖岩波講座 日本の思想3 內と外》(공저).
사카키바라 리치 :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일본근대문학. 저서로는 《포스트콜로니얼의 지평ポストコロニアルの地平》, Textuality, Linguistic Theory, and Literary Studies in Japan(공저).
임경순 : 성균관대 학부대학. 한국근현대문학. 논문으로 〈남정현소설과 성-여성과 윤리, 그리고 반공주의〉, 〈내면화된 폭력과 서사의 분열〉.
후지이 다케시藤井たけし 성균관대 문과대학. 한국현대사. 저서로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 《죽엄으로써 나라를 지키자-1950년대 반공·동원·감시의 시대》(공저).
손성준 : 부산대 점필재연구소. 동아시아문학. 〈번역과 전기의 ‘종횡’-1900년대 소설인식의 한국적 특수성〉, 〈텍스트의 시차와 공간적 재맥락화-염상섭의 러시아 소설 번역이 의미하는 것〉.
오사키 나쓰코尾崎名津子 : 니혼대 문리학부. 일본근대문학. 논문으로 〈오사카라는 장소의 기능: 오다사케 노스케의 〈세상〉을 중심으로〈大阪〉という場の機能: 織田作之助〈世相〉を中心に〉, 〈오다사케 노스케의 《세상》 성립에 관한 일고찰織田作之助《世相》成立にする一考察〉.
▣ 주요 목차
서문
일본어판 서문
제1부 제국의 검열체제
법역과 문역: 제국 내부의 표현력 차이와 식민지 텍스트...한기형
문학을 검열하다, 권력을 감시하다: 나카니시 이노스케中西伊之助와 후세 다쓰지布施辰治의 공투共鬪...고노 겐스케紅野謙介
식민지검열과 ‘검열표준’: 일본 및 대만과의 비교를 통하여...정근식
일제하 조선어 민간신문 사진검열에 대한 연구: 《조선출판경찰월보》와 신문지면의 대조분석을 중심으로...이민주
식민지 배경 소설과 일본의 두 개의 검열: 요코미쓰 리이치의 《상하이》를 둘러싼 언론통제와 창작 사이의 갈등...도에다 히로카즈十重田裕一
제2부 풍속괴란, 검열되는 텍스트·신체·공간
‘풍속괴란’에 대한 시선: 러일전쟁 이후의 ‘필화’를 중심으로...가네코 아키오金子明雄
식민지 섹슈얼리티와 검열...이혜령
식민지조선 흥행시장의 병리학과 검열체제...이승희
보이지 않는 징벌처럼: 1936년 사토 도시코佐藤俊子와 이동하는 여자들...나이토 치즈코.藤千珠子
제3부 검열과 선전 사이: 전쟁·동원의 텍스트 정치
펜과 병대: 중일전쟁기 전기戰記텍스트와 정보전...고미부치 노리쓰구五味典嗣
검열의 상전이相轉移, ‘친일문학’이라는 프로세스...이종호
식민지 전향소설과 ‘감상록’의 전향서사...정종현
누가 연극의 적인가-경시청 보안부 보안과 흥행계: 데라자와 다카노부寺高信를 중심으로...오다이라 마이코小平麻衣子
제4부 탈제국/탈식민 검열과 냉전
‘원폭시인’ 상像의 형성과 검열/편집: 도게 산키치峠三吉의 텍스트가 놓여 있던 정치적 환경...도바 고지鳥羽耕史
‘조선/한국전쟁’ 혹은 ‘분열/분단’: 기억의 승인을 둘러싸고...고영란
이동과 번역: 점령기 소설의 양상들...사카키바라 리치?原理智
새로운 금기의 형성과 계층화된 검열기구로서의 문단...임경순
한 ‘정치학개론’의 운명: 탈식민국가와 냉전...후지이 다케시藤井たけし
한일검열연표_손성준·오자키 나츠코尾崎名津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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