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두 발로 서서 걷고 뛰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길을 만들며 길 위의 삶을 살아왔다. 이 책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혼융된 시선으로 길의 모양과 기능, 그 형성 방식이나 과정, 그 변천의 역사와 향후 전망, 그 영향과 의미 등에 대한 점검과 성찰에 집중한다. 길의 역사는 바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역사임을 밝히는 전문서이지만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단행본.
사람은 길 만드는 존재, 길 위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원숭이, 유인원 시절 나무에서 살다가 땅으로 내려와 살게 된 뒤로, 다시 말해 직립 보행과 주행을 시작하면서 인류는 길을 만들며 길 위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인간의 유적 행동이나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데 길의 모양과 기능, 그 형성 방식이나 과정, 그 변천의 역사와 향후 전망, 그 영향과 의미 등에 대한 점검과 성찰, 다시 말해 길의 역사 전반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길을 ‘도(道)’로 개념화해 논의한 도덕경과 같은 책이 벌써 2500년 전에 나왔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삶에 너무 밀착해 있기 때문인지, 길의 역사와 그 작용, 의미에 대한 반성적이고 비판적인 사유를 접하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물론 길에서 일어나는 각종 행위와 활동, 사건―교통, 유통, 여행, 관광, 보행, 산책, 만보, 시위, 출퇴근, 노동, 통제, 지배, 전쟁, 혁명 등―에 대한 고찰이 아주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길은 일단 조성되고 나면 계속 존속하면서 다양한 인간 활동의 기반으로 기능하게 되어 있다. 길에서 일어나는 행위와 사건은 그래서 실로 엄청나게 다양하며, 많은 논자들의 관심을 끌어내었다.
우선, 길을 놓고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 하나가 길의 물리적 형태다. 형태는 행동을 유발하고 규정하는 법이다. 손의 행위는 손이 하는 것이고, 발의 행위는 발이 하는 것이며, 이때 손의 행위는 손의 생김새에, 발의 행위는 발의 생김새에 의해 그 양상이 규정된다. 인간의 행동 전반도 손과 발을 포함한 우리 신체 부위 전체 생김새의 영향을 받는다. 길은 사람의 손이 사람의 손이 되고, 사람의 발이 사람의 발이 됨으로써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물리적 형태와 생김새에 주목하면서 길의 역사와 문화, 그 사회적 의미를 살펴보는 논의는 쉽게 찾기 어렵다.
이 책은 물리적인 길이야말로 모든 길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해서 길의 역사를 살핀다. 이처럼 물리적인 길을 중시하는 것은 저자가 존재가 사유를 지배한다는 유물론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서 물리적인 길, 다시 말해 인류가 진화를 통해 두 발로 땅을 딛고 서게 되면서 만든 구체적인 길이 있고 난 뒤에 비로소 ‘도’와 같은 말도 ‘이치’라는 추상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고 본다. 진화를 통한 인류의 신체적 형태 변화와 자연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물리적 길이 형성된 결과 길의 추상적 의미인 이치로서의 도 개념도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유물론적 관점이 이 책 전반에 걸쳐 전개되는 논의의 골간을 이룬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길은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길들이다. 역사적인 길들은 인간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뒤,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존재’가 됨으로써 조성할 수 있게 된 길이다. ‘존재(existence)’는 이때 인간이 자연 또는 땅으로부터 일정하게 분리된 모습을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개념이기도 하다. 라틴어에서 ‘존재하다’를 의미하는 ‘existere’는 ‘밖으로’를 의미하는 ‘ex’와 ‘서다’를 의미하는 ‘sistere’의 합성어다. 빌렘 플루서에 따르면, 인간이 소통이란 문제에 목을 매달게 된 것은 인간이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은 ‘밖으로 서서’ 살게 됨으로써 “자연으로부터의 비약”을 획득하게 되지만, 그 비약을 “세계 맞은편으로의 소외로 체험”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길 위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그가 이런 소외를 겪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인간이 길을 만드는 동물이 된 것은 그가 ‘존재’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두 발로 서서 땅=자연으로부터 떨어져 살게 되면서 인간은 다른 동물이 누리지 못하는 자유와 함께 소외를 느끼게 된 것이다.
길 만드는 존재가 된 뒤로 인간은 다른 동물은 물론이고, 다른 유인원과도 구별되는 ‘인간적’ 역사와 문화를 가꿔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진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만약 직립 보행과 주행 능력을 갖춤으로써 손이 자유로워지지 않았다면, 그와 함께 길 만드는 능력을 획득하지 못했다면, 인간은 인간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직립 존재가 되어 길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은 인류 진화에서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길을 만들게 되고 길 위에서 생활하는 동물이 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적 길들은 이처럼 존재가 된 인간-동물이 지구에서 퍼져나가 인종이나 종족으로 나뉘어져 살더라도 다시 인간들 사이에 교류가 생겨나 지구를 인간 중심의 생태계로 만들어온 과정에서 생겨난 길들이다. 역사적 길은 산간 지방의 시골마을들을 연결하는 오솔길, 전근대 사회에서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개척한 물길, 원거리 교역을 위해 만든 당나귀길, 전쟁 수행과 제국 경영을 위해 만든 왕도 등 인류의 역사 전개와 함께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이에 따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길의 종류도 무수히 많다. 인디언 길, 오솔길, 당나귀길, 물길, 뚝방길, 골목길, 왕도, 신작로, 기찻길, 항로, 포장도로, 도시거리, 출근길, 미로, 순례길, 시골버스길, 고속도로, 항공로, 고속철도, 정보고속도로 등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길 이름도 수없이 많다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책에서 소개하는 한국어 길 이름은 281개다), 오늘날은 수없이 많은 길들이 지표면을 뒤덮고 있다. 이 책은 길들이 어떻게 이처럼 수없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형태를 갖게 되었는지, 상이한 길 형태는 인간의 사회적, 문화적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길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인간과 그 삶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지 크게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눠서 살펴보고 있다.
길 위 존재가 됨으로써 인간은 유적 존재로서 새로운 잠재력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인 길을 만들어가면서 인간은 유적 존재로서 자신의 잠재력을 제대로 실현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길 위 존재가 됨으로써 우리가 자연 상태로부터 벗어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존재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길을 만들고 활용하게 된 이후, 다시 말해 역사적 존재가 된 이후로, 길을 통해 인간이 일관되게 해온 일은 불평등한 권력 행사, 즉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였다고 봐야 한다. 고대의 왕도에서 근대의 철도 또는 차도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전자고속도로에 이르기까지, 산이나 들판 오솔길에서 도회 거리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길은 인간의 신체적 이동을 사회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해 왔다. 특히 오늘날의 지배적인 모습,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형적인 그 형태를 보면, 길은 ‘인간 잠재력의 최대 실현’을 위한 보편적 장치로서 활용되기보다는 오히려 자본에 의한 그 잠재력의 사적 활용과 지배를 위한 주된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봐야 한다. 길의 속도가 자본의 회전 속도에 종속되어 갈수록 단수화 되고 있고, 길과 더불어 행해지는 계획들도 다양한 것 같지만 대부분이 자본의 축적 전략에 포획되어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오늘날 길은 지배와 수탈의 수단이 된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인류가 구축할 새로운 길 형태를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코뮌주의적인 길’이다. 코뮌주의적인 길은 인간이 직립 존재로서 그동안 새겨온 발자취의 모습, 특히 길의 현재 상태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길 체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유적 존재로서 인간의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형태의 길이다. 하지만 이런 길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와 역할, 기능, 용도를 가진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저자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의거하여 ‘현재 상태 지양’으로서의 코뮌주의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으로서의 코뮌주의라는, 코뮌주의의 두 가지 정의를 ‘상보성의 원리’에 의해 통합해 비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고, 이 과정에서 길 형태도 새롭게 만들어낼 것을 제안한다. 새로 변혁된 사회는 길의 형태, 기능, 용도를 새롭게 구상하고 만들어 길 체계를 변혁시켜야만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 작가 소개
저 : 강내희
姜來熙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마큇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의 중앙대 영문학과와 대학원의 문화연구학과에서 셰익스피어, 문화기호학, 서사이론, 공간의 정치경제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민교협 공동의장, 인문정책연구위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 문화연대 공동대표,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장, 문화이론전문지 『문화/과학』의 발행인, 다언어문화이론지 『흔적』의 한국어판 편집인이기도 하다. 교수이자, 사회운동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저서로는 『문화론의 문제설정』, 『한국의 문화변동과 문화정치(문화사회를 위한 비판적 문화연구)』, 『교육개혁의 학문전략』, 『신자유주의와 문화(노동사회에서 문화사회로)』, 『문학의 힘, 문학의 가치』, 『지식생산 학문전략 대학개혁』, 『문화분석의 몇가지 길들』(공저), 『공간 육체 권력』, 『신자유주의와 문화』(2000), 『한국의 문화변동과 문화정치』(2003),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문화와 코뮌주의』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1장 직립 존재의 발자취
2장 길의 몇 가지 유형
3장 몸길 내기
4장 길 떠나기
5장 속도기계
6장 길과 계획
7장 자본 축적의 길
8장 통행권과 광장
9장 길과 코뮌주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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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로 서서 걷고 뛰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길을 만들며 길 위의 삶을 살아왔다. 이 책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혼융된 시선으로 길의 모양과 기능, 그 형성 방식이나 과정, 그 변천의 역사와 향후 전망, 그 영향과 의미 등에 대한 점검과 성찰에 집중한다. 길의 역사는 바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역사임을 밝히는 전문서이지만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단행본.
사람은 길 만드는 존재, 길 위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원숭이, 유인원 시절 나무에서 살다가 땅으로 내려와 살게 된 뒤로, 다시 말해 직립 보행과 주행을 시작하면서 인류는 길을 만들며 길 위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인간의 유적 행동이나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데 길의 모양과 기능, 그 형성 방식이나 과정, 그 변천의 역사와 향후 전망, 그 영향과 의미 등에 대한 점검과 성찰, 다시 말해 길의 역사 전반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길을 ‘도(道)’로 개념화해 논의한 도덕경과 같은 책이 벌써 2500년 전에 나왔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삶에 너무 밀착해 있기 때문인지, 길의 역사와 그 작용, 의미에 대한 반성적이고 비판적인 사유를 접하기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물론 길에서 일어나는 각종 행위와 활동, 사건―교통, 유통, 여행, 관광, 보행, 산책, 만보, 시위, 출퇴근, 노동, 통제, 지배, 전쟁, 혁명 등―에 대한 고찰이 아주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길은 일단 조성되고 나면 계속 존속하면서 다양한 인간 활동의 기반으로 기능하게 되어 있다. 길에서 일어나는 행위와 사건은 그래서 실로 엄청나게 다양하며, 많은 논자들의 관심을 끌어내었다.
우선, 길을 놓고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 하나가 길의 물리적 형태다. 형태는 행동을 유발하고 규정하는 법이다. 손의 행위는 손이 하는 것이고, 발의 행위는 발이 하는 것이며, 이때 손의 행위는 손의 생김새에, 발의 행위는 발의 생김새에 의해 그 양상이 규정된다. 인간의 행동 전반도 손과 발을 포함한 우리 신체 부위 전체 생김새의 영향을 받는다. 길은 사람의 손이 사람의 손이 되고, 사람의 발이 사람의 발이 됨으로써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물리적 형태와 생김새에 주목하면서 길의 역사와 문화, 그 사회적 의미를 살펴보는 논의는 쉽게 찾기 어렵다.
이 책은 물리적인 길이야말로 모든 길의 근원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해서 길의 역사를 살핀다. 이처럼 물리적인 길을 중시하는 것은 저자가 존재가 사유를 지배한다는 유물론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서 물리적인 길, 다시 말해 인류가 진화를 통해 두 발로 땅을 딛고 서게 되면서 만든 구체적인 길이 있고 난 뒤에 비로소 ‘도’와 같은 말도 ‘이치’라는 추상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고 본다. 진화를 통한 인류의 신체적 형태 변화와 자연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물리적 길이 형성된 결과 길의 추상적 의미인 이치로서의 도 개념도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유물론적 관점이 이 책 전반에 걸쳐 전개되는 논의의 골간을 이룬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길은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길들이다. 역사적인 길들은 인간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뒤,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존재’가 됨으로써 조성할 수 있게 된 길이다. ‘존재(existence)’는 이때 인간이 자연 또는 땅으로부터 일정하게 분리된 모습을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개념이기도 하다. 라틴어에서 ‘존재하다’를 의미하는 ‘existere’는 ‘밖으로’를 의미하는 ‘ex’와 ‘서다’를 의미하는 ‘sistere’의 합성어다. 빌렘 플루서에 따르면, 인간이 소통이란 문제에 목을 매달게 된 것은 인간이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은 ‘밖으로 서서’ 살게 됨으로써 “자연으로부터의 비약”을 획득하게 되지만, 그 비약을 “세계 맞은편으로의 소외로 체험”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길 위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그가 이런 소외를 겪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인간이 길을 만드는 동물이 된 것은 그가 ‘존재’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두 발로 서서 땅=자연으로부터 떨어져 살게 되면서 인간은 다른 동물이 누리지 못하는 자유와 함께 소외를 느끼게 된 것이다.
길 만드는 존재가 된 뒤로 인간은 다른 동물은 물론이고, 다른 유인원과도 구별되는 ‘인간적’ 역사와 문화를 가꿔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진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만약 직립 보행과 주행 능력을 갖춤으로써 손이 자유로워지지 않았다면, 그와 함께 길 만드는 능력을 획득하지 못했다면, 인간은 인간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직립 존재가 되어 길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은 인류 진화에서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길을 만들게 되고 길 위에서 생활하는 동물이 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적 길들은 이처럼 존재가 된 인간-동물이 지구에서 퍼져나가 인종이나 종족으로 나뉘어져 살더라도 다시 인간들 사이에 교류가 생겨나 지구를 인간 중심의 생태계로 만들어온 과정에서 생겨난 길들이다. 역사적 길은 산간 지방의 시골마을들을 연결하는 오솔길, 전근대 사회에서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개척한 물길, 원거리 교역을 위해 만든 당나귀길, 전쟁 수행과 제국 경영을 위해 만든 왕도 등 인류의 역사 전개와 함께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이에 따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길의 종류도 무수히 많다. 인디언 길, 오솔길, 당나귀길, 물길, 뚝방길, 골목길, 왕도, 신작로, 기찻길, 항로, 포장도로, 도시거리, 출근길, 미로, 순례길, 시골버스길, 고속도로, 항공로, 고속철도, 정보고속도로 등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길 이름도 수없이 많다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책에서 소개하는 한국어 길 이름은 281개다), 오늘날은 수없이 많은 길들이 지표면을 뒤덮고 있다. 이 책은 길들이 어떻게 이처럼 수없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형태를 갖게 되었는지, 상이한 길 형태는 인간의 사회적, 문화적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길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인간과 그 삶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지 크게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눠서 살펴보고 있다.
길 위 존재가 됨으로써 인간은 유적 존재로서 새로운 잠재력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인 길을 만들어가면서 인간은 유적 존재로서 자신의 잠재력을 제대로 실현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길 위 존재가 됨으로써 우리가 자연 상태로부터 벗어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존재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길을 만들고 활용하게 된 이후, 다시 말해 역사적 존재가 된 이후로, 길을 통해 인간이 일관되게 해온 일은 불평등한 권력 행사, 즉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였다고 봐야 한다. 고대의 왕도에서 근대의 철도 또는 차도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전자고속도로에 이르기까지, 산이나 들판 오솔길에서 도회 거리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길은 인간의 신체적 이동을 사회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해 왔다. 특히 오늘날의 지배적인 모습, 다시 말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형적인 그 형태를 보면, 길은 ‘인간 잠재력의 최대 실현’을 위한 보편적 장치로서 활용되기보다는 오히려 자본에 의한 그 잠재력의 사적 활용과 지배를 위한 주된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봐야 한다. 길의 속도가 자본의 회전 속도에 종속되어 갈수록 단수화 되고 있고, 길과 더불어 행해지는 계획들도 다양한 것 같지만 대부분이 자본의 축적 전략에 포획되어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오늘날 길은 지배와 수탈의 수단이 된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인류가 구축할 새로운 길 형태를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코뮌주의적인 길’이다. 코뮌주의적인 길은 인간이 직립 존재로서 그동안 새겨온 발자취의 모습, 특히 길의 현재 상태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길 체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유적 존재로서 인간의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형태의 길이다. 하지만 이런 길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와 역할, 기능, 용도를 가진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저자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의거하여 ‘현재 상태 지양’으로서의 코뮌주의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으로서의 코뮌주의라는, 코뮌주의의 두 가지 정의를 ‘상보성의 원리’에 의해 통합해 비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고, 이 과정에서 길 형태도 새롭게 만들어낼 것을 제안한다. 새로 변혁된 사회는 길의 형태, 기능, 용도를 새롭게 구상하고 만들어 길 체계를 변혁시켜야만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 작가 소개
저 : 강내희
姜來熙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마큇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의 중앙대 영문학과와 대학원의 문화연구학과에서 셰익스피어, 문화기호학, 서사이론, 공간의 정치경제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민교협 공동의장, 인문정책연구위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 문화연대 공동대표,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장, 문화이론전문지 『문화/과학』의 발행인, 다언어문화이론지 『흔적』의 한국어판 편집인이기도 하다. 교수이자, 사회운동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저서로는 『문화론의 문제설정』, 『한국의 문화변동과 문화정치(문화사회를 위한 비판적 문화연구)』, 『교육개혁의 학문전략』, 『신자유주의와 문화(노동사회에서 문화사회로)』, 『문학의 힘, 문학의 가치』, 『지식생산 학문전략 대학개혁』, 『문화분석의 몇가지 길들』(공저), 『공간 육체 권력』, 『신자유주의와 문화』(2000), 『한국의 문화변동과 문화정치』(2003),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문화와 코뮌주의』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1장 직립 존재의 발자취
2장 길의 몇 가지 유형
3장 몸길 내기
4장 길 떠나기
5장 속도기계
6장 길과 계획
7장 자본 축적의 길
8장 통행권과 광장
9장 길과 코뮌주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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