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실천적 인문학자 강내희 교수의 30년 저술을 망라한 유일한 선집. 인문학으로 사회변혁을 끊임없이 추동하는 그의 실천과 이론을 주제별로 일목요연하게 추적할 수 있는 책!!
이 책은 2016년 2월 말 중앙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맞은 강내희 교수가 지난 30년 가까운 기간에 생산한 글 19편을 골라 묶은 ‘선집’이다. 여기 실린 19편의 글은 저자가 한국의 공적 지식생산 영역 및 공론장에서 제출한 발언들로서, 그가 수행한 지식생산 활동에 대한 요약 결산에 해당한다.
강내희 교수는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이번 선집에 실린 글들은 영문학, 나아가 인문학에도 한정되지 않는 광범위한 관심사를 다루고 있다. 그의 글은 비판적 문화연구자답게 다양한 분과들을 가로지르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한국사회 전반의 문제를 유물론자 또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분석하고자 한다. 중앙대에서 영시 강의로 교수 생활을 시작한 저자가 영문학 하기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문학에 대한 제도론적 관점, 다시 말해 문학은 순수 예술인 것만이 아니라 지배체제를 재생산하는 현실적 효과를 지닌 사회적 제도이기도 하다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문학이 사회적 제도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지배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말로서, 그런 인식이 그로 하여금 영문학 연구자로만 남지 않고 문화연구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도록 해 연구와 관심, 활동 범위를 넓히는 근본적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가 전공분야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시도한 또 하나 이유는 아직도 한국의 지식생산을 지배하고 있는 대학의 분과학문 체제에 대해 나름의 비판적 의식을 가졌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분과학문 체제는 분업화에 기초한 지식생산 방식이며, 자본주의적 지식생산의 핵심 기제에 해당한다. 물론 그는 자신이 전공한 영문학을 포함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영역에 속한 다양한 분과학문들은 각기 나름의 학문적 정당성과 역사성을 가지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학문들을 분과학문 체제라는 제도로 묶어서 운영하는 것은 문제라고 보며, 개별 학문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최근에 들어와 학문의 융합이나 통섭의 이름으로 분과학문 체제를 해체하려는 흐름이 없지는 않지만, 그는 그런 흐름은 그것대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본다. 그런 흐름은 연구와 교육, 학문을 시장 논리에 종속시키는 지식생산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으로서, 당연히 발전시켜야 할 분과학문을 고사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분과학문의 발전과 분과학문 체제의 고수는 별개의 사안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관점이며, 분과학문 체제는 반드시 지양해 새로운 학문 및 교육의 편제를 창출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전공분야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전개한 것은 분과학문 체제는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름대로 실천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강내희 교수가 그의 이번 선집 서문에서 쓰고 있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영문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생산 틀 안에 갇히고 싶지도 않고, 나아가서 문학의 한계도 벗어나 그 경계를 넘나들거나 때로는 훌쩍 벗어나는 지식생산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문학의 가치를 부인하고 문학을 버리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문학 전공자로서 내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재현 이외에도 ‘형태’라는 문제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형태’는 한국의 문학비평계에서 진보적인 계열로 분류되는 리얼리즘 진영이 비판적인 검토 대상으로 여기는 ‘형식’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리얼리즘 진영이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반영론의 틀로 이해하는 경향을 지녔다고 보고 불만족을 느꼈던 편이며, 문화이론가로서 더 중요하게 살펴볼 문제는 ‘내용’과 ‘표현’의 관계라고 생각했고, 문학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적 현상을 분석할 때 표현 층위를 특히 중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이 선집에 포함된 「문학의 힘, 문학의 가치」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내용과 대비되는 것은 표현인 것이지 형식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표현 또는 형태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나는 사회적 비판을 수행할 때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의 내용 형식에 속하는 이데올로기의 작동에 대한 설명 못지않게 그런 현상의 표현 양상을 기술하고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게 여겼다. 예컨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에도 신자유주의적 지배의 ‘꼴’을 들춰내고 그 문제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자본주의 비판을 글쓰기의 핵심 과제로 삼으면서 동시에 문화적 관점에서 그런 비판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극복해야 할 핵심적 이유의 하나를 그것이 꼴사나운 것들, 꼴같잖은 것들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는 데서 찾고 있기도 하다.
대학원까지 영문학을 전공했고, 영문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영문학 교육을 담당하기는 했지만, 영문학의 경계 안에 머물기보다는 문학 일반과 관련된 현상 이해에 더 많은 흥미를 느꼈던 편이고, 문학의 경계도 넘어서서 다양한 분과학문 분야들을 가로지르는 전방위적 지식생산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편이다. 그렇게 된 것은 아마도 미학이나 역사학, 사회학이나 경제학, 인지과학이나 복잡성 과학 등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다양한 분야에 대해 아마추어적 수준이나마 계속 관심을 지녔던 때문일 것이다. 이번 선집에 실린 글들의 종류를 통해서도 상당 부분 드러나고 있지만, 그동안 글쓰기나 강의 등을 통해 건드려온 주제는 좁은 의미의 전공분야인 르네상스 영문학 이외에 문학이론, 영문학 제도, 글쓰기 기술, 문형, 담론이론, 서사이론, 기호학, 문화연구, 문화공학, 인문학, 인지과학, 교과과정 혁신 및 교육개혁, 학문전략과 대학개혁, 한국 근대성과 유령학, 포스트모더니즘, 시공간, 길의 역사, 위험사회, 금융화, 신자유주의 및 자본주의 문화, 노동권, 문화적 권리, 문화운동, 표현의 자유, 사회미학, 문화사회, 코뮌주의 등으로 지나치게 넓고 다양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계기가 있었던 것 같다. 번다한 주제를 다루게 된 주요 원인 하나는 1990년대 초 문화이론전문지『문화/과학』을 창간해 20년간 편집인 또는 발행인 역할을 맡으면서 글쓰기를 자주 해야 했던 데서 찾을 수 있다. 『문화/과학』이 90년대 중반부터 계간지로 전환된 뒤로 석 달에 한 번씩 특집 기획에 참여할 일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주제의 글쓰기는 거의 불가피한 일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민주와 진보를 위한 지식인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문화연대, 맑스코뮤날레, 진보정치세력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모임, 지식순환협동조합 등의 조직 창립이나 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도 글쓰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사회운동 또는 학술운동 성격을 띤 이들 단체가 당면 사회 문제들에 개입하게 될 때 함께 했던 것이 사회적 현안들에 대한 발언을 자주 하게끔 만든 또 다른 계기였던 것이다. 이상의 두 활동, 그리고 교수로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지내온 경험이 지식인으로서 정체성을 강화했으며, 학자-지식인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내놓고 보니, 그동안의 글쓰기는 다양한 주제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과는 별도로, 아니 어쩌면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일관된 문제의식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발표한 글이나 책 제목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신자유주의’라는 사실이 그런 점을 말해주고 있기도 한데, 이것은 내 글쓰기는 많은 부분 정세 분석 또는 개입의 성격을 띠었다는 것과도 같다. 그동안의 글쓰기에서 신자유주의 비판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았던 것은 개인적으로 학자로서, 지식인으로서 살아온 시기가 한국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지배가 사회적 삶의 방식을 갈수록 흉악하게 만든 시기와 겹침에 따라 생긴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며 선택한 관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 비판의 관점이다. 신자유주의 비판은 다양한 시각에서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나는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가 20세기 말에 이르러 채택한 축적 체제 또는 전략인 것으로 파악하고, 신자유주의 극복의 올바른 방향은 반드시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데서 나와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그동안의 글쓰기를 통해 문화사회, 코뮌주의 건설에 대해 간절한 관심을 표명했던 것도 그런 사회가 실현되는 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책 제목으로 내건 ‘인문학으로 사회변혁을 말하다’는 ‘인문학적 입장에 서서 사회변혁을 말하다’로 들릴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변혁을 말하는 것이 인문학적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은 아님을 밝히고 싶다. 사실 주 전공인 영문학과 문학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인문학과 그 전통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세간에서 말하는 ‘인문학의 위기’가 발생한 데에는 학문과 교육을 시장논리에 종속시킨 신자유주의적 지배가 강화된 점이 작용한 점도 있지만, 그런 위기를 자초한 데는 인문학자들의 책임 또한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문학으로 사회변혁을 말하다’는 그래서 인문학이 사회변혁의 열쇠라는 의미에서 선택한 제목이라기보다는, 인문학을 논의 대상으로 여겨서, 또는 인문학의 문제 상황을 화두로 삼아서 사회변혁을 말한다는 의미가 오히려 더 크다. 인문학이 사회변혁에 기여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렇게 하려면 인문학 자체도 변혁되어야만 할 것이다. ‘인문학으로 사회변혁을 말하다’는 따라서 한편으로는 인문학의 상황과 처지를 통해 사회변혁을 말하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변혁을 말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의 변혁이 필요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 변혁된 인문학으로 사회변혁을 말할 필요가 있다는 다중적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을 시학이나 발명학으로 보고, GNR 혁명과 같은 과학기술의 새로운 전개와 함께 나타날 인문학의 변화된 위상을 생각해본 것도 인문학은 스스로 변혁됨으로써만 사회변혁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작가 소개
저 : 강내희
姜來熙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마큇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의 중앙대 영문학과와 대학원의 문화연구학과에서 셰익스피어, 문화기호학, 서사이론, 공간의 정치경제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민교협 공동의장, 인문정책연구위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 문화연대 공동대표,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장, 문화이론전문지 『문화/과학』의 발행인, 다언어문화이론지 『흔적』의 한국어판 편집인이기도 하다. 교수이자, 사회운동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저서로는 『문화론의 문제설정』, 『한국의 문화변동과 문화정치(문화사회를 위한 비판적 문화연구)』, 『교육개혁의 학문전략』, 『신자유주의와 문화(노동사회에서 문화사회로)』, 『문학의 힘, 문학의 가치』, 『지식생산 학문전략 대학개혁』, 『문화분석의 몇가지 길들』(공저), 『공간 육체 권력』, 『신자유주의와 문화』(2000), 『한국의 문화변동과 문화정치』(2003),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문화와 코뮌주의』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제1부 사회미학과 문화사회
1. ‘의림’과 시적 정의, 또는 사회미학과 코뮌주의
2. 노동거부의 사상
3. 누가 음란을 두려워하랴?
제2부 신자유주의 일상과 변혁
4. 일상의 금융화와 리듬분석
5. 1987년 체제 이후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 지배와 문화지형 변동
6. 신자유주의 반대운동,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제3부 한국근대성과 유령학
7. 종결어미 ‘-다’와 한국의 언어적 근대성
8. 흉내 내기와 차이 만들기
― 신식민지 지식인을 위한 유령학
제4부 문학의 힘
9. 영문학의 연구와 버텨 읽기
10. 문학의 힘, 문학의 가치
― 탈근대 관점에서 본 문학범주 비판과 옹호의 문제들
제5부 공간의 문제설정
11. 롯데월드론
― 독점자본과 문화공간
12. 유사도시, 역공간, 사이버공간
― 결연의 시험장
13. 서울의 도시화와 문화경제
― 동향과 문제
제6부 인문학의 확장과 교육
14. ‘문화공학’을 제안하며
15. 문화예술대 교과과정의 특성화 전략
16. 인문학과 향연
―시학과 발명학으로서의 인문학
제7부 지식생산의 새로운 실험
17. ‘GNR 혁명’과 탈인간주의 시대의 지식생산
― 비판적 인문학자의 단상
18. 은유와 담론의 정치학, 또는 인지과학과 탈구조주의의 접점을 찾아서
19. 학문의 비환원주의적 ‘통섭’을 위한 초분과성 기획과 문화연구
실천적 인문학자 강내희 교수의 30년 저술을 망라한 유일한 선집. 인문학으로 사회변혁을 끊임없이 추동하는 그의 실천과 이론을 주제별로 일목요연하게 추적할 수 있는 책!!
이 책은 2016년 2월 말 중앙대학교에서 정년퇴임을 맞은 강내희 교수가 지난 30년 가까운 기간에 생산한 글 19편을 골라 묶은 ‘선집’이다. 여기 실린 19편의 글은 저자가 한국의 공적 지식생산 영역 및 공론장에서 제출한 발언들로서, 그가 수행한 지식생산 활동에 대한 요약 결산에 해당한다.
강내희 교수는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이번 선집에 실린 글들은 영문학, 나아가 인문학에도 한정되지 않는 광범위한 관심사를 다루고 있다. 그의 글은 비판적 문화연구자답게 다양한 분과들을 가로지르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한국사회 전반의 문제를 유물론자 또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분석하고자 한다. 중앙대에서 영시 강의로 교수 생활을 시작한 저자가 영문학 하기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문학에 대한 제도론적 관점, 다시 말해 문학은 순수 예술인 것만이 아니라 지배체제를 재생산하는 현실적 효과를 지닌 사회적 제도이기도 하다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문학이 사회적 제도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지배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말로서, 그런 인식이 그로 하여금 영문학 연구자로만 남지 않고 문화연구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도록 해 연구와 관심, 활동 범위를 넓히는 근본적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가 전공분야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시도한 또 하나 이유는 아직도 한국의 지식생산을 지배하고 있는 대학의 분과학문 체제에 대해 나름의 비판적 의식을 가졌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분과학문 체제는 분업화에 기초한 지식생산 방식이며, 자본주의적 지식생산의 핵심 기제에 해당한다. 물론 그는 자신이 전공한 영문학을 포함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영역에 속한 다양한 분과학문들은 각기 나름의 학문적 정당성과 역사성을 가지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학문들을 분과학문 체제라는 제도로 묶어서 운영하는 것은 문제라고 보며, 개별 학문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최근에 들어와 학문의 융합이나 통섭의 이름으로 분과학문 체제를 해체하려는 흐름이 없지는 않지만, 그는 그런 흐름은 그것대로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본다. 그런 흐름은 연구와 교육, 학문을 시장 논리에 종속시키는 지식생산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으로서, 당연히 발전시켜야 할 분과학문을 고사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분과학문의 발전과 분과학문 체제의 고수는 별개의 사안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관점이며, 분과학문 체제는 반드시 지양해 새로운 학문 및 교육의 편제를 창출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가 전공분야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전개한 것은 분과학문 체제는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름대로 실천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강내희 교수가 그의 이번 선집 서문에서 쓰고 있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영문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생산 틀 안에 갇히고 싶지도 않고, 나아가서 문학의 한계도 벗어나 그 경계를 넘나들거나 때로는 훌쩍 벗어나는 지식생산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문학의 가치를 부인하고 문학을 버리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문학 전공자로서 내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재현 이외에도 ‘형태’라는 문제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형태’는 한국의 문학비평계에서 진보적인 계열로 분류되는 리얼리즘 진영이 비판적인 검토 대상으로 여기는 ‘형식’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리얼리즘 진영이 ‘내용’과 ‘형식’의 관계를 반영론의 틀로 이해하는 경향을 지녔다고 보고 불만족을 느꼈던 편이며, 문화이론가로서 더 중요하게 살펴볼 문제는 ‘내용’과 ‘표현’의 관계라고 생각했고, 문학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적 현상을 분석할 때 표현 층위를 특히 중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이 선집에 포함된 「문학의 힘, 문학의 가치」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내용과 대비되는 것은 표현인 것이지 형식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표현 또는 형태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나는 사회적 비판을 수행할 때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의 내용 형식에 속하는 이데올로기의 작동에 대한 설명 못지않게 그런 현상의 표현 양상을 기술하고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게 여겼다. 예컨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에도 신자유주의적 지배의 ‘꼴’을 들춰내고 그 문제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자본주의 비판을 글쓰기의 핵심 과제로 삼으면서 동시에 문화적 관점에서 그런 비판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극복해야 할 핵심적 이유의 하나를 그것이 꼴사나운 것들, 꼴같잖은 것들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는 데서 찾고 있기도 하다.
대학원까지 영문학을 전공했고, 영문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영문학 교육을 담당하기는 했지만, 영문학의 경계 안에 머물기보다는 문학 일반과 관련된 현상 이해에 더 많은 흥미를 느꼈던 편이고, 문학의 경계도 넘어서서 다양한 분과학문 분야들을 가로지르는 전방위적 지식생산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편이다. 그렇게 된 것은 아마도 미학이나 역사학, 사회학이나 경제학, 인지과학이나 복잡성 과학 등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다양한 분야에 대해 아마추어적 수준이나마 계속 관심을 지녔던 때문일 것이다. 이번 선집에 실린 글들의 종류를 통해서도 상당 부분 드러나고 있지만, 그동안 글쓰기나 강의 등을 통해 건드려온 주제는 좁은 의미의 전공분야인 르네상스 영문학 이외에 문학이론, 영문학 제도, 글쓰기 기술, 문형, 담론이론, 서사이론, 기호학, 문화연구, 문화공학, 인문학, 인지과학, 교과과정 혁신 및 교육개혁, 학문전략과 대학개혁, 한국 근대성과 유령학, 포스트모더니즘, 시공간, 길의 역사, 위험사회, 금융화, 신자유주의 및 자본주의 문화, 노동권, 문화적 권리, 문화운동, 표현의 자유, 사회미학, 문화사회, 코뮌주의 등으로 지나치게 넓고 다양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계기가 있었던 것 같다. 번다한 주제를 다루게 된 주요 원인 하나는 1990년대 초 문화이론전문지『문화/과학』을 창간해 20년간 편집인 또는 발행인 역할을 맡으면서 글쓰기를 자주 해야 했던 데서 찾을 수 있다. 『문화/과학』이 90년대 중반부터 계간지로 전환된 뒤로 석 달에 한 번씩 특집 기획에 참여할 일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주제의 글쓰기는 거의 불가피한 일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민주와 진보를 위한 지식인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문화연대, 맑스코뮤날레, 진보정치세력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모임, 지식순환협동조합 등의 조직 창립이나 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도 글쓰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사회운동 또는 학술운동 성격을 띤 이들 단체가 당면 사회 문제들에 개입하게 될 때 함께 했던 것이 사회적 현안들에 대한 발언을 자주 하게끔 만든 또 다른 계기였던 것이다. 이상의 두 활동, 그리고 교수로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지내온 경험이 지식인으로서 정체성을 강화했으며, 학자-지식인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내놓고 보니, 그동안의 글쓰기는 다양한 주제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과는 별도로, 아니 어쩌면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일관된 문제의식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발표한 글이나 책 제목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신자유주의’라는 사실이 그런 점을 말해주고 있기도 한데, 이것은 내 글쓰기는 많은 부분 정세 분석 또는 개입의 성격을 띠었다는 것과도 같다. 그동안의 글쓰기에서 신자유주의 비판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았던 것은 개인적으로 학자로서, 지식인으로서 살아온 시기가 한국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지배가 사회적 삶의 방식을 갈수록 흉악하게 만든 시기와 겹침에 따라 생긴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며 선택한 관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 비판의 관점이다. 신자유주의 비판은 다양한 시각에서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나는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가 20세기 말에 이르러 채택한 축적 체제 또는 전략인 것으로 파악하고, 신자유주의 극복의 올바른 방향은 반드시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데서 나와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그동안의 글쓰기를 통해 문화사회, 코뮌주의 건설에 대해 간절한 관심을 표명했던 것도 그런 사회가 실현되는 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책 제목으로 내건 ‘인문학으로 사회변혁을 말하다’는 ‘인문학적 입장에 서서 사회변혁을 말하다’로 들릴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변혁을 말하는 것이 인문학적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은 아님을 밝히고 싶다. 사실 주 전공인 영문학과 문학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인문학과 그 전통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세간에서 말하는 ‘인문학의 위기’가 발생한 데에는 학문과 교육을 시장논리에 종속시킨 신자유주의적 지배가 강화된 점이 작용한 점도 있지만, 그런 위기를 자초한 데는 인문학자들의 책임 또한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문학으로 사회변혁을 말하다’는 그래서 인문학이 사회변혁의 열쇠라는 의미에서 선택한 제목이라기보다는, 인문학을 논의 대상으로 여겨서, 또는 인문학의 문제 상황을 화두로 삼아서 사회변혁을 말한다는 의미가 오히려 더 크다. 인문학이 사회변혁에 기여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렇게 하려면 인문학 자체도 변혁되어야만 할 것이다. ‘인문학으로 사회변혁을 말하다’는 따라서 한편으로는 인문학의 상황과 처지를 통해 사회변혁을 말하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변혁을 말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의 변혁이 필요하며, 또 다른 한편으로 변혁된 인문학으로 사회변혁을 말할 필요가 있다는 다중적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을 시학이나 발명학으로 보고, GNR 혁명과 같은 과학기술의 새로운 전개와 함께 나타날 인문학의 변화된 위상을 생각해본 것도 인문학은 스스로 변혁됨으로써만 사회변혁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작가 소개
저 : 강내희
姜來熙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마큇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의 중앙대 영문학과와 대학원의 문화연구학과에서 셰익스피어, 문화기호학, 서사이론, 공간의 정치경제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민교협 공동의장, 인문정책연구위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 문화연대 공동대표,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장, 문화이론전문지 『문화/과학』의 발행인, 다언어문화이론지 『흔적』의 한국어판 편집인이기도 하다. 교수이자, 사회운동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저서로는 『문화론의 문제설정』, 『한국의 문화변동과 문화정치(문화사회를 위한 비판적 문화연구)』, 『교육개혁의 학문전략』, 『신자유주의와 문화(노동사회에서 문화사회로)』, 『문학의 힘, 문학의 가치』, 『지식생산 학문전략 대학개혁』, 『문화분석의 몇가지 길들』(공저), 『공간 육체 권력』, 『신자유주의와 문화』(2000), 『한국의 문화변동과 문화정치』(2003),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문화와 코뮌주의』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제1부 사회미학과 문화사회
1. ‘의림’과 시적 정의, 또는 사회미학과 코뮌주의
2. 노동거부의 사상
3. 누가 음란을 두려워하랴?
제2부 신자유주의 일상과 변혁
4. 일상의 금융화와 리듬분석
5. 1987년 체제 이후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 지배와 문화지형 변동
6. 신자유주의 반대운동,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제3부 한국근대성과 유령학
7. 종결어미 ‘-다’와 한국의 언어적 근대성
8. 흉내 내기와 차이 만들기
― 신식민지 지식인을 위한 유령학
제4부 문학의 힘
9. 영문학의 연구와 버텨 읽기
10. 문학의 힘, 문학의 가치
― 탈근대 관점에서 본 문학범주 비판과 옹호의 문제들
제5부 공간의 문제설정
11. 롯데월드론
― 독점자본과 문화공간
12. 유사도시, 역공간, 사이버공간
― 결연의 시험장
13. 서울의 도시화와 문화경제
― 동향과 문제
제6부 인문학의 확장과 교육
14. ‘문화공학’을 제안하며
15. 문화예술대 교과과정의 특성화 전략
16. 인문학과 향연
―시학과 발명학으로서의 인문학
제7부 지식생산의 새로운 실험
17. ‘GNR 혁명’과 탈인간주의 시대의 지식생산
― 비판적 인문학자의 단상
18. 은유와 담론의 정치학, 또는 인지과학과 탈구조주의의 접점을 찾아서
19. 학문의 비환원주의적 ‘통섭’을 위한 초분과성 기획과 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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