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 이효석의 단편소설의 창작 시기와 그 대표작들
예부터 재능 많은 작가들은 하늘에서 서둘러 거두어 가는 법인지 이효석 또한 서른다섯 살이라는 이르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907년 2월 23일에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난 그는 1942년 5월 25일에 지금은 갈 수 없는 북쪽 평양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정식으로 문학 창작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28년 7월 『조선지광』이라는 잡지에 「도시와 유령」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한 때였으니, 그의 창작 활동은 십오 년이 다 못 되는 사이에 끝나고 만 셈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이효석은 실로 많은 단편소설, 중·장편소설, 그리고 희곡과 산문들을 남겼으며 그의 작품들이 지금도 이곳저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금 그의 아드님인 이우현 선생과 『이효석의 삶과 문학』의 저자 이상옥 선생께서 이효석의 새 전집을 제작, 완성해 가고 있다. 이효석 문학의 전체 규모가 조만간 더욱 밝게 드러날 것이다.
필자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그의 소설 창작 과정은 크게 세 개의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시기는 이른바 ‘동반자 작가’ 시기에 해당하는 때로서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까지 유행하던 현실 비판적 사회운동과의 교호 관계가 엿보이는 작품들을 창작했다. 창작집 『노령근해』(1931)가 이를 대표한다. 그러나 이때에도 그는 리얼리즘에 머무르지 않고 부정적 현실에 대한 낭만적 대타항으로서의 이상향을 즐겨 그리고 또 삶의 정치경제적 측면을 넘어 인간의 본성적 사랑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선집에 실린 「오리온과 능금」(『삼천리』,1932. 3)이 그 대표적인 예다.
둘째 시기는 1933년경에 발표된 「돈」(『조선문학』, 1933. 10), 「수탉」(『삼천리』, 1933. 11) 등을 계기로 완연히 삶에서 성과 본성과 사랑이 갖는 의의에 깊은 관심을 표명한 작품들을 창작하게 된 때다. 장편소설 『화분』(인문사, 1939)에 이르는 이 시기에 그는 이효석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주옥같은 명편들을 창작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메밀꽃 필 무렵」이며, 「낙엽기」(『백광』, 1937. 1) 같은 작품들이 모두 이때 발표되었고, 연작성 강한 「산」(『삼천리』, 1936. 1), 「들」(『신동아』, 1936. 3), 「소라」(『조선농민』, 1938. 9) 같은 문제작들도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셋째 시기는 이효석이 장편소설『창공』(『벽공무한』, 『매일신보』, 1940.1. 25.~1940. 7. 28.)을 발표한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에 해당하며, 이 시기에 이효석은 한편으로는 일본어 소설을 발표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 시기의 특징적 소설 현상 가운데 하나인 사소설 쓰기로 나아갔다. 이 선집에 실린 「하얼빈哈爾濱」(『문장』, 1940. 10), 「풀잎」(『춘추』, 1942. 1), 「일요일」(『삼천리』, 1942. 1) 등이 그것으로, 이 작품들은 지금까지 일반 독자들에 의해서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연구자들 역시 큰 의의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러나 일제 말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이효석은 현실을 지극히 비판적으로 날카롭게 꿰뚫어 보고 있었음이 이들 작품을 통해 드러난다.
이 선집에서 필자는 그의 폭넓은 작품 세계를 모두 열한 편의 단편소설로 축약해 보이고자 한다. 한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 가급적 많은 작품을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선 이 열한 편만으로도 이효석이 어떤 작가인지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아쉬운 점은 첫 번째 시기의 작품들을 싣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는 필자 나름의 몇 가지 고려가 작용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전문가들만의 것이 아니라 소설을 애호하는 많은 분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따라서 되도록 많은 사람이 향유할 수 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책을 엮어 내고자 했다.
■ 인공적 사회와 본성적 자연의 대비
그러면 이효석 소설의 본령으로 간주되고 있는 두 번째 창작 시기의 작품들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보도록 한다. 이효석의 소설 가운데에는 자연을 중심적인 테마로 삼은 두 계열의 작품들이 있다. 아름답고 섬세한 이효석 소설의 문장미의 진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두 계열의 소설들에서다. 그중 제1계열은 「산」, 「들」, 「소라」 등이 대표작이다. 이 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회와 역사의 외부에서 자연을 향유하며 그 자연 쪽에서 인간 사회와 역사를 조망하는 시각을 보여준 작품들이다.
다음으로, 제2계열은 「분녀」, 「고사리」, 「메밀꽃 필 무렵」, 「개살구」, 「산협」 등으로 대표되는 것으로서, 산골과 전원을 배경으로 체제와 관습의 울타리를 넘나들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먼저, 제1계열의 작품들에는 자연을 중심에 놓고 인간의 삶을 평가하고자 하는 이효석의 시각이 예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들 작품들은 자연으로 돌아간 인물들이 얻은 자유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산」의 주인공 중실은 마을 밑에서 머슴살이를 하다 주인영감에게 첩과 놀아난다는 의심을 받게 되자 주인집에서 뛰쳐나왔을 뿐만 아니라 아예 마을을 떠나 산속에 들어와 홀로 살아간다. 주인집에 살면서 그는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해마다 새경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고 옷 한 벌 버젓하게 얻어 입어본 적이 없다. 하다못해 명절에 놀이할 돈도 얻지 못해 개 보름 쇠듯 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마을을 떠나 산으로 올라와 버린 그는 그 어떤 존재보다 자유롭다. 산속에서 그는 나무가 된 것 같은 기쁨을 맛본다. “몸은 한 포기의 나무다” 세속의 사람살이에 지친 중실에게 산은 살아 있는 인간 개체로서의 생명력을 회복시켜 준다.
「들」은 「산」보다도 깊이 들어간다. 여기서 주인공 학보는 「산」의 중실과 같이 세속 또는 사회에서 쫓겨난 존재다.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고향에 돌아와 있는 것이다. 「들」의 공간적 배경을 이루는 학보의 고향은 「산」에서의 산과 같은 기능을 한다. 또 바로 여기에 이효석의 소설에 나타나는 고향의 상징적 의미를 헤아릴 수 있는 열쇠가 있다. 이효석 소설의 고향은 백석의 시에 나오는 고향과는 달리 공동체적 유대와 친밀감, 전근대적 질서와 관습의 세계가 아니다. 같은 농촌이고 산골이라고 해도 이효석의 소설에 나오는 고향은 그러한 질서나 관습조차 작용하지 않는 공간, 자연적이고 야생적인 삶을 가능케 하는 공간으로 나타난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란 곧 산천을 사랑하고 벌판을 반가워하는 심정”이라는 학보의 생각은 이효석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해도 될 것이다.
작중 학보는 「산」에서의 중실처럼 봄의 들의 경이로운 초록빛에 한껏 매료되어 있다. 학교에 다니며 운동을 하는 그는 중실이 세속에서 지주의 횡포에 시달렸던 것처럼 감시와 구속에 쫓기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들은 그에게 깊은 해방감을 선사한다. 야취에 젖은 그는 들에서 옥분이를 만나 그 민출한 자태에 마음을 빼앗긴다. 둘은 다음날 과수원에서 만나 벌판에서 장난치는 자웅들처럼 야합을 한다. 친우인 문수와 함께 들판에서 야영을 하면서는 무한한 우주의 운행에 마음을 빼앗긴다. 야영은 그에게 들에 대한 깊은 일체감을 심어준다. 이렇게 자연 속에 파묻혀 자연과 하나가 됨으로써 학보는 비로소 사회를 원근법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사회라는 것, 그것은 공포를 내장한 메커니즘이다.
무한하고도 그윽한 자연에 비하면 세속은 한갓 좁디좁은 구속 체계일 뿐이다. 자연 쪽에서 보면 인간의 사회와 역사는 “공포”를 자아내는 강압의 체계다. 「산」과 「들」의 주인공들은 자연 쪽에서 멀리 작게 보이는 사회와 역사를 조망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사회나 역사에 대한 인식을 구비치 못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지주와 학교 체제에 저항하였고 그 때문에 세속에서 자의, 타의로 추방되었다. 세속에 머물러 있을 때는 그것이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일단 세속에서 벗어나면 사회와 역사는 멀리 작게 보인다. 자연과 우주의 시공간에 통합된 사회와 역사는 보잘것없고 초라하다. 「산」과 「들」은 사람들 위에 무섭게 군림하는 식민지 체제 또는 억압적인 사회의 힘을 자연에 합류한 사람의 살아 있는 힘에 대비시킨다.
한편 제2계열에 속하는 소설들 가운데에는 이효석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메밀꽃 필 무렵」이 포함되어 있다. 이 소설은 서정적인 소설로 이름 높은데 오히려 그 때문에 이 작품을 포함한 일군의 작품들 속에서 유기적으로 분석되고 평가되지 못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 작품에 따라붙는 서정소설로서의 명성 역시 작품의 진면목을 일면 가리는 측면이 없지 않다. 「메밀꽃 필 무렵」은 앞에서 언급한 제2계열의 여러 작품들과 함께 놓고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 자리에서 자세히 설명 할 수 없지만 이 계열의 작품들은 고향으로 요약되는 관습적 힘의 한계를 상기시키는 측면이 강하며 「메밀꽃 필 무렵」은 이런 이야기들의 연쇄 속에 위치한다.
「메밀꽃 필 무렵」은 허생원과 동이의 이야기다. 이 두 사람은 나중에 둘 다 왼손잡이라는 것으로 부자 관계임이 강력하게 암시된다. 지금은 늙어서 병든 나귀처럼 초라해진 허생원의 이야기가 밤을 패면서 이어진다. 그것은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이다. 장돌뱅이로 떠도는 허생원은 봉평장에 들러 밤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에 들어갔다가 성 서방네 처녀를 만난다. 작품은 독자들로 하여금 동이가 이 두 사람의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장성해서 아버지처럼 장돌뱅이가 된 아들이 나이 든 아버지를 업고 달빛 아래 개울을 건너는 장면은 참으로 아름답다. 「메밀꽃 필 무렵」은 신분이 다른 남자와 여자가 결혼이라는 관습적 절차의 울타리 바깥에서 우연히 인연을 맺어 자식을 낳고 이후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의 관계를 인식하지 못한 체 함께 밤길을 걸어가는 이야기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이효석 소설 세계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제도적 관습과 질서의 테두리를 넘어 금기에 접근하는 자연적 존재로서의 사람들, 이러한 ‘월담’을 통해서 실현되거나 좌절되는 욕망과 사랑, 그로 인해 싹트는 절망과 희망의 이야기를 이효석은 즐겨 그렸다. 인간 세계는 좁은 산골 마을조차 제도적 관습과 질서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안에서만 살아가지 못한다. 본성이나 욕망, 사랑의 크기에 비추면 그것은 작다. 위압적이다 해도 종국적인 지배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메밀꽃 필 무렵」은 그러한 자연적 인간의 숨겨진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아주 많이 인용되는 다음의 부분은 그러한 자연의 힘에 동화된 인물들의 모습을 숨 막히도록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혀 하얗었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 『메밀꽃 필 무렵』중에서
이 대목은 이효석 소설 문체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추상적이고 난삽한 개념어를 버리고 감각적이고도 간결한 문장을 즐겨 구사한 작가였다. 필자는 이 선집에서 그러한 이효석 문장의 특성이 잘 나타나도록 교정, 교열에 신경을 썼으며, 특히 당시의 번잡한 문장 기호 등을 정리하여 한결 잘 읽힐 수 있는 작품이 되도록 다듬어내고자 했다.
■ 시각적으로나 의미상으로나 혼잡이 없도록 쉽게 읽을 수 있는 깨끗한 현대역
한마디도 대거리하지 않고 하염없이 나가는 꼴을 보려니 도리어 측은히 여겨졌다. 아직 두 서름서름한 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았을까, 하고 마음이 섬�해졌다. 주제도 넘지, 같은 술손님이면서두 아무리 젊다고 자식 낳게 되는 것을 붙들고 치고 닦아셀 것은 무어야 원. 충주집은 입술을 쫑긋하고 술 붓는 솜씨도 거칠었으나 젊은애들한테는 그것이 약이 된다나 하고 그 자리는 조선달이 얼버무려 넘겼다. 너 녀석한테 반했지. 애숭이를 빨문 죄 된다. 한참 법석을 친 후이다 맘도 생긴데다가 웬일인지 흠뻑 취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허생원은 주는 술잔이면 거의 다 들이켰다.
지문과 대화가 섞인 부분을 아래와 같이 지문과 대화를 분리하여 읽기 쉽도록 하였다
한 마디도 대거리하지 않고 하염없이 나가는 꼴을 보려니 도리어 측은히 여겨졌다. 아직도 서름서름한 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았을까, 하고 마음이 섬�해졌다.
“주제도 넘지, 같은 술손님이면서두 아무리 젊다고 자식 낳게 되는 것을 붙들고 치고 닦아셀 것은 무어야 원.”
충주집은 입술을 쫑긋하고 술 붓는 솜씨도 거칠었으나
“젊은 애들한테는 그것이 약이 된다나.”
하고 그 자리는 조선달이 얼버무려 넘겼다.
“너, 녀석한테 반했지. 애숭이를 빨문 죄 된다.”
한참 법석을 친 후다. 맘도 생긴데다가 웬일인지 흠뻑 취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허생원은 주는 술잔이면 거의 다 들이켰다.
― 「메밀꽃 필 무렵」중에서
빈번한 ‘― ’는 ‘,’로 하거나 아예 없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흙빛에서 초록으로 ― 이 기막힌 신비에 다시 한 번 놀라볼 필요가 없을까.
시험과 속 붉은 물은 물에 약품을 넣으면 그것이 금시에 새파랗게 벼하는 비밀 ― 그것과도 흡사하다. 이 우주의 비밀의 약품 ― 그것은 결국 알 바 없을까. 한 톨의 보리알이 열 낟으로 나는 이치는 가르치는 이 있어도 그 보리알에서 푸른 잎이 돋는 조화의 동기는 옳게 말하는 이 없는 듯하다.
흙빛에서 초록으로, 이 기막힌 신비에 다시 한 번 놀라볼 필요가 없을까.
시험과 속 붉은 물은 물에 약품을 넣으면 그것이 금시에 새파랗게 벼하는 비밀, 그것과도 흡사하다. 이 우주의 비밀의 약품, 그것은 결국 알 바 없을까. 한 톨의 보리알이 열 낟으로 나는 이치는 가르치는 이 있어도 그 보리알에서 푸른 잎이 돋는 조화의 동기는 옳게 말하는 이 없는 듯하다.
― 「들」중에서
■ 능금의 사상, 풋볼의 사상, 반전反戰의 사상
다음으로 이러한 두 번째 시기의 작품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서 있는 작품들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이 선집에 실린 작품들까지 포함해서 말하면 「프렐류드」(『동광』, 1931. 12?1932. 2), 「오리온과 능금」, 「10월에 피는 능금꽃」(『삼천리』, 1933. 2), 「돈」, 「수탉」, 「가을의 서정」(『삼천리』, 1933. 12) 등이 그것인데, 이 선집에는 작품의 완성도와 그 밖의 사정을 감안하여 「오리온과 능금」, 「돈」, 「수탉」 등 세 작품을 실었다. 이들 작품군에서 이효석은 자연과 인간 또는 인간과 자연의 대조법을 보여준다. 그는 자연과 자연에 뿌리박은 인상의 본성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사람의 삶에 내재된 부조리를 드러내고 그럼에도 그 삶에 대한 긍정을 실현해 보고자 했다. 특히, 이 선집에 실리지 않은 「프렐류드」의 주인공 주화는 당시에 팽배한 계몽주의적 마르크시즘의 이성주의에 반발하여 “인류의 모든 움직임과 혁명을 조종하는 근본은 식과 색”이라는 생각을 표명하고 있으며, 「오리온과 능금」의 주인공 격의 여성 ‘나오미’는 “사랑인 이상 도저히 사업을 통해서만은 들 수 없는 것이요, 무엇보다도 먼저 피차의 시각을 통해서 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당대의 이성 중심적 마르크시즘의 한계에 도전하여 자연적 이고 우주적인 인간 개체의 본성적 측면을 부각시키려 한 이효석의 대담한 기획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다시 한 번 음미해보아야 할 작품이 두 번째 시기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때에 발표된 「소라」다. 여기에는 금지된 책을 소지한 죄목으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학수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작품은 이효석의 또 다른 단편소설인 「약령기」(『삼천리』, 1930. 9)의 모티프를 살려 새로 쓴 것이기도 하고, 변소라는 좁은 공간이 선사하는 역설적인 자유를 보여주는 「수탉」의 이야기와도 통하는 점이 있다. 이 작품에서 학교의 감시에 시달리는 학수는 “네 쪽의 벽으로 된 반 평도 차지 못하는 공간”을 “가장 자유롭고 가장 너그럽고 가장 넓고 가장 신성하게” 여긴다.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추접하고 구역나는 곳”을 “가장 자유롭고 신성한” 곳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속에서 그는 “바다”로 상징되는 “자유의 세상”을 꿈꾼다. “바다”는 변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공간이다. “바다”는 “무한대의 힘”이요 “자랑”이다. 학수는 어떻게 하면 이 “바다”의 마력을 어떻게 사람의 삶과 조화시킬 수 있는지 고민한다. 그리고 그 해답의 단서는 뜻밖에도 친우가 선사한 “풋볼”에 있었다. “풋볼”을 차면서 학수는 “새로운 힘과 새로운 방법을 발견한”다. 아마도 “풋볼”의 불규칙한 리듬이 신축자재한 “바다”의 율동과 상통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이르면 이효석은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지향한 데서 더 나아가 일종의 카오스모폴리타니즘을 지향한 것처럼 해석 된다.
일제 말기는 이러한 이효석의 사상이 시험대에 오른 때였다고 할 수 있다. 이효석 창작의 세 번째 시기가 시작되던 1940년경은 이효석이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체제의 압박에서 오는 강렬한 위기의식에 사로잡힌 해였다.
이효석의 「하얼빈」은 그러한 이효석의 내면 심리를 아주 잘 보여주는 문제작이다. 여기서 ‘나’는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하얼빈을 목도한다. 해마다 찾아가는 하얼빈이건만 올해는 더욱더 많은 변화가 감지된다. 독일에 프랑스가 패한 정세 속에 가로놓인 하얼빈의 키타이스카야 거리는 “낡고 그윽한 것이 점점 허덕거리며 물러서는 뒷자리에 새것이 부락스럽게 밀려드는 꼴”을 보여준다. 이것을 ‘나’는 풍자적으로 “위대한 교대”라고 표현하면서 애수에 사로잡힌다. 여기서 하얼빈은 더 이상, 결코, 외부와 미래를 향해 열린 가능성의 공간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하얼빈에서 사귄 카바레 여급 ‘유우라’는 이 도시의 변화를 “식민지”라는 말로 표현한다. “보세요. 저 잡동사니의 어수선한 꼴을. 키타이스카야는 이제는 벌써 식민지예요. 모든 것이 꿈결같이 지나가 버렸어요”라고 탄식하는 ‘유우라’는 시대의 어둠 속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시대의 변화 속에서 현재라는 것의 실재성을 놓고 심각하게 고민한다. ‘나’는 “창조의 진의”, 즉 “무슨 까닭으로 하필 현재의 이 우연한 결정이 있게 되었는가”를 궁금해 한다. “현재”가 이미 하나의 “우연”이라면 “현재와 다른 우연의 결정을 생각할 수 없을까” 하고 고민한다. 그리하여 “지금보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은 없는지 생각하면서 그런 가능성에 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대의 어둠 속에서 폴란드 태생의 러시아 여성인 ‘유우라’와 ‘나’는 서로 다른 “생각의 껍질” 속에서 번민한다. 서로는 서로의 번민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그 껍질 속으로는 국외의 다른 사람은 도저히 비집고 들길이 없다” ‘나’와 ‘유우라’의 진정한 교류는 이 “생각의 껍질”을 벗어버릴 때 비로소 가능해질 테지만 두 사람은 그럴 수 없다. 서로가 가진 존재의 굴레에서, “생각의 껍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유우라의 “식민지”라는 말은 키타이스카야 거리의 변화를 목도한 ‘나’의 머릿속에 강한 울림을 선사한다. ‘나’ 자신이 식민지 지식인이며 임박한 태평양전쟁은 이 식민지의 어둠을 더욱 깊게 파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효석이 당대의 사회와 역사에 결코 무지한 작가가 아니었고 이에 대한 깊은 비평의식을 가진 작가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은 얼마든지 많다. 이 가운데 하나는 준보라는 이름의 인물이 나오는 자전적 소설들이다. 이효석은 1940년 전후에 채만식, 이태준, 박태원, 김남천 등과 함께 자전적 소설을 많이 발표한 작가다. 이 시대의 자전적 소설들은 시대와 시국에 대한 작가적 자의식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인데, 이효석의 경우에 이는 ‘준보’라는 이름을 가지고 등장하는 인물을 가진 소설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준보’ ‘현보’ ‘학보’ ‘문오’ 등의 이름을 가진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은 ‘나’가 주인공으로 나타나는 소설들 중 일부와 함께 이효석의 자전적 소설 범주를 형성한다. 이 가운데에서도 그 자전적 성격이 가장 농후한 경우가 바로 앞에서 언급한 세 번째 시기의 작품들이다.
「풀잎」과 「일요일」은 이효석의 아내 이경원이 타계한 후의 생활 세계를 그리고 있다. 작가는 「풀잎」에 이어 바로 「일요일」을 썼고, 이 사정이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작품들에서 작중 주인공은 아내가 타계한 후의 쓸쓸함과 허무를 딛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있다. 세상은 이 사랑에 대해 무지하다. 세인들은 격이 맞지 않는 사랑이라고 하여 두 남녀의 결합을 반대한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두 사람은 사랑을 이어간다. 그런데 여기서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세인들의 시선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세계 제2차 대전 전야의 시국이 두 사람의 사랑의 전개를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이 점에서 두 작품은 이 시대의 자전적 소설에 함축된 모종의 정치적 저항성을 드러낸다.
「풀잎」에서 준보는 “헐어진 가정을 쌓아서 새로운 생활을 설계해야 하고 고독을 다스려서 보다 높은 사업을 이루어야 함이 인간 경영에 주어진 영원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또 그것은 “자멸의 길을 버리고 창조의 길을 찾아야 함이 인류의 행복을 가져오는 까닭”이라고 한다. 이처럼 인류가 자멸을 버리고 창조를 구해야 한다는 것은 일제가 추구하고 있던 전쟁을 버리고 그 자신이 생활 속에서 향유해 나가고자 하는 사랑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고를 표현한 것이다. 「풀잎」에서 평양 거리는 바야흐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감겨 있다. “방공연습이 시작된 지 여러 날이 거듭되어 밤이면 거리는 등화관제로 어둠 속에 닫혀졌다” 이 어둠 속에서 “몇 날의 밤의 소요를 계속하는 두 사람은 외딴 골목을 골라” 걷는다. 이들은 마치 천황 만세의 물결 속에서 밤의 유곽을 찾아 떠돌던, 일본의 작가 나가이 가후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같기도 하다. 전쟁의 그늘 밑에서 육체의 쾌락에 탐닉해 들어간, 영화〈감각의 제국〉에 나오는 주인공들 같기도 하다. 그러나 준보의 내면세계는 이들의 것보다 훨씬 화창하고 이상주의적이다. 그것은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시집 『풀잎 Leaves of Grass』처럼 “자아와 비아의 통합적 비전”을 추구한다. 준보는 사랑하는 여인 실에게 휘트먼의 시를 읊어주면서 비평을 덧붙이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휘트먼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 아름답고 고르고 평등하고 사랑스럽다. 하나도 추하고 밉고 차별진 것이 없다. 예수같이 인자하고 바다같이 관대하다. 그는 아가페적인 사랑의 가치를 노래한 휘트먼의 시를 읊어주기도 한다. 여기서 “여자 됨”은 “남자 됨”과 마찬가지로 위대하다. 또한 “남자의 어머니 됨같이 위대한 것은 없”다.
전쟁이 예찬하는 남성적 가치를 배격하고 대신에 어머니의 부드러움과 관대함을 강조하는 준보의 의식은 이 작품이 발표된 시대의 천황제 파시즘 조류 및 국민문학론의 전쟁 예찬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전쟁의 시대에 어머니는 군국의 어머니처럼 전쟁의 여신으로 표상될 수도 있지만 이효석은 그런 어머니 대신에 평화와 사랑의 어머니를 제시했다. 이러한 작가적 행위는 자기가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깊은 비평및 비판 의식 없이는 불가능하다.
「일요일」은 그러한 「풀잎」의 후속작으로 쓰였다. 여기에는 죽음의 어두움과 고통 대신에 삶의 화창함과 기쁨을 추구한 이효석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발발한 때는 1941년 12월 8일이고 집필 시기를 따져 보면 「일요일」은 바로 그 시기에 쓰였다. 단적으로 말해 「풀잎」과 「일요일」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옥죄어 오는 체제의 기반羈絆에서 벗어나, 전쟁 대신에 평화, 대동아주의 대신에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주장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 2018년 동계올림픽의 고장, 평창이 낳은 작가
이효석은 뭣보다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조광』, 1936. 10)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의 명성에 힘입어 그를 기념하는 이효석문학관은 한국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문학 기념관이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효석과 「메밀꽃 필 무렵」을 거의 같은 어휘로 이해할 정도로 이 작품이 크게 부각되어 있는 까닭에, 다른 훌륭한 작품들과 그의 삶 자체는 어둠 속에 묻혀 있는 듯한 아쉬움이 있다.
한국의 문학인들이나 독자들은 어떤 작품을 읽을 때 그 직접적인 사회적 효용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효석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단편소설의 작가이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그다지 신비스러울 것도, 탐색해 볼 것도 없는 작가인 듯한 편견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가을이 되면 낙엽을 태우고, 쇼팽을 듣고, 원두커피를 즐겨 마시고, 사랑과 본성의 가치를 높이 본 그의 취향과 가치의식은 오늘에까지 있는 그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필자는 이효석이 세상에 태어난 지 백 년이 되는 해에 개최된 한 학술대회를 준비하면서 그의 작품 모두를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이 나라 문학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도 이채를 발하는 작품들을 낳은 작가였다. 또 그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적 능력을 보여준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예술을 지극히 사랑한 사람이었고 나아가 인위적인 사회에 대하여 자연적인 본성의 가치를 높이 사랑한 작가였다.
그의 전 작품을 읽고 그에 관한 논문을 쓰고 또 그의 작품들에 대해 대학에서 가르치는 과정에서 필자는 그의 대표작들을 새로 가려 뽑아 선집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채만식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채만식 대표소설 선집을 펴냈듯 이효석을 넓게, 균형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를 위한 선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필자는 몇 년 전에 이미 이효석의 수필들을 정리한 산문 선집도 펴낸 바 있다.
선집에 대한 구상이 시작된 지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고 더 미루기는 힘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마침 2018년에는 그의 고향인 강원도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된다고 하니 이효석의 진면목을 알리기 위해서는 아주 좋은 때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예술과 자연을 사랑한 작가, 아름다운, 서정적인, 음악적인 소설의 작가 이효석의 면모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의미와 가치를 외부 세계에 알리는 계기도 될 것이다.
지난해 가을 필자는 강원도 문막 사람들과 함께 평창의 이효석 문학관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우리에게 이효석이 있음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고. 현실을 의식하면서도 현실 너머를 생각할 줄 알았던 그의 존재로 말미암아 한국의 현대문학은 빈핍함을 그만큼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필자가 2007년에 발표한 글에서 상당 부분을 가져와 작품의 설명에 충당하였음을 밝혀둔다.
- 방민호 (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 작가 소개
저 : 이효석
李孝石, 가산
한국 단편문학의 수작으로 손꼽히는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 성(性) 본능과 개방을 추구한 새로운 작품경향으로 주목을 끌기도 했던 1920년대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였다.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경성 제1고보(현재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현재의 서울대학교) 법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28년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동반작가로 데뷔하였다.
『행진곡』 『기우』 등을 발표하면서 동반작가를 청산하고 구인희(九人會)에 참여, 『돈』『수탉』 등 향토색이 짙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34년 평양 숭실전문 교수가 된 후 『산』『들』 등 자연과의 교감을 수필적인 필체로 유려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발표했고, 1936년에는 한국 단편문학의 전형적인 수작이라고 할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하였다.
그의 문체는 세련된 언어, 풍부한 어휘, 시적인 분위기로 요약할 수 있으며, 시적인 정서로 소설(산문문학)의 예술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2년 평양에서 결핵성 뇌막염으로 3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편 : 방민호
문학평론가, 시인. 1994년 창비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비평활동을 시작했고, 2001년 <옥탑방> 등의 시로 월간문예지 《현대시》의 신인추천작품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서로 《일제 말기 한국문학의 담론과 텍스트》,《채만식과 조선적 근대문학의 구상》이 있고, 시집으로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가 있다. 평론집으로는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 《납함 아래의 침묵》, 《문명의 감각》, 《행인의 독법》, 《감각과 언어의 크레바스》 등이 있다. 또한 산문집으로 《명주》가 있다.
▣ 주요 목차
메밀꽃 필 무렵 ○ 007
낙엽기 ○ 023
산 ○ 035
들 ○ 047
소라 ○ 073
수탉 ○ 093
돈 ○ 103
풀잎 ○ 113
일요일 ○ 159
하얼빈 ○ 175
오리온과 능금 ○ 193
해설 ○ 209
■ 이효석의 단편소설의 창작 시기와 그 대표작들
예부터 재능 많은 작가들은 하늘에서 서둘러 거두어 가는 법인지 이효석 또한 서른다섯 살이라는 이르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907년 2월 23일에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난 그는 1942년 5월 25일에 지금은 갈 수 없는 북쪽 평양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정식으로 문학 창작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28년 7월 『조선지광』이라는 잡지에 「도시와 유령」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한 때였으니, 그의 창작 활동은 십오 년이 다 못 되는 사이에 끝나고 만 셈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이효석은 실로 많은 단편소설, 중·장편소설, 그리고 희곡과 산문들을 남겼으며 그의 작품들이 지금도 이곳저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금 그의 아드님인 이우현 선생과 『이효석의 삶과 문학』의 저자 이상옥 선생께서 이효석의 새 전집을 제작, 완성해 가고 있다. 이효석 문학의 전체 규모가 조만간 더욱 밝게 드러날 것이다.
필자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그의 소설 창작 과정은 크게 세 개의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시기는 이른바 ‘동반자 작가’ 시기에 해당하는 때로서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까지 유행하던 현실 비판적 사회운동과의 교호 관계가 엿보이는 작품들을 창작했다. 창작집 『노령근해』(1931)가 이를 대표한다. 그러나 이때에도 그는 리얼리즘에 머무르지 않고 부정적 현실에 대한 낭만적 대타항으로서의 이상향을 즐겨 그리고 또 삶의 정치경제적 측면을 넘어 인간의 본성적 사랑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선집에 실린 「오리온과 능금」(『삼천리』,1932. 3)이 그 대표적인 예다.
둘째 시기는 1933년경에 발표된 「돈」(『조선문학』, 1933. 10), 「수탉」(『삼천리』, 1933. 11) 등을 계기로 완연히 삶에서 성과 본성과 사랑이 갖는 의의에 깊은 관심을 표명한 작품들을 창작하게 된 때다. 장편소설 『화분』(인문사, 1939)에 이르는 이 시기에 그는 이효석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주옥같은 명편들을 창작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메밀꽃 필 무렵」이며, 「낙엽기」(『백광』, 1937. 1) 같은 작품들이 모두 이때 발표되었고, 연작성 강한 「산」(『삼천리』, 1936. 1), 「들」(『신동아』, 1936. 3), 「소라」(『조선농민』, 1938. 9) 같은 문제작들도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셋째 시기는 이효석이 장편소설『창공』(『벽공무한』, 『매일신보』, 1940.1. 25.~1940. 7. 28.)을 발표한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에 해당하며, 이 시기에 이효석은 한편으로는 일본어 소설을 발표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 시기의 특징적 소설 현상 가운데 하나인 사소설 쓰기로 나아갔다. 이 선집에 실린 「하얼빈哈爾濱」(『문장』, 1940. 10), 「풀잎」(『춘추』, 1942. 1), 「일요일」(『삼천리』, 1942. 1) 등이 그것으로, 이 작품들은 지금까지 일반 독자들에 의해서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연구자들 역시 큰 의의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러나 일제 말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이효석은 현실을 지극히 비판적으로 날카롭게 꿰뚫어 보고 있었음이 이들 작품을 통해 드러난다.
이 선집에서 필자는 그의 폭넓은 작품 세계를 모두 열한 편의 단편소설로 축약해 보이고자 한다. 한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 가급적 많은 작품을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선 이 열한 편만으로도 이효석이 어떤 작가인지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아쉬운 점은 첫 번째 시기의 작품들을 싣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는 필자 나름의 몇 가지 고려가 작용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전문가들만의 것이 아니라 소설을 애호하는 많은 분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따라서 되도록 많은 사람이 향유할 수 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책을 엮어 내고자 했다.
■ 인공적 사회와 본성적 자연의 대비
그러면 이효석 소설의 본령으로 간주되고 있는 두 번째 창작 시기의 작품들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보도록 한다. 이효석의 소설 가운데에는 자연을 중심적인 테마로 삼은 두 계열의 작품들이 있다. 아름답고 섬세한 이효석 소설의 문장미의 진수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두 계열의 소설들에서다. 그중 제1계열은 「산」, 「들」, 「소라」 등이 대표작이다. 이 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회와 역사의 외부에서 자연을 향유하며 그 자연 쪽에서 인간 사회와 역사를 조망하는 시각을 보여준 작품들이다.
다음으로, 제2계열은 「분녀」, 「고사리」, 「메밀꽃 필 무렵」, 「개살구」, 「산협」 등으로 대표되는 것으로서, 산골과 전원을 배경으로 체제와 관습의 울타리를 넘나들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먼저, 제1계열의 작품들에는 자연을 중심에 놓고 인간의 삶을 평가하고자 하는 이효석의 시각이 예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들 작품들은 자연으로 돌아간 인물들이 얻은 자유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산」의 주인공 중실은 마을 밑에서 머슴살이를 하다 주인영감에게 첩과 놀아난다는 의심을 받게 되자 주인집에서 뛰쳐나왔을 뿐만 아니라 아예 마을을 떠나 산속에 들어와 홀로 살아간다. 주인집에 살면서 그는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해마다 새경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고 옷 한 벌 버젓하게 얻어 입어본 적이 없다. 하다못해 명절에 놀이할 돈도 얻지 못해 개 보름 쇠듯 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마을을 떠나 산으로 올라와 버린 그는 그 어떤 존재보다 자유롭다. 산속에서 그는 나무가 된 것 같은 기쁨을 맛본다. “몸은 한 포기의 나무다” 세속의 사람살이에 지친 중실에게 산은 살아 있는 인간 개체로서의 생명력을 회복시켜 준다.
「들」은 「산」보다도 깊이 들어간다. 여기서 주인공 학보는 「산」의 중실과 같이 세속 또는 사회에서 쫓겨난 존재다.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고향에 돌아와 있는 것이다. 「들」의 공간적 배경을 이루는 학보의 고향은 「산」에서의 산과 같은 기능을 한다. 또 바로 여기에 이효석의 소설에 나타나는 고향의 상징적 의미를 헤아릴 수 있는 열쇠가 있다. 이효석 소설의 고향은 백석의 시에 나오는 고향과는 달리 공동체적 유대와 친밀감, 전근대적 질서와 관습의 세계가 아니다. 같은 농촌이고 산골이라고 해도 이효석의 소설에 나오는 고향은 그러한 질서나 관습조차 작용하지 않는 공간, 자연적이고 야생적인 삶을 가능케 하는 공간으로 나타난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란 곧 산천을 사랑하고 벌판을 반가워하는 심정”이라는 학보의 생각은 이효석의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해도 될 것이다.
작중 학보는 「산」에서의 중실처럼 봄의 들의 경이로운 초록빛에 한껏 매료되어 있다. 학교에 다니며 운동을 하는 그는 중실이 세속에서 지주의 횡포에 시달렸던 것처럼 감시와 구속에 쫓기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들은 그에게 깊은 해방감을 선사한다. 야취에 젖은 그는 들에서 옥분이를 만나 그 민출한 자태에 마음을 빼앗긴다. 둘은 다음날 과수원에서 만나 벌판에서 장난치는 자웅들처럼 야합을 한다. 친우인 문수와 함께 들판에서 야영을 하면서는 무한한 우주의 운행에 마음을 빼앗긴다. 야영은 그에게 들에 대한 깊은 일체감을 심어준다. 이렇게 자연 속에 파묻혀 자연과 하나가 됨으로써 학보는 비로소 사회를 원근법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사회라는 것, 그것은 공포를 내장한 메커니즘이다.
무한하고도 그윽한 자연에 비하면 세속은 한갓 좁디좁은 구속 체계일 뿐이다. 자연 쪽에서 보면 인간의 사회와 역사는 “공포”를 자아내는 강압의 체계다. 「산」과 「들」의 주인공들은 자연 쪽에서 멀리 작게 보이는 사회와 역사를 조망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사회나 역사에 대한 인식을 구비치 못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지주와 학교 체제에 저항하였고 그 때문에 세속에서 자의, 타의로 추방되었다. 세속에 머물러 있을 때는 그것이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일단 세속에서 벗어나면 사회와 역사는 멀리 작게 보인다. 자연과 우주의 시공간에 통합된 사회와 역사는 보잘것없고 초라하다. 「산」과 「들」은 사람들 위에 무섭게 군림하는 식민지 체제 또는 억압적인 사회의 힘을 자연에 합류한 사람의 살아 있는 힘에 대비시킨다.
한편 제2계열에 속하는 소설들 가운데에는 이효석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메밀꽃 필 무렵」이 포함되어 있다. 이 소설은 서정적인 소설로 이름 높은데 오히려 그 때문에 이 작품을 포함한 일군의 작품들 속에서 유기적으로 분석되고 평가되지 못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 작품에 따라붙는 서정소설로서의 명성 역시 작품의 진면목을 일면 가리는 측면이 없지 않다. 「메밀꽃 필 무렵」은 앞에서 언급한 제2계열의 여러 작품들과 함께 놓고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 자리에서 자세히 설명 할 수 없지만 이 계열의 작품들은 고향으로 요약되는 관습적 힘의 한계를 상기시키는 측면이 강하며 「메밀꽃 필 무렵」은 이런 이야기들의 연쇄 속에 위치한다.
「메밀꽃 필 무렵」은 허생원과 동이의 이야기다. 이 두 사람은 나중에 둘 다 왼손잡이라는 것으로 부자 관계임이 강력하게 암시된다. 지금은 늙어서 병든 나귀처럼 초라해진 허생원의 이야기가 밤을 패면서 이어진다. 그것은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이다. 장돌뱅이로 떠도는 허생원은 봉평장에 들러 밤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에 들어갔다가 성 서방네 처녀를 만난다. 작품은 독자들로 하여금 동이가 이 두 사람의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장성해서 아버지처럼 장돌뱅이가 된 아들이 나이 든 아버지를 업고 달빛 아래 개울을 건너는 장면은 참으로 아름답다. 「메밀꽃 필 무렵」은 신분이 다른 남자와 여자가 결혼이라는 관습적 절차의 울타리 바깥에서 우연히 인연을 맺어 자식을 낳고 이후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의 관계를 인식하지 못한 체 함께 밤길을 걸어가는 이야기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이효석 소설 세계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제도적 관습과 질서의 테두리를 넘어 금기에 접근하는 자연적 존재로서의 사람들, 이러한 ‘월담’을 통해서 실현되거나 좌절되는 욕망과 사랑, 그로 인해 싹트는 절망과 희망의 이야기를 이효석은 즐겨 그렸다. 인간 세계는 좁은 산골 마을조차 제도적 관습과 질서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안에서만 살아가지 못한다. 본성이나 욕망, 사랑의 크기에 비추면 그것은 작다. 위압적이다 해도 종국적인 지배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메밀꽃 필 무렵」은 그러한 자연적 인간의 숨겨진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아주 많이 인용되는 다음의 부분은 그러한 자연의 힘에 동화된 인물들의 모습을 숨 막히도록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혀 하얗었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 『메밀꽃 필 무렵』중에서
이 대목은 이효석 소설 문체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추상적이고 난삽한 개념어를 버리고 감각적이고도 간결한 문장을 즐겨 구사한 작가였다. 필자는 이 선집에서 그러한 이효석 문장의 특성이 잘 나타나도록 교정, 교열에 신경을 썼으며, 특히 당시의 번잡한 문장 기호 등을 정리하여 한결 잘 읽힐 수 있는 작품이 되도록 다듬어내고자 했다.
■ 시각적으로나 의미상으로나 혼잡이 없도록 쉽게 읽을 수 있는 깨끗한 현대역
한마디도 대거리하지 않고 하염없이 나가는 꼴을 보려니 도리어 측은히 여겨졌다. 아직 두 서름서름한 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았을까, 하고 마음이 섬�해졌다. 주제도 넘지, 같은 술손님이면서두 아무리 젊다고 자식 낳게 되는 것을 붙들고 치고 닦아셀 것은 무어야 원. 충주집은 입술을 쫑긋하고 술 붓는 솜씨도 거칠었으나 젊은애들한테는 그것이 약이 된다나 하고 그 자리는 조선달이 얼버무려 넘겼다. 너 녀석한테 반했지. 애숭이를 빨문 죄 된다. 한참 법석을 친 후이다 맘도 생긴데다가 웬일인지 흠뻑 취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허생원은 주는 술잔이면 거의 다 들이켰다.
지문과 대화가 섞인 부분을 아래와 같이 지문과 대화를 분리하여 읽기 쉽도록 하였다
한 마디도 대거리하지 않고 하염없이 나가는 꼴을 보려니 도리어 측은히 여겨졌다. 아직도 서름서름한 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았을까, 하고 마음이 섬�해졌다.
“주제도 넘지, 같은 술손님이면서두 아무리 젊다고 자식 낳게 되는 것을 붙들고 치고 닦아셀 것은 무어야 원.”
충주집은 입술을 쫑긋하고 술 붓는 솜씨도 거칠었으나
“젊은 애들한테는 그것이 약이 된다나.”
하고 그 자리는 조선달이 얼버무려 넘겼다.
“너, 녀석한테 반했지. 애숭이를 빨문 죄 된다.”
한참 법석을 친 후다. 맘도 생긴데다가 웬일인지 흠뻑 취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허생원은 주는 술잔이면 거의 다 들이켰다.
― 「메밀꽃 필 무렵」중에서
빈번한 ‘― ’는 ‘,’로 하거나 아예 없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흙빛에서 초록으로 ― 이 기막힌 신비에 다시 한 번 놀라볼 필요가 없을까.
시험과 속 붉은 물은 물에 약품을 넣으면 그것이 금시에 새파랗게 벼하는 비밀 ― 그것과도 흡사하다. 이 우주의 비밀의 약품 ― 그것은 결국 알 바 없을까. 한 톨의 보리알이 열 낟으로 나는 이치는 가르치는 이 있어도 그 보리알에서 푸른 잎이 돋는 조화의 동기는 옳게 말하는 이 없는 듯하다.
흙빛에서 초록으로, 이 기막힌 신비에 다시 한 번 놀라볼 필요가 없을까.
시험과 속 붉은 물은 물에 약품을 넣으면 그것이 금시에 새파랗게 벼하는 비밀, 그것과도 흡사하다. 이 우주의 비밀의 약품, 그것은 결국 알 바 없을까. 한 톨의 보리알이 열 낟으로 나는 이치는 가르치는 이 있어도 그 보리알에서 푸른 잎이 돋는 조화의 동기는 옳게 말하는 이 없는 듯하다.
― 「들」중에서
■ 능금의 사상, 풋볼의 사상, 반전反戰의 사상
다음으로 이러한 두 번째 시기의 작품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서 있는 작품들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이 선집에 실린 작품들까지 포함해서 말하면 「프렐류드」(『동광』, 1931. 12?1932. 2), 「오리온과 능금」, 「10월에 피는 능금꽃」(『삼천리』, 1933. 2), 「돈」, 「수탉」, 「가을의 서정」(『삼천리』, 1933. 12) 등이 그것인데, 이 선집에는 작품의 완성도와 그 밖의 사정을 감안하여 「오리온과 능금」, 「돈」, 「수탉」 등 세 작품을 실었다. 이들 작품군에서 이효석은 자연과 인간 또는 인간과 자연의 대조법을 보여준다. 그는 자연과 자연에 뿌리박은 인상의 본성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사람의 삶에 내재된 부조리를 드러내고 그럼에도 그 삶에 대한 긍정을 실현해 보고자 했다. 특히, 이 선집에 실리지 않은 「프렐류드」의 주인공 주화는 당시에 팽배한 계몽주의적 마르크시즘의 이성주의에 반발하여 “인류의 모든 움직임과 혁명을 조종하는 근본은 식과 색”이라는 생각을 표명하고 있으며, 「오리온과 능금」의 주인공 격의 여성 ‘나오미’는 “사랑인 이상 도저히 사업을 통해서만은 들 수 없는 것이요, 무엇보다도 먼저 피차의 시각을 통해서 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당대의 이성 중심적 마르크시즘의 한계에 도전하여 자연적 이고 우주적인 인간 개체의 본성적 측면을 부각시키려 한 이효석의 대담한 기획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다시 한 번 음미해보아야 할 작품이 두 번째 시기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때에 발표된 「소라」다. 여기에는 금지된 책을 소지한 죄목으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학수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작품은 이효석의 또 다른 단편소설인 「약령기」(『삼천리』, 1930. 9)의 모티프를 살려 새로 쓴 것이기도 하고, 변소라는 좁은 공간이 선사하는 역설적인 자유를 보여주는 「수탉」의 이야기와도 통하는 점이 있다. 이 작품에서 학교의 감시에 시달리는 학수는 “네 쪽의 벽으로 된 반 평도 차지 못하는 공간”을 “가장 자유롭고 가장 너그럽고 가장 넓고 가장 신성하게” 여긴다.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추접하고 구역나는 곳”을 “가장 자유롭고 신성한” 곳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속에서 그는 “바다”로 상징되는 “자유의 세상”을 꿈꾼다. “바다”는 변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공간이다. “바다”는 “무한대의 힘”이요 “자랑”이다. 학수는 어떻게 하면 이 “바다”의 마력을 어떻게 사람의 삶과 조화시킬 수 있는지 고민한다. 그리고 그 해답의 단서는 뜻밖에도 친우가 선사한 “풋볼”에 있었다. “풋볼”을 차면서 학수는 “새로운 힘과 새로운 방법을 발견한”다. 아마도 “풋볼”의 불규칙한 리듬이 신축자재한 “바다”의 율동과 상통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식에 이르면 이효석은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지향한 데서 더 나아가 일종의 카오스모폴리타니즘을 지향한 것처럼 해석 된다.
일제 말기는 이러한 이효석의 사상이 시험대에 오른 때였다고 할 수 있다. 이효석 창작의 세 번째 시기가 시작되던 1940년경은 이효석이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체제의 압박에서 오는 강렬한 위기의식에 사로잡힌 해였다.
이효석의 「하얼빈」은 그러한 이효석의 내면 심리를 아주 잘 보여주는 문제작이다. 여기서 ‘나’는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하얼빈을 목도한다. 해마다 찾아가는 하얼빈이건만 올해는 더욱더 많은 변화가 감지된다. 독일에 프랑스가 패한 정세 속에 가로놓인 하얼빈의 키타이스카야 거리는 “낡고 그윽한 것이 점점 허덕거리며 물러서는 뒷자리에 새것이 부락스럽게 밀려드는 꼴”을 보여준다. 이것을 ‘나’는 풍자적으로 “위대한 교대”라고 표현하면서 애수에 사로잡힌다. 여기서 하얼빈은 더 이상, 결코, 외부와 미래를 향해 열린 가능성의 공간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하얼빈에서 사귄 카바레 여급 ‘유우라’는 이 도시의 변화를 “식민지”라는 말로 표현한다. “보세요. 저 잡동사니의 어수선한 꼴을. 키타이스카야는 이제는 벌써 식민지예요. 모든 것이 꿈결같이 지나가 버렸어요”라고 탄식하는 ‘유우라’는 시대의 어둠 속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시대의 변화 속에서 현재라는 것의 실재성을 놓고 심각하게 고민한다. ‘나’는 “창조의 진의”, 즉 “무슨 까닭으로 하필 현재의 이 우연한 결정이 있게 되었는가”를 궁금해 한다. “현재”가 이미 하나의 “우연”이라면 “현재와 다른 우연의 결정을 생각할 수 없을까” 하고 고민한다. 그리하여 “지금보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은 없는지 생각하면서 그런 가능성에 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시대의 어둠 속에서 폴란드 태생의 러시아 여성인 ‘유우라’와 ‘나’는 서로 다른 “생각의 껍질” 속에서 번민한다. 서로는 서로의 번민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그 껍질 속으로는 국외의 다른 사람은 도저히 비집고 들길이 없다” ‘나’와 ‘유우라’의 진정한 교류는 이 “생각의 껍질”을 벗어버릴 때 비로소 가능해질 테지만 두 사람은 그럴 수 없다. 서로가 가진 존재의 굴레에서, “생각의 껍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유우라의 “식민지”라는 말은 키타이스카야 거리의 변화를 목도한 ‘나’의 머릿속에 강한 울림을 선사한다. ‘나’ 자신이 식민지 지식인이며 임박한 태평양전쟁은 이 식민지의 어둠을 더욱 깊게 파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효석이 당대의 사회와 역사에 결코 무지한 작가가 아니었고 이에 대한 깊은 비평의식을 가진 작가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은 얼마든지 많다. 이 가운데 하나는 준보라는 이름의 인물이 나오는 자전적 소설들이다. 이효석은 1940년 전후에 채만식, 이태준, 박태원, 김남천 등과 함께 자전적 소설을 많이 발표한 작가다. 이 시대의 자전적 소설들은 시대와 시국에 대한 작가적 자의식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인데, 이효석의 경우에 이는 ‘준보’라는 이름을 가지고 등장하는 인물을 가진 소설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준보’ ‘현보’ ‘학보’ ‘문오’ 등의 이름을 가진 남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은 ‘나’가 주인공으로 나타나는 소설들 중 일부와 함께 이효석의 자전적 소설 범주를 형성한다. 이 가운데에서도 그 자전적 성격이 가장 농후한 경우가 바로 앞에서 언급한 세 번째 시기의 작품들이다.
「풀잎」과 「일요일」은 이효석의 아내 이경원이 타계한 후의 생활 세계를 그리고 있다. 작가는 「풀잎」에 이어 바로 「일요일」을 썼고, 이 사정이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작품들에서 작중 주인공은 아내가 타계한 후의 쓸쓸함과 허무를 딛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고 있다. 세상은 이 사랑에 대해 무지하다. 세인들은 격이 맞지 않는 사랑이라고 하여 두 남녀의 결합을 반대한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두 사람은 사랑을 이어간다. 그런데 여기서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세인들의 시선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세계 제2차 대전 전야의 시국이 두 사람의 사랑의 전개를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이 점에서 두 작품은 이 시대의 자전적 소설에 함축된 모종의 정치적 저항성을 드러낸다.
「풀잎」에서 준보는 “헐어진 가정을 쌓아서 새로운 생활을 설계해야 하고 고독을 다스려서 보다 높은 사업을 이루어야 함이 인간 경영에 주어진 영원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또 그것은 “자멸의 길을 버리고 창조의 길을 찾아야 함이 인류의 행복을 가져오는 까닭”이라고 한다. 이처럼 인류가 자멸을 버리고 창조를 구해야 한다는 것은 일제가 추구하고 있던 전쟁을 버리고 그 자신이 생활 속에서 향유해 나가고자 하는 사랑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고를 표현한 것이다. 「풀잎」에서 평양 거리는 바야흐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감겨 있다. “방공연습이 시작된 지 여러 날이 거듭되어 밤이면 거리는 등화관제로 어둠 속에 닫혀졌다” 이 어둠 속에서 “몇 날의 밤의 소요를 계속하는 두 사람은 외딴 골목을 골라” 걷는다. 이들은 마치 천황 만세의 물결 속에서 밤의 유곽을 찾아 떠돌던, 일본의 작가 나가이 가후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같기도 하다. 전쟁의 그늘 밑에서 육체의 쾌락에 탐닉해 들어간, 영화〈감각의 제국〉에 나오는 주인공들 같기도 하다. 그러나 준보의 내면세계는 이들의 것보다 훨씬 화창하고 이상주의적이다. 그것은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시집 『풀잎 Leaves of Grass』처럼 “자아와 비아의 통합적 비전”을 추구한다. 준보는 사랑하는 여인 실에게 휘트먼의 시를 읊어주면서 비평을 덧붙이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휘트먼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 아름답고 고르고 평등하고 사랑스럽다. 하나도 추하고 밉고 차별진 것이 없다. 예수같이 인자하고 바다같이 관대하다. 그는 아가페적인 사랑의 가치를 노래한 휘트먼의 시를 읊어주기도 한다. 여기서 “여자 됨”은 “남자 됨”과 마찬가지로 위대하다. 또한 “남자의 어머니 됨같이 위대한 것은 없”다.
전쟁이 예찬하는 남성적 가치를 배격하고 대신에 어머니의 부드러움과 관대함을 강조하는 준보의 의식은 이 작품이 발표된 시대의 천황제 파시즘 조류 및 국민문학론의 전쟁 예찬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전쟁의 시대에 어머니는 군국의 어머니처럼 전쟁의 여신으로 표상될 수도 있지만 이효석은 그런 어머니 대신에 평화와 사랑의 어머니를 제시했다. 이러한 작가적 행위는 자기가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깊은 비평및 비판 의식 없이는 불가능하다.
「일요일」은 그러한 「풀잎」의 후속작으로 쓰였다. 여기에는 죽음의 어두움과 고통 대신에 삶의 화창함과 기쁨을 추구한 이효석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발발한 때는 1941년 12월 8일이고 집필 시기를 따져 보면 「일요일」은 바로 그 시기에 쓰였다. 단적으로 말해 「풀잎」과 「일요일」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옥죄어 오는 체제의 기반羈絆에서 벗어나, 전쟁 대신에 평화, 대동아주의 대신에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주장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 2018년 동계올림픽의 고장, 평창이 낳은 작가
이효석은 뭣보다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조광』, 1936. 10)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의 명성에 힘입어 그를 기념하는 이효석문학관은 한국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문학 기념관이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효석과 「메밀꽃 필 무렵」을 거의 같은 어휘로 이해할 정도로 이 작품이 크게 부각되어 있는 까닭에, 다른 훌륭한 작품들과 그의 삶 자체는 어둠 속에 묻혀 있는 듯한 아쉬움이 있다.
한국의 문학인들이나 독자들은 어떤 작품을 읽을 때 그 직접적인 사회적 효용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효석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단편소설의 작가이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그다지 신비스러울 것도, 탐색해 볼 것도 없는 작가인 듯한 편견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가을이 되면 낙엽을 태우고, 쇼팽을 듣고, 원두커피를 즐겨 마시고, 사랑과 본성의 가치를 높이 본 그의 취향과 가치의식은 오늘에까지 있는 그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필자는 이효석이 세상에 태어난 지 백 년이 되는 해에 개최된 한 학술대회를 준비하면서 그의 작품 모두를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이 나라 문학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도 이채를 발하는 작품들을 낳은 작가였다. 또 그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적 능력을 보여준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예술을 지극히 사랑한 사람이었고 나아가 인위적인 사회에 대하여 자연적인 본성의 가치를 높이 사랑한 작가였다.
그의 전 작품을 읽고 그에 관한 논문을 쓰고 또 그의 작품들에 대해 대학에서 가르치는 과정에서 필자는 그의 대표작들을 새로 가려 뽑아 선집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채만식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채만식 대표소설 선집을 펴냈듯 이효석을 넓게, 균형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를 위한 선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필자는 몇 년 전에 이미 이효석의 수필들을 정리한 산문 선집도 펴낸 바 있다.
선집에 대한 구상이 시작된 지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고 더 미루기는 힘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마침 2018년에는 그의 고향인 강원도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된다고 하니 이효석의 진면목을 알리기 위해서는 아주 좋은 때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예술과 자연을 사랑한 작가, 아름다운, 서정적인, 음악적인 소설의 작가 이효석의 면모를 본격적으로 세상에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의미와 가치를 외부 세계에 알리는 계기도 될 것이다.
지난해 가을 필자는 강원도 문막 사람들과 함께 평창의 이효석 문학관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우리에게 이효석이 있음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고. 현실을 의식하면서도 현실 너머를 생각할 줄 알았던 그의 존재로 말미암아 한국의 현대문학은 빈핍함을 그만큼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필자가 2007년에 발표한 글에서 상당 부분을 가져와 작품의 설명에 충당하였음을 밝혀둔다.
- 방민호 (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 작가 소개
저 : 이효석
李孝石, 가산
한국 단편문학의 수작으로 손꼽히는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 성(性) 본능과 개방을 추구한 새로운 작품경향으로 주목을 끌기도 했던 1920년대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였다.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경성 제1고보(현재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경성제국대학(현재의 서울대학교) 법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28년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동반작가로 데뷔하였다.
『행진곡』 『기우』 등을 발표하면서 동반작가를 청산하고 구인희(九人會)에 참여, 『돈』『수탉』 등 향토색이 짙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34년 평양 숭실전문 교수가 된 후 『산』『들』 등 자연과의 교감을 수필적인 필체로 유려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발표했고, 1936년에는 한국 단편문학의 전형적인 수작이라고 할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하였다.
그의 문체는 세련된 언어, 풍부한 어휘, 시적인 분위기로 요약할 수 있으며, 시적인 정서로 소설(산문문학)의 예술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2년 평양에서 결핵성 뇌막염으로 3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편 : 방민호
문학평론가, 시인. 1994년 창비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비평활동을 시작했고, 2001년 <옥탑방> 등의 시로 월간문예지 《현대시》의 신인추천작품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서로 《일제 말기 한국문학의 담론과 텍스트》,《채만식과 조선적 근대문학의 구상》이 있고, 시집으로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가 있다. 평론집으로는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 《납함 아래의 침묵》, 《문명의 감각》, 《행인의 독법》, 《감각과 언어의 크레바스》 등이 있다. 또한 산문집으로 《명주》가 있다.
▣ 주요 목차
메밀꽃 필 무렵 ○ 007
낙엽기 ○ 023
산 ○ 035
들 ○ 047
소라 ○ 073
수탉 ○ 093
돈 ○ 103
풀잎 ○ 113
일요일 ○ 159
하얼빈 ○ 175
오리온과 능금 ○ 193
해설 ○ 209
01. 반품기한
- 단순 변심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신청
- 상품 불량/오배송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3개월 이내, 혹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30일 이내 반품 신청 가능
02. 반품 배송비
반품사유 | 반품 배송비 부담자 |
---|---|
단순변심 |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
03. 배송상태에 따른 환불안내
진행 상태 | 결제완료 | 상품준비중 |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
---|---|---|---|
어떤 상태 | 주문 내역 확인 전 | 상품 발송 준비 중 |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
환불 | 즉시환불 |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
04. 취소방법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결제수단 | 환불시점 | 환불방법 |
---|---|---|
신용카드 |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 신용카드 승인취소 |
계좌이체 |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
계좌입금 |
휴대폰 결제 |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
포인트 |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 환불 포인트 적립 |
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
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 |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