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1. 조선 최고 심미안의 소유자 성해응, 그의 못 말리는 서화 편력기
-검서관 출신 문인이 엄선한 당대 최고의 서화들, 《서화잡지》
옛사람들은 해서·전서·초서 등 다양한 서체로 글씨를 쓰고 이를 가보로 물려주며 대를 이어 감상했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기록하는 것이 일상인 요즘도 맘에 드는 한 구절의 글을 손 글씨로 정성들여 쓰고 그림을 곁들이는 ‘캘리그래피’가 취미로 각광받고 있다니, 잘 쓴 글씨에는 시대를 넘어선 특별한 매력이 있는 듯하다. 지식인들의 삶과 지향이 녹아든 18세기 산문 문학을 엄선하여 엮은 ‘18세기 지식 총서’의 아홉 번째 책 《서화잡지-조선 최고의 심미안 성해응의 못 말리는 서화 편력기》에서는 서화(書畵) 취미에 몰두된 한 사람을 소개한다.
서화에 대한 감상과 평 110제(題)를 담은 《서화잡지(書畵雜誌)》는 조선의 검서관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이 몰두했던 취미 활동의 전모를 보여준다. 《서화잡지》는 성해응의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속집 책16에 수록된 제발(題跋)만을 모은 것으로, 그가 평생 수집하며 감상한 작품과 서화가들에 대해 남긴 기록들이다. 이 책은 18세기 조선의 대표 서화가와 작품 들에 대한 인상 비평을 중심으로, 서화에 대한 한 사람의 관심과 취향, 심미안 및 작품에 얽힌 흥미롭고도 유용한 정보가 가득하다.
성해응은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으로 중앙에 진출한 인재였다. 그는 규장각에 소장된 수많은 국내외 진귀한 서적을 접했고, 이덕무·유득공·박제가·이서구 등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들과 밀접하게 교유했다. 그의 집안은 3대째 통신사행에 참여할 정도로 문학적 역량을 공인받았던 서족 명문가인데, 성해응은 나열·이한진·김상숙 등 이름난 예술인들과 깊이 교유했던 부친 성대중과 함께 예술 모임에 자주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서화에 대한 높은 식견과 심미안을 지니게 되었다. 《서화잡지》는 조선과 중국 및 일본, 그리고 신라시대의 김생(金生)부터 18세기에 활동한 서화가에 이르기까지 성해응이 엄선한 수많은 서화 작품을 망라하며, 여기에는 편지와 서첩 등 집안 대대로 내려온 귀중본도 포함되어 있다. 중국 서화에 대한 제발 27제, 일본 서화 제발 3제, 조선과 관련한 제발 80제로, 총 110제의 제발 중 ‘글씨[書]’에 대한 기록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중국의 서화에 심취했던 여느 학자들의 제발문학과 달리 정선·김홍도·최북·강세황·나열·김상숙·이인문 등 성해응과 동시대에 활동한 18세기 대표 서화가와 서화 작품에 대한 제발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서화잡지》는 18세기 조선의 화단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에서 향유된 예술의 경향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2. 서화에 매료된 18세기 지식인들
-18세기 조선 화단과 제발(題跋) 문학의 풍경
조선시대 사대부 문인들이 서화를 감상하고 소장하는 취미는 고려시대에 형성된 이후 점차 확산되어, 정치사회적으로 안정되고 도시경제가 성장하면서 다양한 문화적 욕구가 분출되었던 영·정조 시대에 보편화되었다. 서화를 감상·소장하는 취미에서 더 나아가 이를 문학으로 기록하는 제발(題跋)문학도 활발하게 창작되기 시작했다. 서화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인정한 이용휴와 중국의 서화 이론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서유구, 강세황·이영유·남공철 등은 제발문학의 꽃을 피운 주역들이었다. 이들이 대부분 중국의 서화에 대해 경도되어 있다면 성해응의 《서화잡지》는 당대 조선의 뛰어난 서화가나 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인상 비평을 짧은 분량 안에 솔직하고 간결한 문체로 남겼는데, 20~50자 이내의 짧은 분량 안에 서화가에 대한 정보, 시문과 화풍의 특색, 서화와 관련된 일화 등을 간략하고도 적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서화 작품의 중요한 특징과 배경, 나아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서화가나 주변 사실을 생생하게 그려 조선 후기 서화사를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은 단원 화사(檀園畵師)의 〈화조도(花鳥圖)〉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 번에 붓을 휘두른 것으로 그다지 유념해서 그린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빼어난 기운이 끊임없이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듯하니 참으로 훌륭한 작품이다. 화폭마다 모두 선친께서 직접 쓰신 글이 있으니, 자손 된 입장에서 귀하게 여기고 잘 간직해서 잃어버려서는 안 될 일이다.
-〈단원 김홍도의 8폭 병풍〉(118쪽 중에서)
내가 우의정 이태좌(李台佐,이광사)의 비문을 본 일이 있는데 아주 훌륭하여 한·당 시대의 여러 비석에 견주어도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일찍이 그는 상자에 가득한 글씨를 첩에게 주어 생활하도록 해주었다. 원교가 약산도(藥山島)에서 죽자, 그 첩이 글씨를 판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다투어 높은 가격으로 사들여 마침 세상에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남쪽 사람들 중에 그의 서법을 모방한 이가 가장 많았다.
-〈원교 이광사의 필적〉(196쪽 중에서)
성해응은 서화에 대한 기록 중 오류가 있으면 다양한 자료를 확인하고 증거를 원용하여 고증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가장 오래된 석각(石刻)이라고 전해지는 신우비가 여러 자료를 근거로 위작임을 주장하기도 하고, 송나라 주요 학자들의 글에 제발을 더한 〈경현첩〉의 필법을 확인하여 그 글씨가 동기창의 것이 아님을 완곡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부친 성대중이 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가져온 기무라 겐카도의 〈겸가아집도〉나 사와도 토코의 〈다호비〉 탁본 등에 대한 평가와 함께 그 내력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록은 무엇보다 한·중·일을 아우른 서화가와 서화에 대한 성해응의 남다른 식견과 감식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고정림(顧亭林)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 이전에는 이런 비가 보이지 않는다. 하자일(何子一)이 축융봉(祝融峯) 아래에서 처음 발견하여 손수 모각해서 전한 후에 형산 수령이 찾아보았지만 이미 그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지금 우비라고 말하는 것은 글자가 기이하여 서법에 맞지 않고 문장이 이상하여 조리가 없으며 운자가 이상하여 옛 법에 맞지 않으니, 위작으로 판단된다.”
이 두 사람의 의견을 살펴보면 지금 전해지는 신우비는 바로 하자일이 판각한 본이다.
낭선군(朗善君)이 연경(燕京)에 갔다가 비문 탁본을 얻었는데 그내용 가운데 ‘승제왈차, 익보좌경(承帝曰嗟 翼輔佐卿)’ 등의 구절이 있으니, 바로 이런 부분이 고염무가 말한 조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다. 요순 시절에 어찌 ‘경(卿)’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겠는가.
다른 것들도 모두 이와 같이 유추해볼 수 있다.
-〈신우비〉(29쪽 중에서)
〈경현첩(景賢帖)〉은 염계(濂溪)·명도(明道)·이천(伊川)·횡거(橫渠)·회암(晦菴) 다섯 선생의 화상(畵像)으로 이루어졌다. 왼쪽에 다섯 선생에 대한 찬(贊)을 자세히 썼고, 하단은 바로 한음(漢陰) 이상국(李相國)의 글씨이다. 찬은 누가 쓴 것인지 모르겠다. 어떤 이는 현재(玄宰) 동기창(董其昌)의 글씨라고 하는데, 현재의 필법은 수려하고 자연스러우니 어떻게 이처럼 장중한 글씨가 그의 글씨라 할 수 있겠는가.
-〈경현첩〉(57쪽 중에서)
《서화잡지》는 본격적인 비평서라기보다 서화에 대한 취와 식견을 지닌 한 지식인의 서화 감상에 대한 단편 기록에 가깝지만, 서화가들의 특성과 작품의 장단점에 대한 정확한 서술은 서화에 매력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충분한 공감대를 선사할 것이다. 《서화잡지-조선 최고의 심미안 성해응의 못 말리는 서화 편력기》는 성해응의 서화 취미와 감상 및 비평에서 나아가 동아시아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인 《서화잡지》를 우리 시대의 보편적 언어로 풀어냈으며, 독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친절한 정보를 주석으로 달았다. 제발에서 저자가 언급하였으나 소실되거나 수록할 수 없는 작품의 경우 같은 작가의 유사한 작품을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 작가 소개
저자 : 성해응
成海應, 1760~1839
자는 용여(龍汝), 호는 연경재(硏經齋)·난실(蘭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집안 대대로 경기도 포천 지역에 거주한 그의 가문은 5대조 성후룡(成後龍)이 인조 때 우의정을 지낸 김상용(金尙容)의 서녀(庶女)와 혼인하면서 서족이 되었다. 안동김씨 집안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성해응의 종고조인 성완(成琬), 종증조 성몽량(成夢良), 부친 성대중(成大中)이 3대를 연이어 통신사행에 참여했을 정도로 문학적 역량을 공인받은 집안이었다. 이처럼 성해응 집안은 제술관과 서기 등 세직으로서 통신사행에 참여하고, 7대에 걸친 연이은 사마시 합격자를 배출하며 조선 후기 서족명문가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성해응은 24세 되던 1783년(정조 7)에 진사시에 합격한 뒤 29세에 규장각 검서관으로 중앙에 진출했으며, 1800년까지 줄곧 검서관으로 재직하면서 각종 국가 편찬 사업에 참여했다. 이후 상의원별제, 통례원인의, 금정찰방, 음성현감 등을 거쳐 1815년에 고향 포천으로 돌아가 은거했다. 150여 권에 달하는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을 저술했는데, 18~19세기의 학문과 사상, 문학, 역사, 지리, 서화, 고동(古董) 등 다양한 분야에 대... 한 백과전서식의 저술로 자료적 가치가 크다. 1839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펼처보기 닫기
역자 : 손혜리
경북대학교 한문학과와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한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연경재 성해응 문학 연구》와 《실학파 문학 연구》(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 《낮은 자리 높은 마음》, 《연경재 성해응의 초사담헌》(공역), 《유배지에서 역사를 노래하다?영남악부》(공역), 《역주 이십일도 회고시》(공역) 등이 있다.
역자 : 지금완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민족문화추진회 연수부와 일반연구부 및 국사편찬위원회 초서과정을 수료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고전번역협동과정을 졸업했으며 〈한백겸의 《구암유고》 역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문화와 도덕이 튼실했던 선조들의 삶에 관심이 많고, 고전번역을 통해 민족적 자긍심을 되살리고 싶다는 소망으로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차례
서설
1 섭국중의 비
2 신우비
3 고려 공민왕의 필적
4 자앙 조맹부의 묵적
5 장공 소식의 묵적
6 일본에서 온 편지
7 십주 구영의 그림
8 우리나라 현인들의 필적
9 화묘의 비문
10 장천의 비문
11 왕우군의 필적
12 순화각첩
13 청허당 편액
14 석양정 이정의 그림
15 배와첩
16 경현첩
17 옥동 이서의 필첩
18 봉래 양사언의 필첩
19 보현비
20 우암 송시열의 필적
21 사천 이병연의 시첩
22 능호 이인상의 편지
23 경산 이한진의 전예첩
24 정문보가 임모한 역산비
25 석고문
26 예학명
27 자앙 조맹부의 글씨
28 배와 김상숙의 편지
29 석봉 한호의 천자문
30 보현당첩
31 집안에 소장된 법첩
32 조아비
33 중은첩
34 오리 이원익의 필적
35 미수 허목의 편지
36 동춘당 송준길과 노봉 민정중 형제의 편지
37 집안에 소장된 옛 편지
38 또 다른 옛 편지
39 인조대왕 묵죽
40 수운 유덕장의 묵죽
41 단원 김홍도의 그림
42 사천 이병연이 쓴 소헌의 만시
43 석파 김용행의 그림
44 겸재 정선의 그림
45 능호 이인상의 그림
46 허주 이징의 그림
47 호생관 최북의 그림 (1)
48 단원 김홍도의 8폭 병풍
49 연담 김명국의 그림
50 남양 홍가신 청난비
51 척주비
52 영업의 글씨
53 탄연의 글씨
54 대감국사비
55 혜진탑비
56 낭혜화상탑비
57 고려의 옛 비
58 이인문의 그림
59 겸가당아집도
60 준풍
61 인각사 비문
62 김생의 필적
63 충정공의 묵적
64 오정 이의병의 필첩
65 경산 이한진이 쓴 〈침병소기〉
66 무목 악비의 필적
67 종요의 묵적
68 왕씨의 진적
69 난정첩
70 호생관 최북의 그림 (2)
71 흥법비
72 만계 정방의 그림
73 다호비
74 도산기
75 도산십이곡
76 부채 그림
77 안진경의 〈녹포첩〉 잔결본
78 석치 정철조의 그림
79 예학명 필첩
80 정료위의 인장
81 동방화상찬
82 석대효경
83 성교서
84 창려집
85 백월서운탑비
86 양봉 나빙의 난 그림
87 수옥 장도악의 그림
88 표암 강세황의 그림
89 해양 나열의 필적
90 월촌 나걸의 묵적
91 수헌 서무수의 필적
92 설옹 유후의 필적
93 원교 이광사의 필적
94 다시, 성교서
95 조맹부가 쓴 〈주금당기〉
96 악의론
97 조맹부의 초서 천자문
98 오도자의 그림
99 연광정 편액
100 한수재 권상하의 묵적
101 율곡 이이의 묵적
102 수운정 편액
103 능호 이인상의 전서
104 백사 이항복의 필적
105 상서석경
106 안기의 낙관
107 참봉 이광려의 글씨
108 자하 신위의 묵죽
109 봉래 양사언의 필각
110 맹영광의 그림
원문
1. 조선 최고 심미안의 소유자 성해응, 그의 못 말리는 서화 편력기
-검서관 출신 문인이 엄선한 당대 최고의 서화들, 《서화잡지》
옛사람들은 해서·전서·초서 등 다양한 서체로 글씨를 쓰고 이를 가보로 물려주며 대를 이어 감상했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기록하는 것이 일상인 요즘도 맘에 드는 한 구절의 글을 손 글씨로 정성들여 쓰고 그림을 곁들이는 ‘캘리그래피’가 취미로 각광받고 있다니, 잘 쓴 글씨에는 시대를 넘어선 특별한 매력이 있는 듯하다. 지식인들의 삶과 지향이 녹아든 18세기 산문 문학을 엄선하여 엮은 ‘18세기 지식 총서’의 아홉 번째 책 《서화잡지-조선 최고의 심미안 성해응의 못 말리는 서화 편력기》에서는 서화(書畵) 취미에 몰두된 한 사람을 소개한다.
서화에 대한 감상과 평 110제(題)를 담은 《서화잡지(書畵雜誌)》는 조선의 검서관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이 몰두했던 취미 활동의 전모를 보여준다. 《서화잡지》는 성해응의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속집 책16에 수록된 제발(題跋)만을 모은 것으로, 그가 평생 수집하며 감상한 작품과 서화가들에 대해 남긴 기록들이다. 이 책은 18세기 조선의 대표 서화가와 작품 들에 대한 인상 비평을 중심으로, 서화에 대한 한 사람의 관심과 취향, 심미안 및 작품에 얽힌 흥미롭고도 유용한 정보가 가득하다.
성해응은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으로 중앙에 진출한 인재였다. 그는 규장각에 소장된 수많은 국내외 진귀한 서적을 접했고, 이덕무·유득공·박제가·이서구 등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들과 밀접하게 교유했다. 그의 집안은 3대째 통신사행에 참여할 정도로 문학적 역량을 공인받았던 서족 명문가인데, 성해응은 나열·이한진·김상숙 등 이름난 예술인들과 깊이 교유했던 부친 성대중과 함께 예술 모임에 자주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서화에 대한 높은 식견과 심미안을 지니게 되었다. 《서화잡지》는 조선과 중국 및 일본, 그리고 신라시대의 김생(金生)부터 18세기에 활동한 서화가에 이르기까지 성해응이 엄선한 수많은 서화 작품을 망라하며, 여기에는 편지와 서첩 등 집안 대대로 내려온 귀중본도 포함되어 있다. 중국 서화에 대한 제발 27제, 일본 서화 제발 3제, 조선과 관련한 제발 80제로, 총 110제의 제발 중 ‘글씨[書]’에 대한 기록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중국의 서화에 심취했던 여느 학자들의 제발문학과 달리 정선·김홍도·최북·강세황·나열·김상숙·이인문 등 성해응과 동시대에 활동한 18세기 대표 서화가와 서화 작품에 대한 제발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서화잡지》는 18세기 조선의 화단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에서 향유된 예술의 경향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2. 서화에 매료된 18세기 지식인들
-18세기 조선 화단과 제발(題跋) 문학의 풍경
조선시대 사대부 문인들이 서화를 감상하고 소장하는 취미는 고려시대에 형성된 이후 점차 확산되어, 정치사회적으로 안정되고 도시경제가 성장하면서 다양한 문화적 욕구가 분출되었던 영·정조 시대에 보편화되었다. 서화를 감상·소장하는 취미에서 더 나아가 이를 문학으로 기록하는 제발(題跋)문학도 활발하게 창작되기 시작했다. 서화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인정한 이용휴와 중국의 서화 이론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서유구, 강세황·이영유·남공철 등은 제발문학의 꽃을 피운 주역들이었다. 이들이 대부분 중국의 서화에 대해 경도되어 있다면 성해응의 《서화잡지》는 당대 조선의 뛰어난 서화가나 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인상 비평을 짧은 분량 안에 솔직하고 간결한 문체로 남겼는데, 20~50자 이내의 짧은 분량 안에 서화가에 대한 정보, 시문과 화풍의 특색, 서화와 관련된 일화 등을 간략하고도 적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서화 작품의 중요한 특징과 배경, 나아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서화가나 주변 사실을 생생하게 그려 조선 후기 서화사를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은 단원 화사(檀園畵師)의 〈화조도(花鳥圖)〉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 번에 붓을 휘두른 것으로 그다지 유념해서 그린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빼어난 기운이 끊임없이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듯하니 참으로 훌륭한 작품이다. 화폭마다 모두 선친께서 직접 쓰신 글이 있으니, 자손 된 입장에서 귀하게 여기고 잘 간직해서 잃어버려서는 안 될 일이다.
-〈단원 김홍도의 8폭 병풍〉(118쪽 중에서)
내가 우의정 이태좌(李台佐,이광사)의 비문을 본 일이 있는데 아주 훌륭하여 한·당 시대의 여러 비석에 견주어도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일찍이 그는 상자에 가득한 글씨를 첩에게 주어 생활하도록 해주었다. 원교가 약산도(藥山島)에서 죽자, 그 첩이 글씨를 판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다투어 높은 가격으로 사들여 마침 세상에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 남쪽 사람들 중에 그의 서법을 모방한 이가 가장 많았다.
-〈원교 이광사의 필적〉(196쪽 중에서)
성해응은 서화에 대한 기록 중 오류가 있으면 다양한 자료를 확인하고 증거를 원용하여 고증하려고 했다. 예를 들어 가장 오래된 석각(石刻)이라고 전해지는 신우비가 여러 자료를 근거로 위작임을 주장하기도 하고, 송나라 주요 학자들의 글에 제발을 더한 〈경현첩〉의 필법을 확인하여 그 글씨가 동기창의 것이 아님을 완곡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부친 성대중이 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가져온 기무라 겐카도의 〈겸가아집도〉나 사와도 토코의 〈다호비〉 탁본 등에 대한 평가와 함께 그 내력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록은 무엇보다 한·중·일을 아우른 서화가와 서화에 대한 성해응의 남다른 식견과 감식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고정림(顧亭林)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 이전에는 이런 비가 보이지 않는다. 하자일(何子一)이 축융봉(祝融峯) 아래에서 처음 발견하여 손수 모각해서 전한 후에 형산 수령이 찾아보았지만 이미 그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지금 우비라고 말하는 것은 글자가 기이하여 서법에 맞지 않고 문장이 이상하여 조리가 없으며 운자가 이상하여 옛 법에 맞지 않으니, 위작으로 판단된다.”
이 두 사람의 의견을 살펴보면 지금 전해지는 신우비는 바로 하자일이 판각한 본이다.
낭선군(朗善君)이 연경(燕京)에 갔다가 비문 탁본을 얻었는데 그내용 가운데 ‘승제왈차, 익보좌경(承帝曰嗟 翼輔佐卿)’ 등의 구절이 있으니, 바로 이런 부분이 고염무가 말한 조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다. 요순 시절에 어찌 ‘경(卿)’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겠는가.
다른 것들도 모두 이와 같이 유추해볼 수 있다.
-〈신우비〉(29쪽 중에서)
〈경현첩(景賢帖)〉은 염계(濂溪)·명도(明道)·이천(伊川)·횡거(橫渠)·회암(晦菴) 다섯 선생의 화상(畵像)으로 이루어졌다. 왼쪽에 다섯 선생에 대한 찬(贊)을 자세히 썼고, 하단은 바로 한음(漢陰) 이상국(李相國)의 글씨이다. 찬은 누가 쓴 것인지 모르겠다. 어떤 이는 현재(玄宰) 동기창(董其昌)의 글씨라고 하는데, 현재의 필법은 수려하고 자연스러우니 어떻게 이처럼 장중한 글씨가 그의 글씨라 할 수 있겠는가.
-〈경현첩〉(57쪽 중에서)
《서화잡지》는 본격적인 비평서라기보다 서화에 대한 취와 식견을 지닌 한 지식인의 서화 감상에 대한 단편 기록에 가깝지만, 서화가들의 특성과 작품의 장단점에 대한 정확한 서술은 서화에 매력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충분한 공감대를 선사할 것이다. 《서화잡지-조선 최고의 심미안 성해응의 못 말리는 서화 편력기》는 성해응의 서화 취미와 감상 및 비평에서 나아가 동아시아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인 《서화잡지》를 우리 시대의 보편적 언어로 풀어냈으며, 독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친절한 정보를 주석으로 달았다. 제발에서 저자가 언급하였으나 소실되거나 수록할 수 없는 작품의 경우 같은 작가의 유사한 작품을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 작가 소개
저자 : 성해응
成海應, 1760~1839
자는 용여(龍汝), 호는 연경재(硏經齋)·난실(蘭室),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집안 대대로 경기도 포천 지역에 거주한 그의 가문은 5대조 성후룡(成後龍)이 인조 때 우의정을 지낸 김상용(金尙容)의 서녀(庶女)와 혼인하면서 서족이 되었다. 안동김씨 집안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성해응의 종고조인 성완(成琬), 종증조 성몽량(成夢良), 부친 성대중(成大中)이 3대를 연이어 통신사행에 참여했을 정도로 문학적 역량을 공인받은 집안이었다. 이처럼 성해응 집안은 제술관과 서기 등 세직으로서 통신사행에 참여하고, 7대에 걸친 연이은 사마시 합격자를 배출하며 조선 후기 서족명문가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성해응은 24세 되던 1783년(정조 7)에 진사시에 합격한 뒤 29세에 규장각 검서관으로 중앙에 진출했으며, 1800년까지 줄곧 검서관으로 재직하면서 각종 국가 편찬 사업에 참여했다. 이후 상의원별제, 통례원인의, 금정찰방, 음성현감 등을 거쳐 1815년에 고향 포천으로 돌아가 은거했다. 150여 권에 달하는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을 저술했는데, 18~19세기의 학문과 사상, 문학, 역사, 지리, 서화, 고동(古董) 등 다양한 분야에 대... 한 백과전서식의 저술로 자료적 가치가 크다. 1839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펼처보기 닫기
역자 : 손혜리
경북대학교 한문학과와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한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연경재 성해응 문학 연구》와 《실학파 문학 연구》(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 《낮은 자리 높은 마음》, 《연경재 성해응의 초사담헌》(공역), 《유배지에서 역사를 노래하다?영남악부》(공역), 《역주 이십일도 회고시》(공역) 등이 있다.
역자 : 지금완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를 졸업하고 민족문화추진회 연수부와 일반연구부 및 국사편찬위원회 초서과정을 수료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고전번역협동과정을 졸업했으며 〈한백겸의 《구암유고》 역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문화와 도덕이 튼실했던 선조들의 삶에 관심이 많고, 고전번역을 통해 민족적 자긍심을 되살리고 싶다는 소망으로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차례
서설
1 섭국중의 비
2 신우비
3 고려 공민왕의 필적
4 자앙 조맹부의 묵적
5 장공 소식의 묵적
6 일본에서 온 편지
7 십주 구영의 그림
8 우리나라 현인들의 필적
9 화묘의 비문
10 장천의 비문
11 왕우군의 필적
12 순화각첩
13 청허당 편액
14 석양정 이정의 그림
15 배와첩
16 경현첩
17 옥동 이서의 필첩
18 봉래 양사언의 필첩
19 보현비
20 우암 송시열의 필적
21 사천 이병연의 시첩
22 능호 이인상의 편지
23 경산 이한진의 전예첩
24 정문보가 임모한 역산비
25 석고문
26 예학명
27 자앙 조맹부의 글씨
28 배와 김상숙의 편지
29 석봉 한호의 천자문
30 보현당첩
31 집안에 소장된 법첩
32 조아비
33 중은첩
34 오리 이원익의 필적
35 미수 허목의 편지
36 동춘당 송준길과 노봉 민정중 형제의 편지
37 집안에 소장된 옛 편지
38 또 다른 옛 편지
39 인조대왕 묵죽
40 수운 유덕장의 묵죽
41 단원 김홍도의 그림
42 사천 이병연이 쓴 소헌의 만시
43 석파 김용행의 그림
44 겸재 정선의 그림
45 능호 이인상의 그림
46 허주 이징의 그림
47 호생관 최북의 그림 (1)
48 단원 김홍도의 8폭 병풍
49 연담 김명국의 그림
50 남양 홍가신 청난비
51 척주비
52 영업의 글씨
53 탄연의 글씨
54 대감국사비
55 혜진탑비
56 낭혜화상탑비
57 고려의 옛 비
58 이인문의 그림
59 겸가당아집도
60 준풍
61 인각사 비문
62 김생의 필적
63 충정공의 묵적
64 오정 이의병의 필첩
65 경산 이한진이 쓴 〈침병소기〉
66 무목 악비의 필적
67 종요의 묵적
68 왕씨의 진적
69 난정첩
70 호생관 최북의 그림 (2)
71 흥법비
72 만계 정방의 그림
73 다호비
74 도산기
75 도산십이곡
76 부채 그림
77 안진경의 〈녹포첩〉 잔결본
78 석치 정철조의 그림
79 예학명 필첩
80 정료위의 인장
81 동방화상찬
82 석대효경
83 성교서
84 창려집
85 백월서운탑비
86 양봉 나빙의 난 그림
87 수옥 장도악의 그림
88 표암 강세황의 그림
89 해양 나열의 필적
90 월촌 나걸의 묵적
91 수헌 서무수의 필적
92 설옹 유후의 필적
93 원교 이광사의 필적
94 다시, 성교서
95 조맹부가 쓴 〈주금당기〉
96 악의론
97 조맹부의 초서 천자문
98 오도자의 그림
99 연광정 편액
100 한수재 권상하의 묵적
101 율곡 이이의 묵적
102 수운정 편액
103 능호 이인상의 전서
104 백사 이항복의 필적
105 상서석경
106 안기의 낙관
107 참봉 이광려의 글씨
108 자하 신위의 묵죽
109 봉래 양사언의 필각
110 맹영광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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