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9년간 이혼 소송 기록에 희귀하게 남은 조선 여성의 목소리!
좁쌀만 한 자료를 중심으로 가부장제 조선을 뒤흔든 희대의 이혼 소송을 재구성하다
숙종 16년(1690) 양반 유정기는 아내 신태영을 시부모에게 불효했다는 이유로 쫓아낸다. 그로부터 14년 후, 유정기는 공식적으로 이혼을 요청하지만 예조는 법조문이 없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는다. 조선 조정에서는 둘의 이혼 가능 여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유정기는 왜 신태영을 내쫓은 뒤 14년이 지나서야 이혼을 요청했는가? 유정기가 바람을 폈다는 신태영의 주장은 사실인가? 유정기와 신태영의 이혼 소송은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였던 조선의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가부장제의 권력 집행에 저항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매우 드문 사건이다. 저자는 9년간의 이혼 소송 기록을 꼼꼼히 복기하여 조선 가부장제 이면의 숨은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1. 조선 사회를 송두리째 뒤흔든 이혼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다
- 이 책의 특징 1
널리 알려져 있듯 조선은 엄격한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였다. 남편의 권위는 절대적이었으며,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아무리 가부장제 사회라고 해도 부부간의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부부 관계가 도저히 지속될 수 없을 때 조선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조선 시대에도 지금처럼 이혼을 했을까? 조선의 법률은 이혼을 어떻게 규정했으며, 조선 사람들은 이혼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 책은 유정기와 신태영의 이혼 소송을 꼼꼼히 살펴보고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여 이 같은 질문에 답한다.
1690년 양반 유정기는 아내 신태영을 쫓아낸다. 시부모에게 불효했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14년 후인 1704년, 유정기는 예조에 공식으로 이혼을 요청한다. 이로 인해 조선 조정에서는 유정기와 신태영의 이혼에 관한 수많은 논란이 벌어진다. 먼저 예조는 조선의 국법, 즉 《경국대전》에 이혼에 관한 법률이 없다는 이유로 유정기의 청원을 각하한다. 이에 사헌부 장령 임방은 국법에 이혼에 관한 법이 없음을 통탄하고, 남편과 시부모에게 욕하고 제수(祭酒)에 오물을 섞은 신태영의 행위를 근거로 둘을 이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방의 말을 들은 숙종은 이혼을 허락하지만, 예조 판서 민진후가 임방의 계사를 반박한다. 신태영의 혐의는 조사해야 마땅하지만 한쪽의 말만 듣고 신태영을 처벌하거나 둘을 이혼시킬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이후 조정에서는 논쟁이 계속되고, 유정기와 신태영에 대한 의금부의 조사, 유정기의 이혼 재심 요청 등 사건은 9년 동안이나 이어진다. 이혼 가능 여부를 둘러싼 양측의 공방은 마치 법정 드라마처럼 치열하고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관련자의 문집 등 남은 기록을 샅샅이 뒤져 조선 시대 최고의 이혼 소송을 파헤친다.
2. 가부장제에 저항한 조선 여성의 희미한 목소리를 듣는다
- 이 책의 특징 2
유정기와 신태영의 이혼 소송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유정기와 신태영의 이혼 소송 기록은 우리에게 신태영의 육성을 직접 들려주기 때문이다. 사대부 남성이 지배한 조선 시대의 기록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가부장제 권력의 중심인 남편에게 저항하는 아내의 목소리는 더더욱 듣기 어렵다. 이 책에서 다루는 유정기와 신태영의 이혼 소송 기록 역시 모두 남성이 남긴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적게나마 신태영의 육성이 채록되어 있고 그녀의 주장을 정리한 기록도 있어, 우리가 가부장제에 저항한 조선 여성의 목소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기록에 남은 신태영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신태영은 유정기의 주장에 반박하며 “무진년(1688) 전에 다섯 자녀를 연달아 낳았고, 부부가 실행한 일은 없습니다. 무진년 이후 유정기가 비첩에게 고혹되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씌워진 죄명은 모두 유정기가 남의 참소를 믿고 없는 일을 날조한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신태영은 이혼의 원인이 유정기가 비첩, 즉 계집종 예일에게 빠졌기 때문임을 조리 있게 주장한다. 예일은 신태영의 실행을 목격했다고 주장한 인물이었는데, 신태영은 유정기와 예일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그 주장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신태영은 자신이 남편과 시부모에게 욕하거나 제수에 오물을 섞은 일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목격자가 유정기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큰 역할을 한다. 이러한 신태영의 주장은 조선 사회에서 주체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던 여성이 어떻게 유교적 가부장제에 반발하며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단초다. 그렇기에 신태영의 희미한 육성은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조선 여성의 목소리라는 큰 의미를 갖는다.
3. 이혼 소송 하나로 조선 가부장제 500년을 살피는 미시사 읽기의 깊은 맛
- 이 책의 특징 3
이 책은 이혼 소송이라는 사소한 사건 하나로 조선 사회 전체를 꿰뚫어 보는 미시사 읽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소송은 9년 동안 진행됐지만 그 속에는 조선 건국 시기부터 시작된 유교적 가부장제의 탄생과 공고화 과정, 그에 따른 가부장제의 권력 집행과 저항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조선 조정에서 유정기와 신태영의 이혼을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문제의 중심에는 이혼을 바라보는 가부장제의 엇갈린 입장이 있다. 가부장제는 자신의 권력 집행에 저항하는 여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동시에, 남성 중심적 도덕만으로 체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이혼을 무분별하게 허용할 수도 없었다. 저자는 양측의 주장을 살피고 분석하는 한편, 각자의 주장 이면에 숨어 있는 조선 가부장제의 욕망과 모순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유정기와 신태영의 이혼 소송을 톺아보는 현미경이자 조선 시대 유교적 가부장제 전체를 조망하는 망원경 역할을 하는 이유다.
▣ 작가 소개
저 :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문학을 현대의 텍스트로 생생히 살려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 그는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조선후기 서울의 도시적 분위기에서 활동했던 여항인들의 역사적 실체와 그들의 문학을 검토하여 조선 후기 한문학의 연구 지평을 넓힌 역저(『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문화일보)". "풍속사, 사회사, 음악사, 미술사를 포괄하는 방대한 지적 편력을 담아 내고 있다. 정작 문학 텍스트 자체에 논의를 거의 할애하지 않았는데도, 논의 전개 과정에서 그 시대와 함께 문학 텍스트의 의미가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한양대 정민)." 등의 호평을 받았다.
광범한 지적 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풍속사 읽기를 시도하고 있으며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문학을 쉽게 풀이한 저서들을 다양하게 출간하였다. 또한 그는 조선 시대에 지식이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어 유통되는가,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머릿속에 어떻게 설치되어 인간의 사유와 행위를 결정하는가, 그리하여 어떤 인간형이 탄생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공부 중이다. 최근작 『열녀의 탄생』과 연계하여, 조선 시대 남성-양반이 그들의 에토스를 만들기 위해 어떤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를 의식화했던가,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남성다움, 양반다움으로 남성-양반은 여성, 백성들과 구별 짓고, 우월한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면면을 연구할 계획이다.
저서로는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조선의 뒷골목 풍경』,『근대 계몽기 시가 자료집』,『안쪽과 바깥쪽』,『공안파와 조선후기 한문학』,『농압잡지평석』,『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열녀의 탄생』, 『시비是非를 던지다』,『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책머리에
서장 | 유교적 가부장제 속 남녀 관계
1장 유정기와 신태영의 1차 이혼 소송 1704~1706
유정기란 인물
유정기의 이혼 신청과 논란
이혼 불가의 논리, 예조 판서 민진후
이혼은 가능하다, 임방의 반박
이혼 불가의 새 논리, 대사헌 송상기
임방의 3차 반박
신태영-유정기에 대한 의금부의 조사
신태영의 항변
해를 넘겨 신태영이 반박하다
2장 유정기의 요청에 의한 이혼 재심 1706~1713
유정기의 이혼 재심 요청
재심의 시작, 성비희 사건
재심의 본격화와 김진규의 논리
이혼을 주장하는 이여의 논리
김진규의 재반박
마지막 논란
3장 9년간의 이혼 소송은 무엇을 남겼는가
이혼에 관한 두 가지 입장
갈등의 원인, 비첩
저항의 의미
저항의 결과
결장 | 여성 훈육의 시작과 실패
맺음말 목구멍에 박힌 가시
주
9년간 이혼 소송 기록에 희귀하게 남은 조선 여성의 목소리!
좁쌀만 한 자료를 중심으로 가부장제 조선을 뒤흔든 희대의 이혼 소송을 재구성하다
숙종 16년(1690) 양반 유정기는 아내 신태영을 시부모에게 불효했다는 이유로 쫓아낸다. 그로부터 14년 후, 유정기는 공식적으로 이혼을 요청하지만 예조는 법조문이 없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는다. 조선 조정에서는 둘의 이혼 가능 여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유정기는 왜 신태영을 내쫓은 뒤 14년이 지나서야 이혼을 요청했는가? 유정기가 바람을 폈다는 신태영의 주장은 사실인가? 유정기와 신태영의 이혼 소송은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였던 조선의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가부장제의 권력 집행에 저항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매우 드문 사건이다. 저자는 9년간의 이혼 소송 기록을 꼼꼼히 복기하여 조선 가부장제 이면의 숨은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1. 조선 사회를 송두리째 뒤흔든 이혼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다
- 이 책의 특징 1
널리 알려져 있듯 조선은 엄격한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였다. 남편의 권위는 절대적이었으며,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아무리 가부장제 사회라고 해도 부부간의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부부 관계가 도저히 지속될 수 없을 때 조선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조선 시대에도 지금처럼 이혼을 했을까? 조선의 법률은 이혼을 어떻게 규정했으며, 조선 사람들은 이혼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 책은 유정기와 신태영의 이혼 소송을 꼼꼼히 살펴보고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여 이 같은 질문에 답한다.
1690년 양반 유정기는 아내 신태영을 쫓아낸다. 시부모에게 불효했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14년 후인 1704년, 유정기는 예조에 공식으로 이혼을 요청한다. 이로 인해 조선 조정에서는 유정기와 신태영의 이혼에 관한 수많은 논란이 벌어진다. 먼저 예조는 조선의 국법, 즉 《경국대전》에 이혼에 관한 법률이 없다는 이유로 유정기의 청원을 각하한다. 이에 사헌부 장령 임방은 국법에 이혼에 관한 법이 없음을 통탄하고, 남편과 시부모에게 욕하고 제수(祭酒)에 오물을 섞은 신태영의 행위를 근거로 둘을 이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방의 말을 들은 숙종은 이혼을 허락하지만, 예조 판서 민진후가 임방의 계사를 반박한다. 신태영의 혐의는 조사해야 마땅하지만 한쪽의 말만 듣고 신태영을 처벌하거나 둘을 이혼시킬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이후 조정에서는 논쟁이 계속되고, 유정기와 신태영에 대한 의금부의 조사, 유정기의 이혼 재심 요청 등 사건은 9년 동안이나 이어진다. 이혼 가능 여부를 둘러싼 양측의 공방은 마치 법정 드라마처럼 치열하고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관련자의 문집 등 남은 기록을 샅샅이 뒤져 조선 시대 최고의 이혼 소송을 파헤친다.
2. 가부장제에 저항한 조선 여성의 희미한 목소리를 듣는다
- 이 책의 특징 2
유정기와 신태영의 이혼 소송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유정기와 신태영의 이혼 소송 기록은 우리에게 신태영의 육성을 직접 들려주기 때문이다. 사대부 남성이 지배한 조선 시대의 기록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가부장제 권력의 중심인 남편에게 저항하는 아내의 목소리는 더더욱 듣기 어렵다. 이 책에서 다루는 유정기와 신태영의 이혼 소송 기록 역시 모두 남성이 남긴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적게나마 신태영의 육성이 채록되어 있고 그녀의 주장을 정리한 기록도 있어, 우리가 가부장제에 저항한 조선 여성의 목소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기록에 남은 신태영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신태영은 유정기의 주장에 반박하며 “무진년(1688) 전에 다섯 자녀를 연달아 낳았고, 부부가 실행한 일은 없습니다. 무진년 이후 유정기가 비첩에게 고혹되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씌워진 죄명은 모두 유정기가 남의 참소를 믿고 없는 일을 날조한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신태영은 이혼의 원인이 유정기가 비첩, 즉 계집종 예일에게 빠졌기 때문임을 조리 있게 주장한다. 예일은 신태영의 실행을 목격했다고 주장한 인물이었는데, 신태영은 유정기와 예일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그 주장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결정적으로 신태영은 자신이 남편과 시부모에게 욕하거나 제수에 오물을 섞은 일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목격자가 유정기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큰 역할을 한다. 이러한 신태영의 주장은 조선 사회에서 주체 없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던 여성이 어떻게 유교적 가부장제에 반발하며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단초다. 그렇기에 신태영의 희미한 육성은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조선 여성의 목소리라는 큰 의미를 갖는다.
3. 이혼 소송 하나로 조선 가부장제 500년을 살피는 미시사 읽기의 깊은 맛
- 이 책의 특징 3
이 책은 이혼 소송이라는 사소한 사건 하나로 조선 사회 전체를 꿰뚫어 보는 미시사 읽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소송은 9년 동안 진행됐지만 그 속에는 조선 건국 시기부터 시작된 유교적 가부장제의 탄생과 공고화 과정, 그에 따른 가부장제의 권력 집행과 저항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조선 조정에서 유정기와 신태영의 이혼을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문제의 중심에는 이혼을 바라보는 가부장제의 엇갈린 입장이 있다. 가부장제는 자신의 권력 집행에 저항하는 여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동시에, 남성 중심적 도덕만으로 체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이혼을 무분별하게 허용할 수도 없었다. 저자는 양측의 주장을 살피고 분석하는 한편, 각자의 주장 이면에 숨어 있는 조선 가부장제의 욕망과 모순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유정기와 신태영의 이혼 소송을 톺아보는 현미경이자 조선 시대 유교적 가부장제 전체를 조망하는 망원경 역할을 하는 이유다.
▣ 작가 소개
저 :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문학을 현대의 텍스트로 생생히 살려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 그는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조선후기 서울의 도시적 분위기에서 활동했던 여항인들의 역사적 실체와 그들의 문학을 검토하여 조선 후기 한문학의 연구 지평을 넓힌 역저(『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문화일보)". "풍속사, 사회사, 음악사, 미술사를 포괄하는 방대한 지적 편력을 담아 내고 있다. 정작 문학 텍스트 자체에 논의를 거의 할애하지 않았는데도, 논의 전개 과정에서 그 시대와 함께 문학 텍스트의 의미가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한양대 정민)." 등의 호평을 받았다.
광범한 지적 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풍속사 읽기를 시도하고 있으며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문학을 쉽게 풀이한 저서들을 다양하게 출간하였다. 또한 그는 조선 시대에 지식이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어 유통되는가,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머릿속에 어떻게 설치되어 인간의 사유와 행위를 결정하는가, 그리하여 어떤 인간형이 탄생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공부 중이다. 최근작 『열녀의 탄생』과 연계하여, 조선 시대 남성-양반이 그들의 에토스를 만들기 위해 어떤 지식을 가지고 스스로를 의식화했던가,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남성다움, 양반다움으로 남성-양반은 여성, 백성들과 구별 짓고, 우월한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면면을 연구할 계획이다.
저서로는 『조선후기 여항문학 연구』『조선시대 문학예술의 생성공간』,『조선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조선의 뒷골목 풍경』,『근대 계몽기 시가 자료집』,『안쪽과 바깥쪽』,『공안파와 조선후기 한문학』,『농압잡지평석』,『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열녀의 탄생』, 『시비是非를 던지다』,『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책머리에
서장 | 유교적 가부장제 속 남녀 관계
1장 유정기와 신태영의 1차 이혼 소송 1704~1706
유정기란 인물
유정기의 이혼 신청과 논란
이혼 불가의 논리, 예조 판서 민진후
이혼은 가능하다, 임방의 반박
이혼 불가의 새 논리, 대사헌 송상기
임방의 3차 반박
신태영-유정기에 대한 의금부의 조사
신태영의 항변
해를 넘겨 신태영이 반박하다
2장 유정기의 요청에 의한 이혼 재심 1706~1713
유정기의 이혼 재심 요청
재심의 시작, 성비희 사건
재심의 본격화와 김진규의 논리
이혼을 주장하는 이여의 논리
김진규의 재반박
마지막 논란
3장 9년간의 이혼 소송은 무엇을 남겼는가
이혼에 관한 두 가지 입장
갈등의 원인, 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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