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대의제 민주주의는 감동도 희망도 없는 ‘말기 암 환자’
추첨제, IT, 국민발안 등으로 대대적 혁신을…
근대국가 지배 블록의 음모극, 대의제 민주주의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 동안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다시 노예가 되어 버린다.”
대의제(代議制) 정치가 등장했던 근대국가 시절, 루소(Jean-Jacques Rousseau)가 던진 말이다. 200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절절하게 와 닿는다. 우리는 스스로 국가의 주인이며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난공불락의 과두 세력이 자신들의 울타리를 탄탄하게 둘러치며 국가의 주인인 우리를 소외시키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 든다. 우리는 이 위선(僞善)의 민주 사회 설계자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때가 되면 꼬박꼬박 투표용지를 제공할 뿐이다. 영화 〈매트릭스〉가 떠오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빨간 약이 아닐까?
우리는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배우며 자랐다. 과연 우리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선거는 아름다운가? 그리고 한데 어우러져 감동을 느끼고 희망을 나눌만한 축제의 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누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할 것이다. 선거의 결과가 빨간색이든 파란색이든, 축제는 거기에서 끝이다. 민주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한 우리는 이제 회사를 가고 학교를 가고 일상에 파묻히게 된다.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아니, 우리가 신경 써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정치는 엘리트들이 벌이는 ‘그들만의 리그’다. 그들이 공공성을 운운하며 국민 개인의 목을 조르건, 국민을 위한답시고 허공에 삽질을 하건, 우리는 군말 없이 따라야 한다. 이미 선거라는 이름으로 동의를 했기 때문이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오늘날 민주공화국에서는 이런 엉터리 민주주의가 펼쳐지고 있다.
선거를 통한 대의제 민주주의는 더 이상 국민을 대표하지도 민의를 반영하지도 못한다. 역사적으로 돌이켜봐도 기껏해야 민주주의의 한 가닥에 불과했을 뿐 핵심가치는 아니었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고대 로마의 원로원과 민회에서 기원해 중세 신분제 의회와 전통적인 귀족 혹은 고전 공화주의가 혼합된 제도적 관성의 결과였을 뿐이다. 그런데 미국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민주주의의 전부인 양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대표자 선출 방식을 선거로 한정한 것은 평등이라는 근대국가의 공식 이념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가 제3신분 안에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내세운 전략의 산물이었다. 여기에 투표권과 후보 자격의 확대로 대의제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구현한다는 착시를 불러일으켰고, 기득권 정치 세력이 이런 환경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 공학으로 이용해온 것이다.
정치 엘리트들의 술수는 제대로 먹혀들었다. 민주 사회에서 시민 대다수는 주체성과 의미를 잃은 채 매 순간의 욕망을 소비한다. 서구 패권 세력은 제3세계에게 ‘우리식 민주주의’를 강요하며 유ㆍ무형의 힘을 행사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는 그 영역을 인간 사회 전체로 확장시켜 금권 과두 체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자유민주주의라는 간판 아래에서 자행된다. 결국 민주주의를 내세워 민주주의 이념을 파괴하고 있는 셈이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저자는 이 모두가 대중을 정치에서 이탈시키려는 지배 블록의 술수에서 나온 것이며, 그 뿌리는 근대국가 개념이 확립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현존 민주주의 체제의 틀을 설계한 미국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은 민주 혁명이면서 동시에 부르주아 혁명이었다. 새로운 국가 체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부르주아는 ‘탁월성의 원칙’과 ‘규모의 제약’을 내세워 대의제를 관철했다. 그들은 대의제를 민주주의로 둔갑시켜 민중을 정치로부터 배제하고 통제할 수단을 얻었으며, 그 자신들은 특권 계급이 되었다. 둔갑? 그렇다. 둔갑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민주주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의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대의제는 인민주권 민주주의와 분명 상반되는 개념이었다. 결국 저들의 혁명은 성공했다. 우리의 혁명은 실패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민주주의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잊고 살았다. 지금의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저자는 지금의 민주주의를 말기 암 환자나 다름없다면서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다수 사람이 대의 민주주의란 암에 걸린 중환자의 처지에 놓여있는데도 정치에서 소외된 채 지배 블록을 강화시켜주고 있다고 말하며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외침이 필요한 때라고 역설한다. 그래서 ‘선거파업’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아니 바꿀 수 없는 현존 선거제를 보이콧하고 참여의 공간을 넓힐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해 건강한 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나라 ‘피렌체’의 추첨 민주주의는 새로운 대안?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먼저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를 떠올리며 추첨 민주주의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시행된 추첨제는 금권과 엘리트 위주의 오늘날 민주주의의 폐해를 부분적이나마 도려낼 수 있는 제도라고 말한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몽테스키외(Charles De Montesquieu)의 정의는 아주 적절하다. 그는 “추첨에 의한 선발은 민주정의 특성이요, 선거에 의한 선발은 귀족정의 특성이다. 추첨은 누구의 감정도 상하게 하지 않는 선발 방법으로, 각각의 시민에게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희망을 준다”고 말했다.
추첨제는 단지 아테네 민주정에서만 사용되고 사라진 제도가 아니었다. 추첨의 적용 범위와 형태는 달랐지만, 세습 군주가 아니라 시민이 권력을 행사한 로마 공화정과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공화국들에서 시행되었다. 마키아벨리의 나라 피렌체 공화국의 추첨 민주주의는 당대의 저작물에서 흔히 거론되곤 한다. 하지만 근대국가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J. S. 밀 같은 부르주아 사상가들이 효율성 등을 앞세워 주로 인구의 질이나 영토의 규모를 근거로 선거에 의한 대의제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세로 굳혀져 오늘날 더 이상 이의를 허용하지 않는 만능의 정치제도로 자리를 잡았다.
추첨은 전적으로 운에 의존하는 비합리적 모델처럼 느껴지지만 통계학에 입각할 때 결과는 합리적이다. 반면 선거는 공화적인 헌신과 정치적 효용 등을 감안한 합리적 행위로 포장되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비합리적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비합리성은 수백 년 동안 임상 실험을 통해 이미 확인되었다.
IT와 직접민주주의 요소들, 그리고 경제민주화의 당위성
저자는 단지 국회의원 선출 방법을 선거가 아닌 추첨으로 변경하는 것만으로는 민주주의가 복원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통로가 사실상 막혀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전자민주주의가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전자투표나 전자정부 같은 제도적 영역이 아니라, 고대 아테네의 ‘아고라’ 같은 온라인 공론장을 만들어 국민의 의사를 정책 결정에 반영해 대의제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가능성 또한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더해 국민소환, 국민발안, 국민투표 같은 고전적 논의부터 국회의원 임기와 선출 횟수 제한, 의원 정수 확대 등 우리 사회에 맞는 최적의 ‘민주주의 믹스’ 혹은 ‘혼합민주주의’를 창안해 명실상부하게 국민이 주인 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는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을 낳고 재생산하기 때문에 정치제도로서의 민주주의 개혁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정치민주화가 새로운 ‘민주주의 믹스’의 도입으로 가능하다면 경제민주화는 그렇게 조성된 진짜 민주주의의 기반을 갖추는 작업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민주주의까지 실현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있다며 저자는 대미를 맺는다.
▣ 작가 소개
저 : 안치용
지속가능경제연구소(ERIS) 소장이다. 청년협동조합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 이사장,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 관장, 한국외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CSR 담당), ‘ISO26000 전문가포럼’ 공동대표를 겸하고 있다. 경향신문에서 22년을 경제부·산업부·문화부·국제부 기자로 활동하였고, 2007년부터 2013년 퇴사까지는 사회책임 전문기자를 지냈다.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을 1991년 졸업하고, 서강대에서 경제학 석사(2009), 경희대에서 경영학 박사(2013)를 받았다. 역서로는 『한국전쟁과 미국의 세균전』, 저서로는 『블루오션의 거상』, 『10년후 당신에게』, 『지식을 거닐며 미래를 통찰하다』, 『대한민국행복지수』, 『트렌치 이코노믹스』, 『한국의 보노보들』, 『내 인생을 바꾼 한번의 만남』, 『청춘은 연대한다』, 『내 아들 내 딸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회적기업 49』, 『세상에 희망을 일구는 사회적기업 63』, 『착한 경영, 따뜻한 돈』, 『청춘을 반납한다』, 『내 청춘의 힐링캠프』, 『아프니까 어쩌라고』, 『바보야, 문제는 권력집단이야』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제1장 한국은 민주사회가 아니라 계급사회다
1. 미 점령군과 함께 온 민주주의
2. 민주(民主) 없는 민주주의로 출발한 나라
3. 선택지 왜곡의 구조화 … 무늬만 민주주의
제2장 민주주의는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다
1. 실망을 넘어 증오의 대상으로
2. 시민에서 구경꾼으로
3. 시장경제 vs. 시장사회
4. 우리의 민주주의는 반(反)민주주의이다
제3장 대의제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망가뜨리는가
1. 대의제는 부르주아 권력의지의 산물이다
2. 대의민주주의가 근대국가의 초석이 되는 과정
3. 국민주권의 무력함과 정치적 주체의 문제
제4장 그럼에도, 민주주의만이 희망이다
1. Exit에서 Voice로
2. 잊힌 가능성 ‘추첨민주주의’
3. IT와 민주주의
4.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 ‘혼합민주주의’ 혹은 ‘민주주의 믹스’
5. 경제민주주의의 복원과 국부의 시민적 통제
에필로그
대의제 민주주의는 감동도 희망도 없는 ‘말기 암 환자’
추첨제, IT, 국민발안 등으로 대대적 혁신을…
근대국가 지배 블록의 음모극, 대의제 민주주의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 동안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다시 노예가 되어 버린다.”
대의제(代議制) 정치가 등장했던 근대국가 시절, 루소(Jean-Jacques Rousseau)가 던진 말이다. 200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에도 절절하게 와 닿는다. 우리는 스스로 국가의 주인이며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난공불락의 과두 세력이 자신들의 울타리를 탄탄하게 둘러치며 국가의 주인인 우리를 소외시키고 국민 위에 군림하려 든다. 우리는 이 위선(僞善)의 민주 사회 설계자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때가 되면 꼬박꼬박 투표용지를 제공할 뿐이다. 영화 〈매트릭스〉가 떠오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빨간 약이 아닐까?
우리는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배우며 자랐다. 과연 우리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선거는 아름다운가? 그리고 한데 어우러져 감동을 느끼고 희망을 나눌만한 축제의 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누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할 것이다. 선거의 결과가 빨간색이든 파란색이든, 축제는 거기에서 끝이다. 민주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한 우리는 이제 회사를 가고 학교를 가고 일상에 파묻히게 된다.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아니, 우리가 신경 써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정치는 엘리트들이 벌이는 ‘그들만의 리그’다. 그들이 공공성을 운운하며 국민 개인의 목을 조르건, 국민을 위한답시고 허공에 삽질을 하건, 우리는 군말 없이 따라야 한다. 이미 선거라는 이름으로 동의를 했기 때문이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오늘날 민주공화국에서는 이런 엉터리 민주주의가 펼쳐지고 있다.
선거를 통한 대의제 민주주의는 더 이상 국민을 대표하지도 민의를 반영하지도 못한다. 역사적으로 돌이켜봐도 기껏해야 민주주의의 한 가닥에 불과했을 뿐 핵심가치는 아니었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고대 로마의 원로원과 민회에서 기원해 중세 신분제 의회와 전통적인 귀족 혹은 고전 공화주의가 혼합된 제도적 관성의 결과였을 뿐이다. 그런데 미국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민주주의의 전부인 양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대표자 선출 방식을 선거로 한정한 것은 평등이라는 근대국가의 공식 이념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가 제3신분 안에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내세운 전략의 산물이었다. 여기에 투표권과 후보 자격의 확대로 대의제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구현한다는 착시를 불러일으켰고, 기득권 정치 세력이 이런 환경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 공학으로 이용해온 것이다.
정치 엘리트들의 술수는 제대로 먹혀들었다. 민주 사회에서 시민 대다수는 주체성과 의미를 잃은 채 매 순간의 욕망을 소비한다. 서구 패권 세력은 제3세계에게 ‘우리식 민주주의’를 강요하며 유ㆍ무형의 힘을 행사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는 그 영역을 인간 사회 전체로 확장시켜 금권 과두 체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자유민주주의라는 간판 아래에서 자행된다. 결국 민주주의를 내세워 민주주의 이념을 파괴하고 있는 셈이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저자는 이 모두가 대중을 정치에서 이탈시키려는 지배 블록의 술수에서 나온 것이며, 그 뿌리는 근대국가 개념이 확립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현존 민주주의 체제의 틀을 설계한 미국독립혁명과 프랑스혁명은 민주 혁명이면서 동시에 부르주아 혁명이었다. 새로운 국가 체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부르주아는 ‘탁월성의 원칙’과 ‘규모의 제약’을 내세워 대의제를 관철했다. 그들은 대의제를 민주주의로 둔갑시켜 민중을 정치로부터 배제하고 통제할 수단을 얻었으며, 그 자신들은 특권 계급이 되었다. 둔갑? 그렇다. 둔갑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민주주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의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대의제는 인민주권 민주주의와 분명 상반되는 개념이었다. 결국 저들의 혁명은 성공했다. 우리의 혁명은 실패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민주주의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잊고 살았다. 지금의 민주주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저자는 지금의 민주주의를 말기 암 환자나 다름없다면서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다수 사람이 대의 민주주의란 암에 걸린 중환자의 처지에 놓여있는데도 정치에서 소외된 채 지배 블록을 강화시켜주고 있다고 말하며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외침이 필요한 때라고 역설한다. 그래서 ‘선거파업’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아니 바꿀 수 없는 현존 선거제를 보이콧하고 참여의 공간을 넓힐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해 건강한 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나라 ‘피렌체’의 추첨 민주주의는 새로운 대안?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먼저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를 떠올리며 추첨 민주주의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시행된 추첨제는 금권과 엘리트 위주의 오늘날 민주주의의 폐해를 부분적이나마 도려낼 수 있는 제도라고 말한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몽테스키외(Charles De Montesquieu)의 정의는 아주 적절하다. 그는 “추첨에 의한 선발은 민주정의 특성이요, 선거에 의한 선발은 귀족정의 특성이다. 추첨은 누구의 감정도 상하게 하지 않는 선발 방법으로, 각각의 시민에게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 희망을 준다”고 말했다.
추첨제는 단지 아테네 민주정에서만 사용되고 사라진 제도가 아니었다. 추첨의 적용 범위와 형태는 달랐지만, 세습 군주가 아니라 시민이 권력을 행사한 로마 공화정과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공화국들에서 시행되었다. 마키아벨리의 나라 피렌체 공화국의 추첨 민주주의는 당대의 저작물에서 흔히 거론되곤 한다. 하지만 근대국가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J. S. 밀 같은 부르주아 사상가들이 효율성 등을 앞세워 주로 인구의 질이나 영토의 규모를 근거로 선거에 의한 대의제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세로 굳혀져 오늘날 더 이상 이의를 허용하지 않는 만능의 정치제도로 자리를 잡았다.
추첨은 전적으로 운에 의존하는 비합리적 모델처럼 느껴지지만 통계학에 입각할 때 결과는 합리적이다. 반면 선거는 공화적인 헌신과 정치적 효용 등을 감안한 합리적 행위로 포장되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비합리적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비합리성은 수백 년 동안 임상 실험을 통해 이미 확인되었다.
IT와 직접민주주의 요소들, 그리고 경제민주화의 당위성
저자는 단지 국회의원 선출 방법을 선거가 아닌 추첨으로 변경하는 것만으로는 민주주의가 복원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통로가 사실상 막혀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전자민주주의가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전자투표나 전자정부 같은 제도적 영역이 아니라, 고대 아테네의 ‘아고라’ 같은 온라인 공론장을 만들어 국민의 의사를 정책 결정에 반영해 대의제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가능성 또한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더해 국민소환, 국민발안, 국민투표 같은 고전적 논의부터 국회의원 임기와 선출 횟수 제한, 의원 정수 확대 등 우리 사회에 맞는 최적의 ‘민주주의 믹스’ 혹은 ‘혼합민주주의’를 창안해 명실상부하게 국민이 주인 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는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을 낳고 재생산하기 때문에 정치제도로서의 민주주의 개혁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정치민주화가 새로운 ‘민주주의 믹스’의 도입으로 가능하다면 경제민주화는 그렇게 조성된 진짜 민주주의의 기반을 갖추는 작업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민주주의까지 실현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있다며 저자는 대미를 맺는다.
▣ 작가 소개
저 : 안치용
지속가능경제연구소(ERIS) 소장이다. 청년협동조합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 이사장,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 관장, 한국외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CSR 담당), ‘ISO26000 전문가포럼’ 공동대표를 겸하고 있다. 경향신문에서 22년을 경제부·산업부·문화부·국제부 기자로 활동하였고, 2007년부터 2013년 퇴사까지는 사회책임 전문기자를 지냈다.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을 1991년 졸업하고, 서강대에서 경제학 석사(2009), 경희대에서 경영학 박사(2013)를 받았다. 역서로는 『한국전쟁과 미국의 세균전』, 저서로는 『블루오션의 거상』, 『10년후 당신에게』, 『지식을 거닐며 미래를 통찰하다』, 『대한민국행복지수』, 『트렌치 이코노믹스』, 『한국의 보노보들』, 『내 인생을 바꾼 한번의 만남』, 『청춘은 연대한다』, 『내 아들 내 딸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회적기업 49』, 『세상에 희망을 일구는 사회적기업 63』, 『착한 경영, 따뜻한 돈』, 『청춘을 반납한다』, 『내 청춘의 힐링캠프』, 『아프니까 어쩌라고』, 『바보야, 문제는 권력집단이야』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제1장 한국은 민주사회가 아니라 계급사회다
1. 미 점령군과 함께 온 민주주의
2. 민주(民主) 없는 민주주의로 출발한 나라
3. 선택지 왜곡의 구조화 … 무늬만 민주주의
제2장 민주주의는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다
1. 실망을 넘어 증오의 대상으로
2. 시민에서 구경꾼으로
3. 시장경제 vs. 시장사회
4. 우리의 민주주의는 반(反)민주주의이다
제3장 대의제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망가뜨리는가
1. 대의제는 부르주아 권력의지의 산물이다
2. 대의민주주의가 근대국가의 초석이 되는 과정
3. 국민주권의 무력함과 정치적 주체의 문제
제4장 그럼에도, 민주주의만이 희망이다
1. Exit에서 Voice로
2. 잊힌 가능성 ‘추첨민주주의’
3. IT와 민주주의
4.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 ‘혼합민주주의’ 혹은 ‘민주주의 믹스’
5. 경제민주주의의 복원과 국부의 시민적 통제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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