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간결하고, 부드럽고, 예리하다.” ― Basler Zeitung
“현재를 향한 분노, 그러나 미래를 보는 충만한 희망. 지젝은 문제의 핵심을 드러낸다. 그는 아주 끔찍한 것일지라도 분명하게 말할 줄 안다. 그는 언제나 원인과 결과를 적시하기 때문이다.” ― Berliner Zeitung
“새로운 공산주의를 재발명하다.” ― Neue Westfalische
“파리 테러를 고찰한 강력한 에세이.” ― Stuttgarter Zeitung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으며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무엇이 가능하며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여전히 이런 고민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면 슬라보예 지젝을 읽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불가피한 필연이다. 테러의 시대, 난민의 시대, 종말의 시대에 아무런 나침반조차 없다면 얼마나 불행했을 것인가. 이 시대의 가장 열정적인 철학자가 바로 우리의 나침반이다. 새로운 계급투쟁의 깃발이다.” ― 로쟈 이현우
난민과 이슬람 테러리즘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일까?
유럽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대규모 난민과 이슬람 테러리즘은 유럽을 전후 최대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순수한 연민과 동정만으로는 이를 극복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즉 이슬람 테러리즘과 마찬가지로 난민의 물결은 단순히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한 징후라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의 기본 바탕은 계급투쟁이다.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정부는 기득권 집단에만 봉사하는 마당에 사회가 분열하며, 극단적 인간이 되거나, 더 낫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가려는 현상은 놀라운 일일까? 따라서 민주주의, 자유, 평등의 가치에 대한 서구인들의 주장은 아무리 그 가치가 바람직하게 존재할지라도 입에 발린 말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서구사회에 진정 위협이 되는 것은 난민의 유입이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의 역학관계에서 기인하며, 이는 전 지구적 근본주의의 출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로부터 다음 두 가지 불편한 필연성이 명백해진다 :
1. 우리는 테러리즘과 난민의 물결 뒤에 있는 경제적 원인에 대해 말해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로부터 문화적, 자연적, 인간적 재화를 해방시키는 새롭고 보편적인 공산주의를 재발명해야 한다.
2. 우리는 우리 자신의 좌파적 사회적 금기들을 제거해야 한다. 새롭게 도착한 외국인들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맹목적 공감만으로는 건설적인 상호공존을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의 개성을 더 객관적으로 수용하고 문화적 차이를 더 폭넓게 수용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해야만 ― 그리고 이러한 인식에서 불가피하게 드러나는 우리 자신의 모습까지 인정해야만 ― 우리가 어떻게 타인과 관계를 맺는지를 보여줄 ‘주도 문화’가 생길 수 있고, 바로 그 초석 위에서 비로소 우리는 이슬람 투사와 대결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서구)의 생활양식과 가치를 보존하고, 그것을 위해 싸울 권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세계를 가진 자와 소외된 자로 나눌 권리는 없다. 유일한 진정한 보편주의는 정의를 세우려는 투쟁에서만 성립한다. 우리는 모두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자본주의 체계의 부분이기 때문이다.
서평 : 인현정 (이화여대 철학과 박사과정)
현실 속에서 천착한 지젝의 사유
지난해 1월 파리는 샤를리 에브도 사건을 경험했고, 다시금 11월 또 다른 테러를 겪었다. 연이은 유럽사회의 불안은 지젝으로 하여금 다시금 펜을 들게 했고, 이 책은 지난 12월 21일 독일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의 서두는 정신과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를 인용하면서 시작된다. 지젝은 그녀가 『죽음과 죽어감에 관하여』에서 제시한 불치병에 대응하는 5가지 단계 ― ①부정, ②분노, ③타협, ④우울, ⑤수용 ― 를 인용하면서 난민 행렬을 바라보는 서구의 반응도 이 다섯 단계 감정이 혼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지 질문한다. 하지만 지젝에 따르면 다섯 번째 ‘수용’의 단계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만약 그 상황이 나타난다면, 이는 유럽이 어떻게 일관된 계획 속에서 난민을 다루게 될지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도식은 작년 9월 9일, 지젝이 ?런던 북리뷰?에 기고한 ‘노르웨이는 없다’에서 이미 인용된 바 있다. 이 글에서 이미 지젝은 좌파 자유주의자에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는데 놀랍게도 11월 13일 금요일 파리에서 다시금 ‘심판받아야 마땅한’ 끔찍한 테러가 일어났다. 또한 파리 테러 직후인 11월 16일, 미국의 진보적 월간지인 ?이 시대?에 ‘좌파는 서구 좌파의 뿌리를 포용해야 한다’고 기고했고, 이 글의 일부 역시 다시금 등장한다.
유토피아의 역설
지젝이 이 책을 통해 일련의 테러를 진단하고 있는 바는 다음과 같다. 난민은 단지 전쟁으로 황폐해진 고향을 피해서 도망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왔고, 그러기에 그들은 단지 서구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탈리아에 머무르지 않고 스칸디나비아에서 살고자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지젝은 바로 이 점에서 유토피아의 역설을 지적한다. 사람들은 가난, 고통,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오히려 ‘절대적 유토피아’가 폭발한다. 노르웨이는 없다. “난민은 자신의 꿈을 스스로 검열하고 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현실에서 꿈을 좇는 대신 현실을 바꾸는 데 집중해야 한다”(본문 66쪽).
문화전쟁과 계급투쟁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책은 이번 파리 테러가 갖는 상징성이 이전의 양상과는 다르다는 점을 언급한다. 이전에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군사적 혹은 정치적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대상을 공격했다. 하지만 올해 테러 대상이 된 곳은 레스토랑, 록 콘서트홀 등 일상생활의 공간이자 대중문화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의 말대로 “2015년 상반기에 유럽은 주로 급진 해방운동에 몰두한 반면, 하반기에는 난민의 ‘인도주의적’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계급투쟁은 관용과 연대라는 자유주의적-문화적 주제에 그야말로 압도당하고 밀려났다”는 것이다(115~116쪽). 그는 문화전쟁과 이타적 가치가 오히려 사회를 재건하려는 노력이나 난민들이 더 이상 강제로 떠돌지 않아도 되는 기반을 형성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다시금 레닌의 질문인 ‘무엇을 할 것인가’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군사화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유럽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젝는 먼저 마르크스 이론가이자 문학비평가인 프레드릭 제임슨의 의견을 제시한다. 지젝은 계속되는 유럽의 난민 위기가 프레드릭 제임슨의 대안 ― 거대한 규모의 조직화와 조직 ― 을 시험할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악순환을 효과적으로 끊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일종의 ‘군사화’다. 이는 자율규제 경제의 힘을 무력화(無力化)시키는 다른 이름이다. 어쩌면 유럽에서 지속될 난민 위기는 정확히 이 가능성을 시험할 기회를 제공하리라”(103쪽).
최소한의 규범
또한 지젝은 무슬림과 서구 자유주의자의 상호공존에 필수적인 두 가지를 언급한다. “이슬람이 서구의 신성모독적 이미지와 냉소적 유머를 수용할 수 없는 것처럼, 서구 자유주의자도 이슬람의 많은 풍습을 견딜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두 가지에 유념해야 한다. 첫째, 모두가 의무적으로 지킬 최소한의 규범을 만드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 집단적 폭력에 대항하는 개인적 자유의 보호, 여성 인권 등이 그것이다. 둘째, 이 제한 내에서 상이한 생활방식에 무조건적 관용을 행해야 한다. 이런 규범과 소통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가능한 모든 형태의 법적 강제력을 집행해야 한다”(105~106쪽).
이타주의의 한계
마지막으로 지젝은 지금 우리에게 지배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진보 좌파에 만연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주문처럼 반복되는 불평과 상황을 윤리화시키는 것 ― 유럽은 공감을 상실했다,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다 등 ― 은 반이민주의 폭력의 반대급부일 뿐이다”(106쪽). 결국 이러한 막다른 상황을 깨는 방법은 타인에 대한 관용을 ‘넘어서는’ 일이다. “단순하게 서로 존중하는 선에 그치지 말고 함께 투쟁하자고 제안하자.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공동의 문제다!”(107쪽).
네 가지 적대성
그렇다면 새로운 ‘공산주의 이념’을 절박한 현안으로 부상시킨 원인은 무엇일까? 지젝은 말한다. “오늘날 유일하게 진정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계속되는 자본주의 지배를 지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오늘날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그 무한 재생산을 막을 충분히 강한 적대성을 찾을 것인가? 적대성은 네 가지다. 생태 파국의 위기, 이른바 ‘지적재산권’의 사유재산화, 새로운 기술-과학 발달이 초래할 사회윤리적 영향(특히 유전공학), 마지막으로 무시할 수 없는 적대는 새로운 형태의 아파르트헤이트, 새로운 장벽과 슬럼이다”(110쪽).
순수한 자발성
그는 공산주의의 재창조를 위해 무엇보다 우리의 자발성을 강조한다. 그는 간디의 좌우명을 인용해 “너 자신이 네가 세상에서 보기 원했던 변화가 되어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역사 발전의 내적 동력은 그 자체로 움직이며 파국과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러므로 이 파국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순수한 자발성, 역사적 필연성에 대항하려는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이다”(114쪽).
2015년 11월 13일 이후,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SNS을 통해 ‘나는 파리다’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며 서로를 위로했다. 지젝에 따르면 국가보다 더 사적인(private) 것은 없지만, 사람들의 감정은 국경의 경계를, 개인적 슬픔의 경계를 부수고 퍼져 나갔다. 진정 파리의 죽음을 비난하고자 한다면, ‘나는 파리다’라는 말이 옳다, 아니 옳아야 할 것이다. 지젝의 말대로, 이슬람 파시스트나 유럽의 반이민 인종주의자들이나 동전의 양면인 것은 사실이니까. 전 지구적 통찰이 없는 파리 희생자들을 향한 무기력한 연대는 가짜 윤리가 지닌 무례함이라고 역설하는 지젝은 분명 용감한 사람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계급투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그의 호소와, 이용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지구적 연대의 강조, 모두 절실하다. 새로운 계급투쟁, 여전히 생생해야 할 주제임에는 틀림없다.
▣ 작가 소개
저 : 슬라보예 지젝
1949년 옛 유고연방이었던 슬로베니아 태생.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파리 제8대학의 정신분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을 접목한 독보적인 철학으로 ‘동유럽의 기적’ 혹은 라캉 정신분석학의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는 독일 고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새롭게 이론화 하였다. 철학자로는 드물게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최근 인문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각주에 인용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여 가진 두 차례의 강연회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전체주의와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운동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정치에도 관심을 보여 1990년에는 슬로베니아 공화국 대통령 선거에 개혁파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현재는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선임 연구원으로 있으며, 슬로베니아의 주간지 〈믈라디나〉의 정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 현상에 대한 관심을 가진 그는 이론과 현실, 문화의 창의적인 결합을 담아 지속적으로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SF 소설, 할리우드 영화, 모차르트와 바그너의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 예술을 철학과 접목시킨 독특한 문화 비평을 내놓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요 저서로 『삐딱하게 보기』,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까다로운 주체』, 『신체 없는 기관』, 『혁명이 다가온다』,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HOW TO READ 라캉』, 『죽은 신을 위하여』, 『시차적 관점』 등이 있고, 함께 쓴 책으로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 『성관계는 없다』,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 『레닌 재장전』『바디우와 지젝 현재의 철학을 말하다』(공저)등이 있다.
역 : 김희상
성균관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였다. 1990년 독일로 유학을 가서 막시밀리안 대학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독일 관념론을 공부했고, 2003년 귀국한 뒤로 깊이 있는 인문학 공부와 유럽 문화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유레카』·『사자와 권력』·『탈』·『달라이 라마의 공감』·『한 권으로 읽는 셰익스피어』·『우리 안의 히틀러』·『평화: 루이제 린저와 달라이 라마의 대화』·『알렉산드리아의 족장』·『슈페사르트 산장』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핵폭발 그후로도 오랫동안』 등 총 40여 권의 작품을 번역했으며, 2008년에는 어린이 철학책『생각의 힘을 키우는 주니어 철학』을 집필했다. 최근작으로는 『심리학 나 좀 구해줘』와 『소설, 여자의 인생에 답하다』가 있다.
▣ 주요 목차
이중의 협박 7
좌파의 금기를 깨자 21
종교의 음란한 이면 35
신적 폭력 43
난민의 정치경제학 53
문화전쟁에서 계급투쟁으로, 그리고 다시 거꾸로 65
위협은 어디에서 오는가? 79
이웃의 경계 89
무엇을 할 것인가? 103
주석 119
슬라보예 지젝 국내 단행본 목록 130
“간결하고, 부드럽고, 예리하다.” ― Basler Zeitung
“현재를 향한 분노, 그러나 미래를 보는 충만한 희망. 지젝은 문제의 핵심을 드러낸다. 그는 아주 끔찍한 것일지라도 분명하게 말할 줄 안다. 그는 언제나 원인과 결과를 적시하기 때문이다.” ― Berliner Zeitung
“새로운 공산주의를 재발명하다.” ― Neue Westfalische
“파리 테러를 고찰한 강력한 에세이.” ― Stuttgarter Zeitung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으며 우리의 과제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무엇이 가능하며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여전히 이런 고민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면 슬라보예 지젝을 읽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불가피한 필연이다. 테러의 시대, 난민의 시대, 종말의 시대에 아무런 나침반조차 없다면 얼마나 불행했을 것인가. 이 시대의 가장 열정적인 철학자가 바로 우리의 나침반이다. 새로운 계급투쟁의 깃발이다.” ― 로쟈 이현우
난민과 이슬람 테러리즘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일까?
유럽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대규모 난민과 이슬람 테러리즘은 유럽을 전후 최대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순수한 연민과 동정만으로는 이를 극복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즉 이슬람 테러리즘과 마찬가지로 난민의 물결은 단순히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한 징후라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의 기본 바탕은 계급투쟁이다. 갈수록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정부는 기득권 집단에만 봉사하는 마당에 사회가 분열하며, 극단적 인간이 되거나, 더 낫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옮겨가려는 현상은 놀라운 일일까? 따라서 민주주의, 자유, 평등의 가치에 대한 서구인들의 주장은 아무리 그 가치가 바람직하게 존재할지라도 입에 발린 말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 서구사회에 진정 위협이 되는 것은 난민의 유입이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의 역학관계에서 기인하며, 이는 전 지구적 근본주의의 출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로부터 다음 두 가지 불편한 필연성이 명백해진다 :
1. 우리는 테러리즘과 난민의 물결 뒤에 있는 경제적 원인에 대해 말해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로부터 문화적, 자연적, 인간적 재화를 해방시키는 새롭고 보편적인 공산주의를 재발명해야 한다.
2. 우리는 우리 자신의 좌파적 사회적 금기들을 제거해야 한다. 새롭게 도착한 외국인들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맹목적 공감만으로는 건설적인 상호공존을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의 개성을 더 객관적으로 수용하고 문화적 차이를 더 폭넓게 수용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해야만 ― 그리고 이러한 인식에서 불가피하게 드러나는 우리 자신의 모습까지 인정해야만 ― 우리가 어떻게 타인과 관계를 맺는지를 보여줄 ‘주도 문화’가 생길 수 있고, 바로 그 초석 위에서 비로소 우리는 이슬람 투사와 대결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서구)의 생활양식과 가치를 보존하고, 그것을 위해 싸울 권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세계를 가진 자와 소외된 자로 나눌 권리는 없다. 유일한 진정한 보편주의는 정의를 세우려는 투쟁에서만 성립한다. 우리는 모두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자본주의 체계의 부분이기 때문이다.
서평 : 인현정 (이화여대 철학과 박사과정)
현실 속에서 천착한 지젝의 사유
지난해 1월 파리는 샤를리 에브도 사건을 경험했고, 다시금 11월 또 다른 테러를 겪었다. 연이은 유럽사회의 불안은 지젝으로 하여금 다시금 펜을 들게 했고, 이 책은 지난 12월 21일 독일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의 서두는 정신과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를 인용하면서 시작된다. 지젝은 그녀가 『죽음과 죽어감에 관하여』에서 제시한 불치병에 대응하는 5가지 단계 ― ①부정, ②분노, ③타협, ④우울, ⑤수용 ― 를 인용하면서 난민 행렬을 바라보는 서구의 반응도 이 다섯 단계 감정이 혼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지 질문한다. 하지만 지젝에 따르면 다섯 번째 ‘수용’의 단계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만약 그 상황이 나타난다면, 이는 유럽이 어떻게 일관된 계획 속에서 난민을 다루게 될지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도식은 작년 9월 9일, 지젝이 ?런던 북리뷰?에 기고한 ‘노르웨이는 없다’에서 이미 인용된 바 있다. 이 글에서 이미 지젝은 좌파 자유주의자에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는데 놀랍게도 11월 13일 금요일 파리에서 다시금 ‘심판받아야 마땅한’ 끔찍한 테러가 일어났다. 또한 파리 테러 직후인 11월 16일, 미국의 진보적 월간지인 ?이 시대?에 ‘좌파는 서구 좌파의 뿌리를 포용해야 한다’고 기고했고, 이 글의 일부 역시 다시금 등장한다.
유토피아의 역설
지젝이 이 책을 통해 일련의 테러를 진단하고 있는 바는 다음과 같다. 난민은 단지 전쟁으로 황폐해진 고향을 피해서 도망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왔고, 그러기에 그들은 단지 서구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탈리아에 머무르지 않고 스칸디나비아에서 살고자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지젝은 바로 이 점에서 유토피아의 역설을 지적한다. 사람들은 가난, 고통,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오히려 ‘절대적 유토피아’가 폭발한다. 노르웨이는 없다. “난민은 자신의 꿈을 스스로 검열하고 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현실에서 꿈을 좇는 대신 현실을 바꾸는 데 집중해야 한다”(본문 66쪽).
문화전쟁과 계급투쟁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책은 이번 파리 테러가 갖는 상징성이 이전의 양상과는 다르다는 점을 언급한다. 이전에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군사적 혹은 정치적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대상을 공격했다. 하지만 올해 테러 대상이 된 곳은 레스토랑, 록 콘서트홀 등 일상생활의 공간이자 대중문화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의 말대로 “2015년 상반기에 유럽은 주로 급진 해방운동에 몰두한 반면, 하반기에는 난민의 ‘인도주의적’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계급투쟁은 관용과 연대라는 자유주의적-문화적 주제에 그야말로 압도당하고 밀려났다”는 것이다(115~116쪽). 그는 문화전쟁과 이타적 가치가 오히려 사회를 재건하려는 노력이나 난민들이 더 이상 강제로 떠돌지 않아도 되는 기반을 형성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다시금 레닌의 질문인 ‘무엇을 할 것인가’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군사화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유럽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젝는 먼저 마르크스 이론가이자 문학비평가인 프레드릭 제임슨의 의견을 제시한다. 지젝은 계속되는 유럽의 난민 위기가 프레드릭 제임슨의 대안 ― 거대한 규모의 조직화와 조직 ― 을 시험할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악순환을 효과적으로 끊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일종의 ‘군사화’다. 이는 자율규제 경제의 힘을 무력화(無力化)시키는 다른 이름이다. 어쩌면 유럽에서 지속될 난민 위기는 정확히 이 가능성을 시험할 기회를 제공하리라”(103쪽).
최소한의 규범
또한 지젝은 무슬림과 서구 자유주의자의 상호공존에 필수적인 두 가지를 언급한다. “이슬람이 서구의 신성모독적 이미지와 냉소적 유머를 수용할 수 없는 것처럼, 서구 자유주의자도 이슬람의 많은 풍습을 견딜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두 가지에 유념해야 한다. 첫째, 모두가 의무적으로 지킬 최소한의 규범을 만드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 집단적 폭력에 대항하는 개인적 자유의 보호, 여성 인권 등이 그것이다. 둘째, 이 제한 내에서 상이한 생활방식에 무조건적 관용을 행해야 한다. 이런 규범과 소통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가능한 모든 형태의 법적 강제력을 집행해야 한다”(105~106쪽).
이타주의의 한계
마지막으로 지젝은 지금 우리에게 지배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진보 좌파에 만연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주문처럼 반복되는 불평과 상황을 윤리화시키는 것 ― 유럽은 공감을 상실했다,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다 등 ― 은 반이민주의 폭력의 반대급부일 뿐이다”(106쪽). 결국 이러한 막다른 상황을 깨는 방법은 타인에 대한 관용을 ‘넘어서는’ 일이다. “단순하게 서로 존중하는 선에 그치지 말고 함께 투쟁하자고 제안하자.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공동의 문제다!”(107쪽).
네 가지 적대성
그렇다면 새로운 ‘공산주의 이념’을 절박한 현안으로 부상시킨 원인은 무엇일까? 지젝은 말한다. “오늘날 유일하게 진정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계속되는 자본주의 지배를 지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오늘날 글로벌 자본주의에서 그 무한 재생산을 막을 충분히 강한 적대성을 찾을 것인가? 적대성은 네 가지다. 생태 파국의 위기, 이른바 ‘지적재산권’의 사유재산화, 새로운 기술-과학 발달이 초래할 사회윤리적 영향(특히 유전공학), 마지막으로 무시할 수 없는 적대는 새로운 형태의 아파르트헤이트, 새로운 장벽과 슬럼이다”(110쪽).
순수한 자발성
그는 공산주의의 재창조를 위해 무엇보다 우리의 자발성을 강조한다. 그는 간디의 좌우명을 인용해 “너 자신이 네가 세상에서 보기 원했던 변화가 되어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역사 발전의 내적 동력은 그 자체로 움직이며 파국과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러므로 이 파국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순수한 자발성, 역사적 필연성에 대항하려는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이다”(114쪽).
2015년 11월 13일 이후,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SNS을 통해 ‘나는 파리다’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며 서로를 위로했다. 지젝에 따르면 국가보다 더 사적인(private) 것은 없지만, 사람들의 감정은 국경의 경계를, 개인적 슬픔의 경계를 부수고 퍼져 나갔다. 진정 파리의 죽음을 비난하고자 한다면, ‘나는 파리다’라는 말이 옳다, 아니 옳아야 할 것이다. 지젝의 말대로, 이슬람 파시스트나 유럽의 반이민 인종주의자들이나 동전의 양면인 것은 사실이니까. 전 지구적 통찰이 없는 파리 희생자들을 향한 무기력한 연대는 가짜 윤리가 지닌 무례함이라고 역설하는 지젝은 분명 용감한 사람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계급투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그의 호소와, 이용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지구적 연대의 강조, 모두 절실하다. 새로운 계급투쟁, 여전히 생생해야 할 주제임에는 틀림없다.
▣ 작가 소개
저 : 슬라보예 지젝
1949년 옛 유고연방이었던 슬로베니아 태생.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파리 제8대학의 정신분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을 접목한 독보적인 철학으로 ‘동유럽의 기적’ 혹은 라캉 정신분석학의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는 독일 고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새롭게 이론화 하였다. 철학자로는 드물게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최근 인문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각주에 인용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여 가진 두 차례의 강연회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전체주의와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운동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정치에도 관심을 보여 1990년에는 슬로베니아 공화국 대통령 선거에 개혁파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현재는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선임 연구원으로 있으며, 슬로베니아의 주간지 〈믈라디나〉의 정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 현상에 대한 관심을 가진 그는 이론과 현실, 문화의 창의적인 결합을 담아 지속적으로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SF 소설, 할리우드 영화, 모차르트와 바그너의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 예술을 철학과 접목시킨 독특한 문화 비평을 내놓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주요 저서로 『삐딱하게 보기』,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까다로운 주체』, 『신체 없는 기관』, 『혁명이 다가온다』,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HOW TO READ 라캉』, 『죽은 신을 위하여』, 『시차적 관점』 등이 있고, 함께 쓴 책으로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 『성관계는 없다』,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 『레닌 재장전』『바디우와 지젝 현재의 철학을 말하다』(공저)등이 있다.
역 : 김희상
성균관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였다. 1990년 독일로 유학을 가서 막시밀리안 대학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독일 관념론을 공부했고, 2003년 귀국한 뒤로 깊이 있는 인문학 공부와 유럽 문화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유레카』·『사자와 권력』·『탈』·『달라이 라마의 공감』·『한 권으로 읽는 셰익스피어』·『우리 안의 히틀러』·『평화: 루이제 린저와 달라이 라마의 대화』·『알렉산드리아의 족장』·『슈페사르트 산장』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핵폭발 그후로도 오랫동안』 등 총 40여 권의 작품을 번역했으며, 2008년에는 어린이 철학책『생각의 힘을 키우는 주니어 철학』을 집필했다. 최근작으로는 『심리학 나 좀 구해줘』와 『소설, 여자의 인생에 답하다』가 있다.
▣ 주요 목차
이중의 협박 7
좌파의 금기를 깨자 21
종교의 음란한 이면 35
신적 폭력 43
난민의 정치경제학 53
문화전쟁에서 계급투쟁으로, 그리고 다시 거꾸로 65
위협은 어디에서 오는가? 79
이웃의 경계 89
무엇을 할 것인가? 103
주석 119
슬라보예 지젝 국내 단행본 목록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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