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 내게 말한 것들 -민주노조의 전설 원풍노조 노동자들의 구술 생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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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황선금
출판사항실천문학사, 발행일:2016/04/05
형태사항p.359 국판:22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39207509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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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노동자이자 조합원이자 구술자들의 말

이필남
처음 배정받은 작업은 실을 염색하는 공정이었다.
항상 물에 젖은 원료를 옮겨야 했기에 힘이 들었지만, 그보다 염색약의 독한 냄새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 특히 표백제를 사용하는 날은 코로 숨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다. 염색이 잘못 되면 다른 색깔로 바꾸기 위해 표백제를 사용해서 염색 물을 빼야 했다. 그 표백제 냄새가 어찌나 독하던지 코로 숨 쉬기도 힘들고 조금만 맡아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정도였다.
염색과 작업장은 겨울에는 다른 곳보다 한결 추웠다. 염색 냄새를 밖으로 빼내기 위해 환풍기를 많이 돌리는데 실내의 온기도 밖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물을 사용하는 현장이다 보니 더 추울 수밖에 없었다. 스팀 건조기가 있는 곳만 겨우 온기가 있었다. 몹시 추운 날은 옆의 동료와 서로 기계를 봐주면서 교대로 건조기에 가서 언 몸을 녹였다. 그러다가 발각이 되면 시말서를 쓰고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당직자가 현장에 들어오면 서로 신호를 해주었다.

임충호
“이봐, 정신 좀 차려요?”
누가 누군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이 사람 저 사람 등을 흔들며 상체를 일으켜 세우다 아무 반응이 없이 축 늘어진 동료는 등에 업고 병원으로 뛰었다. 그 와중에 쓰러져 있는 낯익은 얼굴 하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직포과 화숙이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불쌍하던지 등에 업고 강남성심병원으로 뛰면서 펑펑 울었다. 그렇게 수십 명의 동료들을 들쳐 업고 뛰었다. “때려죽일 놈들”을 수없이 되뇌면서, 펑펑 울면서, 강남성심병원, 한독병원, 누가의원 응급실로 뛰고 또 뛰었다.
대림동 삼거리 도로가 얼마나 넓었던가. 마침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때라 오고가는 차들도 많았다. 그 도로를 의식 잃은 동료들을 업고 뛰며 참 많이도 울었다.

김두숙
섬유노조 어용위원장 역을 맡았던 나는 조합원들에게 삿대질과 야유를 받으면서 욕을 먹었지만 그래도 흥겨웠다. 상쇠가 징을 크게 울리며 운동장으로 조합원들을 끌고 가서 뒤풀이 공연을 했다. 운동장에서 관객과 공연자가 하나가 되어 탈춤공연 뒤풀이를 할 때는 무언가 노조활동에 기여했다는 뿌듯한 기분에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았다.
가족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나는 마치 양어깨에 날개가 날린 듯 원풍노조라는 옷을 입고 대의원으로, 탈춤반으로, 소모임으로 활동하는 가운데 미처 몰랐던 나의 기질과 끼를 발견하고 계발하면서 행복과 함께 성취감도 느꼈다.

김향자
나는 소모임 회원 몇 명과 구치소에 구속되어 있는 와이에이치 노조간부들 면회를 갔다. 그 사람들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우리는 이미 동지애가 있었다. 면회를 할 수는 없었지만 힘내라고 사식 몇 끼니 값이라도 영치금을 넣고 돌아왔다.
구치소로 면회를 가는 일은 그 자체 하나의 시위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긴급조치 위반’으로 감옥살이를 했다.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교수, 목사, 학생들이 사회정의를 외치다가 수없이 구속되던 시절이었다. 유신의 폭압정치는 사회 곳곳을 어둡게 짓누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노동문제를 위해 싸우다 구속된 사람들의 면회를 자주 다녔다. 이런 작은 행동들이 암울한 시대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최금숙
추석 연휴가 지나자 상집간부 모두에게 수배령이 내렸다. 수배 전단지가 거리 곳곳에 붙어 있었다. 살인, 강도 같은 무서운 범죄자들의 사진으로 도배된 수배전단지는 많이 보았지만 내가 그 전단지의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다.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일단 2인 1조가 되어 숨었다. 나는 노조 감사였던 문선자 언니랑 한 조였는데, 방용석 지부장이 소개해준 집을 찾아가서 이 집에서 하룻밤, 저 집에서 하룻밤 피해 다니면서 잠을 자고 밥을 얻어먹었다. 한 오누이가 자취하는 성수동의 집에도 가서 체면 불구하고 며칠 지냈다. 우리보다 훨씬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쥐꼬리만 한 임금을 받고 일하던 오누이 노동자의 집은 방과 부엌이 따로 있는 구조도 아니었다. 어느 날 밖에서 부서 조합원들을 만나고 저녁에 들어와 보니 밥 지을 쌀이 떨어졌던 모양이다. 오빠 되는 사람이 라면에 콩나물을 넣고 끓여주었다.

김정숙
얼떨결에 결혼은 했지만 노조활동을 했던 지난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탈춤반 회원들과 대본을 짜고 춤을 배우던 일, 소모임 활동을 했던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다녔던 서울의 활기찬 거리가 시시때때로 생각났다.
시집은 흙으로 만든 부뚜막에 무쇠 솥을 걸어놓은 재래식 부엌이었기에 밥을 짓고 국을 끓이려면 아궁이에 장작불을 때야 했다. 바짝 마른 장작이 타다닥 소리를 내며 붉은 불길이 춤을 추듯 활활 타오르면서 아궁이 속으로 사라졌다. 어떤 날은 하얀 한삼을 이리저리 뿌리며 덩실덩실 탈춤을 추던 내 모습과 동료들의 모습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어른거렸다. 그런 날은 나도 모르게 부지깽이로 부엌바닥을 툭툭 굿거리장단을 치면서 봉산탈춤 불림을 흥얼거렸다. 때로는 원풍노조 활동을 할 때가 그리워 저절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럴 때마다 내손에 들려 있던 부지깽이는 북채가 되어 부엌바닥을 두드렸다.

김영희
어느 날 어머니가 “영희야 네가 서울 가서 돈 벌어서 네 오빠 고등학교 공부를 가르치면 좋겠다.”고 했다. 오빠는 그때 중학생이었다. 사실 우리 집 살림살이에 오빠를 중학교에 보낼 형편은 아니었지만 작은 아버지가 집안의 장손은 가르쳐야 한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어머니 말씀에 아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취직자리를 미리 부탁해 두었던 터였다. 그 아주머니를 따라서 상경해, 구로공단 봉제공장에 시다로 들어갔다. 1976년, 당시 내 나이 열다섯 살이었다. 근로기준법에 정해 놓은 취업 연령이 되지 않아서 동네 언니의 주민등록 초본을 빌려서 그 언니 이름으로 취직했다. 처음에는 실밥을 따는 일을 했다. 그 당시 월급은 25,00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노동시간은 보통 12시간이었지만 수출 기한이 임박할 때는 수시로 철야작업도 해야 했다. 일을 하면서 꾸벅꾸벅 졸 때도 많았다.


◆ 작가의 말
원풍노조는 단순히 1970~80년대라는 엄혹한 시절을 끈질기게 싸우고 버텨냈다는 그 전투적 면모만으로 ‘민주노조의 전설’이라는 갓머리를 쓰게 된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거의 비슷하다 싶을 정도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듯이, 기숙사 생활이라든지 회사내 신용협동조합, 탈춤반, 교육 프로그램 등 노조, 그것도 원풍노조였기에 가능했던 많은 ‘일상’이 오히려 노동조합이 진정으로 노동자들의 편에 설 때 무슨 일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일상 속에는 물론 조합원들이 단체로 시국 기도회에 참석한다든지 동일방직이나 YH무역 노동자들을 위해 연대투쟁을 전개한다든지 하는 것도 당연히 포함된다. 사실, 원풍노조는 1982년 9월 27일 처참하게 깨진다. 그렇지만 원풍노조의 저력은 그때 새삼 빛을 발휘한다. 동시대를 어렵게 헤쳐나간 다른 많은 민주노조들이 1990년대 이후에는 거의 명목과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된 것과 달리, 원풍노조는 법외노조로서도 꾸준히 자기 역할을 찾아나갔다. 그리하여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스스로의 역사를 민주화운동의 그것으로 당당히 자리매김을 하는 데 다른 어떤 민주노조들보다 앞장섰던 것이다.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떠났던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이제 모두 민주화운동가로서 명예를 인증 받았다. 이제 더 이상 남편도 이들을 얕잡아보지 않는다. 시어머니와 올케들도 그들이 내뱉었던 험한 말들에 대해 진작 사과했다. 아들과 딸들은 무엇보다 엄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 미소, 그 환한 미소를 얻기까지 그들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을 어찌 모른 척할 수 있으랴. 노동의 진정한 가치가 모욕 받는 우리 시대에 새삼 케케묵은 옛이야기를 꺼내는 이유, 그리하여 ‘공장(과 노동조합)이 이들에게 말한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 작가 소개

저자 : 황선금
1955년 강원도 철원에서 4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다닐 때 기성회비가 없어 아버지가 교장 선생님 댁에 나뭇짐 몇 지게를 부려놓고서야 졸업할 수 있을 만큼 가난한 집의 딸이었다. 열네 살 때 식모살이를 하러 난생처음 서울에 왔고, 우여곡절 끝에 1975년 원풍모방 방적과에 기능공으로 입사했다.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만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1982년 9·27 사태로 원풍노조가 파괴될 때 강제해직당했다. 2001년부터 (사)녹색환경운동에서 활동했고 운영위원장을 역임했다. 뒤늦게 중·고등학교 자격증을 검정고시로 취득한 이후, 2008년 53세의 나이로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에 입학하여 사회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2010년 원풍노조가 펴낸 『못다 이룬 꿈도 아름답다』에 생애사가 수록되어 있다. 2016년 현재 원풍동지회 회장으로, 동지들과 맺은 40년간의 만남과 우정을 자랑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기획 : 원풍동지회
원풍동지회는 1982년 정권과 자본이 야합하여 벌인 이른바 9·27 사태 당시 해고된 원풍모방노동조합 노동자들의 모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해고자들은 법외노조 활동으로 줄기차게 복직투쟁을 해왔으며, 2000년 제정된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원풍노조와 조합원 157명의 명예가 공식적으로 회복되었다. 2010년에는 원풍노조가 국가폭력으로 파괴되었다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심의결정을 이끌어냈다. 2011년부터는 국가배상소송을 주도하여 2015년 대법원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원풍동지회는 2012년 9·27 사태 29주년을 맞이하여 창립총회를 갖고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교육활동으로 자녀모임 ‘꿈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조직했고, 사회봉사활동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서 작은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원풍동지회가 기획한 이 책 『공장이 내게 말한 것들』은 『못다 이룬 꿈도 아름답다』(2010)에 이어 조합원들의 생애를 구체적으로 호명한 또 하나의 구술 생애사이다.

▣ 주요 목차

책머리에

나는 민주노조의 초대 상집간부였다 _이필남 이야기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 _임충호 이야기
내 삶은 일곱 빛깔 무지개 _김두숙 이야기
애벌레가 실을 자아 나비가 되듯이 _김향자 이야기
노조는 나의 대학이었다 _최금숙 이야기
원풍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_김정숙 이야기
못하는 노래라도 크게 불러라 _김영희 이야기

원풍모방노동조합 약사
후기

작가 소개

목 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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