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케인스를 세계에 널리 알린 그의 첫 베스트셀러!
독일 경제를 완전히 파괴하는 쪽으로 방향을 맞춘 파리평화회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관용에 바탕을 둔 평화가 필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밝힌다.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대표작은 1936년에 발표한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이지만 케인스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책은 1919년 11월에 발표한 『평화의 경제적 결과』(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이다.
이 책은 출간 6개월 만에 12개 언어로 번역 소개되어 10만 권이나 팔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어 널리 읽혔다.
상업적 성공만이 아니었다. 당시 영국과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실제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아마 당시에 연합국의 적국이던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로 주목을 받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1919년 영국 대표단으로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했던 케인스가 독일 경제 조직을 완전히 초토화하는 내용을 담은 평화조약(베르사유조약) 초안을 수정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되던 5월에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고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뒤 2개월에 걸쳐 완성한 것이 이 책이다. 당시 케인스가 구상했던 평화조약의 기본 정신은 관용이었다. 독일에 대한 배상금 요구는 100억 달러를 넘지 말아야 하고, 연합국이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에 서로 지게 된 부채는 탕감하고, 미국이 유럽 부흥을 도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케인스의 생각은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하나의 체계로 움직이던 유럽에서 독일이 평화조약의 결과로 경제를 복구하지 못하게 되면 다른 유럽 국가들의 고난도 볼 보듯 하다는 것이었다. 당시엔 경제적 접근이 무엇보다 필요했는데도 평화회의를 주도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정치적으로만 접근했다는 것이 케인스의 판단이었다.
로이드 조지 영국 총리는 영국 국내에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무엇인가를 바랐고, 조르주 클레망소 프랑스 총리는 경쟁국인 독일의 팔다리를 잘라놓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고,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현실 감각이 부족한 데다 그걸 다른 방향으로 보완하려는 의지마저 보이지 않고 자신의 도덕 감각만 내세우는 무능한 모습을 시종일관 보였다는 것이 케인스가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들에 대한 평가이다.
이런 인물평까지 담은 이 책은 케인스의 바람대로 주요 국가의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국에서도 베르사유조약의 불공정성에 주목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미국이 최종적으로 국제연맹에 가입하지 않게 된 것도 물론 일차적으로는 국제연맹을 주창한 우드로 윌슨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그랬겠지만 케인스의 영향도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책이 독일 안에서 나치당이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배경과도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책이 나온 시점은 바로 오스트리아 태생인 아돌프 히틀러가 1913년에 독일로 이주해 세계대전에 참전한 다음에 나치당에 입당하던 시점(1919년)과 맞아 떨어진다. 히틀러는 1923년에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해 투옥된 후 거기서 『나의 투쟁』(Mein Kampf)을 집필했으며, 1924년 출옥한 뒤에는 베르사유조약을 공격함으로써 큰 인기를 얻었다. 이때 지식인 엘리트들이 케인스의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 영향을 받은 탓에 히틀러가 독일을 지배하는 데 대해 강하게 저항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런 한편으론 파리평화회의에 케인스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더라면 유럽 역사가 완전히 달라졌을 수 있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 차례 더 세계대전을 치른 뒤부터 지금까지 유럽이 걷고 있는 길을 보면 후자의 분석이 더 그럴 듯하게 다가온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온 ‘마셜 플랜’은 케인스가 파리평화회의에서 제안한 내용과 아주 비슷하다. 마셜 플랜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은데, 경제 수치로만 본다면 첫 번째 세계대전 이후의 ‘카르타고 식 평화’보다는 케인스의 관용을 바탕으로 한 평화가 세계 경제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세계 무역이 1948년부터 1971년 사이에 매년 평균 7.27%의 성장을 기록했으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에는 1930년대처럼 오히려 떨어지기도 했으니 하는 말이다.
케인스가 파리평화회의에서 활동하며 세계를 주무르던 주요 인물들에게 실망하고 있던 그 즈음, 한국에서도 우드로 윌슨이 선언한 민족자결주의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는 사실과 지금도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케인스의 『평화의 경제적 결과』는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작가 소개
저 : 존 M. 케인스
영국 케임브리지셔 출생으로 이튼고등학교를 거쳐 케임브리지대학의 킹스칼리지에 입학, ‘Apostles’그룹에 가입하여 젊은 윤리학자 G.E.무어의 영향을 받았다. 1905년 대학 졸업 후 공무원이 되어 1908년까지 인도부(印度部) 및 재무부(財務部)에 근무하였다. 1909년 케임브리지대학교 강사 겸 회계관이 되었다. 1911~1945년 영국의 대표적 경제잡지 「이코노믹 저널 Economic Journal」의 편집자로 있으면서, 제1차 세계대전 후 파리강화회의에 재무성 수석대표가 되기도 하였으나, 연합국의 다른 대표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사퇴하였다.
그후 재무상 고문, 국민상호보험회사 사장, 투자회사의 경영자, 「뉴 스테이츠먼 앤드 네이션」지(誌)의 사장, 맥밀란 위원회 위원(1913), 왕립 인도 통화위원회 위원, 브레턴우즈 협정 영국대표(1944),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총재, 20세기 문예운동의 하나인 블룸즈버리그룹 회원, 국립미술관 이사(理事), 음악미술장려회 회장 등을 지내며 문예진흥을 위하여 많은 힘을 쏟았다. 후에 귀족에 서임되어 상원의원이 되었다.
케인스는 경제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으며, 정치적 영역에서도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한 활동을 하였다. 철학·고전·사상(思想) 및 수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경제학에 관한 초기의 관심은 주로 화폐와 외환문제에 있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부터는 자본주의사회에 있어서의 고용 및 생산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에 관하여 종래의 경제이론을 재검토하게 되었다.
그 결과 대표적 저서인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1936)에서 완전고용을 실현·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유방임주의가 아닌 소비와 투자, 즉 유효수요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보완책(공공지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역 : 정명진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부, 국제부, LA 중앙일보, 문화부 등을 거치며 20년간 근무하였다. 현재는 출판기획자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나는 내가 낯설다』(티모시 윌슨),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심리실험 45가지』(더글라스 무크), 『남자, 여자를 해석하다』(허브 골드버그), 『성격의 재발견』(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 『심리학, 생활의 지혜를 발견하다)(찰스 I. 브룩스)『여자의 적은 여자다』(필리스 체슬러), 『김대중 신화』(도널드 커크) , 『철학의 위안』『정의의 역사』『상식의 역사』『타임: 사진으로 보는 ‘타임’의 역사와 격동의 현대사』,『팀워크 심리학』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들어가는 글
1장 전쟁 이전의 유럽
2장 파리평화회의
3장 평화조약
4장 배상
5장 평화조약 이후의 유럽
6장 치유
케인스를 세계에 널리 알린 그의 첫 베스트셀러!
독일 경제를 완전히 파괴하는 쪽으로 방향을 맞춘 파리평화회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관용에 바탕을 둔 평화가 필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밝힌다.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대표작은 1936년에 발표한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이지만 케인스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책은 1919년 11월에 발표한 『평화의 경제적 결과』(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이다.
이 책은 출간 6개월 만에 12개 언어로 번역 소개되어 10만 권이나 팔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어 널리 읽혔다.
상업적 성공만이 아니었다. 당시 영국과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실제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아마 당시에 연합국의 적국이던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로 주목을 받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1919년 영국 대표단으로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했던 케인스가 독일 경제 조직을 완전히 초토화하는 내용을 담은 평화조약(베르사유조약) 초안을 수정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되던 5월에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고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뒤 2개월에 걸쳐 완성한 것이 이 책이다. 당시 케인스가 구상했던 평화조약의 기본 정신은 관용이었다. 독일에 대한 배상금 요구는 100억 달러를 넘지 말아야 하고, 연합국이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에 서로 지게 된 부채는 탕감하고, 미국이 유럽 부흥을 도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케인스의 생각은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하나의 체계로 움직이던 유럽에서 독일이 평화조약의 결과로 경제를 복구하지 못하게 되면 다른 유럽 국가들의 고난도 볼 보듯 하다는 것이었다. 당시엔 경제적 접근이 무엇보다 필요했는데도 평화회의를 주도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정치적으로만 접근했다는 것이 케인스의 판단이었다.
로이드 조지 영국 총리는 영국 국내에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무엇인가를 바랐고, 조르주 클레망소 프랑스 총리는 경쟁국인 독일의 팔다리를 잘라놓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고,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현실 감각이 부족한 데다 그걸 다른 방향으로 보완하려는 의지마저 보이지 않고 자신의 도덕 감각만 내세우는 무능한 모습을 시종일관 보였다는 것이 케인스가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들에 대한 평가이다.
이런 인물평까지 담은 이 책은 케인스의 바람대로 주요 국가의 여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국에서도 베르사유조약의 불공정성에 주목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미국이 최종적으로 국제연맹에 가입하지 않게 된 것도 물론 일차적으로는 국제연맹을 주창한 우드로 윌슨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그랬겠지만 케인스의 영향도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 책이 독일 안에서 나치당이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배경과도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책이 나온 시점은 바로 오스트리아 태생인 아돌프 히틀러가 1913년에 독일로 이주해 세계대전에 참전한 다음에 나치당에 입당하던 시점(1919년)과 맞아 떨어진다. 히틀러는 1923년에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해 투옥된 후 거기서 『나의 투쟁』(Mein Kampf)을 집필했으며, 1924년 출옥한 뒤에는 베르사유조약을 공격함으로써 큰 인기를 얻었다. 이때 지식인 엘리트들이 케인스의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 영향을 받은 탓에 히틀러가 독일을 지배하는 데 대해 강하게 저항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런 한편으론 파리평화회의에 케인스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더라면 유럽 역사가 완전히 달라졌을 수 있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 차례 더 세계대전을 치른 뒤부터 지금까지 유럽이 걷고 있는 길을 보면 후자의 분석이 더 그럴 듯하게 다가온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온 ‘마셜 플랜’은 케인스가 파리평화회의에서 제안한 내용과 아주 비슷하다. 마셜 플랜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은데, 경제 수치로만 본다면 첫 번째 세계대전 이후의 ‘카르타고 식 평화’보다는 케인스의 관용을 바탕으로 한 평화가 세계 경제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세계 무역이 1948년부터 1971년 사이에 매년 평균 7.27%의 성장을 기록했으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에는 1930년대처럼 오히려 떨어지기도 했으니 하는 말이다.
케인스가 파리평화회의에서 활동하며 세계를 주무르던 주요 인물들에게 실망하고 있던 그 즈음, 한국에서도 우드로 윌슨이 선언한 민족자결주의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는 사실과 지금도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케인스의 『평화의 경제적 결과』는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작가 소개
저 : 존 M. 케인스
영국 케임브리지셔 출생으로 이튼고등학교를 거쳐 케임브리지대학의 킹스칼리지에 입학, ‘Apostles’그룹에 가입하여 젊은 윤리학자 G.E.무어의 영향을 받았다. 1905년 대학 졸업 후 공무원이 되어 1908년까지 인도부(印度部) 및 재무부(財務部)에 근무하였다. 1909년 케임브리지대학교 강사 겸 회계관이 되었다. 1911~1945년 영국의 대표적 경제잡지 「이코노믹 저널 Economic Journal」의 편집자로 있으면서, 제1차 세계대전 후 파리강화회의에 재무성 수석대표가 되기도 하였으나, 연합국의 다른 대표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사퇴하였다.
그후 재무상 고문, 국민상호보험회사 사장, 투자회사의 경영자, 「뉴 스테이츠먼 앤드 네이션」지(誌)의 사장, 맥밀란 위원회 위원(1913), 왕립 인도 통화위원회 위원, 브레턴우즈 협정 영국대표(1944),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총재, 20세기 문예운동의 하나인 블룸즈버리그룹 회원, 국립미술관 이사(理事), 음악미술장려회 회장 등을 지내며 문예진흥을 위하여 많은 힘을 쏟았다. 후에 귀족에 서임되어 상원의원이 되었다.
케인스는 경제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으며, 정치적 영역에서도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한 활동을 하였다. 철학·고전·사상(思想) 및 수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경제학에 관한 초기의 관심은 주로 화폐와 외환문제에 있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부터는 자본주의사회에 있어서의 고용 및 생산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에 관하여 종래의 경제이론을 재검토하게 되었다.
그 결과 대표적 저서인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1936)에서 완전고용을 실현·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유방임주의가 아닌 소비와 투자, 즉 유효수요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보완책(공공지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역 : 정명진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기자로 사회부, 국제부, LA 중앙일보, 문화부 등을 거치며 20년간 근무하였다. 현재는 출판기획자와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나는 내가 낯설다』(티모시 윌슨),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심리실험 45가지』(더글라스 무크), 『남자, 여자를 해석하다』(허브 골드버그), 『성격의 재발견』(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 『심리학, 생활의 지혜를 발견하다)(찰스 I. 브룩스)『여자의 적은 여자다』(필리스 체슬러), 『김대중 신화』(도널드 커크) , 『철학의 위안』『정의의 역사』『상식의 역사』『타임: 사진으로 보는 ‘타임’의 역사와 격동의 현대사』,『팀워크 심리학』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들어가는 글
1장 전쟁 이전의 유럽
2장 파리평화회의
3장 평화조약
4장 배상
5장 평화조약 이후의 유럽
6장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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