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에스파냐 왕조의 흥망성쇠, 대영제국의 출발, 프랑스혁명
소련 성립, 일본 근대화의 중심에 보석이 있었다
세계사는 욕망의 역사다
인간의 모습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재난도 이주도 전쟁도 제국도 왕도 예언자도 아닌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이다. 개개인을 움직이는 이 욕망은 나아가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세계사는 욕망의 역사다.
‘갖고 싶다’는 말보다 더 원초적인 말은 없다.
세계사를 바꾼 여덟 가지 보석 이야기
이야기 하나 맨해튼과 바꾼 유리구슬
1625년 5월 4일, 원주민들은 60길더(약 24달러)어치의 구슬, 단추, 장신구 따위를 받고 맨해튼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로 넘겼다. 말도 안 되는 가격 아닌가? 틀림없는 사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요즘 사람들이 원주민이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당시 사람들보다 유리구슬의 가치를 더 낮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유리구슬은 예쁘기도 했지만, 유럽을 벗어나면 희귀한 상품이기까지 했다. 사실 16~17세기에 구슬은 귀중품이었고 모든 곳에서 화폐처럼 취급됐다. 유리 제작 기술이 없는 신대륙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리구슬은 값을 따질 수 없다 해도 좋을 정도로 희귀하고 이국적인 특별히 귀한 보물이었다.
이야기 둘 절대 알고 싶지 않은 다이아몬드의 진실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다. 평생 동안 몸에 지닐 사적이고 낭만적인 다이아몬드 반지는 언젠가 갖고 싶은 단 하나의 보석이다. 그런데 정말 다이아몬드는 특별하고 영원할까? 진실은 이렇다. 1872년 남아프리카에서 매년 백만 캐럿의 다이아몬드가 쏟아지기 시작한 후부터 다이아몬드는 희귀한 보석이 아니었다. 그런데 애초에 공급량은 문제가 아니었다. 역사상 유례없는 다이아몬드 독점회사 드비어스는 500여 년 전 막시밀리안 대공이 미래의 부인 마리에게 한 정치적 구애를 로맨스로 영리하게 포장해 전 세계에 광고했다. 드비어스가 만들어낸 것은 그저 다이아몬드에 얽힌 전설과 시장만이 아니다. 드비어스는 ‘욕망을 만들었다’. 이 순간에도 다이아몬드는 모두 조금씩 흑연으로 변하고 있다. 물론 다이아몬드가 완전히 흑연으로 변할 때까지 살아 있을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 탄소 덩어리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모두 받고 싶어 할 게 틀림없다.
이야기 셋 에메랄드와 함께한 에스파냐 왕조의 시작과 끝
가벼운 연애 상대는 자주 바뀌지만 첫사랑은 영원하다. 인류 역사의 모든 곳에 에메랄드를 가지고자 하는 사람들의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에메랄드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오래됐다. 하지만 신록의 색깔을 띤 이 반짝이는 보석과 가장 깊은 관계를 맺은 곳은 16세기 에스파냐 왕조였다. 잉카인들은 총을 들이대면 금과 은은 순순히 내줬다. 하지만 에스파냐 군대가 정복 전쟁을 통해 갈고 닦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심문 기술을 썼음에도 숨겨진 에메랄드 광산의 위치는 말하지 않았다. 1564년 부활절 주간 기적이 일어났다. 기독교로 개종한 원주민 소년의 도움으로 에메랄드 광산이 발견된 것이다.
이는 에메랄드의 가치와 유럽 내 힘의 균형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16세기 에스파냐 경제에 흘러들어온 부와 갑작스러운 부의 유입이 초래한 문제들은 400년 후에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 금융의 기초를 다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가상 가치는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에메랄드가 지닌 특별한 가치조차 한 세기가 지나자 사라졌다. 공급량이 정점에 달해 에메랄드가 흔해지자마자 ‘사상 최초로’ 에메랄드의 가치가 폭락했다. 빠르게 성장한 에스파냐 제국은 무너질 때도 빠르게 무너졌다. 에스파냐는 야망이 탐욕으로, 신앙이 원리주의로, 부가 도덕적 당위성으로 변하도록 허락함으로써 약과 독을 가르는 경계선을 넘었다.
이야기 넷 프랑스혁명과 다이아몬드 목걸이
프랑스혁명은 왜 일어났을까? 기후가 계속 나빠졌고 정부의 대처는 서툴렀으며 귀족들은 백성의 소중한 식량인 밀가루를 가발에 분으로 뿌려대는 등 비상식적으로 행동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면서 반란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이 붙어야 폭발이 일어나듯 혁명에도 불을 지필 기폭제가 필요했다. 프랑스혁명의 기폭제는 ‘목걸이 사건’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세상에서 제일 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손에 넣기 위해 추기경을 유혹해서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으며 국가의 돈을 횡령한 여자로 지목됐다. 하지만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 가운데 아무 죄도 짓지 않았다. 나중에 진범이 밝혀지면서 그는 누명을 벗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당시 프랑스가 겪고 있던 모든 고통과 도덕적인 격분의 표적이 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희생양이었다. 모든 일이 잘못되어가는 가운데 이 중 대다수가 왕비의 잘못이고 왕비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일로 여겨졌다.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시작한 진짜 주역은 새로 등장한 여론의 힘이었다.”
이야기 다섯 진주를 원했으나 제국을 얻었네
라 페레그리나La Peregrina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진주다. 완벽한 서양배 모양의 커다란 흰색 천연진주로 10그램에 달하는 라 페레그리나는 손바닥에 쥐면 가득 찰 만큼 크다. 펠리페 2세는 영국과 동맹 관계를 맺고자 영국의 메리 1세에게 라 페레그리나를 청혼 선물로 보냈다. 진주를 좋아했던 메리 여왕의 여동생 엘리자베스는 특히 이 진주를 흠모했다. 메리 여왕에게 왕위를 물려받아 여왕이 된 엘리자베스 1세는 에스파냐 배를 공격해 신대륙 보물을 약탈하던 영국 해적들을 이용해 비슷한 진주를 얻기로 마음먹었다.
엘리자베스는 해적을 이용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영국은 해적을 활용한 새로운 해군력과 개량된 선박, 허를 찌르는 공격으로 에스파냐 함대를 빠르게 전멸시켰다. 무적함대의 패배로 에스파냐와 영국의 운명은 뒤바뀌었다. 라 페레그리나는 가질 수 없었지만 엘리자베스는 결국 다른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이른바 영국의 황금기라 불리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대는 그저 대영제국의 탄생을 알린 게 아니었다. 이는 진정한 ‘상업’ 제국의 문을 연 시대이기도 했다.
이야기 여섯 소련의 설립 자금이 된 부활절 보석 달걀
오늘날 부활절 달걀을 주고받는 풍습은 러시아 정교회에서 시작됐다. 특히 52점의 러시아 왕실 부활절 달걀은 화려함으로 유명하지만, 기술면에서 이를 만든 파베르제의 천재성을 드러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왕실 부활절 달걀 한 점 한 점은 주제와 예술 양식이 모두 다른 데다 달걀 속에 숨겨져 있는 보석 장식물의 수준도 달걀 자체의 세공 수준을 뛰어넘을 만큼 훌륭한 것이 많다.
성공한 자본가 해머는 미국 대중에게 파베르제 달걀에 얽힌 몰락한 러시아 왕조의 감성을 팔아 돈을 마련했다. 찬란한 제국과 몰락한 왕가, 아름답고 화려한 러시아 황후, 비극적인 로맨스를 지어냄으로써 평범한 미국 중산층의 욕망을 부추긴 뒤 이를 지렛대 삼아, 물건을 산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품판매원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다. 진짜 보물을 한 점 가졌단 생각에 마음이 부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해머는 평생 공산주의의 동조자였으며 소련 정부가 약탈한 보물과 귀중품을 미국에서 팔아 얻은 수익금을 소비에트 연방으로 송금하는 소련의 중개상으로 활동했다.
이야기 일곱 진주, 평범한 사람들의 보석이 되다
가치와 마찬가지로 진실과 거짓도 우리의 인식에 따라 달라진다. 양식진주는 흥미로운 물건이다. ‘양식’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짜’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하지만 과수원에서 딴 사과가 가짜가 아니듯 양식진주도 가짜가 아니다. 씨앗이 자연스럽게 땅에 떨어져 모르는 사이에 열린 사과가 아니라 해서 과수원의 사과를 가짜 사과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양식진주를 대중적인 보석으로 만든 미키모토 고키치는 1858년, 일본이 강제 개항된 해에 태어났다. 만일 근대화 바람이 불기 전에 태어났더라면 우동집 장남으로 태어난 미키모토는 과학자와 사업가의 길을 자유롭게 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미키모토의 꿈은 진주를 대량 양식해 모두가 가질 수 있는 보석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거의 파산 상태에서 ‘완전 밀폐’ 방식에 모든 것을 걸고 진주가 다 자라기만을 끈기 있게 기다렸다. 드디어 1920년대에 상품으로 수출할 수 있을 만큼 무척 많은 양의 양식진주가 생산되었고 미키모토 고키치는 일본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 1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미키모토의 진주는 역사상 최초로 보석을 대중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야기 여덟 손목시계: 여자의 보석에서 남자를 완성하는 시계가 되기까지
시계의 역사는 길지만, 손목시계는 무척 최근에 발명됐다. 코스코비츠Koscowicz 백작 부인은 파테크 필리프Patek Philippe에게 화려한 공작새 깃털처럼 자신의 부와 영향력을 뽐내게 해줄 최대한 비싸고 화려한 장신구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19세기의 혁신 기업 파테크 필리프는 커다란 다이아몬드 대신 완벽하게 작동하는 초소형 시계를 만들어 값비싼 다이아몬드 팔찌 중간에 박았다. 최초의 손목시계, 리슬릿이었다.
주문자인 백작 부인이 바라던 대로 리슬릿은 주목받았고 온 유럽 여성들이 리슬릿을 가지고 싶어 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손목시계를 여성용 장신구로 여겼다. 남자들은 손목시계를 차느니 ‘치마를 입겠다’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듯 시계도 계속해서 발전했다. 20세기가 되어 전쟁이 현대식이 되면서 정밀하고 정확한 시간 측정이 중요해졌다. 특히 군인들은 양손을 자유롭게 쓰면서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어야만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군과 유럽 군인들은 일상생활로 복귀한 후에도 계속 군용 손목시계를 찼다. 군인들이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며 내보이기 시작하면서 남성들 사이에서 손목시계는 그저 용인되는 수준을 넘어 광풍을 몰고 왔다.
무엇이 보석을 보석으로 만드는 걸까
보석을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여러 곳에 묻혀 있는 다이아몬드는 부글부글 끓으며 휘몰아치는 지구 핵의 압력으로 생성된 뒤 폭발을 통해 지구 표면으로 올라온다. 에메랄드처럼 지각 대변동 때 대륙이 서로 부딪히는 과정에서 희귀한 광물들이 땅속에서 서로 만나 생길 수도 있다. 진주처럼 생체 부산물일 수도 있다. 심지어 시계처럼 인간이 만든 기발한 기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도 보석을 만드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보석의 물리적 생성과정이 아니라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는 과정일 것이다.
진짜 ‘보석’은 땅속이나 실험실이 아닌 인간의 마음속에서 태어난다. 보석이 지닌 단 한 가지 본질이자 목적은 상을 맺고 다시 반사하는 것이다. 보석은 우리의 욕망을 반사해 다시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준다.
▣ 작가 소개
저자 : 에이자 레이든
Aja Raden
시카고대학교에서 고대사와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유명 경매소, 하우스 오브 칸House of Kahn에서 경매 담당 부서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둔 고급 보석 회사 타코리Tacori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그는 유능한 보석 제작자이자 박식한 역사가로 보석에 관한 학문적인 소양과 산업 경험, 과학적인 지식을 모두 갖춘 전문가다. 저자는 파리에서 열린 친구 생일파티에서 우연히 그가 디자인한 약혼반지를 낀 여성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날 밤 내내 약혼반지, 다이아몬드, 기묘한 보석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고, 약혼반지를 낀 여성 옆에 앉아 있던 그녀의 남편인 출판중개인 스티븐 바버라의 권유로 이 책을 내게 되었다.
역자 : 이가영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전기 및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다가 책을 읽으며 글 쓰는 일이 하고 싶어져 회사를 그만두었고, 바른번역의 글밥아카데미에서 번역 공부를 시작했다. 현재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빅데이터 인간을 해석하다》,《2030년에는 투명 망토가 나올까?》가 있다.
▣ 주요 목차
세계사는 욕망의 역사다_서문 017
1부 원하다Want 욕망, 착각, 희소성 효과
거스름돈은 가져요 맨해튼과 바꾼 구슬 031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첫 다이아몬드는 약혼반지 067
돈의 색, 에메랄드 에스파냐 왕조의 시작과 끝 105
2부 취하다take 강박, 소유, 전쟁의 메커니즘
제물이 된 왕비 프랑스혁명과 다이아몬드 목걸이 161
안녕, 뱃사람들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 거대한 진주와 자매간 경쟁 221
달걀 껍데기 야바위 소련의 설립 자금이 된 황금 달걀들 281
3부 가지다have 산업, 혁신, 터널 저편의 빛
회장님의 목걸이 양식진주와 일본의 근대화 351
역사는 타이밍 제1차 세계 대전과 첫 번째 손목시계 397
보석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태어난다_후기 440
감사의 말 443
주 446
그림 출처 455
에스파냐 왕조의 흥망성쇠, 대영제국의 출발, 프랑스혁명
소련 성립, 일본 근대화의 중심에 보석이 있었다
세계사는 욕망의 역사다
인간의 모습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재난도 이주도 전쟁도 제국도 왕도 예언자도 아닌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이다. 개개인을 움직이는 이 욕망은 나아가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세계사는 욕망의 역사다.
‘갖고 싶다’는 말보다 더 원초적인 말은 없다.
세계사를 바꾼 여덟 가지 보석 이야기
이야기 하나 맨해튼과 바꾼 유리구슬
1625년 5월 4일, 원주민들은 60길더(약 24달러)어치의 구슬, 단추, 장신구 따위를 받고 맨해튼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로 넘겼다. 말도 안 되는 가격 아닌가? 틀림없는 사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요즘 사람들이 원주민이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당시 사람들보다 유리구슬의 가치를 더 낮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유리구슬은 예쁘기도 했지만, 유럽을 벗어나면 희귀한 상품이기까지 했다. 사실 16~17세기에 구슬은 귀중품이었고 모든 곳에서 화폐처럼 취급됐다. 유리 제작 기술이 없는 신대륙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리구슬은 값을 따질 수 없다 해도 좋을 정도로 희귀하고 이국적인 특별히 귀한 보물이었다.
이야기 둘 절대 알고 싶지 않은 다이아몬드의 진실
다이아몬드는 여자의 가장 좋은 친구다. 평생 동안 몸에 지닐 사적이고 낭만적인 다이아몬드 반지는 언젠가 갖고 싶은 단 하나의 보석이다. 그런데 정말 다이아몬드는 특별하고 영원할까? 진실은 이렇다. 1872년 남아프리카에서 매년 백만 캐럿의 다이아몬드가 쏟아지기 시작한 후부터 다이아몬드는 희귀한 보석이 아니었다. 그런데 애초에 공급량은 문제가 아니었다. 역사상 유례없는 다이아몬드 독점회사 드비어스는 500여 년 전 막시밀리안 대공이 미래의 부인 마리에게 한 정치적 구애를 로맨스로 영리하게 포장해 전 세계에 광고했다. 드비어스가 만들어낸 것은 그저 다이아몬드에 얽힌 전설과 시장만이 아니다. 드비어스는 ‘욕망을 만들었다’. 이 순간에도 다이아몬드는 모두 조금씩 흑연으로 변하고 있다. 물론 다이아몬드가 완전히 흑연으로 변할 때까지 살아 있을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 탄소 덩어리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모두 받고 싶어 할 게 틀림없다.
이야기 셋 에메랄드와 함께한 에스파냐 왕조의 시작과 끝
가벼운 연애 상대는 자주 바뀌지만 첫사랑은 영원하다. 인류 역사의 모든 곳에 에메랄드를 가지고자 하는 사람들의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에메랄드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오래됐다. 하지만 신록의 색깔을 띤 이 반짝이는 보석과 가장 깊은 관계를 맺은 곳은 16세기 에스파냐 왕조였다. 잉카인들은 총을 들이대면 금과 은은 순순히 내줬다. 하지만 에스파냐 군대가 정복 전쟁을 통해 갈고 닦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심문 기술을 썼음에도 숨겨진 에메랄드 광산의 위치는 말하지 않았다. 1564년 부활절 주간 기적이 일어났다. 기독교로 개종한 원주민 소년의 도움으로 에메랄드 광산이 발견된 것이다.
이는 에메랄드의 가치와 유럽 내 힘의 균형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16세기 에스파냐 경제에 흘러들어온 부와 갑작스러운 부의 유입이 초래한 문제들은 400년 후에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 금융의 기초를 다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가상 가치는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에메랄드가 지닌 특별한 가치조차 한 세기가 지나자 사라졌다. 공급량이 정점에 달해 에메랄드가 흔해지자마자 ‘사상 최초로’ 에메랄드의 가치가 폭락했다. 빠르게 성장한 에스파냐 제국은 무너질 때도 빠르게 무너졌다. 에스파냐는 야망이 탐욕으로, 신앙이 원리주의로, 부가 도덕적 당위성으로 변하도록 허락함으로써 약과 독을 가르는 경계선을 넘었다.
이야기 넷 프랑스혁명과 다이아몬드 목걸이
프랑스혁명은 왜 일어났을까? 기후가 계속 나빠졌고 정부의 대처는 서툴렀으며 귀족들은 백성의 소중한 식량인 밀가루를 가발에 분으로 뿌려대는 등 비상식적으로 행동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면서 반란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이 붙어야 폭발이 일어나듯 혁명에도 불을 지필 기폭제가 필요했다. 프랑스혁명의 기폭제는 ‘목걸이 사건’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세상에서 제일 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손에 넣기 위해 추기경을 유혹해서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으며 국가의 돈을 횡령한 여자로 지목됐다. 하지만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 가운데 아무 죄도 짓지 않았다. 나중에 진범이 밝혀지면서 그는 누명을 벗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당시 프랑스가 겪고 있던 모든 고통과 도덕적인 격분의 표적이 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희생양이었다. 모든 일이 잘못되어가는 가운데 이 중 대다수가 왕비의 잘못이고 왕비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일로 여겨졌다.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시작한 진짜 주역은 새로 등장한 여론의 힘이었다.”
이야기 다섯 진주를 원했으나 제국을 얻었네
라 페레그리나La Peregrina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진주다. 완벽한 서양배 모양의 커다란 흰색 천연진주로 10그램에 달하는 라 페레그리나는 손바닥에 쥐면 가득 찰 만큼 크다. 펠리페 2세는 영국과 동맹 관계를 맺고자 영국의 메리 1세에게 라 페레그리나를 청혼 선물로 보냈다. 진주를 좋아했던 메리 여왕의 여동생 엘리자베스는 특히 이 진주를 흠모했다. 메리 여왕에게 왕위를 물려받아 여왕이 된 엘리자베스 1세는 에스파냐 배를 공격해 신대륙 보물을 약탈하던 영국 해적들을 이용해 비슷한 진주를 얻기로 마음먹었다.
엘리자베스는 해적을 이용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영국은 해적을 활용한 새로운 해군력과 개량된 선박, 허를 찌르는 공격으로 에스파냐 함대를 빠르게 전멸시켰다. 무적함대의 패배로 에스파냐와 영국의 운명은 뒤바뀌었다. 라 페레그리나는 가질 수 없었지만 엘리자베스는 결국 다른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이른바 영국의 황금기라 불리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대는 그저 대영제국의 탄생을 알린 게 아니었다. 이는 진정한 ‘상업’ 제국의 문을 연 시대이기도 했다.
이야기 여섯 소련의 설립 자금이 된 부활절 보석 달걀
오늘날 부활절 달걀을 주고받는 풍습은 러시아 정교회에서 시작됐다. 특히 52점의 러시아 왕실 부활절 달걀은 화려함으로 유명하지만, 기술면에서 이를 만든 파베르제의 천재성을 드러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왕실 부활절 달걀 한 점 한 점은 주제와 예술 양식이 모두 다른 데다 달걀 속에 숨겨져 있는 보석 장식물의 수준도 달걀 자체의 세공 수준을 뛰어넘을 만큼 훌륭한 것이 많다.
성공한 자본가 해머는 미국 대중에게 파베르제 달걀에 얽힌 몰락한 러시아 왕조의 감성을 팔아 돈을 마련했다. 찬란한 제국과 몰락한 왕가, 아름답고 화려한 러시아 황후, 비극적인 로맨스를 지어냄으로써 평범한 미국 중산층의 욕망을 부추긴 뒤 이를 지렛대 삼아, 물건을 산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품판매원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다. 진짜 보물을 한 점 가졌단 생각에 마음이 부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해머는 평생 공산주의의 동조자였으며 소련 정부가 약탈한 보물과 귀중품을 미국에서 팔아 얻은 수익금을 소비에트 연방으로 송금하는 소련의 중개상으로 활동했다.
이야기 일곱 진주, 평범한 사람들의 보석이 되다
가치와 마찬가지로 진실과 거짓도 우리의 인식에 따라 달라진다. 양식진주는 흥미로운 물건이다. ‘양식’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짜’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하지만 과수원에서 딴 사과가 가짜가 아니듯 양식진주도 가짜가 아니다. 씨앗이 자연스럽게 땅에 떨어져 모르는 사이에 열린 사과가 아니라 해서 과수원의 사과를 가짜 사과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양식진주를 대중적인 보석으로 만든 미키모토 고키치는 1858년, 일본이 강제 개항된 해에 태어났다. 만일 근대화 바람이 불기 전에 태어났더라면 우동집 장남으로 태어난 미키모토는 과학자와 사업가의 길을 자유롭게 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미키모토의 꿈은 진주를 대량 양식해 모두가 가질 수 있는 보석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거의 파산 상태에서 ‘완전 밀폐’ 방식에 모든 것을 걸고 진주가 다 자라기만을 끈기 있게 기다렸다. 드디어 1920년대에 상품으로 수출할 수 있을 만큼 무척 많은 양의 양식진주가 생산되었고 미키모토 고키치는 일본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 1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미키모토의 진주는 역사상 최초로 보석을 대중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야기 여덟 손목시계: 여자의 보석에서 남자를 완성하는 시계가 되기까지
시계의 역사는 길지만, 손목시계는 무척 최근에 발명됐다. 코스코비츠Koscowicz 백작 부인은 파테크 필리프Patek Philippe에게 화려한 공작새 깃털처럼 자신의 부와 영향력을 뽐내게 해줄 최대한 비싸고 화려한 장신구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19세기의 혁신 기업 파테크 필리프는 커다란 다이아몬드 대신 완벽하게 작동하는 초소형 시계를 만들어 값비싼 다이아몬드 팔찌 중간에 박았다. 최초의 손목시계, 리슬릿이었다.
주문자인 백작 부인이 바라던 대로 리슬릿은 주목받았고 온 유럽 여성들이 리슬릿을 가지고 싶어 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손목시계를 여성용 장신구로 여겼다. 남자들은 손목시계를 차느니 ‘치마를 입겠다’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듯 시계도 계속해서 발전했다. 20세기가 되어 전쟁이 현대식이 되면서 정밀하고 정확한 시간 측정이 중요해졌다. 특히 군인들은 양손을 자유롭게 쓰면서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어야만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군과 유럽 군인들은 일상생활로 복귀한 후에도 계속 군용 손목시계를 찼다. 군인들이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며 내보이기 시작하면서 남성들 사이에서 손목시계는 그저 용인되는 수준을 넘어 광풍을 몰고 왔다.
무엇이 보석을 보석으로 만드는 걸까
보석을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여러 곳에 묻혀 있는 다이아몬드는 부글부글 끓으며 휘몰아치는 지구 핵의 압력으로 생성된 뒤 폭발을 통해 지구 표면으로 올라온다. 에메랄드처럼 지각 대변동 때 대륙이 서로 부딪히는 과정에서 희귀한 광물들이 땅속에서 서로 만나 생길 수도 있다. 진주처럼 생체 부산물일 수도 있다. 심지어 시계처럼 인간이 만든 기발한 기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도 보석을 만드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보석의 물리적 생성과정이 아니라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는 과정일 것이다.
진짜 ‘보석’은 땅속이나 실험실이 아닌 인간의 마음속에서 태어난다. 보석이 지닌 단 한 가지 본질이자 목적은 상을 맺고 다시 반사하는 것이다. 보석은 우리의 욕망을 반사해 다시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준다.
▣ 작가 소개
저자 : 에이자 레이든
Aja Raden
시카고대학교에서 고대사와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유명 경매소, 하우스 오브 칸House of Kahn에서 경매 담당 부서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둔 고급 보석 회사 타코리Tacori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그는 유능한 보석 제작자이자 박식한 역사가로 보석에 관한 학문적인 소양과 산업 경험, 과학적인 지식을 모두 갖춘 전문가다. 저자는 파리에서 열린 친구 생일파티에서 우연히 그가 디자인한 약혼반지를 낀 여성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날 밤 내내 약혼반지, 다이아몬드, 기묘한 보석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고, 약혼반지를 낀 여성 옆에 앉아 있던 그녀의 남편인 출판중개인 스티븐 바버라의 권유로 이 책을 내게 되었다.
역자 : 이가영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전기 및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다가 책을 읽으며 글 쓰는 일이 하고 싶어져 회사를 그만두었고, 바른번역의 글밥아카데미에서 번역 공부를 시작했다. 현재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빅데이터 인간을 해석하다》,《2030년에는 투명 망토가 나올까?》가 있다.
▣ 주요 목차
세계사는 욕망의 역사다_서문 017
1부 원하다Want 욕망, 착각, 희소성 효과
거스름돈은 가져요 맨해튼과 바꾼 구슬 031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첫 다이아몬드는 약혼반지 067
돈의 색, 에메랄드 에스파냐 왕조의 시작과 끝 105
2부 취하다take 강박, 소유, 전쟁의 메커니즘
제물이 된 왕비 프랑스혁명과 다이아몬드 목걸이 161
안녕, 뱃사람들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 거대한 진주와 자매간 경쟁 221
달걀 껍데기 야바위 소련의 설립 자금이 된 황금 달걀들 281
3부 가지다have 산업, 혁신, 터널 저편의 빛
회장님의 목걸이 양식진주와 일본의 근대화 351
역사는 타이밍 제1차 세계 대전과 첫 번째 손목시계 397
보석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태어난다_후기 440
감사의 말 443
주 446
그림 출처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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