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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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노두식
출판사항문학세계사, 발행일:2016/04/29
형태사항p.156 A5판:21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70758169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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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1. 상처의 흔적들을 치유하는 ‘기억’의 욕망과 진실을 향한 강렬한 ‘고백’

노두식盧斗植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마침내 그 노래』는, 오랜 세월 자신의 내면에 켜켜이 쌓아 온 ‘기억’과 ‘사랑’의 힘으로 간절한 ‘마음’을 노래하는 범례範例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시인은 스스로 “나의 작업은 앞으로도 진실에의 추구 또는 내면세계의 순화 내지 반성이 될 것”(「시인의 말」)이라고 했거니와, 그만큼 그의 시편에는 진실을 향한 강렬한 고백과 지향 그리고 그것을 위한 반성적 사유가 살갑게 담겨 있다. 그동안 펴낸 『크레파스로 그린 사랑』(1984), 『바리때의 노래』(1986), 『우리의 빈 가지 위에』(1996), 『꿈의 잠』(2013) 등의 시집을 이어 본다면 거기에는 “사랑/노래/비어 있음/꿈”의 키워드가 눈에 띄는데, 그만큼 그는 텅 ‘빈’ 세상에서 ‘꿈’을 실은 ‘사랑’의 ‘노래’를 지금껏 불러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이번 시집은 그러한 사랑의 노래가 ‘마침내 그 노래’로 귀결되는 아름다운 과정을 암시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제 우리는 시인의 이러한 진솔한 고백을 따라가면서, ‘기억’과 ‘사랑’의 힘으로 구축해 가는 ‘마음의 현상학’을 흔연하게 만날 것이다
노두식 시인은 타자와 사물을 향한 외적 관심의 확장보다는, 자신의 삶에 대한 기억을 섬세하게 구성함으로써 그 안에 녹아 있는 시간을 회상하고 재현하는 일종의 내향內向 감각을 주로 보여 준다. 하지만 그에게 ‘기억’이란, 지나온 시간에 대한 단순한 미화보다는, 자신의 삶에 남아 있는 상처를 추스르고 견디는 쪽에서 발원한다는 점에 특색이 있다. 그만큼 시인은 자신의 삶에 만만찮은 무게로 주어졌던 흔적들에 대한 강렬한 기억을 토로하면서, 상처의 흔적들을 치유하려는 ‘기억’의 욕망을 아름답게 드러내고 있다.


앞에서 치대기는 서먹함 때문인지
마음이 갈래가 져서
가던 걸음을 멈춘다
뒤돌아보는 눈에
가득 담기는 텅 빈 길
한때는 그토록 풍요로웠으나
지금은 또 얼마나 가난한가
설움의 풀꽃들 지고
정겹던 환희의 도랑물도
포개진 과거의 갈피 속에 영영 스며 버렸다
서운함만 질펀하게 아스라한
버려진 길 위에서
마디 없는 시간들이 들메끈을 고쳐 매고 있을 때
멀찌막이 장승처럼 서서
뒤돌아보는 일
진눈에 젖은 마음을
마른 마음에 붙들어 매는 이 호젓한 일에도
나이가 넉넉히 들어 버렸다
발치 쪽으로는 한참을 가야 할
길 없는 길들
마음보다 더 가닥이 져 드러나 있는 길들이
허허롭게 무표정하기만 하고
나는 다시 고개를 되돌리지 못한 채
머뭇대며 허정개비마냥
풀 죽고 맥이 없다
-「뒤돌아볼 때」 전문

시인은 어느새 삶을 “뒤돌아볼 때”에 이른다. 가던 걸음을 문득 멈추고 “뒤돌아보는 눈에/가득 담기는 텅 빈 길”은 살아온 인생의 선연한 축도縮圖가 된다. 그렇게 시인은 한때 풍요로웠지만 지금은 가난한 삶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삶의 흐름에 함께했던 “설움의 풀꽃들”이나 “환희의 도랑물”도 모두 시간의 갈피 속으로 스며들었음을 발견한다. 이제 모든 것이 사라진 길 위에서 시인은 “마디 없는 시간들이 들메끈을 고쳐 매고 있을 때”를 생각한다. 비록 멀찍이 서서 뒤돌아보는 일일 뿐이지만, 이러한 ‘고쳐 맴’의 시간은 “진눈에 젖은 마음을/마른 마음에 붙들어 매는” 일과 등가에 놓인다. 아직도 한참을 가야 할 “길 없는 길” 위에서 시인은 그렇게 “고개를 되돌리지 못한 채” 머뭇거릴 뿐이다. 이러한 ‘고쳐 맴/붙들어 맴’의 과정을 동반한 회상을 통해 우리는 노두식 시인이 ‘시詩’를 통해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성찰하고 그 안에 가장 소중한 의미를 부여해 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후일/어쩌면 삶에 있어서 완성이란/초심을 돌아보는 절실함이 아닐까”(「모자이크」)라는 애틋한 전언처럼, 이번 시집은 그러한 기억의 방법론에 크게 빚지고 있는 셈이다.


2. 기억 안에 깃들인 인생과 사물의 근원적 시간에 대한 사유

만만하게 둥글어졌는데도
구르고 있구나
그 길 참 멀고도 멀다
나는 여태 각지게 여물지도 못했느니
-「몽돌」 전문

청보랏빛 산하도 꽃빛으로 지워지네
젊음을 지우고 지우며
시드는 꽃들이여
두 강물이 흘러
예까지 오기도 전에
나의 봄이 다 가 버리고 말았네
끝내 못다 지울 내 청춘의 블루
-「두물머리의 봄」 전문

이 두 편의 작품은, 노두식 시인의 시간관觀을 더없이 잘 보여 준다. 멀고 먼 길을 굴러와 만만하게 둥글어졌는데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구르고 있는 ‘몽돌’의 형상은 고스란히 시인의 삶을 환기하고 있다. 몽돌의 생태가 바로 “여태 각지게 여물지도” 못한 시인 자신을 비추어 주는 역상逆像이 되어 준 것이다. 그 안에는 자신에게도 ‘몽돌’의 오랜 세월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원만구족圓滿具足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깊은 자성自省이 담겨 있다. 지나온 시간을 기억하고 더욱 열정적으로 살아가야 할 자신을 다잡는 시편이 아닐 수 없다. 그다음 시편에서 시인은 두물머리의 봄날에 “젊음을 지우고 지우며/시드는 꽃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봄이 어느새 사라져 버렸음을 애틋하게 노래한다. 두 강물이 흘러 두물머리에 이르기 전에 가 버린 시인의 청춘은 그렇게 “끝내 못다 지울 내 청춘의 블루”였던 셈이다. 여기서는 ‘청춘’을 ‘블루[靑]’와 ‘봄[春]’으로 분리하여 젊음을 다한 시간이 역설적으로 충일할 수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렇게 시인은 “땀땀이 묵점墨點을 찍어 놓았던 가늘고 얕은 살금들”(「얼굴」)이 지나가고, “떠나보내고 돌아오는 일도/아득한 섬 하나를 돌아 나가는”(「돌아오는 길에」) 시간을 충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서정시는 원래 ‘시간’에 대한 남다른 기억의 형식으로 착상되고 씌어진다. 그것이 미래의 전망을 형상화한 것이거나 아니면 시간을 초월하는 시편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 자체로 시간에 대한 가치 판단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서정시는 시간에 대한 기억의 재구성이라는 양식적 특성을 일관되게 지니며, 사물의 이치를 순간적으로 포착하고 표현하는 원리를 구현하게 마련이다. 물론 이때 ‘순간’이란 일회적 시간 개념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로 통합한 ‘충만한 현재형’으로서의 강렬하고 집중된 시간 형식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적 순간’은 오랜 경험과 시간이 반복되고 축적된 집중 형식으로서의 순간이 된다. 노두식 시인의 근작近作들은 바로 이러한 서정시의 배타적 속성을 담아냄으로써, 자신의 기억 안에 깃들인 인생과 사물의 근원적 시간(성)을 깊이 사유해 간다. 그 점에서 노두식 시인은 시간 탐색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서정의 원리를 실현하는 장인匠人의 면모를 보여 준다 할 것이다.


3. 일상적 삶에서 발견하는 삶의 지혜

노두식 시인의 시정신이 자연 사물과의 깊은 교감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과 거의 등량等量의 몫으로 이번 시집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일상적 삶에서 발견하는 삶의 지혜일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무의미한 관성이 모여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일상’은, 그 어떤 제도나 역사보다도 삶의 속성을 징후적으로 더 잘 알게 해 주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특별히 우리가 사는 현대의 일상이란 고도로 조직화된 제도의 힘에 의해 분배되는 시간의 균질성을 중요한 속성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한 사회의 욕망과 의지의 표정을 보여 주는 핵심적 지표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힘에 의해 나타나는 우리 시대 일상의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자기 소외일 것이다. 이는 어떤 존재가 자기 안에 있는 본질적인 것을 바깥으로 이끌어 내서 그것을 타자로 삼아 오히려 자기와 배치되는 것으로 설정하는 것을 말하는데, 어쩌면 우리 사회는 이러한 자기 소외의 정점에 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개인 차원의 도덕적 열정이나 노력에 의해 타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판단 여부를 뛰어넘는 완강한 구조를 배후로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한 시적 비전vision이란, 이러한 자기 소외에 대한 원론적 비판에서가 아니라, 가장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발견을 통해 항체抗體를 기르는 일에서 찾아진다고 할 수 있다. 노두식 시인의 예지가 그러한 치유의 순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은 이번 시집이 이루어 낸 참으로 득의의 세계라 할 것이다.

굴참나무 껍질에는 해묵은 시간 속에서
낯가리고 내달렸을
갈라진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누구라도 감출 수 없는 흔적들을 내보이고 살면서
침묵하다 귀가 먹든지 아니면
짓눌러 놓았던 시푸른 너울을
골 깊은 주름의 틈새로 눈 꼭 감고 흘려보낸 적이 있었을 것
한 그루의 삶이 미추美醜를 거듭할 때
투박해지는 감각들을
잎이 무성하게 어루만져 주고
그 같은 위안이 나이테를 만드는 시각에
새치름히 배어 나오는 속살
속살의 하얀 정체성이 나무의 체온인 것
그 따뜻함 때문에 칼을 이기고
다시 불을 켜는 심지로
모든 생명의 아침이 그렇듯이
-「속살은 희다」 전문

이 아름다운 작품은 삶의 공리를 가장 구체적인 감각으로 살려 낸 가편佳篇이다. 다시 ‘나무’를 통해 시인은 “속살의 하얀 정체성이 나무의 체온”임을 노래한다. 오랜 시간과 사연을 온축하고 있을 나무의 껍질이며 “골 깊은 주름의 틈새”며 나이테 같은 것들은 한결같이 인생의 외관과 내질內質을 두루 포괄하고 상징한다. 나무 한 그루가 “미추美醜”를 거듭하고 감각의 위안이 나이테를 만드는 시각에, 비로소 시인은 나무의 “새치름히 배어 나오는 속살”을 관조하게 된다. “그 따뜻함” 속에서 “다시 불을 켜는 심지로/모든 생명의 아침”을 맞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시인은 굴참나무의 생태와 외연을 통해 존재자들이 “제가끔 지녔던 세상의 몫이/침묵으로 묻히는 꿈”(「다만 잠기기 위해」)을 바라보거나 “꽃향을 버무려 은밀히 빚어 놓았던/첫 마음의 음표”(「카카오톡」)를 발견해 간다. 우리가 움츠러들거나 옹색한 삶을 겨우 지켜 나가고 있을 때, 노두식 시편은 이러한 심미적 발견을 통해 우리가 겪는 자기 소의의 상처들을 치유해 가게끔 해 준다. 생성적인 아름다움을 내장한 시상詩想이 아닐 수 없다.


노두식 시편은 ‘기억’과 ‘사랑’을 견고하게 통합하면서,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삶의 형식을 한결같이 아름답게 보여 준다. 삶의 종요로운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남기는 일이 시인에게 부여된 남다른 특권이라면, 노두식 시인은 그러한 예술적 특권을 근원적 ‘기억’과 ‘사랑’을 통해 완성함으로써 서정시의 본원적 지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암시해 주는 시사적 실례로 남을 것이다. 그 점에서 이렇게 ‘기억’과 ‘사랑’의 힘으로 구축해 가는 ‘마음의 현상학’을 이루어 낸 노두식 시인의 이번 시집은, 시인 개인의 생애에서도 중요한 시적 결절結節이 될 것이고, 우리 시단에서 보더라도 서정시의 중요한 차원을 심미적으로 보여 준 수확이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노두식
인천에서 태어나 제물포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한의학박사). 펴낸 시집으로 『크레파스로 그린 사랑』(1984), 『바리때의 노래』(1986), 『우리의 빈 가지 위에』(1996), 『꿈의 잠』(2013)이 있고, 『한국의 약용식물』, 『엄마 건강하게 키워 주세요』, 『한방방제감별 조견표』, 『재미있는 한방 이야기』, 『노두식 박사의 생활한방 114』 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와 현대시인협회 회원이며, 인천 영제한의원 원장으로 일하면서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작가 소개

목 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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