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 ‘연찬’의 의미를 설명해 달라.
연찬이란 어떤 이론이나 사상, 방법 등을 연구할 때 무엇이든 한 가지로 단정 짓지 않고 열린 자세로 함께 진리를 추구해가는 것을 말한다.
논쟁이나 토론이 ‘나’의 주장과 견해를 뚜렷이 내세우는 것이라면, 연찬은 ‘나’의 생각을 내세우기보다 함께 올바름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생활의 여러 가지 갈등과 충돌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많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무엇이 진정 옳은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더 객관적이고 올바른 방법을 함께 찾아갈 수 있다. 그런 마음가짐과 대화방법이 곧 연찬이라고 할 수 있다.
# 《합작과 연정》을 내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20대 총선 이후,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각계에서 ‘합작’과 ‘연정’이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총선 이후의 변화된 정치지형 속에서 앞으로의 행보를 두고 다양한 고민들을 제기하고 있고, 여러 시민사회 단체들도 ‘차이’를 뛰어넘는 연대의 틀을 만들어내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합작과 연정’을 성찰하게 하는가? 그것은 바로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불거지고 있는 분열과 갈등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제양극화가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심해지는 가운데, 계층 갈등, 지역 갈등, 이념 갈등은 물론, 세대 갈등과 도농 갈등, 문화 갈등까지 켜켜이 더해지고 있다. 온 국민이 말 그대로 오리가리 찢겨진 채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며 살아가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슬픈 분열상을 극복하고 힘과 뜻을 모아나가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의 하나가 바로 ‘합작’과 ‘연정’이다. 《합작과 연정》은 그 의미와 방도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이다.
# 이번 책에서 말하는 ‘합작과 연정’의 의미와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합작을 하자는 건 모두가 비슷해지자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 그리고 새로운 문명을 지향하는 녹색 세력이 그 정체성을 뚜렷이 하는 게 진정한 합작의 전제다.
나는 우리나라 근대 100년의 정치가 이제 ‘합작’과 ‘연정’으로 수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나라를 망하게 하고 사대적이며 비자주적으로 만들고 있는 진영-편가름의 뿌리를 극복해야 한다는 역사적 비원(悲願)과 절박한 인식이 놓여 있다.
지금의 정치상황으로 보건대,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 그리고 새로운 문명추구 세력의 세 분야가 합작에 성공하고 연정을 실현하는 게 최상의 전망이다. 언젠가는 번갈아가면서 집권하는 시대도 올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특성으로 볼 때 기어코 한 번은 합작과 연정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나라와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위대한 성과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합작과 연정은 평면상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을 입체로 튀어올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입체로 튀어오르는 것이 우리 사회의 업그레이드 전략인 셈이다.
# ‘합작과 연정’을 하기 위한 인문학적 토대가 있다면 무엇인가?
나는 오랜 세월 익숙해진 위대한 성현들의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대중적으로 보편화하는 것을 인문운동의 중심으로 잡고 있다. 나는 다음의 세 문장을 나의 인문운동의 도구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첫째는 공자의 말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내가 아는 것이 있겠는가?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어오더라도, 텅 비어 있는 데서 출발하여 그 양 끝을 들추어내어 마침내 밝혀 보겠다.
(子曰,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논어》, 〈자한편〉)
나는 이 구절을 ‘소통은 과학이다’라는 주제로 이야기한다. 소통을 윤리적·도덕적 또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집단주의적 요구에서가 아니라, 이미 상식화한 과학을 우리의 사고와 실천에 적용하자는 것이다. ‘무지’의 자각이 출발이다.
인간은 사실 그 자체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 자신의 감각과 판단을 통해서 인식할 뿐이다. ‘내가 옳다’, ‘내가 사실을 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람은 끝까지 사실이나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자신(또는 자신이 확대된 집단)의 감각과 판단을 통해서 한다. 따라서 그것을 비우라는 것이 공공(空空)이 아니다. 다만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 자체와는 별개로 자신의 감각과 판단이라는 자각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중학교 과정만 마쳐도 상식화된 것이지만 실제의 삶과 실천에서는 단정)이 지배하는 문화 속에서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아 왔다. 심지어 제도화된 종교의 일부는 아집의 원천이 되어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을 지금도 벌이고 있다. 기층 민중 속에서 이런 자각이 보편화되는 것이야말로 합작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으로 될 것이다.
둘째도 역시 공자의 말이다.
자공(子貢)이 여쭈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함이 없으며, 부유하면서도 교만함이 없으면 어떠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논어》, 〈학이편〉)
사람이 많아진 마을을 지나면서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를 제자들이 묻자 공자는 ‘부(富, 물질적 성숙)’라고 말하고, 그 다음이 ‘교(敎, 정신적 성숙)’라고 말한다. 행복의 일차적 조건을 물질적 수요의 충족이라고 보고 그 다음을 정신적 성숙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성숙의 조건으로 작용할 때만 행복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통찰이고, 실제로 인류 역사를 통해 검증되어 왔다.
그리고 ‘교’의 목표를 빈이락(貧而樂, 가난하지만 즐겁다)과 부이호례(富而好禮, 넉넉하지만 서로 예로써 대한다)로 제시한다. 이것은 현대에 와서 자발적 가난을 주창하는 사람들에게나, 자본주의의 인간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요즘 중국은 ‘부’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를, ‘교’의 주체를 중국공산당으로 하는 세기적 실험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권력 집단이 인민의 의식과 욕구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는 과거 권력이데올로기로 이용되어 온 무수한 사례를 볼 때 회의적이긴 하다.
나는 이 주체가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연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무대가 협동조합과 마을만들기, 민회와 자치운동 같은 기층의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물질과 정신의 조화야말로 합작을 가능케 하는 또 하나의 관문이다.
셋째는 선가(禪家)의 이야기다. 중국 송나라 때의 청원유신(靑源惟信) 선사(禪師)의 말이다.
노승이 30년 전 아직 참선을 하지 않을 때, 산을 보니 산이고, 물을 보니 물이었다. 나중에 친히 선지식을 만나서 하나의 깨침이 있음에 이르러서는 산을 보니 산이 아니고, 물을 보니 물이 아니었다. 지금에 이르러 하나의 휴식처를 얻고 보니 여전히 산을 보니 다만 산이고 물을 보니 다만 물이다.
‘산은 산임을 본다〔분절 1〕→ 산은 산이 아님을 본다〔무분절〕→ 산은 다만 산임을 본다〔분절 2〕’는 것은 더 이상 선가의 화두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상식화한 이야기다. ‘분절 1’의 의식으로부터 ‘분절 2’의 의식으로 나아가는 데는 이른바 ‘무분절에 대한 깨달음’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이 깨달음이 예전에는 탁월한 사람들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오직 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라면, 현대 즉 21세기의 인류사에서 보면 보통 사람들이 이런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지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일체(一體)’, ‘온생명’, ‘한생명’, ‘한살림’, ‘유일한 생명단위로서의 우주’ 등 표현은 다양할지 몰라도 분리 독립된 실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상식화하고 있다. ‘한 장의 종이, 한 벌의 옷 속에서 우주를 본다’는 표현은 더 이상 신비주의자의 말이 아니게 되었다. 다만 문제는 과학적 상식일 뿐 우리의 사고와 삶과 사회적 실천에 삼투하지 못하고 화석화(化石化)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아마도 인류가 지금의 자본주의 문명을 넘어서기 위한 철학적 기초는 ‘분절2’의 의식을 바탕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철학적 기초가 구체적 사회운영의 원리로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운동이나 계급투쟁론 등 과거의 운동 방식을 변혁하는 인문적 토대가 될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분절 2’의 의식으로 살게 되면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가 다 무분절, 즉 일체의 드러남이기 때문에 생태적 삶은 너무 자연스럽게 되어 ‘산은 푸르고, 물은 맑게’ 된다. 또 나와 너의 경계가 점차 사라져 ‘사랑과 평화’가 강처럼 흐르게 될 것이다. 예술적 감각이 고도로 발달하게 되어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에서도, 이름 모를 산새의 지저귐이나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데서도, 그 감각의 순도가 높아져 세상이 있는 그대로 최고의 예술이 될 것이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여서 공허하게 들릴지 모르는 엄혹한 현실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 현실들을 이겨내고 마침내 ‘사람이 중심이 되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에 쓴 내용들이 다소라도 상상력을 해방하고, 실천의 에너지를 깨우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 다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이남곡
1945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하였다. 중학교까지 함평에서 마치고, 1960년 서울 경기고에 입학하였다. 유학 첫해인 1960년에 겪은 4. 19 혁명으로 시대에 눈 뜨기 시작하였다. 1963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였다. 대학에 가서도 사회적 부자유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며, 변혁운동에 나섰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투쟁과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앞장서다 지하운동에 가담하였다. 1972년부터 농촌지역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농촌운동과 함께 교사운동을 하였다.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 4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 사건을 전후로 해서 그의 사상은 큰 전환을 하게 되는데, 그의 사상이나 운동론은 이 때 그 틀이 형성된다. 이런 바탕에서 출옥 후 정토회 법륜스님이 이끈 불교사회연구소에서 새로운 인간과 사회, 새로운 문명을 고민하고 설계하기도 했다. 그 즈음 무아집, 무소유, 일체의 이념으로 집약되는 야마기시(山岸) 사상을 만났다. 야마기시즘 특별연찬회에 참여한 것이 인연이 되어, 1996년부터 8년간 경기도 화성에 있는 야마기시 실현지에서 새 삶을 꾸렸다.
여기에서 그가 지금까지 일관되게 지향해온 새로운 사상, 즉 ‘자본주의와 아집(我執)’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체적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여러 면에서 새로운 통찰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아직은 일반화할 수 없는 무소유사회보다는 지금 사람들의 실태로부터 출발하여 보다 보편적인 실천을 해보고 싶어 전북 장수에 자리잡고 작은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이들 부부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마을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논어'', ''중용''을 ‘연찬’하고, 서로 자기성찰과 소통을 통해 일상을 공유하며 내일을 함께 설계하고 있다. 마음과 물질이 함께 풍성한 사이좋은 마을 - 이것이 장수에서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마을이다. 또한 새로운 운동에 대한 그의 꿈은 익산의 ‘희망연대’에서 젊고 새로운 시민운동가들과 만나게 했고, 이 책에 실린 많은 내용들도 이 단체의 활동과 관련된 것이 많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일관되게 지향하는 것은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현상의 세계와 마음의 세계, 자기변혁과 세계변혁이 둘이 아닌 하나로 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이라 파악하며, 그 시대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한 발자국이라도 더 다가가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저서로 『진보를 연찬하다』가 있다.
▣ 주요 목차
개정판 서문 : 합작과 연정으로 새로운 문명국가를/ 7
초판 서문 : 진보의 길에 서서/ 25
제1부. 합작과 연정의 새로운 정치
연합정부로 가자/ 37
단순대담함과 입체로 뛰어오르자/ 43
‘대한민국 미래 플랫폼’ 연찬회를 반기며/ 46
합작의 주체가 이루어지기를/ 52
좌도우기/ 54
새로운 정치와 인문운동/ 58
한 인문운동가가 녹색당원들께 드리는 덕담/ 81
《모순론》/ 94
한국의 꿈〔韓國夢〕/ 96
통일에 대하여/ 98
20대 총선을 보며/ 100
진보운동이 나아갈 방향/ 104
제2부. 다시, 진보를 연찬하다
진보의 미래 : 진보는 위기인가? 109
붕괴와 새로운 시작은 가능할까? 124
예·양·충·서의 현대적 의미 126
공인주의(公人主義) 131
운동가의 진보성 133
진영의 블랙홀에서 벗어나기 135
새로운 거듭남을 위하여 139
뉴라이트, 뉴레프트 151
대통합 160
이런 진보정당을 바란다 166
‘방주’인가 ‘궤도’인가? 174
제3부. 우리 시대의 진보
우리 시대의 진보에 대하여 181
나의 진리 실험 195
무폭력, 무타협, 공동체주의 운동을 제안함 213
종적 사회에서 횡적 사회로 236
진보의 길 248
자유에 대하여 260
평등에 대하여 271
상생사회를 향하여 276
제4부. 협동운동과 인문운동
새로운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291
협동운동을 풍요롭게 하는 인문운동 305
시민운동, 그 새로운 상상 316
마을운동 323
따복공동체에 보낸 글 325
지역사회에 대한 협동조합의 기여에 관하여 329
인문운동과 복지의 새로운 지평 332
# ‘연찬’의 의미를 설명해 달라.
연찬이란 어떤 이론이나 사상, 방법 등을 연구할 때 무엇이든 한 가지로 단정 짓지 않고 열린 자세로 함께 진리를 추구해가는 것을 말한다.
논쟁이나 토론이 ‘나’의 주장과 견해를 뚜렷이 내세우는 것이라면, 연찬은 ‘나’의 생각을 내세우기보다 함께 올바름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생활의 여러 가지 갈등과 충돌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많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무엇이 진정 옳은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더 객관적이고 올바른 방법을 함께 찾아갈 수 있다. 그런 마음가짐과 대화방법이 곧 연찬이라고 할 수 있다.
# 《합작과 연정》을 내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20대 총선 이후,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각계에서 ‘합작’과 ‘연정’이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총선 이후의 변화된 정치지형 속에서 앞으로의 행보를 두고 다양한 고민들을 제기하고 있고, 여러 시민사회 단체들도 ‘차이’를 뛰어넘는 연대의 틀을 만들어내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합작과 연정’을 성찰하게 하는가? 그것은 바로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불거지고 있는 분열과 갈등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경제양극화가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갈수록 심해지는 가운데, 계층 갈등, 지역 갈등, 이념 갈등은 물론, 세대 갈등과 도농 갈등, 문화 갈등까지 켜켜이 더해지고 있다. 온 국민이 말 그대로 오리가리 찢겨진 채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며 살아가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슬픈 분열상을 극복하고 힘과 뜻을 모아나가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의 하나가 바로 ‘합작’과 ‘연정’이다. 《합작과 연정》은 그 의미와 방도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이다.
# 이번 책에서 말하는 ‘합작과 연정’의 의미와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합작을 하자는 건 모두가 비슷해지자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 그리고 새로운 문명을 지향하는 녹색 세력이 그 정체성을 뚜렷이 하는 게 진정한 합작의 전제다.
나는 우리나라 근대 100년의 정치가 이제 ‘합작’과 ‘연정’으로 수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나라를 망하게 하고 사대적이며 비자주적으로 만들고 있는 진영-편가름의 뿌리를 극복해야 한다는 역사적 비원(悲願)과 절박한 인식이 놓여 있다.
지금의 정치상황으로 보건대,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 그리고 새로운 문명추구 세력의 세 분야가 합작에 성공하고 연정을 실현하는 게 최상의 전망이다. 언젠가는 번갈아가면서 집권하는 시대도 올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특성으로 볼 때 기어코 한 번은 합작과 연정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나라와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위대한 성과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합작과 연정은 평면상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을 입체로 튀어올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입체로 튀어오르는 것이 우리 사회의 업그레이드 전략인 셈이다.
# ‘합작과 연정’을 하기 위한 인문학적 토대가 있다면 무엇인가?
나는 오랜 세월 익숙해진 위대한 성현들의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대중적으로 보편화하는 것을 인문운동의 중심으로 잡고 있다. 나는 다음의 세 문장을 나의 인문운동의 도구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첫째는 공자의 말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내가 아는 것이 있겠는가?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어오더라도, 텅 비어 있는 데서 출발하여 그 양 끝을 들추어내어 마침내 밝혀 보겠다.
(子曰, 吾有知乎哉? 無知也 有鄙夫問於我 空空如也 我叩其兩端而竭焉)
(《논어》, 〈자한편〉)
나는 이 구절을 ‘소통은 과학이다’라는 주제로 이야기한다. 소통을 윤리적·도덕적 또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집단주의적 요구에서가 아니라, 이미 상식화한 과학을 우리의 사고와 실천에 적용하자는 것이다. ‘무지’의 자각이 출발이다.
인간은 사실 그 자체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 자신의 감각과 판단을 통해서 인식할 뿐이다. ‘내가 옳다’, ‘내가 사실을 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람은 끝까지 사실이나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자신(또는 자신이 확대된 집단)의 감각과 판단을 통해서 한다. 따라서 그것을 비우라는 것이 공공(空空)이 아니다. 다만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 자체와는 별개로 자신의 감각과 판단이라는 자각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중학교 과정만 마쳐도 상식화된 것이지만 실제의 삶과 실천에서는 단정)이 지배하는 문화 속에서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아 왔다. 심지어 제도화된 종교의 일부는 아집의 원천이 되어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을 지금도 벌이고 있다. 기층 민중 속에서 이런 자각이 보편화되는 것이야말로 합작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으로 될 것이다.
둘째도 역시 공자의 말이다.
자공(子貢)이 여쭈었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함이 없으며, 부유하면서도 교만함이 없으면 어떠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논어》, 〈학이편〉)
사람이 많아진 마을을 지나면서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를 제자들이 묻자 공자는 ‘부(富, 물질적 성숙)’라고 말하고, 그 다음이 ‘교(敎, 정신적 성숙)’라고 말한다. 행복의 일차적 조건을 물질적 수요의 충족이라고 보고 그 다음을 정신적 성숙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성숙의 조건으로 작용할 때만 행복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통찰이고, 실제로 인류 역사를 통해 검증되어 왔다.
그리고 ‘교’의 목표를 빈이락(貧而樂, 가난하지만 즐겁다)과 부이호례(富而好禮, 넉넉하지만 서로 예로써 대한다)로 제시한다. 이것은 현대에 와서 자발적 가난을 주창하는 사람들에게나, 자본주의의 인간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요즘 중국은 ‘부’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를, ‘교’의 주체를 중국공산당으로 하는 세기적 실험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권력 집단이 인민의 의식과 욕구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는 과거 권력이데올로기로 이용되어 온 무수한 사례를 볼 때 회의적이긴 하다.
나는 이 주체가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연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무대가 협동조합과 마을만들기, 민회와 자치운동 같은 기층의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물질과 정신의 조화야말로 합작을 가능케 하는 또 하나의 관문이다.
셋째는 선가(禪家)의 이야기다. 중국 송나라 때의 청원유신(靑源惟信) 선사(禪師)의 말이다.
노승이 30년 전 아직 참선을 하지 않을 때, 산을 보니 산이고, 물을 보니 물이었다. 나중에 친히 선지식을 만나서 하나의 깨침이 있음에 이르러서는 산을 보니 산이 아니고, 물을 보니 물이 아니었다. 지금에 이르러 하나의 휴식처를 얻고 보니 여전히 산을 보니 다만 산이고 물을 보니 다만 물이다.
‘산은 산임을 본다〔분절 1〕→ 산은 산이 아님을 본다〔무분절〕→ 산은 다만 산임을 본다〔분절 2〕’는 것은 더 이상 선가의 화두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상식화한 이야기다. ‘분절 1’의 의식으로부터 ‘분절 2’의 의식으로 나아가는 데는 이른바 ‘무분절에 대한 깨달음’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이 깨달음이 예전에는 탁월한 사람들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오직 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라면, 현대 즉 21세기의 인류사에서 보면 보통 사람들이 이런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지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일체(一體)’, ‘온생명’, ‘한생명’, ‘한살림’, ‘유일한 생명단위로서의 우주’ 등 표현은 다양할지 몰라도 분리 독립된 실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상식화하고 있다. ‘한 장의 종이, 한 벌의 옷 속에서 우주를 본다’는 표현은 더 이상 신비주의자의 말이 아니게 되었다. 다만 문제는 과학적 상식일 뿐 우리의 사고와 삶과 사회적 실천에 삼투하지 못하고 화석화(化石化)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아마도 인류가 지금의 자본주의 문명을 넘어서기 위한 철학적 기초는 ‘분절2’의 의식을 바탕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철학적 기초가 구체적 사회운영의 원리로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운동이나 계급투쟁론 등 과거의 운동 방식을 변혁하는 인문적 토대가 될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분절 2’의 의식으로 살게 되면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가 다 무분절, 즉 일체의 드러남이기 때문에 생태적 삶은 너무 자연스럽게 되어 ‘산은 푸르고, 물은 맑게’ 된다. 또 나와 너의 경계가 점차 사라져 ‘사랑과 평화’가 강처럼 흐르게 될 것이다. 예술적 감각이 고도로 발달하게 되어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에서도, 이름 모를 산새의 지저귐이나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데서도, 그 감각의 순도가 높아져 세상이 있는 그대로 최고의 예술이 될 것이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여서 공허하게 들릴지 모르는 엄혹한 현실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 현실들을 이겨내고 마침내 ‘사람이 중심이 되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 책에 쓴 내용들이 다소라도 상상력을 해방하고, 실천의 에너지를 깨우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 다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이남곡
1945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하였다. 중학교까지 함평에서 마치고, 1960년 서울 경기고에 입학하였다. 유학 첫해인 1960년에 겪은 4. 19 혁명으로 시대에 눈 뜨기 시작하였다. 1963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였다. 대학에 가서도 사회적 부자유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며, 변혁운동에 나섰다. 1964년 한일회담 반대투쟁과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앞장서다 지하운동에 가담하였다. 1972년부터 농촌지역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농촌운동과 함께 교사운동을 하였다.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 4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 사건을 전후로 해서 그의 사상은 큰 전환을 하게 되는데, 그의 사상이나 운동론은 이 때 그 틀이 형성된다. 이런 바탕에서 출옥 후 정토회 법륜스님이 이끈 불교사회연구소에서 새로운 인간과 사회, 새로운 문명을 고민하고 설계하기도 했다. 그 즈음 무아집, 무소유, 일체의 이념으로 집약되는 야마기시(山岸) 사상을 만났다. 야마기시즘 특별연찬회에 참여한 것이 인연이 되어, 1996년부터 8년간 경기도 화성에 있는 야마기시 실현지에서 새 삶을 꾸렸다.
여기에서 그가 지금까지 일관되게 지향해온 새로운 사상, 즉 ‘자본주의와 아집(我執)’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체적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여러 면에서 새로운 통찰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아직은 일반화할 수 없는 무소유사회보다는 지금 사람들의 실태로부터 출발하여 보다 보편적인 실천을 해보고 싶어 전북 장수에 자리잡고 작은 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이들 부부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마을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논어'', ''중용''을 ‘연찬’하고, 서로 자기성찰과 소통을 통해 일상을 공유하며 내일을 함께 설계하고 있다. 마음과 물질이 함께 풍성한 사이좋은 마을 - 이것이 장수에서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마을이다. 또한 새로운 운동에 대한 그의 꿈은 익산의 ‘희망연대’에서 젊고 새로운 시민운동가들과 만나게 했고, 이 책에 실린 많은 내용들도 이 단체의 활동과 관련된 것이 많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일관되게 지향하는 것은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현상의 세계와 마음의 세계, 자기변혁과 세계변혁이 둘이 아닌 하나로 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이라 파악하며, 그 시대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한 발자국이라도 더 다가가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저서로 『진보를 연찬하다』가 있다.
▣ 주요 목차
개정판 서문 : 합작과 연정으로 새로운 문명국가를/ 7
초판 서문 : 진보의 길에 서서/ 25
제1부. 합작과 연정의 새로운 정치
연합정부로 가자/ 37
단순대담함과 입체로 뛰어오르자/ 43
‘대한민국 미래 플랫폼’ 연찬회를 반기며/ 46
합작의 주체가 이루어지기를/ 52
좌도우기/ 54
새로운 정치와 인문운동/ 58
한 인문운동가가 녹색당원들께 드리는 덕담/ 81
《모순론》/ 94
한국의 꿈〔韓國夢〕/ 96
통일에 대하여/ 98
20대 총선을 보며/ 100
진보운동이 나아갈 방향/ 104
제2부. 다시, 진보를 연찬하다
진보의 미래 : 진보는 위기인가? 109
붕괴와 새로운 시작은 가능할까? 124
예·양·충·서의 현대적 의미 126
공인주의(公人主義) 131
운동가의 진보성 133
진영의 블랙홀에서 벗어나기 135
새로운 거듭남을 위하여 139
뉴라이트, 뉴레프트 151
대통합 160
이런 진보정당을 바란다 166
‘방주’인가 ‘궤도’인가? 174
제3부. 우리 시대의 진보
우리 시대의 진보에 대하여 181
나의 진리 실험 195
무폭력, 무타협, 공동체주의 운동을 제안함 213
종적 사회에서 횡적 사회로 236
진보의 길 248
자유에 대하여 260
평등에 대하여 271
상생사회를 향하여 276
제4부. 협동운동과 인문운동
새로운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291
협동운동을 풍요롭게 하는 인문운동 305
시민운동, 그 새로운 상상 316
마을운동 323
따복공동체에 보낸 글 325
지역사회에 대한 협동조합의 기여에 관하여 329
인문운동과 복지의 새로운 지평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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