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원시적 감각부터 신화적 상상력까지
환멸을 견디는 꿈의 언어, 현실의 의지
벌레가 된 시인이 읊조리는 기도
1998년 《현대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명료한 이미지와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들을 선보여 온 이재훈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벌레 신화』가 출간되었다. 『벌레 신화』를 통해 시인은 세계의 쏟아지는 폭력에 대해 등을 말고 웅크린 채 견디는 식물적 능동에 대해 말한다. 비극적인 현실을 살아 내기 위해 환멸을 끌어안고 더욱 적극적으로 고통을 느끼는 방식을 택한다. 땅바닥에 가장 낮게 엎드린 벌레의 목소리로 이 세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옥을 사는 시인의 태도
지옥이라 부를까.
창이 내 옆구리를 찌르고, 꼬리는 빠져 시큰하고
벌건 불속에서 뼈를 드러낸 채
날뛰는 날들을 일상이라 부를까.
(……)
일상이 일상을 읽는 밤.
내 몸이 불어 터져 고통을 읽는 밤.
―「뿔」에서
고통을 생생히 느끼며 견디는 사람은 고통스럽다. 감각을 잊은 채 떠밀려 사는 것이 견디기에는 적합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스스로에게 마취와 환각을 허락한다. 감각과 생각을 예리하게 느끼는 순간 고통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이 지옥임을 애써 잊으려는 시대. 반성이 낯설고 머쓱해진 시대에 시인은 다시,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마취되어 둔해진 사람들을 깨우는 시. 지금 여기를 생생히 감각하게 하는 시는 아프다. 그러나 시인은 각성을 모르는 타인을 야단치거나 계몽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향해 조용하지만 끊임없이 물을 뿐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짐승처럼 왔을까”, “그때 우리는 참담했을까.”(「짐승의 피」)라고 말이다.
■무너진 곳에서 시작하는 기도
당신과 내가 오래되고 깊은 성에 무릎 꿇고
오래오래 기도하면 된다.
(……)
무릎 꿇는 일과 화답하는 일이
저 마을의 시간을 바꿀 수 있을까.
성벽 사이로 가느다란 빛이 스며든다.
전쟁으로 성벽은 무너졌으나
그곳에서 사랑은 늘 시작되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시인이 온 시간을 다해 살아온 이 세계는 부패했고, “무너졌”다. 그야말로 폐허다. “꼰대들”과 “위정자들”(「녹색 기사」)로 가득하다. 그토록 비겁하고 사악한 세계를 살아온 시인은 지쳤다. 그러나 시인은 무너진 곳에서 다시 기도를 시작한다. 환멸을 느끼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이렇게 오래 나쁜 채로 있던 세상이 과연 바뀔까 하는 의심을 하지만 결국에는 “무릎을 꿇고 오래오래 기도하면 된다.” 라고 결론 내린다. “오래오래 기도”하는 것. 그것은 “당신과 내”가 바꿀 세상에 대한 믿음이다. 세계에 남은, 세계를 바꿀 “사랑”에 대한 믿음이다. 시인은 “전쟁”과 같은 폭력에 의해 무너진 세계가 사랑에 의해 다시 세워질 수 있음을 믿는다.
▣ 작가 소개
이제훈
1972년 강원 영월에서 태어났다. 1998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가 있으며 저서로 『현대시와 허무의식』, 『딜레마의 시학』, 『부재의 수사학』,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가 있다. 현대시작품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 주요 목차
1부
벌레
뿔
기이한 탄생들
짐승의 피
치미는 몸
햇칼
녹색 기사
주술적 인간
밀랍
수메르
빙하의 고고학
가운데 땅
허공의 사다리
2부
평원의 밤
신비한 비
거리의 왕 노릇
맘몬과 달과 비
원시적 감각부터 신화적 상상력까지
환멸을 견디는 꿈의 언어, 현실의 의지
벌레가 된 시인이 읊조리는 기도
1998년 《현대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명료한 이미지와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들을 선보여 온 이재훈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벌레 신화』가 출간되었다. 『벌레 신화』를 통해 시인은 세계의 쏟아지는 폭력에 대해 등을 말고 웅크린 채 견디는 식물적 능동에 대해 말한다. 비극적인 현실을 살아 내기 위해 환멸을 끌어안고 더욱 적극적으로 고통을 느끼는 방식을 택한다. 땅바닥에 가장 낮게 엎드린 벌레의 목소리로 이 세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옥을 사는 시인의 태도
지옥이라 부를까.
창이 내 옆구리를 찌르고, 꼬리는 빠져 시큰하고
벌건 불속에서 뼈를 드러낸 채
날뛰는 날들을 일상이라 부를까.
(……)
일상이 일상을 읽는 밤.
내 몸이 불어 터져 고통을 읽는 밤.
―「뿔」에서
고통을 생생히 느끼며 견디는 사람은 고통스럽다. 감각을 잊은 채 떠밀려 사는 것이 견디기에는 적합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스스로에게 마취와 환각을 허락한다. 감각과 생각을 예리하게 느끼는 순간 고통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이 지옥임을 애써 잊으려는 시대. 반성이 낯설고 머쓱해진 시대에 시인은 다시,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묻는다. 마취되어 둔해진 사람들을 깨우는 시. 지금 여기를 생생히 감각하게 하는 시는 아프다. 그러나 시인은 각성을 모르는 타인을 야단치거나 계몽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향해 조용하지만 끊임없이 물을 뿐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짐승처럼 왔을까”, “그때 우리는 참담했을까.”(「짐승의 피」)라고 말이다.
■무너진 곳에서 시작하는 기도
당신과 내가 오래되고 깊은 성에 무릎 꿇고
오래오래 기도하면 된다.
(……)
무릎 꿇는 일과 화답하는 일이
저 마을의 시간을 바꿀 수 있을까.
성벽 사이로 가느다란 빛이 스며든다.
전쟁으로 성벽은 무너졌으나
그곳에서 사랑은 늘 시작되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시인이 온 시간을 다해 살아온 이 세계는 부패했고, “무너졌”다. 그야말로 폐허다. “꼰대들”과 “위정자들”(「녹색 기사」)로 가득하다. 그토록 비겁하고 사악한 세계를 살아온 시인은 지쳤다. 그러나 시인은 무너진 곳에서 다시 기도를 시작한다. 환멸을 느끼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이렇게 오래 나쁜 채로 있던 세상이 과연 바뀔까 하는 의심을 하지만 결국에는 “무릎을 꿇고 오래오래 기도하면 된다.” 라고 결론 내린다. “오래오래 기도”하는 것. 그것은 “당신과 내”가 바꿀 세상에 대한 믿음이다. 세계에 남은, 세계를 바꿀 “사랑”에 대한 믿음이다. 시인은 “전쟁”과 같은 폭력에 의해 무너진 세계가 사랑에 의해 다시 세워질 수 있음을 믿는다.
▣ 작가 소개
이제훈
1972년 강원 영월에서 태어났다. 1998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가 있으며 저서로 『현대시와 허무의식』, 『딜레마의 시학』, 『부재의 수사학』,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가 있다. 현대시작품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 주요 목차
1부
벌레
뿔
기이한 탄생들
짐승의 피
치미는 몸
햇칼
녹색 기사
주술적 인간
밀랍
수메르
빙하의 고고학
가운데 땅
허공의 사다리
2부
평원의 밤
신비한 비
거리의 왕 노릇
맘몬과 달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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