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박해 당사자의 눈으로 본
조선 천주교인의 가혹한 역사
1777년, 외딴 절간에 몇몇의 학자가 모여 누가 들을 새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에 낯익은 이름들이 있었으니 정약용·정약전 형제도 있었거니와 이벽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이덕조, 그리고 권철신·권일신 형제도 있었다. 그들은 절간에 앉아 인성과 천(天), 세상에 관한 여러 문제를 고찰한 이후에 중국에서 가져온 서적들을 함께 훑어보기에 이르렀다. 신의 섭리, 영혼, 미덕과 악덕에 관해 그 책이 말하는 가르침이 너무 좋아 보였기에 그들은 즉시 자신들의 품행을 신의 계명에 일치시킬 것을 결심하였다. 조선에서 천주교라는 종교의 씨앗이 싹튼 순간이었다.
조선의 천주교는 타국에 그것이 들어온 과정과 다른 특별함이 있다. 위에서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다른 나라들처럼 선교로써 그 열매를 맺은 것이 아니라 조선인 스스로 학문을 탐구하고, 그럼으로써 천주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요, 국사 시간에 귀만 조금 기울였어도 알 만큼 흔한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연도와 박해받은 이의 숫자, 그리고 박해를 한 당사국의 입장에서 서술되어 있을 뿐, 박해받은 이의 입장에서 서술된 이야기는 일반인으로선 쉽게 접할 수 없다. 현재 천주교를 믿거나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와 같은 사료를 읽은 사람만이 당시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은 1784년부터 1924년까지를 네 개의 시기로 나누어 조선 천주교회사를 서술하고 있다. 특별한 것은 박해를 받았던 천주교인 당사자가 그들의 눈으로 바라보고 쓴 책이라는 점이다. 시대순으로 제1부는 1784년부터 1831년까지의 시기로 조선에 천주교가 어떻게 전래되었는지 그 경위와 경로를, 제2부는 1831년부터 1866년까지 이른바 ‘피로 물든’ 시기로 당시 벌어진 박해와 수많은 순교자에 대해 상세히 밝힌다. 이 부분에 병인양요가 어떻게 벌어졌는지 그 과정과 결과가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제3부에서는 천주교회가 박해라는 ‘어둠의 시기’를 지나 합법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의 역사를 다룬다. 마지막 제4부에서는 1911년 이후 조선 천주교회가 확장, 분할되는 과정과 메리놀 외방전교회와 같은 새로운 선교회들이 조선에 진출하여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를 담고 있다.
고난 속에서도
치우치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의 모습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가 한국학 개론서로써 아직 한국에 관한 정보가 빈약하였던 19세기 후반 서구 사회에 한국을 알리는 데 크게 이바지한 것처럼 이 책 또한 서문과 본문 곳곳에 조선 사회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들어 있어 20세기 초반 한국에 진출하려는 서구 사회에 다양한 정보를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서문에서 환경, 백성, 언어, 사회 계급, 가족 등 9개 항목으로 나누어 조선 사회와 민족, 문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인종적 특징, 특산물부터 말과 글을 다르게 쓰는 이유와 단군신화까지 그 묘사에 대해서는 우월감이나 열등에 대한 조롱 따위 없이 최대한 치우치지 않은 시선으로 설명한 것이 단연 눈에 띈다.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도 조선에 대한 애정을 갖고 최대한 객관적인 눈으로 그 시대의 모습을 묘사하려 애썼다는 점이 놀랍다.
“오랫동안 중국에 예속되었던 조선은 항상 숭문(崇文)을 표방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학식 배양은 언제나 중국 방식을 모방했을 뿐, 국가적 특징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였다. 게다가 한글 자모의 창제 이후에도 교본이나 공문서는 계속해서 한글이 아닌 한자로 작성되었다. 언문책은 여자들이나 혹은 한자를 모르는 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예전에 조선의 선비는 한글을 모른다 하는 것이 오히려 자랑이었다. 어렵기 그지없는 한자를 안다는 자부심에 사로잡힌 선비로서는 음소 문자이면서 또한 그 조합이 너무 간단한 한글이 별로 탐탁지 않게 느껴졌던 것은 아닐까?”
뿐만 아니라 조선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력도 주목할 만하다. 훌륭한 문자 한글을 가졌음에도 조선의 선비들이 그것을 쓰지 않으려 하는 이유, 조선 양반의 폐해와 조선 가족 구성원 내에서 여성의 지위까지 조선 사회를 면밀하게 또 오랜 기간 들여다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사실들이 나열되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애정 어린 묘사는 딱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독립운동의 편에 선 개신교와는 달리 총독부에 협력했던 조선의 천주교는 당시의 상황을 매우 일제에 유리하게 서술하고 있다. 씁쓸한 역사의 단면이다.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조선 시대 각종 종교의 청사진
당시 조선의 사회상이나 생활상, 박해 당사자가 바라본 박해의 시기 또한 중요한 정보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 또한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에서도 설명하고 있으므로 이 책의 독보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달레 신부가 기록하지 않았던 1874년 이후 조선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조선 시대 각종 종교의 현황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러므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책의 결론이다. 이곳에서 조선 천주교에 위협이 되는 장애 요인에 대한 설명으로 당시 조선에 어떤 종교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는지 그 현황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총독부의 비호를 받는 불교와 신도(神道), 그리고 유교, 천도교, 시천교, 단군교 등을 언급함으로써 조선 후기 혼란이 가중되던 시기에 민초들이 어떤 종교에 의지했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의 백성이 가진 종교적 특질에 대한 설명도 있다. 특히나 개신교의 교세는 감리교·장로교·회중교회주의·재림교·안식교·구세군·성공회 등 당시 조선에서 활동하던 종파를 언급하고 1921년과 1923년의 신자 숫자를 도표로 만들어 한 자릿수까지 정확히 명시되어 있으므로 천주교를 제외한 종교사로서도 가치가 있음이 틀림없다.
끝으로 본문에 담긴 사진 34점에는 성당이 없던 시절 공소의 모습과 명동대성당, 용산 신학교와 같은 종교 시설의 초기 모습도 담겨 있어 한국 천주교회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들이 본 우리(Korean Heritage Books) 총서
“총천연색으로 만나는 신선한 나라 조선”
“외국인들이 조선에 대해 남긴 기록이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게 하고, 현재 우리의 위상을 점검하게 하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이정표를 찾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외국인이 바라본 우리의 전근대 및 근대의 모습은 우리의 과거를 비춰주는 거울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미래를 위한 이정표 역할도 해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명지대-LG연암문고가 소장하고 있는 고서와 문서에서 한국문학번역원이 엄선해 출간해온 『그들이 본 우리』 총서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 원장 「발간사」 중에서
『그들이 본 우리』 총서는 명지대-LG연암문고가 수집·소장하고 있는 자료 중에서 서양인이 남긴 조선의 기록만을 엄선하여 2008년부터 출간해온 국내 유일의 총서다. 발간·미발간본 포함 국내 다른 기관에 존재하지 않는 유일본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으며 일부는 지금까지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자료도 있다. 이런 희귀본들이 국내에서 빛을 보게 되어 동북아 지역과 관련된 인문·사회·과학 분야 및 한국학 전반에 걸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단 한 종밖에 없는 도서를 찾아 전 세계 고서점을 뒤져 가격에 상관없이 수집했던 노력이 이제 결실을 맺어 우리 문화와 학문의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작가 소개
저자 : 파리 외방전교회
이 책은 1924년 홍콩에 소재한 파리 외방전교회 인쇄소 발간으로 되어 있을 뿐, 그 저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파리 외방전교회는 1658년 아시아 지역에서의 포교를 위해 프랑스에 설립된 해외 전도단체로 1831년 바르텔레미 브뤼기에르 주교를 조선 대목구에 파견하면서 조선에서의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전교회 소속으로 서울 대목구 보좌주교였던 드브레 신부가 이 책의 저자라고 보는 시각도 있으나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역자 : 김승욱
홍익대학교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부르고뉴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남도 끝자락에 터를 잡고 번역을 일삼아 지내는 중이다.
▣ 주요 목차
발간사 ‘그들이 본 우리’?상호 교류와 소통을 위한 실측 작업
서문?나라와 백성
땅과 산물 | 환경 | 백성 | 언어 | 사회 계급 | 가족 | 국왕과 정부 | 종교 | 조선 민족의 기원
제1부: 그리스도교의 조선 유입과 최초의 박해들(1784~1831)
16세기 일본의 침입 | 조선 최초의 천주교 입교자들(18세기) | 가성직제도의 수립 | 중국인 신부 주문모 야고보의 입국과 순교 | 수많은 그리스도교인의 순교 | 척사윤음(1802년 1월 25일) | 30년간 선교사가 없었던 조선 교회
제2부: 가혹한 박해와 수많은 순교자
제1장: 조선 대목구의 설정(1831), 1839년과 1846년의 박해
초대 조선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몬시뇰 | 모방 신부의 조선 입국 | 샤스탕 신부의 조선 입국 | 제2대 조선 대목구장 앵베르 몬시뇰 | 1839년의 박해 | 앵베르 주교의 체포 |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의 체포 | 세 선교사의 순교 | 척사윤음(1839년 11월 24일) | 제3대 조선 대목구장 페레올 몬시뇰 | 최초의 조선인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 김대건 신부의 순교
제2장: 선교사들의 활동(1847~1866)
페레올 주교의 죽음(1853) | 제4대 조선 대목구장 베르뇌 몬시뇰(1855) | 보좌주교로 성성된 다블뤼 몬시뇰(1856) | 보람과 시련의 시기(1857~1863) | 조선 국왕의 죽음과 궁정 혁명 | 신임 선교사 4인의 도착 | 러시아와 조선 | 박해가 일어나다 | 베르뇌 주교의 체포 | 브르트니에르, 볼리외, 도리 신부와 승지 남종삼의 체포 | 추국청을 열고 국문을 행하다 | 베르뇌 주교와 그 동료들의 순교 |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의 체포와 순교 | 다블뤼 주교 및 오메트르 신부와 위앵 신부의 체포 | 다블뤼 주교와 그 동료들의 순교 | 1866년의 무수한 순교자들 | 세 명의 선교사가 피신하는 데 성공하다 | 프랑스 함대의 조선 원정 | 수년간 박해가 지속되다
제3부: 카타콤바 밖으로 나온 조선 교회, 수확을 시작하다(1867~1911)
제1장: 조선 재입국을 위한 선교사들의 시도(1867~1870)
박해와 신교의 자유 | 이교국의 종교 자유를 위해 외세가 개입하는 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 조선 재입국을 위한 선교사들의 시도와 좌절, 그들의 중국 잔류
제2장: 리델 몬시뇰과 블랑 몬시뇰의 대목구장 재임 시기 그리고 조선과 외국 열강들 간의 조약(1870~1890)
제6대 조선 대목구장 리델 몬시뇰 | 1871년 미국의 조선 원정과 조선 입국을 위한 선교사들의 새로운 시도 | 리델 주교의 조선 입국, 그의 체포와 방면 | 조선어 문전과 사전 | 두 명의 선교사 체포당하다 | 마지막 척사윤음(1881년 6월 12일) | 조선과 외국 열강들 간의 조약 | 제7대 조선 대목구장 블랑 몬시뇰
제3장: 조선 대목구장 뮈텔 몬시뇰, 수확
1890년 조선 교회의 현황 | 제8대 조선 대목구장 뮈텔 몬시뇰 | 1891년의 민란과 1894년의 청일전쟁 | 선교사들의 활동과 복음화의 진척 | 러일전쟁과 일본 보호령이 된 조선 | 서울 베네딕토회 수도원 설립(1909)
제4부: 조선 교회의 조직화와 교구 분할
제1장: 서울 대목구(파리 외방전교회)
뮈텔 몬시뇰의 초대 서울 대목구장 취임과 드망즈 몬시뇰의 성성 | 서울 교구의 신학교 확장 | 천주교인의 이주 | 보통학교 | 더욱 충실한 신앙 생활 | 조선의 일본인 교우들 | 방인 사제들을 위한 라틴어 잡지 | 1914~1918년 전쟁, 개신교의 성장 | 병합 이후의 조선 천주교회와 일본 | 간도에서의 약탈과 소요, 최문식 베드로 신부의 피랍 | 뮈텔 몬시뇰의 주교 성성 30주년(1920) | 원산 대목구의 신설(1920), 서울에서 두 명의 주교가 성성되다(1921) | 1922년 서울 교구 시노드와 성직자들을 위한 새로운 지도서 공포 | 가톨릭 청년회 | 학생 기숙사와 상업학교 건립 노력 | 회장들을 위한 지도서 | 서울 교구 인쇄소 |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 조선 순교자들의 시복 소송 | 서울 대목구의 북서 지역이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에 위임되다 | 1924년 초 서울 대목구의 인원
제2장: 대구 대목구(파리 외방전교회)
조직 활동 | 복음전파 활동 | 1924년 초 대구 대목구의 인원
제3장: 원산 대목구(바바리아?성 오틸리엔 베네딕토회)
성 오틸리엔 베네딕토회의 조선 진출(1909년 2월) | 원산 대목구의 설립 | 조직 및 사업 | 원산 대목구의 인원(1924)
제4장: 평안도 지역(메리놀 외방전교회)
서울 대목구의 북서 지역이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에 위임되다 | 미국 가톨릭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
결론
현재 조선에서 천주교를 전파하는 데 있어서의 장애물 | 조선에서 개신교의 위협 | 덧붙이는 말 | 조선 천주교 현황(1923)
옮긴이 글 | 옮긴이 주
박해 당사자의 눈으로 본
조선 천주교인의 가혹한 역사
1777년, 외딴 절간에 몇몇의 학자가 모여 누가 들을 새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에 낯익은 이름들이 있었으니 정약용·정약전 형제도 있었거니와 이벽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이덕조, 그리고 권철신·권일신 형제도 있었다. 그들은 절간에 앉아 인성과 천(天), 세상에 관한 여러 문제를 고찰한 이후에 중국에서 가져온 서적들을 함께 훑어보기에 이르렀다. 신의 섭리, 영혼, 미덕과 악덕에 관해 그 책이 말하는 가르침이 너무 좋아 보였기에 그들은 즉시 자신들의 품행을 신의 계명에 일치시킬 것을 결심하였다. 조선에서 천주교라는 종교의 씨앗이 싹튼 순간이었다.
조선의 천주교는 타국에 그것이 들어온 과정과 다른 특별함이 있다. 위에서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다른 나라들처럼 선교로써 그 열매를 맺은 것이 아니라 조선인 스스로 학문을 탐구하고, 그럼으로써 천주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요, 국사 시간에 귀만 조금 기울였어도 알 만큼 흔한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연도와 박해받은 이의 숫자, 그리고 박해를 한 당사국의 입장에서 서술되어 있을 뿐, 박해받은 이의 입장에서 서술된 이야기는 일반인으로선 쉽게 접할 수 없다. 현재 천주교를 믿거나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와 같은 사료를 읽은 사람만이 당시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은 1784년부터 1924년까지를 네 개의 시기로 나누어 조선 천주교회사를 서술하고 있다. 특별한 것은 박해를 받았던 천주교인 당사자가 그들의 눈으로 바라보고 쓴 책이라는 점이다. 시대순으로 제1부는 1784년부터 1831년까지의 시기로 조선에 천주교가 어떻게 전래되었는지 그 경위와 경로를, 제2부는 1831년부터 1866년까지 이른바 ‘피로 물든’ 시기로 당시 벌어진 박해와 수많은 순교자에 대해 상세히 밝힌다. 이 부분에 병인양요가 어떻게 벌어졌는지 그 과정과 결과가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제3부에서는 천주교회가 박해라는 ‘어둠의 시기’를 지나 합법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의 역사를 다룬다. 마지막 제4부에서는 1911년 이후 조선 천주교회가 확장, 분할되는 과정과 메리놀 외방전교회와 같은 새로운 선교회들이 조선에 진출하여 어떤 활동을 하였는지를 담고 있다.
고난 속에서도
치우치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의 모습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가 한국학 개론서로써 아직 한국에 관한 정보가 빈약하였던 19세기 후반 서구 사회에 한국을 알리는 데 크게 이바지한 것처럼 이 책 또한 서문과 본문 곳곳에 조선 사회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들어 있어 20세기 초반 한국에 진출하려는 서구 사회에 다양한 정보를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서문에서 환경, 백성, 언어, 사회 계급, 가족 등 9개 항목으로 나누어 조선 사회와 민족, 문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인종적 특징, 특산물부터 말과 글을 다르게 쓰는 이유와 단군신화까지 그 묘사에 대해서는 우월감이나 열등에 대한 조롱 따위 없이 최대한 치우치지 않은 시선으로 설명한 것이 단연 눈에 띈다.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도 조선에 대한 애정을 갖고 최대한 객관적인 눈으로 그 시대의 모습을 묘사하려 애썼다는 점이 놀랍다.
“오랫동안 중국에 예속되었던 조선은 항상 숭문(崇文)을 표방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학식 배양은 언제나 중국 방식을 모방했을 뿐, 국가적 특징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였다. 게다가 한글 자모의 창제 이후에도 교본이나 공문서는 계속해서 한글이 아닌 한자로 작성되었다. 언문책은 여자들이나 혹은 한자를 모르는 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예전에 조선의 선비는 한글을 모른다 하는 것이 오히려 자랑이었다. 어렵기 그지없는 한자를 안다는 자부심에 사로잡힌 선비로서는 음소 문자이면서 또한 그 조합이 너무 간단한 한글이 별로 탐탁지 않게 느껴졌던 것은 아닐까?”
뿐만 아니라 조선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력도 주목할 만하다. 훌륭한 문자 한글을 가졌음에도 조선의 선비들이 그것을 쓰지 않으려 하는 이유, 조선 양반의 폐해와 조선 가족 구성원 내에서 여성의 지위까지 조선 사회를 면밀하게 또 오랜 기간 들여다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사실들이 나열되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애정 어린 묘사는 딱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독립운동의 편에 선 개신교와는 달리 총독부에 협력했던 조선의 천주교는 당시의 상황을 매우 일제에 유리하게 서술하고 있다. 씁쓸한 역사의 단면이다.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조선 시대 각종 종교의 청사진
당시 조선의 사회상이나 생활상, 박해 당사자가 바라본 박해의 시기 또한 중요한 정보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 또한 달레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에서도 설명하고 있으므로 이 책의 독보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달레 신부가 기록하지 않았던 1874년 이후 조선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조선 시대 각종 종교의 현황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러므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책의 결론이다. 이곳에서 조선 천주교에 위협이 되는 장애 요인에 대한 설명으로 당시 조선에 어떤 종교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는지 그 현황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총독부의 비호를 받는 불교와 신도(神道), 그리고 유교, 천도교, 시천교, 단군교 등을 언급함으로써 조선 후기 혼란이 가중되던 시기에 민초들이 어떤 종교에 의지했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의 백성이 가진 종교적 특질에 대한 설명도 있다. 특히나 개신교의 교세는 감리교·장로교·회중교회주의·재림교·안식교·구세군·성공회 등 당시 조선에서 활동하던 종파를 언급하고 1921년과 1923년의 신자 숫자를 도표로 만들어 한 자릿수까지 정확히 명시되어 있으므로 천주교를 제외한 종교사로서도 가치가 있음이 틀림없다.
끝으로 본문에 담긴 사진 34점에는 성당이 없던 시절 공소의 모습과 명동대성당, 용산 신학교와 같은 종교 시설의 초기 모습도 담겨 있어 한국 천주교회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들이 본 우리(Korean Heritage Books) 총서
“총천연색으로 만나는 신선한 나라 조선”
“외국인들이 조선에 대해 남긴 기록이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게 하고, 현재 우리의 위상을 점검하게 하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이정표를 찾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외국인이 바라본 우리의 전근대 및 근대의 모습은 우리의 과거를 비춰주는 거울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미래를 위한 이정표 역할도 해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명지대-LG연암문고가 소장하고 있는 고서와 문서에서 한국문학번역원이 엄선해 출간해온 『그들이 본 우리』 총서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 원장 「발간사」 중에서
『그들이 본 우리』 총서는 명지대-LG연암문고가 수집·소장하고 있는 자료 중에서 서양인이 남긴 조선의 기록만을 엄선하여 2008년부터 출간해온 국내 유일의 총서다. 발간·미발간본 포함 국내 다른 기관에 존재하지 않는 유일본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으며 일부는 지금까지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자료도 있다. 이런 희귀본들이 국내에서 빛을 보게 되어 동북아 지역과 관련된 인문·사회·과학 분야 및 한국학 전반에 걸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단 한 종밖에 없는 도서를 찾아 전 세계 고서점을 뒤져 가격에 상관없이 수집했던 노력이 이제 결실을 맺어 우리 문화와 학문의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작가 소개
저자 : 파리 외방전교회
이 책은 1924년 홍콩에 소재한 파리 외방전교회 인쇄소 발간으로 되어 있을 뿐, 그 저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파리 외방전교회는 1658년 아시아 지역에서의 포교를 위해 프랑스에 설립된 해외 전도단체로 1831년 바르텔레미 브뤼기에르 주교를 조선 대목구에 파견하면서 조선에서의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전교회 소속으로 서울 대목구 보좌주교였던 드브레 신부가 이 책의 저자라고 보는 시각도 있으나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역자 : 김승욱
홍익대학교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부르고뉴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남도 끝자락에 터를 잡고 번역을 일삼아 지내는 중이다.
▣ 주요 목차
발간사 ‘그들이 본 우리’?상호 교류와 소통을 위한 실측 작업
서문?나라와 백성
땅과 산물 | 환경 | 백성 | 언어 | 사회 계급 | 가족 | 국왕과 정부 | 종교 | 조선 민족의 기원
제1부: 그리스도교의 조선 유입과 최초의 박해들(1784~1831)
16세기 일본의 침입 | 조선 최초의 천주교 입교자들(18세기) | 가성직제도의 수립 | 중국인 신부 주문모 야고보의 입국과 순교 | 수많은 그리스도교인의 순교 | 척사윤음(1802년 1월 25일) | 30년간 선교사가 없었던 조선 교회
제2부: 가혹한 박해와 수많은 순교자
제1장: 조선 대목구의 설정(1831), 1839년과 1846년의 박해
초대 조선 대목구장 브뤼기에르 몬시뇰 | 모방 신부의 조선 입국 | 샤스탕 신부의 조선 입국 | 제2대 조선 대목구장 앵베르 몬시뇰 | 1839년의 박해 | 앵베르 주교의 체포 |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의 체포 | 세 선교사의 순교 | 척사윤음(1839년 11월 24일) | 제3대 조선 대목구장 페레올 몬시뇰 | 최초의 조선인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 김대건 신부의 순교
제2장: 선교사들의 활동(1847~1866)
페레올 주교의 죽음(1853) | 제4대 조선 대목구장 베르뇌 몬시뇰(1855) | 보좌주교로 성성된 다블뤼 몬시뇰(1856) | 보람과 시련의 시기(1857~1863) | 조선 국왕의 죽음과 궁정 혁명 | 신임 선교사 4인의 도착 | 러시아와 조선 | 박해가 일어나다 | 베르뇌 주교의 체포 | 브르트니에르, 볼리외, 도리 신부와 승지 남종삼의 체포 | 추국청을 열고 국문을 행하다 | 베르뇌 주교와 그 동료들의 순교 |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의 체포와 순교 | 다블뤼 주교 및 오메트르 신부와 위앵 신부의 체포 | 다블뤼 주교와 그 동료들의 순교 | 1866년의 무수한 순교자들 | 세 명의 선교사가 피신하는 데 성공하다 | 프랑스 함대의 조선 원정 | 수년간 박해가 지속되다
제3부: 카타콤바 밖으로 나온 조선 교회, 수확을 시작하다(1867~1911)
제1장: 조선 재입국을 위한 선교사들의 시도(1867~1870)
박해와 신교의 자유 | 이교국의 종교 자유를 위해 외세가 개입하는 것에 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 조선 재입국을 위한 선교사들의 시도와 좌절, 그들의 중국 잔류
제2장: 리델 몬시뇰과 블랑 몬시뇰의 대목구장 재임 시기 그리고 조선과 외국 열강들 간의 조약(1870~1890)
제6대 조선 대목구장 리델 몬시뇰 | 1871년 미국의 조선 원정과 조선 입국을 위한 선교사들의 새로운 시도 | 리델 주교의 조선 입국, 그의 체포와 방면 | 조선어 문전과 사전 | 두 명의 선교사 체포당하다 | 마지막 척사윤음(1881년 6월 12일) | 조선과 외국 열강들 간의 조약 | 제7대 조선 대목구장 블랑 몬시뇰
제3장: 조선 대목구장 뮈텔 몬시뇰, 수확
1890년 조선 교회의 현황 | 제8대 조선 대목구장 뮈텔 몬시뇰 | 1891년의 민란과 1894년의 청일전쟁 | 선교사들의 활동과 복음화의 진척 | 러일전쟁과 일본 보호령이 된 조선 | 서울 베네딕토회 수도원 설립(1909)
제4부: 조선 교회의 조직화와 교구 분할
제1장: 서울 대목구(파리 외방전교회)
뮈텔 몬시뇰의 초대 서울 대목구장 취임과 드망즈 몬시뇰의 성성 | 서울 교구의 신학교 확장 | 천주교인의 이주 | 보통학교 | 더욱 충실한 신앙 생활 | 조선의 일본인 교우들 | 방인 사제들을 위한 라틴어 잡지 | 1914~1918년 전쟁, 개신교의 성장 | 병합 이후의 조선 천주교회와 일본 | 간도에서의 약탈과 소요, 최문식 베드로 신부의 피랍 | 뮈텔 몬시뇰의 주교 성성 30주년(1920) | 원산 대목구의 신설(1920), 서울에서 두 명의 주교가 성성되다(1921) | 1922년 서울 교구 시노드와 성직자들을 위한 새로운 지도서 공포 | 가톨릭 청년회 | 학생 기숙사와 상업학교 건립 노력 | 회장들을 위한 지도서 | 서울 교구 인쇄소 |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 조선 순교자들의 시복 소송 | 서울 대목구의 북서 지역이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에 위임되다 | 1924년 초 서울 대목구의 인원
제2장: 대구 대목구(파리 외방전교회)
조직 활동 | 복음전파 활동 | 1924년 초 대구 대목구의 인원
제3장: 원산 대목구(바바리아?성 오틸리엔 베네딕토회)
성 오틸리엔 베네딕토회의 조선 진출(1909년 2월) | 원산 대목구의 설립 | 조직 및 사업 | 원산 대목구의 인원(1924)
제4장: 평안도 지역(메리놀 외방전교회)
서울 대목구의 북서 지역이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에 위임되다 | 미국 가톨릭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
결론
현재 조선에서 천주교를 전파하는 데 있어서의 장애물 | 조선에서 개신교의 위협 | 덧붙이는 말 | 조선 천주교 현황(1923)
옮긴이 글 | 옮긴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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