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1. 간략한 소개
빚에 대해 우리가 지닌 가장 익숙한 감각은 그것이 지닌 억압적인 측면이다. 학자금 대출, 전세자금 대출, 자동차 대출 등 무수한 빚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우리의 삶을 특정한 방식으로 조형한다. 우리는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때로는 갚지 못해 죄를 짓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끓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를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끈다. ‘어떻게 빚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나 저자는 다소 놀라운 주장을 펼친다. 저자에 따르면 빚짐(indebtedness)은 “집합적 능력의 표현”이며, “연대의 실재계를 나타”낼 뿐 아니라, 심지어는 “일종의 봉기”이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갖고 있던 빚에 대한 생각들을 완전히 뒤집어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이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즉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빚의 지반을 다시 그리고자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빚을 져야 할 것인가?’
2.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한 두 개의 핵심 포인트
1) 어떻게 빚이 속박이 아니라 유대가 될 수 있는가?
2000여년 전 고대 로마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이미 “삶은 누구에게도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누구나 빌려와야 한다”(『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제3권, 968)고 말했다. 종종 우리는 지구에 대해 “후세대에게서 잠시 빌린 것”이라고 말한다. 또는 거꾸로 오늘날 누리는 부와 민주주의를 “이전 세대에게 빚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상적인 용례만 보더라도 “빚”, “부채”, “채무”는 몇 자리의 숫자로 표현되는 것을 넘어선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빚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자에 의하면 빚은 우리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보여 준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상호 의존은 필연적이다. 빚은 “물질 생산을 지속시키는 방식으로, 달리 접근하기 어려운 의존과 공유의 영역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그리고 타인들과 함께 있음을 통해 우리가 세계에 속해 있음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연대의 실재계를 나타낸다.”(101쪽)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빚은 상호협력과 관계가 멀어 보인다. “화폐가 빚짐의 상호적 역학을 타성적이고 엄밀하게 물질적인 교환으로 전환시키기” 때문이다. “화폐가 모든 관계성을 지배”하는 세계에서 빚은 분명 속박이고 억압이다(304쪽).
빚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속박으로 나타나지만, 상호의존의 표현이기도 하다면 우리는 “빚이 있는 곳에, 연대가 있을 것이다”(9쪽)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의 관심사는 우리가 어떻게 “연대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이바지”(10쪽)하는 것으로 빚짐의 물꼬를 돌릴 수 있는지, 어떻게 그러한 정치를 구상할 수 있는지이다.
2) 『부채인간』(라자라토), 『부채, 그 첫 5,000년』(그레이버)과 이 책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이후 부채에 대한 관심은 전례 없이 증가했다. 최근 많은 논란을 일으킨 가계부채 대책 이후 빚은 다시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다. 2011~2012년에는 국내에 소개된 두 권의 책이 ‘부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마우리치오 라자라토의 『부채인간』과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부채, 그 첫 5,000년』이 그것이다. 이 책들은 서구에서도 종종 『빚의 마법』과 함께 언급되곤 한다.
라자라토의 『부채인간』은 “부채”가 신자유주의의 억압 메커니즘에서 핵심이라는 것을 고발했다. 신자유주의에서 부채는 개인의 도덕과 양심을 통제하고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한 노동’에 복무하도록 강요한다. 부채가 현대인의 일반적인 경험이 된 상황에서 ‘우리는 모두 부채인간’이라는 저자의 폭로는 큰 공감을 얻었다. 라자라토는 우리가 부채의 담론, 부채의 도덕에 갇히지 않고 “부채라는 체계에 근본적으로 도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레이버의 『부채, 그 첫 5,000년』은 경제의 역사는 부채의 역사라는 주장을 펼쳤다. 또 부채가 경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정치, 권력다툼, 경쟁, 지배, 약탈과 고대부터 깊은 관련이 있었음을 인류학적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그레이버는 금융위기를 타개할 해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지만 구약성경에 나오는 희년(禧年)의 사례가 역사 속에 언제나 존재했음을 밝혔다.
라자라토가 신자유주의적 부채의 억압적 성격을 폭로하고, 그레이버가 부채의 역사 분석을 통해 부채가 정치권력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면, 디인스트는 빚의 이면에는 인간사회에 본질적인 상호의존이 있다고 말한다. 디인스트 역시 라자라토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이 속박이자 억압으로 드러난다는 점을 인정하며, 그레이버와 마찬가지로 역사 속에서 희년이 혁명적 정치 운동을 고취해 왔다고 썼다. 그렇지만 디인스트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빚을 진다는 것이 갖는 이 양면성이다.
주거지, 교육, 보건 등에 대한 우리의 접근권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휘청인다. 특히 이번 가계부채 대책 사태가 보여 주듯이 우리 삶에 필수적인 부분들의 안전은 점점 더 ‘빚의 정치’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다. 어떤 빚이 우리 삶의 자율성과 행복을 증진할 것이며, 어떤 빚에 우리는 저항해야 하는가? 디인스트의 『빚의 마법』은 이 세계의 모든 빚진 사람들이 이러한 질문에 대해 고민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준다.
3. 상세한 소개
빚의 이면 : 빚은 현대적 연대의 전도된 상이다
우선 저자가 말하는 빚짐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빚짐은 빚과 어떻게 다른가? 저자의 구분에 따르면, 빚(debt)이 “셀 수 있”는 “좁은 경제적 개념”이라면 빚짐은 “현실의 빚[채무]들로 환원될 수 없는 책임과 사회적 귀속 그리고 상호 의존의 차원들을 나타”내는 “보다 넓은 존재론적 개념”이다. 즉 빚짐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들이 형성하는 다양한 협력적 관계들, 상호 유대들, 그리고 그 유대들이 가능하게 만드는 집합적 능력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빚짐은 우리에게 자신의 그러한 생산적, 구성적 힘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보여주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그러한 빚짐과 빚이 구분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을 빌려오면 “이 책은 현재의 빚[채무] 체제가 빚짐이라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차원을 포획하여 그것을 이윤의 동력으로 전환시킨다고 주장한다.”(310쪽) 그러므로 우리가 경험하는 건 빚짐의 상호 유대와 그것의 능력보다는, 채무 체제의 폭력적인 양상이다. 그런데 빚짐이 잘 드러나지 않고 경험되기 어려운 것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그것의 존재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저자가 택하는 방식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경험하는 채무 체제의 이면을 살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그러나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 즉 주거, 보건, 교육과 같은 문제들을 사회적 유대를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빚을 내서 해결한다. 그러나 사실 그건 해결된 문제라기보다는 어쩌면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무거운 짐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분명 채무 체제가 가진 억압적인 면이다.
그런데 우리가 빚을 통해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어쨌든) 해결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별반 소득도 없는 내가 만일 빚을 내서 집을 살 수 있다면, 그 사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이 채무 체제가 보여주는 “현대적 연대의 일종의 전도된 상(像)”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사회의 “총 빚[채무] 수준을, 체계 전체가 원하는 물질적, 상상적, 상징적 자원들로 현재의 힘들을 증대시키는 집합적 능력의 표현”으로 간주한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인류가 협력하여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을 평가하는” “일종의 엑스레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100쪽)
빚짐의 봉기 : 갚지도 못할 빚을 져서는 안 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쯤에서 우려를 표할지도 모른다. 빚을 내서 집을 사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더군다나 가계부채가 1,000조가 넘는 이 나라에서 그것이 경제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장황하게 설명하려 들지 모른다. 또 어떤 사람들은 빚을 내서 집을 사는 사람들의 무분별함을 근엄하게 꾸짖거나, 그러한 구매 행위는 결국 채권자에게 이용당하게 될 뿐이라고 충고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것들이 빚에 대한 기존의 담론들이 설파하는 내용들이다. 그 담론들은 빚의 팽창을 채권자의 사기라는 측면에서만 고찰한다. 그리고 타이른다. 갚지도 못할 빚을 져서는 안 된다고.
여기가, 저자가 기존의 담론들과 결정적으로 갈라서는 지점이다.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소비자 부채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비롯한 가계부채의 팽창은, 방대한 띠의 사람들이 금융 지상낙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시도가 아니라면 무엇이었을까?”(290쪽) 현재 금융 지상낙원에 대한 권리는 오직 자본에게만 있다. 자본은 위로부터 부과되는 신용의 형태를 통해 집합화된 잠재적 부를 포획한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이제 그 어느 때보다, (책임을 지지 않고 투자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소수를 위한 빚 없는 신용과 (선택의 여지없이 위험을 감수하는) 다수를 위한 신용 없는 빚이 존재한다.”(252쪽)
오늘날의 금융자본주의는 자본에게는 이상적인 코뮤니즘이다. 자본의 금고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샘을 누리지 못할 까닭은 무엇인가? 저자는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언급하는 사례를 가져와서 되묻는다. 여기 “72만 달러 가치의 주택에 대해 모기지를 취득한 연소득 1만 4천 달러의 캘리포니아 농장 노동자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그런 주택에 살아서는 안 된다고 프리드먼처럼 콧방귀를 뀌는 대신,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왜 안 돼?’ 어떤 포괄적인 주택 정책도 없고, 신용 회로들이 가로지르는 명백한 불평등을 감안할 때, 왜 농장 노동자의 레버리지가 월스트리트에서 매일 일어나는 거래들보다 더 터무니없다는 것인가?”(291쪽) 빚짐은 그러한 콧방귀에 항의하는, 자본만이 누리는 금융 지상낙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일종의 봉기”(290쪽)다.
우리는 한때 사회적으로 제공되던 것들(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기는 하지만), 즉 앞서 말한 주거·보건·교육과 같은 것들이 빠르게 사적 영역으로 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소득도 늘어나지 않고(올해 최저임금 인상액은 370원이다) 복지제도 역시 열악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 빚을 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러한 빚들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빚들이 표현하는, “정치적 요구들로 재구성될 수 있는, 충족되지 않은 사회적 필요들”(291쪽)을 인식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채무 체제가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방안은 물론 아니다. 이제 우리는 그 필요들을 충족할 수 있는 더 나은 방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
빚짐의 정치학 : 소액신용과 희년
저자는 불평등한 신용 체계와 억압적인 채무 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두 가지 시도들을 검토하는 것으로 급진적 빚짐 정치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첫째는 소액신용(microcredit)이다. 소액신용 기관은 소액 대출을 확장함으로써 개인들의 사회적 활력화를 이끌고 빈곤 가구를 최악의 상황에서 구제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가난하게 만드는 지배적인 조건들을 바꾸지 않는 한에서만 그들을 결핍에서 구할 수 있다”(296쪽)는 점에서 문제로 남는다.
둘째는 희년(Jubilee)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희년은 성경에 따르면, “50년마다 선포되어야 하며, 모든 빚의 탕감, 원 소유주에 대한 주택의 ‘상환’과 토지의 반환, 노예와 종의 방면, 해당 연도 동안 노동의 중지를 요구한다.”(296쪽) 희년은 빚의 면제를 주장함으로써 “일련의 저항들을 결집할 수 있는 긴요한 급진적 요구를 제기”하지만, “이러한 유토피아적 가능성조차 타협될 수 있다.”(298쪽) 저자는 저개발 국가들의 빚 탕감을 주장했던 [희년 2000] 캠페인을 예로 든다. 빚은 실제 면제되긴 했지만, 그 대상은 신자유주의적 처방을 따른 국가로 한정되었다. 그리고 그 캠페인은 그 처방을 따르지 않는 국가들의 정치적 지위는 약화시켰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 시도들에서 긍정적 요소를 뽑아낸다. 저자는 급진적 빚짐 정치의 가능성은 이 두 가지 시도들과 연관된 두 가지 태도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소액신용의 유토피아가 어떻게 경제가 초월론적 권리들이나 신성한 의무들이 없는 보편적인 상호 간 의무로 세워질 수 있을지 상상한다면, 희년의 유토피아는 어떻게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가 집합적 의지의 행동으로 폐기될 수 있는지 상상한다.”(305쪽)
빚짐의 정치는 이 두 가지 태도의 변증법적 종합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사르트르의 말을 빌려온다. “혁명의 목적은 … 모든 사람을 자유롭고 소외되지 않게 하면서 상호 의존하게 하는 것이다.”(306쪽) 그러니까 저자가 우리에게 당부하는 것은 이 두 가지다. 우리는 우리를 구속하고 억압하는 채무 체제를 깨뜨리는 방법뿐 아니라 상호 의존하면서도 자유로운 사회적 유대로서의 빚을 구성하는 방법 또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빚이라는 유대 :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유대로서의 빚을 발명하라!
유대로서의 빚이라는 관점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주거와 보건과 교육은 모든 사람이 누군가에게 빚지고 있는 의무들로 이해되어야 한다.”(291쪽) 주거, 보건, 교육 같은 것은 삶에 필수적이지만 개인이 혼자서 감당하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공통재에 무관심한 금융 체계의 계산에 위임되기에는 너무 중요한 것들”이 계산에 맡겨져 있는 불합리한 상황이 모든 위기를 불러온 것은 아닐까? 보건의료 체계에서 생명보다 이윤이 앞설 때 나타나는 결과를 우리는 메르스를 통해 목격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거, 보건, 교육을 유대로서의 빚짐으로 전환할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또 “연금 제도” 역시 “노동 없는 삶을 대비하려는 집합적 시도들”이다. 그런데 자본과 권력은 점점 더 “돈이 고갈”되어 연금을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살기 위해 기금이 필요한 사람들과 “[미적립] 채무를 줄이려는 사람들 사이에 정치적 의지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저자의 진단에 의하면 “지금까지는 후자 진영이 이기고” 있지만, “신용 체계가 불평등과 소비주의의 잘못된 선택을 가속하는 대신, 일종의 공적 사업으로 또는 더 낫게는 집합적 자립의 제도로 기능”하도록 하는 “급진적 역습”을 수행할 수 있다면 사태는 달라질 것이다.(291~292쪽)
빚의 이면에 ‘연대’가 있다면, 관건은 우리를 억압하는 빚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빚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요점은, 존재하게 될 빚이 공통재(the common good)의 최대한의 발전을 목표로 함으로써 각 개인의 최대한의 발전이 가능하도록 조직되고 구조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사회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 ‘우리’ 모두는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자원들을 지급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강요된 결핍보다는 공유된 풍부함의 원리에 기반한 정치적 프로그램이다.”(7~8쪽)
저자는 빚에 대한 이 책에서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불평등과 빈곤, 부시와 오바마의 국가안보전략(NSS), 프라다 상점의 건축, 록스타 보노의 보도사진, 맑스가 들려준 동화 등이 그것이다. 얼핏 보면 이 주제들은 서로 간의 연관성이나 빚과의 연관성이 커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불평등과 빈곤이 어떻게 현재의 채무 체제를 통해 양산되고 유지되는지, 국가안보전략이 어떻게 막대한 빚을 요구하는지, 프라다 상점이 어떻게 특별한 종류의 빚을 부과하며, 국제 개발 활동가 보노가 어떻게 현재의 채무 체제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는지, 그리고 맑스의 동화 속 장난감들이 어떻게 이행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지 알려준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막대한 금융 의무들에 얽매여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에 따라 마땅히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금융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유대로서의 빚의 발명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이룰 우리란 누구인가에 대해. 어쩌면 세계 도처에서 들려오는 빚의 정치에 대한 소식들은 그러한 고민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추천사
이 놀랍도록 냉철하고 도발적인 작은 책에서 리차드 디인스트의 가장 급진적인 주장은 우리가 너무 많은 빚이 아니라 너무 적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를 지배하는 제도와 권력의 형상에 이르게 된 채무 체제를 거부하고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하지만 어쩌면 더욱 중요한 것은, 또한 우리가 부채를 기본적인 인간 조건으로 인식하고, 우리를 서로에게 결속시킴과 동시에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사회적 유대들을 창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과제의 조합은 흥미로운, 심지어 혁명적인 프로젝트다.
― 마이클 하트 (『들뢰즈 사상의 진화』 저자, 『제국』, 『다중』, 『공통체』의 공저자)
재기 넘치고 쉽게 이해되는 책 … 디인스트는 새롭고 흥분되는 생각을 제시한다 … 빚이 바로 우리를 결속시키고 우리의 사회성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 찰스 무데데, 『스트레인저』
디인스트는 인류가 빚의 황금 타래에 매여 있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실마리를 던져 준다. 우리는, 인간의 삶과 심리상태 그리고 일상적 경험의 구조에서 나타난 커다란 변화가 금융화된 경제의 창출에 연루되어 있다는 점을 이제 막 깨닫고 있다.
― 폴 메이슨 (『탐욕의 종말』의 저자)
나는 일생을 금융시장을 연구하는 데 바치고 있다. 나는 이따금씩 그 모든 금융시장이 무엇을 ‘의미할까’에 대해 생각한다. 디인스트는 이 책에서 아주 경탄할 만한 방식으로 그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보너스로 이 책은 혐오스러운 보노를 낱낱이 해부한다.
― 더그 헨우드 (『월스트리트 누구를 위해 어떻게 움직이나』의 저자)
▣ 작가 소개
저자 : 리차드 디인스트 Richard Dienst
미국 뉴저지 주립대학교(러트거스 대학) 영문학 부교수. 듀크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비판 이론과 문학 이론, 문화연구이다. 현대 이론, 시각 미디어, 브레히트, 고다르에 대한 여러 에세이를 온·오프라인 저널에 썼다. 논문으로 저널 『월드 픽쳐』(World Picture) 3권(2009 여름)에 실린 「세계적 규모에서의 행복」중에서(Happiness on a World Scale)과 『시각 문화 저널』(Journal of Visual Culture) 5권(2006. 4)에 실린 「파국과 환유」중에서(Catastrophe and Metonymy) 등이 있다. 저서로는 『실시간의 정지된 삶 : 텔레비전 이후의 이론』(Still Life in Real Time : Theory After Television, Duke University Press, 1994)과 『빚의 마법 : 화폐지배의 종말과 유대로서의 빚』(갈무리, 2015)가 있으며, 『세계상 읽기 : 국제 문화연구를 위하여』(Reading the Shape of the World : Toward an International Cultural Studies, Westview Press, 1996)를 공동편집했다. 이미지 제작과 문화 행동주의의 새로운 실천을 목표로 하는 시각 미디어 이론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이며, 두 개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http://bondsofdebt.wordpr... ess.com, http://thinkingthroughimages.wordpress.com).
역자 : 권범철
[예술과 도시사회연구소] 연구원. 도시사회학을 전공했고, 메트로폴리스의 공간과 예술에 대한 연구와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Art of Squat ― 점거 매뉴얼북』(오아시스프로젝트, 2007)을 함께 편집했으며, 『텔레코뮤니스트 선언』(갈무리, 2014)을 옮겼다.
▣ 주요 목차
한국어판 서문 6
서론 우리가 빚진 모든 것 13
1 일생에 단 한 번 23
2 불평등, 빈곤, 빚짐 64
3 영구 평화의 경제적 귀결 112
4 보노에게 보내는 편지 156
5 빚짐의 공간 198
6 빚의 마법, 또는 아이처럼 맑스 읽기 228
7 빚짐의 변증법 257
결론 누가 희년을 두려워하는가? 283
감사의 말 308
옮긴이 후기 309
인명 찾아보기 318
용어 찾아보기 321
1. 간략한 소개
빚에 대해 우리가 지닌 가장 익숙한 감각은 그것이 지닌 억압적인 측면이다. 학자금 대출, 전세자금 대출, 자동차 대출 등 무수한 빚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우리의 삶을 특정한 방식으로 조형한다. 우리는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때로는 갚지 못해 죄를 짓거나, 심지어는 목숨을 끓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를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끈다. ‘어떻게 빚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러나 저자는 다소 놀라운 주장을 펼친다. 저자에 따르면 빚짐(indebtedness)은 “집합적 능력의 표현”이며, “연대의 실재계를 나타”낼 뿐 아니라, 심지어는 “일종의 봉기”이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갖고 있던 빚에 대한 생각들을 완전히 뒤집어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이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즉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빚의 지반을 다시 그리고자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빚을 져야 할 것인가?’
2.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한 두 개의 핵심 포인트
1) 어떻게 빚이 속박이 아니라 유대가 될 수 있는가?
2000여년 전 고대 로마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이미 “삶은 누구에게도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누구나 빌려와야 한다”(『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제3권, 968)고 말했다. 종종 우리는 지구에 대해 “후세대에게서 잠시 빌린 것”이라고 말한다. 또는 거꾸로 오늘날 누리는 부와 민주주의를 “이전 세대에게 빚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상적인 용례만 보더라도 “빚”, “부채”, “채무”는 몇 자리의 숫자로 표현되는 것을 넘어선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빚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자에 의하면 빚은 우리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보여 준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상호 의존은 필연적이다. 빚은 “물질 생산을 지속시키는 방식으로, 달리 접근하기 어려운 의존과 공유의 영역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그리고 타인들과 함께 있음을 통해 우리가 세계에 속해 있음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연대의 실재계를 나타낸다.”(101쪽)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빚은 상호협력과 관계가 멀어 보인다. “화폐가 빚짐의 상호적 역학을 타성적이고 엄밀하게 물질적인 교환으로 전환시키기” 때문이다. “화폐가 모든 관계성을 지배”하는 세계에서 빚은 분명 속박이고 억압이다(304쪽).
빚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속박으로 나타나지만, 상호의존의 표현이기도 하다면 우리는 “빚이 있는 곳에, 연대가 있을 것이다”(9쪽)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의 관심사는 우리가 어떻게 “연대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이바지”(10쪽)하는 것으로 빚짐의 물꼬를 돌릴 수 있는지, 어떻게 그러한 정치를 구상할 수 있는지이다.
2) 『부채인간』(라자라토), 『부채, 그 첫 5,000년』(그레이버)과 이 책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이후 부채에 대한 관심은 전례 없이 증가했다. 최근 많은 논란을 일으킨 가계부채 대책 이후 빚은 다시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다. 2011~2012년에는 국내에 소개된 두 권의 책이 ‘부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마우리치오 라자라토의 『부채인간』과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부채, 그 첫 5,000년』이 그것이다. 이 책들은 서구에서도 종종 『빚의 마법』과 함께 언급되곤 한다.
라자라토의 『부채인간』은 “부채”가 신자유주의의 억압 메커니즘에서 핵심이라는 것을 고발했다. 신자유주의에서 부채는 개인의 도덕과 양심을 통제하고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한 노동’에 복무하도록 강요한다. 부채가 현대인의 일반적인 경험이 된 상황에서 ‘우리는 모두 부채인간’이라는 저자의 폭로는 큰 공감을 얻었다. 라자라토는 우리가 부채의 담론, 부채의 도덕에 갇히지 않고 “부채라는 체계에 근본적으로 도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레이버의 『부채, 그 첫 5,000년』은 경제의 역사는 부채의 역사라는 주장을 펼쳤다. 또 부채가 경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정치, 권력다툼, 경쟁, 지배, 약탈과 고대부터 깊은 관련이 있었음을 인류학적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그레이버는 금융위기를 타개할 해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지만 구약성경에 나오는 희년(禧年)의 사례가 역사 속에 언제나 존재했음을 밝혔다.
라자라토가 신자유주의적 부채의 억압적 성격을 폭로하고, 그레이버가 부채의 역사 분석을 통해 부채가 정치권력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성격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면, 디인스트는 빚의 이면에는 인간사회에 본질적인 상호의존이 있다고 말한다. 디인스트 역시 라자라토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빚이 속박이자 억압으로 드러난다는 점을 인정하며, 그레이버와 마찬가지로 역사 속에서 희년이 혁명적 정치 운동을 고취해 왔다고 썼다. 그렇지만 디인스트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빚을 진다는 것이 갖는 이 양면성이다.
주거지, 교육, 보건 등에 대한 우리의 접근권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휘청인다. 특히 이번 가계부채 대책 사태가 보여 주듯이 우리 삶에 필수적인 부분들의 안전은 점점 더 ‘빚의 정치’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다. 어떤 빚이 우리 삶의 자율성과 행복을 증진할 것이며, 어떤 빚에 우리는 저항해야 하는가? 디인스트의 『빚의 마법』은 이 세계의 모든 빚진 사람들이 이러한 질문에 대해 고민을 시작할 수 있게 해 준다.
3. 상세한 소개
빚의 이면 : 빚은 현대적 연대의 전도된 상이다
우선 저자가 말하는 빚짐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빚짐은 빚과 어떻게 다른가? 저자의 구분에 따르면, 빚(debt)이 “셀 수 있”는 “좁은 경제적 개념”이라면 빚짐은 “현실의 빚[채무]들로 환원될 수 없는 책임과 사회적 귀속 그리고 상호 의존의 차원들을 나타”내는 “보다 넓은 존재론적 개념”이다. 즉 빚짐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들이 형성하는 다양한 협력적 관계들, 상호 유대들, 그리고 그 유대들이 가능하게 만드는 집합적 능력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빚짐은 우리에게 자신의 그러한 생산적, 구성적 힘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보여주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그러한 빚짐과 빚이 구분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을 빌려오면 “이 책은 현재의 빚[채무] 체제가 빚짐이라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차원을 포획하여 그것을 이윤의 동력으로 전환시킨다고 주장한다.”(310쪽) 그러므로 우리가 경험하는 건 빚짐의 상호 유대와 그것의 능력보다는, 채무 체제의 폭력적인 양상이다. 그런데 빚짐이 잘 드러나지 않고 경험되기 어려운 것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그것의 존재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저자가 택하는 방식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경험하는 채무 체제의 이면을 살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그러나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 즉 주거, 보건, 교육과 같은 문제들을 사회적 유대를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빚을 내서 해결한다. 그러나 사실 그건 해결된 문제라기보다는 어쩌면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무거운 짐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분명 채무 체제가 가진 억압적인 면이다.
그런데 우리가 빚을 통해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어쨌든) 해결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별반 소득도 없는 내가 만일 빚을 내서 집을 살 수 있다면, 그 사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이 채무 체제가 보여주는 “현대적 연대의 일종의 전도된 상(像)”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사회의 “총 빚[채무] 수준을, 체계 전체가 원하는 물질적, 상상적, 상징적 자원들로 현재의 힘들을 증대시키는 집합적 능력의 표현”으로 간주한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인류가 협력하여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을 평가하는” “일종의 엑스레이”를 제공한다는 것이다.(100쪽)
빚짐의 봉기 : 갚지도 못할 빚을 져서는 안 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쯤에서 우려를 표할지도 모른다. 빚을 내서 집을 사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더군다나 가계부채가 1,000조가 넘는 이 나라에서 그것이 경제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장황하게 설명하려 들지 모른다. 또 어떤 사람들은 빚을 내서 집을 사는 사람들의 무분별함을 근엄하게 꾸짖거나, 그러한 구매 행위는 결국 채권자에게 이용당하게 될 뿐이라고 충고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것들이 빚에 대한 기존의 담론들이 설파하는 내용들이다. 그 담론들은 빚의 팽창을 채권자의 사기라는 측면에서만 고찰한다. 그리고 타이른다. 갚지도 못할 빚을 져서는 안 된다고.
여기가, 저자가 기존의 담론들과 결정적으로 갈라서는 지점이다.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소비자 부채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비롯한 가계부채의 팽창은, 방대한 띠의 사람들이 금융 지상낙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시도가 아니라면 무엇이었을까?”(290쪽) 현재 금융 지상낙원에 대한 권리는 오직 자본에게만 있다. 자본은 위로부터 부과되는 신용의 형태를 통해 집합화된 잠재적 부를 포획한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이제 그 어느 때보다, (책임을 지지 않고 투자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소수를 위한 빚 없는 신용과 (선택의 여지없이 위험을 감수하는) 다수를 위한 신용 없는 빚이 존재한다.”(252쪽)
오늘날의 금융자본주의는 자본에게는 이상적인 코뮤니즘이다. 자본의 금고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샘을 누리지 못할 까닭은 무엇인가? 저자는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언급하는 사례를 가져와서 되묻는다. 여기 “72만 달러 가치의 주택에 대해 모기지를 취득한 연소득 1만 4천 달러의 캘리포니아 농장 노동자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그런 주택에 살아서는 안 된다고 프리드먼처럼 콧방귀를 뀌는 대신,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왜 안 돼?’ 어떤 포괄적인 주택 정책도 없고, 신용 회로들이 가로지르는 명백한 불평등을 감안할 때, 왜 농장 노동자의 레버리지가 월스트리트에서 매일 일어나는 거래들보다 더 터무니없다는 것인가?”(291쪽) 빚짐은 그러한 콧방귀에 항의하는, 자본만이 누리는 금융 지상낙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일종의 봉기”(290쪽)다.
우리는 한때 사회적으로 제공되던 것들(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기는 하지만), 즉 앞서 말한 주거·보건·교육과 같은 것들이 빠르게 사적 영역으로 넘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소득도 늘어나지 않고(올해 최저임금 인상액은 370원이다) 복지제도 역시 열악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 빚을 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러한 빚들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빚들이 표현하는, “정치적 요구들로 재구성될 수 있는, 충족되지 않은 사회적 필요들”(291쪽)을 인식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채무 체제가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방안은 물론 아니다. 이제 우리는 그 필요들을 충족할 수 있는 더 나은 방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
빚짐의 정치학 : 소액신용과 희년
저자는 불평등한 신용 체계와 억압적인 채무 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두 가지 시도들을 검토하는 것으로 급진적 빚짐 정치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첫째는 소액신용(microcredit)이다. 소액신용 기관은 소액 대출을 확장함으로써 개인들의 사회적 활력화를 이끌고 빈곤 가구를 최악의 상황에서 구제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가난하게 만드는 지배적인 조건들을 바꾸지 않는 한에서만 그들을 결핍에서 구할 수 있다”(296쪽)는 점에서 문제로 남는다.
둘째는 희년(Jubilee)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희년은 성경에 따르면, “50년마다 선포되어야 하며, 모든 빚의 탕감, 원 소유주에 대한 주택의 ‘상환’과 토지의 반환, 노예와 종의 방면, 해당 연도 동안 노동의 중지를 요구한다.”(296쪽) 희년은 빚의 면제를 주장함으로써 “일련의 저항들을 결집할 수 있는 긴요한 급진적 요구를 제기”하지만, “이러한 유토피아적 가능성조차 타협될 수 있다.”(298쪽) 저자는 저개발 국가들의 빚 탕감을 주장했던 [희년 2000] 캠페인을 예로 든다. 빚은 실제 면제되긴 했지만, 그 대상은 신자유주의적 처방을 따른 국가로 한정되었다. 그리고 그 캠페인은 그 처방을 따르지 않는 국가들의 정치적 지위는 약화시켰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 시도들에서 긍정적 요소를 뽑아낸다. 저자는 급진적 빚짐 정치의 가능성은 이 두 가지 시도들과 연관된 두 가지 태도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소액신용의 유토피아가 어떻게 경제가 초월론적 권리들이나 신성한 의무들이 없는 보편적인 상호 간 의무로 세워질 수 있을지 상상한다면, 희년의 유토피아는 어떻게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가 집합적 의지의 행동으로 폐기될 수 있는지 상상한다.”(305쪽)
빚짐의 정치는 이 두 가지 태도의 변증법적 종합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사르트르의 말을 빌려온다. “혁명의 목적은 … 모든 사람을 자유롭고 소외되지 않게 하면서 상호 의존하게 하는 것이다.”(306쪽) 그러니까 저자가 우리에게 당부하는 것은 이 두 가지다. 우리는 우리를 구속하고 억압하는 채무 체제를 깨뜨리는 방법뿐 아니라 상호 의존하면서도 자유로운 사회적 유대로서의 빚을 구성하는 방법 또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빚이라는 유대 :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유대로서의 빚을 발명하라!
유대로서의 빚이라는 관점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주거와 보건과 교육은 모든 사람이 누군가에게 빚지고 있는 의무들로 이해되어야 한다.”(291쪽) 주거, 보건, 교육 같은 것은 삶에 필수적이지만 개인이 혼자서 감당하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공통재에 무관심한 금융 체계의 계산에 위임되기에는 너무 중요한 것들”이 계산에 맡겨져 있는 불합리한 상황이 모든 위기를 불러온 것은 아닐까? 보건의료 체계에서 생명보다 이윤이 앞설 때 나타나는 결과를 우리는 메르스를 통해 목격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거, 보건, 교육을 유대로서의 빚짐으로 전환할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또 “연금 제도” 역시 “노동 없는 삶을 대비하려는 집합적 시도들”이다. 그런데 자본과 권력은 점점 더 “돈이 고갈”되어 연금을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살기 위해 기금이 필요한 사람들과 “[미적립] 채무를 줄이려는 사람들 사이에 정치적 의지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저자의 진단에 의하면 “지금까지는 후자 진영이 이기고” 있지만, “신용 체계가 불평등과 소비주의의 잘못된 선택을 가속하는 대신, 일종의 공적 사업으로 또는 더 낫게는 집합적 자립의 제도로 기능”하도록 하는 “급진적 역습”을 수행할 수 있다면 사태는 달라질 것이다.(291~292쪽)
빚의 이면에 ‘연대’가 있다면, 관건은 우리를 억압하는 빚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빚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요점은, 존재하게 될 빚이 공통재(the common good)의 최대한의 발전을 목표로 함으로써 각 개인의 최대한의 발전이 가능하도록 조직되고 구조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사회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 ‘우리’ 모두는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자원들을 지급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강요된 결핍보다는 공유된 풍부함의 원리에 기반한 정치적 프로그램이다.”(7~8쪽)
저자는 빚에 대한 이 책에서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불평등과 빈곤, 부시와 오바마의 국가안보전략(NSS), 프라다 상점의 건축, 록스타 보노의 보도사진, 맑스가 들려준 동화 등이 그것이다. 얼핏 보면 이 주제들은 서로 간의 연관성이나 빚과의 연관성이 커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불평등과 빈곤이 어떻게 현재의 채무 체제를 통해 양산되고 유지되는지, 국가안보전략이 어떻게 막대한 빚을 요구하는지, 프라다 상점이 어떻게 특별한 종류의 빚을 부과하며, 국제 개발 활동가 보노가 어떻게 현재의 채무 체제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는지, 그리고 맑스의 동화 속 장난감들이 어떻게 이행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지 알려준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막대한 금융 의무들에 얽매여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에 따라 마땅히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금융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유대로서의 빚의 발명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이룰 우리란 누구인가에 대해. 어쩌면 세계 도처에서 들려오는 빚의 정치에 대한 소식들은 그러한 고민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추천사
이 놀랍도록 냉철하고 도발적인 작은 책에서 리차드 디인스트의 가장 급진적인 주장은 우리가 너무 많은 빚이 아니라 너무 적은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를 지배하는 제도와 권력의 형상에 이르게 된 채무 체제를 거부하고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하지만 어쩌면 더욱 중요한 것은, 또한 우리가 부채를 기본적인 인간 조건으로 인식하고, 우리를 서로에게 결속시킴과 동시에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사회적 유대들을 창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과제의 조합은 흥미로운, 심지어 혁명적인 프로젝트다.
― 마이클 하트 (『들뢰즈 사상의 진화』 저자, 『제국』, 『다중』, 『공통체』의 공저자)
재기 넘치고 쉽게 이해되는 책 … 디인스트는 새롭고 흥분되는 생각을 제시한다 … 빚이 바로 우리를 결속시키고 우리의 사회성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 찰스 무데데, 『스트레인저』
디인스트는 인류가 빚의 황금 타래에 매여 있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실마리를 던져 준다. 우리는, 인간의 삶과 심리상태 그리고 일상적 경험의 구조에서 나타난 커다란 변화가 금융화된 경제의 창출에 연루되어 있다는 점을 이제 막 깨닫고 있다.
― 폴 메이슨 (『탐욕의 종말』의 저자)
나는 일생을 금융시장을 연구하는 데 바치고 있다. 나는 이따금씩 그 모든 금융시장이 무엇을 ‘의미할까’에 대해 생각한다. 디인스트는 이 책에서 아주 경탄할 만한 방식으로 그 문제를 다룬다. 그리고 보너스로 이 책은 혐오스러운 보노를 낱낱이 해부한다.
― 더그 헨우드 (『월스트리트 누구를 위해 어떻게 움직이나』의 저자)
▣ 작가 소개
저자 : 리차드 디인스트 Richard Dienst
미국 뉴저지 주립대학교(러트거스 대학) 영문학 부교수. 듀크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비판 이론과 문학 이론, 문화연구이다. 현대 이론, 시각 미디어, 브레히트, 고다르에 대한 여러 에세이를 온·오프라인 저널에 썼다. 논문으로 저널 『월드 픽쳐』(World Picture) 3권(2009 여름)에 실린 「세계적 규모에서의 행복」중에서(Happiness on a World Scale)과 『시각 문화 저널』(Journal of Visual Culture) 5권(2006. 4)에 실린 「파국과 환유」중에서(Catastrophe and Metonymy) 등이 있다. 저서로는 『실시간의 정지된 삶 : 텔레비전 이후의 이론』(Still Life in Real Time : Theory After Television, Duke University Press, 1994)과 『빚의 마법 : 화폐지배의 종말과 유대로서의 빚』(갈무리, 2015)가 있으며, 『세계상 읽기 : 국제 문화연구를 위하여』(Reading the Shape of the World : Toward an International Cultural Studies, Westview Press, 1996)를 공동편집했다. 이미지 제작과 문화 행동주의의 새로운 실천을 목표로 하는 시각 미디어 이론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이며, 두 개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http://bondsofdebt.wordpr... ess.com, http://thinkingthroughimages.wordpress.com).
역자 : 권범철
[예술과 도시사회연구소] 연구원. 도시사회학을 전공했고, 메트로폴리스의 공간과 예술에 대한 연구와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Art of Squat ― 점거 매뉴얼북』(오아시스프로젝트, 2007)을 함께 편집했으며, 『텔레코뮤니스트 선언』(갈무리, 2014)을 옮겼다.
▣ 주요 목차
한국어판 서문 6
서론 우리가 빚진 모든 것 13
1 일생에 단 한 번 23
2 불평등, 빈곤, 빚짐 64
3 영구 평화의 경제적 귀결 112
4 보노에게 보내는 편지 156
5 빚짐의 공간 198
6 빚의 마법, 또는 아이처럼 맑스 읽기 228
7 빚짐의 변증법 257
결론 누가 희년을 두려워하는가? 283
감사의 말 308
옮긴이 후기 309
인명 찾아보기 318
용어 찾아보기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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