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잃어버린 사물의 신비를 일깨우고 세계를 팽창시키는 힘
숨 쉬라: 너 보이지 않는 시여! 완성하라
우리 자신의 본질과 우주의
교환을. 너 평형추여
거기서 내가 운율적으로 생겨나는.
단 하나의 파도―움직임, 그게
점차 바다가 된 것이 나인;
너, 우리의 모든 바다 중에 제일 포용적이니―
공간에서 자라난 따뜻함.
공간의 얼마나 많은 영역이 이미
내 속에 있는가. 내 헤매는 아들 같은
바람이 있다.
공기여, 너는 내가 흡수되었던 장소들로 가득 찬 나를 아는가?
너는 부드러운 나무껍질,
둥�E, 그리고 내 말들의 잎이니.
-「2부 Ⅰ」전문
『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릴케 시 여행』에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릴케의 시 ?가을날?을 비롯해, 평소 정현종 시인이 좋아하고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릴케 시 20편이 담겨 있다. 대개 시인의 눈과 가슴으로 감탄하고 감동한 시편들이다. 또한 시 여행을 하는 데 있어 좀 더 깊이 있고, 분명한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는 해설은 시인의 50년 시력 인생의 농축된 정수라 할 만하다. 정현종 시인은 오래전 처음 릴케의 작품을 읽었을 때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숨결이 돌풍처럼 불어왔노라고 그 감동을 소회한다. 그리고 그 감동은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정현종 시인은 “숨을 통해 우주나 만물과 내통하며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정현종 시인에게 숨이란 생명, 우주, 자연, 공기, 바람 같은 말들과 동의어이다. 시 쓰기는 곧 숨쉬기에 다름 아닌 것이다. 정현종 시인은 릴케의 시에서 한 우주가 숨결로 축소되는 것을 느낀다. 작은 숨결이 우주를 삼켜버리는 신비로운 감동, 그것을 정현종 시인은 희귀한 돌풍이라고 표현한다.
‘오렌지를 춤추라’(ⅩⅤ)는 한 구절 속에서도 정현종 시인은 오렌지의 맛과 향과 빛깔과 그것들이 열려 있는 공간이 그야말로 즙처럼 응축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 언어의 즙은 시인이 온몸으로 짜낸 것이다. 춤춘다는 표현은 사물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정현종 시인은 사과밭에 가서 사과를 춤춘 적이 있고, 사과를 좋아하는 나머지 아침마다 사과를 춤춘다고 한다. 릴케라는 대시인 앞에서 정현종 시인은 어린아이처럼 해맑고 순수하며 겸손하다. 그는 릴케의 시를 감탄하고 찬양하는 중에 자신의 여린 마음을 드러낸다. 릴케의 시들을 보고 있는데 정현종 시인의 시가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은 릴케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기꺼이 독자들을 안내한다. 독자들은 낯설고 광활한 신비로움과 더불어 릴케의 시가 한없이 깊어지고 풍요로워지는 듯한 경이로운 경험을 맛보게 될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무척 외롭지만, 매 순간을 신성하게 할 만큼
외롭지는 못합니다.
나는 세상에서 너무 작지만
영리하고 드러나지 않게
당신 앞에 꼭 무슨 물건처럼 놓여 있을 만큼
그렇게 작지는 못합니다.
나는 내 자신의 의지를 원하며, 다만 내 의지와
함께하기를 원합니다―그게 행동을 향해 움직일 때,
그리고 침묵 속에서, 때로 시간이 좀체 흐르지 않아
뭔가 가까이 오고 있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아는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 있겠어요.
나는 당신의 온몸을 위한 거울이고 싶으며,
또한 당신의 무겁고 흔들리는 영상을 지탱하지
못할 만큼 눈멀거나 늙고 싶지 않습니다.
-「7」중에서
정현종 시인에 따르면 릴케는 모든 비범한 시인이 그렇듯이, 대부분 범상하게 넘기는 일이나 대상으로부터 충격과 영감을 받는다. 그는 듣는 시인이다. 듣되 비범하게 깊이 듣는다. 그 깊이는 광활하다. 그리하여 사물은 그의 귀 속에서 경이로운 탄생을 한다. 릴케는 오감으로 느낀 것을 즉시 내면화하는 시인이다. 그의 교감은 깊고 한없이 광활하다. 그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사물의 신비는 살아나고 세계는 무한을 향해 열린다. 릴케에게 세계는 바깥이 아닌 것이다. 릴케는 ‘전체’가 ‘새로운 것’보다 무한히 더 새롭다고 말한다. 마음이 늘 무한을 듣고 보는 영혼, 매인 데 없이 자유로운 영혼, 그러므로 항상 새로움 속에 있는 영혼, ‘우주적인 나’의 깊이로부터 스스로 생명력을 얻는 영혼…… 시적인 영혼. 정현종 시인이 말하는 이 영혼이 바로 릴케이다.
고독한 영혼이 탄생시킨 위대한 내면의 세계
정현종 시인은 신이 이 세상(바깥세상)을 창조했다면 릴케는 내면세계를 창조했다고 말한다. 한껏 제약이 없는 이 영혼의 작품을 읽으면 울림의 끝없는 여운 속에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진정한 교감을 나눌 만한 내면의 풍요로움이 없는 황량한 시대야말로 영혼 없는 시대가 아닐까? 릴케의 시는 고독이 필요한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황량하고 적막한 황무지에서는 사과나무가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메마른 텃밭을 잘 가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외면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내면의 텃밭을 가꾸어 나갈 수 있는 힘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 슬픔, 열망, 아름다움에 대해 스쳐 지나가는 생각과 느낌을 우리는 망설임 없이 가꾸어 나가야 한다. 즉시 내면화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필요성에 의해 솟아오른 감정들은 그것이 어둠의 공간이라 하더라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영혼과 천사는 얼마나 비현실적인 단어인가. 그러나 우리는 안다. 행복이란 감정은 영혼처럼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고, 천사처럼 아름다운 것이지만 우리를 늘 꿈꾸게 만드는 것임을. 릴케는 천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천사는) 보이지 않는 것 속에서 실재의 보다 높은 차원에 대한 인지를 보장”하는 존재이다. 여기서 말하는 실재의 보다 높은 차원에 대해서 정현종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 말은 인간의 삶과 예술에 관해 우리가 그동안 해 온 규정들, 그 제한들을 뿌리부터 흔들면서 우리로 하여금 생각과 느낌의 궁핍에서 헤어날 수 있는 계기를 벽력같이 제공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무한 쪽으로 열리게 만든다. 그러한 기미와 눈짓을 느끼는 영혼이야말로 스스로 천사이다. 얼마나 깊고 높고 드넓은 울림을 갖고 있는가? 시인은 모름지기 그러한 울림의 끊이지 않는 메아리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릴케의 시들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고 계속 살아서 움직이며 우리의 내면을 꿈틀거리게 한다. 릴케는 영혼 없는 시대에 행복의 내면을 찾게 하는 놀라운 시인이다.
치열한 고독과 명상 . 신비의 시인. 릴케
관능적이고 야성적인 자연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리듬 . 음악 . 메아리의 시인. 로르카
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시 여행!
한국현대시에 언어의 미학과 사유의 우주를 펼쳐 보인
정현종 시인의 릴케. 네루다. 로르카 시 육필 감상
한국현대시의 위대한 성취인 정현종 시인이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아 [정현종 문학 에디션]을 펴냈다. 정현종 시인은 십여 권의 시집을 펴낸 한국 현대시사에서 독보적이고 개성적인 시세계를 보여 주는 시인인 동시에 뛰어난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는 세계적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작품을 번역해 국내에 최초로 소개했으며. 특히 네루다 시의 번역본은 ‘파블로 네루다 메달’을 받을 정도로 원작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에 [문학판]에서 출간하는 [정현종 문학 에디션](총 3종: [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릴케 시 여행]. [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네루다 시 여행]. [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로르카 시 여행])은 네루다와 로르카의 시뿐만 아니라 그가 처음 번역한 릴케의 시까지 엮어 구성했다. 특히 정현종 시인의 번역으로 아름다운 명시를 읽는 즐거움은 물론. 정현종 시인이 육필로 쓴 감상까지 함께 음미할 수 있는데. 거장들의 시를 관통하며 한 자 한 자 눌러 쓴 육필 감상은 그가 온몸으로 시를 읽은 흔적이다. 그의 필체에서 느껴지는 시에 대한 고민과 사랑은 독자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전해 주며. 이전에 만나지 못한 시의 세계로 안내한다.
릴케와 네루다. 로르카는 많은 문학가들이 사랑하고 연구하는 만큼 세계 시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의 시를 우리말로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그들의 시뿐 아니라 그들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통찰한 사람의 번역본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50년 이상 시를 쓰며 시어를 조탁해 온 정현종 시인은 시 내면의 깊숙한 교감과 시 바깥의 무한한 자유로움. 시 고유의 섬세한 리듬을 아는 번역가이다. 그가 번역한 릴케. 네루다. 로르카의 시는 단순한 언어의 전환을 넘어선다. 시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편 한 편 깊숙이 들여다보고 온몸으로 느끼며 시의 정수를 꿰뚫어 우리말로 옮겼기에 그가 번역한 시에서는 원작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시론에 가까운 시인만의 깊이 있는 해설과 감상을 쉽고 단정한 문장으로 붙여 이제까지 어렵게만 느꼈던 세 시인의 시를 독자가 보다 친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정현종 시인의 육성이 느껴지는 감상은 또 한 편의 에세이를 읽는 듯한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
죽음. 이별. 덧없음. 존재 등 인간에 대한 철학적인 의미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시어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릴케. 관능적이고 야성적인 자연의 시인으로 생동하는 시 속에 초현실주의와 혁명과 사랑을 담아낸 네루다. 사물이 서로 울리는 공명을 이미지와 음향의 묘한 조화 속에서 원초적이고 신비로운 힘. 두엔데를 느낄 수 있는 로르카. 이제 이 세 시인의 주옥같은 시를 전에는 없던 특별한 번역과 감상으로 만나볼 시간이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하는 만큼. 정현종 시인의 손끝에서 새로이 탄생한 릴케와 네루다와 로르카의 시가 어떤 감동을 안겨 줄지 기대해도 좋다. 또한 정현종 시인이 쓴 세 시인의 작품에 대한 감상은 정신적 여유와 가치를 잃어가는 시대에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엿보게 하고. 영혼의 닻 없이 표류하는 세대로 하여금 삶의 부표를 만나게 하며. 냉담해져가는 개인의 가슴속을 낭만과 열정으로 다시 뜨겁게 일으켜 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정현종
鄭玄宗
물질화된 사회 속에서 매몰되어 가는 인간의 순수한 영혼에 대해 노래하며, 아픈 사람의 외로움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시인.
1939년 12월 17일 서울시 용산구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3세 때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으로 이사 가서 청소년기를 이곳에서 보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과 음악/발레/철학 등에 심취하였다. 1959년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재학 시절 대학신문인 『연세춘추』에 발표한 시가 연세대 국문과 박두진 교수의 눈에 띄어 1984년 5월 『현대문학』의 추천을 받았다. 1965년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3월과 8월에 각각 「독무」와 「여름과 겨울의 노래」로 『현대문학』에서 3회 추천을 완료하고 문단에 등단하였다.
1966년에는 황동규·박이도·김화영·김주연·김현 등과 함께 동인지 『사계』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1970∼1973년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로, 1975∼1977년에는 중앙일보 월간부에서 일하였으며, 1977년 신문사를 퇴직한 뒤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해서 시 창작 강의를 하였다. 1982년부터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2005년에 정년퇴임하였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오르고, 1972년 첫 시집 『사물의 꿈』을 출간한 이후 지금까지 쉬임없는 창작열과 언제나 자신의 시세계를 갱신하는 열정으로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초기의 시는 관념적인 특징을 지니면서 사물의 존재 의의를 그려내는 데 치중한 반면, 1980년대 이후로는 구체적인 생명 현상에 대한 공감을 다룬 시를 발표하였다. 2008년 내놓은 아홉 번째 시집 『광휘의 속삭임』 역시 사물의 바깥에서 사물을 해석하고 그에 대한 복잡한 의미의 얼개를 부여하는 대신, 사물들과 한 몸으로 움직이는 시를 갈망하게 된 시인의 태도에, 사물의 있음 그 자체, 움직임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시적 화자의 자세에 저절로 주목하게 되는 작품집이다.
1990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외 6편의 시로 제3회 연암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92년 「한 꽃송이」로 제4회 이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또 1995년 「내 어깨 위의 호랑이」로 제40회 현대문학상, 1996년 「세상의 나무들」로 제4회 대산문학상, 2001년 「견딜 수 없네」로 제1회 미당문학상 시 부문을 수상하였으며. 『사물의 꿈』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등의 시집과 『고통의 축제』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이슬』 등의 시선집을 상자했다. 그는 또한 독특한 시론과 탁월한 산문을 모은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숨과 꿈』 『생명의 황홀』 등을 펴냈으며, 시 번역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예이츠, 네루다, 로르카의 시선집을 번역 출간했다. 펼처보기
▣ 주요 목차
책머리에 10
기도하는 시간을 위한 책
7 14
9 20
산보 28
입구 36
가을날 44
가을 52
빛 속의 붓다 60
오르페우스에게 부치는 소네트
I 68
II 78
III 84
VII 92
XII 98
XV 106
XIX 114
XX 120
2부 I 128
부록 II 136
두이노의 비가
제1비가 144
작가연보 163
잃어버린 사물의 신비를 일깨우고 세계를 팽창시키는 힘
숨 쉬라: 너 보이지 않는 시여! 완성하라
우리 자신의 본질과 우주의
교환을. 너 평형추여
거기서 내가 운율적으로 생겨나는.
단 하나의 파도―움직임, 그게
점차 바다가 된 것이 나인;
너, 우리의 모든 바다 중에 제일 포용적이니―
공간에서 자라난 따뜻함.
공간의 얼마나 많은 영역이 이미
내 속에 있는가. 내 헤매는 아들 같은
바람이 있다.
공기여, 너는 내가 흡수되었던 장소들로 가득 찬 나를 아는가?
너는 부드러운 나무껍질,
둥�E, 그리고 내 말들의 잎이니.
-「2부 Ⅰ」전문
『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릴케 시 여행』에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릴케의 시 ?가을날?을 비롯해, 평소 정현종 시인이 좋아하고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릴케 시 20편이 담겨 있다. 대개 시인의 눈과 가슴으로 감탄하고 감동한 시편들이다. 또한 시 여행을 하는 데 있어 좀 더 깊이 있고, 분명한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는 해설은 시인의 50년 시력 인생의 농축된 정수라 할 만하다. 정현종 시인은 오래전 처음 릴케의 작품을 읽었을 때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숨결이 돌풍처럼 불어왔노라고 그 감동을 소회한다. 그리고 그 감동은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정현종 시인은 “숨을 통해 우주나 만물과 내통하며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정현종 시인에게 숨이란 생명, 우주, 자연, 공기, 바람 같은 말들과 동의어이다. 시 쓰기는 곧 숨쉬기에 다름 아닌 것이다. 정현종 시인은 릴케의 시에서 한 우주가 숨결로 축소되는 것을 느낀다. 작은 숨결이 우주를 삼켜버리는 신비로운 감동, 그것을 정현종 시인은 희귀한 돌풍이라고 표현한다.
‘오렌지를 춤추라’(ⅩⅤ)는 한 구절 속에서도 정현종 시인은 오렌지의 맛과 향과 빛깔과 그것들이 열려 있는 공간이 그야말로 즙처럼 응축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 언어의 즙은 시인이 온몸으로 짜낸 것이다. 춤춘다는 표현은 사물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정현종 시인은 사과밭에 가서 사과를 춤춘 적이 있고, 사과를 좋아하는 나머지 아침마다 사과를 춤춘다고 한다. 릴케라는 대시인 앞에서 정현종 시인은 어린아이처럼 해맑고 순수하며 겸손하다. 그는 릴케의 시를 감탄하고 찬양하는 중에 자신의 여린 마음을 드러낸다. 릴케의 시들을 보고 있는데 정현종 시인의 시가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은 릴케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기꺼이 독자들을 안내한다. 독자들은 낯설고 광활한 신비로움과 더불어 릴케의 시가 한없이 깊어지고 풍요로워지는 듯한 경이로운 경험을 맛보게 될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무척 외롭지만, 매 순간을 신성하게 할 만큼
외롭지는 못합니다.
나는 세상에서 너무 작지만
영리하고 드러나지 않게
당신 앞에 꼭 무슨 물건처럼 놓여 있을 만큼
그렇게 작지는 못합니다.
나는 내 자신의 의지를 원하며, 다만 내 의지와
함께하기를 원합니다―그게 행동을 향해 움직일 때,
그리고 침묵 속에서, 때로 시간이 좀체 흐르지 않아
뭔가 가까이 오고 있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아는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 있겠어요.
나는 당신의 온몸을 위한 거울이고 싶으며,
또한 당신의 무겁고 흔들리는 영상을 지탱하지
못할 만큼 눈멀거나 늙고 싶지 않습니다.
-「7」중에서
정현종 시인에 따르면 릴케는 모든 비범한 시인이 그렇듯이, 대부분 범상하게 넘기는 일이나 대상으로부터 충격과 영감을 받는다. 그는 듣는 시인이다. 듣되 비범하게 깊이 듣는다. 그 깊이는 광활하다. 그리하여 사물은 그의 귀 속에서 경이로운 탄생을 한다. 릴케는 오감으로 느낀 것을 즉시 내면화하는 시인이다. 그의 교감은 깊고 한없이 광활하다. 그 속에서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사물의 신비는 살아나고 세계는 무한을 향해 열린다. 릴케에게 세계는 바깥이 아닌 것이다. 릴케는 ‘전체’가 ‘새로운 것’보다 무한히 더 새롭다고 말한다. 마음이 늘 무한을 듣고 보는 영혼, 매인 데 없이 자유로운 영혼, 그러므로 항상 새로움 속에 있는 영혼, ‘우주적인 나’의 깊이로부터 스스로 생명력을 얻는 영혼…… 시적인 영혼. 정현종 시인이 말하는 이 영혼이 바로 릴케이다.
고독한 영혼이 탄생시킨 위대한 내면의 세계
정현종 시인은 신이 이 세상(바깥세상)을 창조했다면 릴케는 내면세계를 창조했다고 말한다. 한껏 제약이 없는 이 영혼의 작품을 읽으면 울림의 끝없는 여운 속에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진정한 교감을 나눌 만한 내면의 풍요로움이 없는 황량한 시대야말로 영혼 없는 시대가 아닐까? 릴케의 시는 고독이 필요한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황량하고 적막한 황무지에서는 사과나무가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메마른 텃밭을 잘 가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외면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내면의 텃밭을 가꾸어 나갈 수 있는 힘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 슬픔, 열망, 아름다움에 대해 스쳐 지나가는 생각과 느낌을 우리는 망설임 없이 가꾸어 나가야 한다. 즉시 내면화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필요성에 의해 솟아오른 감정들은 그것이 어둠의 공간이라 하더라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영혼과 천사는 얼마나 비현실적인 단어인가. 그러나 우리는 안다. 행복이란 감정은 영혼처럼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고, 천사처럼 아름다운 것이지만 우리를 늘 꿈꾸게 만드는 것임을. 릴케는 천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천사는) 보이지 않는 것 속에서 실재의 보다 높은 차원에 대한 인지를 보장”하는 존재이다. 여기서 말하는 실재의 보다 높은 차원에 대해서 정현종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그 말은 인간의 삶과 예술에 관해 우리가 그동안 해 온 규정들, 그 제한들을 뿌리부터 흔들면서 우리로 하여금 생각과 느낌의 궁핍에서 헤어날 수 있는 계기를 벽력같이 제공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무한 쪽으로 열리게 만든다. 그러한 기미와 눈짓을 느끼는 영혼이야말로 스스로 천사이다. 얼마나 깊고 높고 드넓은 울림을 갖고 있는가? 시인은 모름지기 그러한 울림의 끊이지 않는 메아리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릴케의 시들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고 계속 살아서 움직이며 우리의 내면을 꿈틀거리게 한다. 릴케는 영혼 없는 시대에 행복의 내면을 찾게 하는 놀라운 시인이다.
치열한 고독과 명상 . 신비의 시인. 릴케
관능적이고 야성적인 자연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리듬 . 음악 . 메아리의 시인. 로르카
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시 여행!
한국현대시에 언어의 미학과 사유의 우주를 펼쳐 보인
정현종 시인의 릴케. 네루다. 로르카 시 육필 감상
한국현대시의 위대한 성취인 정현종 시인이 올해 등단 50주년을 맞아 [정현종 문학 에디션]을 펴냈다. 정현종 시인은 십여 권의 시집을 펴낸 한국 현대시사에서 독보적이고 개성적인 시세계를 보여 주는 시인인 동시에 뛰어난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는 세계적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작품을 번역해 국내에 최초로 소개했으며. 특히 네루다 시의 번역본은 ‘파블로 네루다 메달’을 받을 정도로 원작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에 [문학판]에서 출간하는 [정현종 문학 에디션](총 3종: [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릴케 시 여행]. [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네루다 시 여행]. [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로르카 시 여행])은 네루다와 로르카의 시뿐만 아니라 그가 처음 번역한 릴케의 시까지 엮어 구성했다. 특히 정현종 시인의 번역으로 아름다운 명시를 읽는 즐거움은 물론. 정현종 시인이 육필로 쓴 감상까지 함께 음미할 수 있는데. 거장들의 시를 관통하며 한 자 한 자 눌러 쓴 육필 감상은 그가 온몸으로 시를 읽은 흔적이다. 그의 필체에서 느껴지는 시에 대한 고민과 사랑은 독자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전해 주며. 이전에 만나지 못한 시의 세계로 안내한다.
릴케와 네루다. 로르카는 많은 문학가들이 사랑하고 연구하는 만큼 세계 시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의 시를 우리말로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그들의 시뿐 아니라 그들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통찰한 사람의 번역본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50년 이상 시를 쓰며 시어를 조탁해 온 정현종 시인은 시 내면의 깊숙한 교감과 시 바깥의 무한한 자유로움. 시 고유의 섬세한 리듬을 아는 번역가이다. 그가 번역한 릴케. 네루다. 로르카의 시는 단순한 언어의 전환을 넘어선다. 시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편 한 편 깊숙이 들여다보고 온몸으로 느끼며 시의 정수를 꿰뚫어 우리말로 옮겼기에 그가 번역한 시에서는 원작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시론에 가까운 시인만의 깊이 있는 해설과 감상을 쉽고 단정한 문장으로 붙여 이제까지 어렵게만 느꼈던 세 시인의 시를 독자가 보다 친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정현종 시인의 육성이 느껴지는 감상은 또 한 편의 에세이를 읽는 듯한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
죽음. 이별. 덧없음. 존재 등 인간에 대한 철학적인 의미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시어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릴케. 관능적이고 야성적인 자연의 시인으로 생동하는 시 속에 초현실주의와 혁명과 사랑을 담아낸 네루다. 사물이 서로 울리는 공명을 이미지와 음향의 묘한 조화 속에서 원초적이고 신비로운 힘. 두엔데를 느낄 수 있는 로르카. 이제 이 세 시인의 주옥같은 시를 전에는 없던 특별한 번역과 감상으로 만나볼 시간이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하는 만큼. 정현종 시인의 손끝에서 새로이 탄생한 릴케와 네루다와 로르카의 시가 어떤 감동을 안겨 줄지 기대해도 좋다. 또한 정현종 시인이 쓴 세 시인의 작품에 대한 감상은 정신적 여유와 가치를 잃어가는 시대에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엿보게 하고. 영혼의 닻 없이 표류하는 세대로 하여금 삶의 부표를 만나게 하며. 냉담해져가는 개인의 가슴속을 낭만과 열정으로 다시 뜨겁게 일으켜 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정현종
鄭玄宗
물질화된 사회 속에서 매몰되어 가는 인간의 순수한 영혼에 대해 노래하며, 아픈 사람의 외로움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시인.
1939년 12월 17일 서울시 용산구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3세 때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으로 이사 가서 청소년기를 이곳에서 보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과 음악/발레/철학 등에 심취하였다. 1959년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였으며, 재학 시절 대학신문인 『연세춘추』에 발표한 시가 연세대 국문과 박두진 교수의 눈에 띄어 1984년 5월 『현대문학』의 추천을 받았다. 1965년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3월과 8월에 각각 「독무」와 「여름과 겨울의 노래」로 『현대문학』에서 3회 추천을 완료하고 문단에 등단하였다.
1966년에는 황동규·박이도·김화영·김주연·김현 등과 함께 동인지 『사계』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1970∼1973년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로, 1975∼1977년에는 중앙일보 월간부에서 일하였으며, 1977년 신문사를 퇴직한 뒤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해서 시 창작 강의를 하였다. 1982년부터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2005년에 정년퇴임하였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오르고, 1972년 첫 시집 『사물의 꿈』을 출간한 이후 지금까지 쉬임없는 창작열과 언제나 자신의 시세계를 갱신하는 열정으로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초기의 시는 관념적인 특징을 지니면서 사물의 존재 의의를 그려내는 데 치중한 반면, 1980년대 이후로는 구체적인 생명 현상에 대한 공감을 다룬 시를 발표하였다. 2008년 내놓은 아홉 번째 시집 『광휘의 속삭임』 역시 사물의 바깥에서 사물을 해석하고 그에 대한 복잡한 의미의 얼개를 부여하는 대신, 사물들과 한 몸으로 움직이는 시를 갈망하게 된 시인의 태도에, 사물의 있음 그 자체, 움직임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시적 화자의 자세에 저절로 주목하게 되는 작품집이다.
1990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외 6편의 시로 제3회 연암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92년 「한 꽃송이」로 제4회 이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또 1995년 「내 어깨 위의 호랑이」로 제40회 현대문학상, 1996년 「세상의 나무들」로 제4회 대산문학상, 2001년 「견딜 수 없네」로 제1회 미당문학상 시 부문을 수상하였으며. 『사물의 꿈』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등의 시집과 『고통의 축제』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이슬』 등의 시선집을 상자했다. 그는 또한 독특한 시론과 탁월한 산문을 모은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숨과 꿈』 『생명의 황홀』 등을 펴냈으며, 시 번역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예이츠, 네루다, 로르카의 시선집을 번역 출간했다. 펼처보기
▣ 주요 목차
책머리에 10
기도하는 시간을 위한 책
7 14
9 20
산보 28
입구 36
가을날 44
가을 52
빛 속의 붓다 60
오르페우스에게 부치는 소네트
I 68
II 78
III 84
VII 92
XII 98
XV 106
XIX 114
XX 120
2부 I 128
부록 II 136
두이노의 비가
제1비가 144
작가연보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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