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세종, 불교 책을 읽고 펴내다
“옛날 세종 장헌대왕께서 일찍부터 『금강경오가해』 가운데 『야보송』과 『종경제강』, 『득통설의』, 그리고 『증도가남명계송』을 국어로 번역하여 『석보』에 넣고자 하였다. 문종대왕과 세조대왕에게 명하여 함께 짓도록 하고, 친히 교정하고 결정을 했다.”
사대부들의 숙원이던 억불 정책을 실행하여 조선 땅에서 불교의 입지를 좁힌 유학군주 세종이었다. 그런 그가 불교 책을 읽고 펴냈다. 신하들의 반대는 당연한 수순. 거듭되는 반대에 세종은 언로를 막아버린다. “현명한 신하의 말이 무지한 임금에게 먹힐 리도 없고, 무지한 임금의 말이 현명한 신하의 귀에 찰 리도 없다. (중략) 귀찮게 자꾸 청하지 말라.”
도대체 무엇이 세종을 이토록 변하게 했을까? 불교가 무엇이기에 세종은 신하들의 입까지 막았을까?
알면 부처, 모르면 중생
성리학 엘리트가 설계한 조선에서는 ‘하늘’이 신분을 결정했다. 알고 실천하는 일은 말이나 글이 아니라 ‘타고난 자질’에 달려 있으며, 자질이 부족한 백성은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게 성리학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반면 불교에서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으며, 신분이나 계급 따위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렇다면 무엇이 부처일까?
“모든 중생이 안에 종지(種智)를 머금어 부처와 다름이 없건만, 오직 모르고 거꾸로 뒤집혀 거칠게 나와 남을 헤아려, 제가 지은 일의 구덩이에 빠져 돌이켜 살필 줄을 모른다.”
언해불전 사업에 깊숙이 관여한 함허의 글이다. 이 인용문의 핵심은 “오직 모르고 거꾸로 뒤집혀 거칠게 나와 남을 헤아려”라는 구절이다. 모든 중생이 부처와 다름이 없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으로 살고 있다는 뜻이다. 답은 나왔다. ‘제대로 헤아리면’ 부처다.
그래서일까? 『능엄경언해』며 『금강경삼가해』를 비롯한 언해불전의 다수가 우리가 어떻게 거꾸로 뒤집혀 알고 있는지를 지적하면서, ‘보아 살펴 사랑하여(생각하여)’ 똑바로 아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 책들에서 안내하는 대로 보아 살펴 사랑하면, 똑바로 보고 똑바로 사랑할 수 있으며, 그렇게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언해불전은 이념투쟁, 계급투쟁의 도구였다
훈민정음 서문에는 창제 이유가 명확히 밝혀져 있다.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말과 문자가 달라 그러지 못하는 이가 많으니, 이를 가엾게 여겨 글자를 만든다.’ 무지렁이도 쉽게 익혀 제 뜻을 펼 수 있는 문자 한글. 바로 이 문자로 세종은 불교 책을 번역해서 펴냈다.
왜 세종은 한글로, 하필이면 불교 책을 펴냈을까? 이 지점에서 저자의 상상력이 번뜩인다. 한글로 불교 책을 펴내는 까닭이 어리석은 백성으로 하여금 보고 살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면? 알게 된 백성들이, 이전까지는 지배층에게만 허용되던 것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리되면 지식과 권력과 금력을 백성과 지배층이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세종의 훈민정음과 언해불전은 지배층의 특권을 허물려는 이념투쟁, 계급투쟁의 도구가 된다.
실제로, 세종·세조 때 문신을 지낸 김수온의 『사리영응기』를 보면, 261명의 사람들이 귀천 없이 함께 영원토록 동행하고 부처 되기를 기원하며 서로를 향해 절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구절 가운데 “성상”, 즉 세종의 덕을 입어 그 모임에 모두 참석했다는 구절이 있다. 조선의 계급이, 적어도 이 장면에서만은 잠시라도 무너졌었다.
선사들의 말투 ― ‘입말의 활어’
이왕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일, 쉬우면 쉬울수록 좋았을 것이다. 언해불전 사업에 조선의 선사(禪師)들이 참여한 것은, 이 점에서 탁월한 결정이었다. 선사들의 말은 시장통과 여염집에서 쓰던 ‘입말’이었기 때문이다.
선사들의 말은 ‘입말의 활어’다. 그들의 말투에서는 어려운 개념어와 추상어 대신 쉽고 생생한 동사, 형용사, 부사 같은 서술어와 수식어가 관건이다. 그들은 엘리트 교육을 받은 소수 지식인들의 말과 글에 맞서기도 했다. 동네 사투리, 속담과 속어를 써서 누구나 어디서나 쉽게 통할 수 있는 말의 전통을 세웠다. 문자는 몰라도 동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었던 우리 입말 전통이었다.
그렇게 언해불전에 스며든 살아 있는 말들. 예를 들면, ‘준동함령(蠢動含靈)’은 (뭇 생명의) 꿈틀대는 모습을 그린 ‘구믈구믈?다’로, ‘성성(惺惺)’은 고양이가 쥐를 노리듯 지혜가 분명하게 작용하는 모습을 그린 ‘???다’로 되살아났다. 어려운 한자어나 개념어보다는 이쪽이 이해하기 쉬울 터다.
또 하나의 의도 ― 열린 지식 전통 되살리기
일본 승려 엔닌(圓仁, 794~864)은 『입당구법순례행기』에서, 당나라에 머물던 신라 사람들이 승속, 남녀, 노소, 존비의 차별 없이 한자리에 모여 『법화경』을 신라 말로 함께 읽고 토론하던 장면을 묘사한다.
“남녀 승속이 함께 절 안에 모여 낮에는 강연을 듣고, 저녁에는 예참(禮懺), 청경(聽經) 등이 차례로 이어진다. 승속의 숫자는 사십여 명이다. 그 강경과 예참은 모두 신라의 풍속을 따르지만, 저녁과 새벽의 예참은 당나라의 풍속을 따른다. 나머지는 모두 신라 말로 한다. 집회에 참석한 승속, 노소, 존비(尊卑)는 모두 신라 사람들이고, 단지 세 명의 중과 행자 하나가 일본 사람이다.”
신라 때도 있었던, 함께 읽고 토론하던 전통. 권근이 묘사한 목은 이색의 학풍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매일 강의가 끝나면, 의심스러운 뜻을 두고 서로 논란하여 각각 끝까지 의심을 풀었다.”
하지만 조선 초의 억불과 세종의 불사를 둘러싼 논란에서는 이러한 열린 태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불교가 고려를 망쳤으니 조선에서는 아니 되옵니다.’ 성리학 선비들은 이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그들의 논리에는 자기 생각이랄 게 없다. 자신들이 떠받드는 성현 주자의 말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외울 뿐이었다. 세종은 이런 데 질렸고, 그래서 입을 닫았다.
어쩌면 세종이 언해불전을 펴낸 이유 가운데는, ‘함께 읽고 논란하는’ 열린 지식 전통을 되살리려는 뜻도 들어 있었는지 모른다. 혁명의 일방적인 거센 물결 속에 휩쓸려 사라진 이 문화가 되살아나야만, 거친 앎으로 인한 폐해와 성리학자들의 독주를 막고 조선을 제한적이나마 열린사회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작가 소개
저 : 오윤희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봉선사 월운강백 문하에서 한문 불전을 익혔다. 1980년대 말, 불전 전산화에 뜻을 두고 외국의 불전 전문가들과 교류하며 고려대장경전산화를 위한 준비를 했다. 1993년 해인사에서 고려대장경연구소 설립에 참여하였고, ‘불교문헌자동화연구실’, ‘비백교학연구소’ 등을 창립, 불전전산화에 관련한 일에 매진했다. 2005년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에 취임, 2010년까지 ‘한일공동고려초조대장경 디지털화 사업’을 완료하였으며, ‘고려대장경지식베이스’, ‘고려대장경이미지연구지원시스템’, ‘고려대장경-돈황사본 대조연구지원시스템’ 등의 프로젝트들을 기획, 추진했다. 2006년 ‘고려대장경 천년의 해’ 기념사업을 제안, 추진해왔다. 저서에 『매트릭스, 사이버스페이스, 그리고 선』(호미, 2003)이 있다.
▣ 주요 목차
여는 글
1부 사랑의 기술
세종, 불경을 번역하다
나는 다시 사유하였다
보아 살펴 사랑하여
모롬과 아롬 36
맏 첫 방편 - 사랑의 기술
종이접기 모델
사랑의 길
얼굴과 그르메
잃어버린 ‘세계’
2부 이단 세종
승니를 도태하라
이단의 시작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임금
철부지의 행패와 이단의 임금
위선과 불신으로 열린 언로
억불과 숭불 사이
이단의 책을 읽는 임금
아들의 추억
막힌 말문, 곯는 마음
병인년의 기억, 세종의 아이들
귀천이 없이 함께 부처 앞에 들어
3부 정도전, 이색, 함허
정몽주와 정도전
정도전의 읽기
이색의 읽기
함허의 읽기
응무소주 이생기심
4부 『능엄경』이라는 단서
『능엄경』을 읽은 까닭
허망한 윤회의 길
함께 가는 길
5부 언해불전의 읽기와 사랑
『반야심경언해』, 편집의 규칙
과판(科判)의 그림
과문(科文)이라는 방법
우리말로 함께 읽는 전통
조선 선사들의 우리말 솜씨
맞부딪치는 읽기
조선의 현란한 읽기
함허의 사랑, 세종의 발견
『금강경오가해설의』, 조선의 희한한 책
의미와 의도의 긴장, 함께 읽는 기술
권서자재(卷舒自在), 모로기 말고 펴고
뉘라서 카냥하리
맺는 글
찾아보기
세종, 불교 책을 읽고 펴내다
“옛날 세종 장헌대왕께서 일찍부터 『금강경오가해』 가운데 『야보송』과 『종경제강』, 『득통설의』, 그리고 『증도가남명계송』을 국어로 번역하여 『석보』에 넣고자 하였다. 문종대왕과 세조대왕에게 명하여 함께 짓도록 하고, 친히 교정하고 결정을 했다.”
사대부들의 숙원이던 억불 정책을 실행하여 조선 땅에서 불교의 입지를 좁힌 유학군주 세종이었다. 그런 그가 불교 책을 읽고 펴냈다. 신하들의 반대는 당연한 수순. 거듭되는 반대에 세종은 언로를 막아버린다. “현명한 신하의 말이 무지한 임금에게 먹힐 리도 없고, 무지한 임금의 말이 현명한 신하의 귀에 찰 리도 없다. (중략) 귀찮게 자꾸 청하지 말라.”
도대체 무엇이 세종을 이토록 변하게 했을까? 불교가 무엇이기에 세종은 신하들의 입까지 막았을까?
알면 부처, 모르면 중생
성리학 엘리트가 설계한 조선에서는 ‘하늘’이 신분을 결정했다. 알고 실천하는 일은 말이나 글이 아니라 ‘타고난 자질’에 달려 있으며, 자질이 부족한 백성은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게 성리학자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반면 불교에서는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으며, 신분이나 계급 따위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렇다면 무엇이 부처일까?
“모든 중생이 안에 종지(種智)를 머금어 부처와 다름이 없건만, 오직 모르고 거꾸로 뒤집혀 거칠게 나와 남을 헤아려, 제가 지은 일의 구덩이에 빠져 돌이켜 살필 줄을 모른다.”
언해불전 사업에 깊숙이 관여한 함허의 글이다. 이 인용문의 핵심은 “오직 모르고 거꾸로 뒤집혀 거칠게 나와 남을 헤아려”라는 구절이다. 모든 중생이 부처와 다름이 없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으로 살고 있다는 뜻이다. 답은 나왔다. ‘제대로 헤아리면’ 부처다.
그래서일까? 『능엄경언해』며 『금강경삼가해』를 비롯한 언해불전의 다수가 우리가 어떻게 거꾸로 뒤집혀 알고 있는지를 지적하면서, ‘보아 살펴 사랑하여(생각하여)’ 똑바로 아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 책들에서 안내하는 대로 보아 살펴 사랑하면, 똑바로 보고 똑바로 사랑할 수 있으며, 그렇게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언해불전은 이념투쟁, 계급투쟁의 도구였다
훈민정음 서문에는 창제 이유가 명확히 밝혀져 있다.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말과 문자가 달라 그러지 못하는 이가 많으니, 이를 가엾게 여겨 글자를 만든다.’ 무지렁이도 쉽게 익혀 제 뜻을 펼 수 있는 문자 한글. 바로 이 문자로 세종은 불교 책을 번역해서 펴냈다.
왜 세종은 한글로, 하필이면 불교 책을 펴냈을까? 이 지점에서 저자의 상상력이 번뜩인다. 한글로 불교 책을 펴내는 까닭이 어리석은 백성으로 하여금 보고 살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면? 알게 된 백성들이, 이전까지는 지배층에게만 허용되던 것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리되면 지식과 권력과 금력을 백성과 지배층이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세종의 훈민정음과 언해불전은 지배층의 특권을 허물려는 이념투쟁, 계급투쟁의 도구가 된다.
실제로, 세종·세조 때 문신을 지낸 김수온의 『사리영응기』를 보면, 261명의 사람들이 귀천 없이 함께 영원토록 동행하고 부처 되기를 기원하며 서로를 향해 절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구절 가운데 “성상”, 즉 세종의 덕을 입어 그 모임에 모두 참석했다는 구절이 있다. 조선의 계급이, 적어도 이 장면에서만은 잠시라도 무너졌었다.
선사들의 말투 ― ‘입말의 활어’
이왕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일, 쉬우면 쉬울수록 좋았을 것이다. 언해불전 사업에 조선의 선사(禪師)들이 참여한 것은, 이 점에서 탁월한 결정이었다. 선사들의 말은 시장통과 여염집에서 쓰던 ‘입말’이었기 때문이다.
선사들의 말은 ‘입말의 활어’다. 그들의 말투에서는 어려운 개념어와 추상어 대신 쉽고 생생한 동사, 형용사, 부사 같은 서술어와 수식어가 관건이다. 그들은 엘리트 교육을 받은 소수 지식인들의 말과 글에 맞서기도 했다. 동네 사투리, 속담과 속어를 써서 누구나 어디서나 쉽게 통할 수 있는 말의 전통을 세웠다. 문자는 몰라도 동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었던 우리 입말 전통이었다.
그렇게 언해불전에 스며든 살아 있는 말들. 예를 들면, ‘준동함령(蠢動含靈)’은 (뭇 생명의) 꿈틀대는 모습을 그린 ‘구믈구믈?다’로, ‘성성(惺惺)’은 고양이가 쥐를 노리듯 지혜가 분명하게 작용하는 모습을 그린 ‘???다’로 되살아났다. 어려운 한자어나 개념어보다는 이쪽이 이해하기 쉬울 터다.
또 하나의 의도 ― 열린 지식 전통 되살리기
일본 승려 엔닌(圓仁, 794~864)은 『입당구법순례행기』에서, 당나라에 머물던 신라 사람들이 승속, 남녀, 노소, 존비의 차별 없이 한자리에 모여 『법화경』을 신라 말로 함께 읽고 토론하던 장면을 묘사한다.
“남녀 승속이 함께 절 안에 모여 낮에는 강연을 듣고, 저녁에는 예참(禮懺), 청경(聽經) 등이 차례로 이어진다. 승속의 숫자는 사십여 명이다. 그 강경과 예참은 모두 신라의 풍속을 따르지만, 저녁과 새벽의 예참은 당나라의 풍속을 따른다. 나머지는 모두 신라 말로 한다. 집회에 참석한 승속, 노소, 존비(尊卑)는 모두 신라 사람들이고, 단지 세 명의 중과 행자 하나가 일본 사람이다.”
신라 때도 있었던, 함께 읽고 토론하던 전통. 권근이 묘사한 목은 이색의 학풍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매일 강의가 끝나면, 의심스러운 뜻을 두고 서로 논란하여 각각 끝까지 의심을 풀었다.”
하지만 조선 초의 억불과 세종의 불사를 둘러싼 논란에서는 이러한 열린 태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불교가 고려를 망쳤으니 조선에서는 아니 되옵니다.’ 성리학 선비들은 이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그들의 논리에는 자기 생각이랄 게 없다. 자신들이 떠받드는 성현 주자의 말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외울 뿐이었다. 세종은 이런 데 질렸고, 그래서 입을 닫았다.
어쩌면 세종이 언해불전을 펴낸 이유 가운데는, ‘함께 읽고 논란하는’ 열린 지식 전통을 되살리려는 뜻도 들어 있었는지 모른다. 혁명의 일방적인 거센 물결 속에 휩쓸려 사라진 이 문화가 되살아나야만, 거친 앎으로 인한 폐해와 성리학자들의 독주를 막고 조선을 제한적이나마 열린사회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작가 소개
저 : 오윤희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봉선사 월운강백 문하에서 한문 불전을 익혔다. 1980년대 말, 불전 전산화에 뜻을 두고 외국의 불전 전문가들과 교류하며 고려대장경전산화를 위한 준비를 했다. 1993년 해인사에서 고려대장경연구소 설립에 참여하였고, ‘불교문헌자동화연구실’, ‘비백교학연구소’ 등을 창립, 불전전산화에 관련한 일에 매진했다. 2005년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에 취임, 2010년까지 ‘한일공동고려초조대장경 디지털화 사업’을 완료하였으며, ‘고려대장경지식베이스’, ‘고려대장경이미지연구지원시스템’, ‘고려대장경-돈황사본 대조연구지원시스템’ 등의 프로젝트들을 기획, 추진했다. 2006년 ‘고려대장경 천년의 해’ 기념사업을 제안, 추진해왔다. 저서에 『매트릭스, 사이버스페이스, 그리고 선』(호미, 2003)이 있다.
▣ 주요 목차
여는 글
1부 사랑의 기술
세종, 불경을 번역하다
나는 다시 사유하였다
보아 살펴 사랑하여
모롬과 아롬 36
맏 첫 방편 - 사랑의 기술
종이접기 모델
사랑의 길
얼굴과 그르메
잃어버린 ‘세계’
2부 이단 세종
승니를 도태하라
이단의 시작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임금
철부지의 행패와 이단의 임금
위선과 불신으로 열린 언로
억불과 숭불 사이
이단의 책을 읽는 임금
아들의 추억
막힌 말문, 곯는 마음
병인년의 기억, 세종의 아이들
귀천이 없이 함께 부처 앞에 들어
3부 정도전, 이색, 함허
정몽주와 정도전
정도전의 읽기
이색의 읽기
함허의 읽기
응무소주 이생기심
4부 『능엄경』이라는 단서
『능엄경』을 읽은 까닭
허망한 윤회의 길
함께 가는 길
5부 언해불전의 읽기와 사랑
『반야심경언해』, 편집의 규칙
과판(科判)의 그림
과문(科文)이라는 방법
우리말로 함께 읽는 전통
조선 선사들의 우리말 솜씨
맞부딪치는 읽기
조선의 현란한 읽기
함허의 사랑, 세종의 발견
『금강경오가해설의』, 조선의 희한한 책
의미와 의도의 긴장, 함께 읽는 기술
권서자재(卷舒自在), 모로기 말고 펴고
뉘라서 카냥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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