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중국 민주주의의 투사 팡리즈, 그를 주목하라!
팡리즈는 가난한 철도 공의 아들로 베이징에서 1936년에 태어났다. 명석한 두뇌로 일찍부터 자연과학, 특히 물리에 관심을 가졌고, 베이징 대학 물리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그러한 그가 반우파투쟁이라는 정치투쟁에서 우파로 지목되면서 하방(下放)되어 광산의 막장에서 노동하는 고초를 겪는다.
광산에서 1년간 중노동을 하면서 그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책을 통하여 공부하면서 천체물리학에 흥미를 느끼고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는 다만 장연형상 속에서 증명할 수 있는 과학이 좋았고, 또 이를 연구하고 싶었던 순수한 학자였다.
그러나 그가 중국에서 새로 연구하는 천체물리학은 마르크스 이론에 없는 것이어서 이를 연구할 수 없는 중국의 정치 체제에 대하여 순수하게 연구를 하게 해달라는 운동을 펼친다. 그는 과기대학 부총장에 오른 뒤에도 이러한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하여 연구를 위하여 중국공산당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공산주의가 자연과학의 연구를 지도할 수 있다.’는 도그마를 깨트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는 연구를 위하여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러 곳에서 강연을 펼친다. 물론 그에게는 강한 압력이 왔다. 공산당에서 쫓겨나고 마지막에는 과기대 부총장에서 쫓겨나서 베이징 천문대 연구원으로 좌천시킨다. 민주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연구의 자유를 획득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하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굽히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덩샤오핑에게는 눈에 가시였다. 결국 그는 덩샤오핑에게 공개적으로 정치범을 석방하라는 공개편지를 썼고, 덩샤오핑은 그를 고소하려고까지 했다. 이러한 사실들이 밖으로 알려질수록 중국 내의 민주화 열기는 넘쳐흘러 나왔다.
드디어 1989년 5월 말부터 시작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는 베이징 시가를 덮었다. 1주일이 지나도 끝나지 않자 중국 당국은 군대를 동원하여 이를 진압한다. 그리고 팡리즈는 이 데모를 배후 조종한 사람으로 지목하여 지명 수배령을 내렸다. 그 후 팡리즈는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에 숨어서 1년 넘게 있다가 미국으로 망명한다.
중국의 근대적 민주주의 역사, 그를 통해 기억하라!
팡리즈가 내세운 이론은 간단하다. 낙후된 중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하여서 필요한 것은 과학이고, 이를 제대로 연구하고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서는 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과 민주는 동전의 앞뒷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민주는 위에서 은혜를 베풀듯이 내려 주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비록 무장 저항을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인민의 꾸준한 저항과 힘으로 쟁취해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시행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강하게 조였던 끈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 준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중국 당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연구의 자유, 신체의 자유, 언론의 자유, 결혼의 자유 등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팡리즈의 주장은 1919년 5·4 운동에서 베이징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와서 주장한 것이 70년 만에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중국에 맥맥이 흐르는 민주화의 열망은 70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고, 이는 군대의 힘으로 제압되었지만 여전히 인민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중국의 근대화, 민주화를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팡리즈의 강연집이다. 그는 ‘민주주의는 하사(下賜)해 주는 것이 아니다.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순수한 자연과학자,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에 관한 수많은 논문으로 천체물리학계에서 세계적 지도자가 된 그가 이러한 정치운동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 강연집에서 읽을 수 있다.
옮긴이의 말 - 끝나지 않은 중국 근대화의 화두
1990년 6월 25일은 중국과 미국이 13개월간 끌어 오던 외교 문제가 조용히 해결된 날이다. 중국의 사하로프 혹은 솔제니친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팡리즈(方勵之)가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난위엔(南苑)군용비행장에서 아무도 모르게 미국군용기에 몸을 싣고 중국을 떠나는 일이 벌어진 날이다. 비록 비행기가 이륙하기 30분전까지만 해도 피를 말리는 긴장이 팡리즈 본인은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 당국에게도 엄습하고 있던 큰 사건이었다.
1989년 6월 4일에 학생들의 민주화를 주장한 시위가 절정에 달했을 때에 중국 당국은 이를 감당할 수 없자 군대를 동원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른바 톈안먼사건이다. 그런데 중국 당국은 학생들의 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혐의를 정치와 무관한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팡리즈에게 덮어씌웠던 것이다.
그래서 팡리즈는 베이징주재 미국대사관으로 숨어들어 미국의 부시대통령의 손님이 되어 숨을 죽이며 13개월을 보냈다. 길고 긴 줄다리기를 하며 극적인 타협을 거쳐서 그에게 중국이 범죄자라는 혐의를 씌우지 못하게 하고 신병치료라는 명목을 달고 그렇게 사랑하던 고국 중국을 영원히 떠났다.
그가 조국을 배반하여 학생들을 데모하도록 조종하였다는 혐의를 쓰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는 학생들에게 데모를 하도록 조종은 하지 않았지만 중국에 민주화가 이루어 지지 않으면 중국의 발전도 학문적인 연구도 불가능하다고 외쳤던 때문이었다.
순수한 학자이기에 거짓말을 할 수 없었고, 그러기에 중국 헌법에 쓰인 대로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죄라면 죄였다. 무늬만 민주주의의 가식을 통렬히 비판한 그는 ‘우리는 지금 역사를 쓰고 있다.’고 학생들에게 용감하게 강연하였다. 역사적 존재인 학생들의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역사에 기록될 것이기에 시대적 사명감을 가지라는 호소였다.
아편전쟁 전후로부터 시작된 중국의 근대화에서 모셔 오려했던 두 화두 ‘덕 선생(德先生, 데모크라시)’와 ‘새 선생(賽先生, 사이언스)’이 근 150년이 지난 1980년대에도 중국에서는 팡리즈에게서 나타난 것이다. 그는 당시의 권력자들과 맞붙어서 싸웠다. 심지어는 덩샤오핑의 권위에 도전한 까닭에 덩샤오핑은 팡리즈를 고발하는 상태까지 갔다.
논리적으로는 당할 수 없었던 중국당국은 6·4 톈안먼 사태를 이용하여 그를 제거하려고 했다. 이렇게 조치하려고 한데는 팡리즈가 학생들을 상대로 행한 연설 때문이었다. 중국의 법에 저촉되지는 않지만 그러나 중국 당국에게는 엄청난 경계대상이 되었던 그의 연설문은 중국의 민주화에 한 획을 그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팡리즈가 외친 후 26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중국의 진정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데 대하여 동의하기가 쉽지는 않다. 중국이 비록 G2로 불릴 정도로 성장하였고, 또 새로운 실크로드를 건설하여 대국으로 세계를 이끌려고 하고 있지만, 밀입국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겠다는 사람들과 요유커(遊客)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명품을 싹쓸이 해 가는 두 얼굴을 보면서 중국의 심각한 불평등현상을 보게 된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빌딩숲을 이룬 도시와 그 속에서 헤매는 농민공들의 상황을 보면서 중국의 민주화는 어디까지 왔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동안 우리가 중국을 허상으로만 보아 온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현재 중국은 중국 역사에 있었던 한 무제 시절이나, 당태종시절의 재현을 목표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일시적으로 세계제국을 건설했지만 지배자의 하향식 덕치(德治)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던 역사가 자꾸 머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영원한 중국의 번영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팡리즈가 주장한 진정한 민주화가 아닐까? 중국을 그렇게 열렬하게 사랑하였던 순수한 학자 팡리즈가 중국의 장래를 위하여 부르짖은 그의 연설문은 중국의 장래를 위한 훌륭한 처방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우리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민주화만이 안심할 수 있는 만큼 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민주화는 아시아의 평화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고, 아시아의 평화가 없는 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불안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내게 된 이유이다.
톈안먼 사건이 일어난 지 26년, 그 배후세력으로 지목되었던 팡리즈가 톈안먼 사건을 감행한 덩샤오핑과 당당히 맞서다 사랑하는 고국을 떠나야 했던 일이 벌어진지 25년에 그의 연설문집이 한국에서 출간되는 것이다. 마치 중국의 오늘날이 있게 한 영웅처럼 인식되고 있는 덩샤오핑을 덩샤오핑 입장에서 서술한 《덩샤오핑전》과 이 책을 같이 놓고 본다면 중국의 현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점을 이 책을 내는 이유로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현실에서 뜻을 가진 지성인과 지도자들 그리고 미래를 책임져야 할 젊은이들은 “지금 어떤 역사를 쓰고 있을까?” 팡리즈의 함성을 통하여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이 책을 내는 수고로움이 기쁨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팡리즈
베이징(北京) 출생. 16세 때인 1952년 베이징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하고, 졸업 후 과학원 물리연구소에서 연구생활을 하였던 천체물리학자.
1957∼1958년의 반우파(反右派) 투쟁에서는 우파로 몰려 당적을 박탈당하였고, 1966∼1976년의 문화혁명 기간에는 대학에서 쫓겨나 이른바 하방(下放)을 당한 가운데 연구활동을 계속하였다. 문화혁명 후, 연구자로 복귀하여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논문을 발표, 국제적 명성을 얻었고, 1978년 공산당에 재입당하였다.
안후이성(安徽省) 허페이(合肥)의 과학기술대학 부총장으로 있던 1986년 12월, 대학생들의 민주화 시위가 시작되자, 학생시위에 선동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공산당에서 제명되고 대학에서 쫓겨났다. 그 후 베이징천문대학 연구원이 되었으나, 1989년 1월 정치범의 석방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덩샤오핑(鄧小平)에게 보냈고, 1989년 민주화운동에 불을 당기는 역할을 하였다. 1989년 6월 4일 텐안먼(天安門) 사태 때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에 피신해 있다가, 1990년 6월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역자 : 이건일
공군사관학교(제14기)를 졸업하고, 중화민국 문화대학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취득, 졸업하였다. 그후 미국 USC 방문교수, 중국 북경대학 방문교수,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국방대학교 명예교수 겸 대륙전략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역 : 권중달
權重達
권중달은 인천 계양에서 출생한 권중달은 중앙대학교 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에 유학하여 「『자치통감』이 한국과 중국의 학술에 끼친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6년부터 중앙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지냈고, 2006년에 정년퇴임하여 지금은 명예교수로 있다. 권중달 교수는 역사지식의 대중화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97년부터 『자치통감』번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2005년 말에 200자 원고지 8만매 분량인 『자치통감』 전294권을 완역하였다. 그리고 2007년 1월부터 2010년 5월까지 3년 6개월 동안 『권중달 역주 자치통감』 31권과 해설서 『자치통감전』 1권, 전32권을 출간하였다. 일반 독자를 위하여 펴낸 『자치통감산책』은 『자치통감』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저서로 『중국근대사상사』『자치통감전』,『자치통감산책』,『자치통감사론강의(전2권)『위진남북조시대를 위한 변명』,『황제뽑기』『자치통감 3번 태어나다』외가 있고, 역서로 『역사학연구방법론』, 『중국사의 새로운 이해』, 『문화대혁명 전후의 중국역사인식』,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역서 『가사』 외 공역과 공저가 다수가 있다.
▣ 주요 목차
-끝나지 않은 중국 근대화의 화두 | 권중달 5
-《팡리즈 강연집》 출판에 붙여 | 가오쉬쥔 12
-역사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찾기 위하여 | 천츄메이 17
-현실을 직시하며 진실을 말하는 책 21
-팡리즈의 강연집 출판에 앞서 25
-팡리즈, 중국은 이러한 학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 우궈청 27
-진귀한 답신 | 가오쉬쥔 51
제1부 중국은 반드시 변해야 한다
-민주·개혁·현대화 56
-지식은 개혁의 관건 117
-누가 참된 민주인가? 181
-중국 개혁의 돌파구 209
-민주주의는 위에서 베푸는 은혜가 아니다 218
-민주와 안정에 대한 이해 224
-‘도구론’을 근절하라 226
-현대과학의 시각에서 중국의 전통문화를 반성하다 251
제2부 우리는 지금 역사를 쓰고 있다
-지금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274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 326
-풀을 먹고 피를 짜야하는 대륙의 중년교사들 374
-지식인은 반드시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379
-‘위기감’ 속의 책임 385
-우리는 지금 역사를 쓰고 있다 389
제3부 역경 속에서도 굳게 지키는 것들
-나의 1987년 5월 21일 399
-카프리를 다시 방문하다 407
-민주주의는 쟁취하는 것 414
-전방위적 개방, 전면적 개혁 425
-중국이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개혁 442
-항상 성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 리수셴 467
-어린 아이를 구합시다 471
부록 팡리즈에 대한 공감
-아름다운 중국인의 마음, 팡리즈 | 가오쉬쥔 482
-팡리즈, 중국대륙 사회의 양심 | 띵왕 499
중국 민주주의의 투사 팡리즈, 그를 주목하라!
팡리즈는 가난한 철도 공의 아들로 베이징에서 1936년에 태어났다. 명석한 두뇌로 일찍부터 자연과학, 특히 물리에 관심을 가졌고, 베이징 대학 물리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그러한 그가 반우파투쟁이라는 정치투쟁에서 우파로 지목되면서 하방(下放)되어 광산의 막장에서 노동하는 고초를 겪는다.
광산에서 1년간 중노동을 하면서 그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책을 통하여 공부하면서 천체물리학에 흥미를 느끼고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는 다만 장연형상 속에서 증명할 수 있는 과학이 좋았고, 또 이를 연구하고 싶었던 순수한 학자였다.
그러나 그가 중국에서 새로 연구하는 천체물리학은 마르크스 이론에 없는 것이어서 이를 연구할 수 없는 중국의 정치 체제에 대하여 순수하게 연구를 하게 해달라는 운동을 펼친다. 그는 과기대학 부총장에 오른 뒤에도 이러한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하여 연구를 위하여 중국공산당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공산주의가 자연과학의 연구를 지도할 수 있다.’는 도그마를 깨트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는 연구를 위하여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러 곳에서 강연을 펼친다. 물론 그에게는 강한 압력이 왔다. 공산당에서 쫓겨나고 마지막에는 과기대 부총장에서 쫓겨나서 베이징 천문대 연구원으로 좌천시킨다. 민주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연구의 자유를 획득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하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굽히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덩샤오핑에게는 눈에 가시였다. 결국 그는 덩샤오핑에게 공개적으로 정치범을 석방하라는 공개편지를 썼고, 덩샤오핑은 그를 고소하려고까지 했다. 이러한 사실들이 밖으로 알려질수록 중국 내의 민주화 열기는 넘쳐흘러 나왔다.
드디어 1989년 5월 말부터 시작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는 베이징 시가를 덮었다. 1주일이 지나도 끝나지 않자 중국 당국은 군대를 동원하여 이를 진압한다. 그리고 팡리즈는 이 데모를 배후 조종한 사람으로 지목하여 지명 수배령을 내렸다. 그 후 팡리즈는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에 숨어서 1년 넘게 있다가 미국으로 망명한다.
중국의 근대적 민주주의 역사, 그를 통해 기억하라!
팡리즈가 내세운 이론은 간단하다. 낙후된 중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하여서 필요한 것은 과학이고, 이를 제대로 연구하고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서는 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과 민주는 동전의 앞뒷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민주는 위에서 은혜를 베풀듯이 내려 주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비록 무장 저항을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인민의 꾸준한 저항과 힘으로 쟁취해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시행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강하게 조였던 끈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 준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중국 당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연구의 자유, 신체의 자유, 언론의 자유, 결혼의 자유 등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팡리즈의 주장은 1919년 5·4 운동에서 베이징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와서 주장한 것이 70년 만에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중국에 맥맥이 흐르는 민주화의 열망은 70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고, 이는 군대의 힘으로 제압되었지만 여전히 인민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중국의 근대화, 민주화를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팡리즈의 강연집이다. 그는 ‘민주주의는 하사(下賜)해 주는 것이 아니다.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순수한 자연과학자,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에 관한 수많은 논문으로 천체물리학계에서 세계적 지도자가 된 그가 이러한 정치운동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 강연집에서 읽을 수 있다.
옮긴이의 말 - 끝나지 않은 중국 근대화의 화두
1990년 6월 25일은 중국과 미국이 13개월간 끌어 오던 외교 문제가 조용히 해결된 날이다. 중국의 사하로프 혹은 솔제니친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팡리즈(方勵之)가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난위엔(南苑)군용비행장에서 아무도 모르게 미국군용기에 몸을 싣고 중국을 떠나는 일이 벌어진 날이다. 비록 비행기가 이륙하기 30분전까지만 해도 피를 말리는 긴장이 팡리즈 본인은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 당국에게도 엄습하고 있던 큰 사건이었다.
1989년 6월 4일에 학생들의 민주화를 주장한 시위가 절정에 달했을 때에 중국 당국은 이를 감당할 수 없자 군대를 동원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른바 톈안먼사건이다. 그런데 중국 당국은 학생들의 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혐의를 정치와 무관한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팡리즈에게 덮어씌웠던 것이다.
그래서 팡리즈는 베이징주재 미국대사관으로 숨어들어 미국의 부시대통령의 손님이 되어 숨을 죽이며 13개월을 보냈다. 길고 긴 줄다리기를 하며 극적인 타협을 거쳐서 그에게 중국이 범죄자라는 혐의를 씌우지 못하게 하고 신병치료라는 명목을 달고 그렇게 사랑하던 고국 중국을 영원히 떠났다.
그가 조국을 배반하여 학생들을 데모하도록 조종하였다는 혐의를 쓰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는 학생들에게 데모를 하도록 조종은 하지 않았지만 중국에 민주화가 이루어 지지 않으면 중국의 발전도 학문적인 연구도 불가능하다고 외쳤던 때문이었다.
순수한 학자이기에 거짓말을 할 수 없었고, 그러기에 중국 헌법에 쓰인 대로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죄라면 죄였다. 무늬만 민주주의의 가식을 통렬히 비판한 그는 ‘우리는 지금 역사를 쓰고 있다.’고 학생들에게 용감하게 강연하였다. 역사적 존재인 학생들의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역사에 기록될 것이기에 시대적 사명감을 가지라는 호소였다.
아편전쟁 전후로부터 시작된 중국의 근대화에서 모셔 오려했던 두 화두 ‘덕 선생(德先生, 데모크라시)’와 ‘새 선생(賽先生, 사이언스)’이 근 150년이 지난 1980년대에도 중국에서는 팡리즈에게서 나타난 것이다. 그는 당시의 권력자들과 맞붙어서 싸웠다. 심지어는 덩샤오핑의 권위에 도전한 까닭에 덩샤오핑은 팡리즈를 고발하는 상태까지 갔다.
논리적으로는 당할 수 없었던 중국당국은 6·4 톈안먼 사태를 이용하여 그를 제거하려고 했다. 이렇게 조치하려고 한데는 팡리즈가 학생들을 상대로 행한 연설 때문이었다. 중국의 법에 저촉되지는 않지만 그러나 중국 당국에게는 엄청난 경계대상이 되었던 그의 연설문은 중국의 민주화에 한 획을 그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팡리즈가 외친 후 26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중국의 진정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데 대하여 동의하기가 쉽지는 않다. 중국이 비록 G2로 불릴 정도로 성장하였고, 또 새로운 실크로드를 건설하여 대국으로 세계를 이끌려고 하고 있지만, 밀입국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겠다는 사람들과 요유커(遊客)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명품을 싹쓸이 해 가는 두 얼굴을 보면서 중국의 심각한 불평등현상을 보게 된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빌딩숲을 이룬 도시와 그 속에서 헤매는 농민공들의 상황을 보면서 중국의 민주화는 어디까지 왔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동안 우리가 중국을 허상으로만 보아 온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현재 중국은 중국 역사에 있었던 한 무제 시절이나, 당태종시절의 재현을 목표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일시적으로 세계제국을 건설했지만 지배자의 하향식 덕치(德治)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던 역사가 자꾸 머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영원한 중국의 번영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팡리즈가 주장한 진정한 민주화가 아닐까? 중국을 그렇게 열렬하게 사랑하였던 순수한 학자 팡리즈가 중국의 장래를 위하여 부르짖은 그의 연설문은 중국의 장래를 위한 훌륭한 처방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우리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민주화만이 안심할 수 있는 만큼 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민주화는 아시아의 평화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고, 아시아의 평화가 없는 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불안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내게 된 이유이다.
톈안먼 사건이 일어난 지 26년, 그 배후세력으로 지목되었던 팡리즈가 톈안먼 사건을 감행한 덩샤오핑과 당당히 맞서다 사랑하는 고국을 떠나야 했던 일이 벌어진지 25년에 그의 연설문집이 한국에서 출간되는 것이다. 마치 중국의 오늘날이 있게 한 영웅처럼 인식되고 있는 덩샤오핑을 덩샤오핑 입장에서 서술한 《덩샤오핑전》과 이 책을 같이 놓고 본다면 중국의 현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점을 이 책을 내는 이유로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현실에서 뜻을 가진 지성인과 지도자들 그리고 미래를 책임져야 할 젊은이들은 “지금 어떤 역사를 쓰고 있을까?” 팡리즈의 함성을 통하여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이 책을 내는 수고로움이 기쁨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팡리즈
베이징(北京) 출생. 16세 때인 1952년 베이징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하고, 졸업 후 과학원 물리연구소에서 연구생활을 하였던 천체물리학자.
1957∼1958년의 반우파(反右派) 투쟁에서는 우파로 몰려 당적을 박탈당하였고, 1966∼1976년의 문화혁명 기간에는 대학에서 쫓겨나 이른바 하방(下放)을 당한 가운데 연구활동을 계속하였다. 문화혁명 후, 연구자로 복귀하여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논문을 발표, 국제적 명성을 얻었고, 1978년 공산당에 재입당하였다.
안후이성(安徽省) 허페이(合肥)의 과학기술대학 부총장으로 있던 1986년 12월, 대학생들의 민주화 시위가 시작되자, 학생시위에 선동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공산당에서 제명되고 대학에서 쫓겨났다. 그 후 베이징천문대학 연구원이 되었으나, 1989년 1월 정치범의 석방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덩샤오핑(鄧小平)에게 보냈고, 1989년 민주화운동에 불을 당기는 역할을 하였다. 1989년 6월 4일 텐안먼(天安門) 사태 때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에 피신해 있다가, 1990년 6월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역자 : 이건일
공군사관학교(제14기)를 졸업하고, 중화민국 문화대학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취득, 졸업하였다. 그후 미국 USC 방문교수, 중국 북경대학 방문교수,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국방대학교 명예교수 겸 대륙전략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역 : 권중달
權重達
권중달은 인천 계양에서 출생한 권중달은 중앙대학교 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에 유학하여 「『자치통감』이 한국과 중국의 학술에 끼친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6년부터 중앙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지냈고, 2006년에 정년퇴임하여 지금은 명예교수로 있다. 권중달 교수는 역사지식의 대중화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97년부터 『자치통감』번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2005년 말에 200자 원고지 8만매 분량인 『자치통감』 전294권을 완역하였다. 그리고 2007년 1월부터 2010년 5월까지 3년 6개월 동안 『권중달 역주 자치통감』 31권과 해설서 『자치통감전』 1권, 전32권을 출간하였다. 일반 독자를 위하여 펴낸 『자치통감산책』은 『자치통감』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저서로 『중국근대사상사』『자치통감전』,『자치통감산책』,『자치통감사론강의(전2권)『위진남북조시대를 위한 변명』,『황제뽑기』『자치통감 3번 태어나다』외가 있고, 역서로 『역사학연구방법론』, 『중국사의 새로운 이해』, 『문화대혁명 전후의 중국역사인식』,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역서 『가사』 외 공역과 공저가 다수가 있다.
▣ 주요 목차
-끝나지 않은 중국 근대화의 화두 | 권중달 5
-《팡리즈 강연집》 출판에 붙여 | 가오쉬쥔 12
-역사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찾기 위하여 | 천츄메이 17
-현실을 직시하며 진실을 말하는 책 21
-팡리즈의 강연집 출판에 앞서 25
-팡리즈, 중국은 이러한 학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 우궈청 27
-진귀한 답신 | 가오쉬쥔 51
제1부 중국은 반드시 변해야 한다
-민주·개혁·현대화 56
-지식은 개혁의 관건 117
-누가 참된 민주인가? 181
-중국 개혁의 돌파구 209
-민주주의는 위에서 베푸는 은혜가 아니다 218
-민주와 안정에 대한 이해 224
-‘도구론’을 근절하라 226
-현대과학의 시각에서 중국의 전통문화를 반성하다 251
제2부 우리는 지금 역사를 쓰고 있다
-지금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274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 326
-풀을 먹고 피를 짜야하는 대륙의 중년교사들 374
-지식인은 반드시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379
-‘위기감’ 속의 책임 385
-우리는 지금 역사를 쓰고 있다 389
제3부 역경 속에서도 굳게 지키는 것들
-나의 1987년 5월 21일 399
-카프리를 다시 방문하다 407
-민주주의는 쟁취하는 것 414
-전방위적 개방, 전면적 개혁 425
-중국이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개혁 442
-항상 성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 리수셴 467
-어린 아이를 구합시다 471
부록 팡리즈에 대한 공감
-아름다운 중국인의 마음, 팡리즈 | 가오쉬쥔 482
-팡리즈, 중국대륙 사회의 양심 | 띵왕 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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